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글진관사에서의 씨튼연구원 종교인 모임을 다녀와서 ... 26.06.20
죽음 속에서 발견되는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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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속에서 발견되는 생명력
오늘 ‘스페이스 성북’에서 열린 박재웅 개인전에 구마리아 수녀님과 함께 다녀왔다.
박재웅 화가는 일상 가까이에 있는 사물을 오래 들여다보며 생명의 본질을 탐색하는 작가다.
그는 소멸과 순환을 조용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사유한다.
단단하고 푸르던 표면이 시간 앞에서 서서히 갈색으로 물들고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의 붓은 세밀하게 화폭에 붙잡아 둔다.
파의 일대기, 여주의 일대기를 그리며 신선함에서 사그라짐으로 넘어가는
미세한 색채와 질감의 변화를 좇던 어느 날, 작가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다름 아닌 죽음 속에 숨어 있는 생명력이었다. 생명이 끝나 가는 자리에서
오히려 생명의 본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역설이었다.
여주가 그 좋은 예다. 여주는 익으면 초록빛에서 주황빛으로 물들고,
이윽고 껍질이 벌어지며 붉은 씨앗을 드러낸다. 겉모습은 시들어 가지만
바로 그 순간 다음 생명이 될 씨앗이 모습을 드러내니,
죽음은 한 생명의 완성이자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인 셈이다.
다만 이는 여주가 덩굴에 매달려 있을 때에만 일어나는 생명의 약동이다.
싱싱할 때의 생명력은 너무나 당연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시들어 가는 과정에서는 마지막까지 버티는 힘, 형태가 무너지면서도
끝내 남는 결이 보인다고 화가는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죽어 가는 것이라면 생명력도 함께 가늘어지고 힘이 빠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찌하여 더 강해진다는 것일까.
그것은 살고자 하는 애착에서 솟구치는 안간힘일까,
아니면 겉을 감싸던 것들이 하나둘 벗겨진 자리에서
비로소 드러난 본연의 생명력일까.
그래서 "끝으로 갈수록 더 강해진다"는 화가의 말은 단지 여주에 관한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소멸을 지켜본다는 것은 유한함을 마주하는 일이다.
오랜 관찰 끝에 나온 그 말은 덧없기에 오히려 더 강렬하게 존재한다는,
삶을 대하는 화가 자신의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전시장을 나서며 나는 우리의 삶을 떠올렸다.
젊음의 푸르름이 갈색으로 바래 가는 것을 우리는 흔히 잃음이라 부른다.
그러나 어쩌면 그때야말로 겉치레가 걷히고 한 사람의 삶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때인지도 모른다.
여주가 마지막 순간에 붉은 씨앗을 내보이듯, 우리도 삶의 끝자락에서 저마다의 씨앗을 내놓을 것이다.
시들어 간다는 것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생명이 마침내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2026 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