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튼연구원 종교인 모임
일시: 2025 9 20 토요일
장소: 성북동 씨튼연구원
발표주제: 이대훈 교수의 <평화에 대한 담론>에 대한 토론
심원스님 : 방금 말씀하시면서 제일 먼저 전쟁이라는 그 중화의 상대적인 개념부터 시작하셨잖아요. 그렇게 이야기를 진행하는 중에 저는 마음에 가장 많이 와닿았던 것이 갈등. 그러니까 전쟁이라면 아주 대규모의 뭔가 국가 간에 뭐 이런 어떤 걸 생각하지만 크고 작은 많은 갈등은 곳곳에 생겼고 그것이 이제 구체화되거나 사회적으로 표현되었을 때는 분쟁이라는 표현도 쓰고, 그러면 평화라고 하는 이야기를 할 때는 아주 큰 덩어리로서는 전쟁을 생각을 해야 되겠지만. 아주 작은 데서부터 시작을 한다면, 갈등 제도를 어떻게 그때 갈등이 살면서 없을 수는 없다고 했잖아요. 크고 작은 갈등이 있을 때 그러면 그 갈등을 어떻게 수용하고 함께 갈 것인가? 이게 제가 강의를 들으면서 정확하게 공부 목표가 이걸로 이렇게 이걸 삼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이대훈 연구소장님 : 네 아주 중요한 지적이십니다.심원스님 : 종교 간의 대화라는 이야기도 그냥 잘 살고 있으면 종교 간의 대화라는 표현 안 해요.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고 그런데 그것이 어떤 것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종교 간의 대화라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닌가. 평화라는 말도 어떻게 보면 전쟁이라든가 갈등이라든가 분쟁이 없으면 평화라는 말 자체가 필요하지 않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그냥 학제간에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냥 머릿속에 그냥 엄한 생각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냥 질문이라기보다는 제가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바입니다.이대훈 연구소장님 : 핵심을 너무 잘 짚어주셨고요. 아주 중요한 궁극적인 지향 중에 핵심 지향 중의 하나였고요. 특히 현학 중에서 갈등에 집중하는 갈등학에 가게 되면 종교 간 대화와 종교 지도자들 간의 신뢰 형성과 이런 채널 형성이 폭력적인 갈등 예방에 얼마나 중요한지 무수히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래서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정소이 교수님 :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대학에서 유교를 가르치고 이게 전통의 다양한 종교를 가르치는데요. 그런데 요즘 계속 갈등을 막 생각이 들었던 게 중국 고대 백가쟁명 중에서 유교와 묵가, 묵가는 간접적 폭력이라고 하는 모든 카테고리, 그러니까 빈곤 문제라든지 유교적 자본주의라든지 가부장제라든지 공동체주의라든지 차별적 사랑이라든지. 뭐 이런 모든 부분에 대해 무조건적인 평화를 외치고 겸애를 외치고 그 다음에 굉장히 각자 절검. 검약한 생활을 외치고 천지 하늘의 뜻을 외치고 했었던 그 세력입니다. 옛날 것을 보면 유교가 50% 묵가가 50%를 해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분서갱유라고 하잖아요. 진나라 때 그 10 년 동안 모든 걸 말살하고 이게 법치주의로 통일하고 법가로 통일했는데 10년 만에 망했잖아요. 그다음에 유교가 정권을 잡으면서 분서갱유라고 했지만, 한 2천 년 동안 발굴되지 않은 묵가는 정말 승자의 역사인 거예요. 그러니까 잊힌 그 많은 50%를 담당하던 묵가는 2천 년 동안 그냥 계속 묻혀있던거고, 그냥 완전히 역사 속에서 사라져 있다가 1800 년대나 돼야지 묵가가 도가 계열이 아니네. 그러고 겨우 이제 발굴이 되고, 따로 분리 해야겠네. 발견도 못하고 있다가 2천여 년 지나가지고 겨우 발굴되고 그러니까 그동안에는 계속 유교라든지 나중에 그런 것들이 좀 더 개인 수양적인 불교나 이런 쪽으로 많이 토양이 되긴 했겠지만, 정말 소극적 평화, 소극적이 아니라 그 뺄셈 평화가 아니라 적극적 간접적 폭력에 대항한 그 적극적 평화를 주장을 했었던 그 많은 인부들이 정말 이렇게 히스토리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든요. 중국 쪽에서는.
그런데 이제 어쨌든 서구권에서는 종교가 국가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톨릭이라든지. 요즘은 종교가 정교 분리를 해야 된다. 막 이러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거는 종교가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정치적인 게 종교를 간섭하지 마라’는 뜻이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때 아주 극우가 정치에 계속 관여를 하니까 이게 진짜 서로 관여를 아예 안 하는 게 좋은 게 아니냐 이런 담론도 있는 한편, 중국 쪽에서 사라진 묵가의 거대한 전통 같은 거 보면 이 소극적 평화를, 소극적 폭력을 반대하면서 적극적 평화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아무런 이익관계가 없기 때문에 진짜 지금도 여성학과나 이런 게 취약하듯이 그냥 없어지고 너무 취약성을 드러내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내부적으로 어떻게 서바이버가 가능할까 제도적으로 아예 이런 것도 없어지면 사실 그 자체가 굉장히 힘이 돼야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묵가같은 전통이 소림사 계열로 해서 팁 셀프 디펜스로 갔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도가 계열 같고,
최현민 수녀님 : 저도 참 그것이 의문이었어요. 묵가가 사상적으로는 굉장히 이상적인 사상이었는데...
정소이 교수님 : 아무리 봐도 지지자들도 반 이상 그래서 굉장히 정치적으로 유교와 묵가가 묵가는 진짜 2천 년 동안 그냥 사라져서... 그러니까 참 이게 좋긴 한데, 묵가가 서바이버가 가능할까 참 그래도 이렇게 초개인의 사회가 되고 그러니까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좀 두서없이 생각이 드네요.이대훈 연구소장님 : 아니요. 저도 많이 배웠고 중요한 성찰이라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저희 모임도 2천년 후에 기억되겠죠.정소이 교수님 ; 그런데 평화학 자체가 구조적으로 너무 취약하다는겁니다.이대훈 연구소장님 : 네 맞아요. 특히 21세기 대학에서 취지가 안 되는 그게 바로 가톨릭대학교에서 학과로 하려다가 종교학으로 축소된 그걸 바로 다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공현 교무님 : 영국에서 처음 시작할 때 이미 시민들이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요청에 의한 시작이 되었잖아요. 그게 되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구조 자체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려운 그런 것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요즘 이제 KPOP 데몬헌터스나 이런 거 보면 요구하는 흐름이 사람들이 그러니까 어떤 평화로움, 긍정적인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들이 붐이 일어나는 겁니다. 감지되는 그런 영향들이 없지 않아 있는데, 우리나라들끼리 갈라치기나 이런 거에 대한 극단적인 거에 대한 지금 두려움을 모두가 굉장히 극심하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고, 또 어떻게 보면 젊은 친구들이 이런 부분에 민감하게 이런 구조를 알고 노력을 하면 이들이 이끌어가야 할 미래 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가이드라인이 좀 적극적으로 나와주면 굉장히 좋겠다.
그런데 요즘 뭐지? 왕따 문화나 학교폭력 같은 게 이제 남성적으로 드러나면서 이제 그러한 폭력에 대한 것도 어떻게 보면 막가는 그런 것이 좀 생기는 것 같고... 그런데 이제 전쟁이나 큰 프레임은 굉장히 이렇게 과거지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많이 갔는데 요즘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것들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나와지는 것들, 그러면서 이 관계가 둘이 아닌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지금부터는 오히려 평화학이라는 부분만 좀 그럴 수 있지만, 삶 속에도 마음을 수행하는 거나 모든 것들이 내 세계를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거를 좀 더 확산해서 해석해주고 해석해내고 이러한 거를 볼 수 있는 여지의 것들을 좀 더 만들어내면 생각보다 더 재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이대훈 연구소장님 : 학교에서의 변화에 관해서 참고로 정보를 조금만 말씀드리면, 2012년에 경기도 교육감께서 평화교육 평화학을 인지했던 교육감이 처음으로 진보교육감이 되셔서 성공회대 김상곤 교수와 평화학을 하던 몇몇 사람들 부르고, 다른 데에서도 교사들은 불러서 평화교육기획팀 학교 평화 교육에 대한 첫 번째 소개가 나오고 교육감이 5대 공약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학교 교육에 평화 교육을 도입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문제의식이 지금 선생님 말씀하신 그런 문제의식이 다 들어가 있어요.
학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오의 현상과 가난에 대한 비하, 패거리와 폭력의 증대. 교사들의 준비 부족 이런 것들이 그때 그 첫 교육감의 정책이라면, 일단 교육청은 교사들을 훈련시켜야 된다는데 첫 교장 교감 연수를 갔었어요. 첫 번째 강사가 성공회대 교수였는데 한홍구 교수셨는데 역사적 맥락에서 전쟁에 대한 거 적대감 넘어서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얘기하셨어요. 교장, 교감선생님의 연수였거든요. 한 20~300명. 그 강의 중반부터 싸움이 나기 시작한 거예요. 보수 진보 교장 교육의 해묵은 이것이 나와가지고, 이제 진보 교육감 들어섰다고 왜 이거 다 바꾸려고 해? 안보 교육을 해야지. 웬 평화 교육이야. 그게 분단의 영향력으로 벌어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 강의 못하고 집에 가는 줄 알았어요. 싸우고 이제 진정된 시간을 거치고 나서 그 다음에 제 강의하면서 저는 싸움 안 생기게 하려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아름답게 포장해서 하느라고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그때부터 평화의 교육이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전국적으로. 저희가 한 12년 정도 됐다. 우선은 되게 어려워해요. 그래서 이것도 앞으로 참조해 주시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싫어해요. 소수 빼고는 평화교육한다고 그러면 싫어해요. 민주주의 교육한다고 그러면 싫어해요. 인권교육한다 그러면 싫어하고 선생님 집에 가면은 엄마가 빨갱이래요. 이런 얘기해요. 그래서 지금 문화적인 저항이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굉장히 높아진 상태에서 통합 교육을 해야 됩니다. 되게 어려워요.
계획을 잘 짜는데 제가 하고 있는 단체가 그거 전문에 우회적으로 적대가 많이 생기고 분열 안 되게 평화 교육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전략을 짜는 게 필요하지요.정소이 교수님 : 서강대에서도 대화하고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조금이라도 소수 그런 걸 보호하는 게 참 중요한데 그렇게 있는 데서 애들이 좀 적어도 강의를 유지하자 이런 게 묵살당하고 결국에는 많은 애들이 오는 걸로 이렇게, 어디가 유지가 되나 보니까 강의 나가면 정말 2명, 3명... 듣고 어디에 젊은이들이 제일 많이 몰리나 했더니 서강대 부동산학과가 있어요. 저는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강사들이 바쁘니까 8시, 저녁에 강의를 여는데 갔는데 이 큰 강의실에 그냥 꽉꽉 찼어요.
심원스님 : 그런 학과가 있어요?
이대훈 연구소장님 : 네 부동산학 박사과정도 있습니다.정소이 교수님 : 심리상담학과 부동산학과가 제일 많이 몰려요. 그래서 종교학과 대학원은 2차 받지 말라고합니다. 평화학도 이제 좀 명명을 이어가는데 참 힘드시겠습니다. 이대훈 연구소장님 : 네, 힘든데 재미있어요. 모든 진지한 놀이도 그렇지만 커다란 도전이 있을 때 지혜가 막 솟거는요. 시간은 없지만, 평화교육은 평화학을 교육이랑 접촉시켰는데 좋은 교육을 싫어하거나 저항하는 그런 시대에 지금 하고 있어서 방법론을 되게 잘 준비해야 되고 교육자가 준비성이 훨씬 높아지는데... 그런데 그냥 한마디만 말씀드려요. 인간의 지혜는 무궁무진해서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들도 평화 교육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반은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요.심원스님 : 그런 것도 교수님 말씀 하시는 가운데 몇 가지 개념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우리 정체성 그게 아마도 인간에게 뿌리박힌 어떤 무엇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종교인 모임, 조금 벗어나면 또 다른 우리, 그 우리라는 가운데가 어느 정도 선에서 우리가 형성되는지는 모르지만 그 우리라는 어떤 유대감을 강화하는 가운데 갈등이라든가 아니면 분쟁이라든가 이런 것이 유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우리라는 개념을 아까 묵가는 모두가 다 우리라고 했잖아요. 불교에서는 모든 법계 중심이 다 법계라고 표현하기는 하는데 그건 이상적인 그냥 가르침이니까.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들어오면 우리라는 게 너무 많은 우리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라는 걸 버릴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속에서 활동하고 우리 속에서 연대감을 느끼고 우리의 어떤 것을 공유하면서 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벗어날 우리라고 하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그 우리가 다른 우리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이거가 정확하게 굉장히 핵심이지 않을까 합니다.이대훈 연구소장님 : 네, 아주 또 본질적인, 궁극적인 난제에 관해서 또 설명을 해주셨고요. 너무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제가 응답처럼 드릴 수 있는 짧은 견해는 이제 우리가 주는 안전한 편안함, 익숙함이라는 심리적인 작용이 압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상태에서, 이제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폭력성, 타인에 대한 배제까지 동시에 염두하면서 앞부분을 배제하지 않는 그것을 논의하자고 하는 게 ‘정체성 논의’고요. 그러니까 정체성을 부정하자라는 방향성만 있는 것은 아니고요. 또 이것이 인문사회과학 쪽에서 어느 정도 퍼져 심지어 최근에 대부분의 교육청에서 민주시민교육이나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보면 가변적 정체성, 다중적 정체성에 대해 꼭 학습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이렇게 이미 이렇게 교육론까지 있고 교안도 있고 이렇게 준비돼 있어요.
그래서 저희 평화론에 입각한 정체성 인식에 나아갈 길이 아닌가. 자아성찰 하면은 자기의 인식과 세계관이 계속 변화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고 친구 관계에서 보면은 또 변화하는 걸 관찰할 수 있고 정체성이 multiple로 되는 거를 여러 번 경험할 수 있고 그리고 특히 최근에 성소수자나 퀴어에 대한 논의에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굉장히 민감하고 친숙한 주제거든요. 이게 바로 다변적 정체성의 논리고 가변적 정체성 논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닌 시대라고 생각합니다.신익상 교수님 : 그 질문 겸 답답해하는 문제하고 연결되는 사항에 대해서 자문을 평화를 놓고 보면 그럴 듯하거든요. 현실적으로 ‘세계 평화’, ‘종교 갈등의 해결’ 이 부분들에 대해서는 전문가로서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이대훈 연구소장님 : 그게 가능한가 아닌가에 대한 저의 생각은...신익상 교수님 : 가능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이대훈 연구소장님 : 네, 가능한지, 안 가능한지도 모르겠는데... 가능하다고 믿는 게 저한테 유익할 것 같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유익할 것 같아서... 방법이 많지는 않은데 몇 개를 알면 더 많이 알 것이 분명하다고 인간의 믿는 심정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구체적인 사례를 본다면, 철천지 원수였던 프랑스, 독일이 현재 살고 있는 방식에서 민족 정체성이라는 강도가 다른 여러 가지 인문적이고 지혜로운 작품에 비해 완벽하진 않구나. 그다음에 서로 땅 따먹고 왕조를 찬탈하기 위해서 안달했던 영국과 프랑스가 관계를 맺는 것도 그렇고요. 지금 세계 가톨릭 세계에서 바르톨로뮤 학살은 얼마나 야만적이고 잔인했어요. 정말. 진짜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학살을 저질렀는데 개신교와 가톨릭이 지금 이 정도 수준의 대화 채널을 받는다는 거 보면 이제 지금은 아일랜드에서 몇십 년 전에 했던 거 말고 개신교 가톨릭이라고 칼 들이대는 거 거의 없지 않나요? 신익상 교수님 : 그런데 보면 이제 노정된 갈등과 전쟁은 그나마 낫다. 아예 안 만나려고 했잖아요.이대훈 연구소장님 : 네. 북아일랜드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아직도 담 쌓고 아직도 근거는 없고 ‘절대 안 만나.’ 하고 있는 마을이 있고요. 통합된 학교, 통합된 마을 공동체가 점점 확산되고 있기도 하구요. 이 노력이 개신교 거기도 엄청나게 잔인하게 서로 죽었단 말이에요. 정말로 비인간적 재현한 나치 비슷한 상태였잖아요. 그러니까 몇 십 년 아니, 20년 안돼서 그런 시도들이 점점 확산되는 기운을 보면 그래도 완벽하진 않지만 10년 내에 천국을 만들어내진 못하지만 인간의 노력과 지혜의 일말의 가능성을 걸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희가 그런 차원에서 남북 간 화해나 평화 협상 얘기를 했던, 저희는 아는 얘기지만, (외국 사람은 하나도 모르지만) 저희 1945년도부터 50년대 중반까지 한국 사람들끼리 벌인 야만은 그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이에요. 그리고 멈췄다고 생각했는데 그 야만을 베트남 가서 카피를 또 했잖아요. 이거를 넘어서는 인성과 문화를 가지는 데 100년 넘게 걸릴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때로 완벽하게 되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낙관도 있잖아요. 적어도 남한 사회는... 고원국 교수님 : 아까 한국 종교, 아니 한국 평화 운동에 있어서 의제를 여러 가지로 소개 해주셨는데 공유 차원이었어요. 제 고민인데 제가 활동하고 있는 학회 가운데 한국종교교육학회 같은 데에서는요... 요즘 일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통일부 뉴스에 나오죠. JMS 나 신천지는, 그 구성원들을 학회에서 빼자 이거예요. 그런데 저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같이 했거든요. 그런데 또 재미있는 현실은 뭐냐면 30년 된 학회인데 여기에 처음부터 혹은 오랜 기간 동안 활동해 왔던 분들은 우리는 우리 학회에 정체성이 있으니까 우리는 된다고 하고, 최근에 들어오신 분들이 안 된다고 하는 거죠. 나는 저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오면 난 안 오겠다. 이런 식이에요. 그리고 골 밑에서 지금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거든요. 의제 중에서 한국 사회, 다종교 사회에서의 그런 평화 종교 간에 그리고 사실 이런 모임은 정말 기이한 거예요. 지금 심지어는 뭐 동학, 천도교도 종교가 아니다. 빼자 막 이런 얘기도 나오고... 제가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 애로가 있어요. 그래서 그 말씀도 지금 드려봅니다. 정소이 교수님 : 저는 한국 K종교 학술 연구소를 맡고 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 종교 운동, 그걸 미디어로 해서 국외에 강의 같은 거 이렇게 플랫폼도 만들고 이런 걸 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인제 계속 그걸 감시를 하고 있거든요. 감시를 하는데 그중에 신종교 증산도 최근 한 게 통일교예요. 서울대에서 신종교 하시는 분이 좀 객관적으로 이런 게 있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제일 관심이 있거든요. 관심이 있고 이게 뭔가 하는 게 통일교 아니면 저기 신천지도 그렇지만 저기 오순절 뭐 하는 교회랑 통일교 그게 제일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너는 왜 이단을 왜 송출하려고 그러냐, 그래서 제재가 들어와서 너네는 승인 못 해, 이거는 우리가 승낙할 수 없어, 그래서 이걸 돈을 받아먹고 떼어버려 가지고 돈 떼먹은 인제 연구소처럼 다 찍고 객관적이고 어디 그거 없어도, 그래서 굉장히 문제가 되고 그런 게 많았어요. 그러니까 종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신익상 교수님 : 대놓고는 아니어도 그런 배경들을 갖고 있다라고 또 의심하죠. 최현민 수녀님 : 이대훈 교수님 보시기에 저희 연구원은 계속 어떤 하나의 주제를 갖고 쭉 그 주제의 방향성을 잡으면서 나아가는데, 지금 평화라는 주제가 지난번 모임에서 올라왔고 제가 이 주제를 갖고 어떤 방향성을 갖고 앞으로 가면 좋을까?를 나름 고민을 하다가 교수님을 오늘 초대하게 된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저희 수녀원에 오셔서 전회원을 대상으로 워크샵을 해주셨는데 그때 굉장히 좋았는데 일단 지금 저희 모임의 성격을 조금 보시면서 또 평화학을 연구하시고, 여러 가지 다양한 평화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에 접근하시면서 이렇게 해왔던 모든 것들 안에서 종교 대화라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 조금 나아갔으면 좋을지 그런 것도 조금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대훈 연구소장님 : 네, 사실 종교 간 대화 모임에 처음 참석자로서 나아갈 방향을 말씀드리는 거는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종교 지도자들 간에 정기적이고 깊은 대화가 굉장히 중요한 갈등, 예방적인 임팩트를 가진다. 이런 점이 꼭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그다음에 이제 종교 지도자가 일반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을 때 일반적으로 제가 전문성이 없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런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한국 현실에 적합하고 예리한 평화 지향적인 메시지들을 창출하는 것은 갈등 예방에서 더더욱 큰 영향력을 끼친다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예리한 메시지. 왜냐하면, 지금의 시대적 추세가 익숙하거나 추상적이거나 사람의 삶의 다 차원의 연결성이 적은 윤리적인 데 초점을 맞춘 메시지들은 즉 임팩트가 굉장히 취약합니다. 이 시대에 적합하고 예리한 메시지를 창출하는 것은 종교 지도자들 간의 모임에서만 할 수 있는 굉장히 큰 임팩트입니다.
NGO들은 그런 걸 하려면 수백 개, 수천 개가 뭐야? 해야 겨우 임팩트 있는 메시지일 수가 있죠. 그런 면에서 유지가 되고 확산이 되면서 평화와 폭력 문제와 전쟁의 예방 이런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그러한 어떤 에너지나 그러한 모습들이 우리 사회에 좀 많이 알려지면 그 자체로도 굉장히 또 각자 계신 곳에서 ‘평화 그거 제대로 공부하도록 합시다.’라고 좀 권유해 주시면 원광대는 이미 지금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서 제가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같은 경우에는 서울교구의 문화위에서 한번 문의한 적이 있으면 평화하고 제대로 도입하는 방법, 교회가 좀 하는 방법. 그래서 각 종교 분야에서 좀 그런 노력을 당장 성공을 못 하더라도 그런 걸 발표하는 것 자체가 대학에도 임팩트를 줄 수가 있고요. 교육기관에도 줄 수 있겠죠.이공현 교무님 : 이제 기후변화위기에 대해서 일요일마다, 일요일 한 번 정도는 그런 교육을 살펴보면 그렇게 할 수 있게끔 하는데 이제 때문에 대전에서 이제 가족 간에도 그렇고 지금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많은 평화의 경우를 논의를 하면서 실질적으로 종교 생활에서 너무나 필요한 부분들 기후 위기의 행동, 국가처럼 평화에 대한 얘기 한때는 한 번씩 이런 게 될 수 있는 가치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지.
개인적으로 광주 현재 광주사태에 대해서 실질적인 경험은 저희는 이제 일상에 있는데, 옆에 707 공수대 제일 먼저 나왔던 공수대가 있는데요. 그때 참석했던 사람들 증언이 없잖아요. 그런데 말하지 못한 그 사람들 내면이 얼마나 병들어 있을까? 죽기 전에 이런 것들을 다 풀어줘야 될 텐데 그것 또한 말하지 못한 2차, 3차의 가해가 얼마나 심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우리 사회가 그런 부분을 건강하게 토론할 수 있는 평화라는 체제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안 보이는 복합적인 문제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대훈 연구소장님 : 저희 평화 운동하는 단체들과 여성 운동하는 단체들 또 전쟁에 대한 역사를 재해석하는 단체들이 모이면 지금 관련된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평생 말 못하고 숨겨있는 남자들이 말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남성들은 자기 고충을 얘기하지 못하도록 교육받고 성장하고 있구나 그랬잖아요. 그래서 남성들이 내면의 상처와 억압과 죄책감과 반성의 성찰을 편하게 짧게라도 얘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야지 계속해서 남성은 그런 거 못하니까 낮추고 그런 거 하는 사람 높이고 하게 되면 이게 점점 더 억압이 심해진다. 아마 그런 프로그램도 내면의 억압이 높은 남성들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끔 하는 그런 공간을 창출하는 것도 아마 종교기관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신익상 교수님 : 저는 교수님 강의를 듣고 나서 핵심이 2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또 현실적인 교육학 문제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중세까지 아니 사실은 지금까지도 유대인을 학살했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서양 사람들이 게토를 만들어 가지고 고통을 줬고, 했던 것 중의 하나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힌 민족의 어떤 연대책임이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뭐냐면 예수를 죽이는 과정, 예수가 죽는 과정은 ‘수행성’과 관련된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문제를 해결할 때 정체성으로 한다는 거지요. “너희들은 예수를 죽인 자들의 후예다.”라고 이런 식으로 해서 이게 문제가 그런데 종교교육 학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갈등도 그건 것 같아요.
사실은 거기에서 오시는 분들이 그 종교를 대표하는 뭐가 아니잖아요. 그냥 거기에 소속된 한 행위자이고 소속돼 있는 분들이지만 종교교육학회에서 수행성으로 뭔가 드러내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 벌어진 어떤 것에 대한 수행성의 결과가 너희들의 정체성이다. 이렇게 낙인찍어서 지금 거부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까 우리, 우리의 너희들이 본부가 될 수 있느냐 아니 너희 정체성은 아니냐 이렇게 접근하는 것 같아서 평화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2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제가 좀 했고요. 제가 최근에 통계 분석을 했는데 fascism을 다루는 개신교인들을 2천 명 대상으로 합니다. 그건 제가 아직 논문으로 발표를 안 했는데 극우 문제랑 제가 담당한 그거 문제랑 fascism의 연관 관계를 밝히는 거였는데 구체적인 거는 여기와 관련돼서 그냥 말씀을 드리면, fascism 성향이 저희 평균적으로 개신교인들만 했지만, 개신교인들이 사실은 한국 평균이랑 거의 똑같거든요. 저기 성직자나 목회자들이 좀 더 높아요. 사실은. 그런데 평균 치면은 거의 똑같거든요. 그런데 그러니까 그냥 한국 사람들일 거라고 예상을 하고서 이걸 얘기를 할 수가 있는데, 파시즘 점수가 평균에서 약간 높은 걸로 나왔거든요. 개신교인들 대상으로 하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거 개신교회만 그래라고 생각하기가 좀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꼭 한국인들이라서 상식적인 거는 다 거의 똑같아요. 실제로 극우 성향 했는데 한국인 전체로 한 게 21.8%고 개신교육과 21% 나왔어요. 따라하고 같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개신이라고 해도 평균적인 것은 거의 한국인들은 거의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는데, 그런데 굉장히 한국에서는 힘들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그 fascism 결과가 생각이 난 거예요. 왜냐하면 Fascism 경향이 어떻게 분포되냐면요. 중간 평균층이 좀 두터운 편이에요. 그다음에 fascism 성향이 좀 위험군이다. 고도위험군이다. 하는 게 그다음으로, 높아요. 그다음에 전혀 fascism적이지 않아 라고 하는 게 세 번째로, 그런데 가장 두터운 건 중간인데 이게 왜 이 중간의 의미가 딱 중간이라서 어느 정도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이게 아닌 거예요. 왜냐하면, 중간은 위험군이에요. 말하자면, 여러 가지 fascism의 요소들이 있는데, 6가지 항목을 이렇게 했는데 그중에 2~3가지는 높다는 뜻인 거예요. 사실은 다른 건 낮아도 그게 평균을 했더니, 이 정도 됐다는 뜻이라서 저희 사회가 전반적으로 문제를 권위주의적으로 몇 가지는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어떤 절차를 거쳐 가지고 그런 그렇다는 결과가 나온 거예요. 사실은요.
신익상 교수님 :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측정하면 극우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도 비율이 생각보다 높게 나타납니다. 이대훈 연구소장님 : 빠르게 탑다운 방식으로 일사불란하게 처리하기 좋아하는 그 전통이 진보 안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거죠. 신익상 교수님 : 그런 게 우리들의 평화에 대한 논의를 굉장히 많이 가로막는 하나의 요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연령은 숫자예요. 20대, 30대가 높고요. 70대도 높습니다.
최현민 수녀님 : 다음번에는 공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발표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익상 교수님 : 알겠습니다.
심원스님 : 통계조사, 설문조사 할 때 문항은 어떤 식으로 진행 하셨어요?
신익상 교수님 : 수십 개라서 일일이 다 하기가 이제 다 오픈돼 있기는 하니까요. 살펴보시면 되고 기독교 사회문제연구원 자료실에다가 아마 올라가 있을 겁니다. 최현민 수녀님 : 그러니까 평화에 접근하는 방향성이 너무 갈래가 많아서 이걸 어떻게 좁히고 그 다음에 어떻게 종교 문제와 연관을 지어서 나갈까가 참 너무 어려운 과제라는 게 오늘 다시 제가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 되는 것 같은데요. 이대훈 연구소장님 : 저는 그 fascism에 대한 비판적 연구에서 얻어지는 권위에 대한 숭배, 탑다운 결정의 효율성에 대한 숭배, 그 다음에 이제 열등과 유등으로 인류를 인간을 자국민을 분류하는 그 우열의 심리학 뭐 이런 분석은 되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살아있는 분석들도 그렇게 해서 저희 사회 현상을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추가적인 정보 하나만 드리면, 진보 쪽에서 지금 말씀하신 그 문제의식 탑다운 권위주의 이거를 용감하게 책을 내서 제기하신 분이 권인숙 교수라는 분이에요. 권인숙 국회의원도 하셨고 이름 들어보셨죠? ‘대한민국은 군대다.’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쉽게 쓰신 건데 권인숙 씨가 어떤 백그라운드 다 옛날 80년대 기억나시죠? 그래서 노동운동 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는데 취조하는 방식이 아주 극악한 성고문의 방식으로 취조를 당했는데 깨어있는 종교인들 덕분에 그 사실을 밖에 알릴 수가 있었고, 그 과정을 살아남으셨던,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살아남으면서 나중에 어느 정도 심리적으로 극복하고, 공부를 하면 그런 거에 관해 공부를 하실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 군대다.’ 하면서 대한민국 국가 성립 과정에서 군사주의가 미치는 영향을 쭉 분석 하셨어요. 그런데 거기에 운동권이 중요한 현상으로 들어가요. 민주진보운동권이 군사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내부의 성폭력과 여성 비하와 여성 열등화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70년대 80년대 운동에 대한 서술이 들어가요. 그러니까 좋아할 리가 없죠. 그 친구들이 동료들이 좋아할 수가 없어요. 아마 처음으로 운동권 내부에 은폐된 성폭력 문제를 지면으로 이렇게 얘기를 심원스님 : 사실 지면으로는 그렇게 하셨는지 모르지만 이미 다 알려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인지하고 있는 부분 아닌가요? 이대훈 연구소장님 ; 지금은 그렇죠. 그런데 그때 그 책이 나왔을 때는
정소이 교수님 : 2005년 책이네요. 20년 전에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한 10년 이후에나 이렇게 계속 회자되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