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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道는 자기를 잊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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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道는 자기를 잊는데 있다.
<논어>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仁이 멀리 있는가? 내가 仁하고자 하니 곧 仁에 이른다”(술이 7 30) 아무리 애를 써도 仁하게 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내가 仁하고자 하니 바로 仁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인가? 仁은 공자의 가르침의 핵심으로 군자가 지향해야 할 덕목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공자는 그 仁이라는 덕이 그저 내가 仁하고자만 하면 仁에 이른다고 하니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자의 가르침이 仁에 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곧 불도의 핵심은 무엇일까? 도겐은 「현성공안」에서 佛道를 따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도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것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 자기를 잊는다는 것은 만법에 증험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불도를 배우려면 경전이나 교리 혹은 수행을 배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도겐은 불도를 배우는 건 자기를 배우는 것이며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가? 보통 자기를 배우는 것은 자아완성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도겐은 자기를 배우는 건 자기를 잊는 것이라고말하고 있다.
여기서 자기를 잊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떨 때 우리는 자기자신을 잊곤 하는가? 무언가에 푹 빠져 있을 때 다시 말해 음악이나 영화 그리고 그림에 빠져 있을 때 우린 자신을 잊을 수 있곤 한다. 이렇듯 자기를 잊는 건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물이나 존재가 주체가 되어 다가올 때 그러하다. 이를 도겐은 만법이 주체가 될 때라고 말한다. 다시 <현성공안>을 들여다보자.
“자기를 움직여 자기 활동으로 만법을 수증하는 것이 미궁이고, 만법에 나아가 자기를 수증하는 것이 깨침(證)이다”.
이는 곧 자기가 중심이 되어 행하는 활동이 미궁이라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하는 행위는 우리자신이 중심이 된다. 도겐의 견해에 따르면 그래서 우리의 삶이 미궁 속에서 헤매며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도겐은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가 깨침 안에 살아가려면 나 자신을 잊어야 한다고..... 그게 우리가 미궁에서 벗어나 깨침을 사는 길이라고.....
도겐은"학도용심집"에서 “내가 능히 법을 움직일 때 나는 강해지고 법은 약해진다. 법이 들어와서 나를 움직일 때 법은 강해지고, 나는 약해진다. 불법은 바로 이 두 구절에 있다. 지금 참선을 배우는 자는 이를 전수하여 참된 길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도겐이 말한 ‘자기와 만법의 관계’를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내가 법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법이 나를 움직이는 길로 나아가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법이 나를 움직이도록 자기 자신을 법에 맡기라는 것이다.
법에 자신을 내어맡김은 앞서 말한 仁에 자신을 맡김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仁하고자 하니 곧 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기중심에서 만법중심에로 전향될 수 있을까? 도겐은 "학도용심집"을 통해 ‘법이 나를 움직임(法轉我)’에로의 전환은 참선학도參禪學道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수행을 통해 법을 이해하는 자세에 서면, ‘법法은 강하게 드러나고 나는 비어진다’
이와 같이 도겐은 구체적인 좌선수행을 통해 ‘내가 법을 움직이는 길’에서 ‘법이 나를 움직이는 길’로의 역전이 가능해짐을 가르치고 있다. 만법에 의해 자기가 움직여질 때 우리는 전 우주와 하나가 되고, 거기에서 자기와 타자의 구별은 사라진다. 도겐은 에고이즘(我見, 我慢, 我愛)의 자기극복과 자기부정 없이는 결코 불성의 현성을 체득할 수 없음을 "정법안장" 곳곳에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짐, 그것이야말로 깨침의 상태를 사는게 아닌가. 도겐은 이를 신심탈락이라 말한다. 아만에 차있는 주체적인 자아를 탈락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자기를 잊는 것’이요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불도를 살아갈 수 있다.
도겐에게 있어 깨달음은 그리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진실된 마음으로 佛道를 사는가이다. 佛道를 배우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한다면그는 이미 불도를 살고 있는 것이다. 불도는 멀리 있는게 아니라 내가 불도를 걷고자 하면 바로 거기에 불도가 있다. 아, 이제 조금 “仁하고자 하니 곧 仁에 이른다”는 의미를 알 듯 싶다. (2015.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