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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읽기 - 사람답게 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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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종교강좌
논어
오늘은 논어를 함께 살펴볼 예정입니다. 실은 제가 불교에는 상당히 관심이 많았는데, 공맹순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도덕 이야기책이고, 논리적이거나 철학적이지도 않다는 점에서 흥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윤리, 도덕에 대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해서 끌리지가 않았어요. 그러나 세월이 좀 지나면서 윤리나 도덕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를 저는 제 삶의 자리에서 조금씩 체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어 가면서 논어를 다시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논어>를 보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것을 좀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논어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맹순을 몇 십 년 동안 연구하신 분들하고는 당연히 차이가 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삶의 경험과, 다른 쪽에서 바라봤던 시각에 비추어서 공자가 지금 이 현대 한국 문화 안에서, 동아시아 안에서, 세계사 안에서 새롭게 자리매김 되어야 할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논어> 중 <학이>편과 <위정>편을 보았습니다. <학이>편에서는 호학자로서의 공자의 모습을 보았죠. 학문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는 굉장히 남달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냥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학습이 아니라 새가 날개짓(羽)을 해서 나는 것을 습득하듯이, 공자는 자신의 삶의 자리 안에서 학(學)을 하고 습(習)을 했던, 그래서 ‘아, 이것이구나’라고 몸으로 체득했던 그것을 학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부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는 말씀드렸습니다. <위정>편은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정치를 하는 것이 법을 앞세우고 있지만, 공자는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서 공자는 덕을 바탕을 둔 다스림이 필요하다 말합니다. 그것은 공자시대 뿐만이 아니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메시지가 무척 크다는 것을 우리 사회를 보면서 절절하게 느끼게 됩니다.
<八佾편>
오늘은 <논어> 20편 중에서 3편과 4편을 살펴보면서 논어 전체를 흐르고 있는 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팔일> 편의 ‘八佾’은 의례에 사용하는 것인데요, ‘佾’ 자는 열(列)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방 여덟 줄로 줄을 서서 춤을 추는 의례입니다. 국가에서 가장 중시하는 천제에게 제사를 지낼 때 팔일무를 춥니다. 8열로 64명이 서서 군무를 추는 것이 팔일무입니다. <팔일>편에서는 그 의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의례라 함은 제사를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예에 대한 것도 포합됩니다. 예(禮)는 유교 전체를 꿰뚫는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예에 대한 개념과 공자가 생각하는 예에 대한 개념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성찰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공자는 주나라의 예를 전승하는 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공자가 14년 동안 망명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군주를 결국 만나지 못했고 그런 점에서 실패로 끝났다고 보여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공자가 오늘날까지 미친 영향력을 보면 결코 그의 삶은 실패한 삶이 아님을 알 수 있죠. 공자는 망명생활 끝에 만년 5년 동안에는 노나라에 돌아와서 교육사업을 펼쳤는데 많은 영재들이 노나라에 모여서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의 핵심에 예(禮)가 있었습니다. 왜 공자는 주나라의 예에 대해 강조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주 문화를 확립했던 주공을 조상을 모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 순, 주공을 공자는 성왕으로 봅니다. 주공을 조상으로 모신다는 긍지 안에서 주 문화 보존에 힘썼습니다. 팔일편 14장을 보면, 공자께서 “주나라는 하나라와 은나라를 계승했으니, 나는 주나라의 문화를 따르겠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 24장은 국경의 관리가 공자가 어떤 분인지를 말하는 대목인데요, 마지막에 보면 “하늘이 선생님으로 목탁을 삼으실 것입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천자가 문화적인 목적으로 사신을 보낼 때 치는 부드러운 종을 목탁이라고 합니다. 상징적인 의미로 목탁을 쓰고 있는 것인데, 공자가 주나라의 문화를 잇고 있다는 것을 목탁에 비유해서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3장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되어가지고 인자함이 없다면 예는 해서 무엇하겠느냐? 사람이 되어 가지고 인자함이 없다면 음악은 해서 무엇 하겠느냐?’”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여기서 예와 음악이 나오는데, 예(禮) 중에서 음악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仁)과 예(禮)의 관계, 이것이 우리가 오늘 나눌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보통 예를 형식적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공자에게 있어 예는 인(仁)의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자함이 없이 예를 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고 있습니다. 인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예임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예를 제사를 지내는, 종교 의례정도로 생각하는데, 공자는 예에 대한 종래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종래의 ‘예(禮)’는 종교의례의 의미였는데, 공자에 와서 인에 대한 표현으로 바뀌게 됩니다. 보편적인 행위로 바꾼 것이죠. 공자가 중요시하는 것은 禮라는 형식보다 예(禮) 안에 담겨 있는 정신입니다.
20장과 25장에도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관저의 시는 즐거우면서도 도를 넘지 않고, 슬프면서도 몸을 상하지 않는다.”(20장) 이것은 또 ‘中’과 이어집니다. 공자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때에 맞는 중(時中), 중을 지키면서 예를 행할 줄 아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소(요순의 음악)에 관해서는 아름다움을 극진히 하면서도 선함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고, 무(무왕의 음악)에 관해서는 아름다움은 지극하지만 선을 다하지는 못한 것이라고 하셨다.”(25장) 요순의 문화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특별히 무왕의 음악이 아름답지만 선(善)이 부족하다고 한 것은 무왕은 무력을 통해서 은을 정복한 사람이어서 음악에 비추어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표현을 인(仁)과 예(禮)에 비교한다면, 인(仁)은 그리스도교의 사랑에 견주어 볼 수 있겠죠. 예는 어디에 해당될까요? 율법에 비추어 볼 수 있겠습니다. 율법하면 바리사이인들이 떠오르면서 사랑과는 거리가 먼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고 완성해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바리사이파에 대한 비판은 율법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형식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본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겠죠. 율법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인(仁)이라는 것은 보편성을 띠고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공자의 시대든 지금의 시대든, 인(仁)이 갖고 있는 부분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예나 율법은 각 시대별로 그 시대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 공자 시대의 예를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바꾸어야 하겠지요. 인(仁)을 담아낸 예로 시대에 맞게 재해석 해내는 작업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닌가 합니다.
<里仁편>
팔일편이 예를 이야기한 것이라면 이인(里仁)편은 말 그대로 인(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인(里仁)’이라는 것은 동네 인심이 후한 곳에서 살라는 공자의 말씀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이인편> 1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산 고장은 인후한 곳이 좋다. 살 곳을 결정함에 있어서 인후하지 않은 곳을 택해서 산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시겠는가.” 오늘날은 어떤가요? 교통편, 집값, 자녀가 있다면 학교와의 거리 등을 고려하죠. 그러나 그 동네에 어떤 사람이 사는가를 보고 동네를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맹자 어머니께서도 세 번 이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만큼 어떤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가가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줌을 말하고 있습니다.
3장을 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인자한 사람만이 남을 참으로 좋아할 수도 있고 남을 미워할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랑하는 것 뿐 아니라 미워하는 것도 인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공자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약 인자하지 않다면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자기 편견에 인해 미워하는 것이 되지요. 무척 솔직하죠. 논어를 읽으면 공자는 이상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늘 체험에 기반을 두고 말씀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팔일편 제1장을 다시 보겠습니다. 계씨를 언급하면서 화가 가득한 공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어떤 배경을 가진 내용인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계씨는 대부였습니다. 대부는 종교의례를 할 때는 팔일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감히 대부가 자기 집 마당에서 팔일무로 제사를 올리니 이건 마치 자기가 천자가 된 것처럼 행세한 것이죠. 그래서 공자께서 “팔일무를 자기 대부인 사람이 팔일무를 자기 집 마당에서 할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과연 무슨 짓인들 못하리”라는 말한 것입니다. 계씨에 대해서는 6장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계씨(노나라의 대부로 인금의 권한을 찬탈한 독재자)가 태산에 제후만이 지낼 수 있는 산천제를 지내러 가려고 하였다. 선생님께서 제자 염유에게 말씀하였다. ‘너는 구할 수 없겠느냐?’ 대답하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오호라. 어찌 태산의 신령이 예의 근본을 묻던 임방만 못하겠는가!”(6장) 제자가 계씨에게 잘못하게 되면 뒤에 여러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니 할 수 없다고 하니 공자께서 한탄하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계씨가 자기의 위치를 넘는 일들을 여러 차례 했음을 우리는 논어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인(仁)에 맞지 않게 예를 행한 것을 공자께서 계속 질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계씨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봤는데요, <논어> 안에는 이런 인간적인 측면들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계씨와 같은 사람에 대한 공자의 솔직한 표현은 그 중 하나입니다.
다음으로 이인편 제5장을 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부(富)와 귀(貴)는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지만 도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빈천은 사람마다 싫어하지만 도에 맞게 살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면 거기서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군자가 인(仁)을 떠난다면 어떻게 이름을 이룰 수 있겠는가? 군자는 식사를 끝내는 동안에도 인(仁)을 어기는 일이 없고, 황급할 때에도 인(仁) 안에 머물며, 거꾸러지고 자빠질 때에도 인(仁)을 지킨다.” 공자가 깨달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인(仁)을 놓지 않는 것. 우리는 살면서 중심을 잃고 방향을 상실한 채 살아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악함과 약함을 보게 되죠. 여기서 공자께서 공자께서 식사를 끝낼 때도 인(仁)을 어기는 법이 없고, 거꾸러지고 자빠질 때도 인(仁)을 지킨다는 대목을 보면서, 보통 공자를 성인이라고 하는데 공자는 자신을 성인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은 늘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늘 ‘군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사실은 공자 안에서 이런 대목을 접할 때는 공자가 성인이구나 하는 것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덕의 완성된 표현을 찾는다면 그건 바로 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장은 인이 모든 덕의 완성이고 인을 이룬 사람은 인격자로 완성된 사람이라는 것을 읽어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어서 제6장을 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불인(不仁)함을 미워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는 인격자이다.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이란 인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불인한 것이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게 한다. 하루 동안만이라도 인에 전력을 다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아직 힘이 부족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마 그런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인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인은 누구나 다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仁)의 보편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은 뉘앙스를 풍(仁)깁니다.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스님들은 1년 중 6개월을 수행을 하며 지내는데 과연 몇 사람이나 깨달을 수 있을 까요? 저는 거기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어요. 보통사람은 범접하기 어려운 어떤 무엇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공자가 말하는 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힘이 부족해서 인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인은 하려고만 하면 인은 옆에 있다는 표현을 쓰시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내가 仁하려는 마음을 접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식으로 이야기하면 사랑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공자께서는 노력하면 누구나 다 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인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고도 하십니다. 노력하면 다 인해질 수 있는데 인하려고 실제로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공자께서는 현실을 통탄하십니다. 공자시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현실도 이와 유사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음으로 제7장을 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인간의 허물이란 그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르니, 허물의 성격을 살펴보고 그 사람이 인자한지를 알 수 있다.” 성숙한 사람도 허물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의 허물을 보면 ‘아, 저 사람은 아니야’라고 하게 되는데, 성숙한 사람도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런데 허물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누구나 보편적인 삶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논어 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仁)
“인(仁)한 사람은 군자다.” 공자 이전의 예와 공자 이후의 예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군자’나 ‘소인’의 의미 또한 공자이전과 이후에 달라집니다. 군자라는 표현이 <시경>이나 <서경>에도 나오는데요, 거기에 나오는 군자는 사회적 신분으로서 지배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소인도 마찬가지이고요. 사회적 신분을 뜻하던 군자, 소인이 <논어>에 와서 도덕적인 인격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도덕적인 인격을 갖춘 사람을 군자라 하고, 도덕적인 인격이 부족한 사람을 소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인편의 11장을 보면, “군자는 덕을 품어 생각하는데, 소인은 토지를 귀히 생각한다. 군자는 규범을 중히 여기는데, 소인은 특혜받는 일에 전심한다”라고 나옵니다. 사회적 신분을 뛰어넘는, 도덕적인 인격을 갖추었느냐, 아니냐를 통해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인편 16장을 보면 “군자는 의로움에 입각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소인은 이로움에 입각해서 만사를 판단한다” 의로움과 이로움의 차이가 곧 군자와 소인의 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공자께서 자기 자신이 문화를 계승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화를 계승한다는 것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술이부작이라는 것도 자기가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단순히 문화를 있는 그대로 모방해서 따른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답습하고 가르쳤다면 공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주는 존재일 수 없는 것이죠. 공자가 공자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술이부작에 있지만, 자기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아니지만 재해석이에요. 예도 그러했고, 군자와 소인도 그러했고, 덕도 그렇습니다. 이 부분을 놓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에요. 우리는 그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본다면 논어는 그냥 에세이지요. 그러나 공자가 중국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공자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재해석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군자와 소인의 말의 의미를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자기 안에서 새롭게 도덕적인 인격자로서 재해석한 것은 공자의 독특함이자 새로움입니다.
술이편 23장에 보게 되면 공자께서 "하늘이 내 안에 덕을 부여하였다."는 말이 나오는데, 덕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술이 제3장에 보면 “덕이 닦아지지 못한 것이 내가 우려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이미 받은 것을 노력해서 닦아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몫인데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공자께서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공자사상에서는 인간마음에 대한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시지 않으세요. 인간 본래의 마음이 선하다고 보는 성선설은 맹자에 와서 이야기되는 부분이죠. 그 맹아, 씨앗은 바로 공자에 있습니다. 공자는 내가 덕을 갖게 되는 것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가 공자에게 계속 있고, 공자의 삶의 전체를 흔들림 없이, 공자가 어려움을 많이 겪었음에도 그의 삶의 자리가 흐트러짐이 없이 오롯하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천(天)에 대한 강한 신뢰, 천으로부터 본성을 받았다는 신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천 사상에는 인격적인 천도 있고, 비인격적인 天도 같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물론 이제 원시 유가를 넘어서서 주자학에 오게 되면 천은 비인격적인 성격을 더 강하게 갖게 됩니다. 원시 유가 안에서는 天은 인격성을 갖고 있는 대목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 안연을 잃고 天이 나를 버렸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德이 맹자에 와서 성선설로, 덕이 내 안에 있는데 그 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맹자는 문제를 삼고 본성론 쪽으로 해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학기 들어서 맹자와 순자를 다룰 때 제가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인편>의 중심이 되는 것은 仁입니다. 仁은 논어 전체 안에서 105번 등장합니다. 굉장히 많은 언급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仁이 무엇이다’라고 딱 꼬집어서 정의내리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계속 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그때마다 공자의 답변은 다양하게 되고 있어요. 인을 뭐라고 정의내리지 않고 제자들의 금기에 맞게 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살펴볼 예정인데 그 중 하나가 ‘충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극기복례’, 세 번째는 ‘수기안인’입니다.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仁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仁에 대한 다양한 해석
인이라는 것은 공자사상의 핵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仁도 마찬가지로 공자 이전부터 벌써 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습니다. 문헌 자료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B.C 743년 <시경>과 <서경>에 인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仁의 의미 역시 공자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인의 의미가 고대 국가, 특히 주나라 같은 경우는 천으로부터 명을 받아서 치자, 임금이 됩니다.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되었죠. 그러나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천명사상에 변화가 오기 시작해요. 천명은 영원하다는 것이 흔들리면서 제국들과 함께 권력에 있어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치자들이 치자다운 치자가 되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치자가 해야 하는 일은 ‘자기를 닦아서 남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기안인입니다. 자기를 닦는 것이 수기(修己)이고, 남을 편안하게 하는 게 안인(安人)입니다.
여기서 人이라는 것은 공자의 논어 상에서 人은 다른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그냥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타인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이야기하는 인입니다. 그러나 공자는 치자 뿐 아니라 모두가 수기안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仁의 의미가 확장되고 보편화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이라는 것은 공자에게 있어서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입니다. 사람답게 되는 것이 공자에게 있어서 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은 결국 修己하고 安人하는 것입니다. 치자의 경우는 수기안인안백성까지 가요.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것은 공자에게 있어서 홀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사람이 아니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사람입니다. 바로 人이라는 것이 그렇죠. 인이 사람이 둘이 있는 것, 둘의 관계를 뜻합니다. 이것이 서구하고 동양의 큰 차이입니다. 서구는 자아라고 하는 것, self, 개체성을 강조합니다. 각자 독립되어 있는 것이죠. 동양은 개체성을 그렇게 중시하지 않아요. 서구인들은 동양은 자아의식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대화가 더디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만, 그것은 동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주눅이 들게 됩니다. 동양은 자아의식이 서양보다 늦게 발달되고, 자아가 덜 깨우쳐져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마치 철학도 그쪽이 더 발달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양과 서양의 사유체계가 다르다는 것뿐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이죠. 서구의 사상은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 하면 사람을 개개인으로 봅니다. 그림을 봐도 서구는 사람을 클로즈업해요. 사람의 얼굴에 말입니다. 반면 동양화를 보면 사람은 자연 속의 한 점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그것이 인간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사유가 얼마나 다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공자 사상에서도 마찬가지죠. 사람은 둘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게 따라 사람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 사람이 얼마나 똑똑한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충서(忠恕)
그럼 구체적으로 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가 충서입니다. 공자가 그의 제자인 증자(曾子)를 향해 “參(삼)아 내가 연구하는 도리는 하나로써 천만개를 꿰뚫는다”고 하자 증자가 “예 그렇습니다.”라 했다. 이에 다른 제자들이 증자에게 선생님이 물었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증자가 ‘그것은 충서다’라고 말합니다.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표현을 공자께서 여러 번 쓰십니다. 하나로 꿰뚫어본다는 것인데요, 그것을 증자는 충서로 해석을 한 것이죠. 증자가 해석한 충서는 인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이 보통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김형효 교수님을 이것에 대해서 조금 다르게 보고 계신데요, 공자께서 나갔기 때문에 그것은 증자가 해석한 것이고, 사실 공자의 밑바탕에 있었던 핵심은 중용이다라고 해석하고 있어요. 중용과 시중에 대해서는 뒷부분에 언급해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충서는 <논어> 안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별히 恕가 갖는 무게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것은 단순히 증자의 표현 뿐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우리가 이것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충서라는 것은 논어에만 나오지 않고 중용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중용에 보면 “忠과 恕는 道에서 멀지 않다. 자신에게 어떤 것이 행해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 중용 제 13장에서 중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忠恕 違道不遠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이것이 바로 황금률입니다. 자신에게 무언가가 행해지는 게 싫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주 싫어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도 싫어한다는 것이죠. 내가 꺼리는 것임에도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경우가 우린 아주 많죠. 내가 좋아하냐 싫어하냐에 비추어서 남에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충은 자기에게 해당되고 서는 남에게 해당됩니다. 충이 수기에 해당된다면 서는 안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령공 24장에도 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봉이 공자에게 여쭈었다. “한 마디로 종신토록 행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는 恕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다.(황금률)라고 답했다. 한 마디로 종신토록 행해야하는 것이 ‘서’다.그 서의 의미는 자기가 원치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황금률을 보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라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데 공자는 부정표현을 통해 말합니다.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하지말라,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하라는 것이겠죠.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의 가르침의 황금률과 공자의 가르침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충과 서의 의미를 나누어서 함께 보려고 하는데요, 공야장 제 19장에 나와있는 것을 인용했습니다.
자장(子張)이 여쭈었다. "令尹(초나라의 재상을 뜻함) 子文(초나라 대부의 이름)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이 되었는데도, 그때마다 기뻐하는 기색도 없었고, 세 번 벼슬을 그만두면서도 그때마다 서운해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아보던 영윤의 정사를 반드시 새로 부임해온 영윤에게 상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이만하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충성스럽다 할 만하다." "仁하다고 할 만합니까?" 하고 다시 여쭈니,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모르겠다. 어찌 仁하다고까지야 말할 수 있겠느냐?"
충만 가지고서는 仁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벼슬을 해도 기뻐하지 않고, 벼슬을 내려놓아도 서운해하는 기색이 없다면 자기중심이 잘 서 있는 사람이겠죠.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仁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공자는 말합니다. 자기자신만 갖고서는 부족해요. 남과의 관계를 봐야지만 인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이죠.
다음은 恕와 仁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안연 2장입니다.
중궁(자공)이 仁에 관해 어쭙자 공자께서 “문밖에 나가선 큰 손님을 맞이하듯이 정중히 행동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드는 것 같이 신중히 하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도 하지 않으면 나라에도 원망이 없고 가정 안에도 원한이 없을 것이다.”
이게 서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도 하지 않으면 나라에도, 가정에도 원망이 없다. 옹야 30장을 보면 “자공이 여쭈었다. 만일 백성에게 널리 베풀어주고 환난에서 많은 이들을 건져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어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어진 정도이겠느냐? 반드시 성인일 것이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이같이 하기를 힘들어했다.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도달하고 싶으면 남을 도달하게 한다. 가까운 자기를 예로 삼아 먼 것을 볼 수 있는 것, 그것을 인자함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한다.” 지금 공자께서 서에 대한 평을 하고 계십니다. 어진사람에 대한 공자의 해석은 남과의 관계 안에서 안인하고 안백성할 수 있으면 어진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충과 서에 대한 공자의 표현에 대해서 주희, 주자는 이렇게 주석을 달았습니다. “충서는 하나로 관통하니...忠은 體이고 恕는 用이다.” 중국사상은 철학이 체용관계로 풀이되는데, 충이 體이고 서가 用에 해당합니다. 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게 용인데, 자기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이 충이라면 자기를 확장하는 것이 서입니다. 恕의 의미는 자기가 확장되는 것이에요. 나만이 내가 아니고 내가 너를 같이, 나의 바운더리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생태를 바라보면서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죠. 동양사상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사유로 돌아간다면 생태계,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나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유의 근본적인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고, 동양적인 사유가 갖고 있는 가치를 우리가 다시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克己復禮
안연이 공자에게 인을 물어봤을 때 공자께서 바로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극기복례가 인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루라도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면 천하가 仁에 따르게 될 것이다. 仁을 이루는 것이 자기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남에게서 나올 수야 있겠느냐“(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자기로 말미암아 仁이 되는 것이죠.
여기 지금 극기라고 했을 때, 기라는 것을 보겠습니다. 중국사유세계 안에서 자아라는 것이 언제 시작되었는가 했을 때, 이것은 서구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자아에 대한 논의가 있었느냐 했을 때 이것은 천명과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천명의 비영원성을 깨닫게 되면서 자기가 천명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소명의식을 천자가 강하게 느끼면서 중국사유세계 안에서 자아라는 것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극기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스도교에서 뭐로 바꾸어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것을 회개로 바꾸어 읽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메타노이아, 회개의 근본은 나의 생각과 마음 곧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회개라는 것이 결국은 깨달음이에요. 깊이 있게 인식이 전환되는 것. 오늘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서 인식의 깊은 전환이 왔다면 여러분은 회계한 것입니다. 회개란 인식의 전환이에요. 인에 대한, 예에 대한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 여러분에게 왔다면 회개한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사람의 마음을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으로 나눠서 이야기합니다.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이 마음 안에서 서로 송사(訟事)를 벌이며 싸우고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인심이라고 하면 탐욕에 끌려가는 그런 마음을 인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심은 하늘에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도심에 귀를 기울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잘 아시죠.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다는 게 내 내면에서 울려오는 것이죠. 그러면 그 소리를 들으려면 내가 침묵해야죠. 그래야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공자 사상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죠? 내면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서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인을 담은 예를 보면서 仁해지듯이 우리는 사랑을 담은 우리의 삶의 자리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가게 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내 삶의 자리를 통해 내가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공자는 하늘만 바라봐서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자리 안에서 내 행위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내가 터득해 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 안에서 도심과 인심이 같이 있는데, 어느쪽으로 방향을 정해서 내 삶을 살아가는가. 내 삶의 방향을 짓는 것이 바로 예에요. 공자에게있어 예는 도심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에요. 구체적인 행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내 행위가 가는 것이죠. 그렇게 계속 가다보면 인해진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가르침은 굉장히 구체적이죠. 땅에 발을 딛고 있어요. 논어를 새롭게 읽으며 여러분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뜬구름 잡는 게 아니라 더 깊은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공자의 힘은 어디서 올까. 그건 바로 학습에서 왔습니다. 반복되는 학습이 그를 힘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내가 내 몸으로 학습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仁할 수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예를 행하고, 반복하는 노력입니다. 그것이 바로 공자가 이야기하는 학습입니다.
유교의 초월성
놀라운 것을 발견한 것은 유교 안에는 초월적인 면이 약하다도 생각했습니다. 불교나 그리스도교는 초월성이 크지 않습니까. 그것이 매력이죠. 초월적인 어떤 것이 갖고 있는 힘이 있잖아요. 그런데 유교에 굉장히 강항 초월성이 있어요. 무엇이 유교의 초월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공자의 사유세계 안에서 어떤 대목에서 초월성을 만날 수 있는가. 그건 바로 성왕입니다.
공자가 요임금, 순임금, 주공을 성왕이라고 합니다. 사실 주공이라고 하면 그의 형 무왕이 죽고나서 주공이 실질적인 권력자였는데, 자기가 권력을 쟁취하지 않고, 무왕의 아들인, 자신의 조카가 성왕이 되는 것을 계속 지지합니다. 실질적인 권력자로 자리매김하지 않고 조카를 서포트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성왕이 되는 것이죠. 여기 논어 20편 요왈 제 1장을 보면 요순임금에 대한 대목이 나오고 있습니다. 요임금은 중국의 정치문화를 최초로 정착한 전설적인 임금으로 등장합니다. 순임금은 덕이 높은 임금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성왕으로 부르는데요, 이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그들의 삶의 자리가 정말 그런 성왕의 이름에 걸맞는 그런 삶을 살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공자에게 이들은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입니다. 이상적인 모델을 요,순,주공같은 임금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 이상적인 모델을 모방하고 따르려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살아야하는지를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고, 그것이 논어라는 책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저는 논어 전체를 흐르는 흐름 속에서 공자가 지향했던 바는 仁의 세계이지만 인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공자는 성왕이라는 초월적인,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일수도 있고요,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성왕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로, 도달해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라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듯이 바로 공자에게는 성왕이라는 것, 요,순,주공같은 사람에 대한. 임금이 초월적인 이미지를 공자가 갖고 있었고, 그의 삶이 유교에서 초월성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자의 사상 안에서 법가의 사상과 노자장자의 사상이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느냐라고 했을 때, 공자는 현실의 군주를 굉장히 중시합니다. 군주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법가에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통치에 법가는 법이 중심이지만, 공자는 덕에 중심이 있다는 점에서 법가와 차이가 있습니다. 공자는 이 세상에 대해서 현실의 타락을 비판을 한다는 점에서는 노자장자사상과 아주 흡사합니다. 특별히 안연 같은 경우는 상당히 무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뒤에서 장자를 다룰 텐데 장자 안에 노자와 안연이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둘이 대화하는 것이 나오거든요. 장자가 왜 노자와 안연을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선택했는가 했을 때 안연의 삶이 무위적인 삶이었기 때문이에요.
노자와 공자의 사상에 차이를 둔다면 지난시간에 이야기했듯이, 피인지사와 피세지사. 사람을 피해서 망명했던, 이것은 도피하는 게 아니라 찾아다니는 것이었죠. 그러나 노자의 경우는 세사을 피했죠. 재미있는 것은 중국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들이 춘추전국시대,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500년 안에서 이런 사람들이 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야스퍼스는 이 시기를 기축시대라고 보기도 합니다.
修己安人
憲問 42장을 보면 자로가 군자에 관해 여쭙자. 공자께서 “공경스런 마음으로 자신을 닦는다”(修己以敬)고 대답하셨다. 자로가 말하기를 그러할 뿐입니까 하자 공자께서” 자신을 닦아 남을 편안케 해준다(修己安人) 하셨다. 다시 그러할 뿐입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는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케 해준다.(修己安百姓)라 하셨다. 자기를 위한 공부와 남을 위한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써두었고요.
이인편, 인의 근본이라는 것이 결국 효제, 부모사랑과 형제사랑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확장되는 것. 유교는 가족중심입니다. 이 부분이 유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유교는 가족중심이다. 저는 이것과 묵자사상을 비교해볼까 합니다.
묵자가 공자를 비판하는 것은 공자식의 사랑은 가족중심의 사랑입니다. 효제를 중심으로 한 가족중심이죠. 그런데 가족중심의 사랑을 묵자는 별애(別愛)라고 봅니다. 자기 가족을 먼저 챙기고 그 다음에 남을 챙기는 것이죠. 그것에 반해서 묵자는 겸애(兼愛)를 주장합니다. 겸애라는 것은 아우를 겸, 겸상애. 서로 사랑하는 것. 공자의 사랑은 별애적인 것이고 묵자는 겸애적인 것. 보편적인 사랑인 것이죠.
공자가 이야기한 가족애의 의미를 논어를 통해 깊이 있게 다시 한 번 볼 필요가 있어요. 공자는 항상 출발점을 나에게 둡니다. 나로부터 너에게로. 점점 확장해 나가는 것이죠. 내 체험, 효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랑을 못합니다. 그러나 공자의 사랑은 가족애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효제는 공자의 사상에서는 출발점이에요. 남에게로 확장해나가는 것이에요. 그러나 유교라는 것이 가족애에 머물러있는 상태죠. 공자의 사상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인을 살아내지 못하는 부분이 되겠습니다. 공자의 사상에서는 늘 나에게서부 시작합니다. 추기급인이라고 해요. 자기로부터 옮겨서 남에게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공자의 힘입니다. 나로부터 시작해요. 나는 하지 않고 너한테로 가는 것이 아니라 늘 항상 親親에서 시작해서 愛人으로 나가는 것. 愛人은 남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사회와 예
끝으로 한국의 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조선 500년 역사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유교였죠. 유교는 신분사회를 유지하는 기틀로서 작용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유교가 조선이 멸망하면서 신분제도가 붕괴되었고, 유교는 봉건주의의 잔재물이라는 이유로 억압했기 때문에 쇠퇴해갔습니다. 게다가 해방과 함께 서구문명이 유입되면서 유교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약화되어갔죠. 그럼에도 유교적인 가치관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유교적 가치관이 새로 들어온 서구사상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고, 우리 삶의 자리에서 이 갈등이 발생합니다.
가톨릭 대학에서 열린 그리스도교 토착화에 관련된 심포지엄에서 질문이 있었는데요. 교회 안에도 장유유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서 우리가 한국인이고 한국의 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아 왔어요. 우리의 밑바탕에는 유교적인 것이 깔려 있는데, 개인주의적인 민주주의적인 평등의 가치가 또 들어왔죠. 그 둘이 상충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혼란이 오는 것이죠.
유교가 오늘날 우리 문화 안에 굉장한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삼강오륜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오륜이 아니라 삼강에 있다는 것이죠. 오륜은 다섯 가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안에서 어떻게 인할 수 있는가를 논의한 것이고 공자의 사상과 바로 연결되어 있죠. 그러나 삼강은 한(漢)나라 이후 중앙집권적이며 가부장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위정자들이 채택한 강령입니다. 수직적인 관계를 규정짓기 위한 것이죠. 형식적인 것만 남고 인이 빠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질서를 말하고 있는 장유유서는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죠. 동양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측면이에요. 민주주의의 평등사상과 동양이 갖고 있는 가치관의 조화를 이야기하려면 공자가 이야기했던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길, 그것이 인이고 예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오륜을 내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는 것은 인에 대한 표현이라는 가르침이 없다면 우리 사회 안에서 갈등이 계속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