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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淸派의 守一思想--<<登眞隱訣>>을 中心으로- 최 현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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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淸派 연구논문
上淸派의 守一思想
-<<登眞隱訣>>을 中心으로-
들어가는 말
도교경전에 나오는 一의 개념은 道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는데 때로는 一을 道와 같다고 보기도 하고, 혹은 一이 道로부터 나왔다고도 하며, 道의 기원이라고도 한다.1) 그 경우가 어떠하든 간에 一은 道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으므로 도교의 역사 안에서 道와 관련된 一을 지키려는 수행법 즉 守一이 중시되어 왔다. 守一은 <<老子道德經>>, <<莊子>>를 비롯하여 <<太平經>>, <<抱朴子>> 등의 초기 도교경전은 물론이고 상청파에까지 도교명상법의 기본이며 핵심으로 자리잡아왔고 계속 발전되어왔다.
이와 같이 守一이 도교 역사 안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은 도교가 단지 不死만을 위한 여러 종류의 약과 食餌法, 호흡법, 연금술의 실천 등 養形의 실천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內觀을 통한 神과의 신비적 합일을 추구하는 養神도 함께 중시해 왔음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상청파에 와서 鍊丹지상주의를 탈피하여 갈홍에 있어선 부차적이고 보조적 수단이었던 服氣導引, 內觀存思 등의 道術을 鍊丹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고, 또 윤리적 실천과 도교 경전의 讀誦을 중요하게 보았다. 그 중에서 服氣와 內觀存思의 방법은 상청파의 중심적 道術이다. 內觀存思란 천상신들의 分身인 體內神을 心中에 생각함으로써 體內神과 天上神이 교감하여 육체를 신들과 같은 존재(신선)으로 변하게 하는 道術을 말한다.2)
<<太平經>>까지는 一이 비인격화된 양상을 띠었으나 육조 도교에 와서 道는 인격화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즉 상청파에 와서 一은 우주 밖에만 거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도 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체내신은 天上神과 무관하지 않고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체내신을 존사하는 것이 상청파에서의 守一수행이다. 본고는 상청파 경전 중에서 守一사상에 핵심이 되는 <<登眞隱訣>>을 중심으로 상청파의 수일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상청파 이전에 나온 도교경전들 내의 수일사상과 비교고찰해 봄으로써 상청파의 수일사상이 지닌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1. <<登眞隱訣>>의 수일사상
(1) 陶弘景과 <<登眞隱訣>>
陶弘景(456-536)은 陸脩靜과 함께 도교경전의 정비에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 <<眞誥>>를 교정 편찬하기도 했고, <<登眞隱訣>>을 주석하기도 했다. 상청파 경전은 당시 성행했던 불교의 영향을 받아 佛經의 체계를 따른 형식이었다. 도홍경은 불교의 교리를 이용하여 道經을 체계화시켰는데 이는 불교와 도교의 교섭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중요하다. 이러한 불교의 영향은 경전 정비 뿐만 아니라 수행방법에도 미치게 되었는데 이것은 <<抱朴子>>에서 중시했던 外丹에서 內觀法으로 방향이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六朝시기에 이런 경향의 총결산으로서 출현한 것이 <<登眞隱訣>>이다.3) 登眞의 ‘眞’은 ‘仙’과 거의 같은 뜻이므로 <<登眞隱訣>>은 得仙의 비결을 설명한 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곧 <<登眞隱訣>>은 得仙의 비결로 金丹이 아닌 守一의 실천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경전이다.4)
<<登眞隱訣>>은 본래 25권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산실되어 현존하는 것은 3권 뿐이다. <<登眞隱訣>>의 전반적인 내용은 다 파악할 수 없지만, 잔존하는 자료만 가지고 살펴보아도 이 경전이 상청파의 수행에 중요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登眞隱訣>>은 여러 경전에서부터 뽑아서 편집한 본문과 도홍경이 주석을 단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주석은 본문의 10배가량 되는 분량이다. 따라서 陶弘景의 수행론을 살펴봄은 <<登眞隱訣>>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陶弘景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仙道실천방법인 導引, 行氣, 金丹 등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그가 仙道실천으로 중시한 것은 守一, 本草, 劍解法, 경전의 通讀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守一을 강조했다.5) 陶弘景에게 있어 守一은 眞에 오르는(登眞) 비결, 즉 得仙의 비결이었다. 이와 같이 도홍경이 得仙의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수행방법으로 제시한 ‘守一’을 <<登眞隱訣>>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2) <<登眞隱訣>>의 守一개념
守一은 말 그대로 ‘一’을 지키는 수행과정이라면 <<등진은결>>에서 一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등진은결>>에서 一은 신격화되고 인격화개념인 三一로 드러난다. 三一은 북극성의 元氣로부터 나와 사람 몸 안의 洞房에 거하게 된다. 이와 같이 洞房에 거하는 三眞一은 곧 白元君, 无英君, 黃老君을 말한다. 이 3君을 존사하는 것 즉 守三一이 곧 <<登眞隱訣>>에서 말하는 守一인 것이다.
그러나 洞房 이외의 九宮 내에도 眞一(雄眞一, 雌眞一)이 거하므로 이를 존사하는 것도 守一내에 포함시킨다면 守一의 범위는 더 넓어질 것이다. 따라서 洞房存思에만 국한된 守一은 狹義의 개념이라고 본다면, 九宮에 대한 존사 즉 守九宮까지도 수일수행 속에 포함시킨 것은 廣義의 守一개념이 될 것이다. <<登眞隱訣>>을 주석한 도홍경은 守三一만을 守一로 보려는 경향이 있지만, 필자는 이 글 안에서 守一을 守三一과 守九宮까지 포함시킨 廣義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본고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洞房存思를 포함한 九宮存思 전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3) 守一의 준비단계
<<登眞隱訣>>은 玄洲上卿蘇君이 전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列仙傳에 나오는 涓子신선으로 齊人이며, 蘇林의 스승으로 荷澤6)에서 낚시질을 하여 잉어를 잡아 배를 갈라 거기에서 太上이 三一을 불러 몸을 지키게 하는 符籍을 얻었다는 것이다.7)
도홍경은 이를 주석하기를
“符를 갖고 一을 부르고 一로 하여금 몸을 지키게 하니 마치 符籍을 三魂께 告하는 것과 같다8)” 라고 한다.
즉 여기서 우리는 도홍경이 三一을 一로 보고, 一을 통해 몸을 지킨다는 守三一로써의 守一사상을 엿보게 된다. 먼저 一을 부를 때 符籍을 사용하는데, 이는 守一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 볼 수 있다. <<등진은결>>은 守一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眞符와 寶章을 통해 부적에 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守一의 준비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立春春分, 立夏夏至, 立秋秋分, 立冬冬至의 8節日 새벽에 王日을 향해 붉게 쓴 부적 일부를 삼키고 마친다. 그 뒤 再拜하고 뜻에 따라 祝願한다.”9)
이와 같이 부적을 먹는 것은 몸 속의 체내신을 불러 그에게 呪文을 드리고자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체내신을 존사하기 전에 부적을 삼키는 행위를 통해 존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呪文은 몸의 각 부위 즉 三元의 宮마다 따로 있어서 上元에 해당하는 것이 上元符, 中元이 中元符, 下元이 下元符이다. 따라서 上元符를 먹고나서 上宮上一을 존사하고, 中元符를 먹고나선 中宮을, 下元符를 먹고나선 下宮을 존사한다.10)
도홍경은 立春 때 符籍을 써서 몸에 참으로써 眞一을 상견하게 되면 다음 절기까지는 다시 부적을 만들지 않고 쓴 것을 빼서 먹으면 된다고 한다.11) 이 부적을 몸에 차고 5년간 부정한 일을 하지 않으면 眞一을 相見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寶章”12)에 보면
“부적을 써서 왼쪽 팔꿈치에 차고 8년간 부정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三一이 모두 드러난다”고 한다.13)
이와 같이 8년간 수행을 통해 守一수행의 핵심인 三一이 모두 드러남에 비해 위의 眞符에서 眞一을 상견한 것에 머문 것은 그만큼 수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존사가 깊어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앞으로 언급되겠지만 九宮은 본래 비어 있고, 存思를 함으로써 그 안에 神이 거하게 된다. 存思를 오래 하면 할수록 모든 宮 안에 眞一이 거함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도 존사의 햇수가 오래되지 못하면 眞一을 다 相見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같이 一을 상견한 자는 자기 몸의 三一을 볼 뿐 아니라 太微 중의 三一帝皇君도 만난다고 한다.14) 이는 체내신과 太微의 신이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상청파에서의 守一은 체내신을 內觀함을 통해서 太微의 신과도 일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4) 九宮의 雄眞一存思
<<등진은결>>의 存思는 <<蘇靈經>>에 그 출처를 두고 있는데 먼저 머리의 九宮부터 시작한다.15) 九宮은 지상의 궁전을 모델로 생각한 것으로 九宮의 下段에는 5궁이 있는데 이는 마치 지상의 宮城이 5개가 연속으로 되어 있는 中庭과 유사하다고 한다.16)
九宮은 각각 一寸씩 되어 있는데 제일 앞쪽에 있는 것이 守寸이다. 따라서 <<등진은결>>에서는 守一이 守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守寸은 3分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다시 둘로 나누어져 왼쪽에는 絳臺靑房이고 오른쪽에는 黃闕紫戶이 있으며 거기에 각각 신이 거한다고 한다. 이를 守寸雙田이라고 한다.17) 兩房의 중간은 眞人이 출입하는 길이 된다. 따라서 이 길의 좌우로 絳臺, 黃闕을 배치하는 것은 眞人의 왕래를 영접하고자 함이라는 것이다. 兩房에 있는 신은 늘 방울을 쥐고 令城門을 지키는 것처럼 그 길을 지킨다.18)
守寸의 紫戶大神은 이름이 平靜이고 자는 法王이다. 守寸의 靑房대신은 이름이 正心이고 자는 切方이다. 신의 形狀은 어린아이같고, 각 신은 방의 색깔과 같은 색의 의복을 입었고 손에는 불꽃형상의 火鈴인 流金鈴을 잡고 있다.19) 이것을 흔들어 신들이 오고 감을 알린다고 한다. 또한 두 신의 몸 안에는 風雲의 기운이 있어 환히 빛난다는 것이다.20) 먼저 저녁에 누워서 이 신을 存思하니 마치 신을 직접 보는 것처럼 存思한다. 그리고 그 신의 이름과 자를 3번 부른 뒤 주문을 끝낸다.
앙리 마스뻬로는 이와 같은 신의 存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공상적인 표현도 아니고, 신에 대해 상상하는 것도 아니다. 신이 머무는 몸 속의 장소에서, 옷을 입고, 특유의 소유물을 갖고서 있는 것을 실제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內觀’이라 하는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守一을 어떻게 하는가?
“ 四立(立春, 立夏, 立秋, 立冬) 의 한밤중 즉 亥時 때 정좌를 하는데, 이때 靜室에 들어가 氣를 닫고 눈을 감고 양무릎 위에 손을 깍지낀다. 立春 때는 동쪽을 향해, 立夏 시에는 남쪽, 立秋 때에는 서쪽, 立冬 때에는 북쪽을 향해 정좌한다.”21)
<<金闕帝君三元眞一經>>에서는 守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立春日 한밤중에 동쪽을 향해 정좌하고 9번 기를 들여마시고 35회 침을 삼키고 마친다. 북두칠성을 存思하니 별이 머리 위로 내려온다. 陰精眞人 2별을 存思하니 2별이 머리정상에 가깝게 내려온다. 陽明, 玄冥 2별은 뒤에 있고 玄冥眞人은 앞에 있다. 이때 三一尊君을 存思한다. 이 尊君의 몸이 변신함을 본다. 그것이 하나가 되어 그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 上元과 大神은 氣가 되어 입을 통해 머리의 丹田宮으로 들어가고, 中元과 그 大神은 기가 되어 입을 통해 심장으로 들어가고, 下元과 大神은 氣가 되어 입을 통해 하단전에 들어간다. 이와 같이 三元이 三宮에 있게 되면 만사가 끝난다.”22)
여기서 볼 때 먼저 存思를 통해 북두칠성의 신이 머리에 내려와서 다시 체내 속으로 들어감을 알 수 있다. 守寸에 바로 이어서 나머지 7分이 명당궁이다. 따라서 守寸와 明堂은 다른 궁이 아니라 守寸이 明堂의 외대궐인 것이다. 그 외의 궁은 明堂 안쪽에 상하로 각각 一寸씩 되어 똑같이 8로 나눠져 있다. 9궁 중에서 5궁은 守寸에서부터 계속 一寸씩 들어가면서 있는 방으로 明堂宮, 洞房宮, 丹田宮, 流珠宮, 玉帝宮이 그것이다.23) 여기에 각각 신들이 거하는데 明堂宮의 왼쪽에는 이름이 玄陽이고 字가 少靑인 明童眞君이 있고, 오른쪽에는 이름이 微陰이고 字가 少元인 明女眞君이 있으며 중앙에는 이름이 照精이고 字가 四明인 明鏡神君이 있다. 洞房宮에는 无英君, 白元君, 黃老君이 거하며 丹田宮에는 上元赤子帝君과 帝卿이 있다. 流珠宮에는 流珠眞君이 거하며 玉帝宮에는 玉淸神母가 거한다. 명당 1寸 위로 天庭宮이 있으며 여기에 上淸眞女가 살고, 단전 1寸 위에 있는 玄丹宮에는 中黃太一眞君이 있고, 流珠 1寸 위에 있는 太皇宮에는 太上君后가 있고 洞房 1寸 위의 極眞宮에는 太極帝妃가 있다.
이 九宮은 같은 머리 위에 있지만 우열의 차이가 있다. 도홍경은 玉帝宮, 太皇宮, 天庭宮, 極眞宮, 玄丹宮, 洞房宮, 流珠宮,丹田宮, 明堂宮 순으로 되어 있다고 본다. 그 중 明堂, 洞房, 丹田, 流珠 4궁의 經은 모두 신선이 眞人이 되기 위한 道로서 세상에 전해진 것이다.24)
그런데 도홍경은 여기서 明堂과 洞房宮經은 그 道가 세상에서 행해짐을 볼 수 없고 丹田經과 流珠經만을 볼 수 있으니 丹田經이야말로 三元眞一의 道를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25) 즉 丹田에는 늘 三元眞一이 있으므로 丹田經은 三元眞一의 道를 지키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 외의 玄丹宮經은 太極帝君이 告한 것으로 다른 四宮의 領宗이라고 한다. 도홍경은 이 도가 高妙하여 蘇君이 가장 끝에 행함으로써 眞卿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26)
앙리 마스뻬로는 玄丹宮의 存思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存思하기 위해 앉거나 누울 때마다 먼저 북극을 存思해야 한다. 거기로부터 赤氣가 내려와 玄丹으로 들어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이 氣는 점점 그 궁을 채우고 몸의 안팎으로 출입한다. 그것이 내 몸을 감싸고 안팎으로 움직이면 나는 그것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 27)
이상에서 살펴본 5궁의 도가 세상에 알려졌으니 참된 이름을 지닌 자는 이를 직접 만날 것이나, 스스로 骨相, 挺命이 아니면 이 말을 듣지 못한다고 한다.28) 도홍경은 이를 주석하기를 “세상사람 중 이 도를 가진 자가 많으나 이를 닦은 자는 하나도 없다. 이 체내신은 다른 법과 같지 않아서 참으로 보배롭고 신비로운 바가 있으니 만일 一道는 행해진다면 長生하게 되고, 행해지지 못하면 죽는다. 이에 모두가 骨挺은 아님을 일컫는 것이다”라고 한다.29) 이는 모든 사람이 이미 丹田宮내에 三元眞一 을 지니고 있지만 守一修行을 하는데에는 骨相의 조건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守一修行에 조건이 제시됨은 신선이 되는데에 仙心이 필요하다는 도홍경의 수행론의 한계과 함께 상청파의 수행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5) 九宮의 雌眞一存思
위에서 살펴본 5궁의 신은 남성신으로써 雄一이다. 그외 4궁(玉帝宮,天庭宮,極眞宮, 太皇宮)에는 여성신 즉 雌一이 거한다. 즉 玉帝宮에는 玉淸神母, 極眞宮에는 太極帝妃, 天庭宮에는 上淸眞女, 太皇宮에는 太上君后가 거한다. 도홍경은 앞에서 본 5궁과 雌一이 거하는 4궁 즉 머리 속의 九宮은 上淸太微 중의 九宮에 眞君이 거하는 것에 상응하도록 세운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이 四宮을 모두 갖고 있으나 道를 닦지 않은 자는 궁이 비어 있을 뿐이다. 무릇 九宮에 대한 존사를 다하지 못한 자 역시 궁이 비어 있다. 즉 모든 궁은 본래는 비어 있으나 守一수행을 함으로써 九宮 안에 眞一이 들어가 거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존사를 통해 모든 궁 안에 帝君이 있게 되고, 守寸에는 늘 大神이 있게 된다. 따라서 守一수행을 통해 신의 현존을 보게 된다. 守一수행을 하는 자는 神仙이 되고 닦지 않는 자는 죽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각 궁마다 있는 여러 신들에는 우열이 있다. 한 궁에 2神이 있을 때에는 左神이 上이 되고, 右神이 下가 된다. 3神의 경우에는 中이 上이 되고, 다음이 左神, 右神의 순으로 된다. 存思시에는 아랫 것부터 시작하므로, 守寸의 경우에는 오른쪽 房인 紫戶, 洞房의 경우는 왼쪽신인 白元이 앞선다. 그런데 明堂에서는 左가 앞선다. 따라서 이것을 종합해 보면 與信이 男神보다 우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여성신이 남성신보다 우위인 것은 무슨 까닭인가? 로비넷은 이에 대해서 여성신들이 세계의 기원과 관련해서 생성의 시작에서 기원의 우주적 陰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30) 따라서 여성신을 존사하는 것은 남성신을 조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므로 남성신을 존사한 후에 실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은 늘 덜 중요한 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더 높은 신에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도홍경이 주석했듯이 더 낮은 신을 존사하고 점차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 한 궁에 여러 신이 있을 때 먼저 오른쪽 신을 존사한 후, 왼편을 존사하고 중간을 나중에 한다.
그런데 雌一과 雄一은 각각 별개의 신이 아니라 男이 雌를 지키면 雌形이 되고, 女가 雄을 지키면 雄一이 되기에 각각은 그 本에 의해 남녀가 구별될 뿐이다. 따라서 雄一과 雌一을 겸해서 존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6) 明堂存思
守寸을 존사한 뒤에는 明堂을 存思한다. 물론 守寸 후에 이를 존사하면 더욱 좋지만, 만일 守寸을 존사하지 않았어도 明堂을 存思할 수 있다. 明堂의 3君은 上下 모두 녹색 금옷을 입고, 허리띠에는 4개의 적색 옥구슬을 전후 좌우에 각각 한 개씩 달고, 입에는 붉은 구슬의 손잡이를 물고 거울면을 밖을 향해 비추니 鈴鏡은 붉은 빛을 비추이고 그 소리는 九宮을 두루 번진다.31) 머리는 마치 영아와 같아 金光 玉色이고 서로 대면하여 앉으니 밖을 향하거나 서로를 향한다.32) 이러한 明堂神을 존사한 뒤 각 신의 이름을 3번 부른다. 그 후 齒를 9번 두드린 후 洞房을 존사한다. 만일 守一을 마치지 못하고, 후의 제반일을 행한 자는 먼저 이와 같이 존사하고 마친다.
명당존사법은 여러가지로 유용하게 사용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도사가 산에 홀로 거할 때 邪魔가 있어 마음이 불안하고 동요될 때 이 법을 쓴다. 三神을 存思하고 손에 옥구슬을 잡고 허리에 4방울을 울리면 이소리를 天上太極에서도 듣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신들의 방울소리가 적을 두렵게 하고 악마와 사악함을 사라지게 해준다고 한다.33)
또한 사악함을 제거하기 위해 이를 존사한 뒤 三君名字를 3번 부르고, 齒를 9번 두드리면 천가지 妙伏息과 만가지 악귀의 형체가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34)
또한 이 存思는 갈증을 해소해 주기도 하는데 이는 갈증을 느끼는 이들의 갈증을 없애기 위해 三君을 存思하고 아울러 입으로 守寸 중의 赤氣를 토해내고 이를 자기 입에 품어 수없이 삼킨다. 이와 같이 토하고 삼키면 배가 부르게 되는데 이것이 갈증을 없애는 방법이라고 한다.35) 또 만일 도사가 밤에 길을 가다 어두워 길을 볼 수 없게 되면 三君을 存思하며 입에서 나온 三火光으로 앞을 비추면 다시 길이 밝게 된다고 한다.36)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守一을 통해 얻어지는 부차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실제로 上淸派에서 守一의 목적은 神仙이 되는데 있으며, 그것은 神과 합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洞房에 있는 三眞一을 存思하는 것이다.
(7)洞房存思
守寸과 明堂에 이어 洞房을 존사하는데 이는 守一의 근본이 된다. 상청파에서는 一이 三一로 변형되었는데 洞房에는 黃闕, 紫戶, 玄精의 3방이 있어 그 안에 三一尊君이 거한다. 여기서 말하는 黃闕, 紫戶, 玄精은 守寸에 있는 것과 달리 동방궁 내에 별도로 있는 것이다. 洞房의 紫戶에는 白元君이 있고, 黃闕에는 无英君, 중앙에는 黃老君이 있다.
<<黃庭內景經>>에 보면 洞房의 左神은 公子이고, 右神은 白元君인데, 중앙의 黃老君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37) 그러나 <<姿陽眞人內傳>>에 보면 <<登眞隱訣>>처럼 3君에 대해서 상세히 나와 있다.
“중앙 黃老君은 太極四眞王의 師老로서 九天을 다스리고 곤륜을 거닐며 아래로 无英君, 白元君과 함께 洞房에 들어간다. 만일 존사하여 신을 보면 眞人이 된다. 白元君을 보면 下眞이 되어 3000세 장수하고, 无英君을 보면 中眞이 되어 萬歲 장수하며 黃老君을 보면 得仙하게 된다.”38)
따라서 <<黃庭內景經>>의 洞房觀은 <<姿陽眞人內傳>>과는 다른 과도기적 사상이라고 생각된다. <<姿陽眞人內傳>>에서 설한 洞房의 存思란 중앙黃老君과 无英君, 白元君의 3神을 存思하는 것인데, 먼저 白元君을 存思하고 다음에 无英君, 최후에 중앙 黃老君을 存思한다. 이는 앞서 설명했듯이 右神을 먼저 存思하고 그 후에 左神, 끝으로 中央神을 존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 黃老君이 다른 2神보다 더 우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黃老君이 다른 두 神보다 높은 것은 두 神의 存思는 長生을 얻는데 그치는데 반해, 黃老君은 得仙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에서도 알 수 있다. 즉 上淸派의 存思의 목적이 神仙이 되는 것이라고 볼 때 위 3神 중 가장 중요한 神은 存思를 통해 得仙을 얻게 되는 黃老君인 것이다.
앞서 살펴본 <<姿陽眞人內傳>>을 통해 黃老君은 본래 洞房宮을 관장하는 신이 아니라 九天을 관장한 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九天을 관장하던 黃老君은 九天의 개념에 상응한 머리의 九宮을 관장하는 중심神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黃老君과 함께 二神이 거하는 洞房은 곧 九宮의 중심이 될 뿐 아니라 上丹田의 중심이며 守一의 핵심부분이 되는 것이다.
도홍경은 <<登眞隱訣>>에서 三眞(白元君,无英君,黃老君)은 늘 洞房에 있는 신이지만, 九眞이 假化離合함으로써 白元君, 无英君이 합하여 一眞이 된 것이라고 한다.39)
이것은 洞房의 3신이 丹田의 九眞에 의해서 상호 離合해서 一眞을 형성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 一眞은 바로 중앙 황노군이다. 즉 이는 대우주의 九天을 관장하는 중앙 황노군이 신체를 관장하는 主神이 된 것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黃老君을 중심으로 한 洞房의 三一存法은 <<登眞隱訣>>에서 말하는 守一수행의 정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2. 그외 도교경전의 수일사상
(1) <<老子道德經>>의 抱一
<<道德經>> 42장에 보면 “道에서 一이 生하고 一에서 二가 生하고 二에서 三이 生한다.”40)라고 하여 一은 道로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이러한 一의 개념과 관련하여 <<道德經>>에서는 抱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 魂과 魄은 一을 품으니(抱一) 어찌 능히 흩어짐이 있겠는가? 氣를 專一하게 하고 유화함을 이루니 어찌 젖먹이 같지 않겠는가?41) (<<道德經>> 10장)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의혹이 생긴다.그런 까닭에 선인은 一을 굳게 지켜 천하의 모범이 된다.” (<<도덕경>> 22장)
또한 39장에는 得一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하늘은 一을 얻음으로써(得一) 맑고 땅은 一을 얻음으로써 평안하고 神은 一을 얻음으로써 영묘하고 골짜기는 一을 얻음으로써 생기고 모든 존재는 一을 얻음으로써 살고 자란다. 왕들은 一을 얻음으로써 나라의 통치자가 된다.”42)
이상에서 살펴본 抱一과 得一은 <<道德經>>에서 一과 관련하여 볼 수 있는 수양론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抱一이 一을 간직한다는 의미로 본다면, 이는 후에 도교의 수일사상이 형성되는데 하나의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莊子의 守一法
<<莊子>>의 在宥篇에 보면
“나는 一을 지킴으로써(守一) 내 몸을 조화롭게 되었다. 내가 1200세동안 몸을 닦았기에 아직 나의 몸은 쇠하지 않았다.”43)
“天地에는 [각기] 머물 집이 있고 陰陽에도 [각기] 깃들 곳이 있다. [그러니] 너의 몸을 소중히 지켜 나가면 만물은 저절로 왕성해질 것이다. 내가 一을 지킴으로써(守一) 처한 곳이 조화롭게 될 것이다.”44)
<<老子>>에서는 抱一과 得一의 개념은 나왔지만 守一은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莊子>>에서는 守一의 개념이 나온다. <<莊子>>의 守一은 노자의 抱一과 같은 의미이지만 고정되어 떠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抱一보다 강하므로 후에는 守一이 더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이다. <<莊子>>에서 말한 守一은 廣成子가 1200세 수명을 얻은 것과 관련하여 나오므로 양생가와 신선도에서 이것을 중시한 것이다.45)
그러나 <<老子>>나 <<莊子>>에서의 一개념 자체가 비인격적 의미로 사용되었기에 후에 도교에서의 신격화된 一개념에서 나온 守一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3) <<老子河上公注>>의 守一法
앞서 살펴본 <<도덕경>> 10장, 42장에 대한 <<河上公注>>의 주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一을 품어(抱一) 몸으로부터 一을 분리시키지 않으면 長存할 수 있다는 것이다. 一이란 道가 비롯하여 생겨난 바로써 太和의 精氣이다.”46) (<<河上公注>> 10장)
“道는 생겨난 것들의 근원이며 一에서 陰과 陽이 나왔고 陰陽에서 和淸濁 3氣가 나와 天地人으로 나누어졌으니 만물은 모두 元氣를 지녔다.”47)(<<河上公注>> 42장)
여기서 보면 <<河上公注>>에서의 一은 생명의 원천인 元氣로 해석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一이 氣의 의미가 농후한 것은 氣를 생명의 원천으로 보고 養氣를 중시한 養生家적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이와 같이 一을 氣로 해석함으로써 一이 道보다 더 動的이고 살아있는 생명의 관념이 강하므로 一을 道보다 더 중시한 것이다. <<河上公注>>에서는 <<道德經>> 10장에서의 抱一을 “사람이 능히 一을 품어 떠나지 않으면 장수한다”고 하여 長生의 비결로 해석했지만, 22장의 抱一은 守一로 설명하고 있다.
“抱는 守(지키는 것)이고 法은 式(본보기)이다. 성인은 一을 지킴으로써 만사를 알고 천하법에 본보기가 된다.”48)(<<河上公注>> 22장)
이와 같이 <<河上公注>>에서는 <<道德經>>에서의 抱一을 守一로 해석했는데 이는 <<河上公注>>가 神仙道의 守一說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河上公注>>에서 一을 중시한 것도 神仙道의 수련방법의 수일설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河上公注>>의 守一이 전부 神仙道에서 말한 守一처럼 직접 延命長生을 말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河上公注>>가 <<道德經>>의 道의 근본사상을 따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4) <<太平經>>의 守一法
<<太平經>>에 나오는 一개념을 보면 “一은 元氣의 가장 순수한 때”(一者 其元氣純粹之時也), 혹은 “一은 數의 시작으로 천지가 아직 갈리지 않았을 때 쌓여진 氣가 一이다.” (一者 乃數之始起 故天地未分之時 積氣都爲一)에서 보듯이 ‘元氣’ 혹은 ‘氣’이다. 즉 <<太平經>>에서도 一의 개념이 아직 인격화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太平經>>은 元氣인 一을 지키는 守一과정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 수행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靜修를 통하여 精을 충만케 하는 작업이 기초가 된다.
“액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齊室을 지어 문과 창을 단단히 닫고 다른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게 하고 매일 그 안에서 靜修해야 한다. 精이 충만치 않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는 억지로 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이 수련을 계속하면 精이 순숙하여지고 편안함을 얻게 된다. 이러한 경지를 얻게 되면 외부의 사물에 욕심이 끌리지 아니하고 말을 하고 싶어지지도 아니하며 먹는 것에 마음이 끌린다든지 남의 말에 흔들리는 일이 없게 된다.”49)
이와 같이 靜室에서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수일수행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내면에서 빛을 보지 못한 상태이므로 깜깜하지만 수행을 오래 하면 내면으로부터 밝은 빛이 생겨나게 된다. 이 빛이 자기 내면을 환히 비추이게 된다. 이와 같이 <<太平經>>에서의 守一방법은 守一明法으로 이는 <<太平經>>의 명상법을 수록한 <<太平經聖君秘旨>>에 잘 나타나 있다.
“守一수행은 長壽의 要諦로서 그것으로 나의 神을 통제할 수 있고 빛을 통과하여 모든 것을 넘어서 갈 수 있다. 처음에는 밝기만 하던 빛이 수행이 깊어지면 점차 색깔을 나타나 붉은 빛이었다가 점차 흰빛으로 변하고 다시 더 깊은 경지에 이르면 푸른 색을 띠게 된다.”50)
이와 같이 수일수행에서 완성의 징후로서 빛이 난다고 본다. 神이 충만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눈 앞이 어두워서 어떤 빛도 볼 수 없지만 神이 충만해지면 점차 눈 앞이 밝아지고 精과 神이 밝게 빛난다고 한다.51)
수행자가 이 빛에 점점 침투하게 되면 빛이 점점 가까와져서 빛과 마침내 하나가 되는데 이와 같이 守一을 통해 광명을 얻게 되면 長生不死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묻는다. 古今의 道는 모두 守一을 말하였는데 가히 不老長生하게 할 수 있는가?
답한다. 사람이 守一을 알면 無極의 道로 삼을 것이다. 사람의 몸은 精과 神이 서로 합해 있는 것이다. 육신이란 죽음을 주관하고 精과 神은 삶을 주관하는 바 언제나 합하면 吉하고 떨어지면 凶하다. 精과 神이 없으면 죽는 것이요, 精과 神이 있으면 사는 것인데 언제나 합하여 하나가 되면 가히 장수하게 된다. 언제나 병은 精과 神이 흩어져서 그 몸 안에 모아지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聖人이 守一을 가르친 것이니 이는 마땅히 한 몸을 지키는 것이다. 생각하여 쉬임이 없게 하면 精과 神이 스스로 오게 되고, 서로 상응함이 없지 않아서 백 가지 병이 제거된다. 이것이 곧 長生久視의 부적이다.52)
이상에서 살펴본 <<太平經>>의 守一법은 一을 元氣로 보고 그 우주적 元氣가 사람의 체내에 들어와 빛으로 변하여 그 빛과 일치함을 存思하는 것이다. 이러한 <<太平經>>의 守一과정은 上淸派의 守一과정과 비교해 볼 때 一개념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上淸派의 三一神이 북극성의 元氣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太平經>>의 守一의 목적이 長生不死에 있음은 得仙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상청파와 차이를 보인다.
(5) <<老子想爾注>>의 守一思想
<<想邇注>>에서는 一은 곧 道로써 표현된다.
“사람이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一을 떠나선 안된다. 一은 道이다. 一은 사람의 몸에 있지 않다. 사람의 몸에 가까이 붙어있는 것은 모두 세간에 항상 있는 거짓된 기교이지 참된 도가 아니다. 一은 하늘과 땅 밖에 있으나 하늘과 땅 사이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단지 사람의 몸 안을 들락날락할 뿐이다. 이때는 사람의 몸전체가 一이 되며 특정한 것을 가르킨 一이 아닌 非獨一處이다. 一이 형체를 흩뜨리면 氣가 되고, 형체를 취합하면 太上老君이 되어 항상 崑崙山을 다스린다. 혹은 虛無라고 일컫기도 하고, 혹은 自然이라고 일컫기도 하고 혹은 無名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모두 동일한 것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53)
이와 같이 <<想邇注>>에서 道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것은 五臟神사상과 명상법을 중시하는 당시의 世間僞支를 비판하기 위함이다. <<想邇注>>에서 말한 世間僞支에서는 五臟神을 가리켜 一이라고 하며, 瞑目存思로써 복을 구한다고 가르치지만 <<想邇注>>에서는 이것이 長生을 얻는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想邇注>>에서는 一이 사람 몸 속에 있지 않고 天地 밖에 있어 자유롭게 사람 몸 속으로 드나든다고 한다. 즉 道는 形狀으로 표현될 성질이 아니므로 服色, 이름, 형상으로 道를 표현함은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想邇注>>도 道가 太上老君이 된다는 것은 道가 형상화하지 않는다는 것에 모순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一을 太上老君으로 본 <<想邇注>>에서의 守一수행은 太上老君이 내려준 道誡를 준수하는 것이다. 즉 道誡를 지키는 자는 곧 一을 지키는 자이며 道誡를 지키지 않는 자는 一을 잃은 자이다. 즉 道誡를 지키는 일이 그대로 守一일 뿐 따로 守一의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想邇注>>에서 守一수행을 단지 道誡를 지키는 윤리적 차원으로 해석한 것은 앞서 살펴본 경전의 守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6) <<抱朴子>>의 守一法
4세기 초엽의 작품인 <<抱朴子>>의 地眞篇은 守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은 一을 능히 알면 만사에 통한다. 一을 안다는 것은 하나도 모르는 것이 없다. 一을 알지 못하는 자는 어떤 一도 능히 아는 것이 아니다. 道는 一에서 기인하며 각 곳에 다 있어서 天地人을 형성하고 있다. 고로 三一이라 한다.54) 天은 一을 얻어 맑아지고 地는 一을 얻어 편안하다. 사람은 一을 얻어 生하고 神은 一을 얻어 靈이 된다. 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