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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장. 신도2
 WRITER: 관리자  (211.♡.196.200) DATE : 14-01-10 16:36 READ : 2752
   제2장 신도 2,3,4,5,6.pdf (354.3K), Down : 48, 2014-01-10 16:36:18
2. 일본창세신화
일본인은 세계를 세 영역으로 나눈다. 현실 세계, 신들의 세계, 사후의 세계가 그것이다. 현실의 세계와 사후의 세계가 굉장히 밀접하다고 일본 신화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사후 세계는 지상 세계와 거리적으로 가깝다고 보며 그 이미지는 굉장히 더러운 곳이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이지나기가 황천국에 가서 나오자마자 몸을 씻었다는 표현 안에서 이 사후 세계는 굉장히 더러운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 가깝다는 의미는 오봉‐ 조상신을 만나는 제사‐에서 보듯 사후세계가 그만큼 가까이 있음을 알려준다. 일본인들 안에는 사후세계는 더럽지만 현실세계는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사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인생관을 지니고 있다.
  또 이자나기의 신화를 통해 볼 수 있는 또 한가지 것은 고대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신관과 자연관이다. 여기에서의 신관이란 우선, 일본인들은 ‘유일하고 절대적인 신’을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과 인간 간에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볼 수 있다. 신도에서는 신을 가미라고 하는데 가미의 특징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점 외에는 인간과 차이가 없는 존재라고 본다. 이렇듯 신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서 일본인들의 마음에 자리매김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가까이 있으면서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습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일본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절대 유일신 개념을 알리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신 개념은 일본인들의 그것과 굉장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신 신앙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절대 유일신으로서의 야훼 하느님이라는 기독교 신관이 일본에 뿌리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빌려온 개념이 불교의 여래였는데 대일여래는 일본불교의 종파인 진언종에서 말하는 부처이다. 대일여래가 갖고 있는 큰 태양의 이미지를 빌려와서 God를 설명했다. 이후에도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작업들을 했다.
자 그럼 자연관을 비교해보자. 보통 기독교에서 창세기를 보면 자연은 신이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자연이 인간을 위한 피조물로 인식되는 반면,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자연이 곧 신이다. 산도 신이고 강도 신이며 바다도 신이다. 기독교의 자연관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신과 자연을 동등하게 여기고 신과 자연은 혈연관계에 있어 신과 자연과 인간이 서로 돕는 관계이다. 요즘 신도에 대한 연구들이 환경과 연계되면서 신도의 자연관과 신관이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아마테라스 신화를 살펴보자. 아마테라스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다시 이자나기 신화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이자나기가 강에 가서 몸을 씻을 때 많은 신이 태어났다고 한다. 왼쪽 눈을 씻자 아마테라스신이 생겨났고 오른쪽 눈을 씻으니까 쓰쿠요미 신이 태어났다. 과학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 맹랑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름 이 신화는 의미가 있다. 아마테라스신은 태양신, 쓰쿠요미신은 달신이다. 코를 씻으니까 스사노오라는 폭풍의 신이 태어났고 이 외에도 많은 신이 생겨났다. 중국의 우주기원 신화인 반고신화를 보게 되면 반고신의 시체에서 우주만물이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일본신화는 반고신화와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이 아마테라스신이 천상계를 지배하고 쓰쿠요미는 밤의 세계, 스사노오는 바다의 세계를 지배한다. 주목할 것은 신들이 정상적인 인간들이 자녀를 생산하는 것과 달리 이자나기라는 남신의 단성생식으로 생겨났다는 점이다. 신들의 전쟁이 나중에 일어나게 된다. 스사노오신이 제일 말썽이다.
일본의 신은 보통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선신과 악신이 공존한다. 스사노오신이 악신 역할을 하는데 그가 불만을 품고 아마테라스 신령에 가서 나쁜 행동을 하니까 아마테라스 신이 동굴에 들어가 버렸다. 태양이 사라지니까 세상은 암흑에 빠지게 되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천상의 모든 신들이 아마테라스신을 동굴에서 바깥으로 끌어내려고 별의별 짓을 한다. 800만 명의 신들이 아마테라스를 동굴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궁리한다. 새벽을 알리는 닭들을 동굴 앞에 모아두고 동굴 앞에 있는 사카키라는 나무에 거울을 걸고 구슬을 단다. 여신들이 옷을 벗고 춤을 추고…아마테라스신은 결국 호기심이 발동해서 동굴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었는데 그때 기다리고 있던 다른 신들이 그를 끌어내고 동굴 문을 잠궜다. 그래서 아마테라스신이 바깥에 다시 나오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아마테라스 신화에 나오는 거울과 구슬이다. 삼종의 신기(神器)이다. 일본 진쟈에는 신을 상징하는 신체를 제일 안쪽에 모셔놓는다. 이세 신궁은 아마테라스 신을 모시는 곳이다. 이세 신궁의 신체가 바로 거울이다 이세 신궁의 외궁에 있는 제신은 풍요함을 주는 신이다… 아마테라스 신은 오곡 곡물, 농경의 신이다. 태양빛을 받아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곡물의 신, 풍요의 신이다.
그럼 스사노오는 어떻게 되는가? 스사노오는 신들로부터 추방을 당해 이즈모라는 곳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이즈모 신화가 생긴다. 이즈모의 왕권 기원 신화는 스사노오신과 연관지어 있다. 스사노오가 쫓겨나서 지상으로 내려와 거리를 지나다가 노부부가 시름에 잠겨있는 것을 본다. 이유를 물어보니 딸이 8명이 있는데 그 지역에 8머리를 가진 오로치라는 뱀이 있어서 매년 한 명씩 잡아먹어 막내딸 하나만 남았다는 것이다. 스사노오는 막내딸을 구해주겠다고 노부부에게 말했다. 스사노오신은 막내딸의 머리를 머리빗으로 장식을 하고 뱀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한 다음 결국 뱀을 죽였다. 그리고 나서 뱀의 몸을 동강을 내니 뱀의 몸에서 칼이 나왔다. 오로치 몸에서 나온 이 검은 보통 검이 아니다. 오로치가 있는 곳에는 구름의 온기가 있었다고 하며 이 칼의 이름을 천운총검이라 한다. 이 검이 바로 삼종신기의 또 하나에 해당한다. 이렇게해서 거울, 구슬, 검이라는 세 가지 신기로 등장한다.
일본의 통치권을 쥔 왕은 어떻게 나왔는가? 스사노오에게는 아들이 여럿 있었는데 오오쿠니누시는 막내이다. 오오쿠니누시는 이웃의 공주와 결혼을 했는데 다른 신들이 이것을 질투해 오오쿠니누시를 죽인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를 다시 살려 형들을 피해 스사노오가 있는 곳으로 가게 한다. 스사노오가 있는 곳은 네노가타스이다. 네노국이라고 한다. 오오쿠니누시는 형들 몰래 그곳으로 가서 스사노오의 딸인 스세리비메와 결혼한다. 아버지 몰래 결혼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처음에 이 결혼을 인정하지 않아서 많은 시련을 당하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많은 시련을 받는 얘기는 다른 신화에도 나오고 있다. 시련을 통한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오오쿠니누시가 아직 왕권을 갖기에는 족하기 때문에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통과의례를 통해서 성숙한 존재로 새로 태어난다. 스사노오가 뱀을 살해한 것이나 오오쿠니누시가 겪은 이 모든 시련들은 여러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입문적 통과의례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새로운 우주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 카오스를 살해하는 것이다. 스사노오의 신화에서는 뱀을 등장시켜 카오스를 물리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네노국 역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죽음과 소생의 의미가 같이 들어가 있다. 뱀도 죽고 오오쿠니누시도 시련을 당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고. 죽음과 소생이라는 모티브가 동시에 이뤄지는가 하면, 유아적인 존재가 새롭게 태어나는 성숙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 땅에서 오오쿠니누시는 부인을 얻고 왕이 된다. 이것이 이즈모라는 곳에서 이뤄지는 왕권의 유래를 보여주는 신화이다.
왕인 오오쿠니누시가 스사노오의 아들인 것이 문제가 된다. 스사노오의 아들이 왕권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일본인들은 스사노오의 자손이 아니라 아마테라스의 자손이 되기를 원했으므로 결국 국토이양이 이루어지게 된다. 천상 신들은 아마테라스의 후손이 지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오오쿠니누시를 설득한다. 여러 번 국토 반환을 촉구한 끝에 오오쿠니누시는 국가 양도를 승낙한다. 오오쿠니누시로부터 아마테라스신의 자손인 니니기에게 왕권이 이양된다. 니니기와 연결되는 신화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단군신화와 비슷한 면이 있다. 천손이 강림했다는 천손강림신화.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가 지상에 내려왔는데 아마테라스는 니니기에서 거울과 구슬과 칼을 줘서 가지고 내려오는 것이다. 아마테라스 신으로부터 니니기가 그것을 받아 내려오면서 일본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신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마테라스 신으로부터 삼종의 신기를 받고 또 다섯 부족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 것을 천손강림이라고 한다. 이 얘기는 시무카라는 곳에 내려와서 지상의 여인과 결혼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본 신화에서 흥미롭게 여겨지는 것은 우주의 기원이나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는 점이다. 대신 국토 기원에 대한 서술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땅덩어리, 땅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 크다. 또 주목할 것은 일본 신화는 다른 신화처럼 형이상학적인 표현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신이 인간처럼 웃고 울고 하는 등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삼종의 신기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일본 서기에 보면 삼종의 신기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종류는 3가지인데 5가지 신기가 있다. 검은 거울은 2개씩, 구슬은 하나씩 나오는데 거울은 이세 신궁에, 검은 아스다 신궁에, 구슬은 천황이 있는 천궁에 있다. 모조품들도 있는데 이것들은 천황 주변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서 황궁 안에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의 신기들은 어떤 덕을 상징한다. 구슬은 자비의 덕, 거울은 지혜의 덕, 검은 용기의 덕을 상징한다. 지금까지 봤던 신화에 관련되어 일본 신화에 드러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구조이다. 일본에 이자나기 이자나미 신화에서 보듯 일본신화에서 이자나기가 중심이 되는데 이는 일본의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신화에 드러난 것이다. 이 부분이 더 부각된 것이 이자나기가 황천에서 나와 이나자미와 얘기하는 대목이다. 이자나기가 내가 하루에 천명을 목졸라 죽이겠다 말하자, 이자나미는 천오백명을 매일 낳겠다고 답한다. 이자나미는 생명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가부장‐이자나기가 중심이 되는 측면을 볼 수 있다. 이자나기가 씻는 행위를 통해 많은 신들이 태어나는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아마테라스 신이다. 아마테라스가 바로 일본의 조상신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천황은 아마테라스와 어떤 연관이 있나? 니니기의 손자인 우가야의 아들이 제 1대 진무천황이 된다. 즉 니니기의 손자의 아들이 진무천황이다.
이자나기 이자나미 신화에는 여신과 남신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생명의 힘이 죽음의 힘보다 더 강하다라는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전체 일본 신도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꺼린다고 했다. 신도의 사후세계는 황천, 더럽혀진 세계라는 의미가 강하다. 고사기라든지 일본서기를 보면 황천에 가는 무리들을 더러운 곳의 무리들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측면들이 신도가 나중에 죽음에 대한 것들을 거부하면서 죽은 자들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할 때 영혼이나 그런 것들을 불교로 넘기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지금까지 신도 안에서 신화와 연결된 측면들을 살펴봤다. 세번째로는 가미 신앙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가미라는 표현은 중국의 신, 그리스도교의 신 개념과 다르다고 누누이 얘기했다. 중국에서 신이라고 했을 때는 기독교의 신과 달리 귀신을 뜻한다. 신앙의 대상을 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신앙의 대상을 천(天), 상제라는 표현으로 부른다. 천(天)은 비인격적인 표현이고 인격적으로 표현했을 때는 상제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 처음 선교했을 때 God를 대일로 번역해서 썼다. 대일을 일본어로는 다이니치라고 읽는데 불교의 대일여래와 혼동이 되어서 텐쥬 –하늘의 주인‐으로 바꿨다.


3. 일본신화의 의미, 마쯔리

  지금까지 일본 신화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이제 우리가 살펴볼 것은 마쯔리이다. 마쯔리를 통해서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종교적인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마쯔리는 ‘마쯔루’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마쯔루라는 동사의 의미는 ‘~을 기리다, 모시다’이다. 그러니까 신을 기리고 신을 모신다는 의미에서 마쯔리라는 명사가 나오게 된 것이다. 바꿔 이야기하면 마쯔리는 마쯔루라는 신에게 무엇을 봉헌하는 종교적인 행위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듯 마쯔리는 원래 진쟈에서 드리는 종교적인 목적을 가진 행사로 신을 모시고 신을 기쁘게 하는 고대 제의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제례, 제사, 제의 모두 마쯔리에서 나왔다. 제례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제의 의식할 때 의 자를 쓰기도 하고 또는 제사 제전 이것들 다 마쯔리이다.
기록상으로는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마쯔리가 하나의 신도 의례로서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제사, 원시적 제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그 말은 제사의 의미로 보면 ‘신을 기리고 모신다’는 뜻이 있지만, 실제로 진쟈 안에서 이루어지는 마쯔리의 형태를 보게 되면 풍년과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신과 죽은 자를 기리는 마쯔리, 한 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마쯔리 또는 수확에 감사하는 마쯔리, 농경의례가 되겠다. 즉 마쯔리는 일본의 벼농사와 관련있는 제사이고 의례인가 하면 가내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거나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의례였다. 하여튼 정월 초하루부터 일년 내내 일본은 마쯔리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마쯔리가 많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마쯔리, 신도의 의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번째로 볼 것은 황실 마쯔리이다. 천황이 계신 황실 안에서 일어나는 마쯔리이다. 천황이 즉위했을 때 최초로 행하는 마쯔리가 있고 천황이 햇곡식을 가미에게 봉헌하고 음복하는 마쯔리, 천황이 햇곡식을 이세 진궁에 봉헌하는 마쯔리, 오곡의 풍요와 천황의 안녕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쯔리, 일본에서 역병을 가라앉히기 위해 행하는 마쯔리도 황실에서 했다. 풍해를 막고 곡물의 풍작을 기원하는 마쯔리, 천황 황후 황태자의 혼을 위무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마쯔리 이와 같은 것들이 황실에서 이뤄지는 마쯔리이다. 이것이 지금도 계속 이뤄지고 있는 황실 마쯔리이다. 
두번째는 진쟈의 마쯔리이다. 진쟈의 마쯔리로는 매년 1회씩 정기적으로 행하는 대제, 큰 제사로 각 진쟈마다 대제를 드리게 된다. 일년에 한번씩 드리는 대제가 있다. 사실은 이것은 진쟈 의례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황실의 마쯔리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오곡의 풍년을 기원하는 마쯔리, 수확을 감사하는 마쯔리, 제신 자신들이 모시는 제신의 거처를 바꿀 때 그냥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쯔리를 하면서 바뀐다. 둘 이상의 신위를 같이 모실 때, 신체를 같이 모시게 될 때 마쯔리를 하게 되고 진쟈가 너무 커서 분가시킬 때 분가시키는 행사에서도 마쯔리를 행하게 된다. 정월 초에 가정의 평안과 사회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쯔리, 성인이 될 때, 춘분 추분, 천황 탄생일에 드리는 마쯔리, 죽은 자의 영을 추모하는 마쯔리 이런 것들이 진쟈에서 행해지는 마쯔리이다.
세번째는 가정에서 드리는 마쯔리이다. 각 가정마다 가미를 모시고 있는 불단 –가미다나‐에 매년 신의 이름을 받아서 넣는데 그것을 신찰이라고 한다. 새로운 신찰을 모실 때, 정월에 그런 행사를 한다고 한다. 문 앞에 소나무 장식을 하고 현관에 금줄을 해 놓고 흰 종이를 접어서 꽂아 놓는다. 그것은 가미를 영접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것들이 가정의 마쯔리 중 하나이다. 또 하쯔모데, 1월 1일에 드리는 행사인 입춘 전날에 액풀이를 위해서 신사 참배를 하는 세쯔도 가정 마쯔리다. 이 세쯔분 날, 액막이를 위해서 방에 콩을 뿌리는데, 이것은 귀신이나 잡귀를 물리치고 복신이 들어오도록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오미야마리라고 해서 아이가 태어난 뒤 일정 기간이 지나서 신사참배를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도 가정 마쯔리중 하나이다. 아이가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 되었을 때 신사참배를 하는 것도 시치고산노이와이라고 하는데 남자애는 세 살, 다섯 살, 여자애는 세 살, 일곱 살 때 아이를 데려가서 아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럼 일본의 대표적인 3대 마쯔리에 대해 알아보자. 3대 마쯔리에는 도쿄의 칸다라는 곳에 하는 칸다 마쯔리가 있고 그 다음에 오사카에서 하는 텐진 마쯔리가 있다. 세번째는  교토에서 하는 기온 마쯔리이다. 세 마쯔리가 일본의 3대 마쯔리이다.
우선 칸다 마쯔리부터 보자. 칸다 마쯔리는 5월 14일에서 15일 이틀에 걸쳐서 하는 것이고 칸다라는 진쟈에서 출발해서 도쿄 시내를 쭉 나와서 하는 축제이다. 가마를 일본말로 니코시라고 하는데 큰 가마에 진쟈의 신체를 넣고 젊은이들이 양 옆에서 가마를 매고 가는 것이다. 가마꾼들은 자원해서 하는 사람보다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칸다 마쯔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사람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서 벌인 축제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기원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로 칸다 마쯔리에는 벼농사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는 후에 마쯔리의 의미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칸다 마쯔리에는 약 36개의 니코시가 행렬에 동원된다. 36개의 니코시가 도쿄를 돌면서 하는 행사인데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축제를 즐긴다. 텐진 마쯔리는 칸다처럼 니코시 축제인데, 이 마쯔리는 니코시만 갖고 하는 게 아니고 강에 배를 띄우고 하는 독특한 마쯔리이다. 오사카에서 하는데 7월 24일에서 25일 양 이틀에 걸쳐서 한다. 텐진 마쯔리의 하이라이트는 수상제이다. 물 위에서 드리는 수상제이다. 굉장히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약 100척의 배를 띄우고…오사카의 텐만궁이라는 진자에서 시작해서… 사실 오사카라는 곳은 굉장히 상업이 발달해있고 여러분이 오사카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음식도 맛있는 곳이 많고…. 약 3천명의 사람들이 니코시를 메고 행진을 하고 텐만궁에서 출발해서 신체를 모신 니코시로 오사카 시내를 한 바퀴 돌고 강으로 간다. 강으로 가서 신체를 모신 니코시를 배에다 싣고 많은 배들이 같이 강을 건너는데 밤에 하나비(불꽃놀이)를 하는 것으로 클라이막스를 맞는다. 텐진 마쯔리는 백만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불과 물의 조화를 이루는 마쯔리이다.
텐진 마쯔리의 기원을 보면  헤이안 시대에 유명한 정치가였고 학자였던 스카와라 미치자네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죽고 나서 그 사람의 영을 기리는 의식을 하기 위해 치러졌던 마쯔리였다. 이 사람이 나중에 학문의 신으로 추앙을 받게 되면서 특별히 자식을 둔 부모들은 학문의 이 신에게 많이 의존을 해왔다 ‐사실 이 마쯔리가 있게 된 것은 그가 죽고 나서 운명했던 자리에 있던 소나무가 하룻밤 새에 확 자라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소나무가 하룻밤 새에 자라게 되고 그 신비로운 소나무가 있는 자리에 진쟈를 지은 것이 바로 텐만궁이다. 이것이 텐진 마쯔리의 유래이다. 그 소나무는 신의 영이 기렸다고 해서 신목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텐진마쯔리는 이 한 학문의 신에 대한 기원의 의미보다 전염병을 쫓아내는 의식으로 치러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온 마쯔리. 교토에서 치러지는데 7월 17일~24일까지 한다. 기원은 칸다나 텐진 마쯔리와 달리 굉장히 확실하다. 교토가 794년 수도가 되고 갑자기 대도시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교토로 몰리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오늘날처럼 기반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장마가 져서 물난리가 나게 되자 도시 위생상태가 좋지 못해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869년에 굉장한 전염병이 교토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때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원령제이자 다시는 그런 재앙이 교토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원하는 것이 기온 마쯔리이다.


4. 가미신앙, 중세신도1

 가미라는 것은 어원상으로 볼 때 상(上)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그 외에도 가가미, 곧 거울이라는 의미도 있고 몸을 숨긴다라는 뜻도 있으나 위 상(上)의 의미가 더 일반적이다. 그것은 가미가 가진 성격 때문인데 가미는 그리스도교의 신과 굉장한 차이를 갖고 있다. 선악귀천과 상관없이 어떤 위력있는 존재가 가미이다. 인간보다 조금만 더 능력상 우월하면 가미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상(上)이라는 개념에서 나왔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에도 시대 18세기 국학을 집대성했던 모토오리 노리나가라는 학자가 있다. 그가 내린 가미의 정의에 따르면 ‘가미란 고전에 나오는 천지의 제신을 비롯하여 그 신을 모시는 신사의 영 및 인간, 새, 짐승, 나무, 풀, 바다, 산 등 무엇이든 범상치 않고 덕 있고 두려운 존재를 일컫는다. ‘
초기에 가미 개념은 마나적인 성격이 강했다. 마나는 태평양 말라네시아의 용어로 말라네시아 사람들이 어떤 특이한 물체나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을 마나라고 불렀다. 그것과 일본의 가미 개념이 상당히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말라네시아 사람들에게 마나는 비상한 힘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보았을 때 그 사람이나 사물에게 마나가 있다고 여겼다. 마나를 특별한 힘, 파워로 생각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바로 그러한 개념으로 마나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가미라고 불렀다.
일본에 800만 가미가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가미를 다 섬기는 것은 아니고 일본에는 8만의 진쟈가 있는데 거기에 2500가미를 모시고 있다. 그러니까 당연히 가미의 특성 안에는 추상적이거나 초월적인 의미가 없다. 추상적인 신의 개념이라든지 초월적인 신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어떤 신들이었는가? 별 창조신, 별청신을 섬긴다고 했는가? 이런 신들은 섬기지 않는다. 이런 신을 모시는 진쟈도 없다. 일본인들은 인간에게 친숙한, 가까이 있는 가미를 선호한다. 이렇듯 인간과 가미의 관계는 아무 밀접하다. 인간은 가미를 숭배하고 가미의 영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면 가미는 그 대가로 인간을 지켜주고 보호해준다. 곧 가미 신앙은 현세에 복을 주는 현세중심적인 신앙 측면이 강하게 드러난다. 가미 신앙 중에서도 널리 퍼진 신앙은 조상신 신앙이다. 씨족신적인 성격이 아주 강하다. 아마테라스 신도 천황 가문의 조상신이다.
  가미는 보이지 않고 가시적이지 않고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미의 표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신체이다. 인공물도 신체가 될 수 있지만 그 외에 산도 강도 바다도 다 신체가 될 수 있다. 사실 그렇게 가미의 표상으로 신체를 모시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국의 도교라든지 민간 신앙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가미 중에서 특별하게 생각할 것은 인간도 사후에 가미로 숭배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 예로 교토에 있는 도요쿠니 진쟈에 가면 여기서 섬기고 있는 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다. 도쿄의 메이지 신궁에서는 122대 메이지 천황을 가미로 모시고 있다. 야스쿠니 진쟈에서는 군국 시대에 천황을 위해서 죽은 전사자 250여 만 명을 가미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1) 신불습합에 따른 신도의 역사

  지금까지 가미신앙으로서의 신도를 살펴보았는데 다음으로 신불‐ 신도와 불교의 관계‐를 살펴보겠다. 신불습합에 따른 신도의 역사를 고찰해보자. 처음에는 신도가 있었는데 불교가 들어오면서 신도와 불교의 습합과정이 일어났다.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제 1기는 고신도라고 한다. 순수한 신도 시대이다. 태고시대부터 다이카 개신이 있었던 645년까지를 말한다. 순수한 고유의 풍습이 유지되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불교 등 다른 외래종교와 습합되지 않은 나라시대 이전의 신도 8세기 넘어가기 전 단계의 신도를 고신도, 제1기라고 한다. 고사기나 일본서기를 보면 불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이후의 신도와 달리 제정일치의 신앙 형태를 볼 수 있다. 고대종교가 그렇듯 신도에도 종교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일치되는 측면을 갖고 있다. 고신도 시대에는 우리의 샤머니즘과 비슷한 다신신앙 형태로 사람들이 신앙을 가졌었는데 외래종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이것이 자체 내에서 변형이 일어난다.
  제 2기는 중세 신도라고 부르는데 이때 신불습합이 일어난다. 시기적으로 제2기는 다이카 개신 645년 이후부터 메이지 유신 1686년 이전까지이다. 근대로 넘어가지 전 중세 시기이다. 신불 습합이 이루어진 때다. 제 3기는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를 말한다. 1686년 이후를 말하고 신불습합에서 벗어난 시기로서 국가 신도의 시기이다.
  신불습합이 일어났던 중세신도 시기는 신도가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외래종교와 함께 습합이 이뤄진 때이다. 신불의 습합이 대략 3단계에 걸쳐서 이뤄졌다. 제 1단계에서는 호법신으로서의 신을…불교가 들어오면서 가미를 재해석하는 과정 안에서 가미는 불교를 보호해주는 신으로서 존재한다… 호법신은 나라시대에 큰 동대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대불을 만들었다. 이 대불 조성을 위해서 신도의 신이 불법을 옹호하기 위해 왔다고 불교측에서 선전했다. 가미 신이 불법을 옹호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신도의 신인 가미는 불교를 호토케(부처)와 별개의 대상이면서 불교를 옹호하는 호법신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이 관념들이 변천되는 것을 보면서 불교가 그만큼 일본에 자리를 굳히는구나를 확인할 수 있다.
제 2단계로 넘어가게 되면 중생으로서의 신이다. 지위가 하락한 것이다. 등원무지전이라는 책에 보면 꿈에 나타난 신이 나는 전생에 선업을 닦아서 신이 되었으니….그러니까 그 전에는 인간이었다는 얘기다. 불교에서는 6도 윤회를 이야기하는데 선업을 닦아서 인간이 신이 된 것이다. 이제 불도에 귀의하여 복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신도 불도 수행을 해서 불이 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가미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미도 중생인 것이다. 불도 수행을 해서 내가 부처가 되고자 한다는 이야기는 중생으로서의 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신도의 신이 부처에 의해 구원받는 존재로 하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불교 쪽에서 보면 불교의 지위나 힘이 그만큼 더 강해졌다는 의미이다.
제 3단계는 본지수적설이 나온다. 본지는 본래의 터, 불교를 뜻한다. 본래의 터에서 신도의 신이 나타나다.본지가 세상에 내려와서 만들어놓은 자취. 부처가 나타난 것이 신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는 불교와 신도가 동격으로 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본지수족으로서의 신으로 첫번째, 신은 본지인 부처가 수적한 것이다. 신도의 신의 위치가 호법신에서 중생, 중생에서 다시 부처와 비슷한 위치까지 상승한 것을 볼 수 있다. 지위의 변화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신도는 위기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불교를 수용하면서 교리적인 체계를 만들어서 뭔가 체계화하고 교리화시켜감을 알 수 있다. 뭔가 교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틀을 불교와 연결시켜서 만든 것이다. 이것을 다 조작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종교관이나 교리는 시대에 맞춰 재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신도가 그런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신이 불교의 부처와 동격이 되려면 교리적으로 이를 설명해야 할텐데 여기서 나온 것이 삼왕일실신도이다. 이것은 불교 천태종에서 나온 것으로 천태신도라고도 한다. 삼왕일실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삼은 가로의 삼 획으로 이루어져있다. 삼획을 불교의 중관사상이라고 한다. 중관사상은 한문으로는 용수, 나가르쥬나라고 하는 인물이 공 사상을 체계화한 것이다.
중관사상 안에 존재의 실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두 가지 진리라고 해서 이제라고 한다. 하나의 진리를 두 가지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 한 가지는 진제 또 하나는 속제이다. 진제는 참된 진리를 말하는 것이고 세속적으로 말하는 진리를 속제라고 한다. 진제는 공, 존재의 실상은 공이다 라는 것인데 나가르쥬나가 볼 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 보면 있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존재의 실상을 따지게 되면 이것들은 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므로 공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나도 있고 여러분도 있고 존재한다. 이러한 세속적인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 속제이다. 세속적이라는 것이 더럽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 현실의 있음을 설명하는 그런 진리의 세계를 속제라고 한다.
 나가르쥬나가 이제를 설명했는데 다시 이제에서 불교의 교리는 천태종에 가게 되면 이제의 교리가 세 가지로 변화한다. 그것을 삼지라고 한다. 삼지는 공, 중, 가 다시 말해 공관, 중관, 가관 세 가지이다. 천태 신도는 천태종이 갖고 있는 삼지 사상을 가져와서 설명한다. 가로의 삼획은 삼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 가로 삼 획은 삼 지를 의미하고 가로 일 획은 즉일이라고 한다. 이걸 묶어서 삼재즉일 또는 삼관즉일 일심삼관이라고 한다. 이 가미 안에 불교적인 진리가 다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왕 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심이지만 세 가지로 관한다고 하는데 관은 불교의 수행방법을 의미한다. 일식은 그럼 무엇인가? 일승의 실의를 연다. 일실이 열린다. 불교에서 승 자는 47문 수레를 의미한다. 소승에서는 3승이다. 어떤 사람은 급수가 다른 것이다. 성불하는 데 있어 차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차별이 없어져 일승이다. 그래서 일승의 실의를 연다고 한다. 삼왕의 신은 입법‐진리를 입법이라고 한다‐을 체현한 석가여래가 드러난 것이다 라고 한다. 삼왕의 신이 수적했다는 것이다. 가미가 석가여래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이렇게 교리를 만들었다.

 본지수적설과 관련된 신불습합의 첫번째 단계이고 두번째는 진언신도인데 양부신도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양부는 – 진언종의 표현인데 진언종은 밀교이다. 진리를 전수할 때 비밀스럽게 전수하지 공개적으로 진리를 넘기지 않는다. 진언종은 만다라 명상을 통해 진리를 세계를 터득하고 부처가 되고자 한다. 일본 진언종에서 특이한 것은 즉신성불이라고 해서 현세적인 몸을 가지고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다라 명상을 통해서 즉신성불(卽身成佛)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다시말해 현세의 몸을 가지고 득도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어쨌든 양부신도에서의 양부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이걸 이해하려면 진언종을 이해해야 하는데 진언이 무엇인가? 진언은 염불과는 다르다. 만다라 명상과 진언을 통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진언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태장계와 금강계가 그것이다. 태장계 만다라와 금강계 만다라가 있는데 태장계 만다라에는 부처님이 814존이 그려져 있다. 만다라 중간에 부처님이 비로자나불 즉 대일여래이다. 법신불이라고도 한다. 불법이 부처로 드러난 것이 비로자나불이다. 사람들은 만다라를 명상의 자료로 삼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 이해하면 진언종의 진리를 다 알게 된다. 금강계 만다라는 아홉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다. 궁극적으로 만다라 명상을 통해서 비로자나불과 일치하는 경지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태장계는 말 자체가 모태라고 했다. 의미는 여래가 지닌 대비심을 태아를 양육하는 모태에 비유한 것이다. 태아가 점점 자라서 여래가 지닌 대비심이 세상에 현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대일경⌟에 그 유래가 있다. 대일경은 진언종의 경전으로 금강정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 태장계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리법신(理疺身)을 상징한다. 리법신은 진리 자체인 리를 의미하기도 하고 지수화풍공 5대라는 물질적 요소도 내포되어 있으며 정신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세 신궁에는 아마테라스신을 모신다고 했고 신체로 거울이 내궁 안에 있다고 했다. 아마테라스신은 여신으로 이세신궁의 내궁신이고 외궁에는 월신으로 이름은 고요우케 우카이라고 한다.
결국 여기서 무얼 말하려고 하는가? 태장계의 리(理)와 금강계의 지(智)가 둘이 아님(不二)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서 이것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모든 존재 일체가 하나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세신궁의 내궁과 외궁에 있는 신들도 나중에 하나가 된다. 양두가 불이이듯이 양궁이 불이이다. 이러한 양궁과 양두에 대한 견해를 쓴 양부신도의 책으로 ⌜여여기⌟ 라는 책이 있다. ‘아마테라스는 본래 비로자나불이다.’ 삼왕일실의 본지는 석가여래였고 양부에서는 비로자나불이 본지였는데 이것이 아마테라스신으로 수정되었다. ‘내외양궁의 대신은 동일하여 한 신이다.’ 이자나기 이자나미 둘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라는 것. ‘둘이 아니며 분별이 없다. 바깥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둘로 나누어졌을 뿐 본래는 하나.’인 것이다.
 
5. 중세/근세 신도

    일본인들이 왜 불교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냐면 이미 벌써 일본에는 800만의 신이 있는데 거기에 외국 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800만 신을 노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의 배경에는 불교를 마치 외국 신을 믿는 것으로 봤다는 사실과 또 불교를 자기들이 믿는 신 외에 또 다른 신을 믿는 일이라고 간주했으며 이에 신이 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깔려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본인들이 마치 신을 인간과 유사한 존재로 봤다는 것, 절대적인 신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잇다.
결국 배불파의 주장은 힘을 얻지 못했고 신불파의 불교를 수용하자는 입장이 훨씬 우세하며 신불습합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배불파로 인해 불교를 수용하지 않았다면 신불습합이라는 현상은 일본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배불파의 주장보다 신불파의 입장이 훨씬 강했기 때문에 신불습합론이 일본에 형성되었다.
신불습합의 역사 안에서 나타난 신불습합론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제 1단계가 호법신으로서 신이다. 호법신이란 무엇인가? 신도의 가미가 불교의 법을 옹호하는 신으로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단계이다. 나라 시대 741년에 동대사 일본말로 도다이지에 가면 엄청나게 큰 대불이 있다. 도다이지 자체는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목조건물로서 유명하다. 도다이지보다 더 유명한 것은 대불인데 이 대불은 얼마나 큰가 하면 앉은 키가 16미터, 얼굴 길이가 4미터, 손바닥에 어른 7명이 올라앉을 수 있다. 이 대불은 비로자나불인데 비로자나불은 법신불이다. 불법이 부처의 형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당시 이것을 만드는 데 30년이 걸렸다. 일본 전국에 있는 동을 다 끌어모아서 만들었다는데 그런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당시에 쇼무 천황이 745년에 즉위했는데 이때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다. 고난에 빠져있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 대불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는데 이것을 만들면서 이세신궁에 있는 아마테라스 가미에게 이 계획을 아뢰고 불교를 옹호해주길 청하는 의식을 했다. 그러한 일을 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745년에 가미라는 신에 대해 불교 측에서 불교와 신도와의 관계를 위해서 가미를 마치 불교를 옹호하고 보호하는 그런 존재로 수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번째 제 2단계는 신이 중생의 입장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신, 가미가 부처에 의해서 다시 보호받고 구제받는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3단계인데 이때 본지수적설이 나왔다. 헤이안 말기에 본지수적설이 나왔는데 이와 관련지어 천태종에서 나온 천태신도와 진언종에서 나온 진언신도에서 나온 본지수락함이 바로 삼왕일실설과 양부신도설이다. 본지수적설은 본지‐부처, 수적‐가미 라는 것이다. 신이 호법신에서 중생으로 지위가 하락했다가 다시 동격으로 지위가 상승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 내용을 보자면 불교에 의해서 신도가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내용상으로는 부처가 이런 신의 모습으로 드러났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천태종과 진언종의 내용을 가져와서 가미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에 의해서 신도가 지배를 받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지수적설이 등장했다라는 것을 그만큼 불교의 지배력이 증가되었고 향상되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다.
본지수적설이 나오게 된 이론적인 근거가 어디 있는가? 불교 내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는데 삼신불 사상이 그것이다. 삼신불은 몸이 세 가지로 나투다 –불교에서 나투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법신불과 보신불, 그리고 응신불 다른 말로 화신불이 있다. 법신에서 법이 형상화된 것이 비로자나불이다. 보신불로는 아미타 부처님을 들 수 있다. 그는 원래 부처님이 아니라 법장보살이었다. 대승에서 보살 개념이 나왔다. 법장보살은 자신이 세운 48원을 다 채웠다. ‐보통 보살은 원, 즉 서원을 하는데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이 원에 담게 된다.‐ 법장보살은  48원을 다 이루고 나서 서방 정토에서 죽은 중생들을 맞이하는 아미타불이 되었다. 아미타불처럼 보살이 원을 지킴으로써 부처가 되었을 때 이를 보신불이라고 한다. 응신불은 화신불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불이 이에 해당된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을 취해서 드러난 존재를 화신불이라고 하고 그 대표적인 부처가 석가모니불이다. 이러한 사상이 본지수적설을 낳는 기반이 되었다. 본지수적설은 교리에 바탕을 두고 일본에서 승려가 되었던 이들이 토착신앙인 신도와 불교를 어떻게 좋은 관계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서 만든 것이다.
사실 본지수적설이 나왔기 때문에 불교는 신도와 양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들어왔을 때는 순교의 역사도 있었고 굉장히 어려웠다. 일본은 토착 신앙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토착 신앙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서 외래종교가 일본에 살아남을지 사라질지가 결정된다. 불교는 그런 면에서 성공한 케이스다. 일본에 들어와서 순교의 역사 없이 바로 일본에 흡수된 종교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으로 보면 유일신교는 배타성이 강한 측면이 있지만 그건 유일신교가 갖고 있는 독특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나중에 그리스도교를 공부하면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어쨌든 불교는 그런 점에서 유일신 종교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융합이 잘 되었고 신도에 통일된 교리가 없었는데 그걸 자극하고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모든 게 다 잘 되지는 않았다는 데 있다. 본지수적설 자체는 불교 교단 쪽에서 내놓은 신도에 대한 이론인데 신도 내에서 그걸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이 자극을 받아서 내놓은 이론이 있는데 반본지수적설이다. 반본지수적설은 무엇을 말하는가? 본지수적설과 비교를 해 보자면, 본지수적설에서 본지가 부처이고 수적이 신이었다면 반본지수적설에서는 반대이다. 본지가 신이고 수적이 부처이다. 본지수적이라고 하면 불본신적()이 되지만, (반본지수적설에서는) 신본불적()이 되는 것이다.
 
1) 이세신도
자, 그럼 구체적으로 반본지수적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본지수적설처럼 여기도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이세 신도이다. 이것은 신도 측에서 내세운 신도의 이론적 학설로서 그 전에는 없었는데 불교 때문에 자극을 받아 신도 측에서도 독자적인 이론을 펼치게 된 것이다.
 이세 신도의 등장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국내적 요인을 들자면 본지수적에 기반을 둔 불교측의 입장이 반본지수적설과 같은 신도의 학설이 나오게 된 기반이 되었고, 또 하나 국외적 요인으로는 몽고의 침입을 들 수 있다. 원나라가 일본을 침입했을 때 일본은 그 자극으로 민족의식, 국가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했다. 신의 나라, 신국 의식을 좀 더 자각한 것이다. 이런 국민 정신이 이세 신도 같은 새로운 이론을 펼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그러면 이세신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이론을 말하고 있는가? 신의 위치가 옛날처럼 인간과 친숙한 가미로는 안 되고 부처 위에 있으려면 좀 더 설명이 필요하므로 새로운 신관을 정립하게 된다. 이것은 <신도 5부서>라는 책에 나온다 .이세 신도에서는 와타라이시라는 사람이 이론을 펼친 중심 인물이었다. 이 와타라시이가 중심이 되어서 이론들이 형성되는데 <신도 5부서>라는 책에서 신관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아직 나눠지지 않았으며 음양이 구분되기 이전에 혼돈이라 부른다.’ 마치 어디를 읽는 것 같은가? 창세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만물의 영을 허공신이라 하며 그 신을 대원신(大原神)이라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전에는 허공신이나 대원신 같은 절대적인 이미지를 주는 신관이 신도에 없었는데 이세 신도에 와서 이런 것이 생긴 것이다. 보다 더 근원적인 신, 본원적인 신관이 생겨난 것이다 .허공신이나 대원신은 같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God와도 비슷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신관이 이때부터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허공신이든지 대원신이 태초에 이미 있었기 때문에 이 태초부터 있었던 신에 의해서 부처로 수적되는 것이다. 이 세상 근원지에 이 신이 있었기 때문에 부처는 그 다음에 생겨나는 거니까 신으로부터 부처가 수적되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반본지수적설의 두번째는 요시다 신도이다. 요시다 신도는 요시다 카냐토모라는 사람에 의해서 독창적인 이론이 펼쳐졌다. 그래서 요시다 신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가 말하는 요지는 분명하다. 신을 본지로 보고 부처를 수적으로 간주한다. 그의 저술인 <명법요집> 에 보면 신관에 대해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모든 것이 우리 신명이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신명. 신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교나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창조 개념의 신이 나온 것이다. ‘천지의 마음도 신이고, 부처의 마음도 신이다. 귀신과 축생의 마음도 신이다. 초목의 마음도 신이다. 하물며 인륜에 있어서야 그렇지 않겠느냐.’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이세 신도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기 나름의 신관을 펼친 것이다. <명법요집>에서는 신과 도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면, 신도에서 신은 천지만물의 영험한 근원이라고 한다. 뭐든지 근원적인 것으로 설명 하려는 것이다. 도를 일체 현상의 기원이라고 본다. 이렇게 근원이나 기원 같은 표현을 쓰면서 반본지수적설을 제창하고 있다. 따라서 신도는 근원적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잡된 것이 없다. 순수하다. 신도라는 것은 신명, 신이 바로 전해 준 것이기 때문에 신도야말로 순수하고 잡된 것이 없다. 이에 반해서 이방의 가르침, 유교나 불교나 도교 이런 것들은 잡스럽다고 하면서 타 종교에 배타적인 측면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요시다 신도에서는 ‘신도는 보다 근원적인 것이고 다른 것들은 잡스러운 것이 섞여서 나온 종교라고 주장하며 신도가 우월하고 신도가 보다 근원적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신불습합의 역사 안에서 반본지수적설과 본지수적설 양쪽이 자기가 더 우월하고 우선적이라는 것을 주장해온 측면을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양립한다.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더 우세하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부분은 일본의 중세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를 지배했던 중세 신도의 이론들이었다.
2) 스이카 신도
 일본 중세에는 불교가 지배적인 사상이었다. 당연히 중세에는 불교와 신도의 관계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근세에 가장 두드러진 사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유교이다. 따라서 근세 신도는 유교와의 관계를 놓고 봐야 한다. 신도는 항상 외래종교와의 관계 안에서 쇄신되어왔다.
근세 신도로는 유가 신도인 스이카 신도를 들 수 있다. 스이카 신도는 야마자키 안사이라는 사람이 주창했다. 그는 일본 주자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신도의 가미 신앙을 매개로 유교를 설명하려 했다. 양쪽을 어떻게 매치시켜 설명할지 고민했다. 주자학이라든지 일본의 유교‐ 공자 사상 중에서 천명사상 즉 천(天)과 인간의 관계를 말하는데 원시 유교에서는 천에 인격성을 부여하지만 주자학 신유학에 오게 되면 천이 다시 리(理)가 되면서 인격성이 사라진다. 천리(天理).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천과 인간의 관계를 유교에서는 늘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안사이는 주자학에서 말하는 천인합일, 천인일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서 천인유일설을 내놓았다. 안사이가 말하는 천인유일, 안사이는 합일이다. 일치라는 말보다 유일이라는 말을 선호했는데 유일은 무엇을 뜻하는가? ‘도나 천, 하늘이나 인간을 꿰뚫는 것을 가리켜 나는 유일이라고 칭한다.’ 하나가 모든 것을 통괄하는 개념이다. 천일합일은 천이 따로 있고 인이 따로 있어서 그것들이 합일된다는 개념이지만 안사이는 그 모든 것을 꿰뚫는 유일한, 유일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도, 인간, 천을 꿰뚫는 유일에 대해 살펴보자.
 ‘태양의 덕을 비유하여 태양신이라 함은 옳지 않다. 태양 자체를 천인일체의 태양신으로 모실 일이다.’  ‘월신의 덕을 비유하여 천인합일이라 함은 옳지 않다. 달 그대로를 조화의 월신으로 모실 일이다.’ 태양 자체를 일신, 달 자체를 월신으로 모실 일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태양, 달 자체가 일신이고 월신이다. 태양, 달 자체가 하나의 신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천인유일에 대한 이론은 하늘로부터 인간이 나오고 뭐가 나오고 그런 개념이 다르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신이 되는 것이다. 신의 조화와 인간사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이런 불교적인 개념도 좀 있는 듯 하면서도 천인에 대한 개념은 유교에 가깝다는 뜻이다. 주자학에 기본을 두면서 주자학의 리 사상을 가져와 도나 천이나 리를 하나로…어떤 면에서 보면 유일이라고 하는 것이 주자학의 리(理)와 상당히 가깝다. 주자학에서 리라는 것은 인격성이 배제되어 있는 것인데 안사이의 스이카 신도에서는 리라는 개념이 도입해서 이것을 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유가신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불가 신도와 내용상 유사성이 있다.
안사이는 신도와 유교의 단계를 말하면서, ‘신도라는 것은 태양과 하나인 아마테라스 신의 도를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테라스의 도나 은총은 무엇을 통해서 인간에게 전해졌는가? 삼종의 신기를 통해서 전해졌다. 일본사람들이 신기를 중요시하는 것도 아마테라스의 은총이 그 안에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볼 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지만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그럴 수 있다. 어떤 신앙을 가졌을 때는 일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보기 마련이다. 그리스도교 전례도 마찬가지다. 밀떡 하나 들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 허무맹랑하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게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렇듯 신앙의 차원과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차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삼종의 신기를 신도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신도에서는 신도 이론들이 신기에 대한 신앙을 갖게끔 해준다. 그래서 신도는 이 삼종의 신기를 목표 삼아서 무엇이든지 성심 성의껏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삼종의 신기를 통해 아마테라스의 은총, 도가 전해졌는데 이 도를 구체적으로 인간이 실현시키는데 있어 필요한 것이 유교이다. 신도는 아마테라스 신이 갖고 있는 도인데 그 도를 갖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침을 주는 것이 유교이다. 이렇게 유교와 신도가 결합을 하는 것이다.
 안사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교라는 게 무엇인가? 교는 가르침이다.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가 하면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이니기로부터 받았다. 이니기는 하늘에서 내려와서 일본의 왕권을 차지하는 아마테라스의 자손이다. 이니기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길을 안내해줬던 신은 사루타 히코노 가미이다. 사루타는 원숭이이다. 사루타 히코노 가미가 안내해줬다는 것은 길을 가르쳐줬다는 뜻인데 이니기를 가르쳐준 이 신이 인간에게도 길을 가르쳐준다.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그 길이 바로 유교가 갖고 있는 가르침이다.
유교적인 길을 가르쳐주는 사루타 히코노 가미, 이 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스이카 신도에서는 이 신이 근신재계하는 신이고 토금의 신이라고 이야기한다. 토금은 오행설에서 나온 것이고 여러분이 주목해야 할 것은 근신재계라는 말인데 유교의 덕목 중에서…안사이가 주자학에서 중요하게 여긴 덕목은 ‘경(敬)’이다. 경은 물론 공경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경 사상에 들어있는 것은 ‘삼가다, 근신하다’는 덕목이다. 그래서 아마테라스의 은총이 인간 안에서 잘 이루어지려면 사루타 가미를 잘 섬겨야 하고 이 신을 섬긴다는 것은 유교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것인데 특별히 경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것이 된다. 근신, 삼가는 덕목을 잘 지킬 때 아마테라스 신의 은총이 우리 안에 퍼져서 마음을 밝게 비추고 일덕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신앙적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종전의 신도가 갖고 있던 종교관에서 신도 용어를 써서 그렇지 유일신교에서 하는 얘기와 유사하다. 아마테라스신을 하느님과 바꾸면 거의 똑같은 얘기이다. 신도의 이론이 유교와 불교와 습합되면서 상당히 이론적으로 종전에 갖고 있었던 토착적인 가미신앙에서 많이 변화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까 금토 신이라고 얘기했었는데 이것은 오행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금은 토에서 나온다. 토가 굳어진 게 금이다. 경을 하게 되면 토가 금이 되듯이 그렇게 우리 안에서 일덕이 밝아진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3) 고학신론
중세 근세 신도 이론들이 좀 복잡하다. 자, 근세 신도 중에서 스이카 신도는 유가 신도라고 했다. 이 유가신도가 나오면서 다시 이 유가신도를 비판하기 위해 나오는 이론이 있다. 본지수적설이 나오니까 반본지수적설이 나온 것처럼 유가신도가 나오니까 이것을 치기 위해 나오는 게 있다. 그게 바로 고학신도이다. 고가쿠 신도는 무엇인가? 불교나 유교, 외래종교가 일본에 들어왔을 때 이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일본에 고전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이야기한다. 그게 고학파가 된다. 늘 일본은 그런 반응을 보여왔다. 외래 종교가 들어오면 본래 종교가 새롭게 학문적으로 고개를 드는 것이다. 고학도 그런 의미로 나왔다. 일본이 본래 갖고 있는 고전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했을 때 그 고전은 무엇인가? 바로 신도이다. 신도사상을 중심으로 해서 연구하는 것이다. 고학 측면에서 새롭게 신도의 사상을 펼친 것이 고가쿠 신도이다.
고가쿠 신도는 마부치라는 사람이 원래는 가모노 마부치라고 하는데, 이 사람이 주로 연구했던 것은 <만엽집>이다. 8세기에 편찬된 책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 시 등을 집대성한 가집이다. 일본의 고대사상 그 종전에 나온 모든 것들을 여기에 다 수록해놓은 것이다. 고대 일본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이 책에 실린 노래에 잘 담겨있다. 일본의 고대사상을 알려면 이 <만엽집>을 공부하는 것이다. 마부치는 평생 이것을 연구한 사람이다. 고가쿠 신도는 마부치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집대성한 사람은 마부치의 제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이다. 노리나가라는 사람은 <고사기>를 연구했다. <고사기>는 벌써 여러 번 들어봤을 텐데 일본의 최고로 오래된 역사서이다. 노리나가는 이 연구를 하면서 마부치의 학풍과 고대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래서 그는 종전의 신도설이 모두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신도는 유교와 불교를 빌려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것은 고도를 어지럽히고 그 진면목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 세상의 신도가들은 불교에 부회함으로써 나쁜 줄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본래의 고도로 돌아가야 한다.’ 고도는 신도의 본래 사상을 뜻한다.
마부치라는 국학자 그 뒤를 이어서 오토리 노리나가‐노리나가는 국학을 집대성한 사람이다. ‐노리나가가 국가신도의 이론적인 체계화를 시켰다고 이야기했다. 마부치가 연구한 것<만엽집>은 노래를 모아놓은 노래모음집으로 고대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가사집이다. 노리나가가 주로 연구한 것은 고사기이고 그가 쓴 것이 <고사기전>이다. 고사기전은 고사기를 바탕으로 해서 쓴 것인데 일종의 신도 경전처럼 되어버린 고사기를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학문 세계와 신앙 세계가 동일시된 사람이었다. 단순히 학문은 학문대로, 신앙은 신앙대로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의 세계에서 얻은 것, 얻은 인식의 체계를 그대로 신앙 안에 반영하는 독특함을 갖고 있었다. 단순히 인식하고 학문으로서 공부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고사기에 나오는 일본 고대신화들을 그대로 믿은 것이다. 그게 자신의 신앙이 된 것이다. 학문 세계가 논리적이고 차별적이고 형이상학적이고 그런 색깔이 굉장히 강하지만 그런 학문을 추구했던 사람이 그걸 자기 신앙으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는 고사기에 나온 일본 신들의 신화를 있는 그대로 믿는 독특함을 갖고 있었다. 무비판적인 신앙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 고사기에 나오는 고전 그 자체를 신앙하도록 무비판적으로 신앙하도록 만들었는가? 그걸 좀 살펴보겠다.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마부치이다. 마부치는 이런 얘기를 주로 했다. 일본의 도는 유가에서 말하는 인위적인 도가 아니다. 이 사람의 사상이 나온 배경에는 유학, 일본에 들어온 외래 사상들 그런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마부치는 일본의 고대 정신을 다시 회복시키려고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학이나 유교 같은 것들이 일본의 정신 세계에 주축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다.
유교 중에서도 특히 순자의 도에 기반을 둔 소라이 학파가 나오는데 이누키 소라이라는 학자 이름을 딴 학파이다. 이 소라이 학파가 순자의 도에 기반을 둔 그런 사상을 펼쳤다. 순자의 도는 요 임금이나 순 임금이라든지 그런 선왕의 도이다.. 중국의 유교, 특별히 공자‐맹자‐ 순자로 이어지는 원시 유교에서는 덕치를 지향했다. 공자 맹자는 덕에 기반을 둔 정치관을 펼쳤지만 그 당시 이들이 살았던 시기는 춘추전국시대 즉, 봉건시대로서 많은 제후들이 중국 땅을 자기 잘났다고 나눠먹고 지배하는 시기였다. 공자나 맹자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이끌어나갈 임금을 찾아 순례를 하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펼쳤고 궁극적으로는 덕에 목표를 둔 이상적인 군주상을 가르쳤다. 그게 그대로 순자에게 이어졌는데 선왕, 종전의 어떤 임금들이 그의 이상이 되었는가 하면 요 임금이나 순 임금 같은 이들이었다. 유교에서는 이들의 도를 이상적인 도로 생각하고 제후들에게 가르치려는 시도를 했다. 그래서 원시유교에서 도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선왕이나 성인들의 도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왕이나 성인이든 인간이다. 그래서 그들의 도는 인간의 도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도이다. 마부치는 일본에 들어와서 일본 유교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고 있는 원시 유교 사상들을 ‘다 인위적이다’ 라고 비판했다. 마부치는 자연의 도. 도라는 것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것으로 천지 자연의 도라고 했다. 그리고 천지 자연의 도가 일본에 이미 있다고 했다. 바깥에서 들어온 유교의 도, 인간의 도이전에 일본에는 천지자연의 도가 있었고 우리는 이 도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마부치가 지향하는 사상의 핵심이다. 이것이 노리나가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노리나가는 고대 일본의 정신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것이 학문과 신앙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노리나가는 마부치의 영향을 받으면서 또 새롭게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이것은 마부치를 비판하는 데서 드러난다. 어떻게 비판하는가 하면, 마부치는 유교의 도는 인위적인 도이기 때문에 이것을 비판하고 일본의 천지자연의 도를 지향했는데 노리나가는 진정한 도는 인위적인 도도 아니고 천지자연의 도도 아닌 신의 도라고 했다. 신이 도를 창시했다고 한 것이다. 그 신은 <고사기>에 나오는 신들이다. 고사기에 나오는 신들이 그의 신앙의 핵심이 된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신으로부터 신의 도를 받았고 그걸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노리나가의 사상이 전개가 된다.
노리나가는 일본인들의 사상에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으로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이다. 국학에서도 나오고… 일본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세계 안에 신도가 자리잡고 있는데 거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도는 다름아닌 신의 가르침, 신의 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신은 그리스도교의 신과 다른데 그건 일본의 신은 절대 유일신의 의미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가미들 중에는 선신도 있고 악신도 있다. 여기서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선악관이 나온다. 선과 악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이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선보다 악이 더 우세하고 악이 더 판을 치는 것처럼. 이러한 선악관에서 어떤 것이 나오는가 하면 노리나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천명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굉장히 불안정하다 또 세계는 부조리하다…노리나가는 악신이 판을 치기 때문에 부조리하다고 설명하는데… 이렇게 선한 것 악한 것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가미로부터 나오는 부분이기 대문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바로 여기에서 선악의 판단기준을 뛰어넘는 독특한 일본의 도덕관이 나오게 된다.
이런 것이 일본의 영화나 매스미디어에 많이 녹아 있다. 일본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와 굉장히 차이가 난다. 할리우드 영화는 다 똑같다. 주인공은 죽지 않고 결국은 해피엔딩 끝을 다 알 수 있는 영화다. 왜냐하면 뚜렷한 선악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이 반드시 이긴다는 구조가 있으므로. 그러나 일본 정서에서는 그렇지 않다. 선악이 공존해있고…야스쿠니 신사참배의 정서를 이해하려면 이런 일본인들의 정서를 이해해야만 가능하다. 도저히 우리 머리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세계 2차 대전들을 일으킨 전몰자들을 추앙하고 신으로 모신다는 일을 우리는 상상도 못하지만 이 사람들의 정서는 그게 아니다. 그걸 이해해야 야스쿠니 진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야스쿠니는 정치와 종교가 얽혀져 있는 부분인데 그것을 정치적 시각으로만 보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그런 문제의 근본에는 일본인들의 선악관이 깔려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선악을 나누는 판단기준의 중요한 것은 신의 마음이다. 모노노아하레. 이것은 일본인들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정서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일본인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우리가 접하는 일본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노리나가의 학문 세계와 그의 신앙이 양립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첫번째로는 마부치의 고대 문명주의가 준 강한 영향을 들 수 있다. 두번째로 노리나가는 굉장히 열심히 고사기를 연구하면서도 또 신비주의적으로 고대를 탐구했다. 이 사람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지식이나 인지적인 것은 한계가 있다. 인간의 지적인 것과 감각의 세계를 뛰어넘는 것은 인간이 알 수 없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이는 신이다.’ 이런 인식적인 입장에서 신적인 것과 함께 고전을 바라봤기 대문에 신앙과 연결될 수 있었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리나가의 사상은 국가 신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학문의 세계를 넘어서서 일본의 정서에 깊이 있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다. 오늘날 그에 대해 양립되는 견해가 있다. 높이 평가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그의 학문과 신앙의 세계의 모순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높이 평가하는 쪽의 의견은 아까 말한대로 이해하면 될 테고. 그러나 다른 한편 객관적인 학문의 세계를 자신의 주관적인 신앙과 연결시켜 이해하는 모호성을 일본인들이 한쪽에서는 굉장히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어쨌든 고가꾸 신도는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이어지는 국가신도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다.

6. 국가신도

국가신도는 무엇인가. 국가신도는 메이지 유신(1868년)과 더불어 새로운 신도로 등장하게 된다. 국가신도라는 용어 자체는 2차 대전에서 패전하고 연합군 사령부에서 국가신도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국시대의 신도를 의미한다. 군국주의 시대의 신도를 통칭해서 국가신도라고 이름 붙였다. 국교가 되려고 한 것이다. 사실 국교로서의 자리매김을 하면서 무던히 애를 썼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국가 종교화하려는 시도를 메이지 유신 정부가 계속 했던 것이다. 메이지 유신은 자신들이 새롭게 설립한 정부의 체계화의 기반을 왕정복고에 두었다. 옛날 왕정복고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이제 메이지 유신이라는 것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가 정부와 대립하면서 내전에서 진다. 그래서 막부가 막을 내리고 메이지 정부가 들어섰다. 천황 측이 도쿠가와 막부와 이겨서 메이지 시대가 열린 것인데 이들이 원했던 것은 강력한 통치 기반이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국으로서의 국가 경영을 목표로 했고 이 목표에서 왕정을 복고하고자 한 것이었다.
왕정복고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고대의 제정일치 형식을 빌린 것이다. 옛날 고대 일본의 제사장과 정치가 일치하는 것, 고대 종교의 체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형식은 제정일치를 지향하고 사상적 내용은 고가꾸(고합) 신도의 교의학적인 것들을 빌려왔다. 이들은 제사를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데 이유는 전 국민을 국가 신도로 끌어 들이려면 종교의 형태를 취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메이지 유신 때 서양으로부터 문물이 들어왔고 서양 문화는 밑바닥에 그리스도교를 깔고 있었다. 서구와 손잡고 뭔가를 하려면 일단 그리스도교를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럼 이게 종교의 형태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럼 종교가 아닌 어떤 형태로 국민들을 묶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제사라는 형태인 것이다. 국가가 제사를 지내는 형태로, 그 다음에 그것이 하나로 통일이 되려면 주축이 되는 존재가 필요한데 천황을 그 주축으로 세운 것이다. 천황이 중심이 되어 제사를 집전하는 형태로 국가신도의 형태를 바꾼 것이다. 국가신도는 종교로서의 역할보다는 제례, 의례로서의 역할로 이해하면 되겠다.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는 이렇다. ‘신도는 종교가 아니고 민족윤리를 체계화한 조직이고 민족의 제도에 충성을 바치는 하나의 제사 의례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1872년에 메이지 5년 국가신도와 종교로서의 신도를 분리한다. 국가신도는 제례이고 그 외의 종교로서의 신도는 교파신도라고 하는데 신도가 여기서부터는 국가 신도와 교파 신도로 분리되어서 종교로서의 신도는 교파 신도로 남고 제사로서의 신도는 국가 신도가 남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래서 이때부터 메이지 정부는 교파 신도에게 다른 불교나 그리스도교처럼 나란히 독립된 종교의 위치를 주었다. 국가 신도는 하나의 독립된 종교라기보다는 국민 정신을 민족의 도덕성에 일치하도록 방향짓는 애국적인 목적을 지닌 국가의식체계로 삼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메이지 정부는 진쟈가 들어가 있는 신불습합의 형태로부터 신불을 분리시키는 작업을 감행했다. 궁극적으로 고신도,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고신도의 자세를 재현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진쟈에 있는 불교적인 요소들을 깡그리 없애고 신불습합적인 제사 형태도 순수한 신도 형태로 탈바꿈을 시켰다. 이와 같이 메이지 정부는 신불분리 정책을 강조했고 제정일치를 강조했다. 신을 모사는 제사와 정치는 하나라는 고대관념을 도입한 것이다. 따라서 제정일치가 메이지 유신의 하나의 정치적인 방침이 된 것이다.
 정치적인 방침이 되려면 제사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제사 집전은 그럼 누가 하는가? 신도의 신관이 하는 것일까? 아니다. 천황이 국가 제사의 제사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천황의 존재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새롭게 인지시키느냐가 일본 메이지 유신의 관건이었다. 일본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려면 이러한 정책(국가적인 제사 집전)을 펼쳐야 하고 이러한 정책의 제사장으로 있는 천황의 위치를 새롭게 확고히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사상들이 나오게 되는데 마치 그리스도교의 신과 같이 천황이라는 존재를 체계화시키는 이론들이 등장했다. 첫째, 천황은 아마테라스의 자손임을 강조한다. 천황은 그냥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옛날 메이지 시대 노인들은 천황의 존재를 신으로 보았다. 일본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지만 노인들은 그런 성향이 굉장히 강하다. 아마테라스신의 자손으로서 아마테라스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천황의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메이지 정부는 각 일본 사람들도 각자의 조상 제사에 정성을 드리도록 했다. 이는 조상들의 은혜가 백성들에게 골고루 주어져서 국가 건설을 돕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천황의 제사 행위가 강조되면서 천황은 어떤 존재로 부각되는가 하면 현인신‐인간으로 나타난 신‐천황이 되었다. 하여튼 그런 이미지들이 굉장히 강하게 있는 것이다.

천황의 제사 의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천황은 아마테라스 신을 모시고 있는 이세 신궁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이세 신궁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천황이 중심이 되어 제사 지내는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이세 신궁은 무척 신성한 곳이다. 국가 신도가 천황의 제사 의례를 강조했던 데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교를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도가 어떤 이치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면서 제사를 강조하게 되었다고 앞서 설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제사가 보통 제사가 아니라 국가 제사가 된 것이다. 메이지 시대에 천황이 직접 드리는 제사를 대제라고 한다. 대제는 약 13번 정도 있었고 천황이 직접 집전하는데 제사의 종류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천황이 직접 하지 않고 신관들이 담당하는 소제가 9번 정도 있다. 제사 의례를 집전하는 국가 신도의 형태를 사람들에게 알릴 때 대교라고 했다. 메이지 정부는 1870년 대교를 선포했다. 이것은 종전의 신도와 구별하기 위한 작업들이었다. 교과서나 책에서 대교라는 표현을 보게 되면 이것은 국가 신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습합 신도 이후의 신도를 대교신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자, 이렇게 1870년에 대교가 선포되어 국가는 대대적으로 신도들을 정리하는 과정들을 갖게 되는데 거기서 교파신도라고 얘기했던 부분들, 종교로서의 신도와 비종교로서의 신도인 국가 신도 국가신도라는 이중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국가 신도 같은 경우는 이세 신궁이 총본산이 되고 그 밑에 다른 진쟈들을 두게 되었다. 자, 그러면 국가신도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는데 그럼 교파신도는 어떻게 되는가?
교파 신도들은 그 이후에 굉장히 많이 정리되었는데 정부가 교파신도를 관리하지도 않고 보조금도 주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굉장히 많은 진쟈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교파 신도를 정의하면 국가 관리에 속하지 않은 종교활동을 하는 신도를 총칭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관리를 벗어나 있는 것이다. 교파 신도를 다른 말로 교도신도라고 한다. 나중에 일본의 신종교에 대해 공부할 때 교파신도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이처럼 교파신도가 오늘날은 굉장히 약세가 되었고 작은 형태들로 남아있다. 흑주교, 금강교, 천리교…이건 신종교 할 때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럼 매스컴에 많이 나오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국가 신도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야스쿠니 진쟈는 1869년에 건립되었다. 처음부터 야스쿠니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야스쿠니라는 이름은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처음에는 도쿄 초혼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혼을 초대한다는 뜻이다. 이게 야스쿠니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은 10년 후 1869년 6월이다. 야스쿠니라는 이름으로 바뀐 이후에 격이 높아졌다. 야스쿠니 진쟈가 혼들을 제사지내는 위치에서 야스쿠니로 이름이 바뀌면서 천황의 조상신이나 왕족을 모시는 진쟈 다음으로 격이 올라갔다. 이세 신궁 다음으로 야스쿠니 진쟈를 치는 것이다. 승격한 것이다. 야스쿠니에는 어떤 분들을 모시고 있나?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 일본이 치른 모든 전쟁들‐내란, 사무라이 막부들간의 싸움, 청일 전쟁, 러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의 전몰자 246만 명의 명부를 보관하고 있다.
야스쿠니 진쟈는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 야스쿠니는 국가 신도의 중심 시설이다. 야스쿠니 진쟈가 246만 명의 명부를 모시면서 야스쿠니 진쟈의 중심 신은 요시다 쇼인‐29세라는 아주 젊은 나이게 죽었는데 이 사람은 메이지 유신을 이끈 지도자들을 배출한 사상가이자 교육자였다. 메이지 유신 당시 중심이 되었던 사상은 존왕양이(왕을 존숭하고 오랑캐를 배척한다)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상의 기반이 되었던 사람이 요시다 쇼인이다. 이 사람을 모시고 국가신도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게 중심이 되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시 제 2차 대전 이후에 연합군 사령부는 야스쿠니 진쟈가 호국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고 이 진쟈에 대해 성격 규명을 하라고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단순히 종교 시설로 하든지 아니면 전몰자를 추모하는 추모시설로 하든지. 사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는 야스쿠니 진쟈는 바깥에서 바라볼 때 위험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일본은 1946년에 야스쿠니 진쟈를 종교법인으로 등록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전몰자 추모시설이라는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두 가지 성격을 병행하는 행태를 계속 보여왔다. 뉴스나 매스컴을 통해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끊임없이 야스쿠니 진쟈에 가서 신사참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인 스스로 계속 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는 말하기를 “전몰자 추모는 외국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을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니까 한국 중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야스쿠니 진쟈는 하나의 심볼이다. 일본의 군국주의의 상징물이다. 일본에 거기에 계속 참배를 한다는 것은 일본에 전에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 없이 군국주의의 정신을 계속 놓지 않고 가지고 있겠다는 표명이므로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계속 반발을 하는 것이다. 고이즈미라는 인물은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자기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는 것이다. 이 사람이 정치적인 기반으로 생각하는 것은 국민들의 지지이다. 자신이 속해있는 자민당의 지지세력이 약하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의 지지를 받고자 한다. 따라서 국민을 배신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정치적 자살이다. 고이즈미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국민들의 정서를 건드리지 않고자 한다. 이 사람은 신사 참배를 통해 분명히 알았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반발을 살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예상하고 감행을 했는데 일본국민들의 반응은 이 사람이 카리스마가 있고 추진력이 있고 단호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확실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신사 참배가 이 사람 개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정치적인 승리를 위한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 삼으려고 하는 것은 고이즈미가 아니고 왜 도대체 일본인들이 신사참배를 지지하느냐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건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신도 신앙과 신사참배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이해하려면 그 밑바닥에 있는 일본인들의 신도신앙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의 신도 신앙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건 바로 원령신앙이다. 원령신앙이 뭔가? 원령 신앙의 근거가 어디에 있었나?스가와라, 텐진 마쯔리를 기억하면 된다. 텐진 마쯔리에서 스가와라는 어떤 사람이었나? 우정승이었다. 좌정승이 이 사람을 결국 죽게 만들었고 스가와라는 쿄토에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원령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인들 안에 원령 신앙이 자리매김을 했다. 원령신앙은 일본인들 정서 깊숙한 곳에 있다.
혹시 노()를 봤는가? ‘노’는 일본의 전통 가면극이다. 노의 주된 스토리는 원령 신앙과 연결이 된다. 세상에 남은 원한, 원한의 감정들을 가면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토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원령신앙이 밑에 깔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뭘 보면 알 수 있는가? 가부키를 보면 알 수 잇다. 가부키는 전통연극이다. 아주 유명한 가부키 중에 ‘추신구라’라고 있다. 충신이었던 장군이 원한을 가지고 죽자 그에게 충성을 바쳤던 사무라이 47명이 자신의 장군의 원수를 하나 둘씩 죽이는 것이 배경이다. 이런 연극도 다 원령신앙과 연결이 된다. 그래서 이 원령신앙이라는 것이 바로 야스쿠니 진쟈의 참배를 하는 데 있어서도 전쟁에서 죽은 전몰자들의 원령을 계속적으로 달래줌으로써 그들이 국가의 새로운 신으로 자신들과 국가에 좋은 축복을 주길 바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원령신앙에 바탕을 두고 신사참배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노리나가와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일본인들이 가진 독특한 선악관이 신사 참배 행위의 밑에 깔려 있다. 상대주의적 선악관. 신도에서는 불교와의 습합과정에 있어서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사람이 선하게 살았든 악하게 살았든 상관없이 다 호토케가 된다고 본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았던 삶의 질이 상관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낙관적이다. 삶의 선함과 악함과 상관없이 죽은 사람은 모두 호토케가 된다는 관념을 가지고 전쟁을 하다 죽은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행위를 했든지 아군이었든 적군이었든 거기에 매이지 않고 그 사람들의 원령을 위로해 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후의 선과 악이라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는다는 태도의 밑바닥에는 아까 노리나가가 얘기했던 그런 사상이 깔려있는 것이다.
    앞서 노리나가가 선악을 나누는 판단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또 하나 살펴볼 것은 모노노아하레라는 일본인들의 정서이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모노노아하레는 헤이안 시대에 나온 문학용어인데 노리나가는 이것을 사물을 마음을 헤아려 아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대상을 접할 때 우리가 슬픈 것을 만나면 우리 마음이 슬퍼지고 기쁜 일을 만나면 기뻐지고 각 대상에 따라서 우리 감정의 변화가 계속 일어나는 것. 그것이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상관없이 우리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이다. 선악이라는 것이 어떤 절대성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상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입장에서 보면 선이 악일 수 있고 악이 선일 수 있다. 내가 어느 입장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절대적으로 저 사람은 악하고 나는 선하다가 아니라 때로는 나도 악하고 저 사람이 선할 수도 있다. 이런 상대적인 관념들을 낳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 ‘모노노아하레’라는 것이다.
    선악을 나누는 그러한 도덕을 넘어서는 세계. 그런 피안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정서를 모노노아하레라고 하는데 이 모노노아하레가 바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깔려 있다. 그러니까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들에게는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고 단편적으로 생각하는데 일본인들은 각 개인들을 본다. 각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원령이라는 의미와 각 개인들이 갖고 있는 상대적인 의미들이 여기에 함축되면서 그 사람들을 위한 제사를 계속 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노노아하레를 기반으로 한 사상들, 또 가미신앙 모든 존재는 죽어서 가미가 된다, 원령이 가미가 될 수 있다는 그러한 사상들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야스쿠니 진쟈의 참배를 하는 일본인들의 정서 밑에 깔려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