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종교대화강좌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비교영성 입문
- 종전의 비교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 -
Ⅰ 서론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비교 영성이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 먼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양 종교 간의 대화와 관련한 연구결과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종전에 진행되어온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에 대한 내용이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다소 생소하고 어렵게 느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내용이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배경으로 이루어질 것이기에 이 부분을 먼저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세계는 메스미디어로 인해 시공을 넘어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다원화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면성을 지닌 현대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나와 다른 종교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풀어가야 할 과제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토인비가 한 다음 말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지금부터 천년 뒤에 역사가들이 우리 세대를 기술한다면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역사상 처음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 깊이 침투하게 된 일에 더 흥미로워할 것이다.” 그의 예언대로 현대 역사 안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는 다른 어느 종교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한국의 종교적 상황은 여러 종교가 대등하게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여러 종교가 있더라도 그 중 주된 종교가 있지, 우리나라처럼 막상막하의 힘을 지닌 여러 종교가 공존하진 않습니다. 이와 같이 다원화된 종교현상 속에서도 평화를 유지하며 다종교의 형태로 살아갈 수 있음은 큰 축복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간 평화유지가 다원화된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현 이명박 정부로 일어난 불교탄압사건은 근본주의적 신앙관이 낳은 한 사태라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자신과 다른 세계관과 구원관을 가진 사람들을 깊이 이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이 우리 신앙공동체를 통해서만 구원의 손길을 뻗치실까?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만 당신을 보여주셨을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외에 구원이 없다면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 곧 그리스도를 모르고 산 뭇사람들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 이는 비단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점과 관련하여 타종교를 어떤 입장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지 먼저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타종교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1) 배타주의
타종교를 이해하는 태도는 크게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국 그리스도인은 다른 종교를 배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입장은 구원이 그리스도교에만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개신교 신학자인 칼 바르트는 그의 스승 헤르만과 하르낙에서 완성된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를 인간의 무의식 속에 이미 포함된 원형으로 보아 그리스도를 인간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바르트는 “인간은 인간이고 하느님은 하느님이다. 유한은 무한을 포함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속에 나타난 하느님의 신실하심에 의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신인식의 길에 있어 "인간에게서 신에 이르는 길은 없고 다만 신이 인간에게 찾아오는 계시의 길뿐"이라는 것입니다. 배타주의적 입장에 서게 되면 종교 간의 대화는 참 힘듭니다. 그래서 배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이 포괄주의입니다.
(2) 포괄주의
포괄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울타리를 넓혀 다른 종교를 수용하려는 태도입니다. 포괄주의 입장에 선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구원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비록 타종교를 갖고 살더라도 그들 또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부처님이나 알라신을 모시고 살더라도 그들이 믿어온 실재는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과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교신자라 할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알면 더 풍부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개종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사용하는 용어나 개념, 종교적 행위들은 다르지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그들 또한 그리스도교의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 라너는 이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예수를 바라보는 신학적 시각에도 변화를 불러 일으킵니다. 즉 포괄주의자는 예수를 역사적 예수로만 생각지 않고 ‘우주적 그리스도’로 봄으로써 모든 진리가 예수 안에 수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의 진리도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 포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타종교인들도 그리스도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리스도 개념 속에 들어있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괄주의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종교인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자체에 대해 질문을 제기합니다. 포괄주의자들은 넓게 망을 쳐서 이웃종교인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종교 안으로 넣으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자기종교안에 집어넣고 자기만족만 하는 것이지 이웃종교인의 인격을 인격으로 대하거나 타자를 타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불자를 불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리스도교 식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그것입니다. 즉 있는 그대로 상대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태도가 포괄주의의 한계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 폴 니터는 자신의 체험을 말한 바 있습니다. 그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파키스탄에서 유학 온 이슬람교도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신앙에 만족하고 있었고 어느 그리스도교인보다도 윤리적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폴 니터는 자기 신앙 안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그에게 ‘너는 그리스도교를 통해 완성될 것이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체험 후 니터는 포괄주의의 한계를 깨달았고 다원주의적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3) 다원주의
다원주의의 주요 학자로 폴 니터, 존 휙, 윌프레드 켄트웰 스미스, 레오나르도 파니카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종교의 다양성과 균등성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각자가 지닌 종교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각자의 길에서 모두 구원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종교간의 대화는 이러한 다원주의 입장에 선 사람들에 의해서 진행 되어왔습니다.
1) 신중심적 다원주의
다원주의는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신중심적 다원주의가 있습니다. 포괄주의가 ‘그리스도 중심’이라면 신중심적 다원주의는 ‘하느님 중심’입니다. 포괄주의적 입장이 우주적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결국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원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중심 개념인 그리스도를 피해서 하느님 중심의 신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신’ 자체도 그리스도교적인 개념이라고 반박하지만 신중심적 다원주의자인 존휙은 자신들이 말하는 ‘신’은 그리스도교의 신이 아니라 보다 궁극적인 실재(Reality)라고 주장합니다. 불교에서는 유일신 관념이 없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세계도 결국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실재는 ‘공(空)’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공’이 종교 간의 대화 주제가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와 같이 신중심적 다원주의는 종교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공통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의 모든 종교가 실재 혹은 신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고 이런 실재를 자신의 문화적 틀에 따라 표현해 내는 양식이 다를 뿐 뿌리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존 휙은 ‘그리스도’가 중심인 포괄주의 입장에서 ‘하느님’이 중심이 된 다원주의로의 변화는 마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감행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그는 자신의 종교를 중심으로 다른 종교를 보는 포괄주의적 입장을 천동설에 비유한 궁극적인 실재를 중심으로 모든 종교의 공통 근거를 찾으려는 다원주의는 지동설과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종전에 각 종교는 천동설의 경우처럼 자기를 중심으로 사고했다면 이제는 모든 각각의 종교들은 궁극적 실재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지구와 같은 위성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원주의자들은 자종교 중심의 신학에서 궁극적 실재라는 공통분모 중심의 신학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다원주의에도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의 공통 근거를 추구하기 때문에 각 종교의 전통을 뛰어넘어 궁극적인 실재를 지향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지나친 다원주의는 각 종교의 고유성을 희석시켜 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 이슬람에서는 ‘코란’과 같이 각 종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부분에 신자들이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포괄적 다원주의
신중심적 다원주의가 지닌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는 의미로 최근에 새로운 시각을 펼친 학자 중에 종교신학자 마크하임(Mark Heim)을 들 수 있습니다. 그가 주장한 입장은 포괄적 다원주의입니다. 이것은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의 세 가지를 각 상황에 따라서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은 자신의 종교에 헌신할 때는 다원주의의 태도에 설 수 없습니다. 자신의 종교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지니지 않은 채 특정 종교의 신앙을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이 점은 다원주의 안에는 자기 종교에 대한 상대주의에 빠져서 온전한 헌신을 하지 못할 위험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기 신앙에 헌신한다는 점에서 배타주의와 유사한 것 같으나 이 입장은 다른 사람의 종교를 인정해 준다는 점에서 전통적 배타주의와는 다릅니다.
포괄적 다원주의가 지닌 또 다른 측면은 내가 하나의 길을 선택했기에 삶 전체로 그 길을 따라가지만, 다른 종교를 배움으로써 자신의 신앙 상태가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이 불교를 알게 되면, 그것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조명하면서 신앙의 폭이 깊어지고 넓어짐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포괄주의적 다원주의의 또 하나의 측면입니다.
세 번째 다원주의 입장은 객관적인 연구를 할 때 필요합니다. 학문적 입장에 서서 종교 간의 대화를 할 때는 객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신앙으로 다른 종교의 교리를 해석하면 자기식의 해석일 뿐, 객관적인 해석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다른 종교를 접할 때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마크하임은 한 사람이 세 가지 입장을 상황에 따라 가질 수 있고 이것을 ‘포괄적 다원주의’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종교 간의 대화는 신중심적 다원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며 이들은 대부분 서양의 종교 학자들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들에 앞서 동양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를 주도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교또학파의 학자들입니다.
2. 교또학파를 중심으로 한 양 종교의 만남
한국은 불교와 그리스도교 신도 수가 거의 같은 비율을 지닌 매우 독특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양종교간의 대화가 활발할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양 종교 간의 대화는 그리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히려 불교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일본에서 양 종교 간의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 주축이 바로 교또학파입니다. 따라서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또학파의 연구업적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 변선환 목사는 한국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 대화에 깊은 관심을 지닌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불행하게도 다원주의 입장에 서서 예수의 유일성에 반하는 사상을 펼쳤다는 주장 때문에 감리교에서 이단으로 축출당하셨습니다. 근본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김홍도 목사는 변선환 목사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변선환은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구원받는 성경의 근본교리와 완전히 배치되는 범신론 내지 무신론적 구원관을 갖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감리교단 안팎에서 그의 사상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있습니다.
변목사는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총서’ 시리즈 7권을 대원정사 출판사를 통해 낸 바 있습니다. 제1권은 니시타니 게이지(1900-1990)의 『종교란 무엇인가』이고 제2권은 한스 반델펠스의 『공과 하느님』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를 위한 기초작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이 책의 내용은 그리스도인이 불자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불교지식을 열거하고 있으며 부록에서 교또학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3권은 종교적 신비체험을 중심으로 양 종교 간의 대화를 시도한 윌리암 존스톤 신부의 『선과 기독교신비주의』라는 책이며, 제4권은 히사마쯔 신이찌의 『무신론과 유신론』입니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그리스도교를 유신론으로, 불교를 무신론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서 양 종교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즉 유신론적 그리스도교가 절대타자의 신앙에 입각한 구원을 말한다면,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는 무상(無相)의 자기(自己)로서의 구원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반된 인간상을 비교함으로써 양 종교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히사마쯔 신이찌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그리스도교를 논하고 있지만 그가 지적한 측면이 실제로 그리스도인이 지닌 신앙의 일면이기에 그의 연구는 많은 신학자들의 관심사가 되어 왔습니다. 특히 히사마쯔는 하느님을 바깥에 두고 대상화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비판함으로써그리스도교 신학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내재성에 보다 깊은 관심을 일으켰습니다.
(1)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1870-1945)의 사상
니시다 기타로는 교또학파를 대표하는 선구자이며 일본철학의 개조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그의 철학 사상은 선불교 사상을 근거로 하여 서양 철학사상과 만남을 시도했다는 데에 그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니시다의 철학적 관심은 유럽철학의 유물론과 유심론이었습니다. 유물론은 세계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사물의 존재를 인간의 마음과 관계없이 보는 입장인데 반해, 유심론은 세계를 주관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럽 철학은 주관과 객관을 뚜렷이 구별하는 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니시다는 주관과 객관 중 어느 하나로 세계의 양태를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으며 한쪽에 치우치는 오류를 범하는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주관이냐 객관이냐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즉 그는 유럽철학의 근본적 입장 자체에 의문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가 유럽철학에 비판적 관점을 가질수 있었던 건 선체험의 힘이 큽니다. 그는 동서사상을 비판적으로 자기 안에 흡수하여 이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융합함으로써 하나의 결론을 얻었는데 그것이 바로 순수경험이라는 개념입니다.
니시다는 주객 이원론적 사고의 틀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이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불교이고 선(禪)이라고 보았습니다. 니시다는 그것을 ‘순수경험’이라 표현합니다. 순수경험이란 한 마디로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순수하게 善체험을 할 때 구관과 객관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니시다는 『선(禪)의 연구』 (1911)에서 순수경험을 본격적으로 설명하는데, 예를 들어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심취되면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도 모두 잊어버리고 음악으로 하나 되는 것을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주객미분(主客未分)의 상태 곧, 순수경험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아름다운 음악에 심취되어 우리 자신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도 함께 잊어버리며 천지가 다만 아름다운 하나의 음악소리인 것만 같이, 이 찰나에는 소위 참된 실재가 직접 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순수체험이란 지 ․ 정 ․ 의(知 ․ 情 ․ 意)의 분리가 없고,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적 대립이 없는 경지를 말합니다. 이는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상태라기보다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지기 이전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니시다는 순수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왜 ‘선(善)의 연구’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순수경험을 할 때 최고의 선의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너의 경계가 없어지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최고선의 경지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주변세계와 동떨어진 독립된 존재이다’라는 주관적 공상이 지워지고 나의 마음과 주변세계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지고의 선행에 도달하여 참된 만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니시다가 말한 순수경험은 선(禪)체험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니시다는 오랫동안 선수행을 했고 그러한 자신의 경험 안에서 이 사상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시도했던 것이 ‘동양의 선과 서양의 철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사유는 ‘장소적 논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했습니다.
‘장소’는 순수경험을 실재적 측면에서 표현한 말입니다. 순수경험은 주객을 떠난 경지이기 때문에 의식의 차원이 아니라 직관의 차원입니다. 이와 같이 직관의 차원인 장소를 니시다는 서양의 합리적, 의식적 사고인 논리로 설명하려고 시도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의 논리가 바로 그의 ‘장소적 논리’입니다. 이와 같이 니시다는 선불교의 종교체험을 근저로 서양 철학과 그리스도교 사상 간의 만남을 시도했으며 양 종교 간의 대화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니시타니 게이지(西谷啓治, 1900-1990)의 사상
니시다가 교또학파의 선구자라면, 니시타니 게이지는 그의 사상이 하나의 학파로 발전시킨 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신앙이 없는 죽음과 허무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은 희망이 전혀 없는 기간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그 시점에 그는 삶과 죽음의 문제로 고뇌했고 이는 그가 철학을 공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내 철학의 출발점』에서 “나는 허무주의의 문제가 종교와 과학 사이에 상호 적대의 근간을 이룬다고 확신한다. 나의 철학적 노력은 이 확신에서 출발하고 발전하여 결국 모든 것을 포함하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니시타니는 자신의 허무 체험 속에서 서구의 허무주의와 만났습니다. 니시타니는 자신의 문제의식인 허무주의야말로 서구사상의 근저에 깔려 있다고 보았습니다. 절대 중심인 신의 죽음은 서구 사상의 바탕을 이루고 있던 그리스도교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서구인들이 축을 상실함으로써 무엇을 잡고 살아갈지를 모르게 되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구사상에서 자신의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 가운데 니시다와 선(禪)을 만난 것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선과 철학의 관계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니시타니는 현대사상이 지닌 문제의 근저에는 서구의 허무주의가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선사상이라고 보며 선과 철학과의 만남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는 서구가 지니는 이원론적인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해결책은 ‘공의 입장’이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공의 입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래성, 원천적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래 자신의 진면목에 눈을 돌리게 되면 허무의 장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니시타니는 『종교란 무엇인가』에서 어느 특정 종교의 입장보다 모든 종교에 반대하고 신앙에 무관심한 현대인의 자세를 문제삼고 있습니다. 그는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비종교인들에게 종교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서양 철학과 선을 함께 연결시키면서 종교의 본질, 실재에 대해 풀어나가고자 노력했습니다.
니시타니는 자신을 ‘되어가면서 이미 된 불교인’이며 동시에 ‘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되어가는 불교인이면서 되어가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동시에 ‘이미 된 불자’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어디까지나 불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가 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함은 그리스도교에서 끝없이 배우고 변화하려 하는 그의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니시타니의 고백은 ‘이미 된 그리스도인, 되어가는 그리스도인, 되어가는 불교인’이라는 저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정체성을 니시타니처럼 표현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종전의 양 종교의 대화에 대한 평가
(1) 신중심적 다원주의사상이 지닌 한계
지금까지 살펴본 신중심적 다원주의에 대해 제 나름대로 평가를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윌프레드 켄트웰 스미스는 ‘신’이라는 상징을 사용한 대표적인 신중심적 다원주의 사상가입니다. 그가 말한 신은 그리스도교에 국한된 신이 아니라고 합니다. 즉 스미스는 유일신적 신을 초월하여 불교나 신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종교에서 말하는 궁극적 실재까지 포괄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이런 해석을 하여도 여전히 신이라는 표현은 동양 종교, 특히 불교에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중심적 다원주의는 개별종교 간의 다름을 간과하고 개체종교의 독특성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신이라는 표현대신 궁극적 실재라고 쓸 때에도 인격성과 비인격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인격적 존재인데 비해 불교의 공은 인격적 실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원주의자들은 인격성과 비인격성의 문제가 다원주의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길희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공은 사랑의 존재론적 개념이며 사랑은 공의 인격적 언어이다. 모든 개별자들을 포괄하고 통일시켜 주는 것을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같이 인격적 실재로 보느냐 아니면 불교의 공같이 비인격적 실재로 보느냐는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각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격성과 비인격성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가 풀어가야만 하는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세 번째 신다원주의의 문제점은 종교무용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중심적 다원주의자들은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강조하다보니 모든 종교는 동등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특정 종교를 가질 이유가 사라집니다. 무슨 종교를 믿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특정종교를 믿어야 할 이유는 없어지게 되지요.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교가 해체될 위험성을 들 수 있습니다.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문제로 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입니다. 다원주의자들은 예수에 대한 해석을 할 때 예수의 절대성을 배제하고 계속해서 상대화하려고 하며, 예수만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그 밖의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의 유일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결국에 그리스도교를 해체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봅니다.
(2) 교또학파의 사상에 대한 평가
1) 긍정적인 평가
교또학파의 사상이 지닌 긍정적인 측면은 그리스도교 신관에 대해 도전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교또학파의 사상을 접하면서 ‘내가 신앙하는 신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이 비판하듯이 ‘나는 신을 대상적 존재, 실체적 존재로 생각해 오진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하느님을 대상화하고 실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이원론적인 사고의 틀을 가지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종교체험 안에서 하느님의 초월성보다는 내재성에 대해 관심을 두는 경향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하느님은 존재자를 뛰어넘는 존재 자체라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이데거도 존재와 존재자는 구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하느님이 계신다면 하느님은 존재 자체이지 존재자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때 그 신은 ‘존재자’로서의 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지어 신을 새롭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늘날 많이 연구하는 것이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사상입니다.
엑카르트는 하느님을 존재 자체(esse ipsum)라고 말합니다. 유한한 존재들은 존재 자체인 하느님을 떠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엑카르트는 하느님을 ‘하나’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합니다. 여기서 ‘하나’라는 말은 둘, 셋 등에 대비되는 숫자적 개념이 아니라, ‘모든 수의 원천이고 근원’으로서의 하나를 의미합니다. ‘존재나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엑카르트의 신관은 신(Gott)과 신성(Gottheit)을 구별하며, 둘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신성은 존재 자체를 말합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속성을 가지고 있는 삼위의 하느님은 신이고 그것은 신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엑카르트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느님께 기도한다. ‘나를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십시오”라고. 여기서 후자의 하느님은 존재자로서의 하느님을 의미합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하느님을 ‘없이 계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있으면서 없는 존재’인데 반해, 하느님은 ‘없으면서 있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없이 계신 하느님은 바깥에서 아무리 찾아도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은 ‘너의 깊은 속보다 더 깊이 계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가는 길은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불교와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얻은 소득은 하느님을 바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깊이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극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종교본질론적 접근과 그 한계
니시다가 말한 ‘순수체험’이나 니시타니의 ‘공의 입장’은 모두 종교의 본질적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모든 종교가 만날 수 있는 본질적인 것에 주목했고 사실 이것이 종교 간의 대화에 주요 관심사가 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의 본질론적인 접근이 야기시키는 문제는 각 종교의 특수성이 감추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특수성이 각 종교 안에서 간과될 수 있는 것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차이점이 각 종교의 신앙의 핵심이라면 이것은 문제가 됩니다.
불교가 그리스도교일 수 없고, 그리스도교가 불교일 수 없게 하는 각 종교의 특수성을 제외시킨 종교간의 대화가 과연 진정한 대화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깁니다. 교또학파가 종교간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면서 선불교의 종교체험을 불교와 그리스도교 대화를 말함에 있어 공통 분모로 내세웠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니시다가 말한 순수경험은 불교의 선(禪)체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불교의 선체험이 과연 모든 종교 체험을 포괄하는 종교 체험인지 다시금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 체험이 불교라는 역사적 상대성을 완전히 벗어나서 초역사적인 경험의 세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선을 통해 경험한 종교 체험과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한 종교 체험이 과연 같은 것입니까? 불교적 종교체험과 그리스도교적 종교체험 사이에 유사성도 있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봅니다. 차이점 중 가장 크게 부상하는 것은 ‘예수의 유일성’ 문제입니다.
4. 예수의 유일성 문제 - 신중심적 다원주의자들의 그리스도론
포괄적 그리스도론을 주장해온 파니카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별했습니다. 역사적 예수는 그리스도임이 분명하지만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와 동일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한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는 그리스도이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라는 명제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폭을 넓히는 것이고 그리스도는 꼭 예수만이 아니라 불교의 보살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변선환 목사는 파니카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비판합니다. 복음은 구체적인 역사성과 삶을 연관해서 이야기되어야 하는데 파니카가 말한 우주적 그리스도론은 형이상학적인 사변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다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론을 펼치기 위해서 그는 민중종교의 그리스도론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시아에 전래되기 전에도 아시아인은 나름대로 토착신앙 안에서 삶의 의미와 진리를 발견하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는 점에 변목사는 주목합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면서 서구 신학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영성이라는 새로운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새로운 세례’라는 것은 그들의 민중적 상황을 통해서 골고타의 죽음과 부활체험이 아시아 신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형이상학적 그리스도론 보다는 예수가 죄인 민중의 친구였다는 실천에 근거하여 예수의 유일성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변목사는 그리스도인에겐 예수가 유일하고 보편적인 규범이 되지만 타종교인에겐 동일한 규범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그는 신중심적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적 해석을 합니다. 또한 그는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며 역사적 구체성을 절대화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예수의 유일성을 보류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입장표명으로 그는 감리교단 안에서 이단으로 축출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예수의 유일성은 신학에서 매우 어려운 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존 휙은 예수를 신의 한 은유가 되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하느님이라는 개념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은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지니신 분임은 확실하지만, 예수님을 성육되신 하느님이라고 문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신의 한 은유가 되는 존재 정도로 휙은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은유적인 의미로 예수를 설명하면 우리도 누구든지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행위 안에서도 성육신할 수 있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즉 그의 사상에 따르면 성육신은 예수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모든 인간 존재에게 열려 있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존 휙의 입장을 길희성의 보살기독론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불교의 보살이라는 개념으로 그리스도를 설명하고자 시도했습니다. 보살기독론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공과 하느님을 동일 실재로 이해하고 그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아적 그리스도로 새롭게 해석한 점입니다. 보살이라는 개념은 대승불교에서 이상적 존재상으로 이미 깨달았지만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이기를 보류한 인간상을 말합니다. 길희성은 “보살이 2000년 전 갈릴래아 지방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예수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인들이 예수의 의미를 우리 문화와 종교적 감성 속에 자리잡아온 보살로 이해함이 당연하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아시아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고자 시도한 보살기독론에 대해 변선환 목사는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신앙의 보편적 가능근거는 공이나 절대무라는 비행접시에 있지 않고 인간실존의 자기이해에 있으며 이 자기실존은 내 구체적 생의 상황 곧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만 가능하다” 각주 즉 길희성의 보살기독론이 지닌 가장 큰 문제는 역사적 예수를 추상적, 이상적 존재인 보살과 대비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것입니다. 또 변목사는 길교수가 불교라는 종교와 그리스도교의 종교라는 종교를 동일시함으로써 성서신앙을 불교적으로 환원시켰다고 비판합니다. 길교수도 자신이 보살이라는 이념에 더 비중을 두고 그것을 통해 예수를 해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는 그리스도교가 예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종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다원주의론적 관점에서 보살기독론을 주장한 것입니다.
Ⅲ 결론
그렇다면 불교와 그리스도교간의 대화는 어떤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까요? 이 물음은 앞으로 우리가 이 강좌를 해나가면서 계속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고찰을 바탕으로 종교 간의 대화를 할 때 생길 수 있는 몇 가지 문제점과 앞으로 어떤 입장에서 종교 간의 대화를 해나가야 할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보편성 추구가 지닌 함정- 영성의 관념화 문제
첫 번째는 보편성 추구가 지닌 함정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신중심적 다원주의 입장은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를 상정하고 대화해 왔습니다. 많은 신앙인은 하나의 정상을 향해 다양한 길을 선택하여 올라가지만, 결국 같은 정상에 다다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신도 아니고 불교의 신도 아닌 제3의 보편성을 가진 더 큰 차원의 실재를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중심적 다원주의자들처럼 하나의 가설을 내세우고 그것에 집착하면 영성의 관념화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관념의 세계를 넘어 궁극적 차원에서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틱낫한 스님의 말대로 파도의 차원이 아니라 물의 차원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원효스님의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에 나오는 ‘환호환 탄환사(幻虎還 呑幻師)’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사는 마술사이고 환호는 마술사가 만든 허깨비 호랑이를 의미합니다. 이 이야기는 마술사가 환술로 만들어낸 호랑이가 도리어 마술사를 삼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모두 마술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으로 모든 것을 지어내고 결국 자기가 만들어낸 관념, 교리들에 오히려 자신이 먹히고 있는 것입니다. 환호는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분명 관념의 세계를 뛰어넘어 있습니다. 종교를 관념으로 규정지으려는 순간, 우리는 환호에 잡아먹히고 맙니다.그러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환호로부터의 초월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진행할 대화의 방향을 위해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 할 비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2. 각 종교의 특수성과 고유성의 문제
종교대화를 할 때 하나의 정상을 향한 목적에만 치중하다 보면 신앙의 여정을 소홀히 생각하는 경향을 띠게 됩니다. 다시 말해 보편성만을 추구하다보면 각 종교가 지닌 특수성, 고유성을 무시해 버리거나 약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두 종교의 신앙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불교적 체험을 좋아해도 불자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웃 종교를 공부하고 접해도 저는 그리스도교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불자 또한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과 불자가 종교 간의 대화를 할 때 각 종교가 지닌 특수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한계이지만 그러기에 다른 종교로부터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여지를 주는 측면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점이 다른 종교와 대화해야 할 이유를 제공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 예수의 유일성이 지닌 보편성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종교간 대화가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 예수의 유일성입니다. 신중심적 다원주의자들은 예수의 유일성을 소극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의 유일성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육화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육화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합니까? 예수의 유일성과 관련하여 종전의 신학적 해석에서 문제가 된 것은 예수의 유일성을 존재론적 의미만으로 해석하려고 했던 점입니다. 예수의 유일성은 그가 자각한 하느님이 누구이신가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의 유일성을 말할수 있음은 그가 자신의 삶을 통해 드러낸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예수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말한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실존 곧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기 비움이 예수의 육화를 통해 드러났음을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유일성’이라는 표현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의 육화 사건은 예수의 존재성을 말하기에 앞서, 예수를 통해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신중심적 다원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리스도론과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신중심적 다원주의자들이 말하는 신은 ‘가설로 상정된 궁극적 실재’입니다.
그것은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이라기보다 이를 넘어선 실재입니다. 다시 말해 역사성을 뛰어 넘어선 실재 곧 그리스도교신도, 불교의 신도 아닌 ‘보다 큰 보편성을 지닌 신’을 의미합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인들이 신앙하는 신은 예수의 육화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신 ‘역사의 하느님’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안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셔서 인류를 구원해주신 살아계신 하느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틱낫한 스님은 마틴 루터킹 목사님을 만나는 순간, 성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어느 종교전통을 대표하는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의 종교만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도 만나게 된다고 틱낫한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종교간의 대화에서의 본질적 요소라고 봅니다. 타종교를 심층적으로 만나면, 자신의 종교도 깊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생깁니다. 저는 지난 종교간 대화 작업을 통해 이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간의 대화를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는 각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동시에 두 종교가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영적으로 성숙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목적이 같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정신적 성향이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대화의 기초는 단단히 놓여지게 된다”고 달라이라마는 말씀하십니다.
질문 1) 오늘 강의에서 말씀하신 부분 중에 신중심적 다원주의의 문제에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종교에는 언어나 상징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나 하느님을 완전히 인식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다른 종교를 바라보는 것이 마치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적이고 우리의 삶에서 경험되는 하느님이지만, 다른 종교에서 경험하는 코끼리도 궁극적인 진리의 항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참고가 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죽기 전에는 눈을 뜨지 못하기 때문에 다 볼 수는 없지만 부분적으로 보는 코끼리도 우리 생활 속에서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궁극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신중심적 다원주의의 문제는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실재는 같다는 가설에 있습니다. 다원주의라는 말 자체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인데 그들은 다름을 뛰어넘어 계속 같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설에 집착하다보니 각 종교의 고유함이나 특수성을 간과하고 약화시킨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사실 다원주의에는 신중심적 다원주의 이외에도 다른 사상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껏 이루어진 종교간의 대화에서 신중심적 다원주의가 중심이 되어왔다는 점이지요.
질문 2) 모든 종교는 정상은 하나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는 말씀에 공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각 개인의 신앙생활 속에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한계와 초월 사이를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수녀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저는 불교수업을 많이 하는데 그 자체가 종교대화입니다. 제가 불자가 아니면서 불교수업을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종교간의 대화를 하게 되는 셈이지요. 물론 학생들에게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불교를 가르치지만 결론부분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에 대해서 말하게 됩니다. 저는 일본에 있으면서 비구니 스님들과 선 명상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기도 생활에도 선 명상 방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선불교를 가르치면서 선 명상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과 종교적 체험의 역동성이 제 기도를 더 깊게 만듦을 느낍니다. 저는 불교를 제 신앙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서 저의 신앙이 깊어지고 넓어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강좌를 진행하면서 좀 더 고백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것 같은데 그때 지금 못다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3) 교황청에 있는 일본인 추기경 한 분이 일본의 가톨릭은 선에 너무 치우쳐져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종교 간의 대화에 너무 몰입하다보면 교황청 간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수녀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앞서 개신교에서 변선환 목사님 이야기가 나왔듯이 가톨릭에서도 종교 간의 대화와 관련하여 신학적 해석의 문제로 교황청에서 한국 가톨릭 신학자들에게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정양모 신부님, 서공석 신부님, 이제민 신부님 등입니다. 어려운 부분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위험하다고해서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지 제가 체험한 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예정입니다. 일본의 종교 상황은 상당히 독특하고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비율이 1%를 넘지 못합니다. 토착신앙인 신도와 불교가 엄청난 세력을 지니고 있기 에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리려면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불교와 대화를 지속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인 추기경님과 같은 걱정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본 교회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인에게 그리스도교가 뿌리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리스도교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일본의 그리스도인은 질적으로 아주 수준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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