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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10-07-2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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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강의 때 이문재 작가님이 소개해 주셨던 글입니다.
 
 
 
 

오줌이 누고 싶어서

변소에 갔더니

해바라기가

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

나는 안 비에(보여)줬다

-이오덕 지도, 경북 안동 대곡분교 3년 이재흠, 1969년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

뒷다리 두 개를 발발 떨었다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

나는 죄될까봐 하늘보고 절을 하였다.

-이오덕 지도, 경북 안동 대곡분교 3년 백석현, 1969년

 

 

내 어릴 적 못물골 골짝에 예닐곱 살 먹은 일근이란 아이가 살았는데, 하루는 우리 동네로 놀러 나온 거야. 늘 산골에서 혼자 식구들하고만 지내다 보니 심심해서 나왔겠지. 동네 애들하고 비석치기 하다가 싸움이 붙은 거야. 못물골 일근이하고 우리 동네 춘근이하고. 어린아이들 싸우는 것 보면 몸으로 엉켜붙어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잖아. 입으로는 온갖 욕을 다하잖아. 그래 춘근이가 먼저 욕을 시작한 거야. “야이 씨발놈, 개새끼야, 좆만새끼, 호로자식…” 이렇게 춘근이가 한바탕 욕을 끌어붓자, 멍하니 듣고 있던 일근이가 맞서 대거리를 한다는 것이 이러는 거야. “야이 참나무야, 대나무야, 밤나무야, 옻나무야…” 못물골 일근이는 그때까지 욕을 몰랐던 거지. 늘 보고 듣는 것이라고는 소나무, 대나무, 밤나무, 노루, 산토끼,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이런 것뿐이었으니까.

-구자행 구술, 『삶을 가꾸는 글쓰기』 2001년 4월호 

 

 

 

팔원 八院

--서행시초 3

 

백석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리 묘향산 백오십리

묘향산 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쌔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빈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장편(掌篇) 2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묵화(墨畵)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송아지

 

정현종  

 

내가 미친놈처럼 헤매는

원성 들판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세상에 나온 지

한 달밖에 안된!

송아지

 

너 때문에

이 세상도

생긴 지 한 달밖에 안된다!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옹달샘

 

엄재국

 

 

경북 문경시 산길 깊은 내화리

 

사과를 주렁주렁 매단 사과나무 한 그루가 명찰을 달고 있는데요

 

“지나다 목마르면

하나 따 드세요“

 

까치밥에 사람 밥 얹어 매달아 놓은 주먹만한 물통들

목젖 가득 찰랑대는 물소리

   

 

선물의 집

이창기

 

 

치매로 실종된 쌍둥이 할아버지에게

눈에 익은 과수원 길 한 세트

아무렴 그렇구말구

 

생일도 잊은 채 고추 따는 아이에게

반가운 친구 한 다스

아무렴 그렇구말구

 

글모르는 김서방 회갑 잔치에

글자 없는 책 한 마지기

아무렴 그렇구말구

 

자식 잃고 먼 길 떠난 친구 부부에게

답장 붙은 편지 한 축

아무렴 그렇구말구

 

멀리 벨로루시에서 시집온 심약한 소냐에게

약국에서 산 희망 한 갑

아무렴 그렇구말구  

 

 

손목

 

윤제림

 

 

나 어릴 때 학교에서 장갑 한 짝을 잃고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고 엄마한테 쫓겨났지

제 물건 하나 간수 못하는 놈은

밥 먹일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문을 닫았지

장갑 찾기 전에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며.

 

그런데 저를 어쩌나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손목 한 짝을 흘렸네

몇 살이나 먹었을까 겁에 질린 눈은

아직도 여덟 살처럼 깊고 맑은데

장갑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한하운처럼 손가락 한 마디도 아니고

발가락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어찌할거나 어찌 집에 갈거나

제 손목도 간수 못 한 자식이.

저 움푹한 눈망울을 닮은

엄마 아버지 아니 온 식구가, 아니

온 동네가 빗자루를 들고 쫒을 테지

손목 찾아오라고 찾기 전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찾아보세나 사람들아

붙여보세나 동무들아

고대로 못 붙여 보내면

고이 싸서 동무들 편에 들려 보내야지

들고 가서 이렇게 못 쓰게 되었으니

묻어버려야 쓰겠다고

걔 엄마 아버지한테 보이기라도 해야지

장갑도 아니고

손목인데.

 

 

이방인

 

김영승

 

버스비 900원

버스 타서 죄송하다고

百拜謝罪하며 내는 돈

 

화장실 100원

오줌 눠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아들 고등학교 신입생 등록금 사십오만 구천오백 팔십 원

학교 다녀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상갓집 부조금 3만 원

살아 있어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공중전화 100원

말 전해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돼지고기 한 斤 8,000원

처먹어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

 

서러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 있는 것이다

恨이 있기 때문에

 

含笑入地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