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글자신의 약함을 노래하라 (노년영성2) 20.01.06
- 다음글윈터슬립(winter sleep) 19.12.27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년영성1)
페이지 정보

본문
노년 영성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그의 말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는 못할지라도 일면 수긍할 수는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우린 얼마나 자주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한 말은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애쓰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온 것이다.”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염세주의적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자기보존과 종족보존을 향한 맹목적인 욕망을 지닌 존재”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자신과 자기 혈육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과 자손을 보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을 그는 욕망과 권태 사이에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고 표현한다. 그래, 그의 말대로 대부분 자신과 자기 가족만을 염려하며 살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네 삶을 드려다 보면 우리는 얽기고 설킨 관계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힘에 의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이들의 사랑으로 삶을 지탱해왓다는 사실을 불가에서는 연기로 표현한다. 곧 연기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가을이 되면 우리는 쓸쓸함을 느끼거나 외로움을 타기도 한다. ᄄᅠᆯ어지는 낙엽처럼 우리도 그렇게 지겠지라는 생각에 허무하다는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그저 인간의 감상적인 생각일 뿐이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잎을 떨어트리는 건 생존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만일 잎을 떨구지 않고 그대로 겨울을 난다면 아마 나무는 얼어 죽고 말 것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는 잎을 떨군다는 사실에서 우린 생사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나무는 잎을 떨구기 전에 그동안 감추어 두었던 자기 본연의 색깔을 드러낸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각자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 자연은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아름답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가을은 언제일까.
자연의 일부인 우리도 추운 겨울을 준비해야 할 때가 다가온다. 여름을 지나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는 시기. 그 때는 바로 노년의 시기가 아니겠는가? 톨스토이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한 신사가 찾아와 1년 동안 신을 수 있는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그는 신발을 주문하고 돌아가는 도중에 죽고 만다. 부자는 자신이 그 날 죽을 것을 모르면서 일 년 이상 신을 수 있는 튼튼한 신발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부자처럼 우리 역시 같은 어리석음을 안고 살아가지 않는가?
루가복음 12장에도 비승한 얘기가 나오는데 바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그것이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 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이렇듯 자신의 한치 앞도 못 보는 우매한 존재가 바로 우리이다.
대개 노인이 되면 과거에 연연한다. 지난 세월 쌓은 업적을 곱씹으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도 왕년에는 잘 나갔지! 나는 ~여고 나왔고 나는 ~대학 나왔고, 나는 어느 회사 다녔고 거기서 나는 뭘 했고... 내 자식들은 ~ 등등 이렇듯 과거 자신의 행적이나 자식들의 성공사례들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이렇듯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여 살아간다는 건 그렇지 못한 현실에 씁쓸함만을 남길 뿐이다. 이렇듯 지나간 것들에 마음을 두고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를 노래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인생은 가을의 낙엽처럼 그렇게 떨어지고 만다고 생각하면서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걱정하고 살아가는 미래지향적 태도도 있다. 과거지향적이거나 미래지향적 태도 모두 노년을 어둡고 두렵고 서글픈 때라고 받아들인다. 이렇듯 과거와 미래가 아닌 삶의 태도를 갖는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인가.
그건 먼저 자신이 지금 처해있는 상황. 곧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신체적 변화와 심리적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지금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서 우리는 노년기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자. 먼저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머리가 희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해서 몇오라기 남지 않고...-눈도 침침, 귀도 잘 안 들리고 관절의 연골도 다 닳아버려 아프고 -기억력도 떨어져 금방 자신이 하려던 말도 떠오르지 않고.. 이렇듯 몸에서 일어나는 노화현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육신이 약해지고 육신이 약해지면 자연히 마음도 약해진다. 그래서 쉽게 상처를 받게 되고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그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다. 만일 주변의 어르신들이 그러시면 그건 사랑받고 싶다는 것의 다른 표현임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이렇게 나이들어감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약함 안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예수님의 시선은 늘 약자에게 있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동전 한 닢을 넣은 과부, 18년간 하혈병 앓은 여인, 어린이, 나병환자, 연못가의 앉은뱅이, 아들 잃은 과부
이렇듯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를 만난 사람들 중에는 강자보다 약자가 훨씬 많다. 이것은 우리가 약할 때 그만큼 하느님과 가까이 있음을 반증해준다. 하느님은 누구보다도 약자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사랑을 지니셨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래서 약자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과 좀더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젊을 때에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었던 많은 것이 나이가 들면 점점 혼자서 할 수 없게 된다. 물건을 들 때도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고...-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혼자 살아가기가 어렵다. 이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올 때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남의 도움을 받아들일줄 아는 것도 지혜이다. 독립적인 사람일수록 쉽사리 남의 도움을 받기를 힘들어한다. 남의 손길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듯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그 결핍을 채워주려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가난함을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가 도움을 받을 때 우리는 그가 선행을 하고 공로를 쌓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차피 완벽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금이 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금간 그 틈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송가(Anthem)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사에 “모든 것엔 금이 가 있다. 빛은 거기로 들어온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완벽한 것은 없다. 어디든 틈이 있기 마련이고 그 틈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완벽한 것을 바칠 생각은 하지 말아라. 완벽한 건 없다. 모든 건 틈이 있기 마련이다. 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 우리 삶에 드리움 틈 갈라진 아픔 고통 그러나 그리로 빛이 들어온다. 이처럼 갈라진 틈을 통해 빛이 들어오듯 우리의 약함을 통해 하느님의 빛이 들어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