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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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영성

‘그리스도교와 불교간의 대화’의 해석학적 고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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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14-02-2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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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합과 함께 악마와 접한다.” 왜냐하면 악마는 신의 이면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아베가 말하는 악마는 도덕적 차원인 선악의 대립관계에 놓인 악이 아니며, 또한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 신과의 관계에 들어갈 때 신앙과 대립되는 근원악으로서의 죄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베가 말한 악마의 자각은 우리가 신과 접하는 바로 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악마의 자각 위에 양종교는 과연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 아베는 양종교는 악마의 자각을 통해서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즉 그리스도교의 경우에는 신의 이면에 숨어있는 악마의 자각을 통하여 가역적 입장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각성의 종교 역시 거기에 숨겨있는 악마적인 성격을 자각하여 가역성에서 불가역성으로의 자기부정을 한다면 가능하리라 본다.

4) 가역성에서 불가역성으로
불교에서의 악마의 자각이란 무엇인가? 아베는 공의 입장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비판이 불교의 깨달음의 뒷면에 놓인 악마의 자각을 말한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나타난다. 공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해서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특히 윤리적인 선악의 판단은 어디에서 성립하는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또한 도대체 장래를 향한 역사의 방향지움이라는 것이 공의 입장에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공의 입장이 혹 궁극일지는 모르겠으나 거기에서부터 가치판단의 기준이라든가 장래를 향하는 방향지움이라는 것이 가능하기 않다고 한다면 그런 입장은 약한 상대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베는 위의 질문들이 바로 공의 입장 안에 있는 위험성이라고 보았다. 즉 불교의 공에서는 중심이 없기에 공은 완전히 열려 있고 사방으로 관통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공의 자각에서는 선악의 가치판단 기준이 결여되어 있고, 역사의 방향설정을 하지 못하는 위험성을 항상 품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의 입장은 늘 惡取空의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아베는 공에 사로잡힌 惡取空에 대한 자각을 魔의 자각이라고 불렀다. 아베는 바로 이 악취공에 떨어질 가능성을 부단히 극복해야 한다고 보고 그 일은 바로 공이 공도 끊임없이 비우는 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러한 魔의 입장이 극복되어서 佛도 아니고 魔도 아닌 非佛非魔의 입장이 자각될 때 그때야말로 참된 공의 입장이 自覺現前한다고 아베는 본다. 다시 말해 참된 空은 자신에 머물러 있지 않고, 스스로 空하여 나아가 願으로 전환되고 願은 다시 스스로를 空하여 나아감으로써 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願이 되지 않은 空은 참된 空이라고 할 수 없둣이 行이 되지 않는 願은 참된 願이라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空이 願이 되고 願이 行이 된다는 것은 空의 자기 전개인 것이다. 아베는 空은 스스로를 비워서 願이 되고 願은 스스로를 비워서 行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새로운 중심, 無的인 하나가 자각된다고 말한다. 아베는 기독교의 하느님, 그 자기 부정으로서의 아들인 그리스도에서 공의 부정으로서의 無的인 하나를 본다. 이런 점에서 아베는 불교가 기독교에서 배울 바가 있다고 역설한 것이다.

5) 불가역성에서 가역성에로
불교에서의 악마의 자각이 惡取空에 대한 자각이었다면, 그리스도교에서의 악마의 자각은 신에 대한 집착이라고 아베는 말한다. 아베는 그 자신이  정토진종 신자로서 미타와 자기 사이에 결코 역전할 수 없는 불가역성이 있음을 깊이 신앙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정토진종 신앙에서 선불교로 전향한 것은 자신이 염불에 대한 믿음의 명목하에 악마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그에게 있어 본원에 대한 믿음이 악마에 대한 자각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이 악마에 대한 자각으로 인해 미타와 자기와의 불가역성이 붕괴되고, 모든 것이 가역화되는 중심이 없는 공의 세계가 그에게 열렸다는 것이다.
앞서본 불교의 공의 경우는 모든 의미에서의 중심이 없고 모든 점이 중심이 되며 동시에 원주가 되었기 때문에 중심과 원주는 전적으로 가역적 관계였다. 아베는 이러한 불교의 공을 ‘무한대의 원구’라고 표현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불교의 공과는 달리 중심있는 ‘무한대의 원’이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는 원의 경우와는 달리 모든 점이 한결같이 중심이 된다. 이러한 비대상적인 중심이 바로 하느님이기에 하느님과 인간 간에는 불가역적 관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양자의 차이는 불교의 경우는 무한대의 원구로서 모든 것이 중심인데 반해, 그리스도교의 경우는 ‘무한대의 원’으로서 중심이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교의 경우는 무적인 중심-하느님 혹은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므로 아직 신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기독교에 대한 아베의 시각이다. 그래서 아베는 참으로 철저한 해방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신에의 집착을 벗어버리고 無的인 중심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무한대의 원에서 무한대의 원구로 변용되고, 절대무의 하느님은 절대무의 공까지 깊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아베의 견해이다.

 나오는 말
이상에서 살펴 본 아베의 양종교에 대한 비교연구는 스미스의 인격주의적 방법론과 가다머의 해석학적 방법론이 지향하는 바임을 알 수 있다.
스미스가 말했듯이 종교적 진리에 대한 이해는 궁극적으로 그 진리를 신앙하는 이들에 대한 이해이다. 여기서 타인의 신앙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신앙이 나의 신앙과 무관하지 않음을 전제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신앙이 궁극적으로 인류의 신앙사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할 때 자기 신앙 및 타종교에 대한 참된 이해가 가능하리라 본다. 스미스는 이를 위해서 자신이 인류 전체의 공동체적인 종교적 복합체의 성원이라는 새로운 자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종교적 역사에서 ‘자의식’의 도래는 하나의 극적인 출현이다. 아베의 양종교에 대한 연구는 바로 이러한 스미스가 말한 신앙의 측면에서 전인류 종교사의 도상에서 바라본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아베는 또한 타종교의 지평, 아니 더 나아가서 종교부정의 지평과도 만남으로써 새로운 종교적 지평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아베의 추구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는 결국 정신적인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다머가 지적했듯이 ‘지평의 융합’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베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 특히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인간 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이해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 점은 다끼자와 가쯔미의 아베에 대한 비판에서 잘 드러나 있으나 여기선 언급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의 연구업적은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단순히 양종교 간의 비교연구 차원을 넘어서 종교부정의 이데올로기적 도전에 직면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또한 아베를 통해 살펴본 양종교의 비교연구에서 타종교와의 만남이 없이는 나의 종교의 진리이해 역시 불완전함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가다머가 말했듯이 종교간에 대화를 한다는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가장 탁월한 종교적 행위”가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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