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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안내 2015년도 5월 강의 녹취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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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15-05-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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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종교대화강좌

인권의 관점에서 본 소통과 공감(김성경 교수님)

 

‘인권적 관점에서 본 소통과 공감’이라는 큰 제목을 받았고, 제가 잘 아는 분야에서 강의를 해야겠다 싶어서 ‘북한’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뜬금없긴 하지만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저는 북한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국이라는 명칭이 불편하게 느껴져서, 위에 있는 나라를 북한이라고 한다면 여기는 남한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북한을 ‘한 가족’, ‘한 나라’라고 해주셨지만 북한에 대해서 적대적인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광화문에서 시위가 있으면 양쪽으로 나뉘어서 진행되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종북’입니다. 북한을 따른다는 것인데 이것이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현실입니다. 북한에 대한 담론은 우선 인권이 열악하다, 독재국가, 자유와 평화가 없는 나라, 그런식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있고 또한 이러한 부정적인 나라를 남한처럼 바꿔야 한다,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시선에 질문을 가져보는게 어떨까 하는 기본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강좌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키워드입니다. ‘인권’, ‘평화’, ‘탈분단’.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인권이 유지되었을 때 평화로운 사회인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인권과 평화를 얻어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 분단체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세월호 문제가 나와도 ‘종북좌파’ 이야기가 나옵니다. 분단체제 하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와 인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탈분단이라는 말을 써보았습니다.

 

학적으로 다른 이야기인데 분단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통일, 대화, 소통과 같은 대답을 해주셨는데, 저는 통일이라는 말이 부담스럽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동질감과 연대감을 주어서 좋게 느껴지지만 폭력적인 발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사람’이라고 했을 때 한국을 하나로 명명하는 순간부터 한국 내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너의 생각을 버리고 한국사람이 되라’는 시선이 강력하게 남게 됩니다. 특히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사람은 북한에 반대되어야 합니다. 한국사람은 북한을 싫어해야하고, 적대하는 관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군가 북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대화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국인이 하나로 되는 것에 허용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이 그래서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저는 사회학을 했는데 다른 주제의 연구도 하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다가 처음에 북한대학원에 와서 항상 ‘통일’을 이야기 하는 것이 무섭더라구요. 너무 쉽게 통일을 이야기 합니다. 통일은 어려운 이야기이고 심지어 남한사회도 하나가 될 수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개념은 ‘탈분단’입니다. 통일이 되어서 두 개의 국가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분단상태를 벗어나보자는 것입니다. 같은 이야기 같지만 다른 이야기입니다. 통일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시스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안으로 북한을 끌어들인다는 것인 반면, ‘탈분단’이라는 것은 두 체제, 혹은 특수한 관계로 두 나라가 공존하는 대신 적대적인 마음을 갖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되 적대하지 않겠다는 것이 탈분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이 이야기 하는 것이 ‘대화’입니다.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보고, 저곳도 똑같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적대하고 있는 모든 것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제가 오늘 드린 유인물의 맨 뒤편을 보시면 ‘세계인권장전’을 제가 첨부했습니다. 1948년도에 선언이 된 것입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선언된 것입니다. 이 인권선언이 제대로 작동하기 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70년대 넘어가면서 사회주의 혁명들이 일어나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생겨나면서 인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많이 인용되는 두 개의 조항을 슬라이드에 써보았습니다. 인권이라면 내가 인간이라면 태어나는 이상 당연히 가질 권리라고 광의의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리를 가질 권리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사회적 권리도 되고 경제적 권리도 됩니다, 내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고 남을 배려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권리를 인권이라고 합니다. 많은 조항이 있는데 자유민주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제일 많이 알려진 것처럼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 자유로운 사고에 바탕을 둔 것이 인권선언이죠. 그것이 인권선언이 첫 번째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인권은 근대적인 개념입니다. ‘신’중심의 사회, 전통사회에서는 인간이 갖는 권리에 대한 논의가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권리가 논의되는 시점은 근대로 이행하는 시점입니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시점이지요. 근대사회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들-인간은 존엄하다, 인간은 자유롭다. 형제를 갖는다-은 실제로 시작되는 시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계몽시대입니다. 제가 이 단어를 좋아합니다. enlightment(인라이트먼트). en은 능동을 만들고, lightment 는 불을 밝힌다는 것입니다. 어둠의 시대에서 불을 밝힌다는 뜻인 것입니다. 중세는 신의 사회입니다. 교황이 힘이 강하고 모든게 종교의 뜻으로, 신의 뜻으로 이루어지는게 전통사회였다면 여러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프랑스 혁명, 산업혁명, 독립전쟁 이런 것을 경험하면서 근대적인 인간에 대핸 논의가 나옵니다. 이제 신을 따를 필요가 없어집니다. 인간이 이성과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을 활용해서 설명하고 답을 내리고 과학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인간관을 바탕으로 인권선언이 나옵니다. 사회의 중심이 신 중심사회에서 인간중심사회로 변합니다. 우리가 계속 이성을 이야기 하는 이유입니다.

인간이 이성적이고 자유롭고 평등하고 형제애가 있다는 개념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근대적 인간이 무엇을 했냐면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2차대전 1차대전을 생각해보시면 대량학살이 있었습니다. 나치의 대량학살은 근대적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성을 활용해서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사람을 대면해서 총을 쏴서 조준하는게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을 죽였을때의 죄의식이 엄청나서 가스실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가장 근대적인 매체인 기차를 이용해서 수천명을 이동시켜서 캠프에서 가스라는 효율적인 방식으로 죄의식을 주지 않으면서 학살을 합니다. 2차 세계대전에 충격을 받고 사람들은 근대적인간이 예전의 어둠의 시대보다 못할 짓을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온 것이 세계인권선언입니다.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 이성과 양심을 바탕을 두고 남들을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조항입니다. 두 번째 조항에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나아가 개인이 속한 나라나 영역이 독립국이든 신탁통치지역이든, 비자치지역이든 또는 그 밖의 다른 주권상의 제한을 받고 있는 지역이든, 그 나라나 영역의 정치적, 사법적, 국제적 지위를 근거로 차별이 행하여져서는 아니 된다.”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서구적인 개념입니다. 이슬람 내에서의 여성차별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이 걸프전을 시작할 때 이슬람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를 하면서 이유를 만들었습니다. 보편적 인권이 문화와 종교적 가치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슬람적 사고에서는 자신들의 논리구조 위에서 여성의 특수한 위치가 있습니다. 1세대 인권은 보편적 권리를 말합니다. 시민적 자유, 정치적 권리를 말한다면 2세대 권리는 경제적, 사회문화적 권리를 강조합니다. 일할 권리 문화적 삶에 참여할 권리를 말합니다. 2세대 권리는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 고무되었는데,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기본적으로 다 평등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이념적으로 볼 때는 이상적입니다. 물론 작동의 문제는 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에 인권이 고무되었다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로 복지논쟁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3세대 인권은 연대의 권리 혹은 공동체적 권리입니다. 이슬람 문화를 믿고 있다면 그것을 표출할 권리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인권과 세 번째 인권이 충돌하기도 합니다. 인권은 1세대부터 차례대로 3세대로 등장한다고 논의되지만 저는 순서의 개념이 아니라 지역마다 절충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라고 들어보셨나요? 94년도에 김일성이 죽습니다. 그 이전부터 동구권 사회국가의 몰락하면서 북한의 경제가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사회주의는 배급국가입니다. 고난의 행군동안 80에서 90만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때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인권에 의해 지원을 해야했던 것이지만 남한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무너지면 통일하면 되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식량이 공급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대통령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무너지면 통일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북한 인권을 남한에서도, 미국에서도 이야기합니다. 인권의 문제가 정치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한 내에 있는 각종 수용소에서의 인권윤리상황과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의 인권유린상황이 있습니다. 현재 2만 7천명 정도 들어와 있습니다. 중국이 이 사람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주지않습니다. 국적도 없고 중국을 헤매고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 당시에는 100만명이 나왔다고 하지만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인신매매가 되기도 하고 중국남자에게 시집을 가기도 합니다. 이들의 권리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떠돌이가 되고 항상 숨어지내고 힘들게 지냅니다. 중국인 남편이 폭력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여성들의 자식들 중국 국적을 가질 수도 없고 5만에서 10만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인권문제가 있는데 두 번째 인권문제만 주목합니다. 정치범 수용소와 노동단련대. 북한 정부가 그들의 인민들에게 하는 문제에만. 북한의 인권문제 있습니다. 남한의 인권문제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관되게 제시를 해야하는데 인권문제가 정치화되면서 우리가 원하는 인권문제만 이야기합니다.

 

북한사람들을 난민이라고 봐야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UN의 판단으로는 자의적으로 국가에서 나왔기 때문에 난민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때 두려움을 고려한다면 현장난민으로 해야한다고 합니다. 많은 수의 북한 난민들이 나왔을 때 90년대 2000년대 초반에 정권이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해서 규율이 무너진 상황이 많았습니다. 어린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꿀밤정도 맞았고, 어른들 같은 경우는 몇 달 감옥에 있다 나오고 했다고 합니다. 현장난민으로 보기에도 여러 이주의 양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이탈주민들 같은 경우에도 난민이 되는 이유가 다양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나 다 현장난민이니까 시리아 난민처럼 대우해달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각각의 사람마다도 다릅니다.

남한에서는 제대로된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죠. 1세대 인권과 자주권이라는 북한이 자기의 국가를 지키려는 권리도 같이 한번 논쟁해야 합니다. 인권을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을 평등한 주체로 놓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미개하니까 바꿔야한다는 자세로는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은 자주집단이 아니고 괴뢰집단입니다. 괴뢰집단이 불법적으로 남한의 영토를 점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으로 오면 바로 국적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탈분단이란, 인권이란 평화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주권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들은 아파트를 빌려서 굶고 있는 어린 청소년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성경책을 읽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습니다. 북한정권에게 세뇌당한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다시 벗어나게 한다고 정당화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교하기 위해 다시 북한으로 들어갑니다. 교회가 국내에서 성장동력을 잃으면서 해외선교에서 다시 그 동력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체제가 차라리 안정화되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고 봅니다. 코너에 몰리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굶지 않을 수 있도록 한다면, 원조를 기반해 지금까지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중요한 순간에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사람들이 지금은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죠.

 

이탈주민들과 같이 있으면 그 순간이 정치문제가 아니라 미세하게 감정적인 다침이 있습니다. 진심을 다해서 마음을 다했는데 받아들이지 못하면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전히 국가가 강하게 서로의 기반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죠. 북한이탈주민들과 남한대 북한 축구경기를 보러 갔었습니다. 저는 북한을 응원하고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을 응원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북한과 이야기 하겠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국민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결승골을 북한축구팀이 금메달까지 땁니다. 객석이 조용해진 가운데 북한이탈주민들이 경기결과를 보고 좋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극적인 순간에 느낀 것은 저에게도 이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국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속에서 그들은 북한에 대한, 저는 남한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 분단이라는 것이 이렇게 깊구나 느꼈습니다. 대화하자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 그들 마음속에 내재화되어있고 내재화된 마음을 어떻게 하나로 만들어요. 평화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대화를 하고 제 3세대 인권의 관점에서 그들을 이해해 주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과 이웃하기, 남북대치상황에서 인권의 문제를 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탈분단의 문제를 시도해보자. 그렇게 하기 위해 북한을 이웃으로, 동등한 주체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은 세뇌 당했고,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북한에도 수영장에도 있고 스키장도 있고 해수욕도 가고 사람들은 싸우고 사랑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별별 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북한을 보지 않습니다. 이런 시각이 북한과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