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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최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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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05-19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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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수난 성지주일이다.
오늘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감정의 기폭이 심하게 드러난다.
모두 스승님을 떠나가도 저는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어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노라고 호언장담하던 그가
예수가 죽음에 직면하자,그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해가며 예수를 부인하고 만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나는 그 사람을 진짜 알지 못하오….”
 
어떻게 그럴 수가...라고 하며 우리는  마치 베드로가 이중인격자라도 되는 양 비난의 눈으로 그들 바라본다.

그러나 사실 베드로는 그가 고백했듯이  실상은 예수가 참으로 누구신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가 안다고 생각한 예수는 진정한 예수가 아니었다.
그가 그물마저 던지고 따랐던 스승 예수는
유대인들이 고대해온 바로 그 메시야였지, 힘없이 개죽음을 당하고 만 존재인 줄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 앞에 벌어진 당혹스런 사태를 통해 위기상황을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상황에서 절망과 두려움, 걱정으로 뒤범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결국 자기 앞에 당면한 현실을 부정하고 만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기를 그는 얼마나 간절히 바랬을까)
 
예수께서 이미 여러 번 예고하셨지만 베드로는 그 말씀을 귀여겨 듣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 속에서 만든 메시야로서의 예수를 섬겼던 것이다.
사람의 진가는 그 사람이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드러난다.
베드로는 자신이 믿고 따랐던 스승 예수에 대한 선입견 속에서 결국 예수의 참 모습을 보지 못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는 자기 앞에 드러난 현실을 외면하고 예수의 참 모습 앞에서 당황하고 그것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렇다.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예수에 붙혀진 많은 수식어들로 인해 그의 참된 모습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예수가 보여준 한없이 비천하고 나약한 모습을 우리 또한 외면하며 살지는 않은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알고 싶은 것만을 알려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하여 우리는 존재의 일면만 보고 존재를 판단함으로써 다양성 안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실상을 놓쳐버리고 만다.
 
이러한 베드로의 모습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만난다.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예수를 보지 못했다면, 나 역시 예수를 부정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저 사람을 모르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가난한 이들과 동일시하심이 이 성주간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다.
 
성주간 복음이 말하는 신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서 예수를 만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한국땅에서 가장 가난하고 슬픔에 잠겨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세월호가 오늘 육지로 올라왔다.”
한국 땅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부활을 기다리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이번 부활절에는 미수습자들과 그의 유가족들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