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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최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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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05-19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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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그 영원성!
어떤 체험은 세월이 지나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내게도 그런 체험이 있었다.
한 2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일본 나고야에 유학시절 중 1주일간 비구니승과 함께 했던 셋신(攝心 또는 接心)이라고 하는 집중수행이 그런 체험이었다.
 
그 날은 일주일간의 강도 높은 셋신 수행을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새벽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법당에 죽 치고 앉아 좌선수행을 했던 그 1주일은
지금까지 내 생애에서 가장 강도 높은 수행이었다.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는 데 익숙치 않았던 나에게 50분씩 하루에 5-6차례했던 좌선수행은 무척 힘든 것이었다.
저녁 수행을 마치고 잠자리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갈 때 어찌나 다리가 무거웠던지!
피곤함에 거의 쓰러지다 시피 잠들었다가 다시 새벽 종소리에 벌떡 일어나 후다닥 씻고 다시 법당으로 향했던 그 때를 떠올려보며 미소 짓는다.
 
그렇게 힘들던 수행을 마치게 된 마지막 날이었다!
몸은 지칠 때로 지쳤지만 한결 정신은 맑아진 느낌으로 법당에 앉아 있었다.
스님 한분이 법당 밖으로 나가 셋신의 끝을 알리는 범종을 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종소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종이지 않았나 싶다.
진정한 수행은 지금부터임을 알리는...
 
법당 안에 첫 번째 종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 종소리가 울렸고 또 다음 종소리로 이어졌다.
바로 그 종소리는 내 몸 속으로 퍼져 들어오더니 나는 점점 종소리와 하나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소리는 그 법당 전체로 퍼져가면서 그 주위 스님들께로 번져갔다.
그렇게 33번의 종소리의 울림은 그곳에서 함께 수행한 이들에게로 번져가면서 우리의 각자가 지닌 다름을 넘어 하나가 되어갔다.
다르면서 하나라는 不二의 진리가 몸으로 체득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가 바로 연기(緣起)의 세계요 中道의 세계였다.
그리고 내 눈앞에 중중무진(重重無盡)의 화엄의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책에서 배웠던 개념들은 종소리와 함께 살아나 내게 진리를 가르쳐주었고 나는 그것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순간이었다!
강한 떨림과 함께 나도 모르게 수없이 고개 숙여 깊은 절을 하고 있었고 내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체험이지만 지금도 그때의 체험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무엇이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각인시켜놓은 것일까?
 
오늘 나는 야스퍼스가 말한 ‘초월’의 의미 안에서 그 이유를 발견한다.
보편적 진리가 단지 추상적 개념으로 남아 있지 않고 한 개인의 실존 안에서 구체적인 체험으로 다가설 때
비로소 그것은 구체적인 삶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다! 추상적이던 진리가 우리 안에 체득되는 순간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넘어 영원을 경험케 된다.
 
야스퍼스가 인류의 역사에서 차축시대를 규정한 것은 그 때 인간의 인식 지평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는 것이다.
차축시대는 기원전 800에서 200년 사이에 이루어진 인류의 정신적 과정을 의미하는데
이 시기에 오늘날 보편적 진리라 일컬어지는 것들이 응축되어 드러났는데 희랍, 중동, 중국에서 나온 성인들의 정신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중
국의 공자와 노자, 묵자, 장자, 열자, 인도의 우파니샤드 철학과 붓다, 이란의 짜라투스트라, 팔레스틴의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제2이사야,
희랍의 호머시인과 파르네니테스,,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이 바로 그들이다.
 
야스퍼스의 분석에 의하면 보편적 진리가 그들 안에서 구체화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 자기심중에서 진리가 구체적으로 체득될 때 그 진리는 영원성을 갖고 우리 심중에 살아 활동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한 찰나에 몸으로 얻은 진리는 우리네 삶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그 영원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