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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갈등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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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갈등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최현민
보통 수행자들은 갈등을 끊어버리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끊어버리려 하면 할수록 그 끈끈한 끄나풀들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떨쳐버리지 못함에 대한 절망과 좌절 실망으로 수행하지 않을 때보다 더 깊은 늪 속에 빠지게 될 위험마저 있다. 아, 나는 도저히 수행이 안 되는구나하고 말이다. 수행을 오래한 사람 중 이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물론 그 갈등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우리의 처신이 달라져야 하지만 여기서 나는 묻는다. 왜 갈등을 수행의 방해요인으로만 생각하는가? 마치 장애물로 인해 물이 흐를 수 없듯이 마음 안에도 갈등이 있으면 우리의 종교적 생명이 차단되고 막힌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우리가 지닌 갈등들은 우리가 수행할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의 일부이기도 한 갈등을 없앤다는 건 자신의 일부를 없애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갈등을 없애려 애쓰기 보다 우리의 욕망을 더 큰 가치에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함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다시 말해 갈등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보다 본질적인 면에 우리 마음을 쓸 때 우리의 수행이 한걸음 더 전진해 갈 수 있다. 빼기보다는 더하는 쪽으로 마음을 쓰는 것 말이다. 무엇을 더해야 하나. 우리 안에 숨겨진 빛을 밖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를 ‘八正道를 행함’에 있다고 가르쳤다. 팔정도는 戒靜慧의 삼학이 균형잡힌 가르침이다. 공자의 경우는 다름아닌 仁에 길들이는 것 바로 그것이다. 곧 仁에 길들임이야말로 인간성 전체를 길들일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우리의 본능을 억제해서 길들이는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가치에 마음을 둠으로서 자연히 본능의 힘을 정화시키고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더 큰 것에 가치를 둘 때 우리는 본능에서 벗어나 도가 지배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
어떤 학자는 공자를 실패의 스승이라고 일컫는다. 「논어 헌문」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예화가 나온다. 자로가( 통금시간에 있어 )노나라의 석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석문의 문지기가 물었다."어디에서 왔습니까?" 자로가 대답했다. "공씨의 문하에서 왔습니다.“ 문지기가 한마디 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는 사람 말이지요?“ (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헌문」)
동시대 사람인 석문의 문지기의 증언에서 드러났듯이 공자는 당대에 실패함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공자는 자신의 실패에 좌절하고 절망치 않고 자신의 失敗를 실패(失牌)로 되감을 줄 아는 이였다. 이처럼 공자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는 곧 실패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는 존재였고 실패야말로 공자를 공자로 만든 모티브가 되었다. 공자가 끊임없이 돌아가고자 했던 道는 다름아닌 聖王 곧 요순임금의 가르침이었다. 그는 성왕의 가르침에 마음을 두고 살았다. 여기서 마음을 둔다는 것은 성왕의 가르침을 마음을 새기고 이를 그리워하면서(念)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을 느끼고 실패를 하면서도 그 갈등을 타고 또 넘는 것이다.
일본 조동종의 창시자인 도겐은 갈등이야말로 불법을 전수해 준 하나의 힘으로 본다. 어떻게 갈등이 불법을 전수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분별의 세계에 떨어지는 현실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끊임없이 수행을 하도록 우리를 촉구하는, 다시 말해 발보리심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우리 자신이 분별심에 떨어졌다는 자각이야말로 우리를 또 다시 수행에로 초대하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겐은 『정법안장』「갈등」에서 “갈등이야말로 불법이어서 갈등을 지니고 갈등을 자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이 정법안장을 전한 자는 영산회에서 가섭대사 뿐이다. 그로부터 28대를 거쳐 보리달마에 이르렀다. .....성자(聖者)들은 갈등의 근원을 잘라내는 참학(參學)을 지향한다고 말하지 갈등을 갖고 갈등을 잘라내는 것을 참학하지 않는다. 〔그들은〕갈등을 통해 갈등을 타고 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 더구나 어떻게 불법이 갈등으로부터 갈등으로 전해지는 것임을 알겠는가?
갈등의 葛이나 藤는 덩굴풀로서 선의 세계에서는 무엇을 속박하는 것, 문자언설 또는 번뇌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등나무의 덩굴처럼 엉켜 있는 망상심의 근원을 잘라버리는 것이 佛道라고 생각해왔다. 도겐의 스승인 천동여정은 “덩굴의 덩굴손이 덩굴을 감는다”고 설한 바 있다. 여정으로부터 갈등의 불법에 대해서 배운 도겐은 “이같은 설법은 지금까지 古今에서 보고 들은 적이 없다. (여정)고불이 처음으로 이를 보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도겐은 “덩굴풀(胡廬)의 덩굴이 덩굴을 감아오르는 것이야말로 불조(부처와 조사)가 불조에게 전해준 것이라고 보면서 불법은 갈등이 갈등을 타고 상속되어왔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불법을 전수받는 것은 곧 갈등을 전수받는 것이라고 본 도겐은 석존이 점화하여 가섭에게 전수한 것이나 달마가 제자에게 전수한 피육골수 역시 갈등의 전수를 통해서 라고 해석한다. 이와 같이 갈등을 끊어버릴 번뇌가 아니라 불법의 세계로 나아갈 불도사법의 핵심으로 본 도겐에게 있어 갈등의 전수야말로 불법전수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갈등을 타고 나아가라.” 우리가 지닌 갈등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갈등보다 더 큰 가치에 우리의 마음을 두자. 이처럼 우리가 더 큰 원의에 마음을 둘 때 우린 어느새 갈등을 타고 올라선 자신을 발견케 될 것이다. 욕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온 마음을 둠으로써 갈등을 타고 올라가자. “갈등을 타고 올라라. 그것이야말로 佛道 正傳 곧 불도가 바르게 전해지는 길이다“라는 도겐의 가르침이 오늘 나를 또 한번 강하게 내리치는 죽비소리로 들린다. (2015.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