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글편집서언 52. 한국적 영성을 찾아서 16.09.28
- 다음글소와 함께 사는 법 - 영성생활 41호(2011 봄) 11.05.11
자본주의 스타일 (영성생활2013 봄-45호)
페이지 정보

본문
편집서언
최현민
요 근래 메스컴이나 사람들 대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힐링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힐링, 힐링하는 건 그만큼 우리가 치유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 아닐까? '아프다'는 얘기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힐링이라는 말 뒤에 어스름히 숨겨져있는 고통의 실체가 무언지 궁금해진다. 그건 고통의 실체를 알아야 제대로 된 힐링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해서다.
이번 호에서는 자본주의를 문제삼고 있다. 그건 바로 현대들이 말하는 힐링과 그 뒤의 고통이 자본주의와 뭔가 깊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 자본주의라는 게 뭔가? 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본주의는 딱히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개념이란다. 결국 자본주의라는 게 그리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 되겠다. 자본주의에 대응해오던 사회주의가 실패하면서 이제 자본주의는 다른 이데올로기와의 경쟁없이 이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그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우리네 삶은 점점 더 윤택해졌고 편리해졌다고. 바로 그 편리함과 안락함에 맛들여가면서 우리는 점점 더 편리해지고 안락해지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의 행복관이 되었다. 이렇듯 자본주의사회는 우리에게 행복해지기 위해서 돈이 더 필요하고 따라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정력을 쏟아 돈벌이에 나서도록 우리를 재촉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를 내몰고 있는 그 길목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끝없는 경쟁에 시달린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달려보지만 아무리 달려도결국 제 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스트레스와 고통에 시달리게 되니 결국 힐링, 힐링하는게 아닌가? 사실 누가 우리더러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거나 재촉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조금 멈추어서 우리의 시선을 우리 주변과 나 자신에게로 돌려 보자.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제시한 사탕발림과 같은 행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과 에너지를 쏟아버렸던가? 자신에게 이득되는 것에만 마음을 쓰고 살아오면서 실상 정말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안락함과 편리함'이라는 마약에 취해 점점 더 강력한 마약을 맞고자 하는 건 아닌가?
작년에 SBS에서 ‘최후의 제국’이라는 다큐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이 다큐시리즈의 제작진은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나선 국가들과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작은 섬 아누타를 찾아가 그곳의 원시적인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비교해 보여줬다. 그 중 17년 전, 미국인 여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와서 살게 된 파푸아뉴기니 상각부족의 빅맨인 넨의 고백이 마음에 남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지금 혼란스러워요. 제 부족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죠. 모든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 있었죠. 미국에서는 돈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어요. 돈이 없으면 미국에서의 인생이 없죠. 이곳은 모든 것이 돈이에요."
'돈에 의한, 돈을 위한, 돈의 나라'가 되어 버린 미국에서 살면서 빅맨 넨은 그 사회가 자신이 살았던 부족사회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데에서 오는 혼란과 당혹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듯 가난한 사람 없이 공존하며 살아온 우리는 이제 부자와 가난한 자의 비율이 1% 대 99%라는 엄청난 격차를 지닌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빅맨넨이 받은 그런 충격을 받고 있는가? 이러한 격차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말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는 과연 얼마나 되는 걸까? 그 1%에 해당되는 사람들도 과연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1% 대 99%라는 이 엄청난 격차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줄여갈 수 있을까?
나는 요 근래 몇 년간 생태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와 관련해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거나 강좌를 열어 왔다. 생태문제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는 자본주의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을만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지구온난화의 문제와 관련하여 온실가스배출량, 에너지 과소비, 교토의정서 등 생태위기의 현실은 자본주의 체계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가?
생태위기는 전지구적 현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고 그 중심에는 자본주의가 있다. 생태문제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그물망과 촘촘히 얼키고 설켜있음을 깨달아가면서 우리가 소박하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해서 생태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님도 알게 되었다. 이 사회의 구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고는 생태위기는 극복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절망감은 더 커져만 갔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버릴 수 없고 이 자본주의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 가지 않고는 생태위기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에서였다. 생태문제뿐 아니라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문제들이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메스컴과 신문지상을 통해 연일 전해지는 정치 경제 사회의 제반 문제들 속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는 민중의 신음과 고통 바로 그 저변에 자본주의가 있음을.... 본 호에서 다루고 있는 용산의 철거민들이나 쌍용차 노동자들, 정리해고자들,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의 신음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이로 인해 죽어가는 건 비난 그들만이 아니다. 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운명공동체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점들을 바라보면서도 뾰족이 그것을 다른 이데올로기로 대체할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하며 그럼 나는 어떻게 이 고장난 자본주의를 고쳐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본주의를 어떻게 리모델링할 수 있는가이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셀리 테일러가 제시한 '보살핌의 경제학'에서 하나의 빛을 발견한다. 그는 『보살핌』이라는 책에서 "사회적 지지를 제공하는 인간관계를 갖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어나는 생리적 신경내분비적 반응이 감소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하고 함께 더불어 협력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본주의 인간관에서는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고 보기에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다른 이와 협력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테일러는 인간 본성 안에는 보살핌의 본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경쟁심만을 부축이느라 우리는 자기 본성 안에 있는 이 보살핌이라는 본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체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지닌 이 보살핌의 본능이 활성화되도록 우리 스스로를 재촉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건 너를 위해서라기보다 우선 나 자신을 위해서다. 너를 보살필 때 우리자신이 활력을 되찾는다는 사실은 테일러만이 아니라 현대심리학과 경제학에서 밝혀진 바 있다. 너를 돌봄이 곧 나를 돌봄이라는 이 사실은 우리가 바로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말해주지 않는가. 에릭 링마가 말하듯이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공동체 의식을 통한 인간성 회복이다. 우리의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건 바로 너-자연까지를 포함해서-를 살리는 길이 곧 내가 살 길이고 우리 모두가 살 길임을 자각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