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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一心에 대한 논평(유제동박사논문에 대한 논평문-성공회종교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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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一心’에 대한 논평
최현민 (서강대)
본 논문은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신앙관을 초월적 실재에 대한 통찰과 응답으로 규정하고 있다. 스미스는 자신의 저술에서 초월적 실재를 언급할 때 주로 ‘하느님’이라는 상징을 사용하면서 자신이 쓴 신중심적 표현은 유일신교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월적 실재를 표현하는데 있어 중립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그는 유일신 전통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점은 ‘스미스의 신앙’을 연구한 배국원 교수님의 박사논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스미스는 초월에 대해서 보다 중립적인 표현을 채택하기를 거절함으로써 세계에서 보다 넓은 청중을 얻지 못했다.”1)
사실 스미스의 신앙관이 ‘신중심적’이라는 것은 본 논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본 논문은 스미스가 인류사에 있어 대표적인 다섯 지성인의 통찰을 통해 신앙이 단순히 교리체계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초월적 실재에 대한 통찰이자 응답임을 밝히고 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그 다섯 사람 중 셋(그리스도교의 성빅터 휴고, 유대교의 유다 하 레비, 이슬람교의 알 가잘리)은 유일신교이고, 한 사람(라마누자)은 힌두교이며, 한 사람(유교의 주희)만이 동양종교이다. 그나마 동양종교로 언급된 주희 또한 “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라기 보다 근대 이전의 신앙인들의 사색의 대표적인 인물로 주의를 예시하면서 언급할 정도”(본논문, 14쪽)임을 본 논문은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동양종교에 대한 미약한 언급 또한 스미스의 신앙관이 유일신교 전통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낳게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스미스의 신앙관에 대한 이러한 비판의 응답인 양, 스미스가 말한 초월적 실재는 유일신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불교에도 해당됨을 보여주고 있다. 본 논문에서 다룬 『大乘起信論』의 一心이 그것이다. 이와같이 대승불교의 一心을 초월적 실재로 해석함으로써, 스미스의 신앙관이 지닌 보편성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은 본 논문이 지닌 의의라 할 수 있겠다.
본 논평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사항 그리고 종래에 이루어져 온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비교 연구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관련지어 다음 몇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한다.
1. 佛敎는 有神論的 宗敎?
스미스는 초월을 드러내는 여러 상징 중에서 神을 선택하여 초월을 설명했으며 “불자들도 神에 대한 신앙을 지녔다”고 말한다.2) 이러한 표현은 본 논문에서 “불교는 有神論的 宗敎”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되었다. 스미스가 말한 神이라는 표현이 유일신에 국한된 신개념이 아니라고 하지만, 과연 불자들은 이러한 표현을 수용할 수 있을까?
2. 초월적 실재를 상정한 것에 대한 불교측의 반응
유일신교의 ‘하느님’이나 대승불교의 ‘一心’이 스미스가 말한 같은 초월적 실재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면 결국 ‘양종교는 가는 길은 다르더라도 목표점은 하나’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死後에나 알 수 있는 것이지 현재의 삶에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따라서 모든 종교가 하나의 정상에서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일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이 ‘정상이라는 초월적 실재를 상정하는 것에 대해서 (중앙승가대학 총장이신) 서종범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교경전상 ‘진리가 있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불교의 대표적 사견은 有無見이다. 非有非無 色卽是空 空卽是色이 바로 正見이다. 진리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有見外道이다. 따라서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함은 불교의 사유구조와 맞지 않는다."
이러한 불교적 입장을 고려할 때 과연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불교의 ‘一心’을 같은 초월적 실재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가?
3. 초월적 실재의 해석상의 문제
본 논문은 불교의 一心, 法(다르마), 空, 如來藏, 本覺을 초월적 실재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 설명하고 있다. 이와같이 다양한 불교적 표현을 초월적 실재라는 틀 속에서 일괄적으로 말한 근거는 이를 ‘존재의 기반 혹은 근저’로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와 관련된 표현으로 본 논문에 나오는 것으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중생 안에 있는 형이상학적인 절대로서의 法” (21쪽)
“중생은 그저 덧없이 헤매는 존재가 아니라 一心이라는 절대에 기반하고 있다”(21쪽)
“一心이 우리 현상계의 존재들에게 중요한 것은...생멸문의 존재의 궁극적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25쪽)
“중생은 생멸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생멸초월하는 如來藏에 기반하고 있다.”(26쪽)
이와같이 본 논문에서는 一心이나 如來藏을 ‘존재의 근저나 기반’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불교계 안에서는 如來藏이나 本覺을 ‘존재의 기반’으로 해석해 온 것을 강하게 비판해온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일본의 비판불교학자들인데 그 대표적인 학자로 마쯔모또 시로우(宋本史朗)와 하까마야 노리야키(袴谷憲昭)를 들 수 있다. 마쯔모또는 ‘여래장 사상은 불교가 아니다’라는 논문3)을 통해 여래장 사상을 비불교라고 규정지었다. 그는 여래장 사상을 불교가 아니라고 본 근거로 12지연기설을 들고 있다. 즉 그는 ‘불교는 무아설이고 연기설’이라고 규정짓고, 불교에 어떠한 존재적 기반이나 근거를 상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마쯔모또는 이런 관점에서 존재의 기반으로 해석되어 온 여래장 사상을 비판한 것이다.
물론 비판불교학자들의 주장에 문제점이 있지만, 여기서 그들이 여래장이나 一心을 존재의 기반으로 보는 견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4) 이와 같이 비판불교학자들의 입장과 관련해 볼 때 과연 불교에서 존재적 근거나 기반으로서의 초월적 실재를 설정할 수 있는가?
4. 앞으로 나아가야 할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비교연구 방향
지금까지 이루어진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비교연구는 궁극적 실재 혹은 초월적 실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대표적인 학파로는 니시다 기따로(西田幾多郞)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京都學派를 들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비교연구는 교또학파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본 논문 역시 ‘초월적 실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위의 범주 안에 있다고 본다.
초월적 실재나 궁극적 실재에 대한 연구는 앞서 말했듯이 ‘정상에서의 상봉’이라는 가설에 입각한 연구에 머무를 우려가 있으며, 자칫 관념적 언어 놀이 속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양종교 간의 비교연구는 그러한 경향이 강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종교 간의 비교연구는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가?
1) 신앙인의 신앙을 중심으로 한 연구
스미스가 말하고자 한 초월의 세계는 초월적 실재 자체라기 보다 그 초월을 살아가는 ‘인격적 신앙인’에 초점을 두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스미스의 궁극적 관심사는 인격적 신앙인이 초월과의 관계를 통해 신앙을 만회하는 길을 모색함에 있다. 스미스의 이러한 관점처럼 우리 관심사의 촛점도 초월적 실재 자체보다 그 실재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양 종교의 원천적 사실이 같은지의 여부를 문제삼기보다 신앙인이 그 원천적 사실을 어떻게 삶에서 살아내어야 하는가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종교 간의 비교 연구는 이웃종교에서 배운 바를 통해 어떻게 자기 신앙의 깊이를 더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2)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각각 다른 종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리스도교는 깨달음의 측면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자비행을 강조해 온 반면, 불교는 자비행보다 깨달음을 중시해온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선불교에서는 心卽佛을 말함으로써 깨달음의 순간 生佛 간에 차이가 없어지고 절대평등의 세계가 펼쳐진다고 말한다. 自己卽佛의 입장은 나와 절대가 완전히 하나인 세계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강조하는 禪의 입장은 책임있는 역사와 문화와 윤리의 세계를 어떻게 구축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실천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물론 불교에서는 同體慈悲를 말하고 지혜와 자비가 不二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깨달음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대승불교의 수행과정을 잘 보여주는 十牛圖 역시 8圖에서 空을 깨달은 후 10圖에서 보살도를 행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우선 깨달음이 있은 후 세상 구원을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감을 말해준다. 이와 같이 先自覺 後慈悲行이라면, 깨달음에 도달한 후 자비행을 베풀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불교는 사랑실천(자비행)과 인격완성(깨달음)을 하나의 역동적 관계로 보는 그리스도교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본다.
또한 그리스도교는 깨달음을 중시함으로써 수행전통이 발달된 불교로부터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나 명상 방법 등을 배워 기도나 명상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함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다른 신앙을 지닌 자들 간에 서로 체험을 교감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고 본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① 각 종교전통의 경전을 함께 읽고 각자의 입장에서 그 내용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를 중심으로 영적 교감을 시도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② 각자의 생활을 통해 느끼는 영성과 종교체험이나 수행체험을 그대로 나누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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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uk-Won Bae, Homo Fidei: A Critical Understanding of Faith in Writings of Wilfred Cantwell Smith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Study of Relgion, a thesis for the degree of Doctor of Philosophy, Harvard University, 1997, p. 214.
2) Kuk-Won Bae, Homo Fidei: A Critical Understanding of Faith in Writings of Wilfred Cantwell Smith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Study of Relgion, a thesis for the degree of Doctor of Philosophy, Harvard University, 1997, p. 254.
3) 宋本史朗, “여래장 사상은 불교가 아니다”, 『인도불교학연구』제35권, 제1호, 1986.
4) 비판불교에 대한 비판은 『비판불교의 파라독스』(고려대장경연구소 편, 고려대장경연구소, 2000)를 참조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