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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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명상

<法集別行錄節要私記>에 나타난 지눌의 悟와 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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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10-12-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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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2. 논문(한국불교)

<法集別行錄節要私記>에 나타난 지눌의 悟와 修


  들어가는 말


  지눌이 한국불교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무게는 그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과 한국불교에 면면히 내려오는 수행전통이 입증해 준다. 그만큼 그가 한국불교계에 미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눌에 관해 연구되어온 많은 논문들이 객관주의적 인식론에 입각한 연구들로서 지눌의 문제의식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만듯한 느낌을 준다.


  사실 칠팔백년의 역사적 간격을 지닌 지누르이 사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런 작업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우리가 과거 역사적 인물의 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그의 사상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시대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데에서 의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필자는 주관과 객관을 엄격히 분리하여 텍스트 자체만을 분석하려는 객관주의적 인식론과 연구태도를 지양하고 해석학적 방법을 통해 지눌의 사상에 접근하고자 한다.


  지눌의 사상에 접근하기 위해 필자가 택한 자료는 그의 <法集別行錄節要私記>이다. <절요>를 택한 이유는 이 저서가 그의 삶이 마감할 즈음에 쓴 만년의 작품으로, 완숙한 그의 사상을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또한 이 작품은 그의 사상적 근저가 되어준 종밀의 <法集別行錄>을 절요했기 때문에 종밀과 지눌의 사상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는 것도 필자가 <절요>를 택한 이유이다.


  필자는 우선 지눌이 지닌 문제의식이 정확히 무엇이고 그가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풀어가려 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그의 사상의 정수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悟와 修와 관련하여 지눌의 문제의식과 이에 대한 그의 해법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사상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또한 <절요>에 드러난 종밀의 사상과 비교해 봄으로써 어떤 점에서 지눌이 종밀의 사상을 수용했고, 또 어떤 점에서 독창적인 사상을 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양자의 비교 작업은 종밀이 중국불교사에서 교학불교의 몰락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한데 비해, 지눌사상은 한국에서 꽃피우게 된 원인을 발견하는데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1. 지눌의 시대적 상황 및 문제의식


  우리가 지닌 문제의식은 우리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공을 떠나선 형성될 수 없다. 따라서 지눌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보기에 앞서 지눌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눌이 살았던 시기는 전 고려사를 통해서 극도의 변란과 불안의 시대라 할 수 있는 고려 의종 12년(1158)부터 희종 6년(1210)까지다. 예종까지의 융성기를 지나 고려를 변란의 와종으로 몰아넣기 시작한 인종조의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정중부와 무신의 난 등 무신들 간의 권력다툼으로 어지럽던 상황에서 지눌은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현실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교는 왕실과 결탁하여 정치적으로 왕실옹호의 정권쟁탈전에 개입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부의 축적으로 극도로 타락하고 세속화되어 갔다. 불교의식만 행하고 있는 궁정의 모습, 이권만을 노리는 도시화된 불교, 민간에는 기복적인 불교, 미신화되고 부패된 모습이 당시 불교의 양상이다. 정치적 와중에 휩쓸리면서 승려의 기강이 해이되어 正法과 멀어진 것이 지눌 당시 고려불교가 안고 있는 외적인 문제라면 불교 내적으로는 禪과 敎가 대립 갈등하고 있었다.


敎外別傳, 不立文字, 直知人心, 見性成佛의 宗旨를 가진 禪은 신라 말에 전래되어 고려 초까지 9산선문을 형성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不立文字를 내세우는 禪은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敎佛敎와 마찰을 일으키게 되고 대각국사 의천이 시도한 화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禪敎 간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따라서 당시 고려불교가 직면한 시대적 과업은 禪敎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正法을 구현하는 일이었다.


  지눌은 이런 시대적 상황 하에서 당시 승려의 과거제도인 승과에 합격했지만, 출세의 길에 들어서기보다 당시 부패된 불교상을 바로 세우려는 마음으로 수행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한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한데는 당시 불교의 부패상의 주원인이 승려들의 나태한 수행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보건대 교학자들은 權敎의 말에 걸리어 진실과 허망을 따로따로 집착함으로써 스스로 물러날 마음을 내며 혹은 입으로 事事無? 을 말하지만 관행을 닦지 않으며 제 마음이 깨달아 들어가는 비밀한 법이 있음을 믿지 않고 참선하는 이들의 견성성불한다는 말을 들으면 곧 말을 떠난 頓敎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면서 그 가운데 뚜렷이 깨달은 본 마음의 不變, 隨緣과 性. 相. 體. 用 과 안락, 부귀과 모든 부처와 같다는 뜻을 알지 못하니 어찌 그들을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지눌이 그 당시의 敎學者들이 敎에 능통하다고 자만하여 진실된 자기마음을 깨치려는 공부는 하지 않고 자기의 敎學만 고집하려는 시대적 상황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지눌은 禪學者들이 착실히 수행하지 않고 禪學者라는 이름만 내세우고 스스로 높은 경지의 根機가 있다고 過信한 나머지 교만함을 드러내어 참된 공부를 하지 않는 경향도 함께 비판하고 있다.


  “내가 보건데 禪學者들은 계층을 밟지 않고 바로 부처의 지위에 오르는 뛰어난 근기만 알고 깨달은 뒤에 처음으로 十信의 지위에 들어간다는 이 별행록의 글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習氣의 일고 사라지는 것은 알지 못하고 법의 교만이 마음에 가득하여 하는 말마다 분수에 넘쳐 도에 지나친다.”


  이와 같이 고려 중기의 격심한 사회적 변동 및 자신이 몸담았던 당시 승가의 제반문제들을 바라보면서 지눌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자신의 수행행각의 화두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지눌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이 바로 종밀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고려 중기의 격심한 사회적 변동 및 자신이 몸담았던 당시 승가의 제반문제들을 바라보면서 지눌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자신의 수행행각의 화두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지눌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이 바로 종밀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宗密(780~841, 圭峰)이 활동한 시기의 전후에는 則天武后(690~704재위)의 정변과 安史의 亂(755)이 있어 기존의 중앙집권적 지배체제가 이완되는 국변을 맞이함으로써 불교 역시 중대한 변혁기를 맞는 시기이다. 즉천무후의 승불정책으로 중국불교는 敎學불교를 중심으로 이론적 발전의 꽃을 피웠지만 安史의 亂과 더불어 무종의 폐불사건으로 인해 전환기를 맞이한다.


즉 무종이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고 국가재정을 증대시키기 위해 불교의 재정적 기반을 몰수하자, 재정적 기반과 인적 기반을 상실하고 사찰마저 빼앗긴 불교는 존망의 위기에 봉착한다. 이와 같이 중앙에서 발전하던 교학불교는 그 이후로 명맥이 완전히 끊겨 버린데 반해, 禪은 지방의 산 중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유지하였으며 큰 규모의 경제 기반이 필요없었기 때문에 중앙의 거대한 정치적 사건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종밀은 이처럼 화엄종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선불교운동이 세력을 떨치는 시기에 활동한 것이다.


  敎宗의 세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당시 불교사상의 근저를 이루고 있었고 또 새롭게 일어난 禪宗도 당시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와 같이 敎宗과 禪宗 간에 대립과 갈등이 있던 종밀의 시대적 상황이 지눌의 그것과 맞물림으로써 양자의 문제의식 역시 유사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즉 敎는 사변적인 이론 추구에만 매달려 불교의 참된 가르침을 도외시하고, 禪은 禪대로 수행의 노력을 내팽개쳐 두고 善惡을 무시하는 태도로 치닫는 禪敎의 대립 상황을 타개하려 했다는 점에서 양자는 같은 문제의식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종밀과 지눌의 문제의식이 지닌 유사성은 지눌이 종밀사상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지눌은 종밀사상에서 가장 크게 영향 받은 점은 어떤 점인가? 필자는 그것이 바로 하택종의 知개념이라고 본다.

 
 2. 지눌의 靈知개념


  (1) 禪敎一致와 知


  앞서 우리는 종밀의 문제의식이 ‘禪敎 간의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고 禪敎일치를 이룰 것인가’에 있음을 살펴 보았다. 종밀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이론적 근거를 하택신회의 知개념에서 찾는다. <節要>에서 종밀은 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택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성인들은 모든 法이 꿈과 같다고 다 같이 얘기한다. 그러므로 망념들은 본래 고요하고 티끌과 같은 세계는 본래 공하다. 이 공적한 마음은 靈知가 있어 어둡지 않다. 이 공적한 마음이 곧 전에 보리달마에 의하여 전해진 깨끗한 마음이다. ?하거나 깨닫거나 마음은 본래 스스로 안다. 이 앎은 조건에 따라 생기지도 않으며 외적인 경계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는다. 迷하면 번뇌가 있으나 앎은 번뇌가 아니며 깨달을 때는 신통한 변화가 있으나 앎은 神?이 아니다. 그렇지만 知라는 한 글자는 모든 묘함의 근원이다.”


  종밀은 <都序>에서 “당시의 선사들은 신회가 知를 말했지만 일찍이 달마는 知를 말하지 않았고 心을 말했을 뿐이라는 점을 들어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당시 선사들의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종밀은 신회가 知를 들고 나온 것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달마가 불교를 전래할 당시에는 중국인들은 문자에 얽매였기 때문에 마음의 본질 자체를 언표한 개념인 知라는 말을 직접 쓴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오해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보리달마는 묵묵한 벽관을 통하여 이름(마음)으로만 가르침을 전달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진리를 직접 스스로 깨닫게 하였지 말로써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6조 혜능 이후 신회의 시기에 와서 맹목적인 以心傳心의 묵수로 인해 禪의 근본적인 가르침이 왜곡되고 상실될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래서 신회는 선의 전통을 지키려고 마음의 본질, ‘선의 근원’이라는 의미를 보다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知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즉 禪의 진리가 세상에서 끊어질까봐 두려워 드디어 “知라는 한 글자는 모든 묘함의 문이다(知之一字衆妙之門)”이라는 말로서 以心傳心의 전통을 깰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종밀은 달마이래 선조에서 내려온 깨달음의 세계 즉 궁극적 진리에 대한 표현방법인 遮詮만을 고집한다면 교학과 만날 길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종밀은 遮詮만으로는 완전하게 진리의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므로 表詮을 겸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가 본질 자체를 의미할 수 있는 개념은 表詮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하택신회의 ‘知’이다. 종밀에 따르면 신회의 공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종전의 無爲, 無相 등과 같은 부정적인 언사들을 넘어서서 心의 體를 知라는 한 마디로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는데 있다. 마치 물의 體가 그 濕性에 있는 것처럼 心의 體는 그 知에 있다는 것이다.


  종밀은 자신의 시대도 신회 당시처럼 禪의 정신과 부처의 가르침이 혼란스럽게 분열되어 있고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왜곡된 부처의 뜻과 사상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신회의 知개념을 사용하여 心의 體에 대한 명시적인 진술을 시도한 것이다.


  知라는 것은 眞心의 불변성 중의 한 측면이다. 즉 眞心은 신령하고 고요한(空寂) 측면뿐 아니라 신령스러운 앎(靈知)의 측면이 있는데 바로 하택종에서는 靈知의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같이 眞心에 空寂한 면 뿐 아니라 靈知한 면이 있을 때, 이 眞心인 體에 즉하여 드러나는 현상세계는 眞心의 體를 떠나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眞心의 體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知를 體가 지닌 用의 측면으로 본다면 이러한 體의 활동성으로 인해 발현된 생사의 세계는 다름 아닌 진여의 세계 그 자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知를 본체의 작용성으로 설명할 때, 화엄의 性起사상과 만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화엄에서 말하는 性起는 相이 相을 서로 서로 의지하면서 일으킨다는 연기의 개념과 구별되어 性 그 자체가 相을 일으킨다는 이론이다. 즉 相이 相이 되게 하는 性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관점에 근거한 이론이다. 현상세계인 相은 진여의 세계인 性의 발현이라는 性起사상은 바로 知로서 生死의 세계를 설명하려는 종밀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즉 知로서 현상 세계를 설명한 선종사상과 性起사상으로 현상세계를 설명한 교종의 화엄이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종밀은 본체의 작용성인 知의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禪과 敎가 만날 수 있는 교량을 마련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종밀은 知를 기준으로 禪과 郊를 등급별로 각각 세 가지로 유형화하고 이들 유형들을 서로 대응시키면서 禪과 敎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종밀은 禪의 直顯心性宗과 敎의 顯示眞心卽性敎를 최고의 경지에 놓고 양자가 동일하다는 禪敎일치론을 펼친다. 여기서 그가 양자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교학불교의 분류기준인 眞心과 眞性이 禪家의 분류기준인 知와 같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 가르침에서는 참된 마음의 본성으로 오염되었거나 청정한 모든 존재에 대해 모두 버리거나 모두 받아들인다. ......영묘한 知가 곧 마음의 본성임을 직접 가리킨다.”


  이상에서 우리는 종밀이 知개념을 강조한 것은 바로 그것을 통해 하택종을 중심으로 한선교일치를 시도하려는 거의 의도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종밀은 전적으로 하택신회의 견해를 따랐으나 지눌은 일단 신회를 知解宗師이며 혜능의 正嫡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지눌은 禪역사의 후기과정에서 하택종이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하택신회가 知解宗師로 비판받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눌이 그 당시 이미 명성이 거의 사라져 버린 신회의 사상을 선종 4종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절요>에서 지눌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하택신회는 지적 이해를 하는 宗師이다. 비록 조계의 적자는 못되나 그의 깨달음과 이해가 고명하며 그의 결택함이 요연하다. 종밀은 그의 뜻을 이어받았다. 따라서 이 錄에 그것을 펴고 밝히니 활연히 볼 수 있다. 지금 敎로 인하여 마음을 깨닫는 자들을 위하여 그 번거로운 말들을 빼고 그 강요만을 뽑아서 관행의 거울로 삼노라”


  지눌이 신회사상을 수용한 것은 하택의 깨달음과 이해가 고명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종밀이 중시했던 시회의 知개념을 말한다. 앞서 우리는 지눌이 禪敎대립의 갈등상황과 당시 禪師들의 수행태도를 문제삼았음을 살펴 보았다. 지눌은 知를 통해 자신의 문제의식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지눌이 知로서 禪敎一致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 점은 종밀의 사상을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지눌의 禪敎일치사상은 단순히 종밀의 사상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깨달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눌의 선교일치에 대한 깨달음은 이통현의 <華嚴論>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지눌은 중생의 번뇌심 중에 이미 如來智가 갖추어 있다는 <화엄경>의 구절에서 ‘自性이 곧 부처’라는 禪宗의 깨달음과 완전히 부합된 것을 발견하고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와 같이 禪師인 그가 敎宗의 경전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 지눌로 하여금 禪敎一致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해 준 것이다. “어떻게 禪과 敎가 하나임을 말할 수 있을까”라는 그의 문제의식이 <화엄경>을 접하면서 禪敎의 세계가 하나임을 관통하게 된 것이다. 그는 화엄교의에서의 不動智佛이 禪門의 卽心卽佛의 뜻과 같을 뿐 아니라, 不動智佛을 자각하는 것이 곧 禪門의 돈오견성법과 같음도 발견했다. 즉 그는 ‘根本無明이 諸佛의 不動智’라는 미음에 바탕을 둔 十信, 十位, 十地의 수행을 거쳐서 佛位에 오른다는 <화엄론> 사상에서 圓頓門으로써의 화엄교문을 발견했으며, 이것이 圓頓門으로써의 禪門과 일치함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각을 기초로 하여 지눌이 세운 것이 바로 <圓頓信解門>이다. 우리는 圓頓信解門에서 지눌이 화엄교의를 禪의 圓頓門으로 회통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원돈신해문은 화엄사상을 선에 수용함으로써 禪敎대립을 지양하려는 지눌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지눌은 敎學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화엄경> 안에서 禪門과 일치될 수 있는 화엄의 ???을 발견함으로써 그의 문제의식이면서 동시에 불교의 심각한 문제였던 禪敎대립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2) 홍주종비판과 知


  하택종을 중심으로 한 종밀의 禪敎一致論은 당대 禪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홍주종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하택종의 사상적 배경을 지닌 종밀은 홍주종 사상의 결함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았다. 종밀은 홍주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洪州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며 손가락을 퉁기고 눈을 껌벅이는 등의 모든 행동이 다 불성의 작용으로서 다시 별다른 작용이 없다. 그리고 탐욕과 분노와 愚癡로서 선악을 짓고 苦樂의 갚음을 받는 것도 다 불성이니, 마치 밀가루로 갖가지 음식을 만들 때 그 음식이 모두 밀가루인 것과 같으니라.”


  홍주종도 생사의 세계는 실체가 없는 미혹한 것이기에 결국 드러나는 것은 진여의 세계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은 하택종과 같다. 그러나 종밀이 볼 때 홍주종이 말한대로 모든 事를 불성의 작용이라고 본다면 貧瞋마저도 불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위험이 있다. 종밀은 이러한 홍주종이 지닌 위험은 自性用과 隨綠用을 구별하지 못한데서 온 것이라고 본다.


  종밀은 마니주를 예로 들어 홍주종을 비판하고 있다. 마니주 비유의 핵심은 이 마니주가 깨끗할 뿐 아니라 맑기도 하다(즉 眞心의 體가 寂할 뿐 아니라 知하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 맑음의 면이 있기 때문에 그 구슬은 밖의 대상들을 접할 때 여러 색상을 취하여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밀은 마니주가 지닌 깨끗함과 맑음(寂과 知)의 측면을 自性의 體와 用의 관계로 해석한다. 즉 寂이 自性體라면, 知는 自性用이라는 것이다. 종밀은 마니주의 비유를 통해 홍주종이 眞心의 작용성인 知를 모르기 때문에 모든 事를 佛性의 작용이라 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佛性을 직접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일한 홍주종과 하택종이, 차이가 나는 것은 현상과 본질에 대한 양자의 입장 차이에서 유래한다고 종밀은 말한다. 홍주종에서는 드러난 현상 자체 역시 本性 곧 佛性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하택종에서는 현상에서 현상을 일어나게 하는 작용능력만을 추출하여 그 작용능력만이 本性이라고 본다.


  이렇게 볼 때 홍주종에서는 평상심이 곧 道라고 생각하는 단번의 인식의 전환이 관건이 되고 특별한 수행이 필요없이 평상심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반면에 하택종을 계승한 종밀은 작용능력 즉 自性用인 知만이 본질이라고 하여 밝게 비추는 능력인 知를 깨닫고 밝게 비추는 능력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종밀은 홍주종의 지나치게 단순한 불성이론을 배격하고, 하택신회의 知를 통해 홍주종의 無修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홍주는 항상 말하기를 ‘貧瞋과 자선이 모두 불성이니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젖게 하는 성질이 항상 변함없음만을 보고, 배를 건네기도 하고 전복시키기도 하는 功過가 현격하게 다름을 모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宗은 돈오문에는 비록 가까우나 꼭 부합하지는 않고 점수문과는 완전히 어긋난다.”


  종밀은 홍주종에 대해서 “이 종은 頓悟門에는 비록 가까우나 적절치 못하고 漸修門에는 온전히 어겼다”라고 비판하였다. 즉 홍주종을 돈오문 측에서 보면 조금 볼 만한 것이 있으나 있지는 않고, 점수문 쪽으로는 전연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주종의 흐름을 따른 대혜종고를 중시한 지눌은 이 종밀의 비판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수정하여서 실제로 종밀은 홍주종에 대해 褩하거나 贊할 마음이 없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지눌이 종밀의 홍주종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 비판한 것은 전적인 비판이라기 보다는 그 후학자들이 홍주의 가르침에 집착하지 않도록 일단 破析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종밀선사는 馬祖의 설법이 바로 心性을 나타내어 二利의 行門에 대한 좋은 방편이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가 홍주종이) 비록 가까우나 적절치 못하다고 말한 것은 대개 학자들이 그 말만을 인정하여 貧瞋의 用에 걸려서 공하고 고요한 영지(寂知)를 깨닫지 못할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종밀이 홍주종을 비판한 것은 후대의 학자가 馬祖의 말만을 보고 자못 그것이 眞如의 用일 뿐이라 생각하며 寂知의 體를 깨닫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써 馬祖 자신을 비판한 것은 아니라고 지눌은 해석하고 있다. 결국 지눌의 입장은 하택의 입장에서 바른 이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그리고 난 후에 홍주종의 종지를 보아 符節이 합하듯이 한다면, 取捨나 贊褩의 마음은 내지 않게 되리라는 회통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택종과 홍주종을 회통하고자 하면서도 지눌이 홍주종에서 경계하고자 한 점은 자칫하면 홍주종 사상이 無修行으로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즉 홍주종이 말한대로 모든 事가 불성의 작용이라면 애당초 수행이란 필요없는 것이며 수행에 도움이 되는 事와 그렇지 못한 事 사이의 구별도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끊임없는 수행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지눌로서는 이 양자를 명확히 구별지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지눌은 이 양자를 확실히 구분지워주는 하택종 사상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지눌이 하택종의 靈知를 강조한 것은 수행함에 있어 먼저 올바른 깨우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지눌의 수행문은 先悟後修인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지눌의 수행론인 돈오점수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3. 지눌의 돈오점수론


  (1) 頓悟의 내용


  지눌은 수행자들이 깨달음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행 방법으로 ‘頓悟漸修’를 제시한다. 지눌의 돈오점수론은 <節要>에서 차지하고 있는 양적 비율도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중국의 禪門 4종을 분석하고 있는 부분도 돈오점수를 주장한 하택종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절요>의 대부분은 돈오점수론 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돈오점수론이 지눌사상의 핵심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눌은 “解悟의 경지가 없다면 어찌 참된 닦음이라 하겠는가”라고 하여 깨달음 전의 닦음은 참된 닦음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점수론을 살피기에 앞서 전제가 되는 돈오에 대해서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눌은 頓悟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돈오란 영원한 과거로부터 미혹하여 四大를 오인하여 몸이라 하고 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이러한 것을 통털어 나라고 하다가 우연히 善友를 만나 위에서 말한 不燮,隨綠, 性, 相, 用의 뜻을 듣고 갑자기 영명한 知見이 바로 자신의 眞心이고 마음은 본래부터 고요하여 性과 相이 없는 것이 바로 法身며 신심이 둘이 아닌 것이 바로 眞我로서 諸佛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갑자기 깨닫기 때문에 敦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눌은 우리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원래 번뇌가 없고 본래부터 無淚智性을 갖추었으므로 이 마음이 佛과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단박 깨닫는 것을 頓悟라고 한다. 앞서 우리는 眞心의 空寂靈知한 측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결국 돈오라는 것은 空寂靈知한 眞心의 본체성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돈오가 지눌의 수행론에 필요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지눌은 北宗비판을 통해서 돈오가 전제되지 않은 수행은 참된 수행일 수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北宗)은 다만 인연에 의하여 더러움과 깨끗함의 일어나는 모양과 사생의 흐름을 배반하고 習氣를 등지는 문이라, 그리하여 망령된 생각이 본래 없고 마음의 성품이 본래 깨끗한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깨달음이 이미 철저하지 못한지라 그 수행인들 어찌 참되다 하겠는가.”


  그럼 지눌이 말한 돈오가 전제된 수행이란 어떤 것일까? 이 물음을 통해 우리는 지눌의 수행론의 핵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2) 漸修의 내용

 
 1) 澄觀과 宗密의 頓漸觀 비교


  지눌은 징관과 종밀의 頓漸觀을 수용하여 돈오점수론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눌의 점수에 대해 살피기에 앞서 지눌이 본 징관과 종밀의 頓漸觀을 비교해 보기로 한다. 지눌은 징관의 돈오점수와 종밀의 돈오점수가 이름은 같으나, 그 뜻은 완전히 다르다고 본다. 지눌은 양자의 돈오점수를 다음과 같이 대조시켜 설명하고 있다.


  “청량은 깨달음을 修에 종속시킴으로써 漸門을 세웠고, 규봉은 修을 깨달음에 종속시킴으로써 頓門을 세웠다.”


  이와 같이 징관은 修에, 종밀은 悟에 주안점을 두는 것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지눌은 이 양자가 서로를 방해한다고 보지 않음으로써 양쪽을 회통하고자 한다. 그의 회통의 논리는 다음에 잘 드러난다.


  “만약 깨달음이 철저한 깨달음이라면 어찌 漸修에 걸려 넘어지겠으며 닦음이 참된 닦음이라면 어찌 頓悟를 떠나겠는가?”


  즉 지눌은 眞悟, 眞修라면 修나 悟의 어느 쪽에 주안점을 두더라도 양자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지눌은 청량이 頓宗의 돈오의 이름을 취해서 漸修을 세웠다고 해서 그것이 점점 닦아서 功이 익은 돈오가 아니며, 범부의 根機에서 나온 돈오도 아님을 밝히고 있다. 즉 지눌은 청량이 말한 解悟가 거울에 밝은 성질이 있는 것과 같이 번뇌심 중에도 본래 覺性이 있음을 믿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징관이 비록 漸門을 세웠지만, 頓門의 돈오와 다르지 않음을 지눌은 말하고 있다. 또 종밀이  頓門의 漸修를 頓門에 소속시켰을 때의 漸修는 끊을 번뇌가 있다고 본 점수가 아닐 뿐만 아니라, 無念修를 취하되 無念修의 功이 단번에 완성될 수 없어서 말한 점수도 아니라고 본다. 그러면 종밀의 점수는 어떤 것인가?


  지눌은 종밀의 悟後修門에는 2가지 뜻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자기 마음이 본래 번뇌가 없다는 뜻에 의거하여 마음을 살피지도 않고, 밝히지도 않고 텅 비어 道에 합하여 임의로 通用하는 修로서 이것이 바로 一行三昧로서 청량이 세운 頓修와 같은 의미의 점수라고 말한다. 결국 지눌은 징관의 頓悟頓修의 頓修가 종밀이 세운 先悟後修의 2뜻 중에서 근본 無念修에 해당된다고 봄으로써 양자의 돈점관을 회통하고자 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根本三昧로 말미암아 空寂과 靈知를 임의로 運用하여 온갖 行이 거기서 일어나도록 하는 漸修를 말한다. 지눌은 후자가 <別行錄>에서 말한 점수라고 보고 이것은 圓漸이지 漸圓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후자의 漸修論을 기본으로 하여 자신의 점수론을 펼쳤다.


 2) 悟後修의 의미


  종밀은 돈오점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아이가 태어남에 곧 四肢와 六根을 갖췄으나 점점 자라야 志氣와 功用을 이룸과 같다” 여기서 우리는 종밀이 말한 점수가 번뇌를 점차 제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혜와 신통이 점점 자재하여 널리 중생을 이익케 하는 圓漸이요 圓修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종밀에게 있어 돈오가 미흑에서 (나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과 같음을) 단박 깨닫는 것이라면, 점수는 범부가 성인이 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것은 바로 돈오로 인해 수행이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즉 돈오는 존재의 본성에 대한 자각을 의미하지만, 나와 대상에 대한 참 모습을 단박 깨친 다음에는 그 체험적 전환의 실천화를 위해 점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눌도 몸과 마음이 모든 부처의 그것과 완전히 같음을 돈오했다 하더라도 4대 요소로 구성된 이 몸을 오랫동안 참 나로 잘못 생각해 온 습관을 쉽게 없앨 수가 없으므로 차츰 닦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마음의 본체는 본래 번뇌가 없지만 오랜 세월동안 ??를 나라고 망령되이 집착하였으므로 그 習氣가 버릇이 되어 갑자기 모두 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깨달음에 의하여 차츰 닦아(漸修) 그 버릇을 계속 버려서 버릴 것이 없는 데까지 이르면 부처를 이루게 된다.”


  즉 무시 무명에 의한 번뇌의 습기는 한꺼번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돈오한 뒤에 점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의문을 갖게 된다. 지눌이 말한대로 번뇌의 習氣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 점수라면 이는 習氣의 실체성을 인정한 것이 아닌가? 지눌 역시 이 문제를 자각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깨달은 자의 눈에도 아직 제거해야 할 더러움이 아직 실재한다는 말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지눌이 내리는 어떤 명확한 이론적 해결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분명 이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참된 돈오라면 그 다음에 점수라는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적 실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정직했던 수행자 지눌은 이론과 실존 간에 괴리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측면은 바로 객관적이고 이론적으로 지눌의 사상에 접근할 때 간과해 버리기 쉬운 면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론과 실존, 인식과 행위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라는 문제야말로 지눌의 수행론에 있어 핵심을 이루는 측면이라고 본다.


  지눌은 깨달음이 인간존재를 일시에 완전히 변화시키지는 못하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계속해서 괴로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성인과 범부, 부처와 중생, 열반과 생사 사이에 여전히 건너뛰기 어려운 심연이 가로놓여 있음을 지눌은 자신의 점수관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삶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부딪치는 정신적 유혹과 갈등이 순간의 깨달음으로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 것이 아마도 지눌이 홍주종보다는 점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하택종과 종밀의 사상을 禪수행의 지침으로 삼은 이유일 것이다. 현실생활에서 부딪치는 선악시비의 모든 일들을 단지 불성의 작용으로 간주하여 긍정해 버리는 홍주종의 위험에 대한 지눌의 비판을 이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바람은 그치나 물결은 여전히 솟는다.” 이것은 구체적 인간 상황에 대한 지눌의 인식이다. 그가 스스로를 牧牛子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소를 치는> 행위야말로 인식과 실천의 괴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행생활 안에서 인식과 존재 사이의 괴리를 체험한 지눌은 이론적으로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돈오점수를 주장했고, 깨달았다고 자만하여 수행을 게을리하는 선사들을 질책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철저한 현실주의자로서 솔직하게 자기의 실존 안에 일어나는 문제를 안고 고뇌했으며 그 문제를 풀기 위하여 평생 동안 쉬지 않고 진력한 수행자 지눌을 만나게 된다. 실로 그의 모든 저술과 가르침은 이러한 그의 고뇌와 그것을 해결하려는 진지한 그의 실천을 떠나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頓悟頓修주의자들은 지눌의 이런 측면을 간과하고 그의 사상이 지닌 이론적 모순에 초점을 맞추어 그를 비판한다. 참된 돈오라면 그 뒤에 오는 修 역시 頓修여야지 漸修이어선 안되며 만일 漸修라면 그 앞의 깨달음은 참된 깨침이 아니라는 것이 돈오돈수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그들의 시각은 선의 본질(essence)을 주장하는 敎義(돈오주의적 담론)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이 돈오돈수주의자들처럼 禪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선의 1차적 지배담론만을 고집할 때 지눌이 말한 점수는 당연히 거부된다. 그러나 지눌은 禪에 돈오라는 교의적인 면이 있음을 충분히 자각하면서도 인간의 실존적인 모순을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돈오 후 점수를 말한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점을 놓친다면 지눌의 사상을 잘못 왜곡되게 해석할 우려가 많다. (사실 많은 이들이 이 면을 간과했기 때문에 지눌사상을 오해하고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지눌이 왜 先頓悟 後漸修를 주장할 수밖에 없는지의 문제를 실존론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하지만 지눌이 돈오점수를 주장한 데에는 자신을 포함해서 인간에게는 돈오돈수설보다 돈오점수설이 실존론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그의 사상 이외에 당시 고려 중엽의 불교사회가 앓고 있던 병폐에 대한 원인을 찾고 이를 치유해 보고자 하는 그의 문제의식도 있었다. 앞에서 우리는 지눌 당시의 수행자들이 도닦는 것을 게을리 하거나 혹은 맹목적으로 坐禪만을 일삼거나 疑禪, 狂禪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여기서 우리는 종밀과 지눌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종밀은 하택종이 지닌 위험을 역사 안에서 경험하지 못했지만, 지눌은 그것을 체험한 것이다.


  “그전에는 먼저 앎의 글자를 말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아 비로소 진실을 증험하기를 기다려 친히 본체를 증득한 뒤에 인가했다. 그런데 요즘의 마음 닦는 사람은 먼저 靈知라는 말을 이해하고 분별하여 제 마음을 관찰하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顯傳門의 말로써 의심을 푸는 것이라 친히 그 본체를 증득하는 것이 아닌데 이떻게 이들을 마음을 깨닫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이와 같이 지눌은 종밀의 知개념이 지닌 위험을 알고 있었기에 返照의 功을 강조한 것이다. 즉 지눌은 이미 하택신회가 知解宗師임을 알았기 때문에 ?의 위험을 자각함으로써 사변적으로 돈오점수론을 말한 종밀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수행론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3) 점수의 내용


  그럼 실존적 자각 및 당시의 禪과 敎가 지닌 병폐에 대한 자각에서 나온 지눌의 수행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지니고 있나? 그의 수행론은 한 마디로 定과 慧를 함께 닦는 定慧雙修이다. 定은 마음의 공적한 본체를 말하며, 慧는 마음을 신령스럽게 하는 靈知작용을 말한다.


  “禪定을 내 마음의 본체요, 知慧는 내 마음의 작용이다. 禪定은 바로 지혜이기 때문에 본체가 작용을 떠나지 않고 지혜가 바로 禪定이기 때문에 작용이 본체를 떠나지 않는다. 그 두 가지가 다 막히면 그 두 가지는 모두 없어지고 그 두 가지가 다 비치면 그 두 가지는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本體와 作用은 서로 이루고 막히고 비침은 걸림이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 禪定과 지혜의 두 가지 문은 수행의 조건이며 부처와 조사의 큰 뜻이며...”


  이렇게 지눌은 선정과 지혜가 하나임을 역설함으로써 그 둘을 서로 떼어놓지 말고 함께 정진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본체와 작용으로써 表裏관계를 이룬 선정과 지혜는 하나이므로 禪定을 떠난 지혜는 영속키 어렵고, 지혜를 떠난 禪定은 맹목적이 되기 쉽다고 지눌은 말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지눌의 정혜쌍수론은 지눌에게 제1轉機를 일으키게 했던 <육조단경>에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다.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禪定과 지혜를 기본으로 삼는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실수로라도 결코 선정과 지혜가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선정과 지혜는 하나요, 둘이 아닌다. 선정 자체도 지혜의 본체요, 지혜 자체가 선정의 작용이다. 지혜가 있는 순간 선정은 지혜 속에 있고, 선정이 있는 순간 지혜는 선정 속에 있다. 선지식들아 이것은 선정과 지혜가 같음을 뜻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조심하여 선정에서 지혜가 생긴다거나 지혜에서 선정이 생긴다거나 선정과 지혜가 각자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지눌은 이러한 혜능조사의 설을 그대로 받아들여 定慧一體를 밝힌 것이다. 지눌은 定慧를 닦음에 있어 근기에 따라 隨相定慧와 自性定慧의 실천을 구분하고 있다. 隨相定慧의 定은 수행자가 그때 그때 직면하는 相과 事로서의 번뇌에 꾸준히 대처해 나가는 三昧이며 慧는 諸法 하나하나에 대하여 미혹됨이 없이 그 空을 觀하는 般若를 말한다. 지눌에 의하면 이런 隨相定慧의 修는 北宗이나 기타 방편적 가르침들에서 행하는 修의 길로서 결코  最上乘禪이 아니다. 반면에 自性定慧란 자신의 본성 안에 이미 내재하고 있는 定과 慧를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眞心의 體가 지니는 두 측면인 寂과 知를 가리킨다. 따라서 自性定慧를 닦는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心性속에 내재해 있는 것을 닦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곧 修아닌 修인 것이다.


  지눌에 의하면 修아닌 修로서의 自性定慧야말로 돈오 이후의 修로서 가장 바람직한 수행이다. 그러나 돈오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번뇌의 장애가 두터운 사람들이 있기에 지눌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漸門의 열등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따르는 隨相定慧를 방편적으로 빌려 닦기를 권하고 있다. 그러나 지눌이 말한 隨相定慧는 頓悟門을 모르고 순전히 漸修門만을 따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즉 隨相定慧도 自性定慧와 마찬가지로 돈오에 의한 변화 후의 점수라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지눌이 양자를 제시한 것은 자기 근기에 맞는 수행을 닦기를 권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지눌의 돈오점수론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는 여기서 종밀사상과 지눌 사상과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종밀의 돈오점수론은 이론정립에 그친데 반해, 지눌의 경우는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비롯하여 하택종의 知가 지닌 위험성 및 당시 수행자들의 문제점까지를 다 해결하고자 했던 그의 넓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수론의 해석 뿐 아니라 더욱 두드러진 종밀과의 차이는 역시 지눌의 간화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4. 看話禪


  지눌은 두 번째 覺의 체험인 <화엄경>을 보고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큰 法喜를 얻었고 李通玄의 <화엄론>에 의거하여 원돈관문에 들었을지라도 情見을 버리지 못해 가슴 한복판이 무엇인가 걸려 원수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지눌은 이러한 자신의 체험을 통해 ‘뗏목을 버리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지리산 上無住庵에서 <大慧普覺禪師語錄>을 읽다가 다음 대목에 이르게 된다.


  “禪定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으며 날마다 객관과 상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먼저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이나 날마다 객관과 상응하는 곳이나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버리고 참구하지도 말아야 한다. 만일 갑자기 눈이 열리면 비로소 그것이 집안 일임을 알 것이다.”


  지눌은 여기서 깨달음을 얻어 술회하기를 “나는 거기서 그윽히 깨치게 되어 저절로 물건이 가슴에 걸리지 않고 원수도 한 자리에 있지 않아 당장에 편안하고 즐거워졌다”고 비문을 전한다. 이 上無住庵에서의 깨달음은 지눌의 사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으니 이것이 바로 대혜선사가 제창한 간화선을 중심으로 한 徑截門-지름길로 바로 꺾어 들어가는 문이다.


  “말에 의해서만 이해하고 몸을 굴리는 길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온종일 관찰하여도 갈수록 知解의 속박을 받아 쉴 때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즘 수좌들의 문하에 말을 떠나 깨달아 들어감으로써 知解를 아주 버리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적어 보는 것이다. 이것은 종밀이 숭상한 바는 아니지만 여러 조사와 선지식들이 徑截의 方便으로써 학인들을 지시할 때에 쓰던 言句들을 간단히 인용하여 이 책 뒤에 붙여 요즘 참선하는 뛰어난 이들로 하여금 몸을 빼어나가는 한 가닥의 활로로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눌은 대혜선사의 간화선이 불교의 수행과 證入에 방해가 되는 知解病을 타파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보고 <대혜어록>을 통해 깨닫게 된 체험을 중심으로 간화선 사상을 펼치게 된 것이다. 결국 경절문은 앞서본 禪定과 지혜의 문을 넘어선 것으로 지눌은 이를 ‘無念合道門’(無念으로 道와 하나가 되는 문)이라 불렀다.


  “無心으로 道와 하나가 된 사람은 定이나 慧에 얽매이지 않는다. 왜 그런가? 定을 공부하는 사람은 理에 맞추어 산란한 마음을 제어하므로 인연을 잊으려는 노력을 하며, 慧를 공부하는 사람은 법을 택하여 功을 觀하기 때문에 번뇌를 씻는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곧바로 無心을 깨달아 어디를 가나 걸림이 없는 사람은 장애가 없는 해탈의 지혜가 나타나므로 한 티끌이나 한 생각이 밖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또 별다른 일이 아닐 것이니, 어찌 헛되이 애씀이 있겠는가?”


  우리는 이미 돈오에 뒤따르는 수행 형태는 이상적으로 無念修임을 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돈오에 의해 자신의 본성으로 자각된 自性定慧를 닦는 修 아닌 修 임을 보았다. 그러나 지눌은 이러한 자성정혜보다도 無念合道門을 더 높은 것으로 생각한 듯 하다.


  “自性定慧조차도 의미 작용의 자취에 걸리는데 하물며 번뇌를 떠나는 문이 어떻게 이것[無念合道門]에 미칠 수 있겠는가?”


  無念合道가 自性定慧의 닦음보다도 더 높은 경지라는 것을 지눌은 위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눌에 따르면 자성정혜는 여전히 ‘의미작용의 자취’를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無念合道의 경지에서는 구태여 어떤 수행의 방법을 논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지눌은 완전한 깨달음에 들어가는 길이 自性定慧까지도 넘어서는 無念合道의 경지에서 비로소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지눌은 돈오점수보다 경절문을 더 강조한 것인가? 아니다. 지눌은 <節要>의 뒷부분에서 看話禪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그의 사상의 핵심은 역시 돈오점수이다. 다만 그가 徑截門을 따로 세운 것은 돈오점수 없이도 바로 경절문에 들어갈 최상근기 사람들과 같은 예외도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히 드물며 대부분의 사람은 돈오점수를 통해서 깨달음에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어떤 이는 이 경절문을 돈오점수의 체계 속에 넣어서 설명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보기보다는 돈오점수문을 넘어선 새로운 길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것은 지눌 자신이 無念合道야말로 徑截門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간화선은 돈오점수의 골격 내에서는 수용되기 어려운 독특한 수행이다. 우리는 지눌의 徑截門을 통해서 간화선을 몰랐던 종밀 간에 중요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간화선까지도 포괄한 지눌은 本分宗師로서 오늘날 한국불교계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나오는 말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지눌은 종밀에게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눌은 단순히 종밀사상을 답습한데 머문 것이 아니라 그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지눌의 비판적인 시각은 양자가 몸담았던 시공간의 차이를 염두에 둘 때 이해할 수 있다. 8세기 말, 9세기 초 중국(唐)에서 활동한 종밀은 중국역사 내에서 하택종이 홍주종에 밀려 중국사상계에서 유명무실해질 줄 몰랐을 것이다. 반면 12, 13세기 한국(高麗)에서 활동했던 지눌은 종밀과는 달리 홍주종이 역사적으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점은 종밀이 하택종을 가장 우위에 두고 홍주종과 그외 종파를 비판한 데 비해, 지눌은 禪의 차등적 분류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지눌은 禪이 이론적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종밀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 종밀이 知를 통하여 禪의 이론적 근거를 구축하려 한 점은 지눌에 와서 禪수행에 있어 교학적 禪이해를 중시하는 태도로 계승된다. 禪에 대한 종밀의 사변적인 태도는 중국에서 종밀이 계승한 하택종의 몰락이라는 결과를 초래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지눌은 역사 안에서 수행자들 간에 知를 알음알이로 잘못 알고 머리로 깨달은 후 마치 자신이 깨달은 양 자만에 빠지는 선서들의 수행자태를 보았다. 그래서 지눌은 이러한 知解炳을 극복할 수 있는 길로 看話禪을 세우게 된 것이다. 간화선은 종밀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지눌 수행론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가 세운 간화선은 단순한 이론적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눌자신이 깊은 수행을 통해 돈오점수 과정의 끝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간화선은 지눌에게 있어 ‘선의 완성’이다. 만일 이 점을 놓치고 지눌사상을 간화선으로만 해석하거나, 아니면 그의 간화선을 무시하고 돈오점수론이 그의 수행론의 전부인 양 본다면 지눌사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못된다. 필자가 볼 때 지눌사상의 핵심은 간화선에 있다기 보다는 보편적인 인간을 위한 수행론인 돈오점수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본다.


지눌은 종밀의 이론적 접근을 수용하면서도 수행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현재에 이르기까지 韓國禪의 주축이 된 것이다. 오늘날  韓國禪家에서는 根機에 상관없이 화두를 드는 간화선 일색이다. 이것은 지눌 사상을 제대로 이해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여 진다. 물론 지눌도 높은 근기의 사람은 바로 간화선으로 들어감이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았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드물며 대부분의 사람은 돈오점수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바람은 그쳤으나 물결은 여전히 치솟는구나”라는 그의 절규에서 우리는 참된 수행자의 모습을 만난다. 그토록 철저한 수행을 행했던 지눌도 이통현의 <華嚴論>을 통한 禪敎一致의 깨달음을 얻고 난 뒤 13여년이 지나서야 <대혜어록>을 통해 徑截門에 들어가게 되었다. 자칫 知解炳에 걸려 자기교만에 빠져서 닦음을 게을리 하기 쉬운 우리 모두는 지눌선사가 자기의 삶과 사상적 전개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준 메시지에 다시금 귀 기울여 들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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