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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10 14:18
화쟁.............최현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54  
조성택 교수가 쓴 <정의들의 화쟁>을 읽다.
그는 이 글에서 화쟁을 오늘의 한국사회 문제를 풀어내는 하나의 화두로 제시한다.
보통 화쟁의 원리는 원효사상에 근거하여 말하지만, 불교적 표현을 빌려 설명하면 현대인에게 잘 와 닿지 않는다.
그건 불교의 가르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불교 언어의 해석학적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는 불교의 언어는 현대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변형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U.C Berkeley 대학의 철학과 교수 도널드 데이비슨(Donald Davidson)가 말한 아래의 표현은
화쟁과 관련하여 우리가 새겨 들을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지어 그들의 행동이 비정상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상당한 진실과 동기를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는 자비의 원칙(the principle of charity)를 강조하면서  “좋든 싫든 자애는 반드시 구현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문제에 있어 그들이 옳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우린 삶에서 경험한다.
대부분 우리의 정의감은 ‘내가 옳음’을 전제한 감정이다. 그러니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지닌 타자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옳고 그가 그르거나, 그가 옳다면 내가 틀린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정의감을 지닌 우리가 어떻게 화쟁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조성택 교수는 화쟁을 불교의 중도사상과 연관지어 풀이한다.
불교의 중도사상은 이것과 저것의 중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도사상의 기본적 형태는
즐거움(樂)과 괴로움(苦), 있음(有)과 없음(無), 생함(生)과 멸함(滅), 단견(斷見)과 상견(常見) 등
상대적인 양 극단에 집착하지 않는 데 있다.
 
이처럼 양극단을 배제하는 중도사상은 모순적 상황에서 ‘옳고 그름’이라는 양자택일의 이분법적 입장을 취하기보다
‘복수의 옳음’을 용인함으로써 갈등의 국면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다시 말해 양극단의 옳음을 넘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건너갈 수 있는 여지를 갖게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서로 자기 옳음을 주장하는 이들로 인해 양극적 대립이 그 어느때보다도 극에 달해 있다.
자기주장으로 점철된 정의감은 결국 여러 형태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우린 지금 절절히 느끼고 있다. 화쟁을 말하려면 먼저 자신의 옳음을 내려놓고 타인의 주장을 들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데이비슨이 말했듯이 상대 안에 담긴 진실과 동기를 발견하려 하는 자세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린 화쟁을 향해 한걸음 내딛게 될 것이다.
화쟁은 그름과 옮음의 이분법적 판단을 넘어선 옮음끼리 함께 논의할 필요성을 자각함에서 출발한다.
화쟁은 ‘다투되 평화롭게 다투는 방법’의 다름 아니다. 이것은 다툼이 없는 평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다투되 평화롭게 다투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방면에서 갈등과 분쟁이 만연한 한국사회에
화쟁의 문화를 정착시켜가기 위해 지금이 바로 종교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2017.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