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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안내 2016년 3월 종교강좌 <주역을 통한 시대읽기 1>녹취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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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16-03-2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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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대화 3월강좌 2

 

                                                              주 역

                                                                                                  최 현 민

 

주역은 말 그대로 주나라의 역입니다. 易은 바뀔 역자로 결국 주역은 변화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양의 변화를 역으로 표현하는 것이 역자의 근본의미입니다. 해가 떴다가 지는 것처럼 만물이 변화한다는 의미를 易자가 담고 있습니다. 주역은 점치는 책입니다. 점쳤던 결과를 기록에 남긴 것이 주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역은 相命占 이렇게 나눈다고 합니다, 相은 관상, 수상은 손과 얼굴로 보는 것, 命은 사주팔자를 통해서 천명과 운명을 알아보는 것을 말합니다. 相과 命이 이미 결정된 운명을 엿보는 것에 반해 占은 미래, 앞으로 올 것에 대한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서경의 홍범을 보면 “우환이 있을 때, 임금은 먼저 자신에게 묻고 그 다음 조정 대신에게 묻고 그 다음에는 백성에게 묻는다. 그 다음에도 판단이 되지 않을 때는 복서(점치는 이)에게 묻는다.” 즉 임금이 점을 쳤다는 것이죠. 점괘와 백성과 조정과 임금의 뜻이 일치될 때 이를 대동이라 합니다. 대학축제의 대동제는 여기서 나온 표현입니다. 모두의 뜻이 일치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점을 쳤던 흔적은 거슬러 올라가서 BC 1200년에서 1040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거북이 등껍질과 소뼈를 사용해 점을 치곤 했습니다. 거기에 상처를 내서 구운 다음 균열의 모양을 점인이 해독하는 것입니다. 점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판단하고 임금에게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고 합니다.

중국 역사의 시발점은 하은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중 은나라 수도였던 안양에서 갑골문이 발견되었고 그 갑골문에서 점을 쳤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왕은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이었고 점을 해독하는 점인에게 명령을 해서 자신의 관심사를 점치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사냥은 언제 가는 게 좋은지, 추수가 잘 될 것인지, 국가의 흥망성쇠가 어떤지, 질병 재해 기타 등등 국가와 개인에 관련된 것을 점인에게 명령해서 점을 쳤습니다. 그것으로 상제의 뜻을 헤아렸다고 합니다.

은나라에서 상제는 최고 정점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상제 밑에 자연신이 있고 그 밑에 조상신이 있습니다. 제사장인 왕은 직접 상제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점을 쳐서 상제의 뜻을 헤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은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주나라가 주도권을 잡는데 주나라는 상제 대신에 최고신으로서 천신(하늘신)을 믿어왔습니다. 자신들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천명에 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의 天사상은 주나라로부터 시작됩니다. 은나라 때는 점을 거북 껍데기나 소뼈로 쳤는데 주나라 때에는 막대기를 사용한 시초점을 보았습니다. 뻣뻣한 나무줄기를 흔드는 방법으로 점을 쳤습니다.

주역은 점서였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럼 어떻게 주역이 하나의 유교경전 속에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하은주 시대 후에 부족국가 간에 잦은 싸움이 일어났는데 그 어지러웠던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합니다. 춘추전국시대에 하나의 나라로 통일시킨 것이 진나라였습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시키게 되는데 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법가사상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법가사상에 반하는 유교경전들을 다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주역은 유교경전이 아니라 점치는 책이었기에 제외된 것입니다. 이렇게 남겨진 주역에 유학자들이 유교적인 해석을 붙였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주역이 하나의 철학적인 책으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오면 각 제국들, 춘추시대는 12제국, 전국시대는 7웅의 많은 제국들이 부국강병을 위해서 곧 어떻게 하면 나라를 부강시킬 수 있을지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지혜로운 사람들을 찾게 됩니다. 그때 등장했던 사상가들을 제자백가라 합니다. 공자 장자 모두 제자백가 출신입니다.

주역은 크게 역경과 역전으로 나눕니다. 역경은 경전이라는 의미고, 역전은 이것에 해석을 붙인 해설서입니다. 역경과 역전의 기본적인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역경에는 8괘, 64괘, 괘사, 효사 가 있습니다. 효는 양ㅡ 음을 뜻하는--하나의 부호입니다. 음을 뜻하는 것을 음효이고, 양을 뜻하는 것을 양효라 합니다. 이 3효의 부화가 모여 하나의 괘가 됩니다.

건괘는 하늘을 상징하고 곤괘는 땅을 상징합니다. 건괘는 효가 세 개. 양효 세 개로 되어있고, 곤괘는 음효 세 개로 되어있습니다. 괘는 ‘걸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의미를 걸어놓는다는 것입니다. 건괘는 하늘이라는 의미를 걸어놓은 것입니다. 음 부호가 세 개 있는 곤괘를 보면 땅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팔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그 밑에 있는 태극마크 뭐가 떠오르시죠? 우리나라 태극기. 우리나라 태극기가 주역으로부터 왔습니다. “역유태극 시생양의”. 음과 양을 양의라고 합니다. 양의는 사상을 낳습니다. 사상의학, 사상체질 할 때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이 사상이 팔괘를 낳습니다. 팔괘는 길흉을 결정합니다. 태극을 보시면 점이 있습니다. 하얀 부분엔 까만 점이 있죠, 이것은 양의 정점입니다. 양의 정점에 도달하게 되면 음으로 바뀝니다. 음의 정점에서는 양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태극이 갖고 있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옵니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왔고 음양에서 사상이 나왔습니다. 四象은 사상체질에 쓰일 뿐만 아니라 춘하추동, 상하좌우, 동서남북에도 쓰입니다. 그리고 팔괘를 보겠습니다. 건괘를 보면 자연으로 비유하면 천이고, 성정으로 보면--, 건괘에 해당하는 가족은 아버지입니다. 곤괘는 어머니에 해당되죠. 장남은 음효가 둘에 양효가 하나입니다. 음이 많은 것은 엄마를 닮는다는 것입니다. 장녀는 양효가 두 개고 음효가 하나입니다.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는 것입니다. 이 뜻을 보면 아버지는 끊임없이 동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 반면, 어머니는 고요하고 순종하고 만물을 포용합니다. 양효는 위로 올라가는 성격이 있는 반면, 음효는 밑으로 내려오는 성격이 있습니다.

장남을 보면 양이 아래에 있습니다. 아래에 있으니 위로 올라가는 성격이 있습니다. 폭발적인 힘이 있어서 땅에서 올라오는 성격이, 계절로 따지면 봄의 성질이 있습니다. 차남의 효는 음효 사이에 양효가 끼어있는 상태입니다. 자연으로 보면 ‘水’로 되어있습니다. 하늘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삼남의 경우는 양효가 위에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고 그친 것입니다. 장녀는 밑이 음이고 위가 양이 되어있죠. 음은 밑으로 내려가는 성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디든지 스며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차녀의 경우는 불을 상징한다, 양효 사이에 음효가 걸려있습니다. 태양이 중간에 걸려있다고 해서 火 삼녀의 효는 양이 밑에 있고 음이 하나가-내려가고 올라가서 만나죠. 만나니까 기뻐요. 그래서 기쁠 悅의 의미를 지닙니다.

태극기를 보면 팔괘 중에서 건곤감리으로 되어있습니다. 감은 물, 리는 불, 우리 태극기는 팔괘 중에서 하늘 땅 물과 불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국기보다 심오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태극기입니다.

효사와 괘사를 설명드리겠습니다. 효사는 각각의 효에 대한 설명입니다. 괘사는 효 세 개로 구성된 괘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세 개로 구성되어있는 괘를 소성괘라고 하고 여섯 개로 이루어진 괘를 대성괘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성괘는 8괘, 대성괘는 64괘입니다. 괘사는 괘 전체상황을 말하고 효사는 괘를 구성하는 6효 하나하나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문을 보면, “건괘는 크게 형통할 것이니 곧아야 이롭다. (元亨利貞)” 이것이 바로 건괘의 괘사인 원형이정입니다.

重天乾. 이것은 건괘가 두 개가 겹쳐 있는 것으로 양효만 여섯 개가 되어있죠. 이것 전체가 건괘의 괘사입니다. 건괘의 괘사는 크게 형통하고 큰 제사를 지내기에 이로운 형상입니다. 크게 형통하고 이로운 형상이라는 뜻입니다.

건괘의 효사를 보면 초구, 상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는 양을 뜻합니다. 음은 육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초구는 맨 아래에 양효로 되어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효사가 잠용물용이다. 무엇에 잠겨있는 용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 주역책은 은유적인 표현을 많이 씁니다. 건괘는 용을 설명하는데. 상구는 끝까지 올라가는 용이기 때문에 뉘우침이 있다. 이것은 용의 변화를 통해서 세상만물의 변화, 끝까지 올라갔으니 좋다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면 위태로우니 후회합니다.

나의 능력은 2차적인 것이고 내가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 관계맺고 살아가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느 자리에 음이 있고 양이 있느냐에 따라 괘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은 바로 관계를 중시함을 말해줍니다.

대성괘는 소성괘가 겹쳐져 있는 것입니다. 대성괘는 두 소성괘의 성질과 위치에 따라 그 성격과 명칭이 정해지기도 하고 두 소성괘가 이루어내는 모양에서 명칭과 뜻을 취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27괘 ‘頤(턱 이)’괘는 간(艮 산)과 진(震,뇌)을 상하로 겹쳐 놓은 것으로 그 모양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상하의 입술과 그 가운데 치아(齒牙)가 있는 형상이다. 그 형상이 턱과 같아서 괘의 이름을 턱 이(頤)라 하였다.” 그래서 명칭을 그렇게 붙인 것이죠. 그래서 뜻은 “간(艮)은 산(山)이고 진(震)은 뇌(雷). 산 아래에 우뢰가 있는 형상으로 땅 속에 잠재력을 묻어두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기를 양(養)”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 합니다.

역전은 역경에 도덕적인 해석을 붙인 해설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10개의 해설서가 있습니다. 열 개의 날개라는 뜻으로, ‘십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단전상, 단전하, 상전상, 상전하, 계사전상, 계사전하, 문헌전, 설계전, 서계전, 잡계전 이렇게 10개입니다. 이것을 통틀어서 역전이라 하고, 10개이기 때문에 십익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 몇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역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계사전입니다. 총론을 담고 있는 해설서이기 때문입니다. 계사전만 봐도 주역 전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계사전 제5장을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한번은 음으로 한번은 양으로 변하는 것을 道라 한다.” (一陰一陽之謂道) <계사전>

 

변하지 않으면 도가 아닙니다. 도는 변하는 것입니다. 도가 정지되어 있고 이것이 도입니다라고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화시킵니다. 동양의 도는 변화함에 있어요. 함께 읽었던 계사전 3 10에도 태극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나와 있습니다. 태극은 해설서에 처음 나온 것입니다. 역경에는 없습니다. 태극은 원리, 천리, 생명의 원천, 원기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교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의 영’이니까, 성령이 되겠죠. 성령이 있어서, 그 기운이 있어서 모든 것이 변한다. 주역은 쉬지 않고 계속 변화하는 것. 그때그때 시간속에서 정확히 판단하고 일이 눈에 띄지 않게 변할 때 변화의 조짐을 아는 지기, 분별력을 키우도록 재촉합니다. 우리는 기미라는 말을 합니다. 조짐을 알아차리고 무언가 변화되는 감을 잡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잘 모르면 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요. 남녀가 사랑을 할 때 서로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 노력하죠. 예민성을 갖게 되면 상황을 금방 파악하게 됩니다. 이러한 예민성을 키우는 것이 ‘지기’입니다. 조짐을 아는 것이에요.

생태계가 이렇게 파괴되었는데에도 현대인들은 아직도 그 심각함을 읽지 못합니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정치계는 왜 그런 참혹한 사태가 생겼는지

그 기미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지요. 아니, 읽으려는 마음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이죠. 백성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대처하는데 눈을 감고 있으니 어떻게 해결이 되겠습니까. 두 사람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기미를 읽어내지 못하면 그 관계가 재대로 유지되기 어려운데 하물며 국가가 국민들의 마음을, 사회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과연 그 사회는 제대로 움직이겠습니까? 주역의 문언전에서는 지기知幾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합니다.

 

“때를 알아서 이르면 기미를 안다. 끝나는 것을 알아서 끝을 내면 가히 의로움을 보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윗자리에 앉아서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을 때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렇듯 지기는 기미를 읽어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조짐을 안다는 건 점쟁이에게 가서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파악해서 미리 내다보는 것을 말한다.”

 

역전은 점을 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기를 알아서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를 알려주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예민하게 파악하면 예방할 수 있는 것이죠. 모르면 더 큰 사태로 번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대사전 4장을 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는 움직임이 미묘해서 보일 듯 말듯한 것, 기자는, 기라는 것은 동집이다, 움직임의 미묘함이다. 기를 안다는 것은 움직임의 미묘함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계사전 5장을 보면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기미를 앎이 신묘하구나! .... 기미는 움직임이 아직 미미한 것이며 길한 조짐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다. 군자는 이 기미를 보고 행동하여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빨리 예민하게 대처하는 자가 군자입니다. 공자사상에서 핵심적인 존재는 성인이 아니라 군자입니다. 성인은 완성된 사람인데 반해 군자는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노력한다는 것은 기미를 알고 그 기미에 대처하는 자입니다. 기미를 알기 위해 군자는 자기 자신을 비우는 노력을 합니다. 자신을 비우는 것이 군자가 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도 여기서 만납니다. 자기로 꽉차있는 사람은 기미를 읽어낼 수 없습니다. 자기 중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릅니다. 자기를 비우고 상대에게 마음을 둘 때 기미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죠. 군자는 자기를 비우는 작업부터 해야 합니다. 함괘 <상전>에

 

“산위에 못이 있으니 군자는 그로써 자신을 비워 남을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 왕필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자신을 비워 사람을 받아들이니 만물이 이에 감응한다”

 

‘응’은 주역에서 아주 중요한 표현입니다. 감응은 움직여서 변한다는 것입니다. 기미를 읽어냈기 때문에 상황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역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상수역학과 의리역학입니다. 상수역학은 우주 질서를 상징과 수로 접근하여 전체 질서를 수량화 체계화한 것으로 우주 질서를 체계화 도식화 수량화하여 미래를 예측하여 점을 치는 역학을 말합니다. 의리역학은 역전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역학을 말합니다. 이번 강좌는 상수역학에 초점을 두지 않고 의리역학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대처할 것인가를 주역을 통해 배우고자 하기 때문이죠. 주역은 각각 단순하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효, 괘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일상 삶에서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어느 자리에서는 잘 맞고, 어느 자리에서는 잘 맞지 않고. 나의 존재가 어디에 위치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역사상을 계사전에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이것이 주역의 핵심입니다. 궁하다는 것은 막바지에 이르었다는 것입니다. 궁극에 이르면 변해야 되고 변하면 통하게 되고 통하면 오래갑니다. 그러나 만일 변하지 않으면 그냥 사라집니다. 변화해야 오래갑니다. 계사전에서는 변화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계사전 상 5장에 보면 “生生之爲易 생생이란 변화함을 의미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위를 통해본 주역의 관계론>을 살펴 보겠습니다.

“대성괘의 6효에서 위에서 1 3 5는 양효(陽爻)의 자리이고 2, 4, 6은 음효(陰爻)의 자리이다.

양효가 양효의 자리 즉 1, 3, 5에 있는 경우를 득위(得位)라 하고 음효가 음효의 자리인 2, 4, 6에 있는 경우도 득위라 합니다. 위를 얻었다. 반대로 효가 그 자리를 얻지 못한 경우, 이를 실위(失位)라 합니다. 양효가 음효의 자리 즉 2, 4, 6에 있는 경우는 실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음효가 양효의 자리인 1, 3, 5에 있는 경우도 실위입니다.

 

“이것은 내가 처해야 할 자리에 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준다. 다시 말해 자신이 처할 자리가 아닌 자리에 있을 때에는 불행하다. 자기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자기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고,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면 과감하게 내려올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득위와 실위 개념은 서구에서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과 다른 주역의 사유방식을 드러냅니다. 서구의 존재는 존재 그 자체를 보고, 그의 능력을 갖고서 평가하는데 비해서 주역은 그 사람이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두고서 판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