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석일시 : 2022.09.22.
- 주제 : 원불교의 뉴노멀(New normal)_ 문명의 대전환과 오늘의 과제
- 발제자 : 이공현 교무님
- 방법 : Zoom 화상회의
- 참석자 : 이정배목사님, 송용민신부님, 미산스님, 이공현교무님,
박태식신부님, 최현민수녀님.
이공현교무님 : 발제
최현민수녀님 : 교무님 감사드립니다. 원불교 전체의 역사를 핵심적인 부분을 잘 요약정리 해주시고 뒷부분에서 현재 원불교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소상히 나눠 주셔서 원불교에 대해 새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발제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질문은, 미국 종법사님이 따로 계시면 미국 원불교는 한국하고 완전히 독립된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모든 시스템이 완전히 독립되어 있나요? 아니면 어느 부분은 아직 결속이 좀 되어있나요?
이공현 교무님 : 예, 지난해 완전히 자치권을 인정하고 분리 독립 시켰어요. 그런데 미국 원불교에서도 원불교 교법을 번역해서 쓰는 것은 같은데 원불교의 교법 중에서 절대 바꿔서는 안 될 부분이 있고 응용해서 바꿔도 될 영역이 있어요. 그런데 절대 바꿔서는 안 될 영역에 대해 바꿔야 될 의제가 있을 때에는 중앙에 있는 종법사의 승인하에 반포가 되는 정도지 종법사의 이동 일정에 대한 것도 자율성을 많이 부여했어요.
최현민수녀님 : 세계의 독립되어 있는 기구가 미국에만 있나요?
이공현교무님 : 예 현재 미국이 시작이에요. 미국이 샘플링 되면서 25개 국가에 나가 있습니다.
최현민수녀님 : 네 그러시군요. 교당 운영에서도 이제 원불교 교계제도 같은 것을 가톨릭에 있는 어떤 부분을 많이 인용해서 체계화시킨 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당 운영같은 경우에 교무님께서도 실질적으로 성직자로서 한 교당을 운영하고 계시는 데요 천주교의 경우는 본당이라고 하는데 본당 안에서도 성직자와 수도자가 분리가 되고 있지요. 곧 사제가 본당사목의 중심에 있고 수도자는 그러한 사제의 사목을 도와주면서 본당 공동체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죠.
송용민신부님 : 저도 한번 원불교 총본부에 가서 교무님 앞에서 가톨릭 교회의 교구의 교비제도나 여러 성직자 양성제도에 대해서 강의를 꽤 오래전에 한 적이 있어요. 원불교가 여러가지 개혁에 대한 새로운 논의들을 시작할 때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 많이 애를 쓰셨을 때 도움 드리려고 갔었는데 저는 솔직히 원불교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리고 교리에 대해서도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들었지 오늘 발제한 내용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보면서 아, 원불교의 이런 정신들이 창시자의 정신은 이런 것 이구나, 이런 마음들이 구체적으로 실천요소로 발전되고 있는지 자세히 알게 되어서 너무 고맙고요. 저는 딱 느낌이 원불교의 태생의 배경을 생각하면 우리가 주제로 삼고 있는 탈서구, 탈성장, 탈인간, 탈종교. 이정배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새로운 뉴노멀 시대에 맞는 하나의 어떤 개혁적 요소들이 굉장히 파격적으로 많이 보여요. 처음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 들으면서 지금 종교인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참 선구적으로 제시를 많이 하셨구나. 그리고 실천 없는 교리 중심, 제도중심, 성직중심 이게 우리 가톨릭 교회나 여러 종교들이 지금 떠안고 있는 문제고 그것이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의 민낯이 드러나고, 현실적인 종교의 위기를 우리가 느끼고 있는 시대인데, 그런 시대에 지금의 눈으로 창시자의 생각을 읽으면 굉장히 파격적이고 개혁적인 느낌들이 확 드는데 이 정신을 실천해 나가는 원불교의 지금의 어떤 내용들을 보면 이젠 마음공부라든지 정신적인 개혁운동을 해나가는 종교적인 실천에서 제가 부딪히는 두 가지 문제는 첫째는 요즘은 종교가 아니어도요,
종교 밖에서도 이러한 마음공부니 신심수련 인간 내면에 대한 자기개발 특히 요즘은 생명공학이니 뇌 과학자들의 엄청난 발견, 발전으로 인해서 인간의 뇌구조의 모든 지도를 해석해 낼 수 있는 시대까지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풀어내는 생명공학이나 최첨단 과학의 영역이 지금 물질의 개벽과 정신개혁을 같이 시작한 원불교에서는 지금의 앞으로 나올 어마어마한 포스트 휴면 같은 그런 시대를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
그리고 그걸 끌어 안으면서도 인간 정신개혁을 할 수 있다는 이 마음의 폭을 지금 어떻게 원불교가 받아들일까 살짝 궁금해졌고요 그러면서도 살짝 그런 생각을 안고 있으면서 뒷부분으로 가면서 그러면 지금 뉴 노멀 시대를 가면서 원불교가 처해있는 입장을 앞으로 어떻게 함께 회의를 통해서 이겨낼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 개혁 혁신과제를 보니까 좀 제가 느끼는 개인적인 생각은 정신개혁과 탈 제도나 탈 성장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제도적인 견고함? 그리고 이제는 소수종교라고 하는 분위기에서 좀 더 교단을 철저하게 운영하려고 하는 제도적 종교의 어떤 틀을 더 분명하게 만들려고 하는 제도적인 개선안들이 나오다 보니까 원래 초창기 창시자의 정신과 지금 현재 성직자들이 찾고 있는 종교적 가치에 대한 것이 좀 상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어요.
이건 모든 종교들에 당연하게 생긴 문제이거든요 우리 가톨릭 종교도 마찬가지이고 이공현 교무님께서 성직자로서 현장에서 사목을 하다보니까 현실 교회 신자들과 우리 제도교회가 가고 있는 엊 박자들이 느껴지고 우리들의 마음에서 원하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영적인 갈망과 제도종교가 추구하고자 하는 오히려 탈 성장에 역행하는 제도적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괴리감들을 많이 느끼거든요. 교무님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는 느낌을 그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공현 교무님 : 감사합니다. 아마 저도 이 주제를 가지고 이 내용을 전개하고자 했던 것이 지금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것을 내외적으로 많이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발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실 처음 말씀하셨던 것처럼 종교가 아니어도 이러한 진단들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초기에 이러한 질문들을 소태산께 많이 해요. 우리가 이러한 종교수행을 하는 사람도 마음공부에 완성된 단계에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러한 종교를 믿는 사람과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어느 때 보면 정신수양이나 정의롭게 취사를 잘하는 이러한 사람들도 있는데 굳이 종교생활을 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초기에 제자들이 많이 하거든요. 그때 대답이 일시적으로 한 순간에 그러한 겉으로 보기에 똑같은 결과를 낼 수 있지만 체계를 잡고 이와 같이 늘 그렇게 되게끔 공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난다라는 말을 제자들에게 답을 하면서 가이드 라인을 가르쳐 주세요. 근데 저도 이것을 많이 연마를 했어요. 왜냐하면 서울에 창덕궁 옆 은덕문화원은 모든 사람에게 오픈을 해서 누구나 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그런데 중앙아시아나 다른 데에서 예를 들어 선수행을 많이 하신 분들이 가끔 오셔가지고 하는 질문이 있었어요.
힐링이나 명상을 통해서 인간이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것에 대한 터치를 많이 받고 살고 싶은데 이러한 삶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지. 나는 지금 그런 것을 찾으러 다닌다. 이런 이야기하는 외국인들이 되게 많았어요. 저는 여기에도 굉장히 많은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말하는 거대한 지구적인 흐름이나 하나의 템플를 짓는 것 보다 한 사람의 완성된 인격자를 만들어 내는 게 우리 시대에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작은 교회 운동과 맞물려 있는 핵심도 이것과 같다고 봐요. 그래서 한 번에 일시적으로 반짝이는 게 아니라 늘 그와 같은 인격이 양성될 수 있게끔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 그리고 저희 원불교는 아까 개방성이나 수용성에서 이야기 했듯이 과학문명을 거부하지 말고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게 처음부터 굉장히 긍정적인 마인드로 늘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육이 되어있는 것 같아요.
워싱턴에 원불교 교당이 있는데 한번은 나사에 근무하던 사람이 지나가다가 원불교에 심볼을 보고 원불교에 귀의해서 요즘도 여름이나 휴가철 되면 한국에 와서 종법사님과 시간을 함께 하고 가시는 분이 계세요. 그분이 예를 들어 우주항공을 하시고 우주의 시원을 고민하다보니까 심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와서 이 해석해 놓은 내용을 보고 본인이 생각했던 부분과 맞물리니까 실생활에서 나는 어떻게 구체화 시킬 것인가에 대한 또 내부적으로 들어가는. 그래서 뇌 과학 쪽도 종교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것도 있고 지속적으로 이러한 그 연대의식은 같이 지속되리라는 생각이 저는 들어요.
그런데 이것을 거부하지 말고 수용하고 다만 이것 자체가 지난주 때 이야기했지만 모든 것은 갖고 있는 속성이 있는데 이 속성이 잘 쓰면 선한 쪽으로 나오고 잘못 쓰면 나쁜 쪽으로 나오듯이 잘 사용할 수 있게, 곧 인류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게 이러한 조정을 함께할 수 있게 가르쳐 준 것이 종교이지... 그렇게 까지 받아들이면서 그 위기를 해결해 나가도록 노력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여성성직자들 그 시대에 조선 후기에 여성들을 제자로 삼으면서 처음에 대중 앞에서 스피치 하는 것을 가르쳐 주면 다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못하고 했는데 커튼을 쳐놓고 말을 하는 연습부터 시켜서 지금의 원불교 교무들이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다 실질적으로 하시거든요.
그렇게 까지 하면서 이 차별적인 것이나 이런 것들을 떠나서 할 수 있는 이념을 구체화 시키는 과정을 보여주셨어요. 근데 지금은 국가조직이나 이런 것에서 원불교가 너무 약하고 우리들 조차 너무 이런 방향성에 지혜가 없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고, 사회 속에 그냥 원불교가 묶여버린 듯해서 성장이나 그런 것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군종이나 이런 걸 해야 할 때도 법적으로 예를 들어 법적으로 정해진 종교만 군종도 만날 수 있고 많은 부분에는 이런 식으로 굉장히 가둬져 있고, 갖춰져 있고 고립되어 있는 게 되게 많아요. 그 속에서 어떠한 원불교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제도적 한계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러한 반사적인 것으로 이러한 모습이 더 많이 남아있는 것이 1970-1980년대 이후에 이런 모습들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에서 어떻게 보면 생존, 살아남기 위한 종교의 모습으로 제도적인 모습을 찾게 되고 이게 주로 하다보니까 중요한 것들의 밸런스가 깨진 것들을 지금 와서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그렇게 가선 안된다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묻고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구 하나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움직임에 의해서 종교가 갖고 있는 위치 이렇게 만들어 질 수도 있고 또 우리들이 늘 초기의 어떠한 모습으로 가야 되는지 공동체 협의나 이런 것들도 중요하고 이런 상황이 연속적으로 전개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천주교처럼 오랜 역사를 통해서 필요한 것들이 합리적으로 수용된 것도 있고 변화된 것도 있고 그렇잖아요 이런 부분들을 자꾸 여쭤가고 물어가면서 원불교는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지금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미산스님 : 예, 송용민 신부님께서 굉장히 중심주제 2개를 잘 잡아주셨는데요 사실은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이 개벽하자. 슬로건은 백 년전의 슬로건이지만 지금에 매우 유용한 아주 적합한 슬로건 이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100년 전의 슬로건을 지금에 구현하고 있는지. 저는 아까 발표를 들으면서 뭔가 많이 뒤져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사실 과학은 AI 생명과학 컴퓨터 어마어마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일반인들은 체화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전자가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카이스트 이광무 총장님이 3부작으로 KBS에 인문학에 관련한 강연을 지금 하고 계시는데요.
(제가 끝나고 나면 공유해 드릴께요. 첫 번째 하셨거든요._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 생명과학 발전으로 인해서 증강인간(AUGMENTED HUMAN)이 곧 지금 만들어 질 것이다. 두 번째 AI발전으로 인해서 증강기계 인간이 만들어 질 것이다. 완전히 AI인간이죠. 그리고 자연인인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기술 도구 발전으로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거에요. 그리고 여기에 어마어마한 경제적인 힘이 뒷받침 되기 때문에 국가간에 경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면 여기서 인문학이 빠졌을 때에는 정말 위험한 세상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인문학을 아주 적극적으로 과학기술 대학에서 해야 된다.
이광무 총장님은 총장 되시자 마자 디지털 인문학과를 금년 초에 만들었어요. 그리고 뇌 인지학과를 금년 3월에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간곡히 부탁하신 게 뇌 명상과학을 인지과학으로 결합해서 교수가 몇 명이 되었던지 우선 교수들이 있으면 다 뽑자. 그래서 굉장히 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뭘 의미하냐 하면요. 이미 첨단 과학에서요 아까 송 신부님이 말씀하신 생명 과학쪽은 인간생활을 깊이 관여할 수 있도록 발전하고 있습니다. 종교에서 신체의식 이런 것을 한다. 이제는 따라가기가 바쁠 정도로 숨가쁠 정도로 뒤쳐져 있습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에요. 법이 그쪽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매우 앞서 있지만 구체적으로 접근할 때는 정말 많은 게 낙후되어 있어요. 첫 번째 제 질문은요. 최근에 총장님하고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명상 마음수행에 마음공부에 단을 1단부터 9단까지 바둑의 단처럼 설정할 수 있느냐하고 재밌는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아까 발표 중에서 교법정신 회복에 있어서 성직자 혹은 재가자 상관없이 마음공부 수준으로 그걸 정하는 게 좋지 않겠냐 근데 저는 질문이 뭐냐면요 어떤 기준이 구체적으로 있는지? 이게 굉장히 궁금했어요.
저도 기준이 되게 모호할 것 같다. 마음공부의 단을 정하는 게 정말 힘든데 그게 오히려 패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는 종교가 지금 생존형 종교로 전략했다. 그러니까 탈성장이고 뭐고 우리도 성장해야돼. 서구 종교도 많이 따라 하고 있거든요. 이미 개신교, 천주교, 다 서구모델로 성장한 종교니까. 불교 조차도 서구에서 이제 더 맑고 향기롭게 깊이 있게 모든 문화적인 것 관습적인 것 탈각하고 명상으로 지금 확산되고 있거든요. 서구모델이에요. 그 다음에 탈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탈 인간이 안되고 있어요. 굉장히 인간중심입니다. 인간이 지속적으로 존속하기 위한 책략들이에요. 모든 것들이 지금. 탈종교? 아닙니다. 더 자기 것을 찾고 자기 안에서 무얼 찾으려하고 자기화 하려고 합니다. 목사님들이 제시해준 기준들에 반해서 가고 있거든요.
관련해서요 네 번째 육영교육 말씀 하셨거든요. 저는 여기 혁신에 교육이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성직자요? 불교를 예를 들면 천명 이상 인가받던 성직자들이 지금은 1년에 50명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이건 숫자로 비교가 안됩니다. 다른 종교도 아마 들어보면 비슷한 수준일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서 양적 성장은 인재 양성은 이제 포기해야 되요. 그래서 얼마나 질적으로 우수한 성직자들을 교육해서 그나마 우리 역할을 해야 될는지 육영교육 혁신에 관련해서 통합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이공현 교무님 : 지금 양적, 어떻게 보면 베이비부머 이후에 종교도 1970년대부터 굉장히 양적으로 너무 성장했는데 지금 이러한 상태에서의 기관이나 조직을 운영하기에도 부족한 성직자의 형태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것을 어떻게 그것을 응해주면서 지금 말한 실질적으로는 굉장히 양적인 팽창보다 질적인 성직자가 필요한 시기인데 이 둘을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희도 원불교 교무님들이 출가하고 서원하고 오면 이러한 원광대학에 시스템이 있고 대학원 같은데 국내파 필라델피아에 해외에 있어서 외부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쪽으로 가고 국내는 국내에서 지원하도록 시스템이 되어져 있는데 질적으로 이전에 비해서 오히려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도 양적으로 팽창된 조직을 마크하려면 인원을 더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면접을 봐서 면접상태에서 그 사람의 DNA나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면접이 되어야 들어올 수 있어요. 최근에는 그전보다 좀 더 유약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왜냐면 가족이 하나 또는 둘 밖에 안되니까 조직이 와서 좀 있다가 못 있겠다고 가버리고 뿌리내릴 때 까지는 어ᄄᅠᇂ게든지 질적이고 양적을 떠나서 사람이 이 정도로 까지 되어 버린 현실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쨓든 젊은 사람들 보면 웃어야 돼요.
저희는 위로 어른들 모시고 힘들게 살았는데 밑에 사람들 한테는 대우받을 생각조차 못하고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런 상황인데 교육이 굉장히 중요해서 예전에 원불교 처음 시작할 때는 구분이 없었잖아요. 그런데 보통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제2의 인생을 기간을 통해서 출가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이러한 것을 내부에서 활용하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많은데 이것이 평생 수행해온 사람과 잠깐의 기간을 집중해서 하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많기 때문에 이게 조직 안에서 또 약간 씩 문제가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이러한 부분들은 이게 답입니다 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구요.
마음공부 기준에 의한 단순한 말인데 저희가 처음 원불교의 핵심 원전에 마지막에 뭐냐면 법의 등급이란 걸 소태산 께서 해놓고 가셔요. 수행 정도에 따라서 6가지 등급을 나눠요. 처음 들어와선 보통급, 살생을 말며 간음을 말며 보편적인 거에요. 그 다음에 특신급을 들어보면 원불교에 대한 이해도 있고 종교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 있어요. 그다음에는 법과 마가 싸우는 법마 상정급이란 게 있어요. 이런 법에 대한 것이 보이면서 그때 보이면 굉장히 날카롭잖아요. 저건 옳은 거 저건 틀린 거... 뭐가 옳은지 그른지를 구별하는 것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그래서 법이 뭐고 마가 뭐고를 일일이 분석하고 우리의 정전 해석에 착오가 없는 이러한 상태,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 나가더라도 법을 알고 종교생활을 재미로 알고 쓸데없는데 동하지 않고 하는 가이드라인이 있고요,
이러한 것을 3년에 한번 대대적으로 교당에서 해요. 교당에서 1년에 한번씩 체크를 하고 이렇게 초기에는 이 사람들과 따로 단계에 맞는 훈련하는 게 있고요 법강항마는 법이 말을 완전히 익힌 단계에요. 여기에 승급이 되면은 적어도 자기가 법에 의해서 움직이는 이러한 기준 백전백승할 정도의 경전의 뜻도 알고 이 세상의 원리원칙에 의해서 건설되고 살아야 되는지 생노병사에서 해탈의 얻어야 되고 그런다음이 출가의. 출가의는 법강항마보다 자유자재하는 현재 모든 종교의 교리도 다 알아야 되고 생명에 대해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각오로 살아야 되는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이 출가위 이상이 되어야 종법사가 될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요.
이게 저희가 기준이 있어서 어느 단계에는 뭐가 되고 이거를 사정을 해요. 어느 정도의 공부가 되어있고 전체 훈련이나 이런걸 어느정도 참석했고 저희가 일기 같은걸 써서 제출을 해요. 객관적 평가가 되도록이면 종교인들 사이에서 선후배 사이에서 되게끔 되어있다고 생각을 하고 문제가 있다라고 제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러면서 종법사를 이렇게 종사위라는 출가위 이상의 사람이 해야되냐 종법사를 젊은 친구들이 30대에서도 종법사 나와야 된다. 그런데 종교는 법을 다루는 건데 어떻게 원리원칙 모르는 사람을 가장 위 자리에 앉혀놓고 법을 있을수 없는 일이잖아요. 서로 가능한지 이야기를 하는거죠.
그 다음이 대강열의에요. 출가위 이상의 승급조항을 그다음 단계는 그래서 이제 출가위만 되어도 모든 종교를 자유자재 하면서 다 포용할 수 있어야 되고 대강열에는 모든 수기응변이나 이런 것 들이 부처님자리죠. 이러한 단계에 따라서 나누고 이러한 사정에 의해서 원불교에 많은 과거 역사에서도 이러한 어른들이 이러한 부분들이 나눠져요. 열외의에는 여성이 한분 있으시고 남성이 종법사위 하셨던 분중에 초기어른들이 다섯 분이 들어가 계시고 그 다음 출가위는 몇 분이 계시고 이것을 6월1일 우리가 전체 제사를 드리고 이런 시스템이 다 연결이 되어있어요.
미산스님 : 여성중에 열외위에 드신분은 혹시 성함을 알 수 있나요?
이공현 교무님 : 예 그분이 서대인.
미산스님 : 아~ 저기 저번에 삼성 이건희 씨 가에..
이공현 교무님 : 출가위로 가신 분은 공부로서도 출중해야 되고 사업이라는게 대중을 위한
공적인 일, 이 역량 두 개가 함께 공이 대중한테 인정을 받아야 되요. 이것을 할 때 일반 작은교무는 교구에서의 사정이 있고 교구에서 통과한 사람은 중앙에서
미산스님 : 아~참! 홍라희씨 어머님. 그때 궁금했어요. 일반인 인데 굉장히 큰 지위를 갖고계시는가
이공현 교무님 : 예, 제가 중에서도 소태산 대종사가 시작을 하실 때에 출가해서 도운 분도 있지만 출가 아닌분들이 도우면서 엄청난 역할을 하신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미산스님 : 쉽게 이야기하면 오단이었네요. 감사합니다.
이공현 교무님 : 그런데 우리가 살아서 아까 말한대로 법마상전 되는 사람들이 대강열이나 이분들이 마음 심법을 진단하기가 어려운데 그러한 제자들이 어른들을 법위사정해서 위를 놓는다는게 옳은 이야기냐 이런 질문들이 역으로 중앙에 쏟아지게 되죠.
최현민 수녀님 : 이 질문하고 연결지어서 스님께 한 가지 질문 드리면요.
우리나라의 선방에서는 화두를 타파하고 나서 큰 스님이 그것을 깨달음으로 인가해주시면 깨달은 자로서 인정받는데 일본 임제종 같은 경우에 하나의 화두를 타파하면 그 다음 단계 넘어가고 하는 단계적인 화두 타파방법이 있는데요
지금 한국 선종 안에서 혹시 어떤 그런 부분을 수용하고 또 스님께서 지금 어떤 수행의 단계들을 체계화 하는 과정 안에서 화두를 타파하는 것으로 일본 선종의 참선 방법이 한국에도 활용이 되고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미산스님 : 예, 사실은 임제종의 화두타파의 스승은 사실 한국 내에서는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활동하시는 숭산선사가 사실은 일본에 꽤 오래 계셨습니다. 그래서 일본 임제종 영향으로 그분은 사실은 한국 선불교하고 접목을 해가지고 외국인들한테 간화선 수행을 시킬 때 간화선만 하지 않고요 먼저 천수 주력을 시킵니다. 그 다음 108배하고 그래서 그 쪽은 관음선종이라고 한국에서는 그 말을 잘 안 쓰지만 일본에서는 새로운 교단입니다.
거기서는 간화선을 가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화두를 줘서 업데이트 시키는 전통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비판을 하죠. 똑같아요. 어떤 등급을 주고 했을 때는 비판세력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은 그걸 각오해야 되죠.
최현민 수녀님 : 지금 카이스트에서 스님께서 일종의 수행의 단계를 만들어서 앞으로 어떤 부분들을 진행하신다면 그런 부분들을 수용하실 마음은 있으신지?
미산스님 : 굉장히 고민을 했어요. 왜냐하면 저도 두 가지 마음이거든요. 단계와 차별을 뒀을 때 장점은 접근이 용이하고 분명해서 과학적 접근을 잘 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이 있는 반면에 단점은 굉장히 순수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런 것을 감안하고 가야지 그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단계를 둔다? 사실 요즘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어느 유튜버 수행단체에서는 9단까지 해 가지고 불교, 원불교 총망라해서 합니다. 하기는 해요. 근데 글쎄요. 저는 그런 방법보다는 예를 들어 보면 16단계가 있습니다. 그 단계는 인위적이지 않아요. 어느 경지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그 다음 경지로 이동할 수 있도록 전환될 수 있도록 바탕이 마련돼요. 오히려 그런 것들이 오래가고 퇴색되지 않지 인위적인 단을 만들어 가지고는 금방 퇴색되니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정배 목사님 : 예, 오랜만에 재미있게 배우고 생각거리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개신교를 보면 교인 수는 줄었는데 교회수와 목회자수는 많아졌어요. 도대체 무슨 변고인지 모르겠고 그러다보니 목회자들이 이중직 삼중직 보통 다 바리스타 자격증 가지고 있고요 택배기사도 있고요 밤에 대리운전도 해서 10~20만원 버는 숫자가 많이 있고요 가장 잘 산다고 하는 서울에 있는 어느 교구에 서울인데도 불구하고 60%가 미자립이에요. 이게 개신교 현실입니다.
가톨릭, 원불교, 불교에서는 이런 현실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개신교는 개척교회니까 이런 현실이 나타나고 있지만 중앙적인 교단 큰 틀에서 엮어진 교단에서는 나름대로 형평성있게 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이렇게 되어버렸고 이게 교회 현실이라고 하는 현실에서 뉴노말이라고 하는 게 자기 생존을 위해서 목회자가 존재하고 살아가는 현실이 되어 버렸는데 장단점이 있지만 걱정이 많고요
저는 이제 원불교 교무님들을 여러 부류의 원불교 교무님들을 많이 만난 적이 있지만 운동권의 교무님들도 많이 알고요 예컨대, 소속리를 지키는 결사코 미국에 내어주지 않겠다 라고 기를쓰고 소속리를 지키는 원불교 교무님들도 많이 알고 있고 원불교 익산교당에서 중심위치에 서서 원불교 교무님들을 휘젓는 교무님들도 알고 있고 그리고 원불교 교무님인데 현실과 이상에 다른 것에 대해 절망하고 교단으로부터 일탈해서 새로운 것을 꿈꾸는 분들 등등 여러 교무님들을 알면서 원불교 역시 다른 종교처럼 사실적인 문제를 갖지 않고 있는 원불교를 오늘 교무님이 해주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제가 원불교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갖고있는 생각은 탈종교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까 말씀드린 이 사은사상이라고 하는 것이 탈종교의 핵심이라고 보는데 불교의 연기설에 원불교 사은사상이고 개신교, 천주교의 은총이라고 하는 그 개념에 세속적이자 더 보편적인 풀이가 사은사상이라고 생각해서 사실은 우리가 은총의 존재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은총받은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왜 우리가 더 바랄게 뭐냐 우리의 은총을 남에게 전하고 베푸는 것이면 그게 전부다. 제가 북한에 갔더니 앞으로 통일이 되면 원불교만 왔으면 좋겠답니다. 개신교나 불교 들어오는데 원불교는 사은사상 가지고 들어오는 거에요. 원불교 안에서는 내면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원불교는 우리가 긍정적으로 보면 아까 송신부님 말씀한대로 탈종교의 그런 기본을 어느 종교보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 개벽사상을 겪으면서 있다. 3.1운동 선언 100주년을 겪으면서 개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졌잖아요. 마침 이제 원광대총장인 박민수 교무님이 원불교 교무로서 동학의 공부를 하신 분이기 때문에 아까도 교무님이 말씀하셨지만 창비에 개벽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아주 재밌는 창비의 3분의 1분량이 이걸 논의 하는건데 지금까지 사실은 수구와 개화파만 존재했는데 개벽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사실 개벽이라고 하는 것은 수구의 개념과도 다르고 기독교 중심의 개화의 개념과도 다른 아시아, 동양, 한국 그런 고요한 개념이 있다. 그래도 이제 다시 개벽의 문제를 가지고 동학과 원불교가 앞으로 미래적인 역할이 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 동학은 종교로서의 의미가 사상으로 존재하지만 종교로서의 의미가 쇠퇴했다면 원불교가 개혁의 의미를 정말 더 여실하게 풀어내야할 과제가 있는데 원불교 내부 안에서도 100년의 역사가 흐르다 보니까 제도가 되고 건물 중심의 사고가 되는데 자기 속의 이율배반을 어떻게 극복할 거냐 하는 문제가 그분이 말씀하신대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면 지금 그 고민보다도 북한사람들이 오픈 마인드로 원불교에게 들어오라 한다면 나름대로 원불교가 생활종교로서의 개벽의 문제를 풀어내야 된다.
그게 원불교가 이 땅에 생겨난 의미여야 되지 않겠는가. 역시 다른 종교처럼 그런 고민을 하면서 안착하는 것은 결국 한사람의 깨달은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제도종교가 되는 길이고 원불교 교무님 말씀에 지난 백년동안 늦게 태동된 신흥 종교라는 강박관념 때문에 기성 종교처럼 되려고 하는 노력들을 원불교가 의외로 많이 했다는 거에요.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는 원불교가 그런 고민을 한다면 원불교가 현상과 본질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안할 수 없지만 무게 중심을 두고 뭔가 그런 방향으로 끌고 나가 주는 것이 원불교가 우리사회에 우리 교단에 현실에 큰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개신교, 불교, 가톨릭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거든요. 그래도 역사가 짧기 때문에 뭔가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가장 강한 원불교에게 기대하고 싶은 것은 원불교의 뉴 노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저는 강력하게 있어서 교무님께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 다음 주제가 명상, 마음공부인데 저는 제일 못하는게 그것이여서 그것에 대한 많은 고민도 있고 체계적으로 잘 되질 않아서 어렵고 그 나름대로 해보려고 하지만 가톨릭의 향심기도도 배워보고 동양의 퇴계도 해보고 수심전기라는 말을 갖고 동학대로 따라가 보려고 해도 잘 안되고 그러는데 결국 이제 그런 것들이 AI문제까지 나오고 인간의 역할이 뭐냐는 문제까지 나오지만 지금 그런 문제와 더불어 우리가 또 고민해봐야 할 문제 하나가 기후 붕괴라는 문제거든요. 지금 어떤 면에서 제가 볼 때 기성종교도 우리가 많이 영성이라는 개념도 어떤 면에서는 명상이라고 하는 것들도 긍정적이고 좋은점이 많지만 이 자본주의 문명이 갖고 있는 부수적인 치르기 위한 하나의 그런 방편으로 자꾸 영성이라는 말이 이야기 되어지는 부분들이 있지 않는가. 종교가 영성 영성 강조하면 할수록 종교에 맞는 영성인지 자본주의 문명에 뒤치닥꺼리를 하기 위한 모습인지 고민이 들고 그래서 우리는 개벽이라는 말에 더 강조를 하고, 지구 붕괴라고 하는 측면에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전쟁이 안 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곧바로 대만 해협의 전쟁을 가져올 수도 있고 한반도는 전쟁터가 되어버릴 급변하는 정세 속에 대한민국의 위기도 있고 여러 가지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종교가 정말로 이 자본주의 틀 안에서 생존하는 구조를 가질 것인지 아니면 종교가 이런 자본주의 갖고는 안된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할 것인지 이런 고민이 저는 AI라든가 인공지공이 발전을 하겠죠.
기존 종교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발달이 되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무엇이냐 라는 문제는 거듭 묻게될 것이고 우리가 발전해 나가면서 결국 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그런 것들을 유지 전속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이런 체제가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그런 힘을 모든 종교가 힘을 합쳐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닌 것인지 근본적으로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서 제 판단은 지금까지 생각은 종교가 자본주의에게 먹혀버린 상태다 지금 아무리 좋은걸 말한다 하더라도 종교가 그런 현실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현실을 넘어 설수 있는 종교가 어떻게 말해야 될까 그게 저는 개벽사상이고 생활종교로서의 길을 좀 보여 주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명상, AI인공지능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그러나 끊임없이 우리 종교들 속에 있는 네가티브가 있다.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정신만큼은 이런 세상은 안된다 그런 이야기를 네가티브가 있는데 그런 네가티브들에 대해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되지 않겠는가. 개벽도 그런 의미에서 아주 중요한 네가티브다. 서양의 어떤 종교들이 갖고 잊지 못한 그런 중요한 네가티브를 다시 찾았다면 그 네가티브에 대한 고민들을 정말 하는 것이 더 급선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서 오늘 재밌는 토론을 배우면서 말씀을 드려 봅니다.
최현민 수녀님 : 감사합니다. 박태식 신부님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박태식 신부님 : 한 가지만 질문하자면 원불교가 종교간 대화 위원회를 꾸준히 하면서 원불교 분들이랑 많이 사귀고 이야기도 나눴죠. 그런데 아까도 송 신부님이 이야기하셨나? 아주 순수하고 좋았던 사상들이 교당이 생기고 제도화 되면서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쪽으로 많은 힘을 쏟게 되는 거에요. 종교들이 갖고 있는 오래된 고질적인 문제지요. 그런데 제가 이제 원불교 교무님들이랑 이야기 해보면 그런게 안 느껴지다가 요즘 보면 자꾸 이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시켜 나가야 되는가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요. 그래서 원불교는 좋은데 기성의 그리스도교나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불교나 자꾸 제도화 되는 게 아닌가 라는 우려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교무님이 그것에 대해서 얼마나 제도화 시켜서 유지해 나간다 사람들과 그게 아니다 순수하게 돌아가야 된다 갈등 같은 게 어느 정도인지 옛날에 그리스도교는 종교개혁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현재 교무님이 피부로 느끼기에 어떤게 있는지 그것 좀 이야기를 해주시면 저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공현 교무님 : 예 저는 두 개의 상반된 입장을 경험해 봤어요. 지난해 까지는 행정부에 있으면서 원불교가 정치, 경제 다른 영역과 만날 때 어떤 입장이냐 하다보니까 말씀하신대로 좋은 이야기나 이념적인 것을 이야기해도 설득력이 없이 굉장히 간과되어지고 무시되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말이 서로 소통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원불교가 힘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행정 라인을 들어가 보니까 이게 현실이에요. 많은 부분에 발언권이 없어지고 뒤로 가게 되는 거에요. 우리가 아무리 이상적인 것을 이야길 해도 안되는 것이 있구나 제가 느꼈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고 군 예를 들면 군인들의 자살율이나 문제가 많이 일어나잖아요. 모든 종교가 힘을 합쳐서 이 젊은 친구들의 정신 상태등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실질적으로. 근데 저희는 육군은 허용이 되는데 다른 데는 굉장히 막혀있어요. 어쩌다 지금 노력을 해서 군종이 1명, 이런 식이 되다보니까 아무리 표현을 하고 싶어도 회의에서도 배제되고 많은 부분에 마크가 되는 거에요. 저희가 들어가는 게 사실은 기성종교들이 마크가 너무 심해서 그런 거에요. 이게 현실이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많은 분들의 말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할 수 있게끔 할 것인가 하다보니까 제도를 강화할 수 밖에 없는, 그런데 이제 초기부터 원불교가 젊은 종교로서의 어떤 기동성이나 장점이 있다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 이 시대에 역할을 할 것인가 생각을 하면 저희들은 어떻게 배웠냐면 원불교가 없어지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살자. 저희는 이렇게 출발을 했거든요.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생활 속에서의 종교가 없어도 종교생활이 되어지는 그러한 모습이 구현되게끔 이바지하는 노력들을 해야지 우리가 있기 때문에 되었다. 이런 생각은 우리한테는 아얘 없었던 개념이었던 것 같아요. 늘 이 두 가지가 상충되면서 생활 속에서 늘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부분을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내면에는 품고있고 현실에는 느끼지만 조화를 이루면서 갈수 있을까 원불교도 노력하지만 주위에 종교환경이나 환경도 이런 움직임이 가능할 수 있게끔 서로 배려하면서 협력해주는 구조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박태식 신부님 : 네 감사합니다.
최현민 수녀님 : 저는 아까 사실 이정배 목사님 말씀 들으면서 제가 요즘 논문 하나를 쓰면서 계속 기후 위기에 문제의식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지 여름 내내 고민을 하면서 논문 하나를 모레 발표를 하는데요. 결국 기후위기보다 더 시급한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없는 것 같아요.
우리의 사활이 달려있는 그런 문제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생태문제 갖고서 김승혜 수녀님 때부터 거의 10년 이상을 논의하면서 책도 쓰고 그랬는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우리 삶에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인문학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데에서 저는 한계를 보고 있어요.
왜냐면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이정배 목사님께서 저희들에게 던지신 화두 안에 탈 인간이 있지 않습니까? 탈 인간을 추구한다는 게 삶 속에서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은데요. 저는 인문학적인 사고의 틀을 내려놓고 과학적인 부분으로 접근을 해보고자 하는 시도를 조금씩 하고 있어요.
제가 원래 과학도였는데 30년간 과학과 멀어져 있다가 다시 과학의 세계로 들어가서 과학적인 접근으로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있어요. 자연과학의 팩트들을 들여다보면서 특히 우주 진화론적인 관점이나 생명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제가 다시 성찰케 된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얼마나 긴밀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종교모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될 시점이 왔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인간이 누구인지를 다시 묻는 물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인간이 누구인지를 묻는 물음 앞에서 자연과학을 접하면서 그동안 내가 정말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어요. 깨닫게 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는 계기들이 마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 다루고 있는 탈인간화문제와 관련하여 소태산께서 하신 말씀 안에도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고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라는 인본주의적인 사고가 기본으로 깔려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현대의 어떤 개혁과 개벽을 이루어 나가려면 기본적으로 소태산이 지니고 있었던 사고의 틀을 깨는 데서부터 이루어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개혁, 개벽이라는 오늘날의 또 한 번의 원불교가 개벽사상으로서의 탈바꿈 방향을 짓는다면 인본주의의 사상으로 부터의 탈바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소태산께서 말씀하셨던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라는 그 문제의식으로부터 인간이 삼라만상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한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는 데서부터 사상적인 틀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어요. 그런 부분들에서 교무님께서 과학적인 어떤 그런 부분들이 사상적인 부분들로 접목될 수 있는 계기들이 마련되면 어떨까? 그런 기대와 바램을 가져보면서 제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이공현 교무님 : 말씀하신 인본주의의 내용은 처음에 개벽이라는 내용이 진행될 시기가 조선 말기에서 근대화가 진행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왕권중심이나 모든 사람들이 존중되는 신의 체계에서 인간이 중심이 된다라는 것에 대한 말씀을 하다보니까 저희가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사은, 천지부모동법 법률의 속성에 의해서 진리를 설명을 하는 내용은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천지라는 하늘이 공기며 땅이 바탕이며 풍운으로 까지도 모두가 위대한 영성이 있는 것임을 알아야 된다는 게 원불교는 기본사상이에요. 그런데 인본주의는 시대에서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이 그러한 부분에 존중받아야 된다라는 내용이 강조되었던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최현민 수녀님 : 감사합니다.
송용민 신부님 : 한가지만, 생각이 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도 교무님의 글을 초창기에 초기부분을 읽고 나서 자꾸 떠오르는 생각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원불교의 기본사상 자체가 ‘신’이라고 하는 기독교에 관념에서 이미 정형화된 서구화된 신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히브리인들의 신관이라는 유대사상 에서부터 뿌리를 가진 기독교 문명의 신관이 자연스럽게 서구 중심의 사회 안에서 전 세계 신관을 지배해온 것이고 그리스신화와 연관이 되고 발전해 온 것이긴 하지만 모든 신은 인격화된 신에 대한 출발을 기독교적 문명에서 갖고 있어요. 원불교의 교리를 보면 그러한 인격이 아닌 탈 인격화된 신상에 대한 것들이 느껴져요. 우리가 지금 최근에 설문조사에서 어떤 결과냐면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인격적 신에 대한 믿음과 탈 인격화된 신에 대한 믿음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탈 인격화된 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 하나님이라고 했을 때 그들이 인간과 소통하는 인격적 신이 아니라 신은 존재하고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만 인격화 되지 않은 신,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도 보게된 레자아슬란이라고 하는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을 다시한 그분이 쓴 인간화된 신이라는 책이 있거든요. 요즘 사람들의 흐름자체가 오히려 신을 인격화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인간중심주의가 신의 형상을 인간으로 만들어 놓아서 모든 우주의 중심을 인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명의 뿌리가 되었고 수녀님이나 목사님이 지적하신 기후 생태문제를 생각했을 때 저도 요즘 관심이 신학생들에게 AI시대 강의를 하면서 뇌 과학이나 첨단과학들을 보게 되면서 영상이나 이런 것들을 공부를 하다 보니까 수녀님이 지적하신 인간이 우주 만물의 어떤 원리 안에서 아주 미소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미소한 존재인 인간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중심의 역할이 있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이 인간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 그 우주를 이해하는 촉매 역할로서 인간을 이해 한다면 그것도 인간의 위대함 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 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인간이 우주에 대한 어떤 깊은 신비를 깨달았을 때 그 신비안에 인간이 얼마만큼 겸허해 질 수 있는가 그것을 이해한다면 그러면 지금에 기술 과학이나 자연과학의 발전 문명의 발전사가 결국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탐욕의 역사로 끌어가서 그렇지 이것이 진정 지구화되고 우주화 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면 과학기술이 지금의 생태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있도록 문명 발전 할 수 있다는 거죠. 지금의 과학, 백신개발 이런것도 경제나 이런것들이 심각하니까 지배하게 돼서 1년만에 백신을 만들어 낸 거잖아요. 훨씬더 AI가 빨리 만들어내고 그렇다면 지금 생태계 문제가 이 지구의 생존 위기라면 왜 과학자들이 거기에 온 힘을 보태서 그것을 왜 못 해내겠냐는 거에요.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안하는거에요. 왜? 인간이 가진 자본주의의 탐욕의 논리에 휩쓸리니까. 종교는 그래서 그 탐욕의 논리에 벗어날 수 있는 동력 촉진제가 되서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주는 역할을 해야된다 라고 보는데 그런면에서 과학 기술을 무조건 과학과 종교라는 관점이 무조건 대립이 되는게 아니라 오늘날에는 함께 협업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다라는 것을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원불교의 정신이 그런 면에서는 초기 개벽사상 자체가 오늘날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내는데 큰 동력이 되었다 생각했고 수녀님께 제안을 드린건 다음번 주제는 과학과 종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미산스님 : 예 저도 송신부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면서 사실은 종교가 이제는 과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계속 맥락 속에서 벗어나는 생각, 마음,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으로 갈것 같아요. 달라이마 스님께서 가장 깨어있는 정신 지도자라고 저는 보거든요. 저는 근 십 몇 년전에 저는 그분이 과학자들하고 대담한 불교tv영상 40개를 방학 동안 꼬박 봤어요. 한 달동안. 그리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을 꼭 봐야겠다 생각을 하고 티베트를 가서 두 번 질문을 드렸거든요. 어떻게 불교와 종교와 과학이 대담히 원활하게 20년동안 할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고 어떤 태도로 대화를 하시냐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첫 번째는 우리 삶의 유용한 주제를 택한다. 두 번째 불교의 연기법을 가지고 서로 소통한다. 세 번째 종교나 과학이 갖고 있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존중해서 대화를 통해서 노력하되 그 주제는 조심스럽게 설정한다. 예를 들어서 윤회, 불성이 있냐 없냐 인격적이냐 비인격적이냐 이런 것들은 수 세기동안 풀리지 않거든요. 과학기술이 더 발달하면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저는 굉장히 합리적으로 접근하고 계시구나하고 그 의문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대화를 하면서 풀어가고 있는데요. 지금 송 신부님 말씀하신 대로요 접점이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가 만나서 백신문제가 대표적이고 물론 음모론이 있습니다. 빌게이츠가 미리 예견을 하고 자기 손안에 넣으려고 했다 하는 후문이 있지만 기후문제를 빌게이츠가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책도 이미 내고 그 어마어마한 자본력으로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분 논리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전 인류가 공감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와 포스트 AI를 지금 다루지 않으면 굉장히 힘든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그래서 카이스트에서는 포스트 AI에 관련된 연구가 진행이 되고 있거든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인문학 적인 성찰이 과학자들은 너무 부족해요. 근데 인문학자들은 과학적 성찰이 너무 부족해요. 마인드 자체가 안 되어 있어요. 근데 수녀님께서는 원래 과학자 였잖아요. 근데 그쪽으로 돌아가시니까 인문학적인 것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치우쳤던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균형을 잡고계시구나. 균형 추를 잡고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만나서 정말 서로 균형을 맞춰가면서 탐구하고 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