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모임 나눔 - 김승혜수녀님(발제자)
김승혜수녀님 : 한국 종교 학교에서 같이 일을 하면서 이제 선생님과 함께 저랑 이제 회장을 하고 그러면서 종교 학계를 알게 됐고요. 그리고 인터 릴리디오라고 저기 나고야에 있는 그 나고야 대학교 안 가니까 난잔대학으로 갔어요. 난잔대학의 그 진하이즈 신문이라고 거기서 그분이 그 당시에 원장은 안 주셨고 다른 분하면서 같이 이제 그 종류가 동양 동방역 그런 연구소 말이야. 그 연구소가 있어서 그 연구소하고 이렇게 사진을 보시면 여기 왼쪽에서 세 번째 나오는데 이제 그분이랑 우리가 그니까 8군데 인텔리움이라고 해서 아시아 동아시아 쪽에 일본의 난임장을 하고 있어 가문도 몇 군데 돼 있어 홍콩에 대해서 이런 점하고 이제 같이 하면서 서로들 심포지엄도 왔다 갔다 하면서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하인조 신부님이 저한테 전화를 하시고 그 자기네 그 연구소를 시작하는데 도와준 쪽에서 네덜란드에 있는 폴티쿠스라는 후원회래요. 거기서 저를 찾아올 테니 그분들을 만나면 좋겠다 싶어 이 종교 간의 대화를 하는데 후원을 해드리고 싶다는.. 제가 그때 서강대학교 연구실에서 그분이 와서 같이 얘기를 했었어요. 그분이 저희 시나리오에서 신호한 두세 사람이 계속 종교 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해주면, 자기들이 초기에 이 일을 돕기 위해서 한 10년 동안 후원을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수녀원 일을 했고 수녀원 발탁을 해서 공부를 했죠.
수녀님이 그때 원하는 게 불교 쪽이었어요. 저는 유교가 전공이거든요. 그래서 수녀님이 불교를 하고, 또 하나 수녀님이 시작을 했는데 아니라고 근데 하여튼 그래서 그때 시작을 해서 그때 제가 기대성 선생님 그 다음에 종범순 그리고 초연자 그렇게 우선 모여서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의논을 하다가 우리가 아무래도 이게 공부하는 사람들이니까. 대학 교수를 늘리면서 이런 종교 간의 개발에 관심 있고 서로 같이 배우고 이럴 마음이 있는데, 그럴 때 한 10명이 모였었어요. 그래서 그 10명은 여러분들 중에서 지금 계속하시는 것처럼 일 년에 한 네 번 정도 같이 모이고 일 년에 한 번은 지금 여러분처럼 지내면서 인간적으로도 동물도 가꿔가지고 이해도 해주고 그런 면이 참 좋았고요. 그리고 이제 또 하나는 10명 중에 연구원들이 있고 그분들을 주축으로 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종교를 서로 이해하게 하는 그런 강의를 하자 그래서 강의를 보통 이제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의 강의, 이 책들이 대부분 이 책들이에요. 그래서 이제 불교로부터 시작을 해서 유학 교수들은 유교 뭐 도교 그리고 저기는 몇 개는 영어로 번역이 됐어요.
거의 끝나갈 때 또 우리가 보면 다 아시겠지만, 이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 다행히 운주사에서 그 사실 이건 돈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운주사에서 어떻게 해 이거 큰 마음을 먹고 한번 해보고 싶다고. 우리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종교도 서로 보고 대화, 예를 들어서 일본에서 했던 선사들과 그리스도교 신학자들과의 이런 거가 보급된 데 있어서 바로 같이 유교와 그리스도교 이런 거 있고 그래서 초기에는 주로 서로를 이해하는데 그렇게 한 6년을 하구요. 만 6년이 끝나고 그게 이제 여기에 나와 대부분 가장 아름답죠 사실은 수녀님이 저한테 얘기를 시작을 했는데 우리가 이렇게 서로만 이해하는 거 너무 한계가 있지 않나 뭔가 우리가 우리 사회의 구체적인 어떤 중요한 주제를 하나 택해서 그 주제를 가지고 보면서 우리가 그것도 그만두게 되고 정년해서 그만두고 또 미국 스노우의 리더십에 가족에서 그다음에 제가 떠난다고 그러니까 초기 한 같이했던 그런 사람도 같이 떠났대요. 저까지 합해서 그래서 이제 그걸로 떠나면서 손님도 쉬고 손님도 오시고 이제 그래서 계속 계신 건데요. 제가 이렇게 돌아보면 제가 15년 동안 했는데 15년 동안에 그 시튼 연구원에서 가장 지금까지 인상이 깊이 남아 있는 게 뭘까? 제가 많이 배운 게 뭔가 했을 때 느끼는 것은 구체적으로 종범 스님하고 그다음에 혜주 스님 최근덕 그 세 분한테도 제일 마음이 들어요. 이 종범 스님한테서는 우리가 이렇게 이제 토론하고 특별히 해주 스님하고 저하고는 토론을 많이 했어요. 날카롭게 서로 막 치고받고 이러면서 토론을 그분들 아주 날카롭게 얘기를 하세요. 이론적인 의미였거든요. 저도 미국에서 공부를 해갖고 와서 상당히 지금보다 더 날카로웠어요. 그래서 둘이 막 이제 싸워요 그러면은 종범 스님이 이렇게 웃고 계셔요 웃고 계시는데 그래도 그러다가 한 마디씩 이렇게 탁탁 던지는데 내 경험으로는 ‘아 해탈을 했다는 사람이 저런 모습일 거다.’ 저는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한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그냥 이론적으로나 글에서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각 종교와는 가장 어떤 깊이 있는 거 우리가 막 토론을 하다가도 끝에 가서 가장 귀중한 게 좋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그렇게 해서 배우는 게 가장 큰 거였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최근덕 교수님은 이렇게 웃고 계셔요 그리고 이제 자기 하시는 일 다 하시고 그분들 굉장히 열심히 하셨어요. 발표하라고 그러면 계속 발표 오시고 유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한 것도 자기가 앞에서 하시고 아 뭐 내가 이런 거를 전혀 드러내질 않으시면서 아주 이렇게 소박하게 같이 얘기해 주셨고요.
그리고 이제 제가 워낙 제 전공이 유교 쪽이니까. 유교를 가지고 이제 책을 냈거든요. 뭐 처음에는 ‘원시 유교’라는 건데 그 책이 좀 더 말을 다르게 바꾸자고 출판사에서 부탁을 해서 ‘유교의 뿌리를 찾아서’ 이런 거를 이제 책을 냈는데 그 책을 나중에 나한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지 근데 괜찮아 그렇게 하면서 이렇게 좀 격려도 하시고 그래서 이렇게 아주 여러 가지로 이렇게 삶에서 많은 거를 배웠다. 이런 게 저한테 지금 남아있는 좋은 기억입니다. 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09:36
최복희교수님 : 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저도 막 예전에 봤던 사진 막 이런 게 좀 생각이 나고 그러는데요. 또 말씀하셨는데 제가 처음 씨튼에 대해서 알게 된 거는 저희 아버지 때문에 저희 아버지께서 발제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약간 그리스도교 쪽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때 타자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손으로 써서 그거를 막 쓰고 쓰고 쓴 거를 제가 봤어요. 그래 가지고 제가 어 뭐 이런 거를 쓰셨나 그래 가지고 내가 물어봤더니, 우리 그거 하고 뭐 그러면서 막 얘기 해주셨거든요. 그래가지고 또 저희 학교 교수님들 얘기도 듣고 하니까 저는 되게 신기하고 그때 이제 알고 있었는데, 또 어디 가끔 어디 가시면 또 사진 찍어 보시잖아요. 그러면 너무 이렇게 그 모습이 그 사진이 시각적으로 사진을 딱 봤을 때 그 느낌이 딱 아 이분들끼리의 돈독한 어떤 것이 있구나라는 게 되게 느껴졌고, 약간 재미나게 보이기도 하고 그런 게 있었는데요. 나중에 이제 또 저희 아버지 그만두시고 하는데 어느 날 최현민 수녀님께서 서강대에서 저를 잠깐 보자고 하시더니, 동그랗게 옛날 산림광장을 바꿔가지고 후문 쪽에 막 이렇게 동그랗게 예 후문에서 들어와서 이름을 까먹었네요. 들어와 가지고 이렇게 동그랗게 잔디밭 있고 여기 카페랑 뭐 있잖아요. 거기 그 동그란 잔디밭에 둘이서 쪼그리고 앉아가지고, 얘기를 한참 나눴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제가 예전에 어렴풋이 들었던 모임 대화 모임 얘기를 하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셔서 그때 사실 저는 제가 같이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기회를 주시니까 영광스럽게 가서 배워야겠다라고 해서 했는데 사실 그때는 되게 멋모르고 되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제 뭐 좀 약간 좀 열심히 못하기도 하고 막 그런 했었는데 그때 그래도 같이 토론하고 하면서 제가 굉장히 많이 배웠습니다. 일단 이런 종교 사상들에 대해서 제가 종교학 부전공했었기 때문에 이제 수업은 많이 들었지만 제가 이렇게 눈이 열려있지는 못했었는데 그때 모임을 하게 되면서 좀 여러 종교들에 대해서 제가 믿는 종교 이외의 다른 종교까지 해서 약간 시각 눈이 이제 좀 열리는 느낌 그런 게 좀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예전에 그 영주에 같이 갔었을 때가 저는 되게 기억에 많이 남고 그때 이제 막 같이 다도 했던 기억이 되게 좀 아주 좋았었습니다. 되게 많이 배웠었고 중간에 이제 오랫동안 떠나 있긴 했지만, 또 이렇게 같이 시간을 하면서 또 더 많이 배우게 돼서 너무 좋습니다. 감사한 마음 입니다. 옛날 사진 보면 제가 옛날 거기 영주나 이런 데 갔을 때 찍은 사진 보면 또 제가 되게 어리더라고요. 근데 실제로 제가 너무 어린 학생 같이 보이더라고요. 다들 되게 그런데 나 혼자 너무 학생처럼 되게 배우면서 그때 지냈었지 그때 생각도 나고.. 네, 그렇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되게 많이 있습니다. 같이 할 수 있겠죠.
정소이교수님 : 저는 아까 수녀님 말씀 듣고 제가 이렇게 뽑아보니까 서강대 멋모르고 임용이 된 지가 벌써 22년째입니다. 그리고 종교학회 부회장이 됐어요. 이번에 그래서 정말 이때는 마음이 편해지셨다고 그러는데 저는 이제 조금 뭔가 알아가는 듯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이제 캐나다랑 대만에서 계속 서양 철학 중국 철학 한국 철학 오로지 무슨 철학만 쫙 하다가 정말 무슨 이 길이 갑자기 이렇게 확 열렸는지 종교학과에 이렇게 임용이 되면서 되게 놀랐던 거는 제일 이제 사랑을 해주시고 이제 격려를 해주셨던 지도 교수님이랑 저희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 이제 앞으로는 그랬지 저런 종교를 하지 막 이러면서 굉장히 좋아하시고 그랬는데 저는 이 대기업도 없고 그러니까 맨 처음에는 너무 부담이 너무 커서 가자마자 아무것도 없는데 종교학 방법론도 가르쳐야 되고 이러니까 매일 이런 거 처음 듣는 사람들은 대학원을 가르치고 이런 것도 많고 그래서 그때 한번 처음에 인제 가기 전에 선생님 뵙고 이제 제가 다산 전공이니까. 뭘 이제 할 거냐고 오늘 수업은 이렇게 들으시고 제가 이렇게 다산이 이제 부도배까지 들고 갔었던 자참여진용을 잘 같이 다 읽기로 했다. 그러니까 오케이 해주셔서 아 근데 정말 뭔가 좀 승인받은 그런듯한 느낌 들어가지고 너무 다행이다. 그렇지만 이게 굉장히 고군분투를 혼자 하면서 이렇게 너무 좋은 기회인데 내가 과연 이런 계속 자기 의심이 들 텐데 손님이 또 이렇게 초청을 해주셨는데 이게 어떤 데인지도 모르고 밖에 정신없는 거 그래서 뭐 애들이랑 학교랑 이제 막 적응만 이렇게 하는데 이게 점점 하면서 제가 드린 거는 거의 없는데 쌓인 거는 너무 많고 이렇게 진짜 학생들이랑 대학원이랑 이렇게 수업하면서 저희 뭐 명상도 하고 힐링도 하고 그리고 어디를 가보고 계세요. 저희는 진짜 이거 종교 현장도 거의 한 번도 안 가본 입장에서 너무나도 크게 이렇게 됐고 만약에 지금 또 저희는 뭐 ai나 뭐 이렇게 또 디지털 뭐 이런 것도 하는데 수업에서도 다른 전공인들 이제 불교랑 이런 데서는 이렇게 보거라 하고 인제 얘기도 해주셨고 그래서 정말 이 자리를 빌려서 너무 감사합니다. 어떡해요. 너무 좋습니다. 주제가 주제 넘게 이렇게 참여를 그냥 하게 됐지만 너무 감사합니다.
심원스님 : 저는 어느 날 느닷없이 혜주 스님으로부터 이런 종교의 대화 모임이 있는데, 내가 아무리 둘러봐도 스님이 가서 좀 공부도 하고 함께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거의 일방적으로 말씀을 하셔서 이렇게 불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혜주 스님 가장 많이 하셨던 이야기가 우리 수녀님 항상 어떤 이야기를 하면 이런면에서 도움을 입었다 이러이러한 면에서 열려있다. 이러이러한 면에서 이러하다라고 참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근데 그때 우리 수녀님께서 제가 수녀님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어서 항상 마음속에 언제 한번 수녀님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한번 봬야 되겠다. 했는데 혜주 스님이 말씀해 주신 것보다 100배 더 이래서 우리 혜주 스님이 우리 수녀님 말씀을 그렇게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또 앞에 두 분이 함께하면서 느꼈던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두 분이 느꼈던 것 공감합니다. 저는 뭐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학부에서는 유교 관련해서 강의도 듣고 해서 유교는 그렇게 낯설지 않지만 이제 천주교라든가 목사님 이게 어쩐지 약간 거리감이 있었고, 문화적으로 그렇게 친숙하지는 못했었는데 여기 이 자리에 오면 다 뭐 그런 것 없이 그냥 말씀들 하시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어느 때는 종교가 뭐 그렇게 중요해요.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있길래 하는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제 그 1세대처럼 다른 종교에 관해서 좀 적극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이런 바람이 있었는데, 우리 제가 학부에서부터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 종교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견해들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니까 그런 점이 1세대 스님들 1세대 분들처럼 그런 기계가 없었다는 게 좀 아쉽구나.. 그래서 언제 제가 농담 삼아 제가 신학을 잘 모르지만 언제 한번 강의를 들어야 되겠다라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 저도 느끼는 점이 많고 감사하고 그리고 은연중에 이제 여러분들이 해주신 그런 말들을 제가 법회 때나 아니면 불교인들과 함께 이야기할 때 은연중에 그렇게 빌어서 함께 곁들여서 이야기하는 걸 보고는 종교인 대화 모임이 대화라는 게 이런 거구나 우선 용어 개념 이런 것이 낯설지 않아야 함께 할 수 있는 공감대가 더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이런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우리 미산 스님께서 워낙 이제 열린 마음으로 다 함께 얘기해 주시니까 제가 저는 불교로서 함께 합류를 했지만, 미사 스님의 따라 미산 스님 가시는데 따라서 그냥 묻어갈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혜주 스님이나 종범 스님은 정말 마음속으로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종범 스님 가끔 이제 지금은 연세가 드셨지만 가끔 유튜브에 남아있는 부분을 듣다 보면 표현은 어쩔 수 없이 스님이니까. 스님 표현대로 말씀 불교적인 용어로 표현을 하시지만 그 속에 곁들여진 여러 가지 것들을 조금 말만 바꿔놓으면 어디든지 적용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아마 종교인 대화 모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어른으로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나 우리 혜주 스님은 당신이 워낙 치열하신 분이에요. 그냥 뭐가 하나가 해결되지 않아서 끝까지 가시는 분이신데, 우리 김승혜 수녀님을 만나서 도움도 많이 있고 이렇게 새롭게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두 분 어른 스님들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거에 감사드립니다.
21:21
신익상 교수님 : 만 2년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2년 동안 또 대단히 성실하게도 참여를 잘 못해서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이종배 선생님께서 내가 그만둬야 되니까. 누구 대타가 필요하다. 이런 그런 일이었어요. 그래서 허겁지겁 왔었던 기억이 나고요. 여기서 기억이 2가지가 좀 말씀하시니까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는 김승혜 수녀님께서 이종배 선생님이 기독교 통합학문연구소라고 학교에 연구소를 가지고 계셨고요. 그거 운영하시면서 수녀님을 모셔서 강의를 몇 번 들은 바가 있어요. 마지막에 한 번 제가 배웅해 드린 적이 있거든요. 아직 앳됐던 그 모습 속에 있었는데, 조금 남아있는데, 그때 수녀님께서 무슨 얘기를 하셨냐면 제가 무심코 복음주의 진영에 대한 걱정을 딱 했더니, 딱 한마디 던지신 말씀이 뭐냐면 “누가 복음주의야 우리가 진짜 복음주의지.”라고 하셨던 말씀이 저는 그때 기억이 많이 났고요. 교회는 복음주의 진영 어 그리고 교회 일치 진영 에반젤리칼 에큐메니칼 이렇게 나눠서 에반젤리칼 하면 보통 이제 보수적인 사람들 이쪽은 좀 더 그래도 개방적이고 그런 사람들 이렇게 나눠 나눠서 제가 무심코 그 용어를 썼었는데 수녀님께서 그런 진영 논리를 깨시는 말씀을 저한테 해주셨기 때문에 요즘 말로 ‘가로지른다’, ‘횡단한다’고 하죠. 그런 말씀을 해줘서 저는 그게 기억에 많이 남았고요. 그냥 배웅해 드리면서 한마디 그렇게 해주신 게 저는 지금까지 좀 많이 생각을 하고 그건 그런 건 제게 있어서는 불교와의 대화를 변선원 선생님 논문 쓰면서 그렇게 경계선을 넘는 그런 사유라고 하는 거는 지금까지도 제게 그래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작년에 스님께서 명상 해주신 거 있으시잖아요. 맛있는 거 먹으면서 근데 제가 그때 사실은 저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개신교 전통에서는 성공회는 그래도 좀 나은 것 같아요. 근데 개신교 다른 곳에선 진짜 이렇게 침묵 속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뭐 명상하고 그런 게 전통이 사실은 굉장히 적고, 말 그리고 성서에 있는 문장 이거에 좀 많이 치중한 편이거든요. 스님께서 그때 잠깐 묵상을 하라고 명상하라고 했을 때 제가 그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새소리가 그 전에는 새소리가 들렸거든요. 근데 명상을 하니까 엄청나게 많은 새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거예요. 아 새소리가 관념적으로 그냥 새소리 하나가 있는 게 아니고 엄청나게 많은 새들이 이 산에서 지금.. 그게 굉장히 충격이었거든요. 아 이게 내가 정말 나의 감각을 무시했구나. 그동안 내가 너무 내 자신에게 무리에 있었구나. 그런 깨달음이 있어 가지고 그때 참 좋았었습니다. 그게 저는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25:11
박태식신부님 : 김승혜 수녀님하고 저하고는 뭐 얘기가 워낙 옛날부터 길어서 85년인가 4년 때부터.. 제가 이제 종교학과 대학원 나오고 독일에 가서 공부 끝나고 오고 그리고 이제 서강대 강의하고 헤매고 있을 때 수녀님 저한테 도움 많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 씨튼에 아니 그 전에 이제 서강대학교 종교신학연구소가 있었고, 그때 정양모 신부님이 계속 현장 소장하시고 그때 제가 이제 접할 수 있는 부분을 다 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이제 변선환 교수님도 매주 오시고 그 당시에 대한민국 종교계에서 좀 거물들 많이 봤던 그런 85년도 그때 아주 정약모 신부님이 열심히 하셨죠.
그리고 공부 끝나고 와서 공부 끝나고 와서 여기 처음에 들어온 처음에 관여하게 된 계기가 제가 이거 시튼 종교 모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리고 지섭이가 여기서 또 일을 했었잖아요. 그래서 알고 있었는데, 저는 뭐 그때 시간 강사하느라고 바빠서 그런데 어느 날 수녀님이 저한테 수녀님께서 저한테 이재민 신부가 뭔가를 발표를 해야 되는데 발표하고 해야 되는데 글을 갑자기 독일로 가셨을 거예요. 광주 대신학교에서 쫓겨나면서 쫓겨나서 독일로 가고 어쩌고 하는 그 이재민 신부님한테는 굉장히 힘든 시절에 제가 대타 비슷하게 가서 글을 써서 거기 여기 제 글이 어디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서 수녀님이 저한테 이제 여기 좀 들어와서 참여를 해라 그래서 시작을 해서 지금까지 왔으니까 한 20년 10년에 은퇴하실 때 아마 제가 전력에다가 넣으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20년 가까이 됐고 생각나는 분이 최일범 교수님 그리고 돌아가신 정은혜 이런 분들하고 같이 오랫동안 그리고 돌아가셨죠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지난달에 다 얘기 진짜 재미나게 했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제가 아주 깜짝 놀랐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제 수녀님이 저한테 이런 일을 좀 하라고 하는 그 마음이 있으셨을 텐데 제가 수녀님의 기대를 못 채우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한테 영성생활 그건 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수녀님 제자인 건 아세요? 이제 강의를 들었죠. 대학원에서 그때 제가 들었던 과목이 유교의 경전들을 이제 취합해서 수녀님이 강의를 하셨고 그때 85년도인가 그랬을 거예요. 그때 이제 처음 했던 것이 논어의 8일편 이걸 갖고 설명을 하시고 그런데 논어의 8일 편 뭐 아시겠지만, 원래 이게 그 왕실에서 하던 거를 사대부 집에서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공자가 참 이렇게 세상이 돌아간다. 이런 걸 한탄하는 건데 제가 그때 알았어요. 2500년 전에도 싸가지 없는 놈들이 있었구나. 예나 이제 똑같이 그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그래서 그때 너무 수녀님 강의를 재미있게 들었던 그런 기억이 있는데, 그게 벌써 40년 전입니다. 제가 나이가 70입니다. 예 그렇게 됐습니다.
대학원 이제 우리 제가 정양모 신부님 보고 거길 들어갔는데 이제 종교학과 과목을 반드시 하나 들어야 되는 그런 옵션이 있었어요. 그때 아마 수녀님이 과장인가 그래서 신학하는 사람도 종교학 과목을 하나 들어야 된다. 그래서 제가 아마 수녀님 강의를 들었을 겁니다. 그때 진짜 공부 많이 했습니다. 그때 사서삼경해서 좀 보고 그리고 또 뭐죠 64궤 다루는 주역도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야 이게 난데없이 무슨 그리고 나서 인제 독일에 유학 갔다 와서 지금까지 이제 여기 뭐 열심히 했는데 이정배 선생님하고 정말 오랜만에 나가시고 그래서 지금 수녀님를 만나 뵙고 나니까 저한테 기대하시는 게 있었을 텐데 제가 너무 활동이 그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근데 저는 어쨌든 여기에서 진짜 많이 공부했고 그리고 제가 한동안은 또 KC학교 종교반 대화위원회 위원장도 한창 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좀 제 범위가 좀 넓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시스템에 오면서 공부를 많이 했고 그리고 많은 분들 만났고 그리고 책도 여러 권 쓰고 그래서 저한테는 아주 큰 경험이었고 많이 공부했고 예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30:55
송용민신부님 : 뭐 저도 되돌아보니까 씨튼하고 인연 맺은 게 한 22년 되네요. 제가 독일에서 공부 마치고 온 게 2003년인데 이제 좀 우연히 필연이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제가 공부를 마치고 저는 기초 신학 전공이라서 이제 제 지도 교수님이 한스 말든 펜스라고 독일 신학자로는 일본 상지 대학에서 10년을 공부하면서 불교 전공을 하신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서 공부한 거를 이제 로마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이제 독일권에서는 아시아 종교로 최초의 교수 자격을 취득하신 그러니까 아시아 전문가시죠. 제가 신학생으로 유학 가서 그분 본 대학교에 계실 텐데 그분께 찾아가서 이제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되게 반가워하셨어요. 왜냐면, 당시 중국하고 일본에 대해선 잘 아시는데 한국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더구나 신부가 되려는 신학생이 와서 당시에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되게 잘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불교를 선불교 특히 연구 이스타스케이지 이런 사람들 연구 근데 저는 뭐 제가 공부한 영역은 그런 쪽은 아니고 그냥 순수한 기초 신앙 그리스도교 신학 연구를 한 거니까 2003년에 공부를 마치고 왔는데 그 당시 우리 가톨릭계에서는 꽤 유명한 분들이 돌아가신데, 차동엽 신부님이라고 계셨어요. 대중 강연 많이 하시고 책도 ‘무지개 원리’ 내시고 베스트셀러였고 그걸로 뭐 돈 엄청 버셨는데 그런데 신부님이 어느 날 저 그분들 비인해서 공부했잖아요. 도회했으니까 되게 가까웠죠 또 선배시고 전화가 왔는데 중앙승가대학교에서 무슨 심포지엄이 있대는 거예요. 가보래요. 그래서 가서 뭐해요. 그랬더니, 그냥 가봐 그래서 그냥 갔어요. 그랬더니, 심포지엄이 있는데, 그때 마이스 에카르트 막 기희상 교수님 국제 심포지엄 한 그게 시트니 연구원 10주년 심포지엄이었어요. 그때가 그때 주제가 불교였을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저 머물러 가는데 막 뭐 외국어로 막 발표하고 뭐 그냥 저는 이렇게 멍 때리고 보다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 시튼 연구원이 뭐 하는 데지 이렇게 봤더니, 이제 그 안내 팜플렛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연구위원 있길래 거기에 제 이름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알고 봤더니, 이제 차등엽 신부님이 이제 우리 가톨릭에서 태섭 신부님 대중적으로 하시니까 아마 콜을 하신 것 같아요. 한번 우리 쪽으로 왔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처음에 이재민 신부님이 초창기 멤버셨는데 이재민 신부님이 이제 교황청 교단에서 강 교수 강좌 금지 명을 받는 바람에 좀 많이 힘드시면서 빠지시면서 사죄가 누구 신부가 필요하다 했을 때 아마 차등엽 신부님께 콜을 헤셨는 모양인데 신부님이 자기는 사목 신학 쪽이라 이쪽 종교 건강 쪽은 아닌 것 같다 제 제자 두 분 후배가 있는데, 그 친구 궁금한 쪽으로 오면 소개해 주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나 봐요. 김승혜 수녀님께 소개를 한 거예요. 그래서 저를 위원으로 넣어놓고 저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봐 이런 거야. 갔더니, 제가 위원으로 이름이 그래서 수녀님 인사드렸더니, 그때 아 그 40년대 얘기한 거 이분이세요. 그래서 이제 씨튼 연구원 일기 멤버들을 처음 뵌 거야. 그러니까 제가 그때 나이가 37이었거든요. 기라성 같은 질문하시면 내가 보기만 해도 막 그런 분들하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제 그 연구원 모임을 시작을 했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고 한 텀이 지나면서 생태 쪽으로 주제가 바뀌면서 생태 쪽에 그 방대한 책들을 연구하시는데 뭐 제가 뭐 이렇게 깊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한번은 제 차례가 돼서 발제를 한 번 저를 시켰어요. 그게 정말 제가 발제를 하고서는 그걸 하는데 이 교수님들 앞에서 무슨 발표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게 어렵게 발표했는데 김승혜 선생님이 그러는 거야. “그만하면 잘한 거예요.”
그리고 꽤 많이 배웠죠 저도 잘 모르는 영역에 정말 이런 종단의 학술인으로는 정말 최고의 지성인들이면서 종교인분들 어르신들하고 만나서 배우고 듣고 또 이렇게 연수 다니면서 그분들하고 친교 나누면서 이게 정말 많이 배웠고요. 예전에 한번 말씀드렸지만 아주 인상적인 걸 어디 우리 갔는데 막 이렇게 무슨 얘기가 치열하게 무슨 종교 얘기를 하다가 신의 존재 뭐 이런 얘기를 하다가 이정배 목사님하고 저하고 이렇게 있는데, 종범 스님이 딱 보시더니, 하느님이 어딨어 하느님이 다 마음에 있는 거지 목사 신부한테..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황당해가지고 나도 되게 하여튼 좋은 그런 기억들 많이 있었구요.
혜주 스님 같은 경우도 너무 해박하신 분한테 많이 배웠는데 재미있는 건 저 서울신학교 출신인데 서울 혜화동, 서울신학교에서 나이는 많은데 뒤늦게 신학교 들어온 형님인 동창 신부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불교학을 전공한 거예요. 근데 혜주 스님이 지도교수님 해서 아마 제가 알기로는 가톨릭 신부로는 최초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혜주 스님한테 했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서울카톨릭대학교에서 불교학과를 치고 막 동양철학하고 그랬는데 조금 개인적인 신상의 문제가 생겨서 사제직을 그만두게 됐어요. 혜주 스님이 되게 안타까워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하여튼 저도 씨튼 쪽하고 인연이 돼서 발을 담궈 놓으니까 신도로 여기 들어올 만한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다행히 이규성 신부님이 서강대에 계시면서 지금 멤버로 오늘 못 오시긴 했지만, 오셨고
이규성 신부님은 후임이라기보다는 그냥 멤버로 들어오신 거죠. 제 후임은 아니구요. 그분은 뭐 그래서 신부가 좀 더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초빙이 된 케이스고 박태희 신부님하고는 20년 가까이 그리스도 일치의 큐메니컬로 지금도 같이 활동하고 있어서 신부님하고는 종교관대하고 교회 일치 쪽하고는 워낙 막연하게 일을 하고 있어서 더 가깝게 느끼고 여기 새로운 분들하고 만나서 정말 많이 배우면서 좋은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박태식 신부님 : 기본적으로 누구 후임 후임으로 들어왔잖아요. 누가 나가면 들어오는 그런 멤버제인데 저는 김승혜 수녀님이 꽂아놓은 낙하산입니다. 저는 누구 후임으로 온 게 아니라 그냥 들어온 거예요. 직칼을 낙하산으로 들어왔어요.
송용민신부님 : 이재민 신부님 후임이시구나. 그러니까 이 스님이라는 개념보다는 가톨릭 신부가 하나 있어야 되는데 모양새를 같이 내니까 그렇게 된 거죠. 균형을 맞춰야 되니까. 그러다 보니까 네 감사합니다.
37:57
미산스님 : 성 신부님하고 저 비슷한 케이스인 것 같아요. 제가 이제 우리 종범 스님 모시고 그때 총장을 하실 때인데 저한테 성낙연구원장을 하시라고 하라고 그래서 기꺼이 연구원장을 맡고 있는데, 하루는 저희 성북동에 씨튼 연구원에 같이 한번 가보자고 하셔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예 스님 알았습니다. 하고 모시고 왔어요. 그랬더니, 보니까 이렇게 단장님도 계시고 막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앉아 있다가 얼떨떨하게 끝나고 왔어요. 그리고 나서 아무 말씀이 없으세요. 그리고 다음 모임 때 되니까. 나한테 또 연락을 하셔서 선생님 저번에 씨튼 연구원 갔다 왔죠? 거기 가세요. 예 제가 왜 거길 가야 되죠. 그러니까 어 이제 내 후임으로 가면 돼요. 아니 너무 황당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가서 공부를 해보니까 저는 그때 승가대에서 종교 이해를 한 18년 강의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실은 제가 종교학 연구를 하기 위해서 미국을 요구하니까 막 이렇게 망설이다가 스리랑카 인도 연구까지 가서 초기 불교 연구를 했는데 종교학 창단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어요. 심리에도 반갑고 그래서 아 씨튼 연구원에 보면 이 이웃 종교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공부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제 사실은 와서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생태가 나오고 막 이렇게 응용이더라구요. 근데 인제 그 응용도 저한테는 굉장히 유용했던 게 아니 그냥 같이 읽으면 읽겠지만, 그렇게 전문적으로 할 수가 없잖아요. 좋은 책들 그때그때 선정해 주시고 같이 공부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구요. 그다음에 이제 문화적으로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제주도 가서 사상 유적지들 보고 카톨릭 그 역할 역할을 쭉 들어보고 정말 고마웠어요. 사실 뭐 종교가 정말 그때 역할 못 했거든요. 오히려 더 이상한 역할을 했다고 제가 역사에서 봤거든요. 근데 가톨릭에서는 진심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직접적인 역할을 하셨더라구요. 그것도 그게 늘 그 후에도 그 유적지를 저 혼자 이렇게 받았거든요. 안타까운 그런 느낌들이 있었어요. 종교인 모임이 저도 생각하시는대로 실질적이어야 된다. 이론이나 교리 탐구 토론해도 끝이 없잖아요. 불교에서는 종범 스님처럼 신이 없잖아. 마음에 있지 그런데 그렇게 우리 논쟁은 끝이 없을 것 같고, 근데 같이 그 지혜를 전통 자비와 전통을 사랑하자면 어떻게 실제 21세기 디지털 문명사회를 사람들에게 전하느냐 분들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지는 이쪽에 초점을 맞춰서 하는 게 저는 늘 마음에 감사하고 제가 이렇게 참여하는 제가 여기 네 번째 왔습니다. 지난여름에 겨울 때 3번 강의를 했어요. 서울에서 1번 하고 저희는 온라인으로 하고 다섯 번 했어요. 강의를 근데 여기서 인제 수녀님 모시고 세 분을 해서 강의할 때마다 저는 우리 김승혜 수녀님 뵙는 게 너무 기쁘고 함께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고요해지고, 또 와서 너무 기쁘고 편안하고 감사합니다.
42:08
최현민수녀님 : 제가 마지막입니다. 그러게요 씨튼 연구원이라는 곳이 어떻게 보면 제 인생에 거의 수도여정에서 제가 종신선언을 하고 나서 거의 그다음에 모든 것들이 씨튼연구원과 연결되어서 이루어졌던 것 같아요.
우리 김승혜 수녀님하고의 깊은 인연으로 제가 이렇게 종교 간의 대화에 와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는 정말 제 삶의 가장 큰 축복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사실은 종교 간의 대화를 그냥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나고 이렇게 하면서 정교 간의 대화도 하고 강의도 하고 그런 종교 간의 대화도 많이 했지만, 사실은 저에게 종교 간의 대화는 제 내면 안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것들 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사실 불교를 이렇게 전공을 하다 보니까 불교라는 정말 다른 색깔의 종교를 제가 계속 이제 제안해서 계속 받아들여야 되는 상황은 제가 갖고 있는 종교 또 다른 종교 간에 서로가 어떤 그런 관계가 만남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계속 제 안에서 물어야 되기 때문에 그냥 내적인 대화가 제 안에서 이제 이루어져 왔고 그 과정 안에 이런 중요한 생활하는 새로운 장이 저에게 제 삶 안에서 이렇게 저를 오늘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장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해요.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이 들어요. 수녀님이 떠나시면서 제가 어떻게 이걸 어떻게 이걸 할 수 있을까? 저의 부족함으로 이걸 어떻게 이걸 계속 해 올 수 있을까라는 그런 걱정이 사실 참 많았는데 여러분들이 함께 이렇게 계속 이어서 나가시고, 또 이어주시고 이런 과정들 안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이 모임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가능해진 것은 한 분 한 분의 그런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게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이 들고 그래서 늘 항상 한 분 한 분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크고요. 이상 스님을 통해서 제가 워낙 이제 불교고 또 제 안에서 크게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제 수행이고 명상이고 이 부분을 저에게는 제가 이제 수도 생활을 계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장 그 부분이 제 마음자리를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스님과의 인연을 통해서 그냥 이론적으로 배웠던 그런 불교의 세계가 그냥 제 안에서 이렇게 내면으로 많이 이렇게 녹아 들어가고 그것이 제가 갖고 있는 종교하고도 이렇게 만나고 이런 과정 안에서 지금은 이런 과정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저한테 다가와요.
그래서 지금 제가 이제 학문의 세계 지금 학교라는 바운더리에서 벗어 나와 지내면서 지금까지 제 삶에 있었던 이런 이루어진 이런 과정들을 어떻게 교회 안에서 또 교회 밖에서 함께 공유하고 나누고 그러면 살 수 있을까? 그것이 저에게는 지금 그냥 제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부분이고 그런 자리가 매겨지는데 미산 스님과 인연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사드리고요. 교수님을 통해서 구체적인 명상법이라든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큰 감사한 일이고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으로부터도 제가 너무 많은 것들을 좀 배울 수 있어서 이 자리를 더 빌어서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계속 저희가 가족처럼 많이 끈끈한 인연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해 보면서 감사 인사드립니다.
47:08
심원스님 : 그 제가 우리 수녀님 이제 마지막 말씀을 듣다 보니까 미산 스님 이야기를 하시고, 또 스스로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 여러 가지 갈등을 좋아해 나가는 이런 말씀을 하실 때 듣다 보니까 명상이라는 것이 큰 매개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 모임에서 이 모임이 이 모임에 참여했다가 갈 때 느껴지는 뿌듯함도 있죠. 항상 아쉬움이 뭔가 공통의 뭐가 있었으면 그렇다면 또 좀 더 이제 자기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그런 모임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우리 그래도 어쨌거나 미사 스님과 그리고 우리 수녀님 그리고 불교와 천주교가 명상이라고 하는 하나의 고 좀 영성개발 혹은 수행을 그 곡을 매개로 해서 이렇게 맺었다면 연결이 되었다면 우리 여기 있는 다른 분들 뭔가를 통해서 이렇게 실을 꿰듯이 깰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뭐 나름대로 각기 다른 무엇이 있겠지만, 그리고 어쨌든 우리 수녀님은 전공을 유교로 하셨기 때문에 또 유교라고 하는 고걸 매개로 해서 다른 분들하고 가까이 와질 수 있었고, 그리고 또 우리 수녀님은 어쨌든 또 전공을 불교를 했기 때문에 미산 스님의 수행법이 더 마음에 와닿았을 텐데 다른 분들은 자기 종교 이상의 다른 종교를 전공을 하거나 그러질 않았기 때문에 고런 매개를 발견하는 것이 좀 쉽지 않지 않을까?
48:35
그러면 뭐가 연결해 줄까 생각해 보니까 제가 문화적인 어떤 부분 이런 교리라든지 이런 거는 참 접근하기 힘들고 공감대를 이루기 힘들지만 문화를 가지고 뭘 엮을 수 있으면 함께 우리뿐만 아니라 또 각 종교에 속해 있는 분들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세대가 되지 않을까? 문화는 생활이잖아요.
신익상교수님 : 그래서 오늘 2박 동안 그거 하러 모인 거예요. 종단의 영화 보기로 했잖아요. 오랜만에 엑스프레스북 약간 그들 종단의 고유한 어떤 역사와 문화를 좀 배우다 보면 엄청나게 많은 일거리가 많죠. 제 말씀이 딱 여기에 맞네요.
49:22
심원스님 : 이런 주제 그래도 두 분 이야기하는 거 듣다 보니까 특히 수녀님 말씀하시는 걸 듣다 보니까 참 수녀님이 복이 많으셨다 미산 스님이 합류를 하긴 했어도 만약에 종범 스님처럼 그런 뭐 저라면 함께 할 수 있는 공감대가 참 부족했을 텐데 항상 수행 명상 말씀을 하시다가 또 이사 선생님께서 적극적으로 명상을 보호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거기서 큰 어떤 공통점을 찾지 않으셔서 굉장히 부럽다는 생각이 나는 그러면 아찬주교나 기독교에서 무엇을 매개로 해서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을 제가 말씀 들으면서 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잖아요.
50:11
최현민수녀님 : 다음 우리가 이제 계속 이어가야 될 사실은 선생님 아까 말씀하셨듯이 이제 이 처음 모임의 주제는 각 종교를 이해하는 데 포커스가 맞춰졌었고 교의학적인 측면에서 이렇게 접근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고 유교 자체를 이해하고 불교 자체를 이해하는 데 포커스가 맞춰졌는데 저는 그 모임들을 계속 참여하면서 아 이게 뭐라고 하나 각자가 그 평행선을 긋고 있다라는 느낌이 굉장히 강하게 들었어요. 그러니까 자기 종교의 자기 종교와 물론 대화를 하고 있지만 그 종교가 만나는 게 아니라 그 종교는 그 종교대로 가고 이 종교는 이 종교를 가고 해서 계속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그러한 모임의 것이 저 안에서 “아 이걸 어떻게 하면 이걸 같은 주제를 갖고 이렇게 같이 뭔가를 대화의 주제로 이렇게 삼을 수 있을까?”했을 때 제가 생태 얘기를 한 것이 이 모임이 끝나면서 조금 뭔가 우리가 한 주제를 갖고 각자가 이렇게 얘기를 했을 때 거기서 공통 주제를 잡고 나아가는 그런 방향을 조금 이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생태 얘기를 처음에 했었고 그때 마침 이제 생태가 굉장히 붐이 일어났었고 생태하고 저희 10년 이상을 계속 그 주제를 해오다가 사실은 과학이라는 주제로 넘어갔었고, 조금 이제 수입 문화이기도 하시는데 그래서 지금 조금 제가 아 이 방향을 어떤 방향으로 다시 우리가 이걸 좀 재정립을 할 수 있을까? 좀 고민을 지금 뭐 좀 하고 여러분들도 같이 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을 같이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
교수님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이번에 우리 교황님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 돌아가시면서 새로 레오 14세 교황님께서 새로 선출이 됐고 그 교황님께서 이제 내셨던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목을 했으면 좋을까라는 그런 것을 이야기했을 때 제일 첫 번째가 평화였어요.
평화에 대한 큰 규제를 내셨고 그 다음에 진리 또는 정의 의무 행위 진리가 두 번째. 그래서 이제 그 부분을 근데 이것이 가톨릭 안에서의 평화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라는 주제라는 게 사실은 자기 안에서의 평화부터 시작해서 작은 공동체 더 나아가서는 국가적인 세계적인 이런 쪽으로 더 크게 이렇게 나아가는 어떤 그런 주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혜선수녀님 : 개인적으로 우리 교황님이 이거 얘기할 때요 추기 형님들한테 얘기하는 게 아니고 바티칸의 세계 여러 외교관들, 거기에는 이슬람 신도도 있고 여러 종교가 있었는데, 그 여러 종교들이 와있는 바티칸 공인데 거기에 바티칸에 와 있는 바티칸을 주재하는 외교관들에게 합니다. 근데 그게 가장 중요한 연구에서 얘기했어요. 평화다 그리고 평화는 정의하고 연결되고 끝에 가서 우리들이 진의하고 이제 다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53:49
최현민수녀님 : 그래서 아무튼 우리가 함께 이런 부분을 이제 오늘과 내일을 이렇게 좀 마무리 지으면서 같이 얘기를 하고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앞으로 우리 모임이 이루어져 가야 될지를 저 토론을 했으면 하는데 그냥 이 부분에 대해서 수녀님도 제안하시고 저도 인제 좀 보면서 그냥 생각을 네 말씀드리고
심원스님 : 우리끼리 함께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우리 수녀님께서 오랜만에 오셨으니까 당신이 생각하시는 이 모임의 방향성 조금 언급을 해주신다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54:45
김혜선수녀님 : 저는 그냥 여기를 지금 떠나서요 제가 그냥 지금은 제가 기도만 하고 있죠.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은 안 해요. 여러 가지로는 방학 계신 분들이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녀님 일부러 봤을 때 그냥 아 내가 너는 그거 읽었는데 나한테도 굉장히 와닿네 오늘의 시대에 필요한 거를 그래서 내가 손님 한번 읽어보시고 보낸 것 뿐이에요. 그리고 나중에 이제 같이 모셔도
55:18
박태식신부님 : 수녀님 예전하고 똑같으세요. 예 똑같으세요. 아니 제가 지금 질문을 하셨을 때 어떤 대답을 하실까 약간 궁금했거든요. 제가 예상하는 대답을 하셔서.. 수녀님은 이렇게 일단 뭐랄까 선이 그어지면 선이 그어진다 어쨌든간 그거를 구분을 확실하게 하시는 그래서 보나마나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 이런 소리를 알아서 그래도 교황님의 가르침 이번에 외교관들이 했다는 가르침 우리 한번 생각을 해서
최현민수녀님 : 한번 뭐 어디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굉장히 보편적인 또 우리 사실 종교가 지향하는 어느 종교나 지향하고 있는 그런 부분인데 그거를 현실적으로 지금 현대에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일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한번 길을 찾아보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저도 위원님께서 말씀하셔서 여러분들에게 그냥 하나 던져 먹을 건데 예 보시고, 또 다른 또 생각해 오신 또 다른 주제들이 있으시면 또 그런 주제들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