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
씨튼연구원은 영성의 토착화와 종교간의 학문적 대화가 목적입니다.
공지사항

강좌안내 2014년 11월 이남곡 이사장님 강연 녹취록입니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14-11-21 15:39

본문

첨부파일

11월 종교대화강좌

이남곡 선생님

 

저는 뚜렷한 종교적 체험 같은 것은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을 훑어보면 종교성이 있는 사람 같아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불교학생회에 참가했어요. 그때 사귀었던 분 중에 스님이 된 분도 있습니다. 저는 대학 2학년부터 길을 달리하게 시작했습니다. 변혁운동으로 가면서 종교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남아있는 종교성이 아까 말씀하셨지만 사회변혁운동하던 게 79년에 어떤 사건과 연관되면서 4년 징역을 살았는데 그 전에 저는 벌써 사상이라고 할까, 인생관을 전환하게 됩니다. 그 사건과 결별하고 나서 1년 있다가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찬송가가 들려왔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찬송가가 복음성가일 거예요. “내일이면 나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라는 찬송가가 있어요. 그걸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종교적 체험은 이런류의 체험입니다. 강렬하기 보다는 은은한 체험인데, 그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자기를 통째로 맡기는 수동성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공자를 64세부터 만났는데, 동양엔 오래전부터 있던 사고방식이 있어요. 수동적으로 나를 천명에 맡긴다는 거예요. 진인사대천명. 단지 완전히 소극적은 것이 아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자기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예요. 소극적 수동성이 아니라 적극적 수동성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옥에 들어가서 제일 영향을 많이 주었던 분이 사르테 신부입니다. 제가가지고 있었던 과학적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구체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전엔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면, 혁명을 하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구조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사상체계를 뛰어넘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죠. 사르테신부의 영향을 많이 받고 나와서 정토회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새로운 시기를 모색하던 시기에 제가 연구소 소장을 하면서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명 이 세 가지가 하나의 고리가 되었지요. 그런데 연구하는 일을 몇 년 하다가 다른 욕구가 내면에 있는 거예요. 머릿속의 이념은 그렇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차에 만난 것이 야마기시라는 일본에서 시작된 무소유 공동체였습니다.

야마기시를 안만났더라면 제가 무언가를 했을 겁니다. 야마기시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실현한 사람들이 이어졌으니까 거기서는 공동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야마기시 실현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야마기시 실현지에참가하는 것을 참획이라고 합니다. 단지 현상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자로서 함께 한다,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년을 살았습니다. 세 가지 이념이 있는데 무소유, 무아집, 일체 였습니다. 대단한 이념이지요. 무아집, 무소유, 일체. 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종교가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종교성이 강하게 있는 것은 사실이예요. 우리는 삶을 통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아집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무아집 무소유에 바탕을 두고 사회를 만드니까 부작용이 생기는겁니다. 그리고 부작용이있는데 말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내부에 쌓이는 것입니다. 조정을 통해서 물건의 사용 순서를 정하는데 만약 그것에 대해 불만을 말하면 아집이 있는 사람이 되니까 내부에 쌓이는 것입니다. 시스템과 지향하는 이념이 어긋나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와서 장솔이라는 곳에 예순살에 들어갑니다.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찾아서 지금 장수에 저희 부부가 들어왔습니다. 10년 전에는 벌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8집이 살고 아이들도 6명이 됩니다. 시골에서 괜찮은 마을입니다. 일체 규범도 틀도 없습니다. 인근에 귀농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대화도 나누고 소통을 해보고 싶은데 힘들더라고요. 사람들이 조금만 이해관계가 걸리면 대화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생각이 조금만 다르면 이야기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성인을 가운데에 두고 독서회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사실은 전부 거기 모인 사람들이 논어 등 동양사상을 체계적으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저는 60대 들어서 공자를 만난게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도 일종의 종교적 체험을 합니다. 매주 빠짐없이 2년동안 논어강독을 했습니다. 제가 했던 새로운 소통방식이 연찬이라는 것인데, 새로운 소통 방식을 했을 때 논어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제가 인문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인문운동의 도구로 공자를 쓰는 것이지요.

관계영성은 논어의 핵심입니다. 공자의 이야기는 관계영성입니다. 사람들 관계가 어떤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 사이가 왜 안 좋을까요? 우리 삶 속에서 결국 침범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를 침범할 때 사이가 안 좋아집니다. 지금 현상적인, 가장 눈에 띄는 침범이 뭔가요? 이번에 세월호 겪으면서 대단한 참극이었지만 국민들에게 선물을 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한 마음이 되었던 적이 월드컵이나 IMF 때 금모으기 운동 같은 것을 떠올리는데, 이런 경험과 다른 성격으로 한마음이 되었던 일이 세월호 참사로 가능했습니다. 누군가는 거룩한 한마음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참극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는 나도 책임이 있다는 것, 공동 책임이 있다는 의식을 사람들이 했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있었기에 세월호 참극이 발생했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잘못했다’ 용서해라 했던 것 아닌가요? 그렇기에 거룩한 한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200일이 지났는데 어떻게 거룩한 마음이 잘 작동하는 것 같나요? 원래가 거룩한 마음은 오래가는 마음이 아닙니다. 또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기도 합니다. 편가르기라는. 그렇다 보니까 거룩한 마음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 거룩한 마음마저도 편을 가르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 민주주의가 발달했음에도 개인중심의 민주주의라 이기적이라 서로 다툰다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새 세대간의 격차가 큰 이유중 하나가 서로 살아온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나처럼 해방둥이와 국민소득이 높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굉장히 다릅니다. 후자의 사람들은 지금의 후퇴가 걱정스럽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어느 수준으로 후퇴하지는 않을정도로 올라섰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돈이 지배하는, 그리고 개인중심이기에 차가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돈이 지배하는 차가운 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세월호의 고귀한 선물을 살려야 합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사이가 안 좋은 이유는 물질적인 이해관계가 걸렸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이 많지 않다고 봅니다. 종교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공자는 이에 대해서 현실적인 접근을 합니다. 한편에서 물신지배사회이다보니 물질을 경시하고 무시하고 사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 역시 극단입니다. 공자는 물질과 정신을 균형적인 시각을 통해 바라봅니다. 물질은 불행의 조건이 아니고 행복의 조건입니다. 단지 물질을 불행의 조건으로 만드는 현실이 있을 뿐입니다. 공자가 어느날 제자들과 마을을 지나가는데, 제자가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무엇을 해야하냐고 공자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부유하게 해줘야한다’고 말합니다. 공자는 근엄한 도덕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논어를 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논어 첫머리를 보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라고 합니다. 열과 락을 이야기합니다. 공자는 기쁨과 즐거움을 말합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이 말이 논어에 나오는 말입니다. 공자는 물질이 풍요해야 정신이 성숙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질은 정신의 필요조건입니다. 제자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하냐고 공자에게 묻습니다. 그러니 공자가 ‘교’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자에 대한 오해중 하나가 가르치는 사람, 스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는 다 알아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공자 정체성의 핵심은 스스로 말하기를, 10집만 되는 동네에 가도 나만큼의 충과 신이 있는 사람은 있지만, 나만큼 ‘호학’,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공자는 현실적인 입장에 서있어요. 물질이 성숙해야 정신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자가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가난한 사람이 아첨하지 않기는 어렵다. 상대적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정신적 성숙이 있으려면 물질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성찰입니다. 그런데 교만하지 않은 부자를 별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정신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천민자본주의라는 것이지요. 물질적인 궁핍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정신적인 성숙을 기대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종교이기도 합니다. 공자는 부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공자는 “내가 부유할 수 있다면 마부라도 하겠다”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 마부는 천한 직업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공자는 물질을 필요조건으로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롭지 않은 부는 뜬구름 같다”. 이 말에 같이 생각해볼 지점이 있습니다. 논어에 따르면 공자의 핵심사상을 ‘인’이라고 합니다. ‘인’하지 않음은 ‘불인’입니다. 공자는 ‘불인’을 미워하기는 쉽지만, ‘불인’에 물들지 않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이후에 ‘불인’한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큽니다. 사실 분노와 미움은 쉽지만, 스스로 물들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이 물들었는지를 자각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제자가 묻습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는 대답합니다. “그것도 좋지만 ‘빈이락’만 못하다”. 요즘 이대로 소비를 하면 인류가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렇게 소유와 소비 위주로 산다면 인류도 지구도 망할 거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래서 ‘공생공빈’하자고 말을 합니다. 같이 살고, 같이 가난해지자는 것입니다.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발적이라는 말이 앞에 붙은 이유는 그 자체가 기쁨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야 합니다. 만약 가난이 기쁘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습니다. 공자는 ‘빈이락’이라는 말로 이 지점을 지적합니다. 안빈낙도라는 말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안빈’ 미워하거나 아첨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가난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도’는 깨달음, 영성의 세계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정신적, 영적 예술적 가치 또는 욕구가 ‘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즐기는 것이지요. 우리는 물건에 대해서 자신이 탐내고 챙기고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일이 너무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숭고한 것을 지향하는 품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개화되어야 하는데 억누릅니다. 물질은 피어나는데 이 품성이 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명상이나 수행을 통해서도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삶 속에서 맛을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물질적인 이해가 걸렸을 때 양보해보자는 겁니다. 양보했을 때 오는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하면 양보하고 싶은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아래있던 숭고한 품성을 돋운 것입니다. 만약 이런 마음이 집단안의 문화로 잡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욕구의 질이, 정신적인 부분이 바뀌어야 합니다. 정신적인 기쁨, 예술적인 기쁨이 커지고 감성이 해방되면 물질적인 욕구가 잦아들기 마련입니다. 물질을 둘러싼 침범이나 관계의 소원해짐이 줄어듭니다. 이것이 논어를 통해 공자가 제시하는 물질주의 사회를 넘어서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요새 눈에 보이는 침범을 막기 위한 제도 법률이 잘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눈에 안 보이는 침범입니다. 마음의 침범. 어떤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생각이 달라서가 이유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바꿔본 일이 있습니까? 상대의 변화는 상대 스스로가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타인을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사이가 나빠지는 것은 서로 강요하고 마음을 침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그만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바뀌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의 변화는 상대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기도 합니다. 자신이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공자는 사람을 둘로 나눠 이야기합니다.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동물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 공자는 이런 사람을 소인이라고 부릅니다. 이에 대칭점에 있는 사람이 군자입니다. 논어에 보면 소인과 군자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공자는 일종의 인간의 진화를 이야기합니다. 소인으로부터 군자로의 진화인데, 핵심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부터 이것을 넘은 사람입니다. 자기중심성을 동물성이라고 본다면 이것을 넘어선 것을 신성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동물성에서 신성으로 진화하는 존재라고 말한 것이 사르트르입니다. 소인의 특성은 “동이불화”입니다. 내 생각을 같게 하는 것. 침범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생각에 타인의 생각을 맞추는 일. 파커파머라는 학자는 사람이 모이면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갈등이 있는 상태에서 나아가는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부서져 흩어지거나, 깨어 열리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성, 아집이 깨져서 상대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관계영성은 사이좋은 것인데, 내면의 기쁨으로부터 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이가 좋아야 한다고 해서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게 아니라 정말 기쁘기 때문에 사이좋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군자의 가장 큰 특성은 상대를 나와 같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공자가 이야기할 때 친구한테도 두 번 충고하지 말라고 해요. 여기엔 여러 의미가 있는데, 사람은 스스로 마음을 바꾸기 전에 바꿀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충고를 빌미로 자신 생각을 강요하는 행위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군자는 화이부동의 특성을 갖게 됩니다.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자기한테 맞추려고 할까요. 이에 대해서 공자의 뛰어난 성찰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공자가 한 말가운데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이 많이 간과되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무소유 공동체에서 연찬이라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 중요성이 와 닿았습니다. 연찬은 무지, 공공, 갈로 이루어져 있는 대화방식입니다. 공자는 “내가 아는 것이 있느냐 아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무지입니다. 그런데 누구라도 나에게 물으면, 어떤 세상의 일이 발생하더라도 피하지 않고 텅 빈 데서(공공) 출발해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샅샅이 두드려서 끝까지 밝히겠다고(갈) 말합니다. 이 “갈”을 가르침으로 해석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공자는 자신을 밝히고 탐구하는 사람이지 가리키는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는 가르침을 추구하지만 공자는 끝까지 관철하고자 합니다. 공자의 핵심은 무지의 자각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공자만 한 것이 아닙니다. 2500년 전 동시대에 뛰어난 인류의 선각자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무지의 자각을 행한 자로 그리스에 소크라테스가 있었고, 불교에서도 화두가 바로 이것입니다. 현각스님도 only don't know 라는 말을 하셨죠.

인간은 실물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무지의 자각입니다. 모두 사실을, 실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감각에 기반해 망막에 맺힌 상을 볼 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인식하는 것은 감각기관을 통해서인 것이고, 판단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축적된 정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에 대한 자각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나의 감각, 나의 판단과 상대의 감각, 상대의 판단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어떤 말에도 화가 나지 않는 상태를 공자는 이순이라고 하지요. 자각이 높아지만 사이가 나빠질 일이 없습니다. 사이가 나빠진 바탕엔 내가 보는 것, 내가 판단하는 것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무지의 자각이라는 출발에 서서 연습한다면 깨우침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부자연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사이좋음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자각, 욕구의 질을 바꾸는 것, 무지를 자각함으로써 사이좋게 되는 것이 저의 인문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