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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과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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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과 악의 평범성
인간은 본래 악한가 아니면 선한가에 대해 사상가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맹자는 성선설을,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모상, 불교에서는 불성을 말한 것을 보면 대개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보는 쪽이 대세인 듯 싶다. 이렇듯 인간이 본래 선하다면 악은 어디서 온 것일까. 왜 우리는 선한 쪽보다 악한 쪽으로 쉽게 기울어지는 것일까.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논서인 <대승기신론>은 인간의 마음을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으로 이해한다. 진망화합식이란 우리 마음이 진여(참, 진리)의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망의 상태인 무명의 측면이 공존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은 양면이 있기에 진여가 주체로서 작동하는 정법(正法)훈습이 있을 수 있겠고 무명이 주체로 작동하는 염법(染法)훈습의 양면도 있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어느 측면으로 방향을 잡아가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은 양면성을 띄고 있기에 우리가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린다.
이 책에서 아우슈비츠에서 600만명 유대인을 대학살한 아이히만은 악한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상상한 사람도 있겠으나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2차 대전 후 그는 신분을 속이고 아르헨티나로 가서 은닉생활을 했으나 이스라엘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었다. 아렌트는 그의 재판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하고 이를 기록했다. 그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은 가공할만한 힘을 지닌 게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히만의 행위는 그의 ‘무사유’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한나가 지적한 무사유 곧 사유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데에서 그런 행위가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존재의 실상인 관계 연기에 대한 무지라 할 수 있다. 아이히만은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했지 자기 행위가 타인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곧 인간은 관계적 존재라는 것
인간의 존재의 실상에 대한 자각이 일도 없던 사람이었다.
세월호 사건 역시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그대로 드러난다.
세월호 선장이었던 이준석 역시 알코올 또는 도박 중독, 정신병 같은 특이한 전력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부인과도 평범한 삶을 이어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 배에 탄 사람들을 몰라라 하고 혼자서만 빠져 나올 수 있었을까.
이준석 선장은 “기능인이 된 뒤 모든 것이 무감각해져 버렸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배만 몰고,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의 문을 닫아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 그런 짓을 한 것일까. 우리 사회 안에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챙기며 살아온 많은 사람들 역시 제2의 이준석, 제3의 이준석이 아닐까.
아니,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면서 사회적 불의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가능성은 더욱 농후하다고 볼 수 있겠다. 자칫 우리는 자신이 한 행위가 타인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어떤 성찰도 없이 살아갈 때 우리 역시 충분히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음을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통해 우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