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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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종교 연구

제1장. 일본인의 무종교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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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13-12-2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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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인의 무종교성-2


자연종교는 무엇을 말하는가? 자연종교는 누구에 의해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자연발생적 종교를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자연종교는 교단 종교와 달리 교조나 교전이나 교단을 갖고 있지 않다. 자연스럽게 발생해서 선조로부터 이어져와 무의식적으로 계승되어 이어져 왔다. 그러니까 일본사람들이 무종교라고 했을때는 교단종교에는 속하지 않지만 자연종교에는 속한다는 의미이다. 즉 자연종교의 신봉자라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무종교라는 일본인들의 대답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무종교라는 말에는 자연종교를 신봉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무종교성은 자연종교로서의 삶의 형태를 통해 잘 드러난다고 할 수있다. 신도에는 ‘하찌모데’라는 것이 있다. 정월 초하루에 일본 전국민의 70%가 신사에 간다. 1월 1일 일본 텔레비전에서는 어느 진자에 몇 명이 모였는지 참배객 수가 얼마나 많은지가 뉴스거리가 된다. 그들은 진쟈에 가서 1년 동안의 삶을 신에게 빌고 기원하고 가족들 건강과 현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일종의 연중행사처럼 일본인들 삶에 깊숙이 들어와있는 하찌모데는 거의 모든 일본사람들이 자연종교 신자임을 입증해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생활의 중요한 매듭들, 아기가 태어나면 하는 오미야마에리()도 있다. 태어나서 남자아이는 32일이 지나면, 여자아이는 33일이 지나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진쟈에 가서 참배하며 아이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한다. 오미야마에리 외에 시찌고산()이라는 것도 있다. 이는 아이가 3살, 5살, 7살이 될 때 진쟈에 찾아가서 아이의 미래를 신(가미)께 비는 풍습이다. 이렇듯 신도는 일본인의 현세적 삶의 중요한 매듭을 이어주는 자연종교로 자리매김 해오고 있다.

불교의 경우에도 오본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추석과 비슷하다. 7월 13일에서 15일에서 하는 오봉에는 조상의 영을 공양 즉, 일종의 제사를 지냄으로써 영을 공양하는 불교식 행사를 오본이라고 한다. 여기 안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가 있느냐면 일본인들은 사람이 죽게 되면 자손들의 제사를 받으면서 선조가 되고, 제사를 받은 선조는 마을 수호신이 된다고 생각했다. 죽은 조상이 마을 근처의 숲이나 산에 살면서 마을을 지켜주고 자손이 잘 되기를 보호해주는 존재가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오본은 그러한 선조들과의 만남이자 교류이다. 야스쿠니 진쟈는 2차대전에 죽은 혼령들을 모신 사당이다. 제사를 지냄으로써 죽은 자들이 신이 되어 다시 자손들에게 보답한다고 생각해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들에게 신도는 현세적인 삶과 관련이 있는데 반해 불교는 내세적인 삶과 관련이 있는 사실이다. 즉 역할분담이 되어 있다. 대부분의 일본인에게 신도는 현세적인 삶에 도움을 준다는 인식이 있고, 불교는 내세적 신앙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겠다. 또 일본에서 그리스도교의 성탄, 크리스마스는 예수 탄생일이 아니라 하나의 풍습으로 인식된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신도와 자연종교와의 관계이다. 신도는 자연종교를 기반으로 생겨난 종교지만 자연종교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신도가 처음에는 자연종교처럼 발생했지만 불교가 들어옴에 따라 교의를 체계화시키는 작업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본이 외래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토착신앙인 신도가 여러 번 탈바꿈한 것이다. 따라서 신도는 자연종교와 교단종교의 중간에 위치한 종교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신도는 약 9세기 경부터 교단종교의 측면을 갖추기 시작했고 천왕을 중심으로 한 궁정신앙이 바탕이 되면서 교단종교의 틀을 도입하면서 변화를 맞았다.

일본인들은 교단종교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나? 많은 일본인들은 교단종교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다. 그것은 교단종교가 일상생활과 다른 사고방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쿄 거리를 걷고 있는데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회개하시오” 라는 소리라든가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듣는다면 이건 그들에게 너무 당혹스러운 일이다. 어느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떤 남자가 들어와서 예수 믿으라고 막 떠들어댔다. 여러분 또래의 젊은 사람이 자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그 사람을 깨웠다. 예수를 믿으라고 얘기하니까 잠을 깨운 것에 화가 난 젊은이는 “예수 안 믿어요”하면서 그 사람과 옥신각신 싸웠다. 그 사람은 할 수 없이 가면서 혼잣말로 믿어야 되는데 하더라. 이렇듯 일본사람들은 일상생활과는 다른 사고방식에 근거할 것 같은 교단종교에 대한 두려움. 뭔가 특정 교단에 얽매이게 되면 자유를 속박당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니고 있다. 평범한 삶을 지향하는 일본인들에게 있어 교단종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1) 무종교성의 역사


무종교성은 교단종교에 대한 무관심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본래부터 교단종교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는가? 그렇지는 않다. 일본인들도 중세까지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신불(神佛)과 함께 이루어질 정도로 종교적 색체가 짙었다. 중세일본은 신불 즉 신도와 부처가 중심이 되는 종교관이 있었다. 일본 중세는 일본 전 역사에서 독창적인 사상가들이 많이 나온 종교의 클라이막스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그리고 중세 일본의 사상이 지금까지도 일본 종교에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신란()과 도겐()을 들 수 있다. 어쨌거나 중세에는 신도의 가미 신앙과 불교신앙 곧 신불을 신봉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신불 신앙뿐 아니라 불교적 종교관이 일본인들의 사고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중 특히 6도(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신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신의 여섯 세계) 윤회를 믿었던 시대이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내세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가졌고 지옥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일본 중세는 나라() 시대를 지나 헤이안(), 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로 이어진다. 특히 헤이안, 가마쿠라 시대에는 말법시대적 분위기 안에서 불교적인 종교관이 강했고 6도 윤회와 관련하여 내세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일본인의 관심이 높았던 시대였다.

그러나 무로마치 시대(室町 1338-1572)에 유교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등장하면서 신불존숭신앙에 변화가 왔다. 유교의 주된 관심사는 현세의 윤리적인 측면이지 내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한국을 통해 일본에 들어온 유교, 특히 인의예지신을 중심으로 윤리적 가르침은 신불 존숭신앙에 변화를 가져왔다.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는 인의예지신의 덕목실천이 신불신앙과 더불어 강조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양상은 바뀌었다. 즉 신불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유교의 가르침인 인의예지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는 가르침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즉 신불에 대한 가르침을 유교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기만 하면 부처님 앞에서 예불을 한다든지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도 구제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회 엘리트층에만 수용했던 유교가 점차 국민들에게까지 퍼져나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후 구원에 대해 관심이 없던 유교가 정치 지도자들의 사상적 중심 자리를 차지하면서 종전의 신도나 불교는 자리를 빼앗아버렸다. 그래서 무로마치 시대에는 신불 신앙은 부수적인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유교가 중심신앙이 된 것이다. 이 시기에는 종교적 중심사상이 바뀌어 내세중심적이고 종교 중심적이었던 신불신앙이 일본인들의 삶의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사후 극락으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할 때에만 신불이 필요하고, 일상에서는 유교가 이상으로 하는 도덕을 실천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을 펴게 된 것이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신불을 신봉하는 것을 강조해 오던 시대에서, 유교의 가르침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세중심적 삶의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즉 인의예지신이라는 인간관계의 이상적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되었고 신불신앙은 부수적인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한 사회분위기는 무종교성과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일본인들의 무종교성은 무로마치 시대에 유교가 일본 사상계를 지배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유교가 유학자의 영역을 넘어 백성들에게 퍼져 나가게 된 것은 특정 종파에 무관한 무종교성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무종교성은 유교의 등장뿐만 아니라 근세에 유행해온 우키요 사유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2) 부세의식


 일본인들의 사유 밑에는 무상에 대한 사상이 깊이 깔려 있다. 무상은 원래 불교의 중심사상이지만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무상은 언젠가부터 일본인들의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시가집을 보면 무상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가 일본인들의 삶에 깊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부터 8세기 시가를 모아놓은 '만엽집'라는 시가집에 무상 개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일본인들 사이에 무상관념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상은 불교의 제행무상()이라는 가르침에서 나온 것으로, 모든 존재는 생겨났다가 사라질뿐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무상관념은 10~13세기 헤이안 시기에 수도였던 교토를 중심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무상관념은 인생을 괴로움으로 가득찬 雨勢(우키요)로 보는 사고방식이 퍼지게 되었다. 즉 세상은 괴로움과 근심에 가득찬 것으로 인식하기에 불교적 내세 구원을 지향케 한다.

덧없다. 허무하다. 무상하다(儚い はかない) 세상은 무상하다고 생각해온 무상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여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불교에 귀의해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즉 출가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부처가 되거나 아미타불에 귀의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무상을 극복하는 또 다른 방법은 ‘부세의식’이다. 이는 인생은 무상하고 덧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는 즐길 요소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인생을 즐겨서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는 것이다. 누구나 사후의 세계는 마음에 걸리지만 그런 아미타불에 의탁하면 정토에 가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인생을 즐겨보자는 것이다.

1518년 편찬한 한음집閑吟集은 이런 부세의 최초의 선언서라 할 수있다.  여기에 실린 대부분의 시가들은 이 세상은 한번밖에 없는 꿈이니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읊조리고 있다.

17세기 활동했던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는 부세의 인생관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가 쓴 <일본영대장>에 보면 "24-5세가 될 때까지는 착실히 부모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그 뒤로는 오로지 돈버는데 힘써서 일생 살아갈수 있는 재산을 마련해야 한다. 45세이후 유락생활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사이카쿠의 대표작 <호색일대남>의 앞부분에는 주인공이 편력한 여성수가 3742명 남성수가 725명이다. 성도 수향화를 통해 실감할 수 있다.

전생이나 내세는 있는지 없는지 불확실하다. 그것이 확실치 않다면 이에 얽매이지 말고 죽을 때까지 현세를 즐기는 것이 차선책이 아닌가? 이와 같이 부세의 감각은 절대실재의 것 근본적인 것에 불신을 품는다. 이러한 부세감각이 팽배할 때 교단종교의 교의가 인기를 잃게 되는 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와 같이 부세적 감각은 우세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꿈같은 세상에서 오로지 꿈처럼 살아가는 것 즉 부세에 어울리는 삶의 방식을 동경하는 것이다. 

우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부세 의식이 일본인의 삶에 자리잡아 가면서 일본인들에게 무종교성을 더욱 짙게 하는 역할을 했다. 현세가 무상하고 고임을 알지만 인생의 한자락에는 우리가 즐길 만한 요소들이 있다는 부세의식 즉 현세적인 삶을 즐기자는 의식이 퍼져나가면서 교단종교는 점점 더 인기가 사라지면서 일본인들은 마치 교단종교의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와 같이 무종교가 생겨난 데에는 유교의 영향도 컸지만 우세의식으로부터 부세의식으로 넘어가게 된 과정도 일본인들이 무종교성을 갖게 만든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세의식을 갖게 되어도 내세에 대한 문제는 어쩐지 남는다. 거기서 등장한 것이 장의불교이다. 


질문: 유교에서 신불신앙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다시 한번 설명해주십시오

답: 신불이 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에 대해 유교의 가르침이 아직 일본에 정착 되기 전에는 신도의 신은 현세의 삶을 도와주는 것이고 부처는 내세의 삶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왔다. 그 후 무로마치시대 유교가 일본에 들어온 후 인의예지라는 유교적인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 왔다고 유교 신봉자들이 재해석했다. 즉, 신불이라는 존재도 유교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가르침을 구현하기 위해서 등장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일본에 어떤 외래종교가 유입 되면 일본인들은 그것을 어떻게든 일본화시킨다. 모든 종교가 일본식으로 토착화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일본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일본의 토착신앙인 선도는 다신교신앙인데 반해 그리스도교는 유일신을 말하기 때문이다. 다신교와 유일신교가 함께 공존하는 것은 어렵다. 엔로스사쿠우 <침묵>이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3) 장의 불교


일본의 무종교성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또 다른 한 가지가 장의불교인데 다른 말로 장식(葬式)불교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법명을 받는다. 법명은 석존의 제자라는 뜻으로 ‘석 아무개’라는 이름이다. 이와 같이 일본에서는 죽으면 자연스럽게 불제자가 된다. 일본에서는 고인을 위한 의례를 33회 베푼다. 인도불교 경우에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터에서 화장하고 끝난다. 죽은 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의례 행위는 사실 중국에서 온 것이다. 효를 강조해온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죽은 이를 위한 제사를 중시해왔다. 그러한 중국으로부터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제사가 중시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 이외에도 일본 토착신앙인 신도는 현세적인 종교라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신도는 죽음이나 죽은 사람에 대한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와 같이 죽음을 터부시해왔기에 신도에서는 장례의 예를 행해오지 않던 것이 일본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하게 된 것이다. 즉 신도가 하지 못했던 부분을 불교가 메꿔준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자연히 불교에 의뢰해서 제사 의식을 지내는 일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제사 의례를 중심으로 한 불교의 형태로 이것이 남아 있다. 본래 불교는 죽은 이를 위한 제사 형태가 없었는데 신도가 지닌 종교적 측면 곧 내세와 죽음에 대해 해결해주지 못하는 측면들을 불교가 대신 해주면서 일본에서 불교는 장의불교라는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이다.

불교에는 6도 윤회신앙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불자들이 지향하는 것은 윤회를 끝내고 열반(니르바나)에 드는 것이다. 열반은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져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불교적 내세관이 장의불교 내에 어느 정도 있지만, 장의불교는 사실 신도와 습합된 경향을 띠고 있다. 그래서 습합불교()라고도 한다. 신도와 불교가 융합되어 있는 형태이기에 온전히 불교의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즉 장의 불교는 불교의 본래 교의와는 좀 거리가 있다. 어쨌거나 현대 일본인들에게 있어 불교는 장의불교로서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장의불교라는 특성이 일본인들의 무종교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를 많이 지내면 부처가 된다고 생각한다. 죽은 사람은 부정하다고 생각하지만 제사를 계속 지냄으로써 고인이 부처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호토케(불)라고 부르는데 이 풍속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호토케라는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면 호토케의 어원은 후토키와 같다.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지낼 때 그의 영혼을 불러들이기 위해 나뭇가지를 사용하는데 그것을 ‘후토키’()라 불렀다. 나뭇가지의 이름과 연결이 되면서 부쯔(佛)가 호토케가 된 것이다. 오늘날 일본인들은 죽으면 다 부처가 된다고 생각하기에 죽음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이것이 일본 불교가 한 큰 역할 중 하나이다. 신도는 죽음을 터부시하고 죽음 세계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교가 들어와 제사를 통해 죽은 이들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준 것이다. 장의불교는 일본에 교단종교로서 불교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해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장의불교를 통해 사후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해결책을 마련한 일본인들은 다른 교단에 소속되어 자신의 죽음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제의식이나 갈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본에 교단종교가 자리잡지 못한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그러면 만일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는 원령 신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일본인들은 죽은 사람에게 후손이 제사를 지내주지 않으면 원령이 되어 해코지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이런 견해가 상당히 강하다. 사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원령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2차 대전때 죽은 전사의 원령은 자신의 죽음이 합당하지 않아서 한을 품고 있기에 후손들은 그 한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제사다. 제사를 정성스레 드려서 원령으로 하여금 한을 풀어줌으로써 호토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논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종교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이 맞닿아 있는데 종교적인 면을 모르니까 자꾸 정치적인 입장에서만 말해지는 것 같다.

사실 장의불교는 이름만 불교지 내용적으로는 전혀 불교적이지 않다. 불교라고 이름 붙인 것은 죽음을 터부시해온 토착 신앙 안에서 사후묻기를 담당했기에 장의불교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지 실제로 불교적인 교리와는 동떨어져 있다. 중국의 효 사상 효 사상에서는 자기 조상들에게 효를 다하는 것을 선행을 하는 것으로 보았고, 선행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이 제사이다. 이렇게 볼 때 효 사상과 –선행, 제사 의례가 일본에 와서 장의불교 안에 녹아들어간 것이다.


3) 평범 지향주의


일본인의 무종교성이란 거듭 말하지만 교단종교 대해 논하는 것을 꺼리고 기피하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종교성은 평범지향주의와 연관이 있다. 평범지향을 주창한 대표적인 사람으로 야나기다 구니오를 들 수 있다. 그는 1937(쇼와 12년)에 ‘평범과 비범’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회를 열었다. 엘리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강연회에서 그는 자신이 학문을 하는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를 규명하는 것에 있다고 밝혔다. 역사서를 보면  영웅들이나 유명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전개하고 있지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는 영웅이나 유명인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보다 평범한 국민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야나기다는 비범한 사람들의 역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로 새롭게 역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명한 인물 중심으로 서술된 일본 역사에서는 일본 민중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며 이는 결국 민중의 역사를 알 수 없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에도 시대의 역사를 보면, 민중들은 늘 폭동을 일으키고 천재지변에 시달리는 고달픈 삶을 사는 등 한없이 어려움에 봉착하는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에도시대 역사서에는 민중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것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과연 에도 시대 민중들은 늘 폭동과 천재지변, 기근으로 어려움만을 겪고 살았을까. 미나모토 요리토모라는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 장군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그 사람의 행적을 배우기보다 우리 조부모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논리를 펼쳤다. 야나기다는 메이지 근대의 교육역시 관습이나 전통을 무시하고 평범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평범을 중시해야 한다는 논리를 계속 펼쳐나갔다. 이런 야나기다가 제창한 평범지향주의가 일본인들에게 많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본에서 공교육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오는 것도 야나기다가 말한 평범지향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 아이들은 친구들로부터 왕따나 이지메 당하지 않으려고 굉장히 애를 쓴다. 뭘 잘못해도 이지메를 당하고 잘해도 왕따를 당하기 때문에 자신이 뭔가 잘하는 것이 있으면 오히려 감춘다. 자신을 드러내어 왕따 당하기 보다 그 무리 속에 소속되어 있기를 원한다. 무리속에 동질화되기를 바라는 것 안에는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문화적 배경이 깔려있다. 그것이 꼭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평범을 중시하는 측면이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 야나기다가 쓴 책 중에서 <산의 인생>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의 일부를 인용해 보겠다.


‘신앙의 기초는 생활 속의 자연스러운 요구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굳이 일월성신과 같이 웅대하면서 찬란하고 아득한 곳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시사철 아침 저녁에 평범한 행복을 기원함과 동시에 가장 평범한 불안을 취하고자 하여 일찍부터 제사를 지내며 신을 섬겼는데 그 대상은 주로 산이나 들판의 신 또는 강이나 바다의 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웅장한 무엇 곧 저 멀리 있는 일월성신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아침 저녁으로 마을 가까이에 있는 산신, 들판의 신, 강의 신,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일상의 평범한 행복을 기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인들이 원하는 신은 화려한 교회나 신전을 필요로 하기보다 평범한 생활에 밀착된 신이다. 곧 자신의 평범한 삶 안에 가까이 밀착되어 있는 신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평범지향은 종교적 신앙의 대상도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일상 안에 가까이 머무는 신으로 한정시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유일신 종교에서 말하는 강한 초월성을 갖고 있는 신, 또는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아서 부처가 되고자 하는 것은 일상과 거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이 일본사람들이 교단종교를 기피하고 무종교성을 갖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일본의 불교의 염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죽은 혼령을 위로하는 진혼 위령 염불이고 다른 하나는 호넨(법연)의 전수 염불이다. 전수 염불이란 오로지 염불을 통해서 아미타불에 완전히 의탁하는 수행의 한 방법이다. 이것을 야나기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사실 호넨의 전수 염불이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야나기다는 평범지향주의 측면에서 전수 염불을 재해석한다. 즉 전수 염불이란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이기 염불()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진혼 위령 염불은 죽은 사람을 호토케인 부처 혹은 마을신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후손들이 바치는 염불의 형태이므로 진혼 위령 염불이라는 것이다. 야나기다는 이것이야말로 일본인들이 지향해야 할 염불의 형태라고 보았다. 예를 들면 혼간지 교단의 렌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전수 염불이 일본 전역에 퍼졌다. 이 때 전수 염불은 마을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주는 공동체성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사실 평범을 지향하는 태도는 일본인뿐 아니라 현대인들도 꼭 종교를 가져야 하느냐라는 의문을 지니면서 이런 사고를 많이 갖고 있다. 일상주의라는 게 또 있다. 일상주의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일상생활을 존중하는 사고방식이다. 평범을 지향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일상을 무엇보다 존중하는 사고방식 바로 그것이다. 종교의 세속화는 종교가 일상주의 안에 굴복해가는 과정을 세속화라고 한다. 종교가 본래 갖고 있는 초월성 초월성이 각 종교마다 내재되어 있는데 그런 초월성이 많이 상실되고 종교가 일상주의 안에 굴복되는 과정을 세속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일본의 무종교성과 연관해서 살펴볼 수 있다.




4) 일상주의


특별히 일본의 일상주의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신도의 축제인 마쯔리이다. 본래 마쯔리는 같은 씨족신을 모시는 고장에서 태어난, 일족이라고 하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제사 지내는 것을 의미했다. 거기엔 외부 사람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같은 씨족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 제사지내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의 무리를 우지코(氏子)라고 한다. 우지코들이 씨족신에게 바치는 제사가 마쯔리의 본래 의미였다. 여기에 외부 사람들이 참가하는 것은 씨족 내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았다. 오늘날에도 오키나와 지방의 마쯔리에는 그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타 지방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거부해온 마쯔리가 오늘날에는 완전히 개방되었다. 우지코 인들에게 닫혀 있던 마쯔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면서 종전에 갖고 있었던 종교성을 벗어나 일상의 축제로 변했다. 먹고 마시고 놀고…일상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마쯔리에 참가함으로써 거기에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다. 일종의 정화의식이다. 마쯔리 때에는 일본 젊은이들이 신의 집을 상징하는 다시가 든 수레인 미코시를 메고 거리를 지나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그들은 거리도 정화시키고 마쯔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도 정화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일상 안에서 정화 의례로 마쯔리의 의미는 변한 것이다.

외부 사람들이 마쯔리에 참여하면서 생겨난 변화 중 하나는 신사 안에 세전함이다. 자신의 기원을 위해서 세전함을 마련해 놓고 원하는 사람은 신께 예물을 봉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불을 개인적으로 참배할 수 있는 형태가 생겼다. 이는 마쯔리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로 꼽을 수 있다. 이유는 종전에 마을 공동체의 기원을 위해 이루어진 마쯔리가 개인 기원을 포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쯔리의 시간이 변했다. 본래 해질녘에 시작해서 새벽녘에 끝나거나 일몰에서 일몰까지 진행되어 오던 마쯔리가 오늘날에 와서는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아침이나 낮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원래 마쯔리는 풍작, 행복, 안전, 풍어… 와 같은 마을 전체의 기원을 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또 참배의 형태도 굉장히 달라졌다. 마쯔리 장소에서 긴 시간 동안 신에게 참배를 했다면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진쟈에 가서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다. 이렇게 참배의 형식에 변화가 온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목욕 제계이다. 옛날에는 바다나 하천에 가서 온 몸을 깨끗하게 씻고… 제사를 집전하는 사람은 오늘날도 그렇게 한다. 현대에 와서 일반인들은 목욕재계를 하지 않고 테아라이라 하여 손을 씻는다. 진자에 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손을 씻고 기도를 한다. 몸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 손을 씻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진쟈 입구에 테아라이 할 수 있도록 장도가 마련되어 있고 이와 같이 손을 씻고 참배를 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뀐 것들이 일상주의와 연결된 형태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무종교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럼 일본에서 교단 종교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현대 일본인들의 심성 안에 무종교성은 존재한다. 평범지향주의, 일상주의, 교단기피현상이 무종교성이라는 말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무종교성만으로는 진정 종교가 추구하는 그 세계를 추구할 수 있나? 불교에서는 무아를 통해 열반을 증득하고자 하는데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과 하나되는 신인합일의 경지와 같은  종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다. 바꿔 말하면 일본인들이 말하는 무종교성은 종교 자체가 지향하는 종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자유, 해방, 열반, 구원으로 나아가는 데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종교는 초월이라는 측면이 있는데 초월은 일상 안에 녹아서 현실의 삶 안에 같이 있어야 한다. 많은 종교 문제는 초월의 세계와 일상의 삶과의 이원화, 양분화되는 측면을 내포한다는 데 있다. 초월을 제단화해 강조하고 일상을 경시한다면 문제이다. 분명히 초월의 세계가 있지만 이는 일상 세계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을 품을 수 있어야 하고 이 두 가지가 갖고 있는 역동성을 잘 살려야 한다. 이것이 종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관이며 구원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종교성이라고 할 때 이는 일상적 측면만 중시되고 일상 속에 녹아있어야 할 초월의 측면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초월의 세계는 저 세상을 의미한다기보다 궁극적인 세계를 말한다. 이는 무아나 열반 등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일본종교의 무종교성 안에는 초월이 일상에 녹아있지 못한 채 초월을 상실해버린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이 일본의 무종교성이 갖고 있는 한계의 일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측면만 일본 종교에 전반에 깔려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무종교성을 말하면서도 내면의 깊은 곳에는 초월적인 면이 살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측면은 앞으로 일본 역사를 통해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