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6 (종교학 방법론 논문)
C. G. Jung의 禪佛敎와의 만남
차 례
서 론
1. 융의 학문적 태도와 핵심 사상
2. 융의 동양종교를 이해하는 태도
3. 융이 이해한 선불교
4. 선과 명상
5. 상과 자기실현의 비교
결 론
서 론
융은 人間이 人間으로서 가장 근원적인 보편적 내용을 마음의 바탕에 지니고 있는 존재라면 문화적 전통의 차이는 人間의 근원적 이해에 절대적인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관점에 서서 제반 종교 현상을 연구했다. 융의 동양종교에 대한 연구 역시 자신의 경험적 사실에서 세운 人間心性에 관한 假說 중 특히 마음의 中心에 관한 學說이 동양종교사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러한 사상을 담은 동양의 經書 가운데서 自己實現의 과정이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바로 이점은 융이 자신의 분석심리학의 입장에서 종교현상을 탐구함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양종교를 접하면서 서양적 사유체제 안에서 동양종교를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식했다. 그래서 동양종교 현상연구에서 융이 취한 방법은 심리학적 접근과 함께 서양문화 속에서 비교 할 수 있는 것을 발굴하는 작업이었다. 本稿에서 주제로 잡고 이쓴 그의 선불교에 대한 이해 역시 위의 2가지 접근 방법을 통한 것이었다.
이러한 융의 선불교에 대한 이해는 禪宗思想史 전체의 맥락안에서 볼 때 초기단계인 인도禪의 習禪단계에 머무름을 볼 수 있다. 따라서 本稿에서는 융의 선불교의 이해의 한계점을 중국 선종사상의 흐름과 관련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융의 자아실현과정과 선불교의 깨달음의 과정을 비교함으로써 양자간에 만날 수 있는 부분과 사이됨을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1. 융의 학문적 태도와 핵심 사상
한 학자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그의 학문의 세계안에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는 맥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은 그의 사상을 깊이 이해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학문이란 대체로 지적, 논리적 추리를 전제로 하지만, 그러한 논리성은 때때로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장애가 되는 수가 있다.’
왜냐하면 융의 학문의 세계 즉 그의 분석심리학은 융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이루어졌고, 이와 관련지어 연구했던 종교론 역시 그의 종교적 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학문을 함에 있어 사고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도 인간을 이해함에 있어 人間의 체험전체를 포괄하는 데에 논리적 언어보다는 상징적언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도 人間정신이 산출하는 많은 symbol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는데 Jung이 종교에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무의식에 출현되는 상징의 보편성과 그 뜻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종교야말로 오랜 인간의 언어인 상징을 보존하며 이를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융의 학문적 태도와 관련해서 그가 종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의 핵심적 사상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유의 관심은 한마디로 ‘人間의 마음의 中心’에 있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 ‘나’로서 의식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곧 自我란 나의 전체 정신의 변두리인 의식의 中心일뿐이다. 의식의 세계 밑에 나를 둘러싼 미지의 세계 곧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 따라서 人間정신의 전체란 자아를 관장하는 의식界와 무의식까지를 포괄해야 한다. 그러면 이둘을 통일시켜 全一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융은 여기서 ‘전체정신의 中心’을 自己라 표현했고, 궁극적인 人間성숙의 목표는 이 自己를 실현하는 일이고 人間은 본래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이 무의식 속에 깊이 잠재해있는 ‘自己’‘全一’에의 잠재력은 때때로 인식 가능한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융은 후에 이를 ‘Mandala'의 상징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Jung 자신은 1916년 우연히 만달라와 그림을 그리게 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차츰 그것이 마음의 통일과 관련된 어떤 핵심적인 像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환자들의 꿈 속에서도 四位로 구분된 圓의 像을 핵으로 한 여러 장면을 관찰했고, 그것이 그들의 체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티벳 密敎를 포함한 동양사상 속에 Mandala의 상징이 해탈의 목표로 제시됨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것이 모든 인류의 무의식에 보편적인 원형임을 주장할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 연유이다. 그는 자신이 내세운 마음의 中心에 대한 가설이 동양종교 뿐 아니라 세계 여러 종교 內의 상징들 안에서도 적용됨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古代 이집트의 主神, 사방에 4 福音者를 에워싸고 중앙에 그리스도를 그린 기독교의 聖畵, 中世 연금술에서의 球로 표현된 영혼, 또 원시종족의 주술 종교적 표현들에서 ‘自己’로 표현될 수 있는 본질적인 核을 발견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융의 학문적 태도와 그의 핵심사상에서 융이 동양종교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2. 융의 동양종교를 이해하는 태도
필자의 관심사가 동양 종교 중 융의 禪佛敎와의 만남이기에 그가 선불교를 접하는데 간접요인이 되었던 그의 인도죵교와의 만남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선불교는 중국내의 자생적인 종교가 아니었고, 인도에서부터 유입되었으므로 융이 인도 종교에 대해서 가졌던 관심을 살펴 봄은 융의 선불교와의 만남의 문제를 다루는데 중요한 단서를 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이를 통해 융이 동양사상을 이해하는 태도가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융이 인도의 땅을 밟게 된 것은 그의 학설이 정립되고 완숙된 이후인 1938년이었다. 그런데 이미 융은 동양종교에 대한 깊은 관심하에 동양의 여러 곳을 방문했었고, 이는 자신이 이미 경험적으로 발견하였던 무의식의 구성요소인 원형의 관념을 더욱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인도 종교를 접하면서 무엇을 느꼈고, 그것이 그의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융은 여기서 동양적 사유와 서양인의 사유 세계가 지닌 큰 차이점을 발견했고, 서구인이 동양을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심연이 있음을 인식했다.
“인도인의 목표는 도덕적인 완전성이 아니고, Nirdvandva(*nirvana)의 상태이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며 그와 함께 명상 속에서 色相없는 空의 상태에 도달하려고 한다. 그러나 난는 자연과 정신적의 상의 생동하는 관조를 견지하고 싶다. 나는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지도 않고 나로부터도 자연으로부터도 해방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내게 말할 수 없는 경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는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개성화 과정의 상징을 찾고자 했지만 동서양 종교가 지닌 특성의 차이,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서구인이 섣불리 동양종교를 흉내 내는 데서 오는 오류를 지적했고, 1936년 ‘요가와 서양인’이라는 題下에서 서양인이 요가를 받아들이는 피상적인 태도를 경고하게 된 것이다.
융은 인도를 비롯한 동방여행을 통해 동양정신과 서구의 정신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후에 이를 기초로 하여 동양인의 사유와 서양인의 사유체계를 서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융은 동양의 ‘성인’을 만나는 것을 삼갔다. 그것은 그가 자기자신의 진실에 충실해야 했고, 자신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것 이외의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성인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의 진리를 받아들이러 한다는 건 마치 도둑질 하는 것과도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지혜는 그들에게 속하며 내게 속하는 것은 오직 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에 한하는 것이다. 유럽에서의 나는 동방의 아무 것도 借用할 수 없다. 다만 내 자신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 내 내면에서 말하는 것, 혹은 나의 본성이 나에게 가져다 주는 것을 갖고 살아야 한다.”
위 구절에서 언급했듯이 융은 자신의 자리에 확고히 서서 타문화 정신세계를 자신의 사상체계와 비교하는 자연 과학적 심리학자의 태도를 견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융의 동양사상을 이해하는 태도를 인식함은 앞으로 살펴 볼 융의 선불교에 대한 이해에 중요한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융이 선불교를 이해하려는 관점은 서구인의 사유세계 안에서 그리고 자신의 심리학적 관점하에서의 이해였기 때문이다.
3. 융이 이해한 선불교
선불교는 다른 불교 종파와 같이 복잡한 교학의 첵몌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히혀 사상체계를 배척하고 不立文字, 敎外別傳을 그 핵심적 요소로 갖고 있다. 즉 선불교에서는 구도자 각자의 체험을 중시하는데, 이는 융이 심리치료에서 각 개인의 경험을 중시하는 면과 일맥상통하며, 이런 점에서 융이 선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여겨진다.
융은 선불교의 본질과 목적을 서구인들에게 소개해 준 대표 선불교학자인 D,T,Suzuki의 <Introduction to Zen Buddhism>의 서문에 자신이 이해한 선불교의 견해에 대해서 썼다. 본고에서는 이 부분을 중심으로 하여 융이 이해한 선불교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융은 스즈끼의 “깨달음은 선의 존재 이유이므로 깨달음 없이 선은 없다.” 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선늬 본질인 깨달음(Enlightment)에 주목했다. 융은 선의 깨달음의 경지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그는 말한다.
“禪에서의 깨달음의 과정이란 자아의 형태로 제한된 의식이 비자아적인 자기자신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자신, 즉 자아의 불성에 의한 交替이며 하나의 커다란 인격변환의 과정이다.”
즉 선에서는 의식의 내용을 비워 의식의 내용에 있던 에너지가 공의 관념이나 화두에 옮겨지면서 에너지의 여분이 무의식에 잠겨 무의식의 에너지를 증대시킨다. 그리하여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으로 뚫고 들어올 준비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무의식이 의식을 뚫고 나오는 데에는 오랜 수련이 필요하며 선사들은 제자들이 이 깨달음의 경지를 체득하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서구인 가운데 누가 과연 뛰어난 스승을 믿어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교육 방법을 무조건 따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엄청나게 역설적인 자기 변혁이란 체험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 서구에 있을까? 설사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어렵고 험난한 실현에 수많은 세월을 바칠 정도로 진정으로 ‘믿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융은 이런 면에서 선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서양인들이 이해하는 데는 깊은 심연이 가로놓여 있음을 중시했다. 따라서 그는 서양인이 선의 깨달음을 이해하는데 있어 선과 유사한 것을 서구 신비주의에서 찾아서 이를 통해 선을 이해하고자 했다. 서구 신비주의에서는 진정한 자기 이해를 통해서 어떻게 좁은 에고를 넘어서 內的(혹은 神的)인간에 이를 것인지를 가르쳤다. 융은 바로 이러한 종교적 자기 변혁에 대한 신비주의자들의 체험이 禪 수행자들의 깨달음의 체험이라고 본 것이다.
“나는 우리 서구에도 깨달음이란 체험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궁극적인 목적을 가슴 깊이 새기고 그리고 가까이 가기 위해 몸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을 지킨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려는 모두 시도가 절망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융은 서양신비주의와 禪사이의 상이함에 대해서 의식했다. 즉 禪의 像은 ‘있는 그대로 있음’과 ‘像을 비움’으로써 깨달음에 도달하나, 서양의 경우 예를 들어 이냐시오(Ignatius von Royola)의 영신수련은 聖人의 像을 자기 안에 형성해 가는 연습 즉 聖人像의 想像과 薰習을 통해 종교적 변환을 꾀하는 것이다.
융은 이런 선과 신비주의와의 차이점을 통해서 선에 더 가까운 것이 ‘정신치료’라고 보았다. 융에 있어 정신치료법은 근본적으로 의사와 환자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이다. 그것은 ‘전체로서의 정신과 정신’의 만남이며 대화이다. 이때 지식은 다만 도구에 불과하다. 정신치료의 목표는 환자의 심적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변화는 미리 예정되어 있지 않고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모든 변화에 공통되는 하나의 기준이 설정될 수 있다.
그것은 자기고착으로부터의 해방(disappearance of I-ness)이다. 의사로서는 이변화의 경험을 절대로 강요할 수 없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정적인 체험에 이르려는 환자의 길 가운에 막아선 방해요서를 최소한 줄여주는 것이 전부이다. 서구인에게 있어 지식이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상기해 볼 때, 융은 이러한 정신치효의 방법이 오히혀 선불교의 전통적인 정신적 분위기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선수행 속에는 융이 자신의 심리치료와 비교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히 잠재해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융의 禪에 대한 이해는 禪宗史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習禪(漸修禪)에 대한 이해에 국한 된 것이었다. 따라서 융의 선불교이해를 깊이 파악하기 위해서 선의 수행방법으로써의 명상(座禪)과 관련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다.
4. 선과 명상
어떤이는 선에 의해 정신이 忘我의 상태에 이르며 이것이 실현되었을 때 거기에 불교도들이 강조하는 空이 체험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으로 이끌 수 있는 표현이 선에 있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을 바로 이해하려면 여기서 한단계 뛰어넘어야 한다.
융 또한 선을 명상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융이 인도 종교의 차원에서 선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상적 분위기는 인도 禪이 후에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習禪적인 요소(漸修的인 면)에서 벗어나 頓悟的인 면을 강조하게 되었다. 따라서 선불교에서의 핵심은 頓悟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융은 이 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선을 명상의 카테고리 속으로 집어넣게 된 것이다.
물론 선이 지닌 양면성(돈오와 점수)이 아직도 선불교 內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음을 사실이나 선을 이해함에 있어 ‘돈오’를 간과해버림은 선의 핵심을 빼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과 명상의 관계를 이해함은 이런 면에서 선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명상적 차원에서 돈오의 경지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당시대의 중기에 활동했던 화엄과 선의 학자인 圭峰宗密(780-841)은 일목요연하게 선을 다섯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가 나눈 선의 종류는 外道禪, 凡夫禪, 大乘禪, 最上乘禪이다. 이 각각에 대한 설명은 본고에서의 필자의 의도를 벗어나 있으므로 생략하고 다만 명상과 선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전자의 4선과 후자의 최상승선만을 비교해 보기로 하겠다. 종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자신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며 본디부터 번뇌라고 하는 것이 없고, 물듦이 없는 지혜가 바로 갖추어져 있다고 하면 그러한 근원적인 마음이 바로 부처이며 궁극적으로 불타와어떤 다름도 없음을 직관하고 그런 知를 일상생활에서 사모하는 것이 ‘최상승선으로 보리달마 계통의 사람들이 대대로 이어 받고 있는 것이 이러한 선법이다.’
위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禪祖인 달마로부터 이어지는 중국 선종의 성립은 바로 명상과는 다른 최상승선의 맥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러한 명상체계로부터 선으로의 전환되는 과정은 달마 이후 그의 법맥을 이어가는 조사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형성되었음을 무진 禪宗史를 통해서 알 수 있다.종국선이 座禪(명상)으로부터 돈오로 탈바꿈하는데 결정정적 역할을 했던 사람은 6祖慧能이다. 그의 유명한 <六祖檀經>에는 5祖神秀와 자신과의 禪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神秀作 - “몸은 깨달음의 나무이며 마음은 깨끗한 거울의 台座이다. 언제나 닦아 청결히 하기를 힘써 먼지 티끌이 붙지 않게 해야 한다.”
慧能作 - “깨달음에는 원래 나무가 없으며 깨끗한 거울에도 또한 台座가 없다. 佛性은 언 제나 청량함에 어디에 먼지 티끌이 붙겠는가.”
지금까지의 선의 양면성인 돈오와 정수(명상)적인 면을 살펴봄으로써 융의 선불교이해의 한계점을 지적하였다. 물론 이러한 한계성은 있으나, 융의 자아실현과정과 선의 깨달음의 과정 안에는 서로 맞닿을 수 있는 면이 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양자간의 공통성과 차이점에 대해서 주목해 보기로 하겠다.
5. 覺과 자아실현의 비교
두 사상은 모두 주체적 자각 내지는 自力的 자기 계발을 중시하고 있고 밖의 어떤 권위나 제도적 장치보다도 수행자 자신 내지는 피분석자 자신의 깨달음고 결단을 중요시하고 있다. 따라서 禪師나 分析家는 지시하고 통제하는 권위주의적인 존재가아니라 다만 도움을 주고 함께 체험하는 사람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두 사상은 일치한다. 그러나 선의 깨달음과 융의 자아실현 과정에서 그 방법상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융의 자아실현 과정은 그 방법적인 면에서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꿈의 해석’으로 융에 있어 꿈은 자신의 전체 모습을 알게 하는 스승과 같은 것이다. 융은 일회적인 하나하나의 꿈 뒤에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기획(plan)이 있어 자기 실현의 방향을 예시해 준다고 보았다. 융에 있어 꿈의 해석은 지성과 감정을 포함한 정신의 모든 가능성을 동원해서 이해되고 깨우쳐질 대상이다. 따라서 꿈의 해석은 자기실현을 위한 중요한 안내자이며 지침서이다.
둘째로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감정, 환상, 강박관념들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의식계에 떠오르게 하고, 이를 마치 자기 밖에 있는 객체처럼 대화하는 ‘적극적 명상방법’이다. 융의 적극적 명상은 아무런 일정한 계획이 없으며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이를 이끌어 줄 스승이 없으며 명상해야 할 일정한 주제도 일정한 형식과 절차도 없다. 적극적 명상은 무의식에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더듬어 가는 것이다.
셋째로 명상을 통해 드러난 무의식의 의식화과정의 한 방편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 후 자신의 무의식은 분석하게 될 분석가의 도움을 받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깨닫게 되는 자기실현의 과정을 선불교에서의 깨달음의 과정과 비교해 보기로 한다.
융의 자아실현과정이 자신의 꿈의 해석에서부터 시작하여 像을 우선 수용하여 그것을 해석하고 그 뜻을 깨닫게 하는 방법을 택한데 반해 선불교에서는 ‘心像을 비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융에 있어서는 自己를 찾아가는데 心像을 그 자료로 삼고 있으나, 선불교에서는 相이나 像을 통하지 않고 직접 自性을 찾아가는 直路를 중시하고 있다. 물론 선수행에 있어 覺의 과정 안에 話頭(公案)를 사용하지만 이는 像을 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융이 꿈을 통해 무의식을 분석하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융이 말한 적극적 명상이 무의식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더듬어 파악해 가는데 비해 선에서는 무의식의 直觀的인 파악을 꾀한다. 즉 적극적 명상이 자기 실현을 위해 무의식의 내용을 알아채려는데 그 의미를 둔다면 선은 그러한 무의식을 自性의 상태로 合一시켜 가는데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폰 프란쯔가 “융의 적극적 명상에 가장 가까운 것이 선불교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런 차이점을 간과해 버린 평가라 볼 수 있다.
넷째로 융사상에서의 分析家와 선수행의 禪師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기 실현을 위해 환자는 자기 무의식의 세계를 분석해줄 분석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듯이 선수행에서도 선사의 역할을 중시된다. 그러나 분석가의 역할이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를 해석해 주는 역할을 함에 비해 선사들은 어떤 설명을 통해 체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갈 수 없는 것이다.
깨달음은 어떤 지적 분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체험해야 하는 경지이다. 따라서 선에서 스승이 제자를 이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암시와 시사뿐이다. 스승은 제자가 언제나 목표를 향하고 있도록 길을 가리키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진리를 확고하게 붙잡는 일은 결국 제자들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아무도 그것을 대신 해 줄 수 없다.
이상의 융사상의 자아실현과정과 선불교의 깨달음의 과정에서의 차이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 근원적인 차이점이 내용면에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즉 선불교에서 깨달음이라고 표현되는 그 覺의 내용이 융에서 목표한 ‘자아실현’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럼 선에서의 覺이란 무엇을 깨닫는다는 것인가? 스즈끼 박사는 간결하게 이렇게 말한다. “깨달음이란 새로운 시각의 열림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아직 우리에게 ‘깨달음’의 내용을 확실히 밝혀주고 있지 못하다. 우린 다시 되 묻는다. 배가 닿는 항구는 도대체 어디인가? 선사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용에 관한 찬 우리의 지적 인식을 위해 기술, 표현, 제시될 수 있는 ‘깨달음’이나 ‘선’은 없다. 선은 지적 관념의 작업이 아니며 깨달음은 일종의 내적 지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별적 대상의 지각이 아니라 말하자면 實在자체의 지각이다.”
위의 말은 융의 자아실현과 선의 깨달음의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 보여준다. 융에 있어서의 자아실현이 ‘심적 변환을 통한 개성화의 과정이라면 선불교에서의 깨달음은 ’실존자각‘인 것이다.
결 론
지금까지 필자는 융의 선불교에 대한 이해를 그의 종교현상 연구의 방법론과 관련지어 살펴 보았다. 융은 자신의 연구가 심리학의 범주 안에서 종교현상을 탐구함으로써 오는 한계를 충분히 인식했었고, 따라서 그 한계 안에서 선불교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 서구의 신비주의와 자신의 정신치료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 본 융의 선불교의 이해는 자신도 감지했듯이 禪宗思想史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초기단계인 인도禪의 習禪에 대한 이해의 단계에 머물렀다. 즉 선이 지닌 양면성(돈오와 점수적인 면)에서 돈오적인면을 간과해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이 융이 현실을 초월한 니르바나(해탈)에의 경지를 추구함으로써 현실적인 참여라는 중요한 과제와 책임을 안이하게 포기하는 수단으로 보았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점은 선불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그것과 얼마나 동떨어진 견해인가?
선불교가 추구하는 진리는 현실을 떠나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장소가 바로 그대로 진리이며 모든 것이 자기 주체임을 깨닫는 것이다. 즉 일상 속에 살아있는 마음이 바로 참된 조사이며 참된 부처임과 동시에 그것이 가장 구체적인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 선불교에서 깨달아야 하는 覺의 경지인 것이다.
이상의 융의 선불교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면서 필자는 타종교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재인식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인간이 인간을 만날 수 있는 가장 깊은 場인 종교 간에 끊임없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융의 작업 또한 이를 위한 또 하나의 시도였음을 깨닫게 된다.
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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