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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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기본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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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15-04-2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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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기본 태도

 명상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본 태도들이 필요하다. 첫째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Non-judging) 명상을 하다보면 우린 계속 판단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우린 살아가면서 자신이 경험한 것에 의해 끊임없이 판단하며 살아간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우리는 그것을 분류하는 습성이 있다. 이건 좋은 것이고 저건 나쁜 것이거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립적인 것으로 분류한다. 중립으로 판단한 것은 판단을 보류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이렇듯 우리는  삶에서 아주 빠르고 기계적으로 의식을 분류하고 판단하는 습관들이 있다. 이는 객관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이렇듯 우리 안에서 자동으로 판단이 이루어지는 자동 판단 체계는 점점 우리 마음속에서 어떤 틀로 형성되어 버린다. 다시 말해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비슷한 판단을 내리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동판단체계 때문에 우리는 사람, 상황, 사건에 대해 편견과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자동적인 판단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는 끊임없이 어떤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가 있을 수 없다.

명상을 할 때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걸려 넘어지는지 인지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명상을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을 때 우린 명상에 있어 한 단계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명상이 잘 되어가는 사람은 없다. 오래 명상한 사람도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명상수행에 있어 중요한 것은 생각, 감정이 올라올 때 거기에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이 올라올 때 생각을 억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의 뇌는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까지 생각의 꼬리를 잡고 계속 생각하도록 우릴 유도한다.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알아채는 태도가 중요하다. 알아챈 후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야 한다.

 호흡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내 몸과 마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주지해 본다. 호흡을 관찰하다보면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다. 생각도 떠오르고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별 효과도 없는 것 같게 느껴질 때도 있다. 잘 안 되는 것 같고, 잘 할 수도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생각이고 판단일 뿐이다. 명상이 잘 되었다고 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하는 것 모두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어떤 판단도 하지 말고 그저 호흡에 마음을 두라.  생각을 쫓아내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생각에 더 깊이 말려들어가게 된다. 이렇듯 판단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이다.

 둘째는 patience. 곧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다. 어떤 사물이 변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물을 끓이는 데에도 얼리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물며 명상을 몇 번 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내가 변화될 수 있겠는가? 애벌레가 나비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도 명상을 통해 변화되기 위해 인내할 필요가 있다. 매미가 성충이 되는데 7년이 걸린다고 한다. 번데기 상태로 나무에 붙어 엄청나게 힘든 작업을 한 후에야 비로소 성충으로 탈바꿈한다. 이 때 빨리 매미가 되고 싶다고 인위적으로 껍질을 벗겨낸다면 매미로 탄생해보지도 못한 체 생을 마감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명상을 통해 무엇인가를 빨리 변화되고자 조급해 하지 말자. 매미가 번데기의 껍질을 서서히 벗겨내듯이 우리도 자신의 거짓자아를 벗겨내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셋째는 Beginner’s mind 곧 초심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린이들은 어떤 상황이 오든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경험해온 것들에 비추어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명상을 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지만 안 될 때도 있다. 안 될 때에 우리는 왜 지난번에는 잘 되었는데 이번에는 안 되지? 하며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런 판단을 하면 명상은 더 어려워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판단을 보류하고 처음 명상 시 지녔던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신뢰심trust을 가져야 한다. 현대인들 중 자기 자신에 대해 신뢰심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안 돼, 나는 너무 생각이 많고 인내심도 부족하고 등등의 이유를 들면서 처음부터 자신은 명상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것만큼 명상에 방해되는 것은 없다.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하여 모든 사람들은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고타마 싯타르타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은 자라는 의미의 붓다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는 점도 이를 의미한다. 이처럼 불교의 명상은 모든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기에 깨달음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불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도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당신의 모습Imago Dei로 창조하셨다고 본다.  유교도 하늘의 성품 곧 천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힌두교의 우파니샤드에서는 대우주와 소우주는 하나임을 깨닫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궁극적으로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러기에 대부분의 종교명상은 인간에 대한 강한 신뢰로부터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명상을 통해 깨달음에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다섯째, 명상은 애쓰지 않는 것(Non-striving)이다. 무슨 말인가. 명상은 무엇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데 있다. 요즘 정신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명상치료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때 환자들에게 가장 먼저 주의시키는 것은 명상을 통해 병을 나아야지 하는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고혈압 환자가 명상을 통해 고혈압을 고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명상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신 치료자는 성공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한 결과 양자는 정비례하지 않음이 밝혀졌다. 물론 최소한의 것은 필요하다. 내가 필요로 하는 어느 수준까지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갖는 것은 행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행복이 결코 세상이 말하는 것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명상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 조급해 해서는 안 된다. 허둥대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온전히 집중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현재의 충실함이 모여져셔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 즉, 현재의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수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수용이란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내가 왜 이 모양이지 하며, 자신의 현상태를 못 마땅해하는 게 아니라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말기암 환자들은 대게 처음에는 자신의 진단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가 나중에서야 자신의 상태를 수용하게 된다고 한다. 극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나에게 주어졌을때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면 훨씬 가볍게 살 수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있는 사실을 거부하거나 거부하려고 할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생각, 마음, 감정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처럼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많이 쓰면 정작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사라지고 만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상황에 의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면 치유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내 안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우리는 모두 상처의 종류는 다르지만 마음에 상처를 갖고 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전제할 것은 다름아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데 있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그 상황을 부정하고 거부한다면 치유하기는 어렵다. 나는 과연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일곱째는 let it go. 그냥 놓아주는 것이다. 인도에서 원숭이를 잡는 방법 하나를 소개하겠다. 원숭이는 야자나무 열매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원숭이를 잡기 위해 코코넛 안을 비우고 거기에 원숭이의 손 하나 들어 갈 정도의 구멍을 낸 다음 그 안에 야자열매를 넣은 후 원숭이가 지나가는 곳에 그것을 두고 지켜본다. 조금 지나면 원숭이가 그 옆을 지나가다 코코넛 안에 자신의 손을 그 안에 넣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안에 있는 야자열매를 잡고 있으면 자신의 손을 구멍에서 뺄 수가 없다. 그래서 한참 실강이를 할 때 원숭이를 잡으면 된다고 한다. 원숭이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우리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을 놓지 않을 때 우리는 원숭이와 같은 꼴이 되고 만다. 판단이 일어나면 판단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채고 그 판단을 내려놓자. 우리는 잠잘 때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어떤 사건이나 생각들이 계속 자신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을 때 우리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다. 감정은 생각에 영향을 주고 그 생각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또 행동은 다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으로 인해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의 삶 안에서 감정, 생각, 행동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동 판단체계이다. 우리는 보통 자동적으로 판단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생각은 아주 빨리 일어나고 그 생각에 따라 감정 역시 급속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과 동시에 감정이 생긴다. 이 상황과 그 전의 상황이 전혀 연계가 없는데도 우리는 자신이 경험해 온 것들을 지금 처하고 있는 상황에 작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내가 생각을 바꾸면 감정과 행동도 바뀌고 감정이 바뀌면 생각과 행동도 바뀐다. 또 행동을 바꾸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바뀔 수 있다. 이것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닌 감정들, 분노, 두려움, 슬픔, 부끄러움(수치심), 사랑, 행복과 같은 감정들은 생각과 뒤얽혀서 행동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인지하는 것은 나의 행동을 인지할 수 있는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무의식 안에 저장되어 있는 많은 씨앗들을 어떤 상황을 만나면 즉시 올라온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30년 뒤에도 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유사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나의 생각과 나의 감정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착각한다. 사실이 아닌 것을 나는 사실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그 상황을 만나면 내 행동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고 내 감정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관계를 가질 때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는 주어를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이렇게 느끼고 있어요 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럴 때 상대와 나 사이에 사이가 생기는데 이렇게 사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201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