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튼연구원 종교인 모임
일시: 2025 9 20 토요일
장소: 성북동 씨튼연구원
발표주제: 평화학
발제자: 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 이대훈 연구소장님
이대훈 연구소장님 : 일본에서는 평화학, 평화연구라고 한자를 그렇게 보이니까. 그런데 이제 그걸 예상하고 미국 쪽에 조사해 봤더니, 평화학 강좌는 별로 없고 이제 갈등 연구, 갈등 연구의 방법론, 스킬과 실천 중심의 분야가 많이 개발됐더라고요. 대학가도 또 준비 기관이었어요. 종교기관은 아무래도 크리스찬들이 많이 선도하는 것 같았는데 그중에서도 퀘이커교라고 아시죠? 그래서 초기부터 필라델피에 정착했던 퀘이커 교인들이 굉장히 많은 기관과 연구와 업적을 이렇게 그런데 이제 그게 대학에 반영되면서는 이제 주로 Conflict Studies, mediation skill 이렇게 해서 실용적인 그래서 그때 처음 알게 됐고 그래서 좀 비교해 보자고 유럽을 공부할 때를 알아봤더니, 유럽은 두 가지 다 혼용돼 있었어요. 그래서 Peace Studies가 대학교의 정규 Peace and Concrete Studies라고 해서 이렇게 갈등에 대해서 기술적이고 실용적인 것들을 하면서도 인문사회학적인 연구를 많이 해야한다. 그 대륙하고 유럽 대륙하고 이제 북미하고 일본은 어쨌건 한자로 평화학을 이렇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구나. 나중에 인도도 Peace studies라는 개념과 전통으로 정착했던 것을 알게 됐습니다. 국내는 알아보니까 전무했었고요. 98년도부터 그래서 이제 영국을 선택해서 영국의 브래포드라는 도시가 있는데요. 위치는 맨체스터와 리즈라는 도시 사이입니다. 그러니까 영국 북부에 해당되고 요크셔주에 해당되고 영국의 전통으로 본다면 중심부에서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고 그 옆에 또 요크가 있고 해서 장미전쟁에서 가톨릭 쪽이 많이 세력화하던 그런 지역이기도 하고 그다음에 산업시대에는 레포드하고 맨체스터 중심으로 산업화가 일어나면서 노동자라는 개념, 노동 계급, 노동 운동, 노동조합 이것이 창시된 지역인데 맨체스터보다 더 먼저 그러한 흐름이 생겼던 곳이 브래포드라고 하는 것을 나중에 알게됐습니다. 그런데 거기를 갔던 이유는 필라델피아 퀘이커의 전통하고 연결이 되는데 크리스찬 전통에서 인제 여러 개신교들의 그 지파들이 갈려져 나올 때 그때 인제 초기에 그것은 교회 쇄신, 혁신이었잖아요. 그런데 그중에 카이빈 루터의 개혁 교회에도 충분치 못하다고 하면서 더 급진적이고 더 근본적인 지파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그중에 대표적으로 케이커하고 재세레파라고 있습니다. 아나바티스 그래서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두 지파가 반전, 반폭력, 비폭력 그다음에 평화에 대해서 굉장히 집중하는 그러한 전통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양심적 병역 거부 크리스찬은 총을 들 수 없다. 살상의 국가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애국의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살상을 할 수 없다. 이것을 시작한 두 교파가 아나바키스트하고 퀘이커 거기에 영향을 받은 크리스찬이 시작을 했었죠. 초기에 이런 급진적인 교파들은 또 다른 크리스찬들에게 다 배척을 받고 이런 면이 있어서 이분들이 배척의 역사를 많이 갖고 있어서 도망 다니다가 중간에 도피한 곳 중의 하나가 브래드포드입니다. 특히 퀘이커 교도들에게는 노동에 대한 가치와 브래포드 맨체스터에서 노동자가 출현하는 그런 거하고 잘 맞았던 모양입니다. 브래포드가 밖에 봤던 퀘이커 교도들이 집결하던, 가장 많이 집결하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그러한 종교적 영향과 사회 변동, 노동운동의 출현이라는 이런 역량과 나중에 전후 영국 정치에서 어땠습니까? 노영국의 노동당, 보수당, 노동당의 경제노도에서 노동당 계열의 청년운동이나 정치운동이 가장 많이 발현한 곳이 로크셔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에서 시작이 됐습니다. 참고로 비틀즈도 북부에서 시작을 했고 그래서 이런 혁신적이고 리버럴하고 개방적이고 자유를 추구하는 이런 많은 정신들이 있었는데, 80년대 Thatcherism이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게 노동 탄압을 했거든요. 탄광 폐쇄하고 이렇게 해서 신기업 정책을 강력하게 아주 전투적으로 밀어붙이는 와중에서 브래포드에 있던 퀘이커 교수들하고 연관성을 가지는 노동당이나 진보적인 사회 시청가들이 모여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하면서 평화학과를 수립해야 되겠다라는 결론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북유럽이나 독일과 달리 영국의 브래포드 대학의 평화학과 이러한 사회적인 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거기서 공부를 하게 됐고요. 공부하다보니 굉장히 여러 갈래가 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다음에 유럽에서의 평화의 시작은 이런 점들을 background로 해서 1945년에 많은 개별적인 논의들이 있었다고 해요.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입니다. 자료에도 담았지만 가장 문명이 높다고 자부하던 유럽인들이 가장 야만적인 방식의 전쟁을 두 차례나 수행하고 나서 이거를 체계적으로 검토하지 않으면 또 이런 일이 일어나겠구나 하는 커다란 지성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평화학의 이제 창립과 확산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독일하고 북유럽하고 영국에서 진보적인 지역에서 먼저 하기 시작해요. 그런데 여러 우여곡절 끝에 성격들이 조금씩 달라요. 북유럽 같은 경우에는 대학 기반 하더라도 이제 북유럽이 사회복지 중립 그다음에 국제 관계에 있어서는 외교 분쟁 조정 이런 전통이 북유럽의 사회민주당 사회민주주의 전통하고 전후에 그다음에 복지를 국제적으로 확대하게 되면 국제 관계에서의 평등이나 약속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그러니까 군사적인 수단보다는 외교적인 수단에 집중을 하게 되고 하게 되면서 국제 문제와 관련된 분쟁 조정과 연구가 북유럽이 이제 상당히 많이 발전하게 되고 지금도 그 화풍에 깊이 영향을 영향이 남아 있습니다. 최현민 수녀님 : 거기(피스모모)는 어젠가 그 통일부에서 발표하셨죠? 통일부 어떤 주제를 갖고 하셨나요? 이대훈 연구소장님 : 통일부에서는 해마다 국제 한반도 포럼 처음에 이름은 국제 한반도 평화 포럼이었는데. 윤석열 정부 때 국제 한반도 포럼으로 아시겠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바로 첫날부터 모든 문서에서 평화 빼라고 지시했던 거 아시죠? 그 와중에서 국제 한반도 평화 포럼이 국제 한반도 포럼이 됐는데 그전까지는 시민단체나 평화 연구자들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많았었는데 윤석열 정부 때 다 없어졌다가 이번에 올해 또 다시 복원됐던 세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화제는 정동영 장관이 국회에서도 말했고 일본 회의 때 연설에서도 얘기했듯이 통일을 투기하지 않더라도 너무 장시간이 걸리는 과제이기 때문에 평화적인 두 국가가 관계되는 것에 집중하는 것으로 통일과 관련된 정책을 다뤄야하고 굉장히 중요한 주제가 되겠죠. 그렇게 그래서 평화하게 이렇게 강조점에 따라서 여러 갈래가 생겨 왔었고 출발점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문명 수준이 가장 높았고 인문학의 수준이 높았다고 자부하던 곳에서 왜 가장 야만스러운 정치와 시민들의 타락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저는 21세기 대한민국에 굉장히 유효한 질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아마도 추정컨대 지금 미국에서 살고 계신 분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제가 드리는 말씀이 평화와 모든 것에 대한 것은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제가 경험한 것, 제가 좋아하는 것, 저의 선택을 중심으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고 제가 아는 한에 있어서 조금씩 비교하고 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제가 몇 분 정도 쓰면 좋을까요? 선생님들 질문이나 토론도 같이 하시는 걸 염두에 두면 최현민 수녀님 : 한 1시간 정도 7시, 7시 반 정도에 끝나면 될 것 같아요. 이대훈 연구소장님 : 네 너무 좋습니다. 자 그래서 전쟁의 전통에 대해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가 평화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학문 분야가 확대 발전하고 연계되듯이 평화학도 굉장히 학제 간의 경향을 꾸준히 굉장히 심하게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예를 전쟁과 악덕한 짓을 했던 히틀러 정권의 뿌리를 보니까 합법적으로 자유 선거에 의해서 등장을 했고 아무런 불법성이 없었고 심지어는 쿠데타도 아니었고 많은 특히 청년층들이 열광적으로 지지를 했었고 그 훌륭한 종교기관에서도 또 암묵적으로 또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커다란 범죄를 은폐하거나 합리화하는데 이렇게 앞장섰던 것을 보니까 이게 나쁜 놈이 전쟁을 일으킨다라는 그러한 단편적인 이해가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알게 돼서 전쟁을 야기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인적, 제도적 모든 것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렇게 확대되기 시작했죠. 그래서 전쟁을 비판적으로 공부하는 게 평화학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시작을 했는데 확대되면서 제가 요약하기로 평화학은 전쟁을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갈등 그다음에 폭력화 어떻게 폭력이 발생하는가? 폭력의 경향이 발생하는가? 폭력이 정당화되는가 폭력화라는 주제 폭력의 주제 그다음에 이것을 넘어서는 좀 장기 지속하는 마음의 평화 이런 걸 넘어서서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평화 이렇게 세 가지 주제가 평화학의 핵심 주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접근하다 보니까 평화학은 인문사회과학의 학제 간 학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그래서 평화학이 뭐다?라고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폭력의 원인도 굉장히 다방면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또 갈등도 종류가 굉장히 많이 있고 풀어나가 헤쳐나가는 방법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학이라는 틀 속에 들어오면 자주 사용되는 개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면서 굉장히 확산되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중심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개념들이 있다. 평화학은 실천적 학문으로 시작을 했고 대부분의 학문이 그렇지만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서 실천이 먼저 있었고, 평화학이 나중에 있었다. 예를 들면 유럽의 평화학은 특히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받았는데 유럽의 특성상 이분들이 다 독실한 크리스찬이고요. 크리스찬의 교리에 따라서 사람을 죽일 수 없다라고 했기 때문에 유럽의 문명의 뿌리를 건드리는 이러한 실천가들이 지금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당하는 대우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대부분 장기 또는 평생 강제 노역형에 처해졌고요. 일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대부분이었고요. 누워서 맞아 죽은 분들도 엄청나게 많았고요. 그래서 유럽의 평화운동은 사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수천 명의 양심 병역 거부자들의 피와 죽음을 통해서 이제 만들어졌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교회에 오랫동안 외면당했고요. 이거를 분석하는 것도 평화학의 한 분야에서 굉장히 중요한 왜 사랑과 박애와 연대의 가치를 두고 있는 종교기관에서 죽이지 않겠다. 살상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그렇게 오랫동안 외면해 왔는가, 그 원인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종종 다뤄지는 문제입니다. 종종 교실에서 수업에서 토론해서 벌어지는 것 중에 하나는 뭐냐면 교회와 국가의 결탁이죠. 종교기관과 국가가 결탁할 때는 애국이라는 교리가 더 다른 교리보다 앞서게 되면서 기존의 비리를 파괴하는 그런 것들을 갖고 있다. 이런 점들이 점점 두고
또 제 천식은 제가 두 살 때 홍역을 앓다가 죽을 뻔한 데서 기원했다고 저는 지켜요. 그리고 제가 홍역을 알아서 죽을 뻔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대처를 못했고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부모님 두 분 다 학습이 굉장히 높으신 분인데 피난민 출신이었대요. 제 천식도 저는 역사적 천식으로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하는 관점에서 계속 인적 요소와 역사적 요소와 그런 것들을 계속 연결해서 쓰는 그다음에 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평화학이 다른 분야에 굉장히 많은 임팩트를 가져왔다. 이거를 의제의 결합과 수련, 어젠다의 결합과 수련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고요. 시간이 허용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다음에 또 평화학은 교육에 특별한 임팩트를 가져왔다. 그래서 평화교육에 대해서 다룰 수 있을 것 같고 이제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의 폭력의 원천, 현대 한국 폭력의 원천이 무엇인가 폭력화가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한 연구 중에 가장 최근에 분단 폭력이라는 개념. 그다음에 분단 폭력의 구조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방향으로써 탈분단론 이것을 또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면서 평화학의 적응성, 적용성을 조금 시사드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전쟁의 전통에 대해서 격언을 통해서 먼저 말씀드리면 다 아시는 건데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2천 년 된 격언인데요. 혹시 기원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세계 거의 모든 사관학교에 걸려있는 가장 애용되는 표 중의 하나입니다. 국가를 위해서 전쟁을 하는 장교들이 훈련받을 때 수용하는 핵심적인 철학 중의 하나입니다. 이거 로마의 전통이에요. 손자병법은 조금 더 인문학적인 것 같아요. 지피지기 이런 얘기 나오고. 로마의 최고로 전쟁 신이라고 추앙받았던 베게티우스라는 장군, 나중에 황제 반영을 위해서 올랐죠. 이분이 만든 격언이고 이것이 로마 제국의 핵심적인 철학이 됐었고 사실 저희 안타까운 순 우선 가톨릭교에서 PAX Romana라고 해서 로마의 영광의 흔적인 언어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데, PAX Romana의 핵심적인 철학이 평화를 논하거든. 전면을 준비한 바 있습니다. 팍스 로마나의 로마적인 뜻은 로마의 제도가 강제적으로 이식되고 로마를 거부하는 사람이 제거된 것이 팍스 로마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톨릭교회에서 그 용어를 전통으로 쓰는 것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죠. 이것이 21세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전쟁론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다음에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 이것도 사관학교에 다니신 분들은 이거를 달달 외우면서 공부해야 되는 책 속에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폰 클라우제비트라는 전쟁학의 창시자가 약 200여 년 전에 쓴 전쟁론이라는 책의 핵심이고 이 전쟁론이 이 표현이 요구하는 것은 뭐냐면 ‘정치인이여 장교들이여 군인들이여 죽이는 것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지 말고 전쟁이라는 것은 정치를 잘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 중에 하나니까 도구처럼 사용할 준비를 하시라. 여기에 마음 아파하거나 감정이 흔들리거나 눈시울이 뜨거워지거나 이러시면 절대 안 된다.’ 라는 것이 현대 전쟁론의 창시자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21세기까지 대부분의 사관학교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학문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유럽의 제국주의적인 전통을 혁명으로 거부하려고 했던 사회주의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름 제국주의와 과거의 전통을 단절하려는 줄 알았더니, 이건 마우쩌둥이 한 얘기입니다. ‘전쟁이라는 수단은 뭘 잘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수단이고 윤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수단이다, 영역이다.’라는 것입니다. 내 눈앞에 폭력이 없으면 평화다는 유명한 사람이 얘기한 것이 아니라 제가 평화 공부하면서 평범한 사람들, 제 주변의 생활을 사는 사람들한테 어떤 걸 평화라고 생각하세요?라고 쭉 물어보고 그것을 채록을 해보니까 다 합쳐보니까 혁신적인 일반 사람들의 평화로는 내 눈앞에 폭력이 없으면 평화인데 가자지구에서 아무리 사람이 많이 죽어도 역시 한국은 평화스러워 이런 거죠. 그래서 이제 일반적으로 많이 퍼진 평화로는 내 눈앞에만 폭력이 없으면 내 가족의 아프지 사람 없어요? 우리나라 잘 살면 평화다. 이것을 이제 50년도부터 생긴 평화학의 한 갈래인 요한 갈등의 평화론에서는 그래서 이거를 이게 지금 마음에 안 드는 거죠. 그래서 70년대 초반에 이런 평화론이 인류의 가장 전통적인 평화론이었고 우리가 더 나아가야 되는데 인류의 가장 전통적인 평화론을 이름을 붙이자고 해서 Hasive Peace 소극적 평화론이라고 이름이 붙었어요. 저는 이러한 갈등이 70년대에 인류의 평화에 대한 관념을 조사하면서 대체로 소극적 평화에 머물렀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만 괜찮으면 평화다. 근거리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자기중심적 우리 중심적 정체성 중심적 또는 어떻게 보면 근시안적 통화라고 할 수 있고 사회 구조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배제하는 평화론이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거기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Active Peace, 적극적 평화론이 평화계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앞에 나온 전통들을 그런데 이제 한국에 오면 한국이 조금 극단화돼요. 아시겠지만, 한국이 뭐 경제 발전도 극단적으로 빨리 하고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래서 약간 극단화 현상이 이제 있는데요. 트럼프 등장하니까 당장 극우가 득세하고 이런 거 있잖아요. 평화로울 때가 가장 위험할 때라는 이 구호가 전국의 모든 지하철과 버스와 마을버스에 다 붙은 적이 있어요. 무려 10년 동안 이 구호를 만들 수 있는 기관이 어디겠어요? 국정원입니다. 그리고 김대중 때 만들었죠? 김대중 이거 재밌는 현상인데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니까 온갖 종류의 국방연구원과 온갖 종류의 외교 안보연구원과 국정원의 이런 대통령의 눈이 뜨지 않는 이런 부서에서 이런 짓들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 외교안보전략연구원이나 국가연구원에서 나온 페이퍼들을 보면 대부분 다 민간인이 안보를 담당하면 위험해진다. 군사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군사 정책을 하면 위험해진다. 청년들이 안보 생각하지 않고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틀어버리고 자유 인권, 민주 평등하게 되면 위험해진다. 이런 논문들이 쏟아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때 국정원이 포스터를 만들어요. 평화로울 때가 가장 위험할 때 포스터를 만들어요. 그림은 스마일 표시로 포스트를 만들어요. 노란색의 스마일 표시가 있고요. 스마일 한 귀퉁이가 이렇게 뜯어져 있어요. 거기는 빨간색으로 되어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민주주의 얘기하고 인권 얘기하고 평등 얘기하는 사람 빨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민주주의 민주화가 되니까. 더 위험해진다는 전통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평화학을 하기가 힘들고 우리나라의 전쟁학을 가리키는 대학은 굉장히 많습니다. 군인들이 와서 석사학위 받는 데는 전쟁학이 굉장히 많아요. 평화학을 하는 데는 별로 없어요. 지금 평화학과는 국내에서 딱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원광대학교에서 평화학 강좌를 최근에 와서 많이 개설을 했죠. 이재범 교수님하고 아까 말씀하신 전철우 교수님이 오셨고 전철우 교수님은 또 제가 있던 성공회 대학교에서 석사하시면서 원불교의 평화론에 관해서 석사 논문을 쓰고요. 논문 평가자였고 제 평화학 수업 국제관계와 평화학 수업을 듣고 열심히 논쟁이 강원대학교에 평화학과가 개설돼 있는데, 제가 보기로는 충분한 평화학과는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제 거기 재정 운영상 군 장교들의 석사 과정으로 이제 통화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서 이제 기존에 좀 군사적으로 편향된 안보론 강좌가 굉장히 많이 배치돼 있어 갖고 이제 제가 공부한 인문사회학적인 평화학 구조하고 많이 다릅니다. 참고로 평화인문학 섞여 있어요. 그래서 군사학 하셨던 분들도 또 상당한 비중을 갖고 있고 평화 인문학 하셨던 분이 있고 정치학으로 북한학 하셨던 분이 있고 또 정치학으로 역사 정치학을 하시면서 역사학에서의 평화론을 갖고 오신 분이 계시고 이게 섞여 있었는데, 이제 학생들의 절반 이상을 군 장교를 받아야 되는 처지인 거예요. 그러니까 아시겠지만, 대학이 그런 압박을 받게 됐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심수녀회 굉장히 많이 하신 평화학 공부하신 최혜영 수녀님 제안과 권유를 받아서 가톨릭대학교의 평화학과를 개설하는 과정에 기획자로서 이렇게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평화학 부전공 과정,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부전공으로 평화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3년짜리 평화학 과정을 확대해서 이제 통장 승인까지 받고 문교부 지원 예산 중에 5억 예산을 배당을 받아서 시작을 준비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망생이 없어서 자동 폐지. 그래서 설계된 평화학 과정 중에 몇 개만 종교학과의 평화학 수업으로만 지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종교학과 지망한 학생들은 듣는데 인문사회가로 열어놓으니까 이제 지망을 안 하는 거죠. 2002년도에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우리가 강대국 외교만 공부할 게 아니라 다자간 외교를 하려면 평화학도 공부해야 된다. 외교라는 게 기본적으로 분쟁 조정하고 평화 추구하려고 하는 거니까. 그래서 2002년도에 또 평화학과를 처음으로 개설했어요. 그것도 수강생 미달로 자동 폐지. 이게 저희 추세고요. 그다음에 이제 덕성여대에서 2003년도부터 평화학과를 개설하기 위해서 지은희 총장이 해서 저희가 제가 또 운이 좋아서 거기 기획자로서 그걸 했습니다. 그거는 기획안을 만들기 전에 중단됐는데 인문사회과학과 교수들이 학과가 축소된다고 해서 반대를 했었죠. 그랬습니다. 진보적인 총장이 오더니, 기존에 잘 나가던 학과를 폐지시키려고 평화학을 갖고 들어온다고 해서 준비해 봤습니다. 평화학하기가 되게 힘들어요. 여성학 하는 게 힘들듯이 요새 한국에서도 여성학이 계속 축소되거나 이렇게 되고 있거나 비슷해요. 그런데 여성학보다 훨씬 처지가 안 좋아요. 왜냐하면, 이게 근본적으로 국가 제도권의 핵심적인 도전 내용을 전부 있거든요. 군사 안보 분야에 대한 재고 축소라는 것이 다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에 뒤에 남아 있는 것은 사회학과 여성학의 기여 도전들인데요. 사회학에서 공부하다 보면 전쟁 공부할 수밖에 없죠. 나치 공부할래도 사회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중에 한 유명한 교훈 중의 하나가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그래서 사회에게 중요한 기여 중의 하나가 평화하시는 분들 전쟁에 대해서 연구하려면 국가의 속성에 대해서 연구해야한다. 그래서 평화학이 이렇게 되다 보니 평화학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연구한다는 거는 평화학을 제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국가가 만들어내는 폭력의 구조와 문화와 윤리적인 명령들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 공부해야 되고 사회구조가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가 그다음에 문화가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가 그다음에 종교도 얘기하고 종교가 만들어내는 폭력에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 얘기도 하고요. 여성학이 서구에서 확산되던 시기와 여성학이 젠더라는 개념을 통해서 확산되기 시작하던 시기가 완전 일치하게 됩니다. 그래서 둘은 학계에서 도전하는 쌍생아로 등장을 해요. 도전하는 쌍생아. 그중에 중요한 테제로써 안티크너나 이런 여성학자들이 국제정치와 국가를 연구하게 되면서 전쟁과 국가와 남성은 얼굴만 다른 하나의 실체 이렇게 나오게 돼요. 그리고 마치 이렇게 남성성이 잘 발전돼야 국가가 잘 운영이 되고 국가가 잘 운영되는 것은 전쟁을 항상 잘할 수 있는 태세라는 신화가 자연화된 지배질서. 그냥 신화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원래 그래라고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지배치를 질서를 강화하는 이념적인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굉장히 중요한 저는 비판적인 발견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기존에 근대를 만들었던 여러 가지 철학자들 속에 국가와 전쟁과 남성성의 관련성에 대해서 어떤 논의들을 쭉 파헤치는 것이 평화 철학에 대한 연구가 되겠습니다. 근대를 만들어낸 여러 가지 철학 중에 이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 폭력의 정당성을 축소시키는 철학적 제도가 어떤 것인가를 추구하면서 공부하는 분야도 평화학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연구한 평화학에서는 정전론에 대한 논의를 굉장히 깊이 했어요. 브래포드 영국에서 했기 때문에. 그렇고 유럽의 평화학은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 특히 유럽의 폭력적인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죠. 그래서 노예제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아프리카에 대한 착취도 평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게 되고 특히 그런 면에서 인종차별 노예제, 노예제가 차별의 출발점이잖아요. 그래서 유대인 학살도 나치만 얘기하게 되면 깊게 안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유대인 차별과 학살의 기원이 되는 스페인의 종교 전쟁, 무오 전쟁이라고 하는 스페인 가톨릭과 이슬람의 속에서 그 속에서 나왔던 유대인 차별과 학살 그래서 중동 쪽을 다 이렇게 보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그전에 있었던 크리스찬들이 좀 십자군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 그다음에 초생달 전쟁이라고 부르는 저쪽에서 이 전쟁이 만들어낸 무슬림과 유대인에 대한 태도와 그 이후에 종교 전쟁의 원초가 됐던 스페인의 무어 전쟁과 그 다음에 가톨릭 개신교회 종교 전쟁 이 속에서 계속 살아남았던 기원 3세기 가톨릭 교회에 교황이 정립해서 21세까지 살아남았던 정전론이 유럽의 평화학에서는 핵심적인 주제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유럽과 정전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우리 크리스찬으로서 전쟁은 잘못된 것이고 비윤리적인 것이지만, 우리는 살상을 하지 말고 사랑을 해야 되지만 정의를 지키는 수단이 전쟁밖에 없을 때는 옛날에는 하느님에게 물어서 전쟁을 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좀 사람을 덜 죽이는 방법으로 신사적으로 하면 전쟁을 해도 된다. 이렇게 돼요. Just war theory라고 하는데 쉽게 얘기하면 유럽의 평화학에서는 평화학을 공부하고 토론해서 정존론을 넘어설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쟁을 만들어내면 평화학은 잘하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하나하나 쓸모가 없는 분야다. 그 모든 게 다 정전론으로 돌아가게 돼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된다라는 그 긴장 속에서 얘기를 합니다. 가톨릭의 커뮤니티에서 몇 번 이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했었는데 저희도 여전히 불편한 주제예요. 올바른 전쟁이 있다는 얘기지 이런 번역어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먼저 해서 약 1세기 전에 왜 저런 뜻을? 하고 보면 그런데 여기는 시간이 부족하니까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논쟁적인 주제고 불편한 주제 중에 하나다 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초기 검토를 통해서 처음에 평화학은 전쟁 대 평화에 기초한 그러한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전자폭력 대 평화로, 그래서 폭력이 전쟁하고 합쳐지는 그 분야를 더 확산해서 보면 이게 conflict 갈등으로 보게 됩니다. 국가 주도로 무력을 사용해서 하는 갈등이 전쟁이고,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국가가 개입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형태로 전쟁을 예비하는, 전쟁을 모방하는 전쟁을 약간 완화된 형태로 하는 다양한 갈등들이 존재합니다. 요한 갈등은 이러한 과정에서 평화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기자들은 이 사람을 평화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요한 갈등은 싫어하는 표현이에요. 왜냐하면, 여성학과 평화학이 같이 발전을 해왔는데 “왜 난 아버지라고 불러?” 그래서 폭력을 ‘잠재적인 실현을 가로막는 영향력들’이라고 하면서 폭력 개념을 확장하는 것을 시사합니다. 폭력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지요. 이 말은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물리적 폭력 외에 인지가 잘 안 되는 비물리적이고 간접적인 폭력이 상당히 많고 영향력이 클 것이라는 사회과학적인 관찰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이후에 구조적 폭력이나 간접적 폭력이라는 개념화가 일어나고, 이것을 요약하면 제가 공부한 서유럽의 평화학 전통에서는 이것이 평화학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개념 구조입니다.
폭력을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폭력에 국한하게 되면 우리가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가 없어서 1차적으로 기능적으로 폭력을 두 가지로 나눠서 하나가 인적 요소가 강하고 직접적인 지각이 잘 되는 그러한 폭력을 직접적 폭력의 부자, 다이렉트 바이러스와 부자 그래서 물리력의 측면이 굉장히 강하게 인지되는 측면이고, 그래서 보통 저희가 언어로 폭행이나 폭동이나 테러나 전쟁들을 지칭할 때 대상으로 보는 폭력을 직접 공론으로 봅니다. 그런데 노예를 생각하게 되면 노예를 때리는 경우를 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인생에 전 인생에 걸쳐서 폭력을 행사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사례들을 쭉 모아보게 되면 간접적 폭력이 어마무시하게 많고 무시무시하다는 거죠. 그래서 이 간접적 폭력이 어디서 오는가를 봤더니, 사회 구조와 문화에서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과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분석 개념이에요. 개인적인 요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심원스님 : 극복이 되었을 때 오는 그 상황을 평화라고 이야기를 하면 저렇게...
이대훈 연구소장님 : 네, 그렇게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으로 이 개념 도구를 가지고 보니까 사회 구조와 문화에서 만들어내는 폭력의 씨앗이나 정당화가 굉장히 많다는 게 분석되기 시작하고 이러니까 평화학이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에게 숙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평화를 단순화시키면 ‘폭력이 없었으면 좋겠어.’ 라고 했는데 평화 개념을 이렇게 구조화시켜 보니까 우리 편에 ‘해코지가 없었으면 좋겠어.’라는 폭력은 이제 작은 태도라고 볼 수 있으니까 이걸 소극적으로 보는 그 다음에 구조적 폭력의 축소나 구제를 지향한 적극적 폭력 그래서 액티브라는 말을 썼고 일본 사람들이 액티브 패시브를 positive negative가 갈등했었던 언어인데 이거를 긍정적 폭력과 부정적 폭력, 부정적 평화라고 번역하기가 너무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책을 깊이 읽지 않고 번역을 하신 것 같아요. 제 느낌으로 이게 무슨 뜻이냐하면 여기서 Negative는 부정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어나 유럽어의 negative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뺄셈이라는 뜻이 있어요. 뺄셈을 완벽하게 하면 부정이 되는데요. 부정이 되는데 Negative는 뺀다는 뜻이 항상 있어요. 그래서 이거는 뺄셈의 평화, 나쁜 놈, 감옥에 가서 없앴으면 좋겠어. 윤석열 평생 감옥에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 거야. 이런 게 뺄셈의 평화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가 조금 생각이 깊은 사람은 나쁜 놈을 제거해도 나쁜 것은 제거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원인이 다른 데에 있는 거죠. 다른 데에 있는 걸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돼죠? 좋은 것을 계속 도입해서 변화를 시켜야 돼요. 제거만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덧셈의 평화’가 필요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저는 평화 교육할 때 평화 강의할 때 꼭 이것을 합니다. ‘뺄셈의 평화’, ‘덧셈의 평화’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추구한 평화가 덧셈의 평화인지 뺄셈의 평화인지를 스스로 체크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됩니다.심원스님 : 그렇지만 뺄셈의 평화를 그치지 않고 어떻게 덧셈의 평화 속으로 갈 수 있나요?이대훈 연구소장님 : 맞습니다. 그러니까 뺄셈의 평화가 나쁘다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고 불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대비시켜 놓으면 이쪽이 잘못된 것 같긴 하죠. 위에 폭력도 둘 다 안 좋은 거예요. 둘 다 안 좋은 건데 하나가 다른 것 속에 있다. 이런 뜻으로 한번 조금 더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뜻풀이를 이렇게 하시면 되고, 이제 거기에 나가서 요한 갈등은 후대에 와서 시간의 폭력이라고 해서 지금 생태 문제를 보면서 시간의 폭력이라는 것도 개념화하기 시작을 했고요. 문화적 폭력에 대해서 상당히 비중을 두면서 글을 쓰기 시작을 했습니다.
자 이런 과정을 통해서 평화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이 점점 이렇게 구체화되면서 여러 가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아주 짧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뺄셈의 평화, 덧셈의 평화 이걸 도입해서 그런 평화 만들기 평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쁜 놈 모두 없애가 아니라 모든 종류의 폭력이 축소되는 과정을 계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이제 평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고 그럼 갈등을 없애야 돼.
갈등이 생각보다 너무 종류가 많기 때문에 폭력이 수반되는 갈등은 폭력 빼기를 하고,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갈등은 이해를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갈등은 제거되지 않습니다. 왜?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에 추구하는 일이 다르니까 산다는 것은 긴장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긴장은 무기를 성숙시킨다고 하면서 갈등은 폭력처럼 제거 대상이나 축소 대상이 아니라 변환의 대상이라고 얘기합니다. 갈등은 제거가 아니라 Transform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폭력이 없어지고 이해가 높아지는 쪽으로 이런 태제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평화운동, 평화실천은 뭐냐? 폭력 나빠! 이런 것보다 폭력을 줄이는 실천이 더 좋은 평화 실정이 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평화의 관심은 뭐야? 마음의 평화, 아름다운 사람들끼리 모이자 이것보다도 폭력의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구상하는 것이 평화의 실정이 되겠습니다. 자 그럼 안전하면 좋은 게 다 아니네? 그렇습니다.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것,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면이 없진 않지만 안전한 것의 울타리가 어디인가에 따라서 안전함의 추구는 폭력이 됩니다.
트럼프 미국의 안전함과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서 미국을 매우 빠른 속도로 폭력적인 국가를 되는 것이죠. 저희도 작년까지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죠. 전쟁을 도발하는 국가로 앞으로 반복해서 전쟁을 도발하는 국가로 변화했습니다. 민주당 정부는 안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등 때부터 일관되게 민주당 정부 치하에서 한미군사훈련의 규모와 정도와 범위와 교리가 확대되고 공격적으로 일관되게 해왔었고 무기의 질이 북한을 제압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고도화의 방향을 일관되게 추구했습니다. 대통령의 성격과 정치 시장과 상관없이 국가라는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겁니다. 이 조건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재명 뽑았다고 만세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가 갖고 있는 전쟁 지향성 준비라는 조건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평화 실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전 편안이라는 울타리 속에 머무는 것은 평화를 깊이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정체성 매우 위험한 요소라고 봅니다. 뺄셈의 평화, 소극적 평화를 정당화시키는 그게 다야 라고 만듭니다. 우리 안에 문제가 없으면 아시겠지만, 저희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인연은 가톨릭교회랑 제일 많아요. 그리고 젊었을 때 친구들의 꼬임과 신부님들의 꼬임에 빠져서 세례도 받았어요. 제가 교리를 다 공부도 했는데... 수녀님들처럼 가톨릭교회에 헌신하신 분들을 너무 존경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종교적인 차원이고요.
그래서 가톨릭교회의 전통에서 본다면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가톨릭교회의 교리가 초기 당대에 갖고 있었던 임팩트는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헬리니스트인 사람이다. 로마 사람이다. 모두 한인의 백성이라고 해서 완전히 달리 만들어버렸어요. 정체성을. 그전까지 유대교는 유대인의 믿음이었잖아요. 그리고 그 이전에 6개 지파의 종족, 교육 종족 이게 예술 시대로 오게 되면서 모든 사람의 삶의 양식으로 확장을 시켜버렸던 거기에 핵심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속에는 항상 정체성의 확산이 있었다고 봅니다. 다른 종교도 비슷하겠지만, 제 공부가 부족해서 연관해서 말씀드렸듯이 정체성에 대한 도전. 예를 들면 한국과 같은 경우에는 남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넘어서면서 하는 평화 실천이 무엇인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인지 못하는 폭력성이 어떤 것이 있는가 이런 것을 탐구하는 것이 한국적 평화학의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되겠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한국인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악독하게 인종차별을 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인문사회과학적으로 탐구한 것이 한국평화학의 과제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추정하거나 연구하신 것처럼 아마도 하나의 원인으로서 단일민족 신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고 또 하나의 원인으로서 고도 경제 성장에 대한 자부심을 국민성의 일환으로 교육하거나 교육받았던 것도 아마 가난한 나라에 대해 비하하는 것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초기 70년대 평화학의 임팩트를 받아서 인제 정책 분야에서 생기는 변화를 봤습니다. 그래서 주로 북유럽 국가 외교를 중시하는, 평화일교를 중시하는 북유럽 국가들과 이러한 인문사회과학적인 학문들을 빨리 수용했던 서유럽 국가와 UN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UN에 이제 미국의 하수인 사무총장이 있고요. 그 다음에 UN을 세계 체제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도구로 삼고자 하는 진취적인 사무총장이 있고요.
첫 번째 진취적인 사무총장 중에 한 사람이 스웨덴 출신의 사무총장이 있었는데, 그분은 군비 통제 제도를 UN에 도입하려고 시도하다가 미국과 당시 소련과 모든 강대국의 반대를 받아서 퇴임 후에 바로 비행기의 폭발로 암살당합니다. 그 다음에 다른 사무총장들도 비슷한 걸 시도하다가 쫓겨납니다. 압박받아서 연임 못하고, 그런데 쫓겨나기 전에 시도했던 두트로스 갈리라는 인도 출신의 UN 사무총장하고 임기를 다 채웠지만 사실상 쫓겨났고 그 다음에 한국 출신의 반기문 사무총장은 평화와 관련된 시도를 하나도 안 했어요. 왜냐하면, 이분은 그냥 외교관 출신이기 때문에 이분은 미국 지지로 친미 국가들의 표로 당선된 분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했어요. 사무총장들 중에 평화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분들은 수백 년 동안 못 박는 그러한 정책 문서를 총회에 통과시킵니다. 이게 다 전쟁 예방 조치들의 정치 문제들이에요. 그런데 한국 외교부도 여기에 관심이 없고 한국의 외교학과도 이런 데 대한 관심이 정말 너무 없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평화학과는 답답해요. 예방하거나 전쟁을 중단하거나 전쟁 재발 방지하기 위해서는 평화 전략이 구체적이어야 되고 최소한 3단계를 가져야 됩니다. 첫 번째 단계가 Peace making이고 그거는 뭐냐? 싸우던 것을 중지시키는 여러 가지 기술과 방법과 법과 정책들이에요. 두 번째가 싸운 것을 계속 싸우지 않은 것을 계속 싸우지 않게 만드는 Peace keeping이에요. 평화를 유지하는 거고, 그 다음은 싸울 생각을 아예 못 하도록, 아예 할 필요가 없게 그 구조와 사람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종합적인 변화 전략으로써 Peace Building이에요.
자 이렇게 본다면 저희는 1953년도에 외국의 도움을 받아서 Peace making을 한 거예요. 중단을 시켰어요. 그 다음에 미완의 Peace keeping을 하고 있어요. UN 연합사에서 들어왔지만. UN 사무총장실에서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 조직이 UN 연합사예요. UN 사무총장이 그런 조직이 있는지도 모르고 보고도 없고 교신도 없는 조직이 UN 연합사예요. 그래서 Peace making은 국제 세력으로 했는데 Peace keeping은 누가 하고 있냐면 군사력으로 하고 있죠. 그러니까 이게 불완전하게 되고 계속 티격태격하고 있는 거고, 군비 경쟁에서 Peace making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태세를 지금 양쪽이 다 갖추고 있는 거죠. 그래서 평화학이 없으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 이렇게 싸우느라고 준비를 많이 한 두 코리아에서 군축에 대한 준비가 아무 것도 되어있지 않아서, 군사 문화를 바꿀 수 있는 논의가 전혀 없습니다. 적대감을 줄일 수 있는 방법론이 아무 것도 없어요. 딱 하나 있죠. 하나 때 민족이 화해했던 기억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민족이라는 게 아시겠지만, 얼마나 가변적입니까?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싸운 거 보세요. 프랑스, 독일 철천지 원수가 지금 얼마나 친구처럼 잘 지내는지 보세요. 민족이라는 것은 굉장히 가변적인 것이라고 본다면 민족 하나에 기대서 Peace Building을 꾸민다는 것은 정말로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습니다. 이렇게 준비가 안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평화학도 확대됐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지금 절망감이 매우 많이 남아 있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브래포드는 인문사회과학 중점의 평화학과를 세계 최초로 개설한 학과로서 평화학을 조금 더 복잡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구조적인 불평등을 개혁하는 것이 평화학의 목표다. 그래서 폭력 얘기가 일본에 안 나와요. 이 뜻은 뭐냐 하면 구조적 불평등이 폭력과 전쟁의 원인이라는 입지를 갖고 있죠. 그리고 지금 구테네스 사무총장은 개혁적인 분이에요. 이분에 주목해 주십시오. 이분이 70년대, 80년대 가톨릭의 진보적인 사회 교류의 세례를 받으신 분이고 사회 운동하신 분이에요. 나중에 외교관이 되셨지만. 그래서 가톨릭 기준으로 보면 제2차 바티칸 국민회라는 사회 교류의 총 집대성. 이거를 교리로 삼아서 사회적 실천을 했던 세대의 그때였습니다. 이분이 역대 사무총장님이어서 전쟁 예방, 군비 축소, 강대국 제어, 인류 멸망으로부터의 예방, 이것에 가장 헌신적인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평화를 추구하고 불평등을 낮추는 모든 분들이 그리고 구테스는 혼자 쓰는 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하고 같이, 그러니까 최고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통로입니다.
그 글들도 보면 지금 구조적인 악, 이 바티칸 공유의 언어죠. 구조악의 원천이 구조적 불평등이고 이게 확대돼서 그리고 지금 군비 경쟁의 재개, 우크라이나 전쟁 시기 이후부터 강대국 부자 나라들이 군비 경쟁을 급속도로 재개하고 있고요. 일본이 지금 군비를 5년 안에 2배로 증가하고 있는 거 알고 계시죠. 그래서 2029년도가 되면 일본이 군비 그리고 사실상 실질적인 군사력이 3위로 뛰게 됩니다. 그런 잠재력의 면에서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은 지금 전투력이 세계 6위인데요. 군비는 지금 10위권 밑으로 액수는 작은데 저희도 이 군비가 지금 일본의 약 10% 정도 낮아요. 일본이 저렇게 올리면 우리도 높이려는 추세가 정당화될 겁니다. 그래서 조만간 저희도 10위권에서 상승 상위권으로 상위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무튼 학제 간으로 평화를 공부해야 될 필요성이 있는데 어떻게 학제 간으로 공부하냐면 모든 분쟁에는 Development의 만족도, 인권의 보장, 젠더 평등성의 보장, 국제관계를 얼마나 형평성 있게 잘 하고 있는가 사회 변동의 충격을 그 사회가 얼마나 잘 흡수할 수 있는가를 보면서 분쟁을 예측할 수 있어요.
이제 평화학은 인문사회과학 쪽으로 많이 정착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군사안보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평화학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실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저희 이제 평화운동이 보도가 잘 안 되지만 그리고 숫자가 크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짧은 지난 26년의 역사를 통해서 굉장히 많이 발전을 해왔고 정책적인 압박도 많이 주고 있습니다.
한국적 평화운동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한국평화운동이 제기하는 중요한 이슈들을 많이 보시면 되겠습니다. 첫 번째는 외교 국방 통일 정책이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마음대로 하고 있으니까 제대로 감시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위한 견제를 하자는 뜻이고요. 대안을 제시하는 걸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안을 만듭니다. 시민적 대안이 굉장히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시민적 대안들도 공부합니다. 예를 들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의 도입, 평화운동의 성과입니다. 그다음에 군대에 대한 나름대로의 군대 옴부즈만 해서 군대 민간감시위원회가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때 없앴지만 그래서 군대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어필할 수 있습니다. 서구는 정치적인 문제, 군사작전의 문제도 어필할 수 있어요. 이게 헌법에 맞는지 국제법에 맞는지 그런데 거기까지 가지 않았지만 그렇게 됩니다. 군비 축소와 무기 수출 축소에 대해서 많은 정책들을 내놨습니다. 이것도 무시당하고는 있지만 굉장히 중요한 사업입니다. 소규모지만 한국전쟁을 비롯해서 베트남 전쟁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데가 있습니다. 이것도 저희 종교인들에게 호소드리고 싶은데요.
일반적으로 평화학에서는 전쟁을 하나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폭력의 원천이라고 있어요. 왜냐하면, 전쟁을 한 가지 스토리로 해석하게 되면 우리 편한 게 다 잘 났지가 돼요. 상대방이 하는 게 다 못 났지가 되고... 폭력이 사라지고 우리 편 잘났지 밖에 안 남아요. 이런 전쟁 역사 그리고 이제 한국의 국사책의 서술을 보면 적어도 프랑스, 독일의 연합 역사책 이런 기준 북유럽의 북유럽 통사 이런 역사책의 기준에서 보면 한국의 국사책은 국수주의 결정판이에요. 대한민국 만세의 왜곡 역사론의 아주 그냥 결정판이에요. 한국 국가가 고대부터 어떤 폭력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일체 얘기한 거거든요.
그런데 독일만 해도 역사 교육이 완전히 강했습니다. 역사 교육에 상당한 부분을 독일 국가가 전쟁을 통해서 저지른 범죄나 학살 문제를 상당한 기준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자, 그래서 이제 평화운동의 노력 중의 하나가 용산 전쟁 기념관 가서 그 속에 담겨지지 않는 스토리들을 가지고 전쟁사를 재해석하는 것을 학생들하고 같이 하고, 교사들 끌고 와서 역사 교사들한테 호소하면서 역사 교육 달리하는 방법 찾고 이런 것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좀 관심을 가져주시면서 전쟁을 재해석할 수 있어야 저희가 국수주의적인 폭력성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국수주의 때문에 베트남에서 민간인 학살을 그렇게 많이 하고도 입 딱 씻어 버리고 미국 군인하고 비교해도 너무 창피해요. 미국 군인들은 양심적인 그 선언을 양심선언을 하면서 “나 잘못했어. 미안해. 정말 평생 죄를 지었어.”라고 하는 사람이 수백 명 넘게 나왔는데...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반전 운동의 중심에 섰는데 저희는 10명도 안 나왔어요. 36만 명 파병군 중에서 10명도 안 되는 사람이 양심 고백을 했죠. ‘국수주의적인 전쟁관이 폭력의 원천이 된다.’라는 것을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운동도 상당히 많이 축적이 되어 있어요. 타이완, 오키나와, 일본 중국의 일부 중국은 또 국수주의가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난징 학살이라든가 군위안부 문제를 통해서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또 상당히 많이 진행돼 있습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어젠다가 많이 나와 있는데요. 소개를 다 못 드리겠습니다. 여기만 해도 100개가 넘어요.
그래서 평화학이 필요한 이유를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가지 개념만 가지고 다루는 개념이 아니고 굉장히 많은 정책 분야로 확대 발전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마지막 드리고 싶은 것은 분단 체제와 관련돼서 탈분단평화학이라고 아주 소수가 이름을 붙이는 한국적 평화. 분단하면 다 아시겠지만, 정부 체제 국가 체제가 두 개로 나눴다는 것으로 주로 서술되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분단이 되게 많잖아요. 적대감도 분단의 산물이고 이산가족도 분단 분단이고 교회가 쪼개진 것도 분단이고 종교 기관이 쪼개진 것도 분단이고 굉장히 많잖아요. 그래서 분단을 국가 체제의 난이나 민족의 난으로만 보지 말고 분단 나눠서 짜는 것. 나눠서 짜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한번 보자고 하면 분단의 사회학이 만들어질 수가 있겠죠. 그래서 서울대에 오랫동안 영문학 교수로 계시던 백낙청 교수님께서 ‘분단 체제론’이라는 걸 쓰시면서 이 시스템 사회학자들이요. 시스템이 시스템만 존재하느냐 시스템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겠느냐 분단 체제라 함은 시스템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도 같이 연구해야 시스템론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분단 체제론을 하시면서 여러 가지 심리적인 요소, 인간관계적인 요소, 그 다음에 사회 현상들 그 다음에 문화적인 현상들이 분단 시스템하고 연관돼 있다는 것을 논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분단 체제론이고 거기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분단의 마음, 마음학으로도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 민간 fascism 분단 체제 속에서 시민들이 fascism적인 사유 방식을 어떻게 수용했는가라는 갈래로도 또 발전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분단 체제가 만들어낸 폭력적인 측면을 읽어내는 데 집중하게 되면 이것이 분단 평화학이 출발이 되는 것이고. 어떻게 갈 것인가를 연구하게 되면 탈분단평화학이 됩니다.
그래서 서울대에 계시는 교수님 중심으로 거기에 김병로교수와 서보협교수님 지금은 통일연구원에 계신데, 이제 현재에서 <분단 폭력>이라는 책을 8년 전에 냈습니다. 그래서 폭력에 대한 평화로움을 분단 체제와 결합시켜서 정립해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탈분단 평화학은 일상에 스며든 인격까지 스며든 인간관계의 태도와 양식에 스며든 분단 폭력을 읽어내고 분단화하는 장치와 수행성, 탈분단하는 장치와 수행성을 읽어내는 것 혹시 ‘수행성’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신지요? 제가 공부한 바로는 그 포스트모던 여성학에서 주로 활용하면서 인문사회과학 하시는 분들이 많이 인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남성, 여성 젠더라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주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사회학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까지 나갔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젠더가 어떻게 개인에 들어오느냐라고 했을 때 보니까 반복적인 언행 속에서 젠더가 형성된다는 거죠. 그런데 그 반복되는 언행을 그 사람이 계획했느냐... 예를 들면 제 머리를 이런 스타일로 갖고 이런 식의 옷과 바지를 준비해서 이런 어조와 이런 태도를 얘기한 것이 제가 계획한 저의 액션인가? 아니라는 거죠. 이것은 여러 가지 언어 수행성이나 이런 것을 봤을 때 자기가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최적화된 방식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perform하는 것에서 나왔다는 거죠. 이 언행, 그 perform은 전략적인 선택인데 무의식적인 측면이 있고 사회적인 측면이 있고 전략적인 계산적인 측면이 합쳐진 그런 영역이 됩니다. 제가 98년도부터 2002년까지 영국에 있으면서 수염과 머리를 길러봤더니, 제 숱이 많아서 머리를 3번에 걸쳐서 묶고 다녔는데 그러고 한국에 들어와서 두발의 자유를 나는 즐기겠다고 해서 다녔는데 지하철역에서 길거리에서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제 손을 잡으시면서 “아저씨 괜찮수?” 이렇게 물어보고 어디 기자회견에 나갔는데 기자가 저한테 오더니, 저 가급적이면 저 옆에 앉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러는 걸 보면서 제가 머리를 깎았어요. 이게 수행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젠더는 수행성의 결과로 생기게 된 인바디 된 것이라고 해석하기 시작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인제 군사적인 문화를 배웠다. 그리고 선배 후배 만나면 선배 후배 확인하려고 한다. 후배면 맞게 해도 괜찮다. 그 다음에 지금은 많이 없어졌겠지만, 사랑을 전파하는 사제가 되기 위한 신학교에서 후배를 군기 잡기 위해서 무릎 꿇리고 마구 구타해도 된다. 이런 게 그 사람이 결점에서 나온 게 아니라 퍼포먼스 수행성으로 나왔다는 거죠. 사회적 역량과 전략적 선택이 해드렸죠.
그래서 비구니 스님들 모이는 교육 자리에서 이 사례를 했더니, 저희도 그래요. 그러시더라고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수행성이 인제 분단 혁명에 갖고 오게 되면 시스템이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하느냐 그러면 ‘까라면 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군기가 빠졌어’라는 관계의 수행성 속에서 계속해서 전투를 하고 적을 재고하고 승리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체제로 갑니다. 이 속에서 인종차별을 읽어내는 것, 이 속에서 빨리빨리 문화를 읽어내는 것, 이 속에서 99%의 낙오자의 세계 최고의 자살률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전통을 읽어내는 것, 이런 것들이 분단평화학이 되겠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