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선 인간은 “불성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불성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이들은 왜 이리도 적을까?
불성이 내 안에 있는 무엇으로 이해하는 건 불성에 대한 오해가 아닐까. 그런데 오해는 그것만은 아니지 싶다.
우리는 자아 진여 열반 하느님의 모상 신의 내재 등등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개념들을 너무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는 쉽게 ‘이것을 이해했다느니 저것을 깨달았다느니’ 라는 말을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이해했거나 깨달았다는 것의 대부분은
개념에 대한 이해일 뿐 그 실상이 아님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도겐은 말한다.
“선악도, 옳고 그름도 생각지 말고, 붓다가 되겠다는 생각마저 지워버려라. 이는 좌선뿐 아니라 모든 일상생활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그러나 어떻게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생각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이원론적 사유를 내려놓고 사는 게 가능할까?
도겐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불성의 현현(顯現)으로 보라고 말한다. 그럼 악도 불성의 소산이라는 건가?
아, 이것이야말로 불성에 대한 오해 중 가장 큰 오해가 아닐 수 없다.
분명 모든 것은 불성의 현현이나 우리는 “꽃을 사랑하고 잡초를 돌보지 않게 된다”고 도겐은 말한다.
그렇다. 바른 이해는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추함을 싫어하는 것이지,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착각하는 게 아니다.
살아가면서 사랑뿐 아니라 증오도 필요하다.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고 증오해야 할 때 증오함이 필요하다.
사랑에만 매달려선 안 되며 증오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꽃만이 아니라 잡초도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집착을 초월한 감성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삶의 문제를 풀 수가 있다.
문제는 대개 우리가 하나의 특정 관점에만 고집함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각각의 순간이 그 자체로 참되고 조화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것들과 일치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도겐의 가르침에 좀 더 귀를 기울려 보자.
“물고기는 헤엄을 치고 또 친다. 물은 끝이 없다. 새는 날고 또 난다. 하늘은 끝이 없다.
물고기가 물 밖에서 헤엄친 적이 없듯이 하늘 바깥은 난 새도 없다. 그들은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저 약간의 물과 약간의 하늘을 사용할 뿐이다.”
이렇듯 저들은 매순간 물과 하늘에서 자유를 누린다. 아마 저들이 물의 크기나 하늘의 크기를 재려한다면 저들은 결코 성공치 못하리라.
다만 자신이 물 속이나 하늘에 있음을 자각하는 것, 그것이 물고기와 새가 해야 할 전부이다.
그게 어디 저들뿐이겠는가. 인간인 우리도 자신이 이 지상에 있음을 자각하며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가 아닐까?
2017.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