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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다녀와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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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10-10-2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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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세미나를 마치면서...
                                                                                          최현민                                             
   
2009 새해를 여는 첫날, KAL에 몸을 싣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탑승객 정원이 약 300명정도 되는 비행기였지만, 그 날 탑승객은 겨우 50명 정도였고 한국인은 민아수녀님과 나뿐이었다. 아마 이스라엘을 성지순례객 대부분은  가자지구의 전쟁 상황 때문에 여행을 취소한 듯 싶었다. 가지지구의 분쟁의 현실을 실감하면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11시간의 여행 끝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를 초대해주신 젬마수녀님께서 마중 나오셔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수녀님께서는 우리가 전체총회에서 만든 선언문에 나오는 '세계시민'으로서 우리가 함께 이 곳에서 지내게 됨을 기뻐하셨다.

  우리는 젬마수녀님께서 생활하시는 요셉수녀원에서 머물렀고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오신 다른 분들은 수녀원에서 걸어서 30여분 정도 떨어진 프리마 킹 호텔에 머물고 계셨다. 우리는 매일 아침  7시20분에 수녀원을 출발해서 30분 정도 걸어서 호텔로 가고 거기서 일행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야드바셈연구소로 가면서 우리의 일과는 시작되었다.

세미나 시작 전날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는데 그 때 참석자 모두 각자 자기소개와 함께 세미나에 오게 된 이유와 세미나에 거는 기대나 목적 등에 대해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세미나에 오신 분은 30여분 정도였는데 대부분이 교육자들(고등학교 교사이거나 대학교수들)이셨고 교육위원회나 카운슬러나 교육자를 양성하시는 분들도 몇 분 계셨다. 대부분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그리고 동유럽에서 온 분들이었고, 동양인은 민아수녀님과 저 그리고 히로시마 홀로코스트 연구소에서 오신 일본인 한 분이 있었다.

1. 홀로코스트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강의 주제는 주로 홀로코스트와 관련하여 세계역사 안에서 형성되어온 반유대주의(Antisemitism)에 대한 것이었는데 고대 중세 현대의 시대별로 그리고 역사, 정치사회, 철학, 문학, 교육학별로 이루어졌다. 강사는 주로 히브리대학과 텔아비브대학의 교수님들과 야드바셈 연구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강의뿐 아니라 사진과 영화 다큐멘터리 예술작품, 문학의 각 분야별로 상세하게 설명하셨다. 그리고 연구소 내의 역사박물관, 예술박물관과 리플렉션 센터(reflection center), 시청각실 등을 통해서도 교육이 진행되었다. 특히 리플렉션 센터에서는 10여개의 주어진 질문들에 대한 각계각층의 인사들의 견해를 DVD로 녹화해서 시청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 중 어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신앙은 사람들의 심리적 요구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믿음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신앙을 지니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주의, 시온주의나 공산주의 등 여러 형태의 신앙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는 단지 신앙만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앙을 포기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미나 중 게토(유럽에서 추방된 유다인들이 모여 살던 지역)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살다가 수용소에 갔던 한나, 루마니아와 헝가리에 살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간 루트, 엘리저, 엘리쉐바, 야파와 제브의 증언이 그것이다. 모두 지금은 70세가 훌쩍 넘으신 그분들은 당시 13세에서 16세의 청소년이셨다. 엘리저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부모와 헤어지면서 어머니가 건네준 흰컵 (그 안에 꿀이 있었다고 한다)을 갖고 나왔다.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너는 꼭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씀이셨다고 한다. 그 말씀을 기억하며 어려웠던 수용소 생활을 견디어 내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간절함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생사의 찰나를 건넌 야파의 증언은 간담을 써늘하게 하기도 했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수용소에 간 후 하루는 단체로 목욕탕에 넣은 후 문이 잠기고 불이 꺼져 소리를 치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밖에서 '물이 없다!'는 독일군인의 고함이 들렸고 잠시후 문이 열렸다고 한다. 그 후에 안 사실은 그 곳은 목욕탕이 아니라 가스실이었고, 고갈된 것은 물이 아니라 '가스'였다.

독일인들은 유다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소유물만이 아니라 이름과 인격마저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번호뿐이었다. 게토에서 생존한 예술가들의 작품 중에는 초상화가 유독히 많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림을 그릴 도구조차 구할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그들이 초상화를 많이 그린 이유는 이름도, 인격도 모두 빼앗긴 그들에게 이름을, 인격을 회복시켜 주고자 함에서 였다고 한다.

텔아비브에 있는 디아스포라 박물관에는 2차대전 이후 현 이스라엘이 세우기까지 전세계에 흩어져 살던 2000년의 디아스포라 유다인 역사를 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다음 글이 적혀 있었다.
“이것은 모든 세계에 퍼져 정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직 하나의 가족으로 하나의 국가로 남아있다. 그들은 파괴 속에서도 새로운 삶을 건설했다.

(Alba Kovner)" 박물관에 전시된 디아스포라에서의 유다인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들이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앙의 힘임을 느낄 수 있었다. 유일신에 대한 신앙은 예루살렘의 두 번째 성전이 파괴된 후 유다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음을......
디아스포라박물관 안에는 “유다인들이 나치에 의해 고난당했을 때 교회는 침묵했습니다”라는 글귀도 적혀 있었다. 얼마전 평화신문(2009.2.8)에 유다인 600만 학살을 부정한 주교를 교황청에서 사면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비록 한 주교의 발언이지만 교회를 대표하는 주교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침묵의 정도를 넘어 부인하는 오류가 자행되는 현실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2. 유다인들의 신앙과 풍습을 접하면서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유다인들의 역사와 더불어 이스라엘 현지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유다인들의 안식일 풍습이었다. 금요일 해지기 1시간 전이 되자 안식일을 알리는 싸일렌이 울렸다. 그때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해진 후 1시간까지가 안식일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광경은 택시 이외에는 거리에 거의 차가 다니지 않고 인적도 뜸하다는 사실이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유다인들은 안식일 준비를 하고 함께 저녁에 시나고그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우리도 세미나 기간중 안식일 전례에 참석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대시나고그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가 갔던 시나고그는 정통유다교에 속한 것으로 남녀석이 구분되어 남자는 일층에, 여자는 이층에서 전례에 참석하게 되어 있었다.

시나고그 중앙에 전례를 주도하는 분이 서 계셨고 양쪽으로 남성합창대가 있었는데 구약의 토라로 구성된 기도문을 노래하는 그들의 화음이 무척 아름다웠다.  젬마수녀님의 설명에 의하면 유다교는 정통유다교와 보수유다교와 개혁유다교로 구분되는데 개혁유다교의 시나고그의 전례는 정통시나고그와 상당히 다르다고 하셨다. 젬마수녀님을 따라 개혁유다교의 시나고그도 갈 기회가 있었는데 전례나 모든 면에 정통유다교와 차이가 있었고 분위기도 상당히 달랐다.

개혁유다교는 여자도 랍비가 될 수 있는데 그날 기도를 주도한 랍비도 여자분이셨다. 신도들은 제대 위에 올라가서 토라를 돌아가면서 낭송하기도 했다. 2시간 정도 되는 예배동안 토라의 중요한 부분을 함께 노래하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아, 이렇게 하느님 말씀을 계속 읊으면 머리와 마음 속 깊이에 하느님 말씀이 자연스럽게 새겨지겠구나"싶었다.

어느 안식일 저녁에 정통유다인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부부와 두 아들과 며느리가 있었는데 먼저 그 댁 가장이 시작기도를 한 후 포도주 잔을 들고 가족 모두와 포도주에 관한 축복문을 함께 낭독하고 나서 돌려가면서 한 모금씩 마셨다. 같은 방법으로 할라(빵)를 들고 빵에 대한 축복문을 낭독한 뒤 한 조각씩 떼어 먹었다. 할라 빵 덮개는 아름답게 수 놓은 천을 덮개로 사용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일제히 ‘샤밧 샬롬’하고 답하면서 축복의 인사를 서로 나누었다. 안식일을 지키는 풍습은 유다교의 종파를 초월하여 유다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안식일을 지내는 유다인들의 삶은 진정한 의미의 안식을 잊고 그저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생활과 대조가 되어 보였다. 참으로 하느님 안에서 쉴 수 있는 시간,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안식의 의미를 다시금 되살리는 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날도 저녁식사를 함께 하던 그 댁 가장께서 "왜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서 정해놓으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지에 대해 물어보셨다. 이 질문은 우리가 진정한 안식의 의미를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반성을 하게 했다. 강진 성요셉여고에서 지낼 때 메리아그네스 수녀님께서는 일요일을 철저하게 안식일로 지내신 것이 떠올랐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안식일을 보다 거룩히 지냄으로써 우리 삶의 새로운 활력소를 얻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3. 이사악 야곱신부님을 추모하며 

세미나가 끝나고 젬마수녀님께서는 우리를 데리고 베네딕도`수도원에 가셨다. 베네딕도`수도원 뒤뜰에는 신부님 네 분의 묘가 있었는데 그 중 이사악 야곱 신부님의 묘소도 있었다. 이사악 야곱 신부님은 피츠버그 출신으로 그린스버그에서 사목활동을 하신 분이라고 한다. 아버님께서 유다인이셨던 연유에서인지 신부님은 이스라엘로 건너오셔서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며 이 곳에서 사시다가 1995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는 젬마수녀님께서 준비해 오신 꽃을 신부님 묘지 앞에 두고 함께 기도한 후, 밴치에 앉아 젬마수녀님께서 준비해 오신 전체 총회 선언문을 영어와 한국어로 함께 낭송했다. 세계시민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금 확인하며 총회에서 택한 선언문의 일부를 실천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수녀님께서는 신부님의 글을 복사해서 주셨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읽은 신부님의 글은 한달간 이스라엘에서의 나의 영적 여정을 잘 정리해 주었다.

 "역사 안에 숨어있는 하느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개방한다는 것은 성경귀절을 수동적으로 이해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세기에 일어난 추방과 귀환은 BC 6세기 바빌론에서의 그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주님의 말씀은 역사 안에 있다. 요한복음사가가 언급한 “말씀은 육이 되었고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다”(요한 1,14)는 것이 바로 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수의 사람되심, 하느님의 말씀이 육과 피를 지니셨다는 것은 하느님 말씀이 우리의 역사 안에 활동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우리는 역사 안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신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홀로코스트를 떠나서 이해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의 탄생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홀로코스트를 제외하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20세기의 시민으로서 홀로코스트의 신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홀로코스트는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자'라는 과학과 이성적 논리 위에 세워진 테러와 공포가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현대 세계 안에서 하느님의 통치는 점점 방해를 받고 있다. 하느님의 통치하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땅의 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글을 맺으며...

매일 강의에 대한 평가서를 써야 하는 등 강행군으로 진행된 프로그램과 언어와 음식 등 외국생활에서 오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에서의 시간은 내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단지 홀로코스트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와 유다인의 삶과 신앙, 예루살렘이 지닌 신앙의 의미,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홀로코스트는 단지 과거의 역사적 사건만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유다인들의 삶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홀로코스트가 그 피해자나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근본원인이 되었던 반유다주의가 오늘날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에 대해서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단지 유다교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선조라는 교과서적인 인식을 넘어서서 유다인들의 역사 안에 드리운 고통과 절망과 아픔의 역사가 그리스도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신앙은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 놓여 있다. 하느님은 세계역사 안에서 당신 뜻을 보여주신다. 하느님은 세계 역사 안에 살아 활동하시며 그 역사 안에 고통받는 이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운 그 시간들은 역사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기회였다.

거룩한 하느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지내면서 유다인들의 고난의 역사를 배우고 그들이 당한 죽음과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그들이 남긴 삶의 흔적들에 감동받으며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함께 울었던 시간들....이제 그 곳에서 경험한 것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내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할 우리 모두의 슬픔과 고통이기에 나의 체험을 나누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아직도 계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이 하루 속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그 땅에 하느님의 평화가 자리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신 젬마수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수녀님께서는 유다교의 전통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시면서도 그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훨씬 깊고 풍요롭게 살아가고 계셨다. 먼 타국에서 유다인들 속에서 세계시민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 사랑의 씨튼 수녀로 열심히 살아가시는 수녀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은총의 시간들에 깊이 감사드리며 모든 수녀님들의 기도와 사랑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