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종교인으로 살아가려면
최현민(종교대화 씨튼연구원 원장)
지난해 ‘봉은사 땅밟기’ 영상으로 인해 잠잠하던 종교간 갈등이 다시 부상된 적이 있다. 봉은사 전 주지가 개신교 학생들의 사과를 받아들여 일단락되었지만,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는 종교 갈등이 일어날 요소가 늘 잠재되어 있다. 많은 이들은 한국사회는 다종교문화이면서도 대부분의 시기동안 큰 종교적 갈등없이 평화적 관계를 유지해온,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경우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종교문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화합의 역사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물론 사회활동 안에 종교화합을 이룬 사례들이 있다. 가톨릭, 불교, 원불교 수행자들이 함께 사회활동을 하기도 했고, 불교와 가톨릭 및 개신교 대표들이 모여 전국적으로 장기(臟器) 기증 운동을 벌린 예도 있다. 또한 ‘대운하 반대 100일 순례’에 불교,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성공회의 몇몇 지도자들이 함께 강을 따라 걷는가 하면,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이 53일간 오체투지 순례를 하기도 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사회 이슈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내기 위해 '함께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보다 성숙한 종교문화를 이루려면 근본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겉으로 아는 데 머물지 않고 그 내면의 세계를 깊이 아는 것이 필요하다.
크리스찬의 경우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 세례를 받기 전에 먼저 한국문화의 옷을 입고 살아왔음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유아세례를 받았더라도 이미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종교 문화적 DNA’가 그 사람 안에 각인되어 있다. 이는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전에 한국인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숙한 크리스찬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문화의 종교영성과 그리스도교 영성을 어떻게 잘 조화시켜 가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문화 속에 면면히 흐르는 동아시아 종교영성은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풍요롭게 하는데 좋은 자양분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우리 문화의 자양분이 되어온 동아시아 영성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나는 크리스찬인데 다른 종교적 가치들이 무슨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내 신앙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이웃 종교 안에 면면히 흐르는 영성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이웃종교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나의 종교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인 필자는 20여년간 불교를 연구해왔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영성은 나의 신앙과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불교의 세계관 속에서 나는 그리스도교의 세계관을 새롭게 조명해 볼 지혜를 배웠고 그 지혜는 서구 그리스도교가 지닌 틀에서 자유로와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동아시아 종교영성이 그리스도교에 줄 수 있는 영향은 인간중심적 사고와 이원론적 사유의 극복이라 할 수 있다. 이원론적 사유는 그리스도교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현 지구가 겪고 있는 생태문제가 이 사유와 깊은 연관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조금이라도 생태문제에 관심을 갖고 접근해본 사람이라면 생태문제의 원인이 이원론적 사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것이다.
환경보존론자들은 주객이원론적 관점에서의 자연이해가 생태파괴의 주요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객체로 이해하는 것은 이원론적 사유구조 안에서 자연을 주체인 인간과 대립시킨 채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도구로서 봐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린 화이트(Lynn Townsend White, Jr., 1907-1987)는 1967년에 『사이언스』라는 잡지를 통해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뿌리(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거기서 그는 현대 생태위기의 역사적 근원은 유대-그리스도교적인 인간중심적 자연관과 깊은 연관성이 있으며,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오만으로부터 오늘날의 환경문제가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오늘날 생태연구가들은 화이트가 주장한 것처럼 생태위기는 하나의 원인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 여러 요인들-과학기술의 진보, 급증한 과잉인구, 산업혁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생태위기의 요인이 복합적 요인에 있다고 해도 그 저변에는 인간중심적 사유가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 저변에 깔려있는 인간중심적 사유를 극복하지 않고는 생태위기 극복은 요원한 일이다. 보다 근본적인 곳에서의 인식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인간중심적 사유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인간중심주의적 자연이해가 지닌 한계를 지적하면서 나온 것이 생태중심적 사유이다. 우리는 이를 동양사상에서 그 혜안을 찾아볼 수 있다. 이원론적 사유는 생태문제의 원인만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을 이원화시키는 문제로부터 나와 너의 주객 간에 일어나는 일상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뿌리가 깊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풀어갈 해법 또한 이원론적 사유극복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어느새 한국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내린 서구 자본주의와 함께 우리는 점점 생명의 영성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가 본래 지녀온 그 영성을 회복해가기 위해서는 종교대화의 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 내면적 갈구에 대한 응답의 하나로 1993년에 종교대화 씨튼연구원( www. setondialog.co.kr)이 문을 열게 되었다. 이 곳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유교 원불교 등 각 종단에 소속된 교수님 10여분이 일년에 4차례에 모여 세미나를 하고 있다. 그 모임에서 이루어진 종교대화를 작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화(운주사, 2010)』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신앙을 내려놓고 나눈 대화는 아름답지 않겠는가?
씨튼연구원은 그 외에도 매월 종교강좌를 개최해왔다. 지금까지 다루어왔던 주제는 '선불교와 그리스도교' '유교와 그리스도교' '무교와 그리스도교' '한국 신종교와 그리스도교' 등 한국종교를 구성하는 제반종교들 간의 대화였다. 이 종교강좌 역시 바오로딸 출판사에서 종교대화 시리즈로 출판되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책자로는 <선불교와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와 무교> <한국신종교와 그리스도교> <도교와 그리스도교>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순례> 등이 있다. 지금은 '생태문제에 대한 종교적 대안'을 모색 중이며 이를 주제로 한 종교강좌가 계속 진행 중에 있다.
다양성이 살아있는 종교문화를 유지함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배타적 신앙태도이다. '내가 믿는 신앙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배타적이고 패쇄적인 신앙이야말로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이웃종교의 영성과 지혜를 배우는 길은 단순히 이웃종교를 인정해주는 차원을 넘어 나의 신앙이 깊어지는 길이다. 한국의 종교문화는 우리에게 그러한 종교적 다양성과 영성의 보화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우리 마음의 비늘을 떼어낸다면 우리는 한국사회 안에 숨겨진 종교영성의 보화를 통해 보다 풍요로운 신앙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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