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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안내 2016년 6월 강좌 <논어읽기2-사람답게 살기> 강의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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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월 강좌
1. 八佾편(논어 3편)
14년에 걸친 공자의 망명은 실패로 끝났으나 그의 경험과 견식은 넓어졌고 그의 인격 성숙과 사상 심화는 더해졌다. 공자는 만년 5년간 교육사업을 폄으로서 많은 영재들은 노나라에 운집했다. 노나라는 학술의 중심지가 되어 중국 고대 문화의 집대성을 이루며 그의 제자를 통해 그 문화를 전승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처럼 노나라가 정치적 열세임에도 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건 주문화 확립의 공헌자인 주공을 조상으로 모셨다는 긍지로 문화보존에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天子의 제사에만 쓰인 팔일무가 노공의 종묘사직 때 허락되던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그런데 계씨가 천자 종묘에만 허락된 팔일무를 자기 집 마당에서 추게 한 걸 두고 공자는 이런 짓을 감히 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나(팔일1)라고 그를 비난했다.
팔일이란 사방 여덟 줄로 서서 춤을 추는 의례에서 유래한 것으로 팔일무란 국가에서 가장 중시하던 천자의 제사 때 8행으로 64명이 함께 추는 군무, 일종의 태평무이다.
고대 사회에서 춤은 오락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지닌 제의적 행사였다. 곧 하늘과 조상을 기쁘게 해드리고 공동체 전체의 평안을 기원하는 기도행위였다. 공자는 팔일편에서 禮를 통해 형성되는 인간문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다루고 있다.
하은주 세 시대로 분류되는 고대 중국문화에 대해 공자는 위정편 23장에서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참조해서 가감했고,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다시 수정했으니 주나라의 예가 가장 완전하다고 했다.(팔일14장) 이로써 공자는 자신이 주나라의 문화를 따르겠다는 주의 전승자로서의 사명의식을 표명하고자 했다.
<예의 의미 확대>
예라는 개념은 원래 종교적 제사에서 기원했는데 공자시대에 와서 예는 종교의례뿐 아니라 인간사 전체에서 지켜야 할 규범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또한 공자는 예의 형식보다 근본적 정신을 중시하고 있다.
“사람이 되어가지고 인자함이 없다면 예는 해서 무엇 하겠느냐? 사람이 되어 가지고 인자함이 없다면 음악은 해서 무엇하겠느냐?”(팔일3)
공자는 예를 알아야 인간으로 설 수 있다고 보아 성숙도의 측정으로 예를 강조하면서도 문화적 표현을 뒷받침해 주는 인간성 그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인자함이 없다면, 학문과 예악을 함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반문한 것이다.
**유가에서 인과 예의 관계는 그리스도교에서 사랑과 윤리법이 가진 관계와 유사하다.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다) 사랑을 떠난 율법은 소용없으나 참된 사랑은 율법을 완성한다.
인과 예의 관계는 속과 겉, 내용과 표현의 관계로 상호 보완적이다.
仁은 영구하고 시공을 넘은 보편성을 지니나, 禮는 시대성을 띤 것이고 시공의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예가 이 시대에서 새로 해석되어야, 본래 仁의 의미가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2. 里仁편(논어 4편)
-이인里仁이란 편명篇名은 “동네 인심이 후한 곳을 찾아 살라는 공자의 말씀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간형성에 끼치는 사회적 영향을 지적한 것이다.
정약용은 1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사람도 마음이 어짐이 중요하니 마을에도 어진 마을과 그렇지 않은 마을이 있으니 가려서 어진 마을에 가서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했다는 이야기와 통한다. 이처럼 공자는 개인의 인격형성에 가정과 사회가 미치는 영향을 중시하면서도 덕을 이루는 주체가 다름아닌 각 사람 자신임을 명확히 했다.
4장-- 한 사람의 마음이 仁만을 생각할 때 도를 벗어난 악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정약용 주) 仁에 뜻을 두면 목표에 미치지 못하거나 과실을 범할 수 있으나 악을 행할 수 없다.
-오직 어진 자만이 제대로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제대로 미워할 수 있다.
5장--仁은 인격자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궁극규범이요 최종목표이다. 仁은 모든 덕의 완성으로 인을 이룬 사람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최고의 인격을 완성한 인물이다.
6장--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 했으나 인자함과 어긋남을 피하려 노력하는 자도 인자속에 끼워주었다. 仁에 도달한 자를 성인, 이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자를 군자라 하였다. 그러니까 군자와 성인은 정도 차이일 뿐, 인격의 내용은 동일하다.
공자는 힘이 부족해서 仁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를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즉 누구나 노력만 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仁을 좋아할 줄 아는 자, 仁이 아닌 것을 미워할 줄 아는 자를 보지 못했다. 仁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고 不仁을 미워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실천하는 자는 적은 현실을 공자는 통탄한 것이다.
7장--공자는 성숙한 자도 허물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를 전제로 하여 그 과실의 종류를 살펴 그 사람의 진가를 평가한다.
3. 君子와 仁
공자는 당대에 사용되어오던 용어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가했다. 그 중 하나가 군자와 소인의 의미변형이다.
군자라는 용어는 시경과 좌전에도 나오는데 거기엔 지배층의 사회신분을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논어에 와서 도덕적 인격자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군자의 용어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소인의 의미도 변화되어 본래 서민이라는 뜻에서 인격을 이루지 못한 졸렬한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이인 11, 16)
군자와 소인이 사회적 신분을 지칭하지 않는 것을 가장 명백히 보여주는 예는 옹야 13장이다.
공자가 자하에게 이르기를 “너는 군자유가 되어야지 소인유가 되지는 말아라” (옹야17)
군자와 소인 양자를 가르는 초석은 덕을 키우느냐 아닌가에 달려있다.
“군자는 덕을 마음에 품고 소인은 土를 마음에 품는다. 군자는 도리에 맞는 바(刑를 생각하고 소인은 특혜(惠)받기를 생각한다. (이인 11)
공자는 소인을 구별짓는 특성을 의를 희생하면서 이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본다(이인 16)
손해를 보면서도 의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이기에(헌문 12) 공자는 군자란 덕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 본다. 여기서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것이 바로 덕이다.
군자나 소인의 의미뿐 아니라 덕의 의미도 공자에 와서 변화되었다. 시경과 서경에서 덕은 백성을 잘 다스림으로서 천명받고 보존하는 왕권의 필요충분조건을 의미했다. 그러나 논어에 와선 그 의미가 확대되어 천부적 인간의 도덕성으로 이해되었다.
술이 23장을 보면 공자는 “하늘이 내 안에 덕을 부여했다”(天生德於予)라 하여 덕이 天에서 기원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술이 3장에선 “덕이 닦아지지 못하는 것이 내가 우려하는 바이다.” 라 하여 덕은 완성된 상태로 주어지는게 아니라 키워갈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 강조한 바 있다.
논어의 덕 개념은 후에 맹자의 性과 연결되었다. 헌문 33장에는 말에게까지 덕이 적용되는 것을 보아 공자에게 있어 덕은 각 사물에 주어진 천부적 성격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덕이 완성된 상태가 바로 仁이다.
仁은 논어 492장 중 58장에 105번 등장한다. 그러나 仁의 의미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는다. 공자는 仁이 무엇인가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다양하게 대답하고 있다. 번지가 仁을 물었을 때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愛人)" 라고 대답했고(논어 옹야편 雍也篇), 안연이 물었을 때는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다(克己復禮)"라고 대답했다(안연顔淵).
4. 仁에 대한 다양한 해석
유학의 핵심 개념인 仁은 언제부터 쓰여졌나?공자 이전 갑골문에도 나타났을지 모르지만 문헌자료로는 기원전 743년 작품인 시경과 서경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공자 이전의 仁과 이후의 仁은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고대국가에선 治者가 세습으로 결정되었기에 자격을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춘추시대에 와서 天子인 주나라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治者도 배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그래서 仁은 세상을 이끌어가는 위인이 공적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해서 주위 사람을 모으는 매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공자는 治者로 하여금 그들이 지닌 권력보다 맡게 된 임무에 눈을 떠야 함을 역설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그는 仁을 ‘나를 닦아 사람을 편안케 한다’는 修己安人으로 표현하고 있다.
治人이 자기를 닦아(修己) 남을 편안게 한다면(安人) 공동체는 결집될 수 있다. 이처럼 공자는 仁을 修己와 安人의 맥락에서 사용함으로써 공동체의 통합을 일구어내야 할 치자의 덕목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공자는 仁을 단지 정치가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향해야 할 덕목으로 가르쳤다. 즉 공자에게 있어 仁은 사람이 인간이 사람답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이 사람답게 되는 것이란 홀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사람다움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의 사람다움’을 의미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논어 안에서 제자들과의 담화를 통해 드러난 仁에 대해 살펴보자.
(1) 忠恕 (충실할 충, 같을 서)
공자가 曾子를 향해 “參(삼)아 내가 연구하는 도리는 하나로써 천만개를 꿰뚫는다”고 하자 증자가 “예 그렇습니다.”라 했다. 이에 문인이 증자에게 (그 의미를) 묻자 증자는 “선생님께서 강구하시는 도리는 한결같이 忠恕로 모든 일에 일관할 따름이라 하시드라”했다<이인 15>
공자께서 자공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賜(자공)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 잊지 않고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느냐? 아니다. 나는 하나로 일관한다.(一以貫之)” <15 衛靈公 3>
증자는 一以貫之를 충서로 해석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형효는 증자의 답은 공자 출타 후이므로 공자 생각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공자의 일이관지는 충서라기보다 중용이나 시중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공자의 핵심사상을 중용이나 시중으로 해석함도 중요하나 공자사상 전체에서 충서 역시 仁의 핵심을 드러내는 표현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충서를 도덕적 도의 핵심으로 보는 생각은 기원전 3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용에 보면 “忠과 恕는 道에서 멀지 않다. 자신에게 어떤 것이 행해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忠恕 違道不遠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