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씨튼연구원은 영성의 토착화와 종교간의 학문적 대화가 목적입니다.
『영성생활』 기고문

영성생활2002.봄 23호 (유불여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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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10-10-2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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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佛與佛-오로지 佛로서 佛과 함께


             



1. 신란(親鸞)과의 만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무래도 내가 불교와 인연을 갖게 된 어렴풋한 기억들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고 한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할머니는 출가를 생각하실 정도로 상당한 열성을 지니신 분이셨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불자가 아니셨지만 할머니 기일이 되면 가족과 데리고 사찰에 가서 할머니를 위해 기도드리곤 하셨던 기억이 있다. 아마 내가 불교에 관심을 지니게 된 것은 할머니의 영향이었을까? 살아생전에 뵌 적은 없었지만 내 안에 흐르는 피 속에 할머니의 종교적 심성의 잔재가 남아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그 후의 성장기 안에서는 불교와 특별한 인연은 없었던 것 같다.


그 후 수도자가 되어 종교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주어졌고 그 때 여러 타종교를 공부하면서 불교를 깊이 알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일어났다.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접한 것이 일본불교였다. 불교사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뒤에 발전한 것이 일본불교이기에 뒤에서부터 거슬러 불교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일본불교 중에서도 일본 중세 가마꾸라(鎌倉; 1185-1333)시대를 살았던 신란(親鸞, 1173-1262)을 배울 기회가 주어져 그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신란은 가마꾸라불교의 한 종파인 정토진종(淨土眞宗)을 창시한 자로  그의 사상이 지닌 독창성이라면 인간존재의 깊은 죄악성에 대한 자각이라 할 수 있다. 신란은 자신의 뿌리뽑을 수 없는 죄악성에 대한 자각을 86세 고령의 나이에 지은 우독비탄술회(愚禿悲嘆述懷)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는) 정토진종(淨土眞宗)에 귀의했건만

진실한 마음은 얻기 어렵고

허가부실(虛假不實)한 나에게는 청정(淸淨)한 마음이란 없구나.

겉으로는 현명하고 선하고 정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탐욕과 노여움과 거짓이 많으니

간사함이 가득 찼도다.

악한 성품은 실로 그치기 어려워

마음이 뱀과 전갈과 같다.

선을 닦는 것도 독에 섞여 잡스러우니

허가(虛假)의 행(行)이로구나.

무참무괴(無慙無愧)의 몸으로서

진실한 마음이 없지만

미타(彌陀)가 존귀한 이름을 회향(廻向)하신 즉

공덕(功德)이 시방(十方)에 가득하도다.

                『正像末 和讚』, 『全集』Ⅱ, 527쪽.


신란이 평생 자신의 죄악을 깊이 의식하며 살았다는 것은 그가 월후(越後)로 귀양갔을 때 스스로 자기의 姓으로 삼은 우독(愚禿)이라는 말에도 잘 드러난다. 그는 스스로를 “어리석은 더벅머리”라고 부름으로서 평생 자신이 범부(凡夫) 이상이 될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살고자 했던 것이다. 신란은 그 이름을 죽을 때까지 사용했다. 그것은 자신의 겸손을 세상에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번뇌구족(煩惱具足)의 범부이상이 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포기했다는 징표였고 그러기에 아미타불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신앙의 표현이기도 했다.


신란의 악에 대한 자각은 단순히 도덕적인 성찰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숙업(宿業)에 대한 자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교적으로 표현한다면 원죄에 대한 깊은 자각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자신의 죄악성을 깊이 통찰한 신란에게서 사도 바오로의 다음 고백을 들을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있는 죄입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로마7, 15-16, 18-20, 24.)


 그러나 신란의 죄악성에 대한 자각은 아미타불의 자비로운 본원(本願)의 세계라는 또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신란 자신은 자신의 힘으로는 번뇌구족의 범부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자각을 통해 그러한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미타불의 자비밖에 없음을 자각한 것이다. 신란이 자신을 악의 고리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길은 자기에게서는 찾을 수 없고 오직 아미타불의 자비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했음은 바오로가 자신을 죽음의 육체로부터 구해줄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고백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로마 7, 25참조) 


이와 같은 자신의 실존적 밑바닥에 대한 깊은 자각과 더불어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신란을 공부하면서 불교 내에 그리스도교적 해석이 가능한 이런 신앙인이 있다는 점에 놀라웠고 또 신란의 고백이 그 당시 나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것은 당시 나 자신도 수도생활을 해 가면서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나의 약함으로 인해 되풀이되는 죄, 그리고 공동체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들로 인해 어두움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상태가 신란이 지녔던 영적 상태와 매우 흡사하다고 느꼈기에 나는 신란에게서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란처럼 나자신의 죄악성과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하면서 그의 영적 여정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2. 신란의 가르침이 내포한 위험성


신란의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어떠한 악도 아미타불의 구원의 장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악한 자도 아미타불 구원에서 제외될 수 없다. 그러나 절대적 해방의 메시지 뒷면에는 어떤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란의 사상 안에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할 당위성의 문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악이 구원의 장애가 되지 않는다면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할 종교적 이유를 어떻게 요구할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신란 당시에도 그 자신의 공동체에서 반도덕적 성향을 지닌 자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아미타불의 절대구원만을 믿기만 하면 되지,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란은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당위성을 아미타불으로부터 거져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행위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일반신도들에게 설득력을 주지 못한 것이다. 


나는 신란을 통해 하느님의 절대적 구원의 신비를 나 자신의 존재적 죄악성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더 깊이 깨닫게 되었지만, 거기서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생각은 어차피 구원이 전적으로 하느님 손에 달렸다면, 그래서 모든 이가 신심(信心)을 갖기만 해서 구원된다고 한다면 굳이 이렇게 수도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나의 수도행(修道行)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3. 도겐선사와의 만남


그 후 나는 일본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겨 2년쯤 일본에 있으면서 도겐선사(道元禪師; 1200-1253)를 배울 기회를 얻게 되었다. 선사와의 만남은 내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준 계기가 되어 주었다. 앞서 내가 신란을 공부하면서 갖게 된 그의 한계와 나의 실존적 위기가 도겐선사와의 만남을 통해 그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도겐선사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 간 것은 아니고, 그리스도교와 불교 간의 대화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그 선두주자였던 교또학파(京都學派)를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교또학파는 서구에 선불교를 소개함으로 유명해진 스즈끼 다이세쯔(鈴木大拙)의 뒤를 이어서 선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학파이다. 그 학파에 관해 공부한지 1년쯤 지나면서 그들의 연구방법론으로 과연 두 종교 간의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까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교또학파가 접근하는 종교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방법론에 대한 회의였다.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세계는 결코 종교철학이나 인식론일 수 없으며 개념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을 넘어서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론으로는 양종교 간의 만남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자각한 것이다.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신앙을 “초월을 향한 인간의 보편적 자질”이라고 말한다. 즉 신앙은 정적(靜的)인 그 무엇이 아니라, 초월을 향해 역동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이 지닌 자질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바로 신앙이 지닌 이러한 역동성을 교또학파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들의 사상에서는 신앙을 몸으로 살아가는 자의 숨결을 느낄 수 없었고 그래서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느낌을 지닌 필자가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발견한 것은 한 선사(禪師) 곧 도겐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선사와의 만남은 단순히 언어의 세계, 학문의 세계를 통한 만남을 넘어서 그의 신앙, 그의 깨달음의 세계가 바로 나의 신앙, 나의 삶의 태도에 깊은 영향을 준 것이다. 필자는 그의 사상을 접하면서 그의 종교적 세계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가 지닌 초월을 향한 열정은『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 시공을 뛰어넘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필자가 그에게 이끌렸던 것은 그 당시 교또학파를 공부하면서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종교연구에 있어 종교철학적 접근방법의 한계와 윌프레드 켄트웰 스미스가 말한 종교의 물상화(物象化)의 극복을 통한 신앙의 회복을 도겐 안에서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겐은 종교의 근본적인 문제 즉 스미스가 말한 ‘신앙’을 일생의 화두로 삼았던 선사라 할 수 있다. 그의 신앙의 세계는 스미스가 지적했던 바로 그 초월의 세계에 자신의 전존재를 열어 두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신앙은 단순히 초월을 인식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초월의 세계에 자신의 전존재를 개방하는 것이며 그 초월을 몸으로 사는 데 있다. 앞서 나는 신란의 신앙에서 수도행(修道行)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 물음이 도겐선사에 와서 해결의 실마리를 보았던 것이다.


도겐은 출가한 뒤 당시 천태본각사상(天台本覺思想)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게 되었다. 천태본각사상은 본래부처에 대한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수행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즉 현실 그대로의 중생이 곧 부처인데 굳이 수행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도겐은 본각에 대한 믿음을 지니면서도 수행에 대한 실존적 동기부여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도겐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를 그리스도교에 적용시킨다면 그리스도교 역시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면 윤리적 실천이나 修道行은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 의미를 상실케 된다. 즉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면 우리가 세상 안에서 도덕적으로나 수도적 삶을 살아야 할 동기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는 바로 내가 신란을 공부하면서 수도행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문제의식, 그것이기도 했다. 도겐은 스승들에게 수행해야 할 당위성을 물어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대의단(大疑團)을 품고 입송(入宋)하여 거기서 여정(如淨)선사를 만나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도겐은 叢林의 기강이 혼란스러운 宋代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佛法의 大道를 위해 일생동안 자신을 투신했던 如淨을 통해서 釋尊(석존)으로부터 正傳(정전)되어온 佛法(불법)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수행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수행이 곧 깨달음(證)인 修證不二(수증불이)의 세계를 자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수행이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수행함 그 자체가 바로 깨달음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행과 깨달음이 둘이 아닌 修證不二(수증불이)인 것이다. 내가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함이나 수행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사는 것, 수행의 삶을 사는 것 그 자체가 곧 구원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구원은 내가 선업(善業)을 닦아서 그 결과로 주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거저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수도의 여정은 곧 구원의 은총을 받은 자로서의 삶인 것이다.


  이와같이 수도의 삶이란 도겐이 말한 修證不二(수증불이)의 삶이면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本證妙修(본증묘수)의 삶인 것이다. 本證妙修(본증묘수)란 옥에 티가 없음을 알면서도 더욱 닦아 옥이 빛을 더하게 하듯이(皓玉無瑕 琢磨增輝(호옥무하 탁마증휘) ) 本證(본증, 本覺과 같은 의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깨달음의 빛을 더하는 역동성으로 나아가는 妙修(묘수)의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도겐선사는 本證妙修(본증묘수)로서의 좌선이야말로 석존(釋尊)으로부터 가섭존자에게로, 그리고 28대를 거쳐 보리달마에게서 혜능, 여정을 통해 자신에게로 정전(正傳)되어온 불법(佛法)의 세계임을 누누히 강조한다. 도겐선사는 붓다가 했던 本證妙修(본증묘수)로서의 좌선의 의미를 깊이 깨달았고 이것이야말로 佛法(불법)의 진리임을 굳게 믿었던 것이다. 도겐의 저서 속에서 펼쳐지는 역동적 초월의 세계는 오로지 붓다를 모방하려는 그의 깊은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本證妙修(본증묘수)로서의 수행관은 좌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행위까지도 성화의 길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正法眼藏(정법안장)』에는 「洗面(세면)」, 「洗淨(세정)」권이 있다. 얼굴을 씻는 행위인 세면과 화장실을 사용하는 방법인 세정이라는 일상의 행위까지 도겐은 수행으로 본다. 다시 말해 도겐은 우리들이 일상에서 행하는 하나하나의 행위자체가 깨달음의 길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잘 것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洗面과 洗淨과 같은 일상행위까지도 깨달음의 행위로 승화시키고 있는 도겐의 영성은 비일상성 신비적 체험과 같은 깨달음이 아니라, 일상성에서 일상성에로 着地하는 세계인 것이다. 여기에 도겐의 修證觀(수증관)인 본증묘수의 위대함이 있다.


  그러나 도겐의 영성이 지닌 精髓(정수)는 그의 수증관의 독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철저하게 붓다를 모방하고자 했다는 점에 있다. 나는 도겐의 깨달음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내 자신의 정체성이 보다 분명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도겐이 붓다의 제자이듯이 나는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예수를 닮는 그 실천행으로 나는 수도소명을 받은 것이다. 시공을 뛰어넘고 종파(宗派)까지 초월하여 만난 도겐선사를 통해 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확인하며 살아가도록 재촉받았다. 도겐선사가 붓다를 닮는데 전생애를 걸었듯이 나도 예수를 닮는데 전생애를 건 예수의 제자임을....


신란에게 아미타불의 신앙이 있었다면, 도겐에게는 佛性(불성)에 대한 깊은 신앙이 있었다. 그러나 양자 간에는 차이가 있다. 신란에게는 번뇌구족인 중생으로서의 자신과 아미타불 간에는 건널 수 없는 괴리감이 있는 반면, 도겐의 영성 안에는 이러한 괴리감이 없다는 것이다. 도겐은 중생으로서 자신의 약함을 자각하지 못했을까? 아니, 줄곧 죄로 떨어지는 자신임을 알면서도 거기서 시선을 피하려고 한 것인가? 도겐은 중생인 자신을 외면했다기보다 깨달은 자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끊임없는 자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력적 힘으로 쟁취된 것이라기보다 불성(佛性)에 대한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믿음은 신란이 지닌 신앙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차이를 지니고 있다.


그럼 도겐이 말하고자 하는 불성(佛性)의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도겐은 불교사에서 전해 내려온 불성이해를 배격한다. 전통적 불성이해는 『열반경(涅槃經)』의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즉  ‘일체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를 중심으로 하여 ‘중생 안에 불성(佛性)이 있다’라고 해석해 왔다. 이는 불성의 내재성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 안에 불성이 잠재적으로 있기 때문에 우리도 수행을 닦으면 불(佛)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 온 것이다. 그러나 도겐은 ‘일체중생실유불성’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배격하고  ‘일체중생이 실유(悉有)이며 불성’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하고 있다.


중생은 불(佛)이 될 가능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중생이 곧 부처라는 것이다. 따라서 도겐에게 있어서 불성에 대한 신앙은 내가 중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처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신앙을 말한다. 나는 끊임없이 도겐에게 묻곤 했다. 그것은 너무 이상적인 것이 아닌가? 우리는 때로 넘어지고 쓰러져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조차 없는 시절을 보내곤 하지 않는가? 어떻게 그 순간에도 내가 부처로서 산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도겐은 그 때조차도 부처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도겐의 『정법안장(正法眼藏)』에 보면 「갈등(葛藤)」권이 있다. 갈등이라 함은 ‘덩굴풀이 얽혀져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갈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 얽히고 설켜 끝을 찾을 수 조차 없는 갈등 속에서 번민하며 지내는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도겐은 갈등을 번뇌라 하여 끊어 버려야 할 것으로 보지 않고, 덩굴이 덩굴풀을 감고 올라가듯이 갈등을 타고 올라가야 함을 가르친다. 도겐은 갈등을 잘라내기보다 갈등을 타고 올라가는 갈등의 전수야말로 불법의 전수라는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불(佛)에서 불(佛)에로, 조사(祖師)에서 조사(祖師)에로 전해내려온 불법의 정전(正傳)은 곧 갈등의 전수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갈등을 타고 가는 자가 바로 불(佛)이며, 갈등을 타며 살아가는 길이 불도(佛道)라는 것이다. 갈등을 잘라버리기 위해 애쓰는 자가 중생이라면, 갈등을 타고 올라가는 자는 불(佛)이다. ‘너희가 불도(佛道)를 걷고 싶으면 불(佛)로서 걸어라.’ 나는 도겐의 ‘갈등’에 대한 가르침에 접하면서 불(佛)로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길을 배운다. 모든 부처, 모든 조사들이 걸어갔고 또 전해내려온 그 불도(佛道)는 바로 갈등의 전수였고 갈등의 불법이며 갈등의 불도임을.....


우리는 도겐의 갈등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서도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불(佛)의 입장에 서 있는지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도겐이 어떻게 이토록 철저하게 불(佛)의 입장에 서서 살아갈 수 있었는지 그 의문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도겐의 『정법안장(正法眼藏)』 「유불여불(唯佛與佛)」권을 접하면서 한가닥 빛을 발견한 것이다. ‘유불여불 내능구진(唯佛與佛 乃能究盡)’은 『법화경(法華經)』「방편품(方便品)」의 일구(一句)인데 이는 “다만 불(佛)로서 불(佛)과 더불어 능히 구진(究盡)할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불법은 불(佛)로서만 깨달을 수 있지 범부로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겐은 말한다. “물고기가 아니면 물고기의 마음을 알 수 없고, 새가 아니면 새의 나는 흔적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물고기는 물고기끼리, 새는 새끼리 서로의 마음을 읽고 서로의 발자국을 알아본다는 것이다. 도겐은 이 도리가 불(佛)에도 있다고 말하면서 불(佛)의 눈에만 불의 발자국이 보인다는 것이다.  불만이 불의 발자국을 알아본다는 것은 도겐의『정법안장(正法眼藏)』「발보리심(發菩提心)」권에 나오는 ‘감응도교(感應道交)’라는 표현을 통해 잘 드러난다. 도겐은 보리심은 결코 자기 힘으로 인해 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다만 감응도교(感應道交) 즉 불(佛)과 자기가 서로 통하는 그 곳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 불(佛)과 감응하는 그 곳에 보리심이 발해지고 우리가 불(佛)로서 살아감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불여불(唯佛與佛)로서의 불도(佛道)인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도겐은 본래성불(本來成佛)이기 때문에 수행도, 선행도 필요치 않는 불을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佛)이기 때문에 수행과 선행을 행하며 살아가는 역설적 초월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후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45년간 수행하시고 가르치시며 불(佛)로서의 길을 걸어가셨다. 도겐은 스승인 부처님을 모방하여 제자인 자신도 그렇게 살고자 했던 것이며 이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도겐이 말한 유불여불의 의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도겐의 신앙의 세계를 살펴보았다. 그럼 도겐의 가르침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미사 때마다 사제로부터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축복의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사제가 거양성체를 할 때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말하면, 우리는 “아멘”이라고 응답한다. 그리고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모신다. 나도 작은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그리고 작은 그리스도로서 파견을 받는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남기신 말씀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 약속을 믿는 이상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작은 그리스도로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도겐이 말한 유불여불(唯佛與佛)의 삶과 일맥상통할 수 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시공을 초월하고 종파를 뛰어넘은 도겐선사와의 만남은 내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길을 더 깊이 자각하도록 재촉해 주었다. 도겐선사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스미스가 말한 신앙, 그 역동적 초월의 세계에서 진정한 종교간-불교와 그리스도교간-의 만남의 가능성을 조금 맛보았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