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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좌불교의 명상
 WRITER: 관리자  (118.♡.103.201) DATE : 10-10-25 12:00 READ : 2750
   상좌불교의 명상.pdf (131.8K), Down : 28, 2011-06-01 11:09:21
<상좌불교의 명상: Theravada Meditation>

붓다께서 직접 행하신 수행은 어떤 것일까? 부처님의 수행을 가장 잘 보존해서 전승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 Theravada Buddhism 이다.

What form of meditation might the Buddha practice? It is Theravada Buddhism that is regarded to have kept the Buddha’s practice (the original orthodox Buddhism) best.

Theravada Buddhism은 오늘날 스리랑카, 미얀마, 베트남 불교를 말한다.

Theravada Buddhism is followed in Sri Lanka, 미얀마, and Vietnam (Ceylon, Burma, Thailand, Cambodia, Laos, and Chittagong in East Pakistan: r-xii) today.

Theravada Buddhism 수행에서 대표적인 것이 Vipassana 수행이다. Vi –꿰뚫다, passana-passati (보다). Vipassana는 “꿰뚫어 보다”라는 의미. 무엇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파악하다.

The most representative practice in Theravada Buddhism is Vipassana meditation. ‘Vi’ means ‘to penetrate’, and ‘passana’ means ‘to see’. Vipassana means ‘to see through’. What does ‘vipassana’ see through? It sees through the essential nature of things. (The Buddha discovered the other form of ‘meditation known as vipassana, ‘Insight’ into the nature of things, leading to the complete liberation of mind, to the realization of the Ultimate Truth, Nirvana: r-68.)

꿰뚫어 볼 대상으로 4가지 (몸, 느낌, 마음의 여러상태, 법)을 든다. 이 각각에 대한 수행방법은 상세히 경전에 나옴. 이 중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몸” 이다.

The Buddha listed four areas as objects of vipassana. They are 1) our body, 2) our feelings and sensations, 3) the mind, and 4) various moral and intellectual subjects (Dharma).:r-69.

The Sacred Scripture explains in detail how to meditate on these areas. Among these four objects, we are going to focus on ‘Body’.

<몸의 중요성>

여기서 말하는 몸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분화된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양에서 ‘몸’이라고 할 때는 ‘정신’을 포함하고 있다.

The ‘Body’ in this context does not mean the ‘Flesh’ which is differentiated from the ‘mind’. When people in the East mention the ‘body’, they include the ‘mind’ too.

서구의 근대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고 육체를 그 하위에 두었다. 그러나 현대 서구철학은 이성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말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이성과 우리의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나약한지에 대해서 우린 삶 안에서 많이 경험해 오지 않았던가?

The modern Western philosophy has regarded ‘human reason’ as of great importance, while it has placed the ‘body’ in a lower grade….

우리의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많은 성찰과 결심을 해왔다. 그러나 프로이드의 무의식이나 융의 집단의 무의식이 증명하듯 우리의 습관 (성향)은 이성이나 의지만으로 다스릴 수 없다.

......

그것은 습관의 뿌리가 몸 전체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It is because the roots of our habits or dispositions are deeply imbedded in our whole body.

그래서 불교에서는 단한번의 깨달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후 (견성한 후)에도 정수 (수행)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This is why the Buddhism emphasizes the need of constant meditation even after he/she attained the ‘Enlightenment’. In Buddhism, there is no once-and-for-all type Enlightenment.

이와 같이 번뇌망상의 습성의 뿌리가 깊은 이유는 우리의 욕망이 육체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 속에 우리가 지은 업(Karma: volitional action, action, deed)이 몸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의 명상은 ‘몸’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힌두교 요가, 불교 명상, 도교의 명상).

...

사실 예수님도 ‘몸’을 중시하셨다. “사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뭅니다. (요한 6:56)



“Whoever eats my flesh and drinks my blood lives in me and I live in that person.” (John 6:56)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상징적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이것을 믿지 않는가?



몸을 통한 불교의 명상 중에 기본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방법이 바로 호흡명상이다. 

……‘meditation’ connected with the body is called ‘The Mindfulness or Awareness of in-and-out breathing’:r-69

<호흡명상>

인류의 위대한 문화에선 ‘호흡’을 ‘생명’으로 보아왔다. 그래서 ‘호흡’을 느낀다는 것은 ‘생명을 느낀다’는 것. 동양에서는 ‘호흡명상’을 말할 때 ‘단전호흡’을 의미한다.



‘단전’이란 배꼽에서 3-4센티 아래에 위치하는데 이곳을 ‘생명의 정수요, 에너지의 바다’라고 부른다. 죽 동양에서는 ‘단전’을 몸의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일본의 수행 전통에서 ‘생명과 에너지가 단전에서 솟아난다’고 가르쳐왔다. 단전호흡에서 ‘입 으로 숨쉬지 말고, 코로 쉬면서 숨을 단전까지 내려 보내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put your whole strength in the abdomen) 숨을 길게 내쉬라’(breathe out a long breath)고 가르친다.

......

‘호흡’ 즉 ‘숨’은 기독교에서도 중요하다. 창세기의 창조신화에는 감동적인 얘기가 나옴. “하느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고 아직 생기가 없던 인간의 형태에 하느님께서 직접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인간이 되어 숨을 쉬다” (창2:7)

“Yahweh God shaped man from the soil of the ground and blew the breath of life into his nostrils, and man became a living being.” (Genesis 2:7)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쉬는 숨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불어넣어주신 ‘하느님의 숨’이다. 따라서 호흡명상이란 ‘하느님의 숨’을 의식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성령’을 의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틱낫한 스님은 말씀하신다: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신학을 거치는 것보다 성령을 통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In our journey to God, it is safer to go through the Holy Spirit than to go through theology.”

우리가 성령과 접하게 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재(reality)로 접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사도들께 숨을 내쉬며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아라!” (요한20:22)
“[Jesus] breathed on [his disciples] and said: Receive the Holy Spirit.” (John 20:22)
지금까지 호흡(숨)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불교에서 호흡명상을 한다는 것은 호흡에 집중한다는 것을 말한다. 호흡을 깊이 의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In Buddhism, this exercise of mindfulness of breathing means that you bring your mind to concentrate on your breathing-in and breathing-out. It is to be deeply conscious of your breathing-in and breathing-out. In other words, you become aware of the fact that you breathe in and out through this exercise on breathing.

여기서 말하는 ‘알아차림’은 곧 mindfulness와 통하는 표현이다.
‘To be aware of’ means ‘mindfulness’.
즉 마음을 다해 호흡을 알아차리고 호흡에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다.

……

우리가 자신의 숨을 깊이 의식함을 통해서 ‘지금 여기’에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많은 경우 과거나 미래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과거나 미래로 도망쳐 버린다.그래서 불행하게도 ‘지금 여기’라는 현재를 충실히 살지 못한다.

……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무슨수행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앉고 걷고 먹는다. 그렇지만 부처님 누구나 앉고 걷고 먹지 않습니까? 우리는 앉아 있을 때 앉아 있음을 알고, 걸을때 걷고 있다는 것을 알고 먹을 때 먹고 있다는 것을 안다.

……

이와 같이 마음을 다해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야말로 호흡명상이 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