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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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명상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는 것이 佛道의 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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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15-04-0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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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는 것이 佛道의 정수다
나는 초등학교 때 도덕 과목을 무척 싫어했다. 그건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라는 표현처럼 뻔히 아는 내용을 배운다는 게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덕에 대한 이런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나는 도덕관을 중심으로 한 유교보다 도덕을 초월한(?) 불교적 가르침에 더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제악막작 중선봉행’같은 뻔히 아는 듯한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 가르침인지를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도겐의 가르침을 접하기 전까지 불교는 내게 깨달음을 지향하는 가르침으로 여겨져 왔고 그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달성키 위해 마음닦음을 강조해온 종교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그런 데 도겐의 <정법안장 제악막작>을 접하면서 이런 내 생각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제악막작>에 白居易(白樂天)과 道林선사의 대화가 나온다. 백거이가 선사께 어떤 것이 佛法의 大義냐고 묻자 도림선사는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고 답한다. 이에 대해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아이들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자 道林선사는 “삼세 아이도 이를 말할 순 있으나 80세의 노인도 이를 행하기 어렵다”고 대응한다. 佛道에는 늦게 입문한 백거이는 도림선사로부터 뭔가 그럴듯한 가르침을 기대했으리라. 그런데 삼세아이도 아는 얘기를 하다니... 도겐은 두 사람의 대화를 언급하면서 ‘제악막작 중선봉행’은 세 살된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의미가 뭔지 잘 참구해야 하고 팔십된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道라는 의미 또한 잘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사실 악을 그만두고 선을 행한다는 것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 가르침대로 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마음  먹으면 선하게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공자도 “仁은 高遠한가. 내가 仁하려고 하자마자 곧 仁(의 대응)이 이른다.”(述而 30)고 말하지 않았던가.여기서 仁하려고 한다(我欲仁)는 것은 내가 나의 마음을 仁의 방향으로 돌릴 때 곧 인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도겐도 이와 유사하게 “한 티끌을 알며 온 법계를 알며 一法을 통하면 만법을 통할 수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제악막작 중선봉행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만법까지도 관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도겐이 이렇게 말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계속 그의 말에 귀 기울려 보자.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이야말로 석존을 포함하여 일곱 부처에 공통된 가르침이 담긴 게송이다.“ 도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게송은 일곱 부처만이 아니라 모든 부처의 공통된 가르침이며 前佛로부터 後佛에 이르기까지 전수되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도겐은 이 게송을 全身으로 들으라고 강조하고 있다.이 대목쯤 되면 왠지 이 가르침 안에 어떤 신비적이고 초월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 않나 하고 지레 넘겨짚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린 이 가르침의 참뜻으로부터 멀어지고 만다. 제악막작은 말 그대로 악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멀리하는 것을 말하며 중선봉행은 선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여기서 제악莫作과 중선奉行, 즉 악을 그만두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이 동전의 앞뒤면과 같다. 다시 말해 제악莫作하면 그것이 중선봉행으로 이어진다. 중선봉행에서 중선이란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한다는 의미이다. 도겐은 이것을 노새의 일이 아직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온다고 말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一善을 봉행하면 다른 선도 따라서 온다. 그것은 마치 자석이 철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빠르고 열풍보다도 강하게 말이다. 우리는 이 말을 믿을 수 있나? 믿지 못한다면 그건 무슨 연유에서일까?우리는 악을 행하고 선을 행함이 마치 본성적으로 그렇게 타고 난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도겐은 선과 악의 성품은 숙명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사람의 행위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래서 선을 행하면 선이 바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자석에 쇠가 모여드는 것처럼 다른 선들도 따라온다는 것이다.이처럼 한번 마음 먹고 선한 일을 하면 그것이 미치는 영향을 대단하다는 의미가 되겠다. 다시 말해 내가 한 작은 선한 몸짓 하나로 주변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심리학자인 다니엘 골만이 경험한 한 작은 사건이 생각난다. 그는 어느 날 하루가 막 끝날 때쯤 지하철을 내려 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계단 옆에 사람 하나가 쓰러져 있다는 것을 갑작스레 알게 되었다. 셔츠도 입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저 무심하게 그를 타넘고 자기 갈길을 갔다.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이 그를 타넘고 갔다. 그 때 나는 멈춰 서서 그 사람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보려 했다. 그가 멈춰 서자 다른 6명 정도의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쓰러진 사람이 히스패닉계이고,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며, 돈도 없이 굶주린 채 며칠간 거리를 헤매다가 결국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즉시 모인 사람중 누군가가 오렌지 주스를 그에게 가져다주었고 누군가는 핫도그를, 또 누군가는 지하철에 있는 경찰을 불러 주었다. 그 남자는 곧 기력을 되찾아 다시 걸을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은 곤경에 빠진 이를 '알아보는' 간단한 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작은 시선 하나, 작은 몸짓 하나가 죽어가는 한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아니 많은 사람의 마음을 일깨워 줄 수도 있다.중요한 건 우리가 사람의 본성이 선함을 믿는데 있다. 선함을 믿고 선을 실천하려 마음 먹을 때 선이 내게 다가온다. 이렇듯 내가 제악막작하고 중선봉행하려 하면 善은 내게 성큼 다가와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나의 행위가 주변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 지금 곧 이를 확인해 보지 않으려는가? (201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