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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2017년 9월 종교강좌 녹취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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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17-10-2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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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강좌

역학(易學)의 관점에서 본 우리사회의 문제와 해법

 

최일범(성균관대 유학대학 교수)

 

최근에 티비엔(tvN) 방송국에서 개국 2주년 기념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를 초청해 강의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 우연히 그분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 내용은 인류의 문명이 고대와 중세에는 신 위주였다가, 근대에 인문주의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판단을 감정에 의지했다가, 이제 4차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공지능이 힘을 되찾는다, 이런 식의 얘기였어요. 그 강의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결론은 그런데도 인간은 인간을 믿어야 한다, 인류의 문명사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왔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에 굉장한 모티브가 될 거란 내용인데요. 그러면서 유발 하라리의 주장은 인간의 감정이 뇌의 화학물질에 의한 것이란 말이에요. 인간의 감정은 인간의 독창성이 아니라 인간이란 뇌다. 그런데 이렇게 돼버리면 소위 종교가 돼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하느님이고 모두 피창조물에 불과한 거니까요.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신의 의지가 아니라 뇌의 운동작용, 세포들의 상호 자극과 반응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유학자의 입장에서도 유발 하라리의 주장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사실 유학이라고 하는 게 아직도 원죄를 못 벗어났거든요. 조선 망친 망국의 사상이고 전근대적인 것이고, 좋은 인상이 별로 없죠. 그런데 사실은 기독교랑 제일 가까운 게 유학이에요. 초창기 기독교인들은 모두 유학자입니다. 유학자 아니면 기독교를 수용할 수 없어요. 유학이 아니면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왜냐하면, 유학은 기본적으로 하늘님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유학은 하늘의 명령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근대 이전에 심지어는 주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 마음속엔 하느님이라고 하는 생각이, 물론 기독교처럼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은 아니지만 유사한 의미에서 하느님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다른 점은 뭐냐면 기독교는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했다고 생각하지만, 유교에서는 하느님이 우리 본성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요. 달리 말하면 현상세계라고 하는 것은 창조되어서 언젠가는 없어질 게 아니라, 깊이 말하면 하느님 자신의 드러남이라는 생각이 있어요. 인간의 삶 자체가 하느님의 역사다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다르죠. 현실 세계를 보는 관점에서 다르단 말이에요. 일반적으로 신앙을 가진 분들이 생각하기에 이 세계는 언젠가 버리고 가야 할 일종의 플랫폼이죠. 종착지가 아니죠. 그런데 유교에서는 과정이나 종착지라는 개념이 없고 이 삶이 그대로 하느님의 역사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는 말이 중용이라는 텍스트에 나옵니다. 도道라는 말이 있어요. 길이란 뜻이죠. 살아간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살아가는 방법, 그게 도예요.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할까. 그런데 '천명지위도'라고 하지 않고 '천명지위성' 이라고 말하고 솔率자는 ‘따라간다’거든요. 나의 본성을 쫓아가는 것이 길이다. 이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에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이 곧 길이라 생각하는데 유교에서는 예수님도 길이지만 예수님이 내 본성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내 본성을 따르는 게 길이라 생각해요. 나의 본성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이 본성은 무엇으로 자기를 드러내는가? 나의 감정으로 드러낸다고 해요. 그래서 공자를 계승한 맹자라고 하는 유교에서는 빠질 수 없는 위대한 사상가죠. 그 사람은 감정을 네 가지로 축약했는데 측은한 감정, 부끄러운 감정, 양보하는 감정,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감정, 이 네 가지 감정이 나의 본성을 드러내는 네 가지 단서다, 사단 이렇게 불렀어요. 두 가지 접근이 가능해요. 나의 본성을 중심으로 하나는 하느님의 명령, 하느님이 나에게 내리신 것이 본성이라는 접근을 할 수 있어요. 반대로 나에게 존재하는 사단이라는 감정에 대한 감동으로부터 ‘이것은 단순히 변화하고 무사한 감정이 아니라 뿌리 깊은 진리로 날 인도하는 길이로구나.’ 생각할 때 감정에서 본성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또는 세상에 하느님이 존재할 거야 생각한다면 ‘그분의 명령이 나의 본성에 들어와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양쪽에서 다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유교가 일종의 종교적 성격에서 유교적 휴머니즘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본성과 감정의 관계를 논하는 사상이 드러나게 되는 거예요. 유발 하라리는 서양의 역사를 중심으로 얘기했어요. 사실 한국에 와서 서양 중심의 이야기를 하는 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는 데카르트 이후로 이성주의였지 감성주의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감성을 자꾸 이야기하더라고요. 제가 방청객으로 갔다면 왜 이성을 이야기 안 하고 감성을 이야기하냐고 질문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감성을 말하는 것은 서구 사회가 아니라 유교예요. 유교는 본성에 대해 굳이 이야기한다면 본성은 착하다 이 정도로만 이야기했고 본성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나타낸다고 그랬어요. 감성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관이야말로 유교가 이천 년 전부터 견지해온 관점이에요. 유발 하라리 식으로 말한다면 유교는 서양 사상의 역사보다 거의 이천 년 앞서 있는 거예요. 그러나 유발 하라리하고 유교가 같은 감성을 얘기해도 다른 점이 뭐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유발 하라리는 감성을 뇌 화학물질의 순환 반응으로 얘기했죠. 그런 감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냐 하니까 DNA 문제를 가지고 얘기했어요. 진화 과정에서 DNA로 우리 뇌 속에 전부 감춰져 있다는 거예요.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더라도 무의식이 아니라 DNA 속에 설계된 대로 반응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유교에서 보는 감정은 그런 감정이 아니에요. 단순히 경험은 축적된 것이 감성이 아니라 천명이에요. 유교는 하느님의 존재를 확실히 인정해요. 유학은 인간의 감정의 근원을 어디에 두냐 하늘에 두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하늘이라는 것이 단순히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것처럼 경험의 집적이 아니라는 게 뭐냐면 성리학자들은 이 하늘을 뭐라고 해석했다고요. 종교적 양태에서 벗어나 인문주의로라고 해석했어요. 이것은 오늘날 말하는 물리나 생리나 물질의 원리와는 전혀 다는 개념이에요. 이 理와 기 氣라는 두 범주로 세계관을 얘기할 때 기는 경험된 세계, 이는 형이상학적 세계에요. 이는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을 이야기한 것과 구도가 똑같아요. 다시 말하면 근대 유학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을 포기한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역학을 얘기하러 이 자리에 왔거든요. 그럼 역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하느님이 우리에게 명한 게 우리의 본성이고 그 본성을 따라가는 게 도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은 우리의 감정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정은 어디서 생기죠? 우리 현실에서 생기잖아요. 현실을 살아갈 때 슬퍼하고 기뻐하고 감정이 생기잖아요. 그 점이 역학과 유관하죠.

강의 자료를 함께 볼까요.

 

역(易)이란 무엇인가?

“역(易)은 변역(變易)이니, 때(時)를 따라 변역(變易)하되 도(道)를 따른다.”

(易, 變易也, 隨時變易以從道也)

 

예를 들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데 옷을 바꿔 입어야 하지 않아요? 서늘해지니까 긴 옷으로 바꿔 입어야죠. 겨울이 오면 털옷으로 바꿔 입어야 하고요. 그러면 인간이 옷을 바꿔 입는다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실천, 삶을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추우니까 두꺼운 거 입고 더워지니까 얇은 옷을 입었다, 이건 일종의 생리적인 변화를 따라간다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이 생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은 아니에요. 물론 원초에는 그런 사상도 있었는데 그것이 곧 변화해서 하느님이 내 속에 있다. 이렇게 바뀌어요. 이미 3천 년 전에. 동북아시아의 사유방식은 이원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일원적 사고방식이 더 강해요. 예를 들어 단군신화만 하더라도 어떻습니까. 우리 할아버지인 환웅은 하느님의 아들이거든요. 곰에서 변신한 웅녀와 결혼해서 인간인 단군을 낳았습니다. 인간 안에 짐승의 DNA도 들어있고 하느님의 DNA도 들어있는 거예요. 짐승을 악마라는 캐릭터로 바꾼다면 인간은 천사와 악마의 것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이理 속에 하느님의 DNA가 들어있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이 하느님의 아들이니까요. 그러니 인간이 계속 일관된 삶을 갖고 있지 이쪽을 버리고 가야 한다 이런 생각은 동북아에서 잘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결국, 중요한 건 도예요. 우리가 음식 하나를 먹을 때, 수녀님들은 왜 기도하고 드시죠? 어떤 사람은 온종일 일했으니까 마땅히 먹는다 생각할 수 있어요. 어떤 분은 음식이 단순히 노동의 성과가 아니라 주님이 내리신 은총이에요. 그러니까 도는 근본적으로 하늘에서 왔고 하느님의 말씀을 여기서 실천하는 거예요. ‘생리적으로 추우니까 옷을 입었다’가 아니라요. 역도, 주역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물질세계의 변화가 아니라 원초적인 형이상자의, 하느님의 뜻이 들어있다고 동아시아의 주역을 추종하는 사상가들은 생각했다는 거예요.

 

중국 북송의 유학자 정이천의 역전서(易傳序)에 보이는 이 말은 역의 원리를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이는 바와 같이, 정이천은 역(易)을 변역(變易)이라고 정의한다. 변역에는 두 가지 기준, 조건이 있다. 하나는 “때(時)”요, 다른 하나는 “도(道)”이다.

 

때와 도는 떨어져있지 않다는 거예요. 이렇게 봐야 해요.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이 단순한 생리적 변천과정이 아니라, 이 속에서 절대자라고 해도 좋고 근원자의 뜻을 드러내는 삶을 산다고 할 때 역학자가 때를 보는 것은 단순히 그 시간을 보는 게 아니라 도를 보는 거예요.

 

우주에서 전개되는 회전 운동이 때(時)를 형성한다면, 그 회전운동이 지속 가능한 근거가 “도(道)”이다. 바꾸어 말하면 “도(道)”에 근거할 때 지속적 회전 운동인 “때(時)”가 형성된다. 그러나 “도(道)”와 “때(時)”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다. “때(時)”가 아니면 “도(道)”는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결론적으로 “도(道)”와 “때(時)”는 서로 의지하는 연기(緣起)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의 세계관은 인간의 삶 역시 때(時)의 변화 운동으로 인식하고, 나아가 변화 운동 속에서 도(道)의 실현이라는 당위성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도(道)의 실현은 때(時)의 적의한 인식을 필요조건으로 하고, “때(時)”는 “도(道)”의 실현을 통해서 완성된다.

 

유학자에게 오늘의 삶, 너의 삶을 얘기하라는 건 뭐죠? 이 순간에 하늘이 나에게 준 이때의 소명이 무엇인가, 그걸 알고 실천하는 게 역학자의 길이라는 거예요. 때가 무엇인가. 그러면 제가 챕터 2에서 현실 인식이란 말을 썼는데 지금 때가 어떤 때인가. 우리가 한반도에 태어나서 같은 민족이라는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마주 보고, 종교도 다르고 남녀의 차이도 있지만. 우리가 한반도에서 살아간다고 할 때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보겠는가…. 엄청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죠. 인류문명이 앞으로 전격적으로 발전하느냐 아니면 이 자리에서 종언을 고하느냐, 위기이면서 기회이기도 하고 인류 역사상에서 몇 번 안 되는 전환점 중에 한 시점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이라는 인식이 먼저 있어야 해요.

 

역학적으로 보면 그런 인식이 가능해요. 그리고 우리가 지금 더 소명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인류 역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이후에도 그 말씀을 실현해서 민주 사회를 구축하고 인간이 인간 대접받는 사회가 됐는데 어떤 의미에서 이념이 공고히 되는 마지막 단계가 지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에서는 필연적으로, 필연적이란 말은 어폐가 있지만, 할 수 없이 그 과정상에서 지금까지 역사해왔던 또 다른 세계, 의지들. 힘이 강조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천명이니 하느님이나 그런 거 없다. 욕심껏 잘 먹고 살고 다 힘으로 굴복시키고요. 예를 들면 히틀러 같은 사람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 끝으로 종언을 고한지 알았죠. 그래서 21세기로 들어오기 직전에 얼마나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했습니까. 러시아가 무너지고 앞으로 빛나는 세계가 될 것이다. 생각했죠. 그런데 그런 힘 싸움의 싹이 한반도의 북쪽에서 발단이 되는 때입니다. 제가 공포를 조장하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지금 때가 그렇다 하는 것입니다.

 

역학자로서, 유학자로서 이런 현실은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에요. 아까 얘기했듯이 우리가 가신 본성, 도가 하늘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의 지금 이 삶 속에 하느님의 섭리가 들어있어요. 우리가 이걸 회피하거나 숨어버릴 것이 아니라 자기 위치에서, 이런 한반도에 닥쳐오는 역사를 정시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도를 쫓아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두 개의 예를 들어 왔습니다. 한국 유교의 대표적 인물로 하나는 퇴계 이황이고 하나는 율곡 이이예요. 둘 다 16세기를 살았던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인물이죠. 이 두 분이 국가의 위기를 앞에서 어떤 인식을 했는가. 그걸 오늘 여러분과 읽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볼 것은 퇴계 이황의 걸물절왜사소(乞勿絶倭使疏)입니다 건 구걸한다, 바란다, 예요. 퇴계가 바란다. 누구에게 바란다? 중종에게 바란다. 끊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뜻이죠. 무엇을? 일본 사신을 절대 물리치지 말라고 하는 상소문이에요. 이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아래를 읽어보면 나오는데요.

 

걸물절왜사소(乞勿絶倭使疏)]는 퇴계가 1544년에 중종(39년)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상소에 보이는 바와 같이 당시 조선의 조정은 왜와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 사환(仕宦)의 길에 들어선 이듬해인 1534년 6월에 동래(東萊)까지 일본인을 호송하는 직책을 맡음으로써 일본인과 첫 대면한 이래로 조선의 대일(對日)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관료로서의 퇴계가 직면하였던 중요한 문제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퇴계 이황 선생이 첫 벼슬에서 한 직책이 일본 사신을 한양에서 일본의 자기 지역까지 의전하는 직책이었어요. 그래서 왜인에 대해 관심이 있었죠.

 

그러한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퇴계의 구체적이고도 정리된 견해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이후 약 10여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그것은 1544년 4월에 일본 배 20여 척이 경상남도 사량진(蛇梁鎭)에 침입함으로써 야기되었던 이른바 사량지변(蛇梁之變)의 사후 대책에 대한 그 자신의 견해로서 나타나게 되었다.

 

일본인이 섬에 있는 조선인을 몰살했던 사건은 '사량지변'이라고 하는데, 이 사건 후에 조선 조정은 왜구를 쫒아서 바다에서 전쟁을 해 이겼고 이후에 왜와 국교를 단절했어요.

 

갑진년에 일어났던 연유로 달리 갑진지변(甲辰之變)으로 불렸던 이 사태를 계기로 조선 조정에서는 당시 대마도(對馬島)를 경유하여 이루어지던 일본과의 교역 관계를 단절할 지의 여부를 놓고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일본 쪽의 거듭된 간청에 의해 결국 1547년 정미조약(丁未條約)의 형태로 교역을 재개한다는 결착을 보기까지의 기나긴 토의 과정에서 퇴계는 일찍이 1545년 7월에「왜사(倭使)를 끊지 말 것을 바라는 소(疏)」라는 상소문의 형태로 대일 관계에 있어서 유화책을 취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조선은 왜를 국가로 보지 않았어요. 문명도 없고 짐승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퇴계가 쓴 상소문 전문을 읽어보시면 당시 조선이 왜를 인간 이하로 봤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더구나 그들이 조선에 와서 양민을 학살하고 식량을 탈취하니 저런 짐승들과는 연을 끊어버리자 한 것이죠. 그런데 퇴계가 외교 관계를 끊어선 안 된다고 한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퇴계는 제일 고매한 선비 중의 선비임에도 간절하게 중종에게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신은 본래 질병으로 몹시 허약하였는데, 근래에는 더욱 심해져서 숨결만 근근이 이어 사경에 이르렀습니다. 허나 조정이 왜의 청(請)을 끊어 버린다는 말을 듣고 마음에 괴이하게 여기어 탄식하였습니다. 이 일은 백년 사직의 근심이 되고, 억만 생령의 생명에 관계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한 말씀 아뢰지 못하고 죽어서도 사사로운 한(恨)을 품을 수 없기에 병을 무릅쓰고 이 우매한 말씀을 삼가 올립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이 글을 신하들과 널리 의논하시어 냉정한 마음으로 처리하신다면, 어리석은 신의 다행일 뿐만 아니라 곧 종묘사직의 다행일 것입니다. 신은 몹시도 참람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 견딜 수 없어서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퇴계 같은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고 백년 사직이 여기에 달렸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죠? 일본의 위험성을 퇴계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 뒤에 이런 내용이 다 나옵니다.

 

전쟁이란 흉악하고 위험한 것이니, 사직(社稷)을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급한 일이요, 금수가 날뛰는 것쯤은 치지도외(置之度外)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고로 제왕이 오랑캐를 다스리는 방법은 화친을 우선으로 하고, 부득이하게 용병(用兵)을 하는 경우도 금수가 백성을 핍박하는 해악을 제거하기 위함이므로 해악이 제거되면 바로 그만두었습니다.

 

퇴계는 이미 일본과 조선의 전쟁을 예측하고 있던거죠. 그런데 이건 전쟁할 것 같으니 얼른 잘해봅시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지난번 섬나라 오랑캐의 사량(蛇梁)의 변은 개나 쥐새끼들의 도적질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미 도적의 무리를 죽여 물리쳤고, 또 왜관(倭館)에 머물던 자들까지 모조리 쫓아 버렸으니, 국위는 이미 떨쳤고 왕법(王法)도 바로잡혔습니다. 저들도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덕에 부끄러워하며 마음을 바꾸고 허물을 고쳐서, 다른 왜인(倭人)들을 핑계 대고 대국(大國)에 호소하며 스스로 해명하여 머리를 숙여 애걸해 오고 꼬리를 흔들며 가엾이 여겨 줄 것을 청해 왔습니다. 왕도(王道)는 넓고 넓어 속일 것이라고 미리 단정하지 않으며, 불신(不信)할 것이라고 미리 억측(億測)하지 않습니다. 참된 마음으로 온 것이면 이를 받아들일 뿐입니다. 지금 왜노(倭奴)가 청하는 것은 허락할 만한 것 같은데도 허락하지 않으시니, 그러면 어느 때에 가서야 허락해 주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머리 숙이고 외교를 이어가 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이에요. 이제 퇴계 선생이 외교 줄다리기의 방법론을 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적과 화친하는 길에는 마땅히 이들을 조종(操縱), 신축(伸縮), 가부(可否)를 장악하는 권(權)과 세(勢)가 있어야 하는데,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지금 한국도 주도권을 잡기가 어려운 실정이죠.

여기서 권과 세를 합치면 권세죠. 외교 관계에서는 헤게모니를 쥐어야 한다, 권은 단순히 힘이 아니라 사태가 변할 때 주도권을 잡는단 뜻입니다.

 

이 권과 세는 반드시 항상 우리 편에 있도록 하고, 저들 편에 있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신도 조정의 뜻이 이 점을 중히 여겨서 그렇듯 굳건하게 거절하자는 의논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있을 때에는 끊었다가 그들이 스스로 회개(悔改)할 때에는 허락하게 된다면 이야말로 권과 세가 우리 편에 있으므로 정당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당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을 때[時]라고 하니

 

때가 중요합니다. 이 정당성 속에 천명이 들어있는 겁니다. 퇴계는 일본을 이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처리하자는 겁니다.

 

때를 어찌 어길 수 있겠습니까. 그 권은 가지고 있으면서 그 세를 내세우지 않고 사심 없이 처리하면 저들은 반드시 큰 은덕으로 생각해서 그 마음에 감동하고 기뻐하여 서로 이끌고 정성을 바쳐 올 것입니다.

 

오늘날 천변이 하늘에 나타나고, 인사(人事)가 땅에서 잘못되어 큰 재화가 겹쳐 일어나고, 나라의 운수가 어렵고 꽉 막혀서 근본이 불안하고 변방이 허술하며 군사는 부족하고 양식은 다 떨어졌으며 인민은 원망하고 신(神)은 노하니, 우리나라 어느 때에 이렇듯 위급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대개 태백성(太白星)이 대낮에 보이는 것은 곧 병란이 일어날 징조입니다.

 

불과 얼마 안돼서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나라에서는 이미 북쪽 오랑캐와 틈이 벌어지고 있으니, 저들 가운데 억세고 사나운 추장들이 이를 갈며 보복하고자 하여 우리 변방에 침범하기를 꾀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이건 정확히 본 것이죠. 병자호란을 뜻하는 것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났습니다.

 

가령 남북의 두 오랑캐가 일시에 들고 일어난다면, 동쪽을 지탱하면 서쪽이 흔들리고 배[腹]를 호위하면 등[背]이 무너질 것이니, 그렇게 되면 나라에서는 무엇을 믿고 이를 처리할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이 신이 크게 근심하는 바입니다.

 

이게 유학자인 이황의 현실인식이었던 것입니다.

 

넘어가서 율곡 이이의 시폐칠조책(時蔽七條策)을 보겠습니다. 7가지 이러지도 못하는 일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뜻입니다. 율곡은 퇴계보다 20년 후 인물이거든요. 퇴계는 선조가 즉위하고 좀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이 시폐칠조책은 선조 시대에 쓰인 것입니다.

요동(遼東)의 굶주린 백성들이 우리 국경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는데 혹자는 “창고에서 곡식을 꺼내서 구휼해야 한다.” 하고, 혹자는 “막아버리고 못 들어오게 해야 한다.” 하는데, 이 두 가지의 말은 어느 것이 옳은가.

 

정말 난제 중에 난제죠. 또 다음을 봅시다.

 

대마도에서 양곡을 요청하는 것은 그 뜻이 나라의 울타리가 되어 주겠다는 것인데 혹은 “주어야 한다.”하고, 혹자는 “주지 말아야 한다.” 하는데, 주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소견이며,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소견인가.

 

우리 영토에서 제주도보다 대마도가 가깝지만 우리 영토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대마도에서 계속 영토로 받아달라고 했습니다만 조선은 거절했습니다. 대마도는 식량이 별로 안 나서, 대마도는 항상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는데 조선이 식량을 더 많이 줬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진천뢰(震天雷)는 웅맹(雄猛)하기가 짝이 없는 것이다. 혹자는 “적에게 위엄을 보이고 승리를 하자면 이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고 혹자는 적을 대하면 쓰기 어려우며 우리 군졸을 상할 우려가 있다.” 하니 소견이 어찌 이렇듯 같지 않은가.

 

진천뢰는 일종의 폭탄입니다. 지금과 같죠. 무기를 더 확보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판옥선(板屋船)은 제도가 극히 정밀하다. 혹자는 “많이 만들어서 해적을 잡아야 한다.”하고, 혹자는” 배를 만들지 말고 송재(松材)를 기르도록 해야 한다.”하니, 두 사람의 말이 어찌 우열이 없겠는가.

 

판옥선을 많이 만들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이런 7가지 문제들에 대해 율곡이 답을 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때(時)에 따라 중도(中道)를 얻는 것을 권(權)이라 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적의(適宜)함을 얻는 것을 의(義)라고 한다 합니다. 권으로써 변고에 대응하고 의로써 일을 처리한다면 나라를 다스리기가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여기서 권이나 의라는 개념이 역학적 개념입니다. 그 밑에 문장 볼까요.

 

경서(經書)를 연구한 목적은 장차 사람들의 실용(實用)에 제공하려는 것인데, 어찌 감히 묵묵부답하여 성의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바이블을 공부하는 목적은 현실에서 실용적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죠. 이런 세계관이 어디서 나올 수 있나요? 바로 아까 말했듯 하늘이 인간 속에 있고, 인간의 삶이 하느님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 세계관에서 온다는 말이에요.

 

제 생각으로는, 병립(竝立)할 수 없는 것은 도(道)의 시(是)와 비(非)요,

 

옳고 그른 것은 분간해야 된다는 뜻이죠.

 

구존(俱存)할 수 없는 것은 일의 이(利)와 해(害)입니다.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이익과 해로움이다, 둘 다 같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다음이 중요한 율곡의 상황 판단인데요.

 

한갓 이해만 따지고 시비의 소재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일을 처리하는 의에 어긋나고, 한갓 시비만 따지고 이해의 소재를 강구하지 않는다면 변고에 대응하는 권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시와 비는 정의의 문제고 이와 해는 실익의 문제예요. 인간이 살아가는데 먹고 살아야 하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데 이 둘을 모두 충족해야한다는 겁니다. 더구나 국가를 경영하는데 이 둘을 다 취해야 한다는 겁니다. 도리에도 맞고 경제력도 확보하는 게 경영자의 기본 원칙이라는 말입니다.

 

7가지 중에 저는 하나만 예를 들었습니다. 대마도가 식량을 달라고 할 때 율곡이 어떤 처방을 내리는지 읽어보죠.

 

대마도라는 외딴 섬은 일본과는 멀고 우리나라와는 거리가 가까우므로 우리에게로 귀화해오려는 뜻을 가진 지 오래입니다. 그들이 이제 와서 곡식을 내어주면 번병(藩屛)이 되겠다고 맹세를 하는데, 혹자는 “은혜만 베푼다면 오랑캐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니, 양식을 주어 저들로 하여금 은혜에 감복하게 하면 무기를 쓸 것도 없이 앉아서 한 진(鎭)을 얻게 된다.” 하고, 혹자는 “우리의 족속이 아닌 이상 그들의 마음씨도 반드시 다른 것인데 헛되이 국가의 비축만 소비했다가 그 보상을 얻지 못하게 된다면 다만 오랑캐의 계교에 빠지게 되고 도리어 일본의 원망만 사게 된다.”합니다. 이 두 가지 말은 하나가 옳으면 하나는 옳지 못하니, 역시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걸 보면 햇볕정책 생각나지 않으세요? 강한 바람으로 옷을 벗기냐, 햇볕으로 옷을 벗기냐. 지금도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500년 전에 율곡선생이 했던 고민이 오늘날의 고민인 것이죠.

 

대마도의 귀화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우리 백성이 그의 도움을 얻게 하고자 하는 것인데, 만약 곡식을 주었다가 속임을 당하고 보면 이것은 백성을 야위게 하고 적을 살찌게 하는 것입니다. 공전(攻戰)하는 기구는 우리 백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니, 쓸모가 있고 해가 없는 것이면 버려서는 안 됩니다.

 

전쟁을 위한 준비를 포기하면 안된다, 국가의 식량도 주어선 안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을 힘쓴다.’는 것은 안을 중하게 여기고 밖을 경하게 여겨야 함을 말함이요, ‘요령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중에서 중도를 써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함축적이지만, 앞으로 정부가 나아갈 책략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이 중요하다. 정부는 국내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남한 내부에 힘을 결집하는 것이죠. 요즘 젊은이 중에는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죠. 국제적으로 한국이 고립돼있고, 내부적으로도 고립돼있는데, 이걸 갈무리하고 재통합하고, 원초적 생명력(원기)을 앞으로 기르느냐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적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내 이익을 찾겠다고 하지 않고, 양보하고 큰 틀에서 단합하고, 내부적으로 역량을 키우고, 이렇게 하는 것이 먼 길인 것 같지만 가장 가까운 길이고 무엇보다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유학적인 관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퇴계 선생이나 율곡 선생도 관점이 달라요. 퇴계 선생은 일본을 수용하자는 입장이고, 율곡은 받아들이지 말자는 입장인데 다른 듯 보이지만 조선 백성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해요. 퇴계는 율곡보다 20년 전 사람입니다. 그때 상황과 율곡의 상황은 달라졌다는 거예요. 율곡의 상황은 내일모레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고, 퇴계는 좀 더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 상황인 거죠. 퇴계, 율곡 하면 아주 고답적인 성리학 사상이나 이야기할 것 같은데 이런 정치적 역할을 하는 것은 잘 못 보셨을 거예요. 이분들이 한편으로는 철학 공부를 하고, 한편으로는 국가 정책에 대해 개진하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예를 들어볼 때, 우리가 접하는 상황은 적어도 유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참여, 우리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하는 참여 의식의 리드를 종교계가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한국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힘을 합치자는 말을 해주는 종교적인 뉴스가 없다는 말이에요. 이런 것들은 좀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종교인들도 그야말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참여와 명상이라고 할 때 유교의 참여 의식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점을 이 두 유학자의 외교관, 정책관을 통해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