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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연구

그저 지나쳐 가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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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10-08-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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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지나쳐 가시렵니까?





                                                                      최 현  민1)





5월 어느 날, 상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지율스님이 머무시는 낙동강을 향해 갔다. 차일피일 미루던 게으름을 깨고 마음먹고 순례길에 나선 나는 12시에 상주에 도착했다. 스님은 내 전화를 받고 구미에서 상주로 건너 오셨다. 스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 회원 한 분의 도움으로 경천대를 향해 갔다. 팔각정에서 내려다 보는 낙동강 주변의 모습은 비경 그 자체였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어우러져 펼쳐진 고운 모래톱, 그리고 경천대 주변의 기암괴석과 정경은 말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였다. 스님은 그 주위를 카메라 샤터로 열심히 찍으셨다. 카메라도 없이 빈손으로 간 나는 이 비경도 이제 마지막이겠구나 싶은 안타까움에 마음의 샤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경천대를 지나  숲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스님께 물었다.


“스님, 굴삭기가 천성산을 부술 때 산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신 적이 있으시지요? 그것이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하게 된 계기가 되었나요?” 스님은 “예, 제가 그 말을 한 것은 색다른 제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오대산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어요. 도반 중에 20년간 선수행한 한 스님께서 행선-걷기선-수행을 하신다고 매일 점심을 싸갖고 나가시곤 하셨지요. 그런데 하루는 헐레벌떡 급히 돌아오시는 거예요. 자초지종인즉 오는 길에 한 여학생의 비명소리를 들었대요. 주위를 보니 코란도차가 있었고 그 안에서 들린 소리였대요. 그 때 거기를 지나간 사람도 그냥 피해갔고 스님도 무서워서 뛰어왔다는 거예요. 그 스님은 아무렇지 않게 그 상황을 설명했고 다른 도반들도 그저 듣고만 있었어요.” 지율스님은 “아마 저도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그랬을지 모르죠...”하신다. 그런데 스님은 ‘어떻게 20여년 수행한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저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 후 천성산이 무너질 때 스님은 성폭행을 당하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소녀의 비명소리가 산의 울부짖음과 하나되어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며칠 전에 본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생각났다. 그 영화는 생활보호 대상자이자 홀로 중학생 외손자를 키우기 위해 중풍환자의 간병인으로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한 할머니를 그리고 있다. 맵시 있는 옷차림을 좋아하고, 꽃을 보고 감격하는 미자 할머니, 고달픈 일상 속에서도 시를 쓰고 싶어 시 창작 교실에 다니는 소녀다운 감수성을 지닌 분. 그런 할머니에게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집단성폭행을 당한 한 여중생이 투신자살을 했는데 자기 외손자가 바로 그 가해자의 하나였던 것이다. 성폭행에 가담한 다른 남학생들의 부모는 이 사건을 돈으로 무마시키려고 타협을 시도한다. 그녀는 자신이 내야할 위자료 5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간병인으로 일하던  돈 많은 늙은 중증환자에게 판다. 위자료를 갚은 후 그녀는 자신의 수치를 속죄하기 위해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 그 여중생의 불행한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지은 시 ‘아네스를 위한 노래’를 남긴 체...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성폭행당한 여학생의 울부짖음과 무너져가는 산의 울부짖음이 하나되어 들렸다는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떠오른 건 어쩜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성폭행 당하는 여학생의 울부짖음을 외면한 스님이나, 절망섞인 이야기를 별다르지 않게 들었던 다른 스님들, 그리고 영화 <시>에 나오는 세상과 돈으로 타협하려는 이들과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은 건 아닌가? 남의 고통을 보고도 무덤덤한 우리들, “남이 하겠지, 나 혼자서 뭘 할 수 있겠어?” 등의 이유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무엇이 나를, 우리를 일깨워줄 수 있을까? 미자 할머니를 깨어나게 한 건 무엇일까?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것은 시적 감수성을 일깨우려는 마음을 가졌던 때문일까. 아마도 그녀가 시를 쓰려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주변 사람들처럼 무감각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감당할 수 없는 타인의 불행과 자신의 수치를 그럭저럭 견디면서.... 그러나 지율스님이 산의  울부짖음에 응답한 것은 그저 단순한 시적 감수성만은 아니리라. 강의 신음소리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건 감수성 이전에 중생을 향한 연민 그것때문이리라.


우리는  흔들다리를 건너 길이 나 있지 않은 급경사를 지나 낙동강가로 내려왔다. 나는 드디어 낙동강 모래톱에 발을 딛었다. 세월에 씻기고 씻겨 곱디 고운 모래였다. 모래톱에는 붉고 푸른 깃발들이 꽃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바람소리는 마치 그 모래톱도 곧 사라질 것을 알리는 자명고 소리같이 들렸다.


  고향이 강릉인 나는 동해바다를 낀 모래사장을 거닌 기억은 많지만, 이렇게 잔잔한 강가의 고운 모래톱을 거니는 건 처음이었다. 얼마후면 이 모래톱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아, 내가 오늘 역사의 한 현장을 거닐고 있는 것이구나’ 싶어 또 다른 감회로 다가왔다. 모래톱에서 올라와 자전거다리를 건넜다. 구미 해평습지에 가기 위해 스님은 지인에게 전화를 거셨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리를 지나가려던 트럭을 세워 태워달라고 부탁해 보았다. 마음씨 착해 보이는 아저씨는 선뜻 허락해 주셨다. 스님께서는 창밖으로 보이는 논을 보면서 “저 제방둑이 높아지면 저 논의 높이도 높아져야지요”하신다. 아저씨는 말을 받아 “지금 저 논이 할머니 배 속과 같다면, 이제 논에 흙을 덮어 만든 새 농경지는 처녀 배속 같아진대요”하신다. 아, 누가 이런 거짓말을 퍼트리고 있는가? 


요즘 농어촌공사는 각 지사별로 농민들을 대상으로 4대강 사업설명회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농경지 리모델링에 따른 2년치의 영농손실에 따른 보상 절차도 진행되어, 내년 2월부터 공사에 들어가면 2011년 말에는 완공될 예정이란다.


 정부 측에서 선전한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은 순박한 시골 아저씨의 말을 받아 스님은 “저 논을 덮는 것은 낙동강에서 파올린 저 자갈섞인 모래땅이예요. 저걸로 논을 덮는 것이예요” 스님 말씀대로  실제로 농경지를 높이는데 사용될 흙은 강에서 파낸 준적토이다. 이것으로 농지에 쌓아 돋우는 사업을 정부는 ‘농경지 리모델링’이라는 이름을 붙여 추진하고 있음을 이 곳 주민들은 알고 있을까. 바로 이러한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이 낙동강 전역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지구마다 수백~수천 헥타르에 이를 정도로, 낙동강 권역 88개 지구 전체를 포함하면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말로는 농경지 리모델링이라지만 결국에는 적치장이 되고, 나중에는 물류단지나 택지, 공장 등으로 개발될 것이 우려된다고도 한다. 아저씨는 스님의 잔잔한 설명을 듣고서야 수긍이 가시는지 고개를 끄덕이셨다.


    구미터미널에 도착하여 숭선대교를 지나 해평습지로 향했다.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는 철새도래지인 해평습지. 흑두루미, 재두루미 그리고 기러기, 오리류, 큰 고니, 백로가 찾아와 긴 여정을 쉬어간다는 곳,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 등에서 여행을 시작한 철새들은 몽고, 중국을 거쳐 낙동강 해평습지에 1~2일 머무르면서 기력을 보충한 뒤 다시 일본 이즈미시로 이동한다고 한다. 철새들의 중간기착지가 되어온 저 모래밭이 사라지면 이제 그들은 어디서 쉴 수 있을까? 휴식의 공간을 잃고 지친 날개짓을 계속 해야 할 철새들, 과연 누가 인간에게 저들이 쉴 공간을 빼앗을 권리를 주었던가?


 이미 절반 이상 자취를 감춘 해평습지의 모래밭은 흙탕물로 뒤덮혀버렸다. 낙동강 안으로 들어간 포크레인은 심한 굉음소리를 내면서 강의 속살을 헤친다. 조금 전 경천대를 지나 거닐던 모래톱과는 얼마나 대조되는 풍경인가. 모래톱 중간에는 낙동강에서 끄집어낸 자갈 반쯤 섞인 모래성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저만치에서 모래를 실은 트럭 하나가 오고 있다. 차 앞 창문에는 ‘4대강 살리기 준적토 운반 차량’이라고 적혀 있다. 기사님은 ‘강 살리기’라는 저 문구를 믿고 있을까? 정부도, 환경단체도 모두 ‘강을 살리겠다’고 혈안이 되어있다. 이 땅의 많은 언어들이 그 생명을 잃은지 이미 오래다. 우린 그런 현실에 살고 있다. 


    카메라 셔트를 열심히 누르던 스님은 양말을 벗고 저 강물 속으로 들어가 보자고 제안하신다. 걸어서 저기를 들어갈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이 될테지.... 내일이면 달라질 ‘역사의 현장’ 속으로 우리는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인간의 탐욕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바로 저 ‘뭇생명의 강’ 속으로....


 아직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해평습지 위쪽을 바라본다. 공사가 진행중인 아래쪽 모래톱과는 얼마나 대조를 이룬 풍경인가? 맨발로 모래밭을 걸으면서 스님은 이런 이야기를 건네셨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이 사회가 잘못 가고 있음을 알리려는 것이지요. 천성산이나 새만금, 그리고 이 4대강사업도 모두 같은 논리이지요. 우리의 사유가 바뀌지 않는 한, 미래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거예요. 그 때 다시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지금 이 현실을 잘 기록하고 남겨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래, 천성산에서 일어난 일이 새만금, 낙동강과 한강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똑같은 논리와 사유이다.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국토를 파헤쳐온 우리의 탐욕을 비워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과거에 우리가 한 일을 되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 스님은 먼 훗날 사람들이 지나온 과거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과정을 남겨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으로 오늘도 낙동강을 거닐며 기록의 순례를 계속 하고 계셨다.


 낙동강에서 파올린 자갈과 모래가 섞인 뚝을 하염없이 거닐고 있노라니 저 멀리에 저어새 한 마리가 외롭게 서 있다. 어디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저 새 뿐이랴.  저기 다 부서진 배 한 척도 모래톱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영화 <시>에 나오는 검푸른 빛을 띤 시골 어느 강가에 둥둥 떠내려오는 한 소녀의 시신과도 흡사한...


  해평습지에서 나와 구미 청소년 수련원을 지나가면서 스님은 자신의 꿈이야기를 하셨다. “어느날 꿈에 호랑이가 나타났어요. 그 호랑이는 아픈지 내 앞에 벌러덩 누워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호랑이 배를 쓰다듬어주었는데 얼마 지나니 호랑이가 일어났어요. 후에 깨달은 것은 호랑이는 아마 우리나라 지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국토의 젖줄인 강이 파헤쳐가는 이 현실 속에서 중생을 향한 한 수행자의 연민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를 낙동강가에서 서성이게 하고 있다.


다시 숭선대교를 건너는데 스님의 모바일이 울렸다. 지율스님의 목소리가 더 가늘어졌다. 무슨 안 좋은 소식인가 싶었다. 전화를 끊은 스님은 스님 한 분이 “4대강사업을 중단하라는 유서로 남기고 소신공양하셨네요”하신다. 아, 결국 이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무엇이, 누가 한 수행승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케 한 것인가? 생명이 죽어가는데 무감한 우리들, 고통당하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뭇생명들의 울부짖음과 강의 신음소리에 무감했던 우리 모두가 아닌가?


문수스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할 일을 결국 무문관 수행에 정진하신 스님이 대신 하셨습니다. 부디 저희의 무감한 마음을 당신이 지니셨던 중생을 향한 보살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소서. 고통 속에 신음하는 뭇 생명들의 울부짖음에도 그저 지나쳐 버린 냉냉한 마음을 연민의 마음으로 바꾸어주소서.


문수스님, 이 시대의 야광보살이시여, 부디 열반에 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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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의 씨튼 수녀회 수녀, 씨튼연구원 원장, 서강대 종교학과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