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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2009가을38호 편집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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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서언
최 현 민
샐리 멕페이그는 『기후변화와 신학의 재구성』에서 인간은 심각한 기후변화로 인한 대재앙의 가능성에 직면해 있음을 경고한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처한 심각한 생태위기 상황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녀는 결론에 가서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뭔가 구체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강조하기보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자’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그건 현실 안에서 느끼는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된 끝맺음이 아닌가 하는 불만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다시 정독하면서 ‘멕페이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년간 대학에서 가르친 한 신학자가 내린 ‘절망의 끝자락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는 결론은 그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그것만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것이라는 절박함이 숨겨져 있었다. 멕페이그는 14세기 영국 신비주의자인 노르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으로부터 희망의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노리치 줄리안은 자신이 본 환시 하나를 소개한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손바닥에 공처럼 둥글고 호두보다 크지 않은 것을 놓아주셨습니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것은 모든 피조물이란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작은 것이 갑자기 부숴져 버리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이 놀라웟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작아서 곧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기 떄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염려하지 말아라 이 피조물은 언제나 내가 보호하고 지켜주기 때문에 영원히 지속된단다.”
곧 부숴져 버릴 것 같은 피조물들을 영원히 지켜주신다는 하느님의 굳은 의지표명은 우리가 지닐 유일한 희망이 아닌가? 그 희망의 메시지를 구체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희망의 불씨를 품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생태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작은 노력들과 마음들이 모아질 때 희망의 메시지는 나에게서 너에게로 번져갈 수 있으리라.
이번 호는 이런 희망의 메시지들을 싣고 있다. ‘단상들’은 우리에게 ‘생태적 삶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자연-해 비 공기-에 감사하며 사는 것임을,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담벼락 틈바구니를 뚫고 나온 도라지꽃 속에 생태살리기의 해법이 숨어있는지 모른다. 남보랏빛 작은 도라지꽃 한 송이는 자연-대지 태양 비 바람 등-과 소통을 통해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가? 생태의 문제는 소통의 문제이다. 생태적 막힘은 인간과 자연의 소통이 끊어진 것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 단절되어버림에서 기인한다. 막힌 우리 마음부터 뚫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시대 안에서 ‘생태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이번 호는 동아시아종교의 생태영성을 다루었다. 동아시아종교는 인간을 생태계와의 깊은 연관성 안에서 바라본다. 유가는 일기(一氣)의 유통관계 안에서, 도가는 무위자연의 길로서, 불가의 연기적 존재관에서 자연과의 화해를 말한다.
줄리안이 말했듯이 우리손 안에 놓인 개암나무열매처럼 지구가 곧 파괴되고 말 위기상황에 놓여있지만 서두르지 말고, 그러면서도 꾸준히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의 태도를 교정해가고 ‘즐거운 불편’을 적극적으로 선택해서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지구 생태의 심각성과 그 위기를 간과해선 안되지만,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계속 심는 일이 아닐까?
용산참사 221째 되던 날 그곳을 방문했다. 너무 늦게 찾아 죄송한 마음으로 분향하고 미망인분들을 만났다. 그 곳에 천막속에서 생활하시는 신부님들...길바닥에서의 미사, 네온사인불빛이 사방을 비추는 용산에서 너덜너덜한 용산에서 너덜너덜해진 양심을 본다. 그 길바닥에 우리의 양심을 내동갱이 쳐버린 ...
버스가, 수많은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그 속에서 꺼멓게 불탄 건물과 플랭카드들...
며칠전 샐리 멕페이그의 <기후변화와 신학의 재구성>이라는 책의 결론부분을 읽다가 노리치의 쥴리안의 개암나무 열매이야기를 접하면서 내 가슴에 꽂히는 말이 있었다.
“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다”
샐 리가 쓴 책을 읽으며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파괴의 심각성에 대해 마음 무겁게 이 책을 읽었다.
그녀는 말한다. “절망을 불러일으키는 것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지구온난화이다. 전쟁 폭력 에이즈 탐욕 빈곤 대다수 인간의 무관심에 덧붙여 이제 심각한 기후변화로 인한 대재앙의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고 그녀는 말한 바 있다.
그러던 그녀는 결론에 가서 쥴리안의 희망을 말하고 있다.
처음에 그녀이 내린 결론은 너무 피상적으로 들렸고 뭔가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제시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힘빠지는 이야기로 끝맺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올라왔다.
사대강을 파헤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욕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사태가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신뢰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30년간의 대학에서 가르친 마지막 강의를 통해 한 신학자가 내린 결론은 바로 희망이고 하느님에 대한 신뢰라는 것이라는 그의 견해에 나는 참으로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절망의 가능성, 과연 세상 돌아가는 꼴, 사람들의 삶의 모습 부패 부정으로 인해 사람들은 절망의 뒤범벅이 되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