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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松眞一의 禪思想(석사논문, 서강대대학원 종교학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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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久松眞一의 禪思想
(指導敎授 : 吉 熙 星)
차 례
머리말......................................1
제1장 久松眞一의 生涯......................6
1.‘信仰’에서‘哲學’으로..................6
2.‘哲學’에서 ‘禪’으로...................9
3.‘無相의 自己’에서 ‘F.A.S.禪’으로 .....13
제2장 久松眞一의 覺의 哲學................18
1. 第1期 ...............................20
1) 眞實在論..........................20
2) 人間性의 限界外의 宗敎............21
2. 第2期...............................27
1) 東洋的 無.........................27
2) 東洋的 無의 性格..................29
3. 第3期................................34
1) 能動的 無.........................34
2) 無相의 自己.......................36
3) F.A.S.禪..........................37
제3장. 覺의 宗敎 ............................41
1. 다섯가지 人間의 類型..................41
1) 理想主義的 人間像..................43
2) 虛無主義的 人間像..................46
3) 實存主義的 人間像..................48
4) 有神論的 人間像....................50
5) 禪的 人間像........................52
2.깨달음의 宗敎..........................55
1) 絶對二律背反........................55
2) 基本的 公案.........................58
3) 大疑團 .............................60
4) 絶對自由, 絶對平和..................63
제4장.그리스도교와의 對話에서 久松眞一의 禪이
지닌 意義...............................66
1. 久松眞一가 본 그리스도교...............66
1) 神律과 絶對自律.....................66
2) 수동적 사랑과 능동적 자비...........68
3) 예수와 붓다.........................70
2.久松眞一의 그리스도교 비판에 대한 瀧澤克己의
見解.....................................73
1)瀧澤克己의 임마누엘 신학..............73
① 瀧澤克己와 西田幾多朗철학과의 연관성.73
② 瀧澤克己의 임마누엘 신학.............75
③ 칼 바르트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瀧澤克己의
해석..................................77
④ 임마누엘 신학에서의 不可逆性..........80
2) 久松眞一의 그리스도교 비판에 대한
瀧澤克己의 見解.......................82
① 久松眞一에 대한 肯定的 評價 ..........82
② 久松眞一에 대한 批判 .................84
㉠ 眞佛의 二義性.......................84
㉡ 佛行의 二義性.......................86
맺음말........................................88
참고문헌.......................................92
감사와 회고의 글
그리스도교 세계관에 몸담고 살아가는 수도자로서 佛子들의 세계관을 접하면서 종교학에서 말하는 자신의 신앙과 거리를 둔 객관적인 입장에서 他宗敎를 이해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음을 이 논문을 쓰면서 체험케 되었습니다. 때로는 제 자신의 신앙과 관련된 실존적 번뇌와 갈등 속에서 불교의 세계관은 오히려 제 신앙-특히 神觀과 그리스도론에 있어-을 정화시키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久松眞一가 단순히 학문적 입장에서 자신의 禪思想을 펼치지 않았듯이 저에게 있어서도 이 논문은 제 자신의 실존적 문제와의 대결이었고 그 안에서 고뇌했던 수행과정의 일부였습니다.
미숙한 논문을 마치면서 ‘緣起’라는 불교의 진리에 또 한번 마음으로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작은 논문이 있기까지 많은 분들과의 因緣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無知한 제게 불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 주시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이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제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에 세심한 지도를 해 주신 길희성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종교학을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도움을 주시고 늘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때로 나태해지려는 제게 자극을 주신 김승혜 수녀님, 이 논문을 끝까지 읽어주시고 미처 생각치 못한 면에 대한 지적과 조언을 주신 서공석 신부님, 논문에 필요한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시고 자상한 관심을 보여 주셨던 변선환 목사님과 김승철 교수님, 양은용 교수님, 대원정사의 고명석 선생님 그리고 영문초록 작성에 도움을 주신 박재신씨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어려울 때 많은 힘이 되어 주었던 종교학과의 대학원 학우들, 그리고 제가 몸담고 있는 修道共同體 수녀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사랑이 없었다면 이 논문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끝으로 늘 제게 모든 것이 되어 주셨던 어머님과 먼저 가신 아버님 대전에 삼가 이 논문을 바칩니다.
1994 년 12 월
崔 賢 民
Abstract
It is difficult to define that Shin'ichi Hisamatsu who is a simply just a religious thinker or religious philosopher but his thought is based on the experience of awakening which he acquired at last through struggling with himself in deep distress contemplating life and death. His awakening was accomplished by realizing the limit of modern autonomous reason and also the doubt he had about his former religion, which stressed the external power of faith in Jodo Shinshu. He believed that beginning from the religious faith which can save us by depending on the ‘Wholly Other’ to the ‘Objective Knowledge Philosophy’ based on autonomous reason of modern human being, later one brings to the awakening of the Formless self. But he realized he could not solve the ‘Ultimate Antinomy’ through dualism of life-death and good-evil which encompasses his existence. He could not solve his problem with existence by using philosophy based on autonomous reason, but he was able to resolve this conflict with Zen. Hisamatsu's awakening by Zen is called ‘Formless Self’. After being enlighted he expressed his thoughts about existance as ‘Oriental Nothingness’ or ‘Active Nothingness’ but later he used the implicative words ‘Formless Self’. ‘Formless Self’ means not to be based on a certain existence except himself but to be aware of ‘Original self’. That is to say, it means the very ‘Wholly Self’ who never depends on God or Buddha.
He classified human beings into five types according to the degree of understanding ‘Absolute Antinomy’ and the method of overcoming it. They are the man of Idealism, Nihilism, Existentialism, Theism, and Awakening. Finally he proposed it was ‘Awakening’ that we should persue in these five types.
The awakening person overcomes Ultimate Antinomy which is included in human existence not by heteronomy but by ‘Absolute Autonomy’, and this means heteronomous autonomy which includes heteronomy. Hisamatsu presented the course of awakening by ‘Absolute Autonomy’, which is the Great Doubt Block, through ‘Fundamental Koan’, the method for overcoming Ultimate Negation. He said it was real Awakening to give up the self of life-death and to become the self without life-death through the Great Doubt Block.
A Protestant theologian Takizawa katsumi, who began Immanuel theology, appreciated that he had partly affirmative and partly negative opinions on Hisamatsu’s Awakening religion. His appreciation and issue came to open a new way to meet Modern Christianity and Buddhism.
Takizawa accepted Hisamatsu’s opinion, on the criticism of that it was idolatry for christianity to seek awakening outside of human existence. In other words, Takizawa thought that Hisamatsu’s standpoint the base of human existence has something to do with his opinion that all human beings have in their minds the ‘Original Fact of Immanuel’.
But Takizawa and Hisamatsu had contrary opinions on the issu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reality and human subject which states the difference between Irreversibility of Takizawa and Reversibility of Hisamatsu. Takizawa emphasized the prior existence of Immanuel and insisted on the Irreversibility of the distinguishing factors, because of the strict order between the Reality and human subject. On the contrary, Hisamatsu's standpoint considers the reversible relationship of the reality and awakening person. This difference of the two is the greatest dissimilarity between Christianity and Buddism. We cannot overlook the differences but we have to recognize the common feature of the two. What Christianity and Buddhism try to seek in common is that we have to recover the Original human being.
As Hisamatsu mentioned in F.A.S Zen, the ‘Original Self’ is completed not just by staying in the situation of awakening but by practicing mercy voluntarily. ‘Formless Self’ (智體悲用) has much to do with the existence of Jesus who not only recognized Immanuel but also practiced Absolute Love which even loving his enemy. So, the Original human being in both religions seeks the existence that practices mercy and love and also realizes the deep awakening of the Original Self. These are the ground of salvation for all human beings.
국문초록
히사마쯔는 단순한 종교사상가이거나 종교철학자가 아니다. 그의 사상은 생사(生死)의 깊은 고뇌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깨닫게 된 覺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그는 자신의 종교였던 정토진종(淨土眞宗)의 타력신앙(他力信仰)에 대한 회의와 근대 자율적 이성(自律的 理性)이 지닌 한계를 자각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절대타자(絶對他者)에게 의탁함으로써 구원이 가능하다는 종교적 신앙에서 ‘무상(無相)의 자기(自己)’라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근세 인간의 자율적 이성(自律的 理性)에 바탕을 둔 대상지적(對象知的) 철학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히사마쯔는 자율적 이성의 한계인 이원론적(二元論的) 사고로서는 자신의 존재근저에 있는 생사(生死)와 선악(善惡)이라는 (존재와 가치적 측면에서의) 절대이율배반(絶對二律背反)이 해결될 수 없음을 자각했다. 그는 자율적 이성에 입각한 철학을 통해 해결할 수 없었던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禪에 의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禪을 통한 히사마쯔의 깨달음은 ‘무상(無相)의 자기(自己)’이다. 물론 그가 ‘무상의 자기’라는 독자적인 용어를 사용하기 전에는 ‘동양적 無’나 ‘능동적 無’ 등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상의 자기’로서 표현했다. ‘무상의 자기’란 자기 외에 대상화된 존재에 근거하지 않고 ‘본래의 자기’에 눈뜨는 것(깨닫는 것), 즉 유상(有相)의 신이나 佛에 일체 의존하지 않는 절대자자(絶對自者)를 말한다.
히사마쯔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인 절대부정[絶對二律背反]의 인식여부와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따라 인간을 5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이상주의적 인간상, 허무주의적 인간상, 실존주의적 인간상, 유신론적 인간상, 깨달은 인간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 5가지 인간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인간상은 깨달은 인간상임을 제시했다.
히사마쯔가 말한 깨달은 인간인 ‘무상의 자기’는 인간 실존에 드리워진 절대이율배반을 타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대자율(絶對自律)’에 의해서 극복한다. 여기서 말하는 절대자율이란 타율적 자율 즉 타율을 포함한 자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절대자율을 통해 절대부정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히사마쯔는 기본적 공안(公案)을 통한 ‘대의단(大疑團)’이라는 깨달음의 과정을 제시한다. 대의단을 통해 생사적(生死的) 자기가 지양되고 무생사적(無生死的) 자기가 되는 것이 바로 그가 말한 깨달음인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자인 다끼자와 가쯔미(瀧澤克己)는 자신의 임마누엘 신학을 바탕으로 히사마쯔의 覺의 종교에 대해서 일면은 긍정하고 일면은 비판하는 평가를 내렸다. 다끼자와가 내린 평가와 문제제기는 현대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만남에 있어 새로운 장(場)을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다끼자와는 히사마쯔의 그리스도교 비판에서 그리스도교가 인간 자체 밖에서 깨달음의 근거를 찾음은 우상숭배라고 한 그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즉 다끼자와는 자신의 임마누엘 신학에서 말한 ‘임마누엘 원사실(原事實)’이라는 실재(實在)가 모든 인간 내에 공통으로 주어져 있다는 사실과 히사마쯔가 인간의 자기 성립의 근거를 인간 자체 안에 있다고 본 점이 일맥상통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양자(兩者)는 실재와 인간 주체와의 관계에서 서로 상반되는 견해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실재와 인간 주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른 다끼자와의 불가역성(不可逆性)과 히사마쯔의 가역성(可逆性)의 차이인 것이다. 다끼자와는 임마누엘의 선재성(先在性)을 강조함으로써 실재 자체와 인간주체 간에 엄격한 순서가 있으므로 양자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불가역성을 주장한다. 반면 히사마쯔는 실재와 각자(覺者)를 가역적인 관계로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양자의 차이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에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차이점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 양자 사이에 공통점이 있음도 인식해야만 한다.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바는 본래의 인간을 되찾고자 함에 있다. 히사마쯔는 ‘본연의 자기’가 단순히 覺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비를 베푸는 행위를 통해 완성됨을 F.A.S.禪을 통해서 말한다. 이러한 지체비용(智體悲用)의 존재인 무상(無相)의 자기는 다끼자와가 임마누엘 신학에서 말한 예수의 존재와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예수 역시 임마누엘을 자각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원수까지 사랑하는 절대적 사랑을 실천한 이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양종교가 추구하는 본래의 인간은 자기 안에 내재된 본연의 자기에 대한 깊은 자각을 실현함으로써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존재이며 이는 모든 인간에게도 열려져 있는 구원의 장(場)인 것이다.
머리말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동양에 묻혀 있던 선(禪)이 이제 더 이상 동양 문 화권에 머무르지 않고 서구의 영적생활에도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서구의 정신문화와 동양의 정신문화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종교적, 사상적 만남과 교류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하게 된 것은 일본의 선사상가(禪思想家)들이다.
명치(明治)유신 이래 일본은 급격한 서구 근대화의 물결 속에 서양근대의 정신 세계에 주류적 역할을 해 온 근대 과학사상과 함께 허무주의를 접하게 되었다. 근대의 과학적 사유는 인간의 마음까지도 포함하여 일체의 것을 철저히 대상화해서 분석하고자 함으로써 인간마저도 기계론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인간까지도 포함하여-을 근대과학의 자연법칙에 의해 파악하고자 한 과학적 사고는 목적론적 세계관의 붕괴를 가져왔고 이제 인간은 우주 안에서 목적을 상실한 존재가 됨으로써 정신적, 종교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삶의 무의미성과 허무성에 절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모든 경건한 허구를 거부하고 인간의 적나라한 실존적 부정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하느님 없이 실존을 견디어 내고자 한 서구의 허무주의는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근대서양의 허무주의는 근대화라는 소용돌이 속에 있는 일본인들 마음 안에도 깊은 공감을 주었다. 이런 정신적 상황 하에서 일본의 禪사상가들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영성’이 동양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즉 그들은 전통적인 유신론도 허무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선불교와 같은 동양의 영성에서 특히,동양적 無개념에서 발견한 것이다. 경도학파(京都學派)는 바로 禪이라는 독특한 동양의 종교체험에 입각하여 서구사상을 수용하고자 한 일본의 대표적인 禪사상학파이다.
경도학파는 명치(明治)유신 이래 일본 최고의 철학자로 추앙받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朗, 1870-1945)에 의해 선도(先導)되어 그의 제자인 니시타니 게이지(西谷啓治), 다께우치 요시노리(武內義範), 히사마쯔 신이찌(久松眞一),아베 마사오(하部正雄) 등의 학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가고 있다. 니시다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경도학파는 대승불교에 뿌리를 두면서 동양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서구 전통에 대한 개방을 통해 동양과 서양을 하나로 통합하는 사상적 노력을 보이고 있다.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히사마쯔 역시 니시다의 제자로서 선불교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선사상의 보편화에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와 불교 간의 교류에 새로운 자극을 준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히사마쯔의 모든 사상은 無에 대한 깊은 깨달음의 체험-히사마쯔는 이를 ‘무상(無相)의 자기(自己)’에 눈뜸이라고 말한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무상의 자기’라는 깨달음에 입각한 히사마쯔의 선사상은 서양의 근대종교와 철학사상에 대한 그의 비판적 자각 위에 전개되고 있다.
히사마쯔는 또한 자신의 종교율에 입각하여 그리스도교를 비판했는데 이는 그의 저서 「무신론」(無神論)에 잘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히사마쯔의 그리스도교 비판에 대해 일본 기독교 신학자인 다끼자와 가쯔미(瀧澤克己,1900-1990)의 견해는 주목해 볼 가치가 있다. 다끼자와는 자신의 저서 「佛敎とキイスト敎」(불교와 그리스도교)를 통해 히사마쯔가 본 그리스도교 비판에 대해 일면 긍정하고, 일면 부정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 이후로 이는 일본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 대화의 출발점이 되어 지금까지도 활발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히사마쯔의 생애 및 그 자신의 깨달음에 입각한 그의 覺의 철학 및 覺의 종교에 대해 살펴본 후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의 견해를 다끼자와와 연관지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제1장. 久松眞一의 생애
1.‘신앙’에서 ‘철학’으로
히사마쯔의 선사상(禪思想)은 바로 자신의 실존문제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의 실존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히사마쯔의 생애를 살펴봄은 그의 선사상을 이해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히사마쯔는 명치(明治)22년(1889년) 6월5일 독실한 정토진종(淨土眞宗) 신앙을 지닌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모와 양친은 모두 견고한 정토진종 신자였다. 그는 유년기에 이러한 가정의 종교적 분위기에서 영향받아 열심한 정토진종 신자였으며, 종교가가 되고 싶다는 염원을 지녀 승려를 지망해 경도(京都) 서본원사(西本願寺)의 불교대학에 들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구제(舊制)중학에 진급하여 자연과학적 지식을 습득함에 따라 종래의 신앙에 대한 비판적인 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염불을 통해서 사후(死後)에 극락왕생(極樂往生)을 구하는 신앙이 허망하게 여겨졌고 진종교의(眞宗敎義)에 대해 여러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염불이나 아미타불, 극락왕생이나 정토 등에 대한 여러 의문들을 진종성전(眞宗聖典)에서 해명해 보고자 했지만 의문은 점점 커지고 심화되어 중학 4년경에는 붕괴되지 않으리라 스스로 자부했던 금강(金剛)의 믿음이 붕괴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같은 정토진종적 신앙의 붕괴체험은 그 후에 그의 입장, 즉 ‘무상(無相)의 자기’나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선불교적 입장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히사마쯔는 이른바 이성적 회의를 거치지 않은 중세적인 신앙에 근거한 종교적 생활로부터 이성의 자율적 판단과 경험적 실증에 기초를 둔 근대적 인간의 비판적 생활에로 전환을 겪은 것이다. 그리하여 히사마쯔는 종교와 결별하고 철학에 뜻을 두게 되었으며 니시다 기따로(西田幾多郞)를 흠모한 나머지 경도대학(京都大學)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니시다는 히사마쯔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준 두 사람(西田幾多郞,池上湖山)중 하나였다.
히사마쯔에게 있어 니시다의 철학은 단순한 지식이나 대상적 사변이 아니라, 구극적인 앎과 삶이 일체불이(一體不二)라는 것을 보여 주었으며 이는 그가 갈망하고 추구하고자 했던 철학임을 통감했다.
2.‘철학’에서‘선‘(禪)으로
히사마쯔는 이성적 자각에 의해 종교적 신앙이 붕괴된 후에도 죄로부터의 해방을 절실히 갈망했고 자기 주체성의 문제를 철학을 통해 풀어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히사마쯔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자신이 공부해 온 철학에 의해서는 도저히 자기의 주체적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이성에 절망하게 되었다. 물론 그는 니시다의 주체지적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니시다의 사상으로는 자신의 존재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함을 자각한 것이다.
유신론적 종교와 결별하고, 대상지적(對象知的) 이성철학의 한계를 자각한 히사마쯔는 대의단(大疑團)을 통해 참된 자기를 깨닫고자 선(禪)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1915년(大正4년) 7월 경도제국대학을 졸업한 히사마쯔는 니시다의 지도를 받아서 당시의 묘심사(妙心寺) 승당의 노스승(老師家) 이께우에(池上湖山)에게서 참선을 함으로써 대의단(大疑團)의 체험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이 대의단을 통해 ‘무상의 자기’를 자각한 것이다. 히사마쯔는 자신의 覺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나는 무언가 어떤 개별적인 문제나 보편적이고 전체적인 문제를 대상적으로 이해하거나, 그것을 대의(大疑)로서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전일적(全一的)으로 하나의 대의단(大疑團)으로 변한 것이다...바로 그 때 이 하나의 대의단이 홀연히 안으로부터 와해되고 녹아 버려서 ... 노스승[老師]와 나 사이에는 털끝만치의 차이도 없어지고 나는 무상(無相)이면서도 자재(自在)하는 참된 자기를 깨달은 동시에 노스승[老師]의 진면목(眞面目)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히사마쯔는 중세적인 신앙의 종교로부터 근세의 자율적인 이성에 근거한 대상지적(對象知的) 철학을 거쳐,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참된 자기 즉 무상(無相)의 자기를 각증(覺證)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무상의 자기’라는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역사와 인류의 입장에까지 확장시킨 ‘F.A.S.禪’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선(禪)으로 발전시켰다.
3.‘무상(無相)의 자기’에서 ‘F.A.S.禪’ 으로
1915년 인간 본래의 무상의 자기를 깨달은 히사마쯔는 자신이 재직중이던 경도대학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1944년 4월8일 경도대학 학도도장(學道道場)을 창립했다. 그가 이 도장을 창립한 것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진여(眞如)의 수연(隋緣)으로서 세계와 역사 안에 구현시키는 것이 자기의 생명 자체에 부과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제2차대전을 겪으면서 일부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민주주의를 구가(謳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중심주의 입장을 더욱 강하게 표방하게 되어 1951년 도장(道場) 내에 10명의 기초위원들이 포석암(抱石庵)에 모여 새로운 선언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의 서약(人類の 誓い)'이라는 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는 본래[本當]의 자기를 자각하고 깊은 자비심을 지닌 인간이 되어 각자의 사명에 따라 살면서 개인과 사회의 고통의 근원을 찾고, 역사의 발전을 향해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여 인종, 국가, 빈부 차별없이 모두 동포로서 손을 맞잡고 맹세하여 인류해방의 비원(悲願)을 완수하며 진실로써 행복한 세계를 건설할 것이다.”이다. 히사마쯔는 ‘인류의 서약’이 불교의 사홍서원을 구체적으로 현대화시킨 것으로 그 이상(理想)을 포함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히사마쯔는 ‘인류의 서약’을 ‘나의 종교이며 철학이다’라고 서술하였는데 1959년 1월 학도도장을 F.A.S.[F(Formless self), A(All mankind), S(Superhistorical histoy)]협회로 개칭(改稱)하고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히사마쯔는 F에 기초한 A.S적 활동(무상의 자기를 자각하고, 전인류의 입장으로 역사를 초월하며 역사를 창조하는 활동)을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에서부터 도인(道人) 각 사람과 협의한 뒤 ‘학도도장’을 ‘F.A.S.협회’라 개칭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이후 F.A.S.협회는 F만을 강조하고 A.S적 활동을 소홀히 한 전통선(禪)에 대한 비판 위에 서서 진실한 선(禪)은 F.A.S.禪임을 세계를 향해 선언하고 일관된 활동을 전개했다. 즉 F.A.S 禪은 ‘무상의 자기(F)를 깨달은 뒤, 그 바탕 위에서 전인류를 동포애의 입장에서 포용하고(A), 역사를 초월한 역사를 창조한다(S)’는 것이다.
F.A.S.운동은 달리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운동이라고도 불리우는데 히사마쯔가 구상한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의 골자는 다음 3가지의 ‘포스트모더니즘 선언’에서 볼 수 있다.
첫째, 포스트모더니스트 자각으로 근대에 의해 초래된 본질적 모순과 현실적 딜렘마로 인해 붕괴된 주체성을 F.A.S.의 覺철학에 기초하여 세운다. 이는 이성적 자율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근대이상주의가 지닌 모순과 인간의 실존적 근거에 있는 절대부정(절대모순)을 자각했지만 허무에 빠진 허무주의로부터 (F.A.S선을 통해)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둘째, 숙명적인 국가적 에고이즘 체제를 탈피해서 보편적인 일원적(一元的) 전인류의 주권을 창출하는 것이다. 국가의 주권을 전인류에 위양(委讓)한다는 것은 윤리, 정치, 경제, 문화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세째, 물질적, 정신적 자재(資財)를 국가 독점으로부터 해방시켜 전인류의 공재(共財)로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히사마쯔의 F.A.S.에 대한 깊은 자각과 확신은 ‘학도도장 강령’으로부터 ‘인류의 서약’을 거쳐 ‘포스트 모더니즘 선언’이라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F.A.S선은 초불초조(超佛超祖)의 인간으로서 인생을 살았던 히사마쯔의 삶의 결실이라 하겠다. 1980년 91세의 일기로 생을 마친 히사마쯔의 마지막 유영(遺詠)은 바로 이러한 그의 사상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다.
“내가 죽어도 인도(引導)나 추천(追薦),장례(葬禮)도 하지 말고,다비(茶毘)에서 뼈(骨)도 고르지 말며, 묘비는 벽락(碧落)에 세우고 비명(碑銘)은 F.A.S.라고 깊이 새겨라 .”
제3장. 覺의 종교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히사마쯔의 사상은 철학적인 면보다는 종교 색채가 더 강하게 풍김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사상이 단순한 철학적 사색에 머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사(生死)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연의 자기를 되찾고자 했던 히사마쯔의 깨달음의 세계는 철학의 경지를 넘어 하나의 종교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覺의 종교’라고 볼 수 있는 히사마쯔의 종교관을 통해 그가 종교적 입장에서 어떻게 인간을 이해했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다섯 가지 人間의 類型
히사마쯔는 인간의 類型을 물 속에 들어가서 수영하는 5가지 형태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그 첫번째 형태는 수영하는 방법을 모르고 들어가 파도를 타고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과 같이 낙관(樂觀)과 비관(悲觀)이 번갈아 일어나는 경우이다. 첫번째 유형의 인간은 비록 우리의 삶은 낙관(樂觀)과 비관(悲觀)이 반복되지만, 궁극적으로는 결코 비관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물 속에 가라앉지 않으리라는) 절대적인 낙관을 지니고 살아간다. 히사마쯔는 이렇듯 죽음에 이르리라는 것도 모르면서 무반성(無反省)적으로 자력을 망신(妄信)하며 낙천적인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상을 ‘이상주의적 인간상’이라고 본다.
즉 그에게 있어 첫번째 인간상은 절대사(絶對死)를 모르는 안이한 인간 절대주의 혹은 무비판적인 자력주의(自力主義)인 것이다. 그러나 수영을 하다보면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 떠오르는 것도 가라앉는 것도 불가능한 절대절망의 순간에 처할 때가 있다. 이와 같이 진퇴양난에 빠져 몰닉(沒溺)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절망의 공포에 전율하면서 완전히 허탈에 빠져 있는 상태를 히사마쯔는 두번째 인간상인 ‘허무주의적 인간상’으로 본다. 이러한 경우는 인간의 자력에 대해서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어떠한 긍정도 없는 절대부정적 허무주의이다. 세번째 인간상은‘실존주의적 인간상’으로서 허무주의적 인간처럼 몰닉(沒溺)이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깨닫지만 허무주의처럼 비관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처럼 무엇인가 삶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고자 하는 인간유형이다.
여기서는 이상주의와 같은 무비판적 긍정이 아니라 비판적 긍정이기는 하지만 절대부정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이와 같이 실존주의적 인간상은 진퇴양난에서 헤쳐나오고자 노력하나 도저히 자신의 힘만으로는 극복할 길이 없다. 인간의 노력으로 절대절망의 상태로부터 구출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대타력적 구제자에 일체를 의탁함으로써 죽음의 절망으로부터 구제되는 것이 히사마쯔가 말하는 ‘유신론적 인간상’이다.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구조되었기에 더 이상 가라앉으리라는 걱정은 완전히 해소된다.
그러나 이 때에는 구원자에게 완전히 의탁된 상태이므로 인간은 전적으로 무력(無力)한 존재이다. 즉 유신론적 인간상은 절대부정은 탈피했어도 의타적(依他的) 존재이므로 인간의 독립자율성을 상실한 절대타력주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사마쯔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상은 유신론적 인간상처럼 절대타자에 의존하여 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로부터 수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 자유자재로 수영하는 존재이다. 히사마쯔는 절망의 심연으로부터 타력의 도움없이 절대자력으로 독탈무의(獨脫無依)하게 파도 중에 떠서 스스로 수영하는 다섯번째 인간유형을 ‘깨달은 인간상’[禪的 人間像]이라고 부른다. 이는 비판적 절대자력주의로서 절대타력주의처럼 절대무력적(絶對無力的), 절대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유력적(絶對有力的), 절대능동적인 것이라고 한다.
히사마쯔는 휴머니스틱한 인간상의 맹목적인 낙관론을 끊고 허무주의적 인간상의 비관론을 버리고 유신론적인 의타적(依他的) 인간을 거쳐 절대자율적 깨달음의 인간상에 와서야 비로소 인간의 참된 존재방식에 이르렀다고 본 것이다.
이상의 다섯 인간유형에서 살펴 보았듯이 히사마쯔는 인간이 절대부정을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못하느냐, 그리고 절대부정을 인식한다면 이를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간을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5번째 인간상인 깨달은 인간상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참된 인간상임을 제시하였다.
그러면 깨친 인간인 ‘무상(無相)의 자기’라는 자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2. 깨달음의 종교
1) 절대이율배반(絶對二律背反)
히사마쯔에 의하면 ‘무상(無相)의 자기’라는 자각은 인간 실존의 모습인 절대이율배반으로부터 시작된다. 절대이율배반이란 허무주의적 인간이 자각하게 된 절대부정으로서, 인간이 어떻게 해도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히사마쯔는 존재적인 측면과 가치적인 측면에서 절대이율배반을 설명하고 있다.
존재적 측면에서의 절대이율배반이란 인간이 생사의 이원성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즉 인간의 실존적 차원에서 삶과 죽음은 필연적으로 상호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죽음은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삶의 다른 면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구출하고자 한다면 삶과 죽음으로부터 구출해야만 한다. 삶과 죽음의 실존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면 삶의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삶이 끊임없는 생사의 반복 속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존재 근저에 드리운 ‘생사(生死)의 이원성(二元性)’이 바로 히사마쯔가 말한 인간의 존재적 측면에서의 절대이율배반이다. 히사마쯔는 이러한 인간 실존적 딜렘마가 존재적 측면 뿐 아니라 가치적 측면에서도 발생한다고 본다.
히사마쯔는 구체적으로 가치적 측면에서의 절대이율배반의 예로써 ‘죄 그 자체’를 들고 있다. 히사마쯔는 죄에 대해서 말하기를
“인간들이 죄를 말할 때는 보통 도덕적인 의미로 생각한다. 이와 같이 도덕적인 견지에서 죄를 볼 때 이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도덕적인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죄를 완전히 극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개별적 죄는 극복할 수 있을지라도 죄 그 자체는 인간의 도덕적 노력을 통해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다.”
죄 그 자체는 결코 극복할 수 없으므로 히사마쯔는 이를 ‘도덕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