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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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종교 연구

고대 일본인의 죽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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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10-10-2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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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인의 죽음관


인간에게 죽음은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죽음을 거부하는 단순한 이유는 손상되어가는 시체에서 자신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렇게 썩어가는 시체가 된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특히 죽음과 죽임, 그리고 주검을 직접, 그것도 자주 목격하며 살던 고대인일수록 시체는 피하고 싶은 부정(不淨)한 것이었다. 시체가 회피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그렇게 죽은 이들이 부정한 세계 속에 있다고 믿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것은 고대 일본인의 시각을 잘 반영해준다. 가령 중국의 <위지>(魏誌, 倭人傳)에 기록된 대로, 일본인이 죽은 이를 땅에 묻고는 근처 강물에서 몸을 씻고서야 일상생활로 돌아갔다는 것은 고대 일본인이 죽음 내지 주검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뜻이다.


죽음의 정화 기술, 불교


주지하다시피, 일본인에게 천황은 존경을 넘어 숭배의 대상이었다. 천황 숭배는 사후에조차 천황이 정결한 상태에 있다고 믿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려면 사후를 정결하게 해주는 절차 내지 의례가 있어야만 했는데, 고대 일본인에게는 그것이 바로 불교였던 것이다. 일본인은 죽은 이들이 부정을 면하도록 하는 의례를 불교로부터 배웠다. 특히 황실이 언제까지고 정결하게 받들어지도록 해주는 데 기여한 것이 불교의 사후 정화의식 같은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불교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고도의 철학체계로서보다는, 죽음을 정화시키는 주술적 체계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초기의 승려는 국가와 황실의 안위와 보전을 위해 일하는 일종의 관료, 즉 관승(官僧)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 불교의 실질적 시작


국가와 황실을 위한 존재였던 관료적 승려가 오늘날처럼 민중의 종교가 된 데에는 사이초(最澄, 767-822)나 구카이(空海, 774-835) 같은 뛰어난 고승들이 출현하면서부터이다. 사이초로부터는 일본 천태종이 시작되었고, 또 구카이로부터는 밀교(진언종)가 소개, 전개되는 등, 이들의 활동은 일본 불교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교토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曆寺)를 본산으로 하던 천태종은 후에 일본 불교의 확립자들이라 할 수 있을 호넨, 신란, 도겐, 니치렌 등 출중한 승려들을 배출하였다. 천태종의 본각(本覺)사상과 진언종의 즉신성불(卽身成佛) 사상이 이들의 사상 속에 새롭게 녹아들어가면서, 구제의 대상이 일반인에게까지 확장되는 이론적 기초로 작용했다. 이들로부터 국가 중심의 불교가 개인 구원을 향한 순수한 종교 운동으로 변모한 셈이다.


"나무아미타불"


호넨(法然, 1133-1212)을 위시한 새로운 불교의 주창자들은 처음에는 국가의 통제 하에 있던 엔랴쿠지에서 수계하고 공부했지만, 후에는 관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개인적 깨달음을 추구하고, 민중에게 구제의 손길을 뻗쳤다. 종교적 평등성을 확신하고서, 민중에게도 죽음의 부정함을 극복하고 정결해지는 길을 열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호넨은 죽은 이들을 정화시켜주는 염불이 아닌, 살아있는 이들을 정화시켜주는 염불을 강조하고 가르쳤다. 생전에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아미타불에 귀의하는 이는 누구나 아미타불의 나라(서방정토)에 태어난다고 가르쳤다. 이 때문에 석가모니불 신앙이 약해진다는 비판도 일어났지만, 신적 존재의 이타적 자비심에 기대려는 상당수 중생이 이러한 염불신앙에 의지하면서 일본에서 정토신앙은 크게 확산되었다.


"선인도 왕생하는 데 하물며 악인이랴"


호넨의 제자였던 신란(親鸞, 1173-1262)은 “선인도 왕생하는데 하물며 악인이랴”는, 이른바 ‘악인정기설’(惡人正機說)을 주창했다. 무언가 주체적으로 행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이들은 부처님께 의지하려는 마음이 약하지만, 아무런 능력 없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부처님께 의지하려 들기 때문에, 무력하고 심지어 악하기까지 한 이들이 구제의 대상인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미타불은 구제의 필요성이 없을 것 같은 유능한 선인들도 왕생하게 하니, 무능력한 악인이 구제되는 것은 더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적 발상을 통해 신란은 아미타불의 보편적이고 이타적인 자비심을 강조했고, 아미타불에 대한 믿음 하나면 생전의 온갖 허물도 가려진다고 믿는 중생이 몰리면서 ‘정토진종’이 탄생되기도 했다.


신란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결혼을 한 승려이기도 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결혼을 독려하기도 했다. 종교(僧)와 일상(俗)의 경계를 허무는 적극적인 시도로 해석될만한 이 일은 근대 메이지 유신기에 국가에서 일본 승려의 결혼을 결정하고 정당화시키는 숨은 원인으로도 작용하게 되었다.


"일심으로 좌선하라"


또 한 사람 도겐(道元, 1200-1253)은, 보조 지눌이나 태고 보우를 빼고 한국 선불교를 얘기할 수 없듯이, 일본 선의 실질적 원조나 다름없다. 도겐은 청소나 취사 같은 허드렛일도 일종의 종교적 수행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했고, 여성의 출가와 수계를 인정하는 등, 차별적인 사고방식과 관습을 철폐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도겐은 타력적 염불을 비판하면서 오로지 자력적 좌선에만 집중했다. 그에게는 좌선이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의 좌선 중심주의는 말년에 이르러 출가 중심주의로 이어졌다. 출가해 일심으로 좌선 수행해야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로 인해 일본에서는 조동종이라는 선종이 탄생되었다.


"남묘호렌게교"


일본 불교의 독특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가 있다면 니치렌(日蓮, 1222-1282)이다. 그는 “남묘호렌게교”(南無妙法蓮華經)을 부르는 것만으로 성불할 수 있다며, 극단적일 정도로 <법화경>만을 신봉하고 추구했다. 법화경 이전의 경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고 보았고, 정토종에서 행하는 염불 신앙을 부정했다. 세속 권력을 부정하며 정권에 도전적이기도 했지만, 일본을 <법화경>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정권을 이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양면성과 타종파에 대한 배타적 자세는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당시 정권으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후에 일련종(日蓮宗)의 성립으로 이어졌고, 일단의 일본인에게 석존 이상의 숭배 대상이 되었다. 대표적 신종교인 소카가카이(創價學會)는 니치렌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으며, 리쇼코세이카이(立正?成會)의 개조인 니와노 닛쿄(庭野日敬)에게서도 니치렌의 영향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는 점에서, 그가 일본 종교사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니치렌의 일본 사상사적 독특성에 대해서는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 같은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조차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인정하며 또 존경하기도 한다. 우치무라는 니치렌이야말로 일본이 배출한 가장 대표적인 일본인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 인물(니치렌)을 위해 필요하다면 나의 명예를 걸 각오가 되어 있다.” “실로 성실한 인간, 가장 정직한 인간, 일본인 중에 그 이상 없을 용감한 인간”이며, “참으로 훌륭한 인물, 세계적 위인 반열에 세워도 최대급의 인물이다.” “니치렌의 독창성과 독립심으로 불교가 일본의 종교가 되었다. 다른 종파가 어떤 것이든 인도, 중국, 조선인에게 빚지고 있는데 대해, 일련종만은 순수하게 일본인에게 두고 있다.”


개조 신앙


일본 불교의 특징이 있다면, 세계종교로서의 보편성 보다는 자기 집단을 세운 개조(開祖) 내지 법주(法主)에 대한 신앙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토진종에서는 신란을, 일련종에서는 니치렌을 석가모니 이상으로 숭배한다. 이들 자체가 기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일련종 계열에서 좀 더 두드러지는 듯하지만, 어찌되었던 이것은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세계보다는 구체적 현실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온 일본인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세계에 두루 통하는 불교적 보편성이나 석가모니불보다는, 자신에게 신앙의 세계를 알려준 개조를 존중하는 분위기는 일본인의 현세적, 그리고 자기집단중심적 경향의 반영이기도 하다. 보편성이나 추상성 보다는 특수성이나 구체성에 집착하는 경향은 불교만이 아니라 일본 종교, 아니 일본 문화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다루고자 한다. (금강신문 080317)



#사진해설


교토 소재 정토진종 동본원사 입구에 걸린 현판의 법어(“신심있는 자는 그 마음 이미 정토에 머문다”). 신란의 사상을 잘 보여준다.

도쿄에 있는 일련종 계열 묘호지(妙法寺)의 조사당(祖師堂). 니치렌 상을 안치하고 있으며, 니치렌을 벽사초복(?邪招福)의 신처럼 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