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글2021년 강좌 불교명상과 그리스도교 기도-불교명상의 개론 (요약본) 21.06.04
- 다음글바디스캔 명상 21.02.03
명상의 장애요인
페이지 정보

본문
명상의 장애요인
명상을 하다보면 명상을 장애하는 요인들이 생긴다. 이것들 때문에 명상에 진전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 이 부분들이야말로 우리가 명상을 배우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건 장애요인들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다. 명상 할 때 부딪치는 장애 요인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을 더 깊이 알아차리도록 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부분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명상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명상에 저항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저항들이 있는가?
1. 생각
계속 활동하다가 가만히 앉아 명상하려니 좀이 쑤시고 마음은 이보다 더 심하게 요동친다. 그것은 명상이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패턴과 아주 다르고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안에서 이렇게 속삭이기 시작한다. “야, 너 지금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 있냐? 이건 시간낭비일 뿐이야.”
이런 생각이 올라오면서 명상하는 나를 저항하게 만든다. 이 때 내가 그 생각에 머물게 되면 생각은 다시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일어나 결국 명상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런 저항을 느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에 먹이를 주기 시작하면 결국 생각에 끌려가고 만다. 이 때 마음에서 올라오는 생각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판단이 들어가면 우리는 그 판단을 통해 더 복잡한 생각 속으로 빨려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저항을 물리치려면 깨어서 그저 지금 하고 있는 명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판단을 일단 보류하고 명상에 믿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족적을 남긴 많은 스승들은 명상을 통해 최상의 행복을 찾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왔다. 따라서 명상을 하는 게 손해 보는 일이 아님을 믿어라. 명상에 시간을 투자한 그 이상으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리라.
2. 죄의식 감정
명상시 드는 장애요인 중 죄의식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죄의식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감정이라기보다는 명상한답시고 이렇게 앉아 있는 건 사치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 나온 감정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생활고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나만 안락하게 명상을 하는 건 공평한 처사가 아닌 것 같다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말한다. 예수의 제자였던 유다 역시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예수의 발치에 향유를 붓는 건 너무 낭비가 아닌가 저걸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더 좋지 않나?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죄의식 역시 사실은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툴쿠 톤둡은 티베트 명상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죄의식 감정은 자신의 내면의 상체에 대한 충동적 반작용일수 있다.“툴쿠 톤둡, 티베트 명상법’ (이현주 역, 두레, 2002.) 112쪽.
진정 우리가 남을 도우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개선하고 자신에게 평화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내 마음에 평화가 없고 염려와 증오, 불안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타인이 평화와 기쁨을 찾도록 도울 수 있겠는가?
3. 몸의 통증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쉼없이 활동하는 현대인들에게 명상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뭔가 계속 자극을 만들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그래서 아무런 자극없이 앉아 있음을 견디는 것은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이렇듯 몸의 통증이나 좀이 쑤실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부분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자세를 바꾼다. 이는 우리 의식 안에 있는 자동판단체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자동판단체계가 이때 작동한 것이다. 명상을 통해 먼저 알아차려야 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내 안에는 자동판단 체계가 있다. 이것에 의해 다리가 저리면 아무런 알아차림도 없이 자세를 풀고 다리를 바꾼다. 이는 의식 안에 있는 자동판단체계에 의해 통증을 거부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행동이다. 만일 그렇다고 통증이 일어날 때 이를 참기만 한다면 인내심은 길러질지는 모르나 다음에 명상하기는 싫어질 위험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때 필요한 것은 자동판단체계가 작동하기 전에 먼저 통증을 느끼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게 필요하다. 아픈 것을 먼저 알아차리자. 가부좌를 튼 다리가 저리면 통증을 느끼고 있음을 바라본 다음 다리를 풀고, 반대쪽 다리를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차림이 있고 난 뒤의 행동은 내 안에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판단시스템에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명상의 연장선상에서 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통증이 뭔지를 알아차림도 필요하다. 그 통증을 알아차렸다면 명명해 주는 게 좋다. 그것이 저림인지, 쑤심인지, 결림인지... 그런 다음 가능한 천천히 자세를 바꾸라. 그렇지만 참을 수 있으면 조금 참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두 번째는 생각의 문제이다. 생각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 나에게 들어오는 것도 모두 생각에 해당된다. 명상시 핸드폰 소음이 들리면 짜증이 나는 것도 모두 생각이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내가 조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 “시끄러워서 마음을 집중할 수 없잖아” 하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그리고는 왜 명상하는데 핸드폰을 안 꺼놓은 거야 하며 짜증을 낸다. 곧 소음을 싫어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명상이 끝나 버린 것이다. 내가 그 소리에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거기에 가 있기 때문에 일상의 삶 안에서 나를 화나게 하는 것에 마음이 가면 마음 안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확대된다. 명상시 소리가 들려도 거기에 나 자신을 관여시키지 말아야 한다. 어떤 소리가 나든지 그것은 소리일 뿐이다. 소리가 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만약 소리에 마음이 빼앗겼다면 마음을 빼앗긴 사실을 알아차리고 다시 명상의 일차 대상인 호흡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 안의 생각이나 망상들이 떠오르면 내가 생각하고 있구나, 어제 일을 생각하고 있구나, 거기 마음이 가 있구나 하고 알아차려라. 내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차적으로 알아차린 다음에 내가 집중해야 할 대상인 호흡으로 돌아가야 한다. 만약 망상이 떠오를 때 생각을 없애려 한다면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억누른다고 해서 생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것은 내 의지적으로 뭔가를 컨트롤해 보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 만일 내가 이것을 제거하려고 하면 제거하려는 생각까지 하게 되어 더 복잡해지고 만다. 그래서 생각이 내 마음을 통과해 지나가도록 두어야 한다. 생각에 마음을 두지 말고 생각이 마음을 지나가도록 두어야 한다. 억누르거나 제거하고자 하는 것은 판단하는 것이다. 그저 생각이 지나가도록 두면 생각은 사라진다.
명상의 장애들을 발견할 때 나를 조금씩 더 잘 알게 된다. 내가 이런 부분에 걸려 넘어지는구나 하면서... 그것은 명상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것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는 의식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살아간다. 20살 때 익숙해진 생각들은 80-90까지 그대로. 내가 어떤 부분에 화내는 습관이 있으면 그것은 늘 같은 패턴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내가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명상 시 찾아오는 몽롱한 느낌인데 선불교에서는 이를 혼침이라고 한다. 몽롱함이 깊어지면 졸음이 오고 졸음이 깊어지면 잠을 자게 된다. 이것과 함께 장애요인은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집중이 안되는 상태인데 이것을 선불교에서는 도거라고 한다. 옛 선사들은 혼침과 도거를 물리쳐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몽롱하다는 것은 고요하기는 하되 깨어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산란하다는 것은 깨어 있긴 하되 고요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몽롱한 사람은 깨어 있지 못하는 문제를 지녔기에 깨어 있는 마음을 계속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집중할 대상이 필요한데 숫자를 세거나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도거는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도구들을 이용해서 내 마음을 고요하게 바꾸는 것이다.
성난 물소 이야기가 있다. 물소가 도망가려고 할 때 주인이 손가락으로 줄을 묶고 계속 잡아당기면 소가 흥분하여 반대로 달아가 버린다. 그러면 결국 줄에 걸린 손가락은 잘려나가고 만다. 그래서 흥분한 소를 다루려면 물소를 잡고 있는 줄을 놓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잡고 있는 것들, 내 마음 안의 상처들도 알아차리고 놓아주어야 하는 이유이다. 무엇이 일어나는지 주시하여 알아차리고, 놓아주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통해 몸과 마음은 조금씩 고요해지고 깨어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