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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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연구

제4장 생태학과 도교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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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15-03-3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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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에 종교가 답하다> 의 제4장 생태학과 도교의 대화 중에서....


3. 「『태평경』의 도교적 중화개념: 자연재앙에 대한 인간의 책임」


1) 내용 요약 및 논평 최현민


중국 역사에서 도교가 공식적인 종교체계로서 시작한 동한 (東漢, 25~220 C.E.) 시대에 사용된 중요한 도교 텍스트 중 하나가 『태평경太平經』이다. 『태평경』은 사회와 우주의 조화, “태평(太平, Great Peace)” 시대의 출현을 널리 알리며 그 시대가 어떤 조건 아래에서 도래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태평경』의 도교적 중화 中和 개념: 자연재앙에 대한 인간의 책임 」 이라는 Chi Tim Lai의 논문은 『태평경』의 근본 주제어인 “중화中和”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중화는 고대 이래로 도교에 고루 보급된 생능生能的적 우주관 宇宙論을 이해하는 데 핵심 개념이다. 『태평경』에서는 중화를 하늘과 땅, 인간 사이에서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 공헌하는 요인으로 보며, 이 개념을 통해 음과 양의 양극 이론을 보완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중화 개념이 어떻게 천지인 天地人 간의 상통이라는 측면에 기여하는지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태평경』에서는 태양, 태음, 중화라는 삼기 三氣에 대해 언급하는데, 여기서 인간은 중화의 영역에 속한다. 즉 인간에게는 하늘과 땅사이에서 중화의 기를 보호하고 순환시키고 양육하는 독특한 임무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태평경』에서는 우주의 조

화와 사회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하늘과 땅이 조화로운 소통을 유지하는 데에 인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악한 행위들과 그 귀결로서의 “승부承負”가 우주 사회, 그리고 가정의 조화를 위협하며 하늘과 땅 사이의 중화기를 방해하는 제일 큰 요인이 되기 때문

이다. 인간의 악이 중화기를 고갈시키면 하늘과 땅은 아프게 되고 분노하며 광폭해져서 큰 격변, 전쟁, 병, 흉작이나 다른 기이한 재난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태평경』에서는 자연재난을 하늘과 땅이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본다.


무제한적 경제 성장과 자원 발전에 대한 현대 산업적 동인과는 대조적으로 『태평경』에서는 명료하고 중대한 생태학적인 원칙을 내놓고 있다. 그것은 우주와 사회, 인간존재의 조화로운 관계를 위해 인간의 책임을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본 논문에서는 하늘, 땅,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와 이상적인 소통의 비전과 관련하여 중화 中和 개념을 풀어가고 있다. 즉 중화 개념은 인간과 자연환경 간의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오늘날의 생태학적 관심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본론에서는 첫 번째로 자연의 질서와 천지의 뜻에 대해 말하고 있다. 『노자』나 『장자』같은 초기 도가적 텍스트에서는 무위자연적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원칙적으로 “도가에서는 인간이 도와 상응하기 위해 사회적, 정치적인 일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야 하며, 어떻게든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고 양육하는가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태평경』에서는 한대의 천인상응 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어 전적으로 인간 우주적 (anthropocosmic)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태평경』에서는 천지를 인격적으로 해석하여 하늘과 땅이 인간세계에 메시지를 주며, 인간의 곤경에 대한 동정심에서 역사에 끼어든다고 본다. 자연현상들은 인간에게 하늘의 목소리와 땅의 말 (天談地語)을 제공하며, 자연을 통해 인간 행위에 대한 하늘의 비판과 동의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즉 하늘은 단순히 자연발생적 생명 과정만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적 리듬을 지휘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늘은 인간의 행위에 대해 강한 관심을 보여 인간의 행위에 따라 벌과 상으로서 상응한다. 이처럼 천지는 인간에게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즉 천지는 암묵적이고 파괴적인 전조들이나 재난으로서 자신의 뜻을 표현하거나 성인들을 세상에 보내 지도하게 하는 방법을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태평경 』에서는 태평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들이 천지의 뜻을 따라야 하고, 하늘과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늘의 뜻과 일치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거나 무위無爲를 행하는 데 머물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인간도 사명감을 갖고 만물을 생 生하고 양육하는 구체적인 사명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평경』에서는 같이 말한다.


생명을 주는 것은 도이고 양육하는 것은 덕이며, 완성하는 것은 인仁이다. …… 도는 하늘이고 양이며 생명을 낳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덕은 땅이고 음이며 양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 도가 생명을 낳는 일로 번성할 때에는 만물은 생하게 되며, 덕이 양육하는 일로 번성하고 있을 때 만물이 길러지고 불만이 없게 된다. …… 단 하나의 사물도 태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도는 차단되며 침투할 수 없다. 단 하나의 사물이 양육되지 않았을 때 덕은 계발될 수 없다. 단 하나의 덕도 완성되지 않았을 때 단 하나의 인도 실천할 수 없다. 만일 도, 덕, 인이 존재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만물을 관찰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태평경』에서는 창조물들이 서로를 생하게 하고 양육하고 돕는 데 있어 인간이 잠재적으로 공헌함을 언급하고 있다. 즉 『태평경』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이 자연 법칙을 따름으로써 하늘과 땅에 공명共鳴하기를 배우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태평경 』의 중요성은 중화 해석의 독특함에 있다. 『태평경』에서는 원기 元氣가 태양 太陽과 태음 太陰과 중화기 中和氣라는 삼원적三元的 구조를 지녔다고 말한다. 『태평경 』은 하늘과 땅에 대한 담론을 위한 중심 해석의 구조 틀로서 태음, 태양, 중화의 ‘삼기 三氣의 일치’라는 이론을 사용한다. 삼기 三氣는 원기 元氣로부터 나왔고 인간은 중화기에서 시작된다. 『태평경』에서 원기 元氣를 삼분 三分하여 설명하는 것은 자연의 조화로운 질서를 성취하려는 목표를 위해, 중개자로서 ‘중화기’와 그 작용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천기, 지기, 중화기의 삼기가 조화를 이룰 때 셋은 서로 통하게 된다.(三合相通)


이와 같이 『태평경』에서 말한 태평 太平 시대, 혹은 태화 太和 시대는 하늘과 땅과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소통, 즉 삼기 三機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시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태평경』에서는 중화를 본질적인 구성요소 (氣)로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화기를 통해 음기와 양기를 조화로 이끌고 이들 사이에 상통하면서 역동적인 균형, 자연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화기를 하늘과 땅과 인간 사이를 상통케하는 근본 연결점으로 보는 『태평경』에서는 하늘의 기와 땅의 기가 상통되지 않아 우주의 무질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심 위치에 있는 인간은 하늘과 땅, 전체 우주와의 관계가 상통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태평경』은 인간을 중화기의 집행자로 보고, 우주계의 조화로운 소통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하늘과 땅의 기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천지 간에 소통이 조화롭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인간이 하늘과 땅에 악을 행함으로써 하늘, 땅, 인간이 서로 상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의 도와 땅을 양육하는 덕이 방해받아 하늘과 땅에 분노가 생기면 큰 재난이 생기고 온갖 종류의 사악한 기가 일어나고 태평, 태화는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하늘과 땅의 질병들과 계승되는 죄 (承負)의 교의에 대해 살펴보자. 『태평경 』에서는 우주론적 언어를 윤리적 논의로 전환시켜 나간다. 천지의 기와 중화의 기 사이에 소통과 조화가 부족하면 태평 혹은 태화는 사라지고 천지의 질병과 슬픔이 나타나게 되는 데 이러한 재난과 고난은 인간이 세대에 걸쳐 승부 承負를 쌓음으로써 일어난다. 이와 같이 『태평경』에서는 하늘과 땅의 질병이나 고민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인간적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어머니인 대지를 파헤치거나 여아살해, 과도한 징벌,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에 태만한 것이 하늘과 땅, 중화기, 즉 삼기의 일치를 방해한다고 보는 것이다. 『태평경』에서는 이를 승부의 교의로 설명하고 있다.


승承이란 앞사람이 본래 천심 天心을 이어 받아 행위해야 하는데도 조금씩 그것을 상실하고도 스스로 알지 못한 채 쌓임이 많아지면, 뒤에 태어나는 사람 (後生人)이 무고하게도 그 허물을 입어 재앙을 이어 받는 것을 말한다. …… 부負는 재앙의 미침이 한 사람의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뒤가 서로 짐 지우게 하는 것이다. 즉 부負는 앞사람이 뒤에 태어나는 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인과관계로 표현하면 승은 원인이고 부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원인으로서의 승은 앞사람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를 가리키는데 이는 천심 곧 도의 뜻에 거역하는 앞선 자들의 행위를 말한다. 악은 무수한 세대를 거쳐 죄의 계승 (承負)을 통하여 축적된다. 승부 承負는 세대

에 의한 선이나 악의 계승을 포함할 뿐 아니라, 어떤 행위나 사건이 그것을 유발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승부 교의는 중국인의 자연관에는 도덕적 원칙들이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태평경 』에서는 사람들이 승부承負의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자연의 화나 질병은 스스로 사라진다고 한다. 도교의 중화 中和 개념을 유교의 중용

中庸 개념과 비교해 볼 때 『중용』에서 중화 中和는 “내적 자아의 체험상의 확증 ”을 해석하기 위한 범례로서 사용된다. 『중용』 1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뻐하거나 노하거나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정情이 발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중은 천하의 근본이며 화는 천하의 통용되는 도이다. 중과 화에 이르게 되면 하늘과 땅이 제 자리에 있게 되고 만물이 자라게 된다.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은 마음 상태이며 그 마음은 외부의 힘에 의해 절대로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뚜웨이밍은 중을 설명하면서 각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중 (centrality)이 하늘과 땅과 일치하게 될 때 화가 드러나며, 이것이 사실상 ‘인간의 성취 ’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유교의 심리학적 해석과는 달리 『태평경』에서는 중화 개념을 ‘어떻게 하늘과 땅의 기를 조화롭게 하는가 ’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즉 중을 이상적인 마음 상태로 설명하기보다 천과 지, 음과 양이 일치하는 관점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와 같이 『태평경』의 중화 개념은 인간 자아에 대한 담론이 아니라 천지와 인간 사이를 상통하게 하는 길이며 방법과 비전으로 중 中을 파악한다. 자연의 화를 성취하기 위해 『태평경』은 삼기가 상통하면 더 이상 악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중화기의 영역 안에 있는 인간이 중요하다. 인간은 우주의 중화기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태평경』에서는 소통하는 과업이 인간의 성취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기준은 만물의 생함 정도가 상호 양육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있다고 본다. 인간 과실이 증가할 때 하늘과 땅과 인간이 상통함이 방해되면서 비참, 유감, 불만족이 증가하게 된다. 이처럼 『태평경』에서 는 승부 承負의 교의를 통해 하늘과 땅이 격노하는 건 인간의 과실 때문이며, 이것이 하늘과 땅에 재난을 내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도교적 개념에서 보면 인간과 자연의 상호 의존은 명백하다. 인간은 하늘과 땅,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가는 데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영적이며 윤리적이라고 해석한다. 그것은 인간의 악한 행위들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나 상통을 막고 하늘과 땅의 고통이나 화, 질병으로 이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첫째, 서구에서는 인간 중심적 사유가 생태파괴의 요인이 되었음을 지적해 왔고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관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심층생태학과 같은 자연중심사상은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극복의 일환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심층생태론과 같이 ‘생태’라는 전체주의 속에서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볼 때, 자연을 보존해야 할 책임을 지닌 주체로서 인간의 정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태평경 』은 천지인의 관점에서 인간을 봄으로써 전체론적 관점을 지님과 동시에, 파괴된 환경의 책임 소지를 인간의 잘못된 윤리적 삶에 있다고 봄으로써 인간을 생태파괴를 책임질 주체로 본 점에서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이와 같이 『태평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점이 현 생태문제 해결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둘째, 노자, 장자적 사유에서는 무위자연을 최고의 덕으로 인식하는가 하면, 장자와 왕필은 “인간은 자연세계에서 손을 떼라 ”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에 반해 『태평경 』과 『음부경 陰符經』 같은 도교 경전들은 인간의 역할을 중시하여 인간이 소통자로서 균형을 이루

며, 자연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은 인 仁에 대한 해석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장자莊子』「대종사大宗師」 편에서는 유교의 인에 대해 한계를 지적하는 데 반해, 『태평경』에서는 유가적 인에 대해 긍정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생태윤리적 관점에서 도가적 무위의 삶이 아른 네스의 심층생태론에 가깝다면, 인간의 역할을 중시하며 인을 중시하는 『태평경』을 통해 본 도교적 입장은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


셋째, 저자는 뚜웨이밍의 해석을 빌려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은 마음 상태이고 각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중 (中, centrality)이 하늘과 땅과 일치할 때 화가 드러나며, 이것을 ‘인간의 완성 ’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유교의 이해와는 달리 『태평경 』에서는 중 中을 이상적인 마음 상태로 설명하기보다 천과 지, 음과 양의 일치의 관점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태평경』의 중화 개념은 인간 자아에 대한 담론이라기 보다 천지와 인간 사이를 상통하게 하는 길이며 방법, 그리고 비전으로서 중을 파악한다. 이와 같이 저자는 유교의 인간 이해를 심리학적이고 내재적인 관점으로 봄으로써 천, 지, 중화의 삼기 三氣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 도교의 입장과 다름을 지적한다. 이러한 저자의 해석을 어떻게 보는가?


2) 토론 송용민, 심원, 양은용, 이정배, 전현식. 최복희, 최현민


| 송용민 최현민 수녀님의 좋은 발표 잘 들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발제 내용과 세가지 질문을 통해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셨는데요. 이제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토론해 보겠습니다.


| 이정배 『태평경』은 불교나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까? 저는 이 글을 읽으며 『태평경』이 불교나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 최현민 많이 받았다고 봅니다. 승부사상은 불교의 인과응보 因果應報사상과 연관되어 있고 유가의 인仁사상도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 양은용 불교는 기원 전후에 유입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중국 사람들은 불교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유교의 효 孝라는 관점에서 볼 때, 불교가 부모와 가족, 성과 이름을 버리고 출가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교의 출가 제도는 중국인들에게 문화적으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볼 때, 그 대안으로 모색된 것이 바로 도교라는 설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태평경』은 전한 前漢 시대부터 유래했습니다. 간길 혹은 우길이라는 인물이 『태평경』을 전했고 대략 150년경 전후, 장각이 태평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삼장 三張, 즉 장릉張陵, 장형 張衡, 장로 張魯가 만든 오두미도 五斗米道라는 도교 교단도 있습니다. 정일교라고도 하는데, 입교할 때 쌀을 받았기 때문에 오두 미도라고 했지요. 이 두 교단 모두 150년경을 전후로 출현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도교 교단들이 유가가 형성한 사회적 형태 속에서 불교라는 새로운 충격이 가해져서 출현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가를 하지 않는 것은 유교와 비슷하고 세간적이지 않고 초세간적이다, 라는 것은 불교적입니다. 이렇게 볼 때, 도교는 계율이나 가르침 면에서 유교와 불교 모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최복희 중화中和의 개념에 대해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최현민 네. 저도 묻고 싶었는데요. 이 논문이 말하는 것처럼 『중용』의 중화 개념을 심리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논문의 저자는 뚜웨이밍(杜維明)을 인용하면서 그렇게 말했는데요.


| 최복희 네. 중화에 대한 성리학적인 해석은 일종의 심리학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이나 화를 인간 의식의 상태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동시에 인간의 의식에 대한 일종의 인식론적이고 가치론적인 해석이기도 합니다.


| 이정배 물론 성리학자들은 그렇게 해석했지만, 『중용』이 말하는 중화라는 개념 자체에는 우주론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 최현민 저도 그렇게 봅니다. 『중용』의 중화 개념과 『태평경』의 중화 개념은 우주론적인 차원에서 만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최복희 성리학자들은 의식의 흐름이라는 차원에서 주로 중화를 해석했지만 중화, 미발과 이발이라는 개념을 꼭 의식에만 국한시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기 氣라는 차원에서 몸으로 확대시킬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최현민 『태평경』에서는 중화를 기의 차원에서 해석합니다. 천의 기와 지의 기, 중화의 기라는 삼기 三氣를 말하면서 인간은 중화의 기로부터 나왔다고 봅니다. 이 세 기가 조화될 때 태화 太和의 시대가 옵니다. 그런데 인간이 중화의 기를 깨트리면 이 세 기의 조화도 같이 깨지게 되기에 인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지요. 인간이 부도덕한 삶을 살면 삼기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심원 그렇다면 인간이 중화를 깨뜨리는 것이 바로 승부로군요.


| 최현민 네. 그렇습니다. 인간이 부도덕한 삶을 살 때 그 결과로서 승부가 발생합니다.


| 심원 행위자가 바로 그 과보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후대의 사람이 그 과보를 받는 것이네요. 그런 상황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중화의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말이지요.


| 최현민 네. 특별히 유교에서 말하는 인 仁의 덕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진 조화를 복원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 심원 이 글을 읽으니 매우 모범적인 답안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간이 깨뜨린 자연 질서를 인간이 다시 되돌렸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최복희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태평경』은 참 유교적 성격이 짙어 보입니다.


| 최현민 보통 도가사상 안에서는 인간의 윤리적인 삶보다는 무위 자연無爲自然으로 돌아가는 삶을 더 중시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태평경』은 인간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인간의 도덕적 삶에 강조점을 둡니다. 노장老莊사상과는 차별화된 점이지요.


| 최복희 인간이 자신의 생래적인 중화기를 실현해서 그것으로써 천지인의 조화를 이룬다는 『태평경 』의 사상은 인간이 단지 자연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장치를 이용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요구인 것 같습니다.


| 최현민 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태평경』의 사상이 심층생태학보다는 사회생태학에 가깝다고 봅니다.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말이지요.


| 양은용 승부와 원죄 개념도 비슷한 것 같은데요.


| 송용민 사실 제가 보기에 승부는 윤리적인 개념에 가까운 반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원죄 관념은 정서적으로 윤리적인 개념처럼 표현되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존재론적인 개념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모순을 원죄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존재론적으로 원죄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원죄를 극복하는 방법은 자기의 근본인 하느님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 전현식 『태평경』의 승부 관념은 에코페미니즘과 그 구도가 매우 흡사합니다. 원죄설의 핵심은 세대에서 세대로 부담을 지운다는 것 아닙니까? 죄의 조건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죄를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전통적인 그리스도

교의 문제는 몸을 부정적으로 보는 데 있습니다. 성 (sexuality)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한편 에코페미니즘은 우리가 가부장제도 속에서 사회화되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이는 승부 개념과 비슷합니다.


또 『태평경』에서 말하는 중화 개념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의 청지기 윤리와 비슷해 보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생태적 정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태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하느님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평경』에서 자연재해를 인간의 부도덕성에 대한 경고라고 본 것도 히브리인들이 자연재해를 하느님의 심판으로 보았던 것과 유사합니다.


| 이정배 그렇지만 자연을 너무 인간과의 상호작용 안에서만 생각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자연재해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인간의 잘못에 대한 천 天의 심판이라고 생각하는 동중서의 천인상관론 같은 사상도 있었지만, 자연재해는 자연재해일 뿐이라는 관점이 항상 같이 있었고 서로 논쟁했습니다. 저는 자연을 자연 그 자체로 이해해야지 너무 인간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재해를 해석하면서 하느님이 인간을 벌하시려고 자연재해를 일으켰다는 식의 발상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태평경』의 승부 개념이 업의 개념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재해석한 탓에 심층생태학이나 사회생태학, 그리고 에코페미니즘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생겼다고 봅니다. 또 승부 개념에는 그리스도교 의 원죄 개념과 마찬가지로 존재론적인 불일치가 내포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인간은 중화기를 받았으면서도 중화를 완전히 실현시키지 못하는 존재이니까요. 그렇게 볼 때, 『태평경』의 인간 이해는 그리스도교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보는 인간도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존재론적 불일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 심원 불교의 업에 대해 보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업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가 있는데 그것은 업이 개인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업에는 개인이 짓고 개인이 그 과보를 받는 업, 즉 별업 別業도 있고 공동체가 같이 짓는 공업 共業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책임을 강조할 때는 별업이 강조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별업과 함께 공업도 많이 짓습니다. 물론 공업인 경우 책임성이 불분명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업을 지으면 업보를 빨리 받을 수도 있고 후생 後生에 받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지은 업의 과보는 언젠가는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 생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죄를 지었다면 그 과보는 이후에 받게 될 수 있으며, 환경윤리에서 미래 세대라고 말하는 세대

는 바로 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태평경』의 승부 관념을 보며 저는 공업을 생각했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생태적인 맥락에서 강조되어야 할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승부라는 개념이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 양은용 여기에서 다시 『태평경』의 시대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태평경』은 150년경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혹은 당시에는 『태평청령서』 170권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그것은 남아 있지 않고 그중 일부가 『태평경』으로 남아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노자』도 기원 전후의 논리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기원전 4~5세기의 것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는 것이지요. 『태평경』도 마찬가지인데요. 200년대 이후 남북조가 시작되었는데, 70~80년 후에는 갈홍의 『포박자』가 성립되고 도교 의 수련 형태가 갖추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포박자』 전후의 저술들은 많이 다릅니다. A.D 200년 후가 되면 불경이 많이 번역되었고 불교가 도교적으로 재해석되어 도안과 같은 훌륭한 중국인 고승이 나타나게 됩니다. 결국 『태평경』이 200년 이후에 성립되었다면 불교나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150년경에 성립되었다면 이는 매우 진보적인 사상을 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태평경 』이 언제 성립되었는지를 전제하고 말해야 하는데 현재 제가 확실히 그 부분을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 최현민 제 느낌에는 200년 이후 같은데요……


| 이정배 초기 도교라면 이렇게까지 발전된 사상이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요.


| 심원 제 추측에는 동한 시대에 『태평경』의 원형이 있었고 그것이 그대로 전해진 것이라기보다는, 이 원형적 사상 위에 새로운 사상이 가미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이론적으로 체계화되면서 말이지요. 『태평경』의 성립 시기에 대해서 좀 더 확실히 밝히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송용민 아주 많은 부분에서 생태문제에 대한 정답과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천지와의 합일이나 인간의 역할, 인간 존재의 패러독스를 말하는 부분에서 말이지요. 우리의 의도와 관심은 지금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동양사상에서 이론적인 기초를 찾자는 데 있습니다.


『태평경』이 말하는 중화라는 개념은 우주론적으로 풍부한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사회생태학과는 조금 다르지만 제도를 중시한다는 것도 중요하고요. 수녀님께서 제기하신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대체로 대답이 된 것 같습니다.


| 심원 불교 문중에서는 큰스님이 이야기를 많이 하시지요. 그런데 큰스님은 제자들이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큰스님이 하신 말씀을 어떻게 알리는지에 따라서 큰스님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생태학은 서구에서 발전했지만, 생태문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 동양 고전에서 찾으면서 재해석하고 재정립한다면 우리가 생태문제 해결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동양 고전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 토론이 매우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생태학과 도교의 대화>라는 주제로 씨튼연구원에서 종교인들이 함께 토론한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