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적 병목과 과학적 해석의 한계
— 인류사와 종교를 둘러싼 대담
박태식 신부 : 오늘 발표 내용을 듣고 나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거나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부터 먼저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다음에 전체 논의를 이어가죠. 발제문도 다시 한번 읽어보시고, 개념적인 부분이든 어떤 대목이든 보완이 필요하다고 느낀 점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심원 스님 : 제가 먼저 말씀드려도 될까요? 전체적으로는 요약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책을 직접 읽는 것보다 오히려 이해가 쉬웠습니다. 다만 최복희 교수님께서 원시 시대의 혁명을 설명하시면서 화산 폭발 이후 ‘진화적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고 하신 부분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진화적 병목 현상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습니다.
최복희 교수 : 당시 화산 폭발로 인해 인류가 대규모로 사망했고, 환경 자체가 심각하게 파괴되면서 이전과 같은 활발한 진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시기가 잠시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일종의 정체 상태라고 볼 수 있죠. 재난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여러 과학적 증거를 통해서도 부정하기 어려운 대재난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심원 스님 : 그렇다면 왜 ‘병목’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건가요?
최복희 교수 : 책에서 그렇게 표현하고 있더군요. 저도 영어 원문을 확인해 볼까 하다가, 원문을 본다고 해서 제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박태식 신부 : 제가 읽은 바로는 이런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 극소수만 남았고, 그 소수 집단에서 다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거죠. 마치 병의 목처럼 확 줄어들었다가 다시 넓어지는 구조라는 의미입니다. 화산 폭발 당시 연기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퍼졌다고 하니, 그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복희 교수 : 네, 연기가 바다를 건너갈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최현민 수녀 : 그렇게 극소수의 인구만 남았는데도, 다시 인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 정말 놀랍습니다.
박태식 신부 : 추정으로는 몇 천 명도 채 남지 않았을 거라고 하더군요.
최복희 교수 : 그런 대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이후 인구를 늘리기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해석입니다. 그 결과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이동도 활발해졌던 시기가 나타났다는 것이죠. 저 역시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큰 재난이 어떻게 오히려 인구 폭발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핵심으로 제시되는 것이 ‘이동’입니다. 분산과 이동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인구가 증가했고, 그 과정에서 유전적 변화와 발전도 이루어졌다는 설명입니다.
심원 스님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요즘 인류사나 지구사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드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가진 자료와 기술을 바탕으로 과거를 설명하다 보니, 결국 지금의 시선으로 과거를 재구성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입니다. 현미경, 망원경, 나노 단위까지 관찰하는 기술처럼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과거에 대한 해석도 계속 달라지잖아요. 그렇다면 과학자들의 설명을 확정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현시점에서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잠정적인 설명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박태식 신부 : 결국 결과를 보고 거꾸로 추론하는 방식이니까요.
심원 스님 : 맞습니다. 과학 이론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드러난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가진 능력과 증거를 토대로 과거를 계속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적으로’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것 같아요. 사실 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잠정적이고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는데 말이죠.
미산 스님 : 저도 의식에 대한 정의를 놓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예전에 크레타 스님이 24년 동안 매년 의식과학 연구를 진행해 오셨더라고요. 의식에 대한 이론만 해도 40여 가지가 넘습니다. 전 세계 의식 연구를 하나의 지도처럼 정리하고 있는데, 뉴욕의 한 철학과 교수도 의식 연구는 ‘난제 중의 난제’라고 말하더군요. 아무리 과학적으로 접근해도 사실 의식은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논의된 내용 역시 기본적으로는 유물론적 전제 위에 서 있고요.
최현민 수녀 : 처음부터 유물론적 접근을 하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죠.
미산 스님 :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유물론적 접근만이 유일한 대세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명상이 과학화되면서 ‘체화된 마음’, ‘체화된 의식’ 같은 개념들이 등장했고, 현상학적 접근이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까지 들어가면 논의는 훨씬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는 아직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가 오히려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발견이 나오면 언제든 기존 이론은 뒤집히니까요.
박태식 신부 : 그렇다고 “모른다”는 말만으로 책을 쓸 수 있겠습니까. 어느 정도는 아는 척을 해야 책도 나오죠.
최현민 수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자는 자료 수집만큼은 정말 방대하게 했습니다. 특히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이론을 많이 차용하면서, 그가 제시한 세 가지 키워드를 ‘노동’, ‘성’, ‘권력’이라는 새로운 틀로 바꿔 인류 역사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더군요.
미산 스님 : 아까 언급된 성직 매매 이야기를 성신부님께 한번 여쭤보는 게 어떨까요?
박태식 신부 : 신부님, 성직 매매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송용민 신부 : 조금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에는 예수가 곧 다시 온다는 재림 신앙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가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직결돼 있었죠. 그러나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교회는 지하교회에서 제국교회로 드러나게 됩니다. 박해받던 교회가 오히려 다른 종교를 억압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일종의 승리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세속 권력과 결합하면서 영적 질서와 세속 질서가 혼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자발적 금욕과 수도 생활이었습니다. 순교에 버금가는 희생의 삶을 찾는 과정에서 은수 생활과 금욕이 강조된 것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직은 점차 사회적 지위와 권력으로 인식되었고, 재산과 상속 문제가 얽히면서 부패가 발생합니다. 성직 매매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사제 독신제가 점차 법제화되었고,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는 성직의 순수성을 재정립하며 신학교 제도 등을 체계화하게 됩니다.
심원 스님 :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성직을 ‘매매’한다고 할 때, 실제로는 무엇을 대가로 주고받았는지 궁금합니다.
박태식 신부 : 주교에게 토지를 바치기도 했고, 신자들에게서 나오는 헌금을 관리할 권한 자체가 하나의 이익이 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사제가 결혼을 하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이런 형태를 당시에는 ‘사유교회’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금지하게 되면 재산은 모두 교구 소속이 됩니다. 그 결과 교구는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게 되었죠.
**성직 매매와 사제 독신, 여성 성직을 둘러싼 종교적 논쟁
송용민 신부 : 중세 사회에서 핵심적인 재화는 땅이었고, 그다음이 사람들에게서 걷는 세금이었습니다. 성직자들이 세속적 권한을 함께 가지게 되면서, 어떤 지역에서는 영주가 곧 주교의 역할을 하거나, 세속 영주가 성직자를 임명할 권한을 갖는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성직을 희망하는 이들이 뇌물을 바쳐 주교직이나 수도원장 자리를 얻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또한 성직자가 신자들에게 종교적 행위를 제공하면서 금전적 대가를 받는 일, 이른바 성직록과 관련된 거래도 이루어졌습니다. 성직에 딸린 토지나 권한을 가족이나 가문의 재산 증식 수단처럼 넘기며 웃돈을 받는 방식이었죠. 성직이 일종의 소유물처럼 상속되면서 매매가 관행화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가톨릭 교회사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 중 하나로, 종교개혁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신교 종교개혁가들이 가톨릭 교회를 비판할 때 주로 이 시기의 봉건적이고 권력화된 교회 모습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왔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구조를 이미 정리했고, 같은 문제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박태식 신부 : 그렇죠. 과거는 이미 지나간 역사입니다.
미산 스님 : 천주교의 사제 독신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제정한 제도가 아니라, 11세기 교회법으로 확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앞으로 이 제도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송용민 신부 : 가톨릭 교회 안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제 독신제, 또 하나는 여성 사제직입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여성 사제직보다 사제 독신제가 먼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여성 사제직은 성서 해석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훨씬 더 복잡합니다.
사제 독신제는 교회가 사제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법적·제도적 유익을 고려해 확립한 규정입니다. 실제로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도 결혼한 사제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성공회에서 사제품을 받은 뒤 가톨릭으로 들어온 경우, 그들의 전통을 존중해 혼인한 상태로 사제직을 유지하도록 허용합니다.
또한 동방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제가 되기 전에 결혼 여부를 결정합니다. 결혼한 후 사제가 될 수는 있지만, 사제가 된 뒤에는 결혼할 수 없고, 결혼한 사제는 주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역시 가톨릭 교회 안에 제도적으로 포함된 전통입니다.
미산 스님 : 불교에서도 유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조계종 정화사 과정에서 결혼한 승려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두고 큰 갈등이 있었죠.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식 결혼 승려 전통이 강제로 유입되었고, 해방 이후 이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종단적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백양사의 송마남 스님은 이미 결혼한 승려들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되, 주요 사찰 운영은 비구승들이 맡고 결혼 승려들은 수행자로서 역할을 하게 하자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심원 스님 : 정화 과정에서 왜색 불교를 청산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정말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던 시기였습니다.
박태식 신부 : 그렇다면 신부님께서는 앞으로의 변화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송용민 신부 : 제가 30년 가까이 사제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인간적으로 볼 때 결혼한 상태로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 훨씬 큰 부담을 동반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내와 자식이 있으면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고, 교회 사목 중에 가정 문제가 생기면 영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개신교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가정의 경험이 신자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가톨릭 사제가 ‘제사장’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희생 제사를 봉헌한다고 이해하기 때문에, 오랜 전통 속에서 금욕과 독신이 사제직과 긴밀히 연결되어 왔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 가운데 하나를 성적 욕망으로 이해해 왔고, 이를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희생의 실패로 성찰해 왔습니다. 그 결과, 거룩한 제사를 매일 집전하는 사제에게 독신이 요구되어 온 것입니다. 실제로 성범죄는 사제에게 거의 즉각적인 파문 사유가 될 정도로, 직무 수행에서 가장 중대한 결격 사유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사의 희생적·제사적 의미를 포기하지 않는 한 성직자의 혼인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는 교회의 제도라기보다 정체성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미산 스님 : 결국 사제 혼인 문제도, 여성 성직 문제도 모두 쉽지 않다는 말씀이군요.
박태식 신부 : 정리하면 그렇습니다.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송용민 신부 : 설령 제도적으로 가능해진다 해도, 현실적으로는 주교단의 동의를 얻기 어렵습니다.
최복희 교수 : 그렇다면 하나 여쭙고 싶습니다. 성공회에서 여성 사제가 가톨릭으로 온 경우, 여성 사제직을 인정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건가요? 학생들이 가톨릭은 마리아 신심도 강하고 여성 성인도 많은데, 왜 여성 사제는 허용하지 않느냐고 자주 묻습니다.
송용민 신부 :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성공회에서 받은 여성 사제품은 가톨릭에서는 유효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여성 사제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여성 사제직보다는 여성 부제직 가능성을 검토한 바 있으나, 교회 내부의 보수적 반대가 여전히 강합니다.
다만 여성의 교회 내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교황청의 고위직에 여성이나 평신도가 임명되고, 전례와 사목 현장에서도 여성의 참여가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직만은 신학적으로 넘기 어려운 선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사제직을 ‘성품성사’로 이해합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제정한 성사이기 때문에, 교회가 임의로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예수가 사도들에게 사제직을 위임할 때 남성 사도들에게 맡겼다는 교회 내부의 해석이 그 근거입니다.
물론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 제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신학적 반론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가톨릭 교회 현실에서는 여성 사제가 제단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신앙 감각이 충분히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한국 교회는 그 경향이 더 강합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 사제를 자처하며 활동하는 그룹도 존재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파문 조치를 취했습니다. 보편 교회 차원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봅니다.
최현민 수녀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먼저 문호를 연다면, 신앙 감각 자체도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의 신앙 감각이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해석과 실천 속에서 갱신될 가능성도 함께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 가설, 성 역할, 그리고 동성애를 둘러싼 종교적 시선
박태식 신부 : 이제 논의를 다시 오늘 발표 내용으로 돌아가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발제를 준비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까 수녀님께서 ‘할머니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셨고, 이어서 성과 권력, 매춘이라는 주제도 던져주셨습니다. 이 지점들을 중심으로 조금 더 질문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최현민 수녀 : 발제에서 언급된 ‘할머니 가설’은 인류학적으로도 연구가 굉장히 많이 이루어진 주제더군요. 저 역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을 돌아보게 되었고, 인류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번성할 수 있었는지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들이 인류사에서 차지한 역할이 상당히 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소이 교수 : 현대사회에서도 사실 할머니들은 여전히 육아의 부담을 크게 짊어지고 계시죠.
박태식 신부 : 그러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폐경 이후에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간은 왜 폐경 이후에도 살아남았을까요? 그 이유를 ‘할머니’라는 역할에서 찾는다는 건가요?
정소이 교수 : 네, 폐경 이후에도 생존할 수 있었던 사회적 역할이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동물들에게는 그런 역할이 거의 없었죠. 인간은 직립 보행을 하면서 산도가 좁아졌고, 그로 인해 아이가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태어난 아이는 오랜 돌봄이 필요했고, 이 돌봄을 어머니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박태식 신부 : 질문을 조금 좁혀서 드린 겁니다.
정소이 교수 : 동물들은 비교적 성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어미가 전적으로 돌보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합니다. 반면 인간의 경우 태어난 이후 첫 1년은 사실상 자궁 밖의 태내 기간이라고들 하지요. 이런 조건 때문에 할머니를 포함한 공동 돌봄이 필수적이었고, 이것이 인류 생존에 큰 역할을 했다는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최현민 수녀 : 말이나 소 같은 동물들을 보면,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일어나 걷기 시작하잖아요.
정소이 교수 : 맞아요. 송아지도 그렇죠. 그런데 이런 ‘할머니’라는 존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육아를 여성에게 전담시켜 왔던 역사, 그리고 그로 인해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어 온 구조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교육이나 가족의 여러 기능을 점점 공동 책임으로 이전해 왔지만, 아이를 키우는 문제만큼은 여전히 개인, 특히 여성에게 맡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주변을 보면 출산 이후 할머니가 사실상 전업 보육자가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아직도 사회가 아이 양육을 충분히 공동 책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산 스님 : 요즘은 그래도 남편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난 것 같긴 합니다.
박태식 신부 : 그렇다면 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을까요? 그 점도 질문이 됩니다.
정소이 교수 : 오랜 기간 고정된 성 역할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미산 스님 : 제가 만나는 젊은 부부들을 보면, 육아를 비교적 분담하려는 모습도 분명히 보입니다.
정소이 교수 : 제도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육아휴직을 부모가 나눠서 사용할 수 있고, 아버지가 육아휴직을 쓰면 어머니의 휴직 기간이 더 늘어나는 제도도 있죠. 이런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지만, 다른 사회 영역에 비하면 여전히 발전 속도가 더딘 편입니다.
최복희 교수 : 다만 여기서 말하는 ‘할머니의 중요성’은 진화인류학적 맥락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을 비교하기 위한 설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평균 수명이 더 긴 이유는 훨씬 다양한 생물학적·사회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논의는 과거의 진화 과정에 대한 설명이지, 현재의 성 역할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제가 언급한 현대사회 이야기도, 여전히 육아 문제가 충분히 사회화되지 못한 이유가 성 역할의 고정에 있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아까 잠깐 언급된 동성애 문제를 불교나 천주교, 개신교, 성공회 등 다양한 종교의 관점에서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교는 가부장적 질서를 기반으로 형성된 종교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데 구조적 한계가 있지만, 다른 종교들은 조금 다른 맥락을 갖고 있지 않나 싶어서요.
박태식 신부 : 고대 그레코-로만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지금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오히려 동성애를 하지 못하는 남성을 미숙하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죠. 그러다 그리스도교가 등장하면서 성 윤리에 대한 관점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는 강한 윤리적 기준을 세운 종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공회의 경우는 국가 기반 종교라는 특성이 큽니다. 영국 성공회는 국가의 결정에 따르는 구조를 갖고 있고, 지금도 영국 상원의원 중에는 주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연방법으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었고, 미국 성공회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동성 커플이 혼배성사를 요청하면 집전하기도 합니다. 동성애자인 주교도 실제로 존재합니다.
반면 영국 본토나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성공회는 매우 보수적입니다. 람베스 회의처럼 전 세계 주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미국 주교들의 참여를 문제 삼는 일도 있었죠. 성공회 내부에서도 지역에 따라 입장이 크게 갈립니다.
심원 스님 : 불교, 특히 조계종의 경우는 공식적으로 결혼 자체를 제도화하지 않기 때문에 동성 결혼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신도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지만, 종단 차원에서 주례를 인정하는 문제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미산 스님 : 다만 조계종 사회부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적극 지지해 왔고, 동성 커플을 초청해 법회를 연 적도 있습니다. 소외와 차별 자체를 문제 삼는 차원에서의 접근이었죠.
심원 스님 : 성적 지향의 문제라기보다, 차별금지법이 다루는 포괄적인 불평등 문제에 대한 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현민 수녀 : 부처님 당시에도 동성애와 관련된 언급이나 규정이 있었나요?
미산 스님 : 계율에는 나옵니다. 다만 그것은 출가 수행자에게 엄격히 적용되는 규정이고, 재가 신자에게까지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심원 스님 : 율장은 주로 승가 공동체의 질서를 다루는 문헌이기 때문에, 재가자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최현민 수녀 : 동성애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선천적인 성향이라는 점에서 더 고민이 필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박태식 신부 : 과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그런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은 교회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가르침은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통해 생명이 탄생하는 질서를 혼인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동성 커플의 결혼이나 입양은 현재로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금 교회의 공식 입장입니다.
성, 동성애, 종교 전통의 경계에서
송용민 신부 :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동성애 문제는 최근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사법적 배려’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가 있습니다. 그 연구는 동성애자가 아니라, 동성애 성향을 지닌 자녀를 둔 부모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배려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 것이었죠. 이 연구자는 당사자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동성애와 관련해 사람들이 겪는 사회적 어려움을 직접 들여다보았습니다.
저 역시 주교회의에 있을 때 교황께서 강조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황은 ‘동성애자’와 ‘동성애 성향’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성향은 생물학적·심리적 조건과 관련된 것이지, 그 자체로 죄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교회는 성향과 행위를 구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흔히 사람들이 상상하는 극단적 이미지로 환원될 수 없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함합니다. 동성애를 하나의 획일적인 모습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일입니다.
오늘 논의된 책에서도 성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데, 공감이 가는 대목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왜 종교 전통들이 오랫동안 성의 문제를 엄격하게 다뤄왔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생명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성의 통제가 무너졌을 때 나타난 문제들—임신, 출산, 양육, 가족 관계의 혼란—은 반복되어 왔습니다. 교회가 성의 남용을 경계해 온 것은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윤리 원칙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성은 인간에게 축복된 에너지이지만, 그것이 생명 지향성을 잃을 때 개인과 사회 모두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오랫동안 경험해 왔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종교의 성 윤리를 낯설고 부정적으로 느끼는 이유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과 성, 관계의 해체 과정에서 깊은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는 현실 역시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이 성 문제를 단순한 도덕 논쟁이 아니라 인간 삶의 근원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태식 신부 : 최 교수님께서는 송 신부님의 말씀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고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복희 교수 :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제가 감히 평가할 수는 없지요. 다만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저는 중학교 때 세례를 받고 한동안 교회를 떠나 있다가 2018년에 다시 교적을 회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혼배성사를 받게 되었고, 남편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감정적으로는 매우 감사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지만, 혼배 교육을 받으며 느낀 점은 솔직히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
가톨릭은 강한 전통과 조직력을 통해 신자들에게 안정적인 영적 공간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변화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하고 때로는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성리학을 전공했는데, 성리학 역시 보수적인 전통을 지녔지만 사회 구조가 변하면 해석도 달라질 수 있는 ‘변통의 사유’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톨릭은 변화가 쉽지 않은 전통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미산 스님 : 아까 송 신부님께서 ‘신앙 감각’이라는 표현을 쓰시며 여성 성직자에 대한 신자들의 정서를 언급하셨는데요. 만약 수녀님이 앞에서 집전을 하신다면, 일반 신자들은 정말로 불편함을 느낄까요?
최복희 교수 : ‘일반 신자’라는 범주 자체가 사실은 매우 모호하다고 생각합니다.
최현민 수녀 : 중요한 건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신자이기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 자라온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형성된 감각이 신앙 안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작동합니다. 우리 모두 그 역사적 조건 속에서 사고하고 있는 것이지요.
박태식 신부 : 그 말씀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성공회에는 이미 여성 사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여성 사제가 집전을 할 때 신자들이 성체를 거부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여성 사제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남성 중심 구조 속에서 학습된 결과가 아닐까요. 여성들 스스로가 본질적으로 그런 역할을 거부해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복희 교수 : 개신교에서도 여성 목회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결국 익숙함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요. 성당의 연령 구조를 고려하면 변화가 더디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청년 세대에서는 저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로 저는 이번 겨울에 유교와 동성 결혼을 주제로 논문을 쓸 계획입니다.
최현민 수녀 : 사람은 익숙해지면 바뀔 수 있습니다.
박태식 신부 :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나왔지 않습니까.
최복희 교수 : 조선 후기 소설인 방한민전을 보면, 여성이 성별을 숨기고 다른 여성과 혼인 관계를 맺고, 결국 사회적·국가적 승인까지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작품은 유교적 가치인 충·효·열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관계의 정당성을 획득합니다. 부부유별 역시 ‘역할의 차이’가 아니라 ‘특별한 관계의 구별’로 해석하는 전통도 존재합니다.
물론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생성’, 즉 세대의 지속입니다. 이 지점에서 동성 결합은 분명히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방한민전에서도 결국 입양을 통해 제사와 계승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혈연이 아니라도 정신과 책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상상력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박태식 신부 : 혈연이 아닌 후손이 제사를 이어도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씀이군요.
최복희 교수 : 공식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유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런 해석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교의 핵심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인(仁)’의 정신이니까요.
박태식 신부 : 오늘 논의가 굉장히 풍부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오늘 대담은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