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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과 그리스도교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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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생태학과 그리스도교의 대화 1. 기후변화의 위기.pdf (244.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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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를 종교가 말하다>
제5장 생태학과 그리스도교의 대화
『기후변화와 신학의 재구성』
1부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한 과학적 증거와 그 신학적 의미
1) 내용 요약 및 논평 최현민
1장 기후변화의 위기-증거와 결과
◎ 기후변화의 현실을 부인하지 말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PCC는 2007년 2월 제4차 평가보고서에서 2100년까지 지구 온도가 섭씨 6도 상승할 것으로, 21세기 안에 최하 4.5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지구의 기온이 섭씨 4.5도 상승한다는 것이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난번 빙하시대의 지구온도가 지금보다 단지 5도 내려간 상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지구온도가 조금만 변해도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단순히 점차적인 온도 상승으로 인해 극단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리라는 예상만이 아니라, 온도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온도 상승 추세를 되돌릴 수 없게 되어 생명체들이 생존하기에는 매우 곤란한 환경이 되리라고 내다본다. 지구의 온도 상승은 이미 양성 피드백 (positive feedback) 효과를 내고 있을 정도로 불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제임스 러브록 James Lovelock 은 이렇게 설명한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그토록 심각하고 급박한 문제인 것은 지구 체계인 가이아 Gaia가 양성 피드백의 악순환 고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 마치 우리가 불을 피웠다가 방심하여 불이 가구에 옮겨 붙어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지면 불을 끌 시간적 여유가 없다. 지구온난화도 이처럼 가속도가 붙어,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과학자들은 이 양성 피드백이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데 가속도가 붙도록 만들어,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기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한다. 이 과정은 고리처럼 작용하여, 해수온도가 상승하면 바닷물은 얼음의 가장자리를 압박해서 더욱 빨리 녹게 만든다. 매년 얼음이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결국 임계점에 도달하면 나머지 얼음이 폭발적으로 녹아내릴 것이다. 거대한 얼음이 빠르게 녹게 되면 해수면이 몇 미터 상승하게 될 것이므로, 섬들과 저지대 해안지역은 물에 잠길 것이다. 앞으로 얼마간은 괜찮을지 몰라도 10년, 20년 내에 사태를 되돌리기에 너무 늦어버렸다고 느껴질 때가 올 것이다.
지금껏 비교적 안정된 기후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을 즉각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부인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라는 현상은 성격상 그 증거가 더욱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우리의 취약성을 내면화시켜라
기후변화의 문제는 우리가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이 오리라고 경고한다. 사회정의, 평화, 번영, 자유 등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다른 문제들은 지구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이룰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를 사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대처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은 앞으로의 날씨 변화를 예측할 수 없으리라는 데 있다. 이제까지 예상해오던 날씨 체계가 변덕스럽게 불안정하게 변해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더 이상 “편안한 일상생 활”을 계속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는 지구온난화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빙하이다. 히말라야 고원에서 비롯되는 일곱 개의 강을 통해 세계 인구의 40%를 위한 식수의 절반 이상이 제공된다. 따라서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아내리면 인류의 40%를 위한 식수가 심각하게 고갈된다. 또한 시베리아 지역의 영구동토 永久凍土는 지난번 빙하시대 이래로 얼어 있는 상태였지만, 점차 녹아내리고 있다. 이 툰드라 지역은 탄소가 700억 톤이 저장되어 있는데, 이 양은 인류가 매년 배출하는 탄소량의 10배에 이른다. 따라서 만일 이 영구동토가 모두 녹게 되면 엄청난 규모의 생태학적 산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기후변화는 지금껏 우리가 ‘좋을’ 일이라고, 심지어 도덕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했던 일 중 많은 것을 이제는 ‘나쁜’ 일로 간주하게 만든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비행기 여행이다. 뉴욕에서 런던까지 왕복 비행을 하면, 승객 1인당 1.2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되 는데, 이것은 지구의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배출할 수 있는 1년치 허용량에 해당된다. 우리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나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처럼 살아갈 수 없다.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조건들을 만들었으니 그 조건들 속에서 사는 방법 또한 배워야만 한다.
◎기후변화의 결과를 직시하라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3를 차지하는 반면, 아프리카는 단지 3%만을 차지한다. 그러나 북부의 부유한 나라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값비싼 조처들을 취할 수도 있다. 이런 나라들은 이미 바닷물을 식수로 전환시키며, 홍수방지 장벽을 세우고, 가뭄에 저항하는 유전자 조작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기후변화의 위험성이 가장 높은 지역에서는 이런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IPCC 연구 결과
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북부의 선진 산업 국가들은 자신들에게, 적어도 다음 세대들에게까지는 최악의 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자국의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장기적인 관점과 기본적인 상호 연결성과 상호 의존성의 진실을 무시할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선진국들이 단기적으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책을 세우는 데 집중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똑같은 공기를 호흡해야만 한다는 공동 운명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피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행동할 방법을 찾아라
기후변화의 현실을 부인하지 않고 그 영향에 대한 우리의 취약성을 내면화하고 그 결과에 대해 특별한 책임을 인식했다면 이제 행동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행동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기후변화 위기는 너무 크고 폭넓고 깊은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행동을 시작하도록 만들기보다는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기 쉽다.
기후변화에 관한 IPCC 제4차 평가보고서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술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즉 에너지 공급, 교통, 건축, 산업, 농업, 삼림, 쓰레기 처리 등 모든 영역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구체적 감축 기술들이 개발되었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 목표량을 지키기 위한 정책들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이긴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단, 문제는 “만일 지금 당장 전 세계적으로 시작한다면 ”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미 손쉬운 해결책에 대한 유혹이 나타나고 있다. 비행기 여행을 하거나 레저 차량을 구입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요금을 더 지불하여 상쇄시키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런 요금은 삼림을 벌채한 지역에 나무를 심거나, 개발도상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이처럼 제1세계의 부유한 사람들은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생활방식을 계속 유지하면서, 약간의 요금을 내고 자신들이 죄의식을 무마하려 한다. 이런 상쇄 요금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양심을 가볍게 한 채 무책임한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차원에서 나온 제안들의 배후에는 “만일 지금 당장 전 세계적으로 시작한다면 ”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따라서 우리의 당면과제는 “지금 당장 행동하기 위한 동기부여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다 이를 위해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바꿀 뿐만 아니라, 그런 선택을 쉽게 하도록 정부를 압박하고 격려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문제’는 정부들과 다국적 기업들의 정책뿐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바로 이 두 극, 개인과 정치는 교묘한 춤을 추면서 개인이 정치를 이끌었다가 다시 정치가 개인을 이끄는 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2장 지구온난화 -신학적 문제
저자는 1장에서 지구온난화를 과학적인 문제로 다루었다면 2장에서 는 이를 심각한 신학적 문제로 보고 있다. 공포가 변화의 원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묵시론적 장면, 흔히 도피주의적 해결책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닥칠 재난에 관해 이미 충분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저자는 지구온난화 문제가 우리의 파괴적이며 불의한 행동을 부추기거나 허용하는 신관 神觀과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그것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우리의 인식과 가치관, 더 깊이에 있는 신앙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이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공동체적 관점으로 회귀해야 함을 강조한다. 공동체적 사고방식, 곧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나 생명체들과 상호 의존관계에 있다는 관점은 오늘날 지배계층의 행복과 우월성을 찬양하는 소비주의나 군사주의의 패러다임 아래 깔려 말라 죽고 있다는 것이다.
◎행동 개시
저자는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생태적 ”이지 않다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행동을 개시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북미의 부유한 교회들에서의 주일날 설교는 하느님의 피조물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들에 대한 돌봄과 평안에 맞추어져 있다. 피조물이 예배의 중심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1년에 고작 두세 번 정도이다. 피조물 전체의 행복은 복음의 중심으로 간주되기보다 군더더기 정도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 신학은 인간의 행복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온 인간 중심적 신학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실천해야 할 행동 개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교회가 생태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가 생태적이 되려면, 교회는 지구온난화와 같이 전 피조물의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 해 교회는 경제 문제에 대해 특정한 정책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하느님이 피조물에 관심을 갖고 계시며, 우리가 피조물의 행복을 위해 일할 때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일하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신학자 시몬느 베이유는 그리스도교가 피조물을 제외시킨 채 어떻게 스스로를 보편적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떼이야르 샤르댕은 “예수는 하나의 세계로서 사랑받아야만 한다 ” 고 표현한 바 있다. 이와 같이 교회의 보편성을 폭넓게 정의하여 이 세계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지구 전체가 바로 하느님의 집/식구(household)이라는 자각에서 나온 것이다.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 ‘oikos 는 생태적 (ecological) , 일체적 (ecumenical) , 경제적(economical)이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이다.
신학자 조지 헨드리는 그리스도교 신학을 하기 위해서는 세 개의 중요한 맥락 (context)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우주론적 (cosmological) 맥락과 정치적 (political) 맥락, 그리고 심리적 (psychological) 맥락이 그것이다. 피조물의 보존, 인류의 행복, 그리고 인간영혼의 평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시대에는 심리적 맥락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즉 복음주의적 그리스도교와 뉴에이지 종교들에 있어서 죄와 개인의 평정이 중심이었다. 정치적 맥락은 20세기 해방신학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을 주장한 데서 다시 등장했다. 끝 으로 생태학적 신학들은 그리스도교를 그 뿌리인 우주론적 맥락에로 되돌려 놓았다. 즉 생태신학은 구원자는 창조주로서 그의 활동무대는 삼라만상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우주론적 신학 (cosmological theology) 으로 되돌아가
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원이 선택된 사람들을 위한 영생이 아니라, 이레니우스 Irenaeus 의 표현대로 “모든 피조물이 완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이라면, 교회는 반드시 공적인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선포 하기 위해, 교회가 경제생활에서 정의와 지속 가능성이라는 공적 문제에 개입해야 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것은 경제란 단순히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누가 살고 누가 죽는지, 누가 품위 있게 살고 누가 그렇지 못한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날 지구 시장을 다스리는 모델인 신고전주의 경제학 (neoclassical economics) 과 생태적 경제학 (ecological economics) 을 구분한다. 신고전주의 모델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개인들로서 자기 이익을 목적으로 행동하면 결국 체제 속의 모두를 위해 이 익을 창출한다는 편견에 기초해 있다. 이에 반해 생태적 경제학 모델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상호관계를 맺고 있으며 상호 의존된 피조물로서 생존하고 번창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지구별 경제학 (planetary economics) 은 필요한 자원을 모두가 장 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맞추는 방식으로 공정하게 나누어 갖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경제학 모델에서는 정의와 지속 가능성이 자원분배의 규범이다. 이런 규범이야말로 지나친 기후변화를 피하기 위해 필요 하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볼 때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구원을 영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영혼의 속량 (redemption of soul) 에 집중시킴으로써 종교를 사적인 것으로 만드는 그리스도교와 잘 어울린다고 저자는 본다. 그러나 예수가 가르친 하느님 나라는 신고전주의 경제 학보다 생태적 경제학에 가깝다. 신약학자 존 도미니크 크로산이 말했듯이 예수의 하느님 나라 이해에 있어 핵심은 “잔치 비유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잔치 비유에서는 모두가 음식을 나누도록 잔치에 초대 받았다. 모든 피조물이 초대받는 그런 성만찬의 잔치가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만일 그리스도교가 우리 시대에 맞게 복음을 해석한다면 이런 비전과 공개적으로 토론하여, 그 대안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단지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가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우리 앞에 놓인 공동의 지구적 과제에 함께 참여해야만
한다.
2) 토론 미산, 송용민, 심원, 전현식, 최일범, 최현민
| 최일범 오늘은 샐리 맥페이그 Sallie McFague 의 『기후변화와 신학의 대응 』의 내용을 중심으로 우리 대화를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1부의 1, 2장을 최현민 수녀님께서 발제해 주셨는데요, 발제한 내용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토론해 보았으면 합니다.
| 최현민 이 책의 1장과 2장은 논의의 기초를 놓는 작업으로서 주로 과학적인 내용이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신학 역시 과학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정확한 현실 파악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 심원 1장은 과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여 우리에게 지구에 닥친 위험을 잘 이해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 저자는 신학적인 관심을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데요, 저자는 우리에게 “지금 당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제 어떤 의사 선생님께서 당뇨병에 대해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그분은 당뇨병을 생활태도의 문제로 보고 계셨습니다.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받아들이고 태도를 바꾸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입니다. 저는 기후변화의 문제 역시 이와 같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미 길들여져 있는 태도를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저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생활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우리의 첫걸음입니다.
| 전현식 어쩌면 사찰에서 생태적으로 사시는 스님과 같은 분에게는 이런 글이 불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너무도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 있는 미국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쓰인 글입니다. 어떻게 자본주의적인 소비 중심의 생활 방식을 생태적인 삶으로 바꿀 것인가. 저자가 보기에, 우리는 소비적인 생활에 익숙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우리 삶의 양식이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미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많이 타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고 참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많이 생겼습니다. 가족을 만나러 가는 좋은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쁜 일이 될 수도 있었던 거지요.
| 최현민 정말이지 이 글을 읽으면서 뜨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최일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우주론적 맥락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과 종교를 사적으로 만든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부분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 최현민 저 역시 우리의 영성이 개개인의 심리에 집중되기보다는 이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성은 개인 구원의 문제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우주적인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 최일범 개인 구원의 문제는 사실상 우주적인 맥락과 동떨어질 수 없다고 봅니다. 기존의 심리적이고 개인 구원적인 차원에서 탈피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기반으로 우주론적인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 최현민 맥페이그가 전체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개인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 구원과 우주적인 구원은 동떨어질 수 없습니다.
| 전현식 사실 우리 교회의 현장이나 기존의 교단 종교들이 대개 개인 영혼에 대한 위로를 중시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맥페이 그는 개인 구원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그것에만 너무 집중해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지요. 실제 우리 는 항상 자기에 대한 관심을 갖기 마련이고 자기 이익에 대한 문제가 생길 때 잘 변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관심은 인간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자 하느님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의 창조자이시기도 합니다. 당연히 창조와 구원은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즉 우리가 말하는 구원은 창조세계의 구원입니다. 개인 영혼의 구원이라는 관심에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지구온난화와 같은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관심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죽고 나서 저 세상인 하느님 나라에 가서 나의 영혼이 영원히 구원받는 것, 영생을 얻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 세상과 저 세상은 분리될 수 없고 창조와 구원도 분리될 수 없습니다. 모든 창조세계 안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은 우리가 버리고 갈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받지 못한다면 저 세상에서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며 이 세상에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 즉 다른 생명체가 구원받지 못하면 나도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른 생명체의 도움에 의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절감하고 있듯이, 개인 중심적인 사고에서 하느님 중심적인 사고, 우주 중심적인 사고로의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과연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미산 저자는 우주론적 신학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그러한 우주론적인 구원의 성서적인 근거는 무엇입니까? 만약 우주론적인 구원의 신학적인 근거가 있다면 그 근거에 의해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이분법적이지 않고 일원론적인 관점 안에서 다루어질 수 있습니까?
불교의 경우, 일원론적인 관점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심리적인 구원을 바란다고 할지라도 그 심리적인 구원의 바탕은 연기적이고 우주적입니다. 다시 말해 불교는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나 혼자 잘 살려고 해서는 안 되고 연기적 인간관과 세계관을 체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개인과 우주가 바로 연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비교해서 그리스도교는 어떻습니까? 저자가 우주론적인 구원을 말할 만한 신학적 근거가 있습니까?
| 심원 저 역시 궁금한 사항이 있습니다. 저자는 행동 개시를 말하면서 교회가 생태적이라면 지구온난화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공식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저자의 말은 조금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또 말하길 교회는 경제 문제에 개 입해야만 하며 또 특별한 정책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개입은 전혀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해방신학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 해방 신학의 적극적인 지지자도 있었지만 그에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비슷하게 경제적인 문제, 정책 입안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에 교회가 관여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 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송용민 교회가 정치에 직접 관여하고 개입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관심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하느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 맺음을 방해하는 정치적인 이슈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입장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문제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겠지요.
| 심원 그런데 그 공식적인 입장에 대해서 과연 그 구성원이 다 함께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을까요?
| 전현식 이 문제는 교회의 정체성 문제와 직결됩니다. 개인 구원에만 치중하는 교회라면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런 교회는 이 문제를 비 非 신학적인 문제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샐리 맥페이그의 말처럼 지구온난화를 신학적인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구원이 개인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라 창조세계의 복지와 구원이라고 본다면 교회는 당연히 지구온난화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표명할 수 있지요. 당연히 사회 참여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 심원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공감하지만 사회적으로 표출되는 교회의 입장에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겠는가, 라는 문제가 남는 것 같습니다.
| 송용민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에 대해서 가톨릭은 개신교보다 보다 쉽게 합의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적 원칙, 정신에 대한 합의가 있기 때문이지요. 가톨릭 교회가 가진 힘이기도 합니다. 가톨릭 정신과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이것이 올바른 방향, 진리의 길이라는 입장이 서면 교회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그 입장에 따라야 하는 의무와도 같은 것이 생깁니다.
그러나 스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그 입장에 따르지 않는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또 해방신학이라는 문제를 들여다보면 교회는 당연히 해방에 찬성합니다. 그렇지만 해방신학이 주장했던 마르크스-레닌 주의 식의 폭력적 투쟁 방식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았지요.
| 전현식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 너무 개인의 영혼 구제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인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는 그리스도교의 우주론적 맥락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집필한 것입니다.
| 미산 가톨릭 교회에서는 지구온난화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미 사회적인 실천도 활발히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송용민 네. 가톨릭 환경단체들이 이미 많은 활동을 벌이고 있고 신학도 이런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단 모든 신자들이 정말로 내 영혼의 구원을 넘어서 창조세계의 구원에 관심을 갖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지요. 그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 미산 네. 어떤 종교도 마찬가지겠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불교도 생태적으로 정말 좋은 이론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못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에 기후변화의 중대한 원인 중에 육식 문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육식을 하기 위해서는 가축을 길러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정말 크다고 하더군요.
| 최현민 네. 가축 사육은 온실 가스의 두 번째 주범이라고 합니다.
| 미산 사실 식생활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인데 종교 단체에서 육식을 줄이는 운동을 펼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육식을 줄여도 큰 효과가 있을 텐데요. 제가 영국에 있을 때, 영국 성공회에서 신자들에게 금요일에 육식 대신 생선을 먹도 록 권장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생선을 먹는 것은 영국에서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 송용민 지금이 바로 사순시기인데요. 교회에서는 이 시기에 금식과 절제, 금욕, 금육을 강조합니다.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에 동참한다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지만 넓게 보면 스님이 말씀하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사회적인 운동으로 발전할 수도 있겠네요.
| 최현민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순시기에 하는 금욕과 절제를 자기 구원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절제나 금욕 실천을 하면서도 작은 의미밖에 부여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행동을 적극적으로 우주론적인 구원과 연결시킬 수 있다면 나의 행동이 우주적인 구원을 위한 행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최일범 하느님의 영광은 모든 피조물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라는 이레니우스의 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전현식 그의 말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함으로써 그들이 충만한 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즉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웃과 세계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어거스틴도 평생 그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내가 나의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는 과연 무엇을 사랑하는가. 우리는 이웃을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과연 나의 삶이 이웃의 삶을 훼손시킨다면 그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겠습니까?
| 최일범 완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문제의식은 살아 있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면, 삶의 이중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송용민 이레니우스는 초기 교부로서, 제가 기억하기로는 가톨릭이라는 말을 천주교회를 가리키는 말로서 처음 사용하신 분입니다. 가톨릭이라는 말은 원래 보편적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인데 이레니우스는 이 말로써 그리스도교 교회를 지칭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편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보면 보편성이란 하느님의 보편적인 창조 질서의 섭리로부터 옵니다. 피조된 세계를 보면서 하느님이 처음 하신 말씀은 보시기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레니우스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 좋다고 말씀하신 세계의 원초적인 형태를 참된 보편성으로 보고 그 보편성을 그대로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일범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느님은 성리학의 리 理 개념에 상응하고 창조세계는 기 氣라는 개념에 상응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성리학에서 끊임없이 문제 삼는 것은 리와 기의 관계로서, 성리학에서는 이야기하기를 기 없는 리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 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창조물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 심원 아까 미산 스님도 그 부분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 최현민 이 문제는 바로 다음 부분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으니 다음 장에서 다시 토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전현식 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최일범 네. 그럼 다음 장을 통해 좀 더 심화된 토론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샐리 멕페이그의 <기후변화와 신학의 재구성> 제1부를 요약정리한 후 종교인들이 토론한 내용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