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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지리산의 '낙장불입'시인 이원규 님과 함께 한 4월 종교대화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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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감수성 기르기>를 주제로 한 종교대화강좌의 두 번째 강의가 지난 4월 14일 열렸다. 강의를 맡은 이원규 시인은 질끈 묶은 긴 머리가 바람에 헝클어진 채로 마치 퀵서비스 배달원을 연상시키는 바이크족 복장을 하고 강단에 올랐다.
지리산에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동안 길 위의 푸르름이 그대로 묻은 듯한 모습의 시인은 자신이 지리산에 들어가 살게 된 경위를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삶에서 직접 배어나오는 자연스럽고 진솔한 언어로 그는 ‘생태학’이라는 개념적인 단어를 머리 속에 막연히 잡고 있던 수강생들을 금새 무장해제시켰다. 자료로 자신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비롯, 자연과의 교감을 표현한 글 네편을 나누어 준 그는 자연과 사물과의 교감이 어떻게 문학으로 탄생하는지를 특유의 유쾌한 방법으로 풀어나갔다. 인위적인 만듦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대상의 느낌을 발견하고 여과 없이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임을 시인은 강조했다. 즉, 내 몸 가까이 있는 것들의 실체를 바로 보는 것이 그가 이야기하는 창작론이었다.
강의를 통해 풀어놓은 자연인으로서의 시인의 행보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부러움과 경탄을 자아냈다. 온 국토의 땅을 방구들삼아, 모든 동네의 당산나무를 지붕삼아 돌아다니는 그에게는 마주치는 꽃잎 하나, 돌멩이 하나도 글의 소재가 되어 온갖 사연을 이야기해준다.
우리가 마주치는 대상들 안의 수많은 이야기를 발견해 내는 감수성, 그 당연한 교감의 능력을 우리 다수는 잊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환경 보호를 외치기 전에, 생태학 이론을 들먹이기 전에 나보다 더 많은 사연을 품고 서 있는 매일 보는 나무 한 그루, 발 밑의 흙 한 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능력을 가슴에서 끄집어내야 함을 일깨워 준 시인은 다시 긴 머리채를 휘날리며 지리산을 향했다.
----이원규 시인에 대하여---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시인은 1984년 《월간문학》에 시 〈유배지의 풀꽃〉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고, 1989년 《실천문학》에 연작시 〈빨치산 아내의 편지〉 15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에 나섰다. 1998년에 제16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으며, 2004년에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을 받은 그는『옛 애인의 집』『돌아보면 그가 있다』등의 시집과 산문집『벙어리 달빛』등을 펴냈다.
2000년 지리산 실상사의 수경스님과 황지연에서 을숙도까지 1300리 길을 함께 걸은 첫 도보순례를 시작으로, 2002년에는 문규현 신부 등과 “무분별한 개발중심주의를 경계하라”는 목소리를 내며 전라북도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지원했다. 2004년에도 제주도를 포함해 대한민국 땅 소읍 여기저기를 두루 밟는 도보순례를 했으며, 2008년 봄에 종교인·일반 시민·동료 시인 박남준과 함께 ‘한반도 대운하 건설 반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과 금강 일대를 100일 이상 걸었다.
2008년 현재 14년째 지리산의 빈집이나 절방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자신이 머무는 토방을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곳’이라는 뜻의 피아산방(彼我山房)이라 부른다. 누구나 찾아와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도록 열려 있다.
현재 동료 작가 공지영이 이원규 시인과 박남준 시인의 지리산 생활을 ‘공지영의 지리산행복학교’ 라는 제목으로 경향신문에 연재 중이다. 이 글에서 이원규 시인은 ‘낙장불입 시인’, 박남준 시인은 ‘버들치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다음 링크에서 최근 이원규 시인이 새집으로 이사하던 에피소드를 다룬 ‘낙장불입 시인 이사하다’라는 글을 볼 수있다..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1004061737145&code=90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