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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랑과 고통은 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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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18-07-2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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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랑과 고통은 둘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은 행복만을 안겨다주지 않습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고통이 수반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뿐 아니라

때로 우리는 예견치 못했던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불의의 사고나 사건 같은 것 말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에 접할 때

우리는 인생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되어가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26세 아들을 잃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어떻게 고통을 극복하실 수 있었는지를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고통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이라구요.”

 

그렇습니다!

인생은 극복하는 게 아닙니다.

인생은 극복의 자세보다 견딤의 자세를 요구합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아들의 죽음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견딜 뿐이지요

 

인생이 이성이나 논리처럼 그렇게 전개되어가는 게 아님을 조금씩 알아갈 때

우리는 조금씩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이가 갖게 되는 덕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고귀한 덕목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겸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겸손은 고통을 통해 성숙해진 인격이 품어내는 향기일 것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사랑과 고통은 동전의 앞 뒷면처럼 함께 공존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고통이 있기 마련인 것은 고통을 통해 비로소 사랑의 의미를

알아가고 그것을 통해 성숙한 한 인간이 되어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고통을 통해서 드러나며

고통은 사랑을 통해 그 의미가 부여됩니다.

이것이 고통의 신비이며 사랑의 신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