씨튼연구원 종교인 모임 발표 후 토의
일시: 2026 06 19 금요일
장소: 진관사
<1세미나>
최현민 수녀: 송용민신부님 발제를 들으면서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우리 안에서 무뎌져 있던 부분을 다시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 제시된 세 가지 질문은 모두 종교인이라면 한 번쯤 깊이 고민해야 할 주제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으로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가를 다시 묻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남은 시간 동안은 이 세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눠보고, 부족한 부분은 오후 시간에 이어서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심원 스님: 저는 불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신교 부분은 신부님이나 목사님들보다 이해가 부족한 편입니다. 그래서 저자가 일신교를 상당히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과 신부님께서 종교인의 입장에서 설명해 주신 내용 사이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해서 이해해야 하는지가 조금 궁금했습니다. 반면 상징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상징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고 사람들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징이 권력의 도구가 되거나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때는 굉장히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이런 점을 많이 생각해 왔는데, 이번 장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을 때도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존재이며, 그 이야기가 문명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그것을 이야기 대신 상징체계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결국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언어가 권력을 담고 있다는 설명도 인상 깊었습니다. 다만 상징은 부정적인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도 있기 때문에, 오늘은 그런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공현 교무: 제가 맡은 11장과 12장은 오늘 논의된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다만 종교를 제도나 권력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내용도 있기 때문에, 오늘 논의와 함께 이어서 생각해 보면 더 풍성한 토론이 될 것 같습니다.
송용민 신부: 저는 오늘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왜 나는 지금도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책에서는 종교를 권력과 정치의 산물처럼 설명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기독교 역사를 힘과 권력의 역사로 해석하는 부분은 종교인 입장에서는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교리 논쟁과 권력 다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종교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또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한 것처럼,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를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 태어난 환경과 가정, 전통 안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통해 신앙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공기처럼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종교인은 한 번쯤 '왜 나는 이 신앙 안에 머물러 있는가'를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도 저는 늘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합니다. 인간은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이고, 그 의미는 부모나 사회, 전통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의미가 멈추는 지점은 죽음입니다. 누구도 죽음 이후를 경험해 본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이야말로 모든 종교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종교마다 그 희망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문제는 현대의 무신론적 관점에서는 이런 희망을 상상이나 환상, 자기위안 정도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그 상상을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희망으로 바꾸어 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먼저 나 자신이 그 희망을 진실이라고 믿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현민 수녀: 송용민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전에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신학생들에게 평소 궁금했던 점이나 고민을 적어 보내 달라고 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20대의 젊은 학생들이었는데도 삶보다 죽음에 더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제가 학생들과 함께 나눈 것은 결국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주제였습니다. 죽음 이후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현재의 삶을 어떤 가치와 기준으로 살아갈 것인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예수님이 삶의 스승입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든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질문은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입니다. 저는 그 질문을 기준으로 제 삶을 바라보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 정체성은 어떤 종교적 이름보다도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려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는 그리스도인이면서 수도자이기도 합니다. 수도자는 정결, 청빈, 순명이라는 세 가지 서원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세 가지는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정반대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큰 권력을 얻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수도자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고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으며 살아가겠다고 약속합니다.
살아갈수록 저는 그 약속이 제 삶을 계속 붙잡아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방향을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주고,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인지 끊임없이 돌아보게 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AI가 급속하게 발전하는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종교인이 더 분명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발표된 교황님의 회칙에서도 <인간의 고귀함>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데, 지금이야말로 종교가 인간의 의미와 행복을 가장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라고 느낍니다.
우리처럼 각 종단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살아갈 때 그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종교 지식을 전달하는 것과 자신의 삶으로 증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미산 스님: 저는 처음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던 '인간은 무엇인가'와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두 질문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 선불교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이미 실체적인 '나'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습니다. 힌두교의 아트만 사상과 달리 불교는 자아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인간을 바라보는 출발점 자체가 다릅니다. 따라서 같은 '인간'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더라도 종교마다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과학적 환원주의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을 물질로만 환원해서 설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종교 간 대화에서는 이런 출발점의 차이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송용민 신부: 불교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현대인들에게도 상당한 울림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신교는 기본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계를 전제로 출발합니다.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라는 이해가 가장 근본에 있기 때문에 불교와는 출발점부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 간 대화를 할 때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통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수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AI 시대일수록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종교가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세대는 방향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종교마다 표현은 다르더라도 인간의 의미와 존엄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원 스님: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은 천주교 안에서도 신부님과 수녀님의 강조점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계속 머릿속에 남는 것은 '해석'이라는 문제였습니다. ‘인간의 고귀함’이라는 말도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고, 예수님의 가르침 역시 각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해석을 하느냐, 그리고 그 해석을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함께 공유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AI 시대에 인간의 고귀함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우리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종교가 사회와 소통할 수 있고, 각 종교가 말하는 인간 이해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박희규 교수: 오늘 책은 일신교를 상당히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저는 그런 시도가 오히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자의 시각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분명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종교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읽었습니다.
특히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거대한 보편 종교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특정 지역에서 형성된 매우 지역적인 종교였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잊어버리면 현재의 여러 국제적 갈등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이란 문제도 결국은 오랜 역사와 종교, 민족의 기억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결과입니다. 종교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지역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한 가지는 저자가 상당히 유럽 중심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럽 밖에도 다양한 권력 구조와 종교 문화가 존재했고, 그것들이 인류 문명에 미친 영향도 매우 컸습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런 부분이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기존의 관점을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현민 수녀: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결국 종교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점입니다. 책에서는 종교를 권력이나 제도의 산물로 설명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우리 각자가 실제 삶 안에서 경험하고 있는 종교는 단순히 그런 차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습니다.
또 종교마다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미를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만날 수 있는 지점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수록 인간다움과 인간의 가치에 대한 질문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각자의 전통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함께 인간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오늘 논의된 내용은 오후 토론에서도 계속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2세미나>
최현민 수녀님 : 9장부터 11장까지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이어지는 내용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오전에 했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시면서 이공현 교무님이 이번 발제에서 던지신 세 가지 토론 주제와 연결시켜 말씀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익상 목사 : 유로부터 사유하는 거. 그래서 무로부터 출발하는 동양과는 존재론적 질문부터 서로 다른 거예요. 그런데 나는 동양에 있는 기독교인인데 정체성을 수립하는 것보다는 정체성을 해체하는 작업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 문제 의식을 갖고서 충분히 완성을 못 시키긴 했지만,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그래서 한국에서 그런 동양의 문화권 안에서 기독교가 탄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송용민 신부 : 한국 기독교는 완전 서구화된 기독교보다 더 서구화된 형태로 정착했고, 종교 간의 토착화적 노력들이 꽤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성서 문자주의와 샤머니즘적 요소를 결합한 형태의 기독교가 등장했고, 종교인들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현상과 사례도 나타났습니다. 이는 일종의 토착화이지만, 종교가 사회를 비판하고 권력을 해체하는 힘은 오히려 약화되었습니다.
미산 스님 : 나를 종교인으로 목사로 규정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님이야, 나는 목사야. 각 종교의 정체성이 어떤 건데 나는 이런 정체성으로 평범하게 실천하고 있지요. 그래야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문적인 논의도 하나의 큰 흐름이지만, 공동체 안에서 삶을 나누고 함께 실천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결국 그런 실천을 통해 종교 간 대화가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박희규 교수님 : 사실 저는 미국에 있으면서는 이런 작은 공동체가 안 보였어요. 미국에서 큰 교회만 보다가 교회는 저는 사실 우리나라 와서 크게 감동을 받았어요. 젊은 친구들이 뭔가 실천해 나가는 실험적인 것도 많이 봤고요. 김민수 신부님께서 어느 날 ‘개신교의 개혁은 늘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공동체들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현민 수녀님 : 가톨릭도 마찬가지예요. 가톨릭도 로마 제국에 의해 국교화되면서 그리스도 예수 가르침이 이게 아닌데 했던 사람들이 사막에 갔었거든요. 그래서 사막에서 영성적인 뿌리를 깊이 내렸죠. 그 뿌리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교회를 계속 정화시키는 그런 에너지가 됐던 거예요. 그러니까 작은 것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 그 작음이 결국은 그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그런 어떤 에너지로서 계속 역할을 해내어왔고 지금도 계속 ING를 해결해 이어가고 있는 거죠. 만약 카톨릭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과연 카톨릭과 같은 모습을 지닐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붙을 수밖에 없어요.
미산 스님 : 불교도 똑같이 적용이 돼요. 불교도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탄압을 받았고 500년 동안 탄압의 역사 속에서도 다시 개화가 되면서 불교가 다시 부흥하고 수행의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거대한 바위는 아니지만, 꼭 돌멩이처럼 조금씩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 종교인들이 참신한 입장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면, 아까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어떤 희망이 분명히 있고 또 그 희망 때문에 우리가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이죠.
신익상 목사 : 대학원생들을 보면 다른 제도권 기독교에서 상처받은 친구들이 꽤 많습니다. 그리고 대안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저희들은 물론 소수지만 그런 고민을 함꼐 나누면서 교육은 하고 있거든요. 아마 그런 점 때문에 저도 계속 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송용민 신부 : 가톨릭과 개신교는 성직에 대한 이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톨릭은 사제를 제사를 집전하는 성직자로 이해하지만, 개신교는 만인사제직 사상에 따라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직자'보다는 '목회자'라는 개념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또 제가 만난 개신교 목사님들 가운데에는 실제 목회보다 신학 연구와 학문 활동을 중심으로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반면 현장에서 목회하시는 분들은 이런 학술 모임을 다소 불편하게 느끼시는 경우도 있어, 그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 안수도 인상적이었구요. 미국에서 안수를 받으신 목사님의 사례를 보면서, 안수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과정이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저희는 이를 주로 소명이나 사명이라고 표현하는데, 개신교는 가톨릭에 비해 조직에 대한 귀속감이나 충성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약한 것 같습니다.
박태식 신부 : 가톨릭 종교 전통에는 어쨌든 ‘순명’서약이 있잖아요. 순명을 할 때 누구에게 순명하느냐 하면 보통 우리는 주교한테 순명서약을 하지요. 순명은 힘든 게 주교님이 뭐라고 얘기를 했어? 너 이렇게 해. 그런데 이게 주교 명령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명인지는 몰라. 그런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가톨릭 교회가 단일성이라는 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전 세계 교회가 하나의 단일성을 갖고 있는 단일성의 원리가 사실은 순명이라는 기본 제도로 보면 제도적 폭력이죠. 그런데 그것이 영성적인 것으로 승화시켜서 내가 주님께서 나를 쓰시겠다고 하면 어디든 가서 봉사하는 곳은 다 하느님 백성이 있는 것이다. 내가 좋고 나쁜 걸 고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순명을 이해하는 거죠. 권력의 측면에서 봤을 때 바깥 사람들이 보면 지금 주교의 권력에 의해서 자유를 핍박받고 억압한 그거잖아요. 외부에서는 그런 측면을 볼 수 있지만 본인은 그렇게 바라보지 않잖아요. 본인은 이것을 하느님의 뜻이고 이렇게 바라보는 게 양면이 있는 거예요.
이공현 교무 :원불교도 조직 안에 같은 문제가 있어요. 힘든 거예요. 저희는 처음부터 교화, 교육 복지 세 분야에 선택권을 주고 전공을 살리게 해요. 그러다 보니 막상 본인이 하고 싶은 분야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원불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