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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서언 52. 한국적 영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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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영성을 찾아서
최현민(영성생활편집인)
지난 51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한국적 영성을 찾아서’를 주제로 삼았다. 51호에서 오지섭 교수님은‘한국적 영성 찾기’를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한국적 특성은 고정된 실체일 수 없으며 유동적이고 진행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오랜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한국적인 것을 찾는 작업은 전통과 현재를 연결시키는 일이라 하겠다. 특히 서구문화 전통을 배경으로 한 그리스도교가 한국 토양에 이식된 상황에서 한국적 영성에 관한 논의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서구적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도 어언 230년이 흘렀다. 과연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들어온 후 우리 전통종교문화와 어떤 교류가 있었는가.‘토착화’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지만 그리스도교가 이 땅의 종교문화 속에 얼마나 토착화되었는지 미심쩍다.
외래문화가 들어와 고유한 그 전통 속에 뿌리를 내리려면 그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과연 한국 그리스도교는 우리의 종교문화 속으로 녹아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
한국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이신 심상태 신부님은 오랫동안 토착화 문제에 천착해오셨다. 최근에 서울 신학대학에서 <아시아 맥락에서 하느님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신부님이 하신 말씀은 내게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서구 그리스도교 신학적 틀 속에 있다. 한국 신학은 우리 문화 속에 면면히 흘러온 종교와 영성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은 한국적 토양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겠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우리네 삶의 자리에 뿌리내리지 못했다면, 우리의 실제적 삶, 곧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교적 가치관 아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현실을 지탱해가고 있는가?
매일 접하는 TV, 신문, 핸드폰 등의 매스 미디어의 소식들은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직결된 정보들이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논리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처럼 일상을 자본주의적 가치관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어떻게 우리 안에 자리할 수 있을까? 현실에 머물 곳이 없다면 내세에 대한 희망 정도에 그치고 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현실 가운데, 우리 삶의 중심축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자리 잡게 할 수 있을까?
이즈음에 나는 우리 선조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들의 삶을 지탱해온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리 선조들은 동아시아 종교전통(유불도)의 가르침 속에서 하늘(天)에 대한 외경심을 갖고 일상을 묵묵히 살아왔다. 그들의 일상 안에는 동아시아의 종교영성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이 영성 안에서 성찰했고 이를 후손인 우리에게 전수해주었다. 과연 우리는 전수받은 전통문화에 얼마만큼의 관심을 갖고 이를 자신의 신앙 속에서 되새김하며 영성적 통합을 위해 노력해왔던가.
나는 지금껏 그리스도신앙이 이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현실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온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것은 단순히 동아시아 종교영성을 지식으로 배움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 영성 속에 녹아든 삶의 지혜를 배우고 그것을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에 접목하는 일이다.
유가에서는 우리 마음 안에는 인심人心뿐 아니라 도심道心이 있다고 가르쳐왔다. 인심이 세상 것에 마음 쓰는 것이라면 도심은 우리의 본성에 마음 씀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은 우리의 욕망, 곧 인심을 끊임없이 자극해왔다. 온 마음이 인심에 가 있으면서 도심은 그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매몰된 채 수장되어 버렸다. 동아시아 종교 영성은 인심과 도심의 관계에 대해 깊은 성찰과 혜안을 전수해왔다.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래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마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참으로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현세적 욕망은 충족시키면 시킬수록 더욱 커져만 간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우릴 궁극적 행복에로 이끌어갈 수 없는 이유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니고 산다는 건 세상적인 것이 내게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이미 맛보았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이미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30년간 동양영성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동양영성에서 말하는 궁극적 행복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그것과 깊이 통교할 수 있음을 자각해왔다. 그것은 유불도 삼교 역시 참된 행복은 인간의 욕망을 비워냄을 통해 얻게 됨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영성에서 배운 깨달음은 내게 예수의 행복관이야말로 참된 행복관임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동양영성의 지혜가 예수님이 가르치신 삶의 지혜와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이 그러한 확신을 준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우리 현실 속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상대화할 수 있는 내적 힘이 길러져야 한다. 다시 말해 내 마음에서부터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상대화시킬 만큼 내공을 쌓을 필요가 있다.
어떻게 내공을 쌓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 전통에 면면히 이어져온 영성의 길에 맛들여가면서 우리 문화의 바탕을 이루어온 동아시아 종교영성을 조금씩 배워 접목시켜 나가는 길은 그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 안에서 한국적 영성을 뿌리내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