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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너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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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17-07-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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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너는 웃었다(창세기 18,15)>

 

창세기 18장에는 아브라함이 지나가던 나그네 세사람을 극진히 대접한 얘기가 나온다. 이 얘기는 안드레이 루블로프의 삼위일체 이콘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 이콘의 등장인물 셋은 아브라함이 대접한 이들로서 세 천사라고 하거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라고들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해석 들에 대해 말하려는게 아니라 나의 관심은 아브라함 자신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브라함이 지나가던 세 나그네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했다는 것이다. 왜 그는 지나가던 외인들에게 송아지까지 잡으면서 융숭한 대접을 했을까? 그는 아마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기에 지나가던 그들을 보고 자신이 기다리던 이들로 알고 그렇게 대접한 게 아닐까. 물론 아브라함도 하느님께로부터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먼 여행을 떠난 경험이 있기에 그 뜨거운 한낮에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나그네를 대접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너무 순진한 해석이 아닐까.

힌트는 바로 창세기 7장에 숨겨져 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느님이 나타나셔서 후손을 약속하셨고 할례를 받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한 후 하느님이 다시 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그네들을 하느님의 사람이거나 하느님과 관계된 이들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간절한 기다림이 있었기에 그는 극진한 대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이 일로 하느님께로부터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재차 확인받는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창 18, 10)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나이 89세 늙은 사라는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해 속으로 웃으면서 이렇게 궁시렁 댔다. ‘이렇게 늙어 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 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

이러한 사라의 속내를 아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사라는 웃으면서, ‘내가 이미 늙었는데, 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 하느냐? 너무 어려워 내가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이 말씀에 사라는 두려운 나머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바로 말을 받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 (창세기 18,10-15 참조)

“아니다. 너는 웃었다.” 이 말씀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느님께 불신의 웃음을 지은 사라는 안절부절 못하며 웃었던 사실을 숨기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느님께서 이미 다 아시고 단호히 말씀하신다. “너는 웃었다!” 그래, 하느님은 우리의 속내를 다 아신다. 속으로 웃어도 말이다. 내가 어떤 꿍꿍이 속이고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며 사는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 약속하신 바는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사실이다.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는 약속대로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을 주셨고 그를 통해 많은 자손을 갖게 하셨다. 인간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약속을 바꾸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내 반응이 달라지는 인간과는 얼마나 대조적인지. 상대가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상대를 대하는 인간의 대응방식은 그분과는 얼마나 다른가? 그런 인간의 속내를 다 알고 계시면서도 당신이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느님!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갖고 내게 다가오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일이다. 나그네를 영접해 하느님을 만난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내 속의 나그네나 밖의 나그네를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