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이든 교단이든 기존의 체계가 당대 사회의 요청을 더 이상 담아내지 못할 때 불교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고 혁신했습니다. 대승불교 운동과 백장청규 제정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부파불교 아비달마의 ‘有’에 기반한 교학의 한계를 ‘空’으로 대체하였고, 백장청규는 인도문화의 틀에서 제정된 계율을 선종에 적합한 중국적 규범으로 개편하였습니다.
2022년 12월, 지난 3년간 지독한 봉쇄와 통제로 ‘제로코로나’를 강력하게 고수해 왔던 중국조차 ‘위드 코로나’로 방역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사실상 코로나는 팬데믹(pandemic)이 아니라 엔데믹(endemic)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19는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코로나19를 경험한 한국 불교도 자의든 타의든 시대가 요구하는 무언가에 답해야 할 시점에 놓여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제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저마다 훌륭한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불교 전반에 대해 논할 만큼의 통찰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비구니회의 최근 활동이 ‘불교적 뉴노멀’의 작은 시도로 볼 수 있다 생각되어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 현재 전국 비구니회의 감사소임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크게 일선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국 비구니회가 하고 있는 일들을 전반적으로 살펴 보야야 할 소임에 있기 때문에 한번쯤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가장 주목할 만한 활동은 ‘환경운동’입니다. 환경으로서는 푸르니 청정도량 운동, 푸르다 라는 말과 비구니라는 말을 합성시켜 푸르니 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개별 사찰의 환경지킴이 운동을 전국 비구니회 환경운동으로 결속하여 확장했습니다. 기존 환경단체와 업무협약, 연대 활동 강화를 했습니다. 기존 환경연대는 불교환경연대, BTN, 법보신문, 불광 미디어와 업무협약 환경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활동사업으로는 환경운동 실천에 역점, 환경교육, 정보공유 하는 것 등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말씀드리면, 음식쓰레기 줄이기, 음식물 쓰레기 퇴비로 활용 방안을 찾아보자 하는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일회용품 쓰지 않기, 비구니회에서 모임을 하거나 큰 행사를 할 때 마다 재활용하고 실천을 했습니다. 개인 물 컵, 텀블러, 반찬통을 행사를 진행할 때 처음엔 나눠줬습니다. 다음에 오실 때 그릇을 들고 와서 받아 가세요라고 실천해보았고요 종이사용 줄이기는 손수건 사용하기, 회의자료 전자문서로 대체하는 방법을 해보았습니다. 플라스틱 및 비닐 사용 줄이기 장바구니 이용, 천주머니, 종이봉투 활용하기 등을 하고 있고 기후행동 참여하고 후원하기, 기후위기 대응정책 지지하기 그리고 환경인식 변화를 위한 지역사회 캠페인, 지자체장 공약에 저탄소정책이 반영되도록 압력을 넣는 것 , 생태 방생운동 불교가 시행하고 있는 큰 활동 중의 하나가 방생활동인데 실질적인 방생, 버드나무 방생협회해서 나무심기 재두루미 먹이주기 등 겨울철새 먹이 주는 것 이런 다양한 방법들 환경과 연결을 해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방법들을 진행해 왔습니다. 푸르니 청정도량 실천을 여러사람 의견을 수렴해서 만들었습니다. 제목을 말하면 생명환경운동 1회용 No, 빈 그릇운동, 환경운동실천 등등해서 세부 보고로는 생명환경은 서로 관계되어 이루어진 세상임을 자각해야 하겠습니다. 환경운동으로는 바로지금 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 보다는 나부터 시작하고 작은 습관이 가져오는 큰 변화 거기에 따른 불편함을 감수하겠습니다. 그리고 환경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1회용을 거절하는 습관, 비닐 플라스틱을 쓰지 않겠습니다, 빈 그릇운동, 음식물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등 기존에도 해왔지만 빈 그릇을 좀 더 강화시켰습니다. 환경운동 실천을 하는 데 있어서 인내하고 견디며 실천으로 이겨내고자 합니다. 한번 말만 했다가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속적으로 끝까지 가보자해서 푸르니 청정도량 실천을 제정해서 실행하고 그러면서 두 번째로 비구니회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 환경정법사 양성교육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재앙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왔습니다. 기본교육을 실시하고 받은 분들에 한해서 다시 심화교육을 하고 원래는 처음 사업계획을 세울 때부터 이 환경정법사 교육을 전국 비구니회 활동으로써 공지했습니다. 전국 비구니회 스님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지난 상반기 2022년 푸르니 환경정법사 승려교의 인정과정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여기 나오는 인정과정이라 하는 것은 우리 조계종단에서는 여러 가지 승려 연수교육을 진행을 하는데 연수교육에 대한 프로그램을 종단에 올려서 종단에서 승인을 받으면 그 점수로 가산해서 연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환경운동과 관련해서 전국비구니가 이렇게 안을 올렸고 종단에서 인정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방법으로는 비대면과 대면 아직까지도 모여서 강좌를 진행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비대면과 대면을 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일정은 안내문으로 공지를 했고 11주에 거쳐서 -12월은 너무 바쁘니까 제외하고- 9월15일부터 하반기에 한 달에 두 번, 세 번, 네 번 이렇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진행이 되어서 심화과정을 마친 상태입니다. 이렇게 해서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고 그리고 알아야 무언가 할 수 있다 해서 교육과정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사찰이 전국에 흩어져 있으니까 서울에 소재한 비구니 회관으로 교육을 받기 위해서 오기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팀을 구성해서 원하는 지원하는 사찰에 가서 환경교육을 실시를 하자고 해서 전국사찰을 방문하여 푸르니 환경 정법사 교육을 실제로 했고 EM만들기 (Effective Micro-organisms)를 해서 전국방문객들에게 홍보용으로 나눠드립니다. 실제로 자료를 가지고 손수 만드는 것도 보여드리고 환경 콘서트도 개최하고 정말 재미나게 환경운동에 대한 교육을 진행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음식문화 개선운동은 사찰음식 교육과 보급 등 주로 사찰음식이라 하면 OCG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라 보시면 되겠고요, 마을 분들이 사찰음식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홍보함으로 해서 탄소배출 감소에 기여를 하자고 해서 음식문화 개선운동에 활발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우공양 문화 확대, 빈 그릇 운동, 전국 비구니에서는 사용하는 네 개 발우가 너무 번거롭다고 해서 두 개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으로 해서 오시는 분들께 선물도 드리고 이렇게 해서 빈 그릇운동은 발우공양 운동을 진행왔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푸르니 청정도량 실천발원문을 만들어서 전국 비구니 사찰에 홍보하고 나눠 드렸습니다.
그래서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 현재 전국 비구니회 집행부에서는 각자 개별적으로 하던 환경운동을 전국 비구니회 차원에서 모아보자 해서 지금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뉴노멀에 대한 불교적 하나의 아이템이 아닐까 해서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사실 코로나가 이만큼 지나갔는데 뉴노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라고 제안을 드렸을 때는 사실에 입각한 건조하고 담백한 의미에서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야기 해보는 게 어떨까 라고 생각을 하고 뉴노멀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정배 목사님께서 다른 시각으로 제안을 해주셨어요.
이정배 목사님께서는 굉장히 깊게 우리가 종교인으로서 새 시대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았나 해서 저는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불교적인 관점에서 나름대로 생각하고 고민은 하지만 목사님이 제안하시고 고민한 만큼의 깊이로 불교는 고민하지 있지 않는다는 반성도 많았었고 그러면서 전국 비구니회는 무엇을 했을까 살펴보니까 그래도 이 정도로 사소하지만 자랑할 만하지 않을까 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처음부터도 제가 뉴노멀을 이 목사님께서 생각하셨듯이 그렇게 바라보았다면 전혀 새로운 어떤 것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는 개척자적이고 혁신적인 제안하는 의미에서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에 대해서 송구스럽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이것을 기점으로 해서 새롭게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합니다.
비구니 회에서 두 번째로 했던 활동은 난민후원 활동입니다. 코로나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미얀마 사태가 있었고 코로나가 진행되는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도 일어났습니다.
미얀마 사태에 대해 전국 비구니회가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국 비구니 회에 속해있는 사찰에 다문화 활동을 하는 사찰이 있었는데 거기에 미얀마 유학생들이 정말 너무 어렵다 해서 개별사찰 단위로 후원하는 것들을 이제 회장선생님께 사정을 이야기하니까 전국 비구니회 차원에서 한번 해보자 라고 시작된 것이 미얀마 민주화 지원입니다. 미얀마 군부의 만행을 규탄하고 민주화 항쟁 지지기도를 병행했습니다. 지지기도를 1년 넘게 매달 진행을 했고요 그리고 사진에 보면 미얀마 대사관 한남동이었습니다. 저도 같이 참석을 했었는데요 여기서 음악회를 하면서 너무 투쟁적으로 하지 말고 문화적으로 진행을 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고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 민주평화를 기원하는 릴레이 기도협회 전국비구니 회관에서만 하다가 단위가 큰 사찰에 다니면서 진행을 하면서 관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민주항쟁 기원법회를 하고 미얀마와 영어로 된 미얀마 민주항쟁 성명서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미얀마 학생을 위한 장학금 전달식, 후원금 모금을 시작했는데요. 거의 예상했던 두 배 세배이상의 지원금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지원하려고 했던 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지원을 했고요 의약품을 모아서 또 지원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우크라이나 산불도 일어나게 되고 이런 것을 전국 비구니회가 미얀마에 이어서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과 이재민을 후원하자 해서 후원하는 활동도 전개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인도 분황사에 보건소를 건립했습니다. 인도가 굉장히 의료시설이 취약한 지역인데 인도 보드가야에 한국사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분황사라고 하는 이름의 한국사찰을 건립하는 중에 인도에서 보건소 하나 지어줬음 좋겠다 하는 제안이 들어왔고 노력해 보겠다 했는데 전국 비구니 회에 뜻밖의 큰 후원자가 나타나서 전국 비구니회가 보건소를 짓겠다해서 지금 거의 건물이 다 지어졌고 올 겨울 지나고 내년 초에 낙성식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다문화 지원사업과 해외 교류사업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다문화 지원 사업은 국내에 다문화 가정 및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법인으로 결성이 되어서 다문화를 지원하는 것으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일일시호일이 오랫동안 다문화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업무협약을 맺어서 함께 지원 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전국 비구니회가 위치해 있는 곳이 강남구입니다. 우선 강남구 쪽부터 살펴보자 해서 다문화가정 6가구의 생활지원금을 지원을 했습니다. 이걸 필두로 해서 각 지방에 있는 다문화가정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했는데 살펴보니까 굉장히 많더라고요.
우리가 주로 다문화하면 동남아 쪽을 생각하는데 뜻밖에도 몽골에서 온 다문화가 많고 몽골에는 시의원인가 활동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한국말도 굉장히 잘 하십니다. 그래서 다문화를 볼 때 몽골 쪽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다문화가 와있는데 제가 몽골 쪽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전 절에 4~5년도 더 오래전에 보살님으로 모셨던 분이 몽골 사람이었는데 그 남편이 몽골에 공사를 맡아서 가서 신부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아가씨랑 눈이 맞아서 진짜로 연회를 해서 왔는데 남매가 11남매였어요. 그래서 이 몽골댁이 한국에 정착한 이후로 한 사람씩 와서 11명의 형제 가운데 6명이 우리나라에 와 있는 거에요. 그리고 몽골 사람들은 자식 욕심이 있어서 보통 한 가정에 3,4 남매정도 되고 제가 바라보면서 10년 안에 우리나라 인구의 태반이 다문화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문화 가정을 보면서 10년 안에 다문화 가정에서 생겨난 문제가 정말 큰 문제로 자리 잡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 애들이 아버지는 나가서 일을 하고 엄마는 한국말을 잘 못하다 보니까 한국말을 잘 못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애들이 머리가 나쁜 게 아닌데 학교에 가면 말을 잘 못 알아 들으니까 뒤처지고 초등학교에서 그러다 보니까 중학교도 못 따라가고
그래서 이 애들이 한국 사회 언저리에서 비주류로 밖에 남지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70~80%의 다문화 가정들은 한국사회의 큰 문제로 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종교 쪽에서 할 수만 있다면 다문화 문제를 심각하게 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국 비구니 회에서 다문화 사업을 이렇게 진행을 해왔고요
두 번째는 샤카디타 활동입니다. 샤카디타는 석가모니를 인도식으로 발음을 하면 샤카모니이고 ‘석가족’이라는 뜻입니다. 즉,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출가든 재가든 불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임으로, 1987년에 설립이 되었습니다. 설립되게 된 계기는 티벳, 방글라데시, 부탄 쪽에서 활동했던 미국 출신의 비구니 스님과 그 쪽 지역에 비구니 스님들, 여성 불자들의 생활이 너무 비참하다고 해서 이것을 어떻게 좀 개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 상황을 달라이라마께 말씀을 드렸고 후원을 하면서 모임을 결성하게 되어 이제 전 세계적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나갔던 거에요. 그게 이제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실 그럴만한 단계가 아니었는데도 활동을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불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국제화시대 비구니 승가를 위한 좌담회를 2022년 6월 22일 개최되었습니다. 이것은 한마음 선원에서 세계 불자대회 비슷하게 하면서 행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이 샤카디타의 중요한 멤버들을 초청해서 발표를 하시게 했습니다. 한마음선원 발표만 하고 보내드리는 게 너무 아쉬워서 전국 비구니 회에 모셔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함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2023년 6월 23일부터 30일까지 제18차 샤카디타 한국대회를 개최하기로 확정을 했습니다. 주제는 ‘위기의 세상 속에 깨어있기‘ 제가 언제 한번 이 샤카디타대회 1회부터 18차까지 진행되는 주제만 모아서 흐름을 살펴볼까 하는데요 지금 2023년 대회에서는 ’위기의 세상 속에 깨어있기‘ 큰 흐름을 보면 처음에는 여성불자의 위상과 그리고 함께 하는 상징적인 주제였다면 나중에는 환경적으로 넓어지고 점차 세계적인 주제로 폭을 넓혀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불교가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가장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탄에 가서 보았을 때 마음이 아릴 정도로 그 쪽의 일반불자들은 당연히 비구스님들은 존경하고 공양을 해야 된다 생각을 하고, 그쪽에 모든 보시가 그리로 들어가지 비구니 스님들의 사찰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압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 있어서 카스트 제도의 사성 계급에 여성은 그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아요. 물론 왕족은 예외적으로 대우를 받았죠. 함께 딸려서 대우를 받았을 뿐이지 여성 자체로는 사성 계급으로도 안 들어가요. 그런 상황에서 부처님이 남녀평등을 이야기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거죠. 부처님께서 비구니 팔경계를 이야기하면서 출가를 해서 비구니가 되더라도 이러이러한 종목은 지켜가면서 함께 출가승단을 형성하라고 해서 말씀하신 것을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또 최근에 연구 자료에 의하면 팔경계라는 것이 부처님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한 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불교 흐름을 보면 초기 근본 불교가 있고 그 다음에 이어진 것이 부파불교잖아요. 그리고 그다음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대승불교라 할 수 있는데 부파불교 시대라 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는 단일한 부처님 한 분을 중심으로 해서 부파가 나눠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석존께서 돌아가시고 불교가 여러 지역에 나뉘어서 교단을 형성하면서 발전하다가 그게 지역으로 나누어졌건 인물로 나누어 졌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우리가 전통을 내세우고 싶어할 것이잖아요. 그래서 부파별로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났어요. 그때 불교 교리가 90%가 완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죠.
이런 장점이 있는 반면에 교리가 전문화되다 보니까 일반과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사용하던 말도 전문용어가 되고 연구를 하다보니까 일반 신도가 접촉하는 것보다는 함께하는 성문 중심으로 불교가 옮겨가게 된 거에요.
그러다보니까 부처님 때로 돌아가자 라고 운동이 일어난 것이 대승불교운동입니다. 대승불교 때는 부파불교를 굉장히 공격적이고 적대시 했어요. 그래서 부파불교를 또 다른 이름으로 표기할 때는 그러한 특색이 있기 때문에 아비달마 불교라고 하거든요.
부처님 교리에 관한 연구를 활발하게 하고 제가 보기에는 장단점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대승불교가 그렇게 되면서 처음엔 대중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교학적인 바탕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부파불교의 교학적인 것을 고스란히 갖고 온 거에요. 그러면서 색깔만 다르게 하고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거에요. 그래서 대승불교부터 시작하면 교학적인 체계가 허공에 떠 버린 거에요. 지금도 대승불교를 뛰어넘어서 또 다른 쪽으로 옮겨가야 되겠죠. 대승불교가 보여주는 효과가 능력이 한계점을 도달했으니까 이제 다시 어떤 식으로 돌아가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정배 목사님 : 끝에 말씀하신 게 제가 생각하는 바로 불교의 뉴노멀 입니다.
미산스님 : 조금 더 보충을 해드리면 초기불교는 붓다의 음성이 그대로 내재되 있는 것이라면 가장 잘 보존해 왔다고 자기들이 주장하는 게 상좌부불교에요. 지금도 살아있죠. 그 다음에 다양한 부파불교 아비달마가 생명이에요. 그런데 이게 극대화 되니까대승쪽에서 야, 너희가 있다고 하는, 그거 공이야. 그러면서 공에 집착하면서 다시 유(有)로 돌아가는데 옛날에 부파불교 시대에 유가 아니라 대승불교 입장에서 마음을 중심으로 해서 유를 강조하는 수행을 강조하는 중관, 유식이 틀을 갖춘 상태에서 선불교가 중국에서 확 퍼지는 거에요.
그래서 사실은 지금도 동북아시아 쪽에서 초기불교를 기반으로 하고 중관 유식을 뛰어 넘을 수가 없어요. 그때 사상적 배경은 한국에서 가장 정통하게 썼던 분이 두 분이에요. 원효와 의상이에요. 6세기 7세기잖아요. 지금도 그때의 학문적 세계를 아직도 못 뛰어 넘었어요. 이에 의해서 뉴노멀을 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요.
심원스님 : 관점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불교의 기본적인 어떤 크게 말하면 물리적인 부분과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대승불교라 해서 다른 것이 아니라 그대로 가져왔던 거죠. 그리고 아비달마 불교에 있어서 부파마다 조금씩 특성은 다르지만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무엇이냐 하면 수행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극복하고 어떻게 해야 중생에서 부처가 될 수 있는 길로 갈 수가 있을까를 굉장히 첨예하게
본 것입니다.
미산스님이 연구하셨던 부분도 그렇고 제가 바라봤던 것도 그렇고 너무 세밀하게 연구를 했어요. 지금 현재 심리학도, 부파불교 시대의 연구를 따라가지 못해요.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마음을 부파불교에서는 단위로 나누는 거에요.
예를 들면 화내는 마음 가운데서도 시기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그리고 기뻐하는 마음 가운데에서도 어떤 마음 어떤 마음 해서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든 추상적인 추론적인 마음이든 간에 마음을 굉장히 세분하게 나누어 놓고 그것이 다 각각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각각의 단위로서 나누어진 마음의 요소들이 무엇과 무엇이 결합했을 때 다른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고....이처럼 머리가 지끈지끈할 정도로 나누어 놓은 것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보면 현재 심리학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감정의 분류보다 열배 정도 더 세밀해요. 그리고 이 감정이 일어나려면 어떤 감정이 도와줘야 된다. 그리고 나쁜 마음이 일어날 때는 나쁜 마음의 모든 것에는 근본이 있다. 모든 나쁜 마음의 가운데는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이 존재한다. 모든 악한 마음의 바탕에는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 마음 바탕위에 모든 나쁜 마음이 일어난다 이런 거에요.
그 다음은 비구니 승가공동체 수행결사인데요 불교의 출발점이 수행에 있다는 것을 항상 자각하고 모든 대외 활동은 기본적으로 부처님 가르침과 승가공동체 정신에 토대를 두어야 하며, 자기 수행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항상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이에 전국 비구니회는 매월 두 차례 정기적으로 수행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취지와 목적은 승가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여 출가 본분에 충실하고 수행을 생활화, 미래 한국 비구니 승단의 모습 정립 하는데 있습니다. 수행결사 진행 내용은 포살 비구니 계본 합송, 참선, 명상, 초청법사 스님 법문 등 입니다.
비대면 소통 확대는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자 전국 비구니 회는 거의 모든 회의를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교육과 법회 프로그램을 zoom과 유튜브를 통해 진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정착된 비대면 소통방식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현재에도 많은 부분에서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2019년 출범한 제12대 대한불교조계종 전국 비구니 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사회적으로 대면활동이 여의치 않은 환경에서 오히려 내실을 기하며 불교가 지향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그중에서, 필자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몇 가지 활동을 소개하였습니다. 이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것은 ‘모두가 연결된 존재’라는 것에 기반한 ‘연대’라 할 수 있습니다. 기후환경, 전쟁난민, 여성문제 등은 모두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할 때 개선되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게다가 이런 문제는 뒤로 미룰 수 있는 한가한 문제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의 급박한 현안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전국비구니회의 활동이 불교의 뉴노멀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토론>
최현민 수녀님 : 네 스님, 감사드립니다. 불교 전체는 아니지만 스님이 소속되어있는 전국 비구니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불교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신 것 같아서 반갑고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스님께서 발제하신 것과 관련된 것 아니면 불교전체, 다양한 측면에서 같이 나누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이정배 목사님 : 잘 들었습니다. 스님 말씀하신대로 행사 위주의 이야기는 벌써 저희는 수십 년 전부터 해 왔던 것이고 다문화 돌보는 일들 가운데에서는 같이 살면서 대변하는 목회자들이 수도 없이 많고 지금 이제 사실은 기독교가 해외선교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해외 선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들어와 있는 이 다문화 가정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 문제가 더 중요하고 그래서 저희로서는 2~30년 전부터 굉장히 활발하게 왔던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뉴노멀이라고 하는 것이 솔직히 저에게는 실감나는 표현은 아니고요.
패러다임도 큰 패러다임 작은 패러다임이 달라질 때 어떤 새로운 신학이 나오는가 하는 그런 이야기 지금도 불교이야기 들으면서 시대가 달라지면서 똑같이 패러다임이 달라졌고 불교의 새로운 형태가 나타났다고 하는 게 인정이 되면서 우리가 이제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가 지났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의 공헌 중의 하나는 현실 속에서 실현되지 못한 이념은 공허하다는 거죠. 근데 우리 종교가 갖고 있는 이념들을 현실 속에 서 실현 시켰느냐 라는 물음도 이 포스트 모더니즘 사조와 함께 또 물어보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 불교가 그 좋은 것 다 갖고 있더라도 현실 속에서 그 이념을 실현시키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는 근본적으로 뭘 더 물어야 할까라는 그래서 기독교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 어머니라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도 다르게 상상하고 있습니다.
뉴노멀은 구원에 대한 이해도 우리가 종교별로 구원을 받아야 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신학에서는 요한계시록이 중요하게 되요. 대 파국에 메시지가 풍속 끝자락에 있다라고 하는 것은 그 빛에서 우리는 파국으로 나가기 위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그런 묵시적 종말에 대한 이해들을 우리는 다시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신학도 굉장히 달라진 신학도 막 나오고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도 어떤 프로그램 차원이 아닌 어떤 불교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사실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새롭게 변화시키고 새로운 뜻으로 불교를 표현하고 있고 이렇게 하고 있는지 사실 저는 그런 노력들이 궁금하고 그래서 ..
심원스님 : 처음에 목사님 이야기 하신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했는데 제 능력으로 할수 있는 게 한계가 있어서 저는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이제 새로운 도약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가 초기불교 아비달마 대승불교로 넘어가고 또 이제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불자로서 이 불교를 어떤 중심을 가지고 어떻게 다시 일관되게 어떤 가르침으로서 내놓아야 할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봐야 되지 않을까.
근데 중국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인도로부터 전해온 여러 가지 불교가 중국에 혼재되어 있을 때 정리를 해보자 라고 나온 것이 중국에서 시작된 교판이거든요. 교판이 중국 중심의 교판이 아니라 제가 생각 할 때는 지금 현재 이렇게 불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내세워지고 이런 것들을 총괄해서 관통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체계를 세워가면서 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고민은 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답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미산스님의 경우에는 과학을 활용해서 더군다나 명상과학을 활용해서 불교의 실천과 수행을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 굉장히 노력하고 계시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고요 아마 조금 고민이 깊어지면 미산스님께서 좀 이런 대안을 제시해 주시지 않을까 싶고 그 대안을 토대로 해서 논의가 진행될 것 같습니다.
미산스님 : 목사님 발표 듣고 굉장히 본질적이고 진짜 어떤 종교인이던지 좀 더 혁신적으로 과감하게 그쪽 방향을 지향해야 된다고 공감을 했고요 현재 스님께서 소박하게 그리고 또 불교가 너무 한국불교는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 표류하고 있다고 보여지거든요. 그래서 스님 말씀 하신대로 어떤 사상적인 어떤 재정립 이런 것들이 선별되고 거기에 따른 실천적인 실제 실천이 다시 정리가 되어야 되는데 저도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어차피 과학시대가 5백년 밖에 안 되고 앞으로 과학시대는 꽤 오랫동안 지속이 될 건데 최근에 정신과 의사선생님들 하고 한국 심리치료학 주제를 붓다의 인지혁명 정신과 의사가 본 인지능력과 현장에서의 적용 이런 주제로 정신과 의사선생님 세 분이 아비달마를 공부해서 그분들 언어로 발표를 했는데 굉장히 신선했어요.
불교 안에 젖어있는 분들은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가 없잖아요. 언어에 갇혀 있고, 그런데 이분들은 밖에서 보고 굉장히 정신 부분에 있어서는 촘촘하거든요. 매우 감명을 받은거에요. 그것을 뇌 신경과학 쪽에서 비추어 지니까 새로운 내용이 나오는거에요. 물론 우리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과감하죠.
비판을 받더라도 논의를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시도를 여기저기서 했고 또 물리학 교수인데요. 현남규 선생님이라고 이분은 불교하고 정신하고 연결을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그분이 제 논문을 갖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보내드렸거든요.
그걸 보고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어떤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어떤 속도로 변해 가는지가 제 논문의 주제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뭘 만들어 낸 게 아니라 옛날 문헌에 그게 다 나와 있어요. 그것을 자기가 보고 물리학적으로 정신현상과 물질현상의 관계를 물리학적으로 해명 할 수 있겠다. 꽤 여러 논문을 쓰셨더라고요. 최근에 대전에 오셨어요. 그래서 앞으로 계속 연구하시죠 귤 농사만 짓지 마시고요. 퇴임도 했으니까 했더니 스님께서 저에게 1조 정도 주시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하시네요.
이공현 교무님 : 개인적으로 역사의 흐름이나 민주주의가 정착해 가는 많은 지역에 우리가 바라봤을 때 에는 겪지 않아도 될 역사의 민주주의의 과정을 비슷하게 경험하면서 오는데 그것을 바라볼 때 오늘 설명을 초기불교에서 부파불교를 뛰어넘는 대승불교의 제안 이런 시기마다 오면서 과연 이러한 단계적으로 진화 되어야만 이런 게 되는건가 개인적으로 인류역사를 보면서 고민이 되게 많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위하면 그 과정을 안 겪어도 될 텐데 학살과정이나 군부정권이나 하는걸 보면 거의 비슷한 과정을 겪고 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어 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꼭 그런 경험을 해야만 인류가 인권에 대한 소중함이 깨어나는 것일까 늘 혼자 그런 고민이 들었어요.
송용민 신부님 : 저도 요즘 고민인데 <인간 본성>이란 법칙이 있어요. 두꺼운 책이요. 인간의 본성에 법칙이 있대요. 그 단계를 결코 넘어서지 않는데요 그러니까 우리는 현자들, 성인들 이런 사람들은 그걸 깨달아서 성인이란 말을 쓰지만 그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본성의 요소가 있나봐요. 아파야지 성장하고 깨져야지 일어나고 그냥 그것을 넘어서기에는 호모사피엔스 종 자체가 존재론적으로....
심원스님 : 아까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여기에 소개된 것은 전국 비구니회 차원에서 이제 전체적인 차원에서 다문화에 대한 이야기 였었고 제가 구미에 거주하면서 구미 지역의 다문화 활동을 하는 스님들의 이야기 말씀을 드리면 구미는 경상북도의 도시긴 하지만 주변의 농경지가 많다 보니까 다문화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와요.
그래서 다문화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비구니스님이 보현의 집이라고 해서 운영을 하시는데 거기에는 주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입을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해 주시는 그런 공간이고 또 하나는 비구니스님이 운영하는 쉼터가 있어요. 그 쉼터는 이야기 들어보면 너무너무 딱해요.
스무살 짜리 베트남 여성이 애기를 안고 피신을 왔는데 남편은 60대,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왔기 때문에 출입부터 몇 단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구미지역에 있으면서 우연하게 방문하게 되어서 비구니스님이 운영하는 그 공간에 갔는데 너무너무 딱한 거에요. 그런데 비구니스님의 이야기가 상대방의 이야기도 들어보면 너무 딱하다 예를 들면 60대 남편의 노모는 20대 며느리가 다시 가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자기들끼리 소통을 해서 1년쯤 지나서 가버리니까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너무너무 억울할 수도 있겠다 했어요. 이런 관계가 유지되는 한 이 문제는 끊임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다문화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이 너무너무 딱하고 다 공감이 간다는 거에요.
이공현 교무님 : 비구니 협회 뉴노멀 활동을 들을 때 제 입장에 생각할 때 저희는 저희 조직 안에서 여성들을 위한 뭔가를 만든다는 게 오히려 여성들을 현재 조직에서 더 비하시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저희는 그게 오히려 공격받아요. 지금 태어난 아이들 MZ세대나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 한테는 이런 인권이나 불성이나 하느님의 섭리나 이런 게 아이들에겐 모두가 똑같은 거에요. 문제가 되지 않는, 우리 어른들이 볼 때 안타깝잖아요 80대 어른들이랑 강조하고 하는 것을 보면 왜 저렇게 삶을 힘들게 살까 하는 것처럼 그 아이들이 만드는 세상은 우리들이 고민하는 차별적 세계하고는 다르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드네요.
심원 스님 : 제가 언어의 샹카디타를 하면서 논문들이 영어로 들어오면 우리 한국에서 참여를 할 때는 한국말로 번역을 해요. 그때 마침 한국 샤카디타를 책임지고 있던 중간 역할을 하는 사람이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를 한 사람인데 엉겁결에 세 편의 논문을 보내줬는데 그중에 기억나는 것이 부탄인가 방글라데시인가 그쪽에서 들어 온것인데 항간에 퍼져있는 이야기가 여자의 몸으로 성불하지 못 한다 남자 되기를 소망한다 라는 이런 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한 논문이었는데 논문을 쓰다보니까 굉장히 공감이 가는거에요. 법화경에는 여자의 몸으로 바로 성불 한다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여자의 몸은 여자가 성불하지 못한다 하기에는 그렇고 어정쩡하게 여자가 남자가 되어서 성불한다 그 중간단계. 그래서 이제 법화경 뿐만 아니라 약사경에도 다섯 번째인가 그게 나오는 거에요.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서 너무나 여러 가지 조건에 대해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내 이름을 들면 그 자리에서 남자가 될 것이다. 다 절충과정을 두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강의를 하면서 보살님들이 해줘야 되는데 그래도 연세가 50-60대는 이해가 가는데 새로운 시대는 그러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 시대를 가지고 경전을 봐야된다. 부처님께서 굉장히 보편적인 말씀을 하셨지만 그 시대가 있는 사회자체가 불평등한 시대였을 땐 그때 사람들이 원하는 어떤 것들을 경전에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겠나 그 시대 눈으로 봐야 된다. 이렇게 전제를 달고 설명을 하는데도 그런 거에요...(생략)
최현민 수녀님 : 부처님 시대로 되돌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제가 오늘 문제재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사찰의 현대 불교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논문화 되어있는 것이 없는가 찾다가 정평불교 포럼이라고 거기서 나온 논문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 사찰 재정의 문제성과 공동체성 회복 방안이라는 주제를 갖고 논문을 제가 읽었거든요. 굉장히 공감이 되었고 여기에 나왔던 게 뭐냐면 사찰 재정의 불투명성, 이것이 현재 불교의 문제의 근원이라고 봐요. 근데 이 논문을 읽다 보니까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지를 조목조목 불투명성을 자세하게 썼더라고요.
미산 스님 : 문제는 너무 잘 알고 있고 정답은 나와 있어요. 진짜 바로잡으려면 재정부터 개혁해야 하지요. 통합제정을 해서 하나로 다 모아서 다시 재 분배 해야 한다는 시스템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잘 알지요.
심원 스님 : 스님 말씀에 대해서 조금 더 덧붙이면 천주교나 원불교나 불교의 제정구조 자체가 달라요.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면 불교는 공사찰이라고 하는 부분과 사 사찰이라는 게 있어요. 공 사찰은 전통대대로 내려오는 이 부분 제정 자체가 스님 말씀하신대로 중앙의 차원에서 운영이 가능하나 힘이 미칠 수 있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개별사찰은 이제 제가 여기에 뜻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스님, 우리 사찰하나 건립하면 어떨까요 하다보니까 스님이 중심이 되고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서 중앙의 영향력과 상관없이 만들어진 사항들이 사설사안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통합이 되려면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가 되는 거에요. 사회주의는 분배를 중심으로 하다보니까 개인의 노력이나 개인의 의지가 희석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공사찰도 마찬가지인 거에요. 사설 사안은 유지를 해야 하니까 더 노력을 해야되고 그런 노력자체를 이제 재정 투명화를 이유로 다 함께 뒤섞어 나누자 그러면 그게 안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러한 부분에서 지혜가 필요하고 불교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중앙에서 총괄할 수 있는 이런 공사찰을 천주교나 원불교처럼 완전히 직접적으로 총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거에요. 그래서 개별단위로 해인사나 통도사나 본사중심으로 해서 사찰이 운영이 된 거에요. 그러다보니까 경상도 쪽은 재정이 풍부하고 전라도 쪽은 가난하고 그러니까 세금형식으로 분담금으로 분배를 하긴 하는데도 한계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최대한으로 분담금을 거두어서 이쪽으로 나누어 줘야하는데 이미 기득권이 있는 사찰에서는 거기에 반발이 나오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재정립 하려면 너무나 힘이든 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계속 문제재기가 나오고 조금씩 조금씩 해 나가는데 이전보다 많이 투명화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런 부분이 있고 원불교나 천주교에 비교할 수가 없는거에요.
최현민 수녀님 : 재산의 일부를 사유하려는 분이 만약에 있다면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노후대책이 천주교처럼 수도회는 노후대책이 다 되어있거든요. 죽을 때 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니까요. 사실 불교는 그런 부분에서 많이 부족한 면이 있네요.
심원스님 : 공사찰 주지를 하면서 노후가 걱정이 되니까 공사찰로 들어온 모든 재정을 다시 사찰단위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 문제가 되고 해서 계속적으로 승려복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지금은 굉장히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졌고요 처음부터 원불교나 천주교처럼 일단 출가한 사람들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있었으면 내가 사찰을 잘 운영해도 개별로 하기 보다는 종단노릇을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있을텐데 지금도 스님들 생각에는 내가 아프면 내가 해결해야지 종단이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는 어느 시점이 되면 어느 정도 까지는 좀 되지 않을까 싶고 그리고 끊임없이 스님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데 그 교육이 제가 생각할 때는 굉장히 소홀해요. 그래서 아까 비구니 회 수행결사 이야기를 했는데 스님들이 갖고 있는 의식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재정 투명화나 아니면 전체를 위해서 내 개인의 불편을 감수하거나 이런 쪽으로 의식이 정립되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보여주고 있는 가장 천박하고 이런 모습을 불교가 그대로 드러낼 거에요.
송용민 신부님 : 가톨릭교회가 그래도 그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투명하고 자유롭고 그래요. 다른 종교에서는 내가 성직을 받으면서 숙명서약을 안해요. 사제들은 독신서약하고 숙명서약을 해요. 철저한 숙명이 우리를 철저하게 자유롭게 만든다고 해요.
심원스님 : 가톨릭은 그런 것이 있다면 불교는 불교가 갖고 있는 어떤 걸 통해서 의식교육이 되어야하는데 너무 풀어진 것이에요.
송용민 신부님 : 자발적 의식이 당연히 밑에 깔려 있어야 하는데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힘이 있는 거에요. 종교인은 섬기고 다 그런 정신이 있죠. 그런데 그것을 제도적으로 일탈이 없는 거에요. 재정이나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도 그런 고민들이 원천 차단이 되어있는 거에요.
개개 본당에서 신부로서 주임 신부로서 할 수 있는 권한이 워낙 막강하니까 재정운영을 투명하지 않게 해서 문제가 있긴 했지만 지금은 전산화되고 완벽하게 투명화 되었어요. 오늘 불교의 뉴노멀이니까 불교가 뉴노멀로 생각해야 될 지향점들이 있겠네요. 가톨릭교회들도 마찬가지거든요 수도자들의 목소리도 크고 지금이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현대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비전으로 뉴노멀 아닌 뉴노멀 단어를 이야기한 게 시노다리따스 라는 단어를 꺼내셨는데 시노란 함께 걷다라는 뜻이에요. ‘함께 걸어가다’. 그것을 초기교회부터 저희도 제자 공동체가 함께 서로 공동협의와 식별과 경청과 이런 소통 구조를 이루어진 초기 교회의 모델을 21세기에 새로운 시대에 다시 구현해야 된다는 당신의 소신이 있는거에요.
그래서 가톨릭 교회도 이야기 하셨던 것처럼 초기 예수님의 정신이 바오로 사도와 로마 국교화 되면서 굉장히 형식화 되고 그리스 철학화 되고 중세 봉건화 되고 그러면서 타락하고 세속과 종교가 결탁한 때도 있었습니다.
본래 그리스도인 정신이 와해 되니까 철저히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 이들이 사막에 가서 은수생활을 하면서 수도적 정신으로 살고자 했는데 결국 세월이 흐르면서 수도원도 부패되고 귀족들의 어떤 자녀 조기교육 장소로 활용되고 그런 여러 문제점들이 많고 성직 매매까지도 일어났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 가톨릭교회 내부에서도 수도회 개혁운동이 일어났고 조직 차원에서는 종교개혁가들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된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라고 하며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처럼 대승불교가 일어나는 과정이나 종교개혁을 통해서 개신교가 형식화되고 세속화된 가톨릭의 문제를 개혁하겠다고 나온 게 개신교 정신이 되었고 가톨릭은 내부적으로 개혁을 하고 개신교는 또 엄청나게 많은 분파들이 생기면서 그러한 여러 과정들이 종교에선 비슷한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MZ 세대들이나 젊은세대 들에게 종교? 특히 한국 사람들에겐 교리적 쟁점이 별로 중요하지가 않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착하게 살고 샤머니즘적인 것을 수용해 낼수 있는 종교는 다 오케이에요. 그래서 희한하게도 부부끼리도, 가족끼리도 서로 종교가 달라도 분쟁이 안 생겨요.
심지어 저도 본당에 있으니까 결혼 혼인에 대한 면담을 하게 되는데 천주교는 교회법이 있어서 천주교 신자는 천주교 신자하고 혼인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그게 잘 안되잖아요. 불가능하니까 신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하고 혼인 할 때는 어떤 절차를 거치냐면 혼인 면담을 할 때 천주교 신자의 종교의 신앙을 상대 배우자가 지켜줄 수 있느냐를 확인하는 과정이에요. 당신이 정말 사랑하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종교적 신념을 지켜줄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그럴 때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거에요. 심지어는 열심한 가톨릭 신자인 경우 상대자가 비신자일 때 “우리 집에서는 신자가 아니면 결혼 허락 안해”라고 하면 거의 100%는 세례 받겠다고 해요.
미산스님 : 진짜 공감하는데요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는 알파로 내려가면 이들은 유전인자가 달라요. 모든 것이 디지털화가 되어있어요. 특히 동서양의 구분이 없어요. 태어나자마자 서구문화가 일반화가 되어있어요.
디지털, TV, 먹는 음식 등 전부다 서구화가 된 거에요. 우리가 컸을 때 개념 자체가 정말 이상한 거에요. 어떤 학생이 동서양의 구분이 있는 거에요? 하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동양종교 서양종교 구분이 없더라고요. 초등학생들은 지금 현실 공간보다도 가상공간이 훨씬 자유로운 거에요.
송용민 신부님 : 종교는 어떤 특정한 큰 이슈를 종교적인 트렌드가 바뀌지 않는 한 결국은 이 가족적인 유전이에요. 부모님이 열심히 해서 가정에서부터 어릴 적에 종교적 체험을 해 놓으면 그 아이들은 삶의 일부에요 성당에도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그게 재미있어서 나가는 것이고 교리가 재미있어서 나가고 그러는 게 아니고 자기 삶의 공간이 되는 거에요. 성당도 아파트단지가 있고 잘 되는 곳은 아이들이 8~90명이 나와요. 굉장히 잘 되는거에요. 근데 대부분 본당 주변에 있는 곳은 20명, 열 댓명 정도입니다.
이공현 교무님 : 우리들의 마인드가 굉장히 old한 것이고 이것을 어떻게 계속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송용민 신부님 : 불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가톨릭교회나 그리스도교 문명에서는 뇌과학적 연구가 계속 과학에 부딪히는데 이게 물질환원주의하고 부딪히는거에요. 불교는 그런 것에서는 자유로운데 우리는 유신론적 개시종교체계라 무신론이나 물질 환원, 유물론적인 사유는 교회를 받아들이기 어렵지요.
그런데 과학의 세계는 전부 유물론이거든요. 인간의 생각도 다 물질에 대한 작용이라고 푸는 게 뇌과학의 결과들이다 보니까 그런 공부를 하면서 그럼, 자아는 있는가? 지금 교회 내에서도 논쟁이 있는게 모든 것들이 뇌의 네트워크의 신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