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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겐 연구사의 비판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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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겐 硏究史의 批判的 考察
(1) 傳統宗學에서의 도겐 硏究
傳統宗學은 曹洞宗 宗團側의 도겐 理解를 기본입장으로 한 학파이다. 도겐 死後 700년동안 도겐 硏究는 주로 조동종 종단의 입장에서 이루어졌다. 도겐을 宗祖로서 연구하려는 시각이다. 이러한 종학 형태는 도꾸가와(德川) 시기의 멘잔 도하꾸(面山道白: 1634-1714)와 그의 제자 멘잔 주이호(面山瑞方: 1683-1769)가 도겐의 저술을 모으고 편집하여 도겐의 전기를 위한 자료로 삼고 그의 작품에 대한 주석을 쓰면서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조동종 종단 내에서 도겐 저서의 주석서에 의거하여 도겐을 종조로서 연구해 왔다. 사실 도겐의 『正法眼藏』은 中世 일본어일 뿐만 아니라 그 내용 자체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이를 직접 읽기보다 주석서를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이와 같이 전통종학의 주석서에 의존한 도겐 硏究는 자연히 조동종 종단의 입장일 수 밖에 없었고 이에 근거한 도겐 理解 역시 종단의 해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宗祖로서의 도겐 硏究는 역사비평학적 방법이 결여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現代宗學의 기수가 된 후또 소쿠오(衛藤卽應, 1888-1958)는 주석서를 통해 도겐의 저술을 읽으면 주석가의 눈에 비친 도겐을 만날 뿐, 도겐을 직접 만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주석서를 통한 도겐 읽기보다 직접 『正法眼藏』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衛藤은 이전의 전통종학에서 사상적 연구가 미비했던 것은 주변학문이나 기저학문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어 이루어지지 못한데 기인한다고 본다. 따라서 도겐에 대한 사상적 연구를 위해서는 宗學의 基底學問으로서 불교학과 종교학의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근대 학문적 접근방법을 도입하여 전통종학의 연구방식에 변화를 시도했다. 이와 같이 衛藤은 근대 종교학과 불교교학의 기초인 眞言, 華嚴, 天台, 唯識과 禪學을 기초로 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도겐의 사상적 연구를 시도함으로써 현대종학 다른 말로 衛藤宗學을 형성하게 되었다.
현대종학은 도겐 연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긴 했으나, 도겐을 이해하는 기본노선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것 또한 종단 내에서 바라보는 종조로서의 도겐이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宗團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해석되어온 도겐의 종교세계가 종단 외 학자들의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2차 대전을 전후해서 였다.
1) (2) 日本 曹洞宗 宗團 외의 연구
1922년 철학자 와쯔지 데쯔로우(和辻哲郞)가 발표한 「沙門道元」 논문은 종단 밖의 학자로서 처음 도겐을 연구한 것이다. 和辻은 여기서 “도겐은 한 종파의 도겐이 아니라 인류의 도겐이며 古祖 도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도겐도 된다”라고 소개한다. 이로서 700년간 宗門의 틀에 갇혀있던 도겐은 宗門을 넘어 일본불교의 한 주요인물로 세계에 소개되기 시작한다. 비록 和辻의 연구가 도겐 자신의 저작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도겐의 제자인 懷奘의 『正法眼藏隨聞記』를 중심으로 한 점에서 한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도겐을 曹洞宗의 宗祖로서가 아니라 종단의 입장에서부터 벗어나 연구되었다는 것은 객관적인 학문연구의 출발점으로서 의의가 있다.
그 후 다방면에서 도겐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그 중 철학적 연구의 대표적인 예로 하끼야마 한후따(秋山範二)의 『道元の硏究』(1935)와 다나베 하지메(田邊元)의 『正法眼藏哲學私觀』을 들 수 있다. 田邊은 도겐을 일본철학의 선구자로 평가하면서 『正法眼藏』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내면적인 문제와 대결하게 해준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正法眼藏』을 통해 현대인에게 부여된 철학의 과제를 해결할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철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도겐은 세계사상사의 한 哲人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京都學派 學者들에 의해서 종교철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교또학파(京都學派)는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 최고의 철학자로 추대받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1870-1945)에 의해 先導되어 발전한 학파이다. 京都學派의 기본적 연구방향은 동양전통의 이해와 서구 전통의 개방을 통해 동서양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함에 있다. 이러한 통합은 메이지(明治) 유신시대 이래 서양철학을 접해온 일본 지식인의 꿈이었다. 京都學派는 서구사상 중 특히 그리스도교 사상을 일본 선불교와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시도에서 臨濟宗의 公案禪을 중심으로 이를 근대 종교철학 안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스즈끼 다이세쯔가 선을 서구에 널리 알림도 이러한 과정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田邊은 그러한 과정 안에서 도겐사상의 깊이를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도겐연구가 당시까지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아직 근대화되지 못한 점을 시정하고자 했다.
田邊은 임제선이 京都學派가 추구하던 서구의 종교철학적 접근방법을 통해 서구에 알려지게 되었듯이, 종교철학적 방법론으로 도겐을 연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京都學派는 콘텍스트를 무시한 채 초역사적인 보편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종교철학적 연구방법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의 도겐을 간과해 버리는 한계를 지녔다. 그것은 바로 臨濟禪과 道元禪 간의 차이가 무시된 채 보편적인 선의 입장에서 도겐을 이해하고자 한 점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좋은 예가 스즈끼 다이세쯔(鈴木大拙)이다.
그는 선의 입장에서 도겐을 이해함으로써 도겐에 대해서 왜곡된 견해를 드러냈다. 鈴木은 도겐의 只管打坐가 선수행의 생명을 잡는 데 실패했다고 해석하면서 이는 중국의 묵조선과 같이 고요와 정체를 선호하는 선수행으로서 역동적인 지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스즈끼는 공안수행의 견지에서 심리적인 힘과 영적인 통찰력을 선호했는데, 그러한 경향은 大慧를 통해 발전된 것이었다. 그러나 도겐이 말하고자 한 坐禪은 公案禪의 그것과 달리 修證一等이며 本證妙修로서의 수행인 것이다.
이와 같이 京都學派를 중심으로 한 일본 종교철학계의 도겐硏究는 도겐思想을 임제선에 입각하여 연구함으로써 그 한계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보다 실증적인 도겐 硏究의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이에 부응하여 나온 것이 大久保道舟의 歷史的 접근이다. 그는 역사실증적 방법에 기초하여 『道元禪師傳の硏究』(1953)라는 대저술을 냈다. 이는 宗門 傳統의 자료를 정리한 것으로 도겐 傳記硏究의 기반을 세워 주었다.
大久保의 연구는 도겐에 대한 많은 考證資料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興聖寺에서의 초기교단 형성 및 일본달마종과의 관계분석 등 도겐과 관련한 문제들을 역사적으로 해명해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또한 도겐의 생애를 鎌倉가마꾸라시대와 당시 중국불교의 사회적 배경 하에 연구한 竹內道雄의 『人物叢書 道元』도 도겐에 관한 역사적 연구 중 주목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적 고증을 통한 연구 역시 도겐을 조동종의 창시자로 보는 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비평학적 연구가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빌레펠트(Carl Bielefeldt)의 연구는 종단의 주관적인 입장을 극복한 역사비평학적 도겐연구로 단연 돋보인다. 그는 도겐을 일본 가마꾸라 시대를 산 사람으로 중세초의 문화적 특징과 종교적 특징 그리고 도겐의 저술을 연관지어 연구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방법론과 더불어 도겐의 저작에 대한 문학적 접근 역시 戰後 도겐 연구의 새로운 영역이라 할 수 있다. 寺田透는 「透體脫落」 논문을 시작으로 『日本思想大系』의 「道元」(1970)을 비롯하여 『日本の禪語錄』의 「道元」(1980)에 이르기까지 약 30년에 걸쳐 최초로 도겐의 저술을 현대어로 파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사실 도겐의 『正法眼藏』은 중세 고전어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내용 자체도 난해하여 현대일본인들은 읽기가 용이하지 않는 저술로 유명하다. 도겐의 저술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寺田透의 연구는 지금까지의 조동종 내부에 축적되어온 연구성과에 근대 유럽의 사상을 결부하여 도겐의 저술을 일본문학의 한 성과로 본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寺田透의 연구 이래 도겐에 대한 역사실증적 방법과 더불어 그의 저작에 대한 현대어 번역은 도겐의 사상이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주목을 끄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러한 다방면의 연구방법론을 통해 조동종 종단 밖에서도 도겐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도겐사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
그 중 하나가 도겐사상과 중국선종사상과의 연계성 문제이다. 전통종학에서는 도겐이 중국사상을 이어받았으면서도 이를 일본불교 안에서 새롭게 전개시켰다고 봄으로써 도겐思想의 독창성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조동종 종단 내에서도 도겐은 如淨思想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어 도겐사상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가 생겼다. 그럼 도겐사상의 독창성과 관련하여 도겐사상이 그의 스승인 여정선사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했는지 여부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2) (3) 如淨과 도겐의 關係를 통해 본 도겐의 修證觀의 獨創性 問題
3) ① 양자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이해
도겐과 如淨의 사상적 연계성에 대해서 처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家永三郞이다. 그는 『中世佛敎思想史硏究』를 통해 일본불교는 중세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독창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중세에 와서 비로소 일본 불교는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종교가 아니라, 일본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재해석되어 일본땅에 그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家永은 가마꾸라신불교야말로 일본역사 속에 뿌리를 내리고 일본불교로서 자리를 잡아간 새로운 형태의 불교라고 보았다. 그는 그 선구자 중 대표적인 인물로 親鸞을 들었다. 그는 도겐도 親鸞과 같이 가마꾸라신불교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보기는 했으나, 도겐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을 했다. 그것은 도겐이 宋朝에서 발달한 禪宗을 가져다가 이를 正法이라고 하면서 유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일본의 말법적 시대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는 해석이다. 이와 같이 도겐이 平安末期의 민중적 체험과 무관한 사상을 펼친 것은 그에게 당시 사회적 상황에 입각한 인간의 본질적 위기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家永은 주장한다. 도겐사상을 (일본의) ‘국민적 지반으로부터 유리된 대륙불교의 기계적 이식’으로 본 그는 도겐에게서 사상적 독창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家永三郞은 도겐이 당시 일본의 말법시대적 상황을 무시하고 송대선종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보지만, 이는 가마꾸라신불교를 ‘末法時代’라는 측면만으로 바라보는 그의 한정된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家永은 도겐思想을 이해함에 있어 두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하나는 도겐이 지녔던 正傳佛法에 관한 문제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가마꾸라 시대에 형성된 천태본각사상에 대한 도겐의 문제의식이다.
‘末法時代’라는 측면은 가마꾸라신불교가 발생한 동기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만이 신불교를 발생시킨 요인인 것은 아니다. 즉 가마꾸라신불교가 형성된 요인으로는 당시 시대적 정황만이 아니라 일본불교가 안고 있던 사상적 측면도 있다. 그것이 바로 천태종을 중심으로 발생한 천태본각사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2장 ‘도겐의 수증관의 배경과 형성과정’에서 살펴보겠다. 히에이잔으로 출가한 도겐은 당시 부패한 불교상에 직면하여 무엇이 참된 佛法이고 佛道인지를 추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원의는 당시의 천태본각사상에 대한 의문과 맞닿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본각을 지니고 있다면 굳이 수행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왜 제불은 수행을 한 것인가?”하는 修證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가 宋으로 건너간 것도 바로 천태본각사상과 관련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풀기 위해서였다.
家永三郞은 도겐이 중국선사상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써, 『正法眼藏』에서 드러난 도겐사상과 도겐이 如淨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를 기록한 『寶慶記』의 如淨思想이 같다는 점을 들었다. 다시 말해 家永은 『正法眼藏』의 도겐사상과 『寶慶記』의 如淨思想에 별 차이가 없다고 봄으로써 도겐은 如淨思想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家永의 주장이 나올 당시에는 如淨 연구가 미비한 상태였기에 그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그 후 中村元은 『東洋人の思惟方法 2』를 통해 家永三郞의 도겐 解釋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했다.
도겐의 종교는 (중국)대륙의 그것을 충실히 繼受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寶慶記』에서 나오는 如淨의 교훈과 『正法眼藏』의 사상이 일치한다는 것이 그것을 위한 확실한 논거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寶慶記』가 도겐의 自作이지 如淨의 저작이 아니므로 여기서 인용한 如淨의 말에는 도겐 나름의 해석이 다분히 가해진 것이다.
즉 中村元은 『寶慶記』가 如淨에게 들은 바를 기록한 것이기는 하나, 엄밀히 말해 이는 도겐의 저술이기에 그 안에는 如淨에 대한 도겐의 재해석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正法眼藏』과 『寶慶記』을 비교하여 도겐이 如淨思想을 답습했다는 家永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中村元은 도겐과 如淨思想의 차이에 대한 논거로서 다음을 말한다. “如淨 자신의 어록을 보면 일반적으로 三敎一致說에 어느 정도까지 가까운데 도겐은 이에 대해 특별히 결벽한 태도를 지녔다.” 이는 도겐이 스스로 스승인 如淨의 법을 충실히 전한다고 확신하면서도 如淨과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家永의 견해에 반기를 든 中村元의 주장이 나오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如淨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如淨의 佛法繼承者인 도겐과 如淨 간에 사상적 차이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양자의 사상을 보다 정확히 비교하기 위해서는 우선 如淨思想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부응하여 如淨을 연구하기 시작한 학자가 鏡島元隆이다.
鏡島는 如淨의 門人들에 의해 편집된 『天童如淨語錄』과 『寶慶記』를 비교연구한 결과, 양자 간의 차이를 밝혀냈다. 즉 도겐이 만난 如淨 즉 『寶慶記』의 如淨과 『如淨語錄』이 말한 如淨 간에는 연대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如淨語錄』은 嘉定3年(1210)부터 如淨이 天童山에 간 寶慶元年(1225)에 걸친 16년간의 기록인데 반해, 도겐의 『正法眼藏』 및 『寶慶記』에서 말한 如淨에 대한 기록은 寶慶元年(1225)이후부터 寶慶3년(1227)까지의 기록이다. 이는 『如淨語錄』을 기록할 당시의 如淨과 도겐이 만났을 당시의 如淨 간에는 연대적 차이를 보여준다. 곧 도겐이 만난 如淨은 만년의 如淨이므로 그 이전의 如淨思想이 보다 심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겐 저술 속에 나오는 如淨思想과 『如淨語錄』 내의 그것을 如淨 자신의 사상적 심화로만 해석하기에는 양자 간의 차이가 크다. 『如淨語錄』이 전하는 如淨이 삼교일치 논자인데 반해, 도겐이 전한 如淨은 삼교일치 배격론자라는 것은 이를 입증하는 좋은 예이다. 도겐이 전한 如淨은 다른 문하에서는 볼 수 없으며 중국 송대 선종의 역사적 전통과 사회적 조건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如淨語錄』과 도겐의 著述 속에 나오는 如淨 간의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겐이 如淨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도겐이 자신의 저술 속에서 말하는 如淨像은 그가 만들었을 가능성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도겐과 如淨의 관계는 『寶慶記』에 기반을 둔 것이다.
다시 말해 『寶慶記』는 도겐이 如淨으로부터 직접 들을 것을 기록한 것이므로 이에 기반을 두고 如淨과 도겐의 사상적 긴밀성에 대해 논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寶慶記』의 역사성에 대해서 우리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寶慶記』는 도겐의 제자인 懷奘이 처음 발견하여 이를 書筆하여 후세에 전한 것이다. 懷奘은 『寶慶記』의 奧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建長5年(1253) 12월 10일 越宇 吉祥山 永平寺 方丈이 이를 書筆하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는 『寶慶記』는 懷奘이 永平寺 方丈으로 있을 때 書筆한 것임을 알 수 있다. 建長5年 12월은 도겐이 入寂한지 4개월 후의 일이다. 따라서 『寶慶記』는 懷奘이 도겐의 遺稿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寶慶記』라는 題名은 懷奘이 書筆한 筆本에는 없었는데 “寶慶元年(1225) 7월2일부터 시작되는 如淨 아래에서의 慘聞記錄”이라는 卷頭에 기록된 것에서 후에 붙혀진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寶慶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도겐 死後 그의 法弟子인 懷奘이 발견했다는 사실 뿐이다. 그래서 언제 도겐이 『寶慶記』를 썼으며 과연 그것이 도겐이 如淨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인지, 아니면 도겐이 후에 如淨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빌레펠트는 후자의 경우에 더 무게를 두어 『寶慶記』가 역사적 자료로서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도겐과 如淨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역사비평학적 방법을 거치지 않은 채 이루어져 왜곡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 중 하나가 도겐의 저술 내에 나오는 如淨思想을 핵면 그대로 如淨思想으로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도겐의 저술 내의 如淨思想은 도겐의 수증관이 정전되어온 불법임을 말하기 위해 자신의 사상을 如淨에게 덧씌웠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
이는 도겐이 1241년 이후에 쓴 『正法眼藏』에서 如淨을 부각시킨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와 같이 도겐이 如淨像을 꾸몄다고 가정하면 『如淨語錄』 내의 如淨과 도겐 저술상의 여정 간에 일치하지 않는 까닭이 비로서 풀리게 된다. 분명 『如淨語錄』 안에는 도겐이 말한 것과 같은 “스승이요 古佛”로서 如淨像이 잘 드러나 있지 않다. 如淨의 중국인 제자들은 다만 如淨의 설법이나 시와 같은 것들을 모아 『如淨語錄』을 편집한 것이다. 따라서 그 안에는 도겐이 如淨에게 배운 가르침들이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도겐이 말한 如淨像은 그가 만든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일단 도겐 저술 내의 如淨 思想은 도겐 자신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는 소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그럼 왜 도겐은 如淨思想을 꾸미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상세히 언급해 보기로 하겠다.
② 도겐과 여정의 수증관 비교
그럼 도겐과 如淨의 修證觀은 같다고 볼 수 있는가? 鏡島는 도겐이 如淨으로부터 佛法을 전수받았지만 그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如淨思想의 日本的 展開’라고 본다. 이는 도겐이 如淨思想을 이어받았지만 도겐은 일본불교 내에서 그가 지녔던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鏡島는 도겐과 如淨의 修證觀 차이가 初心의 得道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도겐이 如淨에게 “初心으로써 道를 얻습니까, 後心으로써 道를 얻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如淨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佛祖들이 正傳한 것은 단지 初心만이 아니나, 初心을 떠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만일 단지 初心으로 道를 얻는다면 보살은 初發心함에 곧 佛일 것이다. 이는 不可하다. 만일 初心이 없다면 어찌 제2, 3법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런즉 후에 初로써 本을 삼고 初는 후로써 기약을 삼는 것이다.
鏡島는 如淨이 근본적으로는 修證一等의 입장이면서도 修는 證을 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始覺的 修證觀을 수용하여 初心의 得道를 부정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鏡島는 如淨이 묵조선 전통이면서도 묵조선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간화선적 측면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도겐은 이와 반대로 初心의 得道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鏡島는 「辨道話」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佛法에서 修證은 하나이다. 지금 〔수행하고 있는 것도〕 실은 證上의 修이므로 初心者의 辨道가 그대로 本證의 전체이다. 그러므로 수행의 用心을 가리킬 때에도 수행 외에 깨침을 기대해선 안됨을 가리킨다. 그것은 수행이 본래의 깨침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미 깨침도 수행 위의 깨침이므로 깨달아 끝나는 것이 아니며, 수행이라 해도 깨침 위의 수행이므로 수행에는 시작이 없다.
즉 도겐은 “佛道에는 修證一等이며 證上의 修이므로 初心의 弁道가 곧 本證의 전체”라고 하여 初心의 得道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鏡島는 如淨과 도겐 간에는 初心의 得道를 인정하는가를 두고 견해 차이가 있다고 본다. 初心의 得道를 부정한 如淨은 理로서는 本覺門 思想이지만, 事로서는 始覺門이라는 二元的 修證觀에 머물러 있다. 반면 도겐은 本覺門을 理에서만이 아니라 事에까지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如淨과 도겐의 修證觀은 修證一等의 면에서는 같으나, 如淨은 (修證一等이면서도) 修에서 證으로 향하는 始覺的 修證觀인데 반해, 도겐은 (修證一等이므로) 證에서 修로 향하는 데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鏡島는 이러한 양자의 차이를 통해 도겐禪을 如淨思想의 日本的 展開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鏡島가 말한 것과 같이 양자 간의 수증관을 구별짓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양자가 지녔던 문제의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如淨은 宋代의 黙照禪과 看話禪 간의 수증문제와 그 병폐를 문제삼았던 반면, 도겐은 천태본각사상을 문제삼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如淨은 당대 묵조선자들이 無事禪的인 경향을 띠고 있음을 인식했기에 기본적으로는 修證一等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初心者들에게 수행의 실천을 강조하기 위해서 初心得道를 경계했다. 반면, 도겐은 천태본각사상을 문제삼았으므로 보다 철저히 本證 위의 修로서 수행의 의미를 밝히는 것을 중시했다. 이와 같이 도겐은 철저하게 證上의 修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初心의 得道를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도겐의 입장은 그의 무상관에 기초한 그의 시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겐은 『正法眼藏』「有時」를 통해 자신의 시간관을 밝히고 있다. 즉 일체 존재는 刹那現 刹那滅이어서 前後際斷이라는 絶對現在의 순간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도겐의 修證觀은 바로 有時의 而今을 사는 존재로 거듭나도록 촉구하고 있다. 有時의 而今이라는 시간관에서 도겐은 발심 수행 보리 열반의 때를 각각 佛性現成의 때로 본다. 이것이 바로 도겐이 말한 有時現成의 의미이다. 도겐의 初心得道 또한 이러한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鏡島의 연구 이후로도 도겐思想과 중국선종사상 특히 如淨思想과의 연계성을 둘러싼 연구는 계속되어 왔다. 그것은 도겐思想의 성격을 밝히는데 있어 如淨과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함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종단 외에 도겐과 如淨의 關係를 연구한 학자로 何燕生을 들 수 있다. 그는『道元と中國禪思想』에서 말하기를 지금까지 나온 도겐 硏究는 입장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도겐思想의 독창성을 강조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중국불교 내에서 도겐에게 영향을 준 선사들의 사상적 영향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何燕生은 도겐思想을 독창적이라기보다 如淨思想을 이은 것으로, 중국선사상의 연장선상에서 도겐사상을 보고자 한다. 그러나 중국불교의 연장선상에서 도겐思想을 보려는 何燕生의 立場은 도겐의 문제의식 곧 가마꾸라시대의 천태본각사상이나 당시 일본불교사상과 도겐과의 관계를 간과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 외 如淨과 도겐의 관계에 대해 역사비평학적 방법으로 연구한 학자로 칼 빌레펠트를 들 수 있다. 빌레펠트는 종래의 해석들처럼 도겐의 종교세계에 기초를 두고 불교사에서 일어난 종파적 분열을 초월하여 하나의 보편종교로서 석가모니의 불교를 구축하려 했다는 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종교란 역사 내에서 형성되어온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도겐 역시 이러한 역사 속에서 살았음을 강조한다. 그럼 그가 본 도겐과 如淨의 關係를 중심으로 양자 간의 사상적 관계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하자.
4) ② 역사비평학적 입장에서 본 도겐과 여정
빌레펠트는 『정법안장』의 후기작품에서 如淨의 存在가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도겐과 如淨의 關係를 고찰하고자 한다. 도겐은 『如淨語錄』이 중국에서 들어온 1242년 이후에 쓴 후기『正法眼藏』에서 如淨을 수차례 거론하고 있다. 후기 『정법안장』 25권에서 무려 36번이나 如淨을 언급하고 있는데 빌레펠트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도겐과 如淨의 關係를 풀어가고자 한다. 빌레펠트는 1242년 이후의 『정법안장』에서 도겐이 如淨을 많이 언급한 데에는 뭔가 도겐의 숨은 의도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도겐이 자신의 법맥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如淨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라고 빌레펠트는 해석한다. 다시 말해 도겐이 자신의 수증관을 부각시키기 위해 역사적 증명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신의 사상으로 새로운 如淨像을 만들어 如淨이야말로 正法眼藏을 이어받은 正法 繼承者로 부각시키고자 하지 않았나라고 본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도겐은 왜 그 작업을 1240년 이후에 가서 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빌레펠트는 도겐이 당시 일본에서 세력이 강했던 임제종과의 대립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도겐은 자신의 수증관과 임제종의 그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1240년 이후로 가면서 더 깊이 자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자신의 주장이 당대 강한 세력을 지닌 임제종과 다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如淨에게 권위를 부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도겐은 임제종과 구별되는 자신의 수증관을 부각시키기 위해 후기에 가서 如淨을 부각시켰을 뿐 아니라 『正法眼藏』「佛道」의 마지막에서 如淨의 法脈인 靑原行思, 洞山良价도 강조했다는 것이다. 즉 도겐은 如淨의 法脈을 부각시킴으로써 正法인 좌선이 이 법맥을 따라 전수되어 왔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도겐은 지관타좌야말로 붓다에서 如淨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넘어서 전수되어온 正法임을 강조하고자 했다는 것이 빌레펠트의 주장이다.
도겐이 如淨을 강조한 것을 임제종과의 세력적인 갈등 안에서 나온 것으로 본 빌레펠트의 역사비평학적 시각은 오늘날 불교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큰 자극을 주는 대목이다. 만일 선종을 연구하는 이들이 역사비평학적 연구방법론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선종사의 해석에 상당한 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빌레펠트는 도겐이 자신의 사상 안에서 如淨을 재해석함으로써 如淨을 正法을 이은 스승으로 만들었다는 견해를 펼친다. 도겐에게 이것이 필요했던 것은 本證妙修요, 證上의 修로서의 坐禪이 正法眼藏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도겐은 자신의 사상을 如淨에게 부여해서, 如淨이야말로 정법안장의 유일한 계보라고 해석함으로써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도겐과 같이 자신의 스승상을 만들어낸 경우를 우리는 중국선종사 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神會가 만들어낸 慧能像이다. 혜능을 중국선종의 6대 조사로 꾸민 역사적 배경 안에는 신회의 문제의식이 숨어 있다. 신회는 北宗禪의 漸修的인 側面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頓悟思想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자신의 주장이 혜능에게서 왔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신회가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자신을 제7대조사로 하기 위함이었다.빌레펠트는 도겐 역시 당시 임제종과 자신의 수증관 차이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如淨을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도겐이 여정을 부각시키고자 한데에는 당대의 임제종의 수증관과 자신의 수증관이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깊어진데서 비롯되었다. 임제종은 覺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데 반해, 도겐은 좌선을 강조했다. 즉 “수행하는 자리를 떠나 깨침을 말할 수 없다”는 본증묘수가 그것이다.
도겐은 당대 일본 임제종의 수증관과 차이를 느낀 와중인 1242년에 중국으로부터『如淨語錄』을 받게 되었다. 도겐은 그것을 읽고 난 뒤 이를 기록한 중국인 제자들의 如淨과 자신이 알던 如淨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중국인 제자들이 이해한 如淨思想과 자신이 배운 如淨의 가르침 간의 차이를 자각한 도겐은 자신이 진정 如淨의 佛法을 전수받았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다. 물론 도겐이 如淨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如淨의 修證觀과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은 도겐이 자신의 문제의식 속에서 如淨의 가르침을 재해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如淨의 중국인 제자들은 중국선종의 수증관 안에서 如淨思想을 보았던 것에 반해, 도겐은 자신이 지닌 천태본각사상과 관련된 문제의식 안에서 如淨思想을 이해한 것이다. 다시 말해 도겐의 修證觀은 如淨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도겐 자신이 지닌 대의단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도겐은 『如淨語錄』의 如淨思想과 자신이 배운 如淨의 가르침의 차이는 중국선종의 수증관과 자신의 수증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도겐은 자신이야말로 如淨이 지닌 正法을 보존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확신이 도겐으로 하여금 정전불법으로서의 지관타좌를 주장하게 된 배경이라고 빌레펠트는 해석한다. 그래서 도겐은 ‘坐禪은 正法眼藏’이라는 것과 이 정법안장이 석존으로부터 달마, 혜능을 거쳐 如淨 그리고 자신에게 正傳되어 왔음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도겐은 ‘정법안장으로서의 좌선’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후기에 가서 如淨과 그의 계보인 洞山을 강조했고 임제전통에 대해 비판을 가하게 되었다. 도겐이 越前에 도착한 후에 쓴 그의 저술들은 이러한 배경 하에 쓰여진 것이며 거기서 如淨이 거듭 강조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종전에는 도겐의 宗敎世界를 단지 석가모니의 불교에 기초하여 모든 역사적 분열을 초월한 하나의 보편종교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도겐思想이 지닌 초종파적인 견해는 後期에 형성된 것이며 1240년말까지 도겐은 禪의 5家 宗派를 강조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가 1243년에 저술한 『正法眼藏』「佛祖」에 보면 도겐은 五家宗派 槪念을 거부하고, 대신 正法인 坐禪이 靑原行思를 거쳐 洞山良价로 전수되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 도겐은 후기에 가서 5가종파 개념을 부정했는가? 이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도겐이 후기에 가서 불법전수의 새로운 법맥을 만든 것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도겐은 자신이 주장하는 ‘坐禪으로서의 正法眼藏’이 붓다에서 如淨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초월하여 전수되어 왔음을 알리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래 선종이 지닌 종파적 개념을 초월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즉 5가종파 개념에서부터 좌선이 전수되어온 새로운 법맥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도겐은 佛敎의 原流인 釋尊 당시에는 禪宗이라는 이름이 없었음을 강조하여 五家宗派的 槪念을 거부하고 좌선의 법맥을 새로이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인도로부터 중국에 〔佛法이〕전해져 만팔천리, 석존이 살아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0년이다. 이 道理를 參學하지 않고 모두 오해하고 있어 〔佛祖로부터 바르게 전해진〕 正法眼藏 涅槃妙心을 禪宗이라고 칭하고 있다. 또 祖師를 禪祖라고 하고 佛道를 배우는 자를 禪子라고 이름붙이거나 禪和子라 부른다. 더욱이 禪門의 諸流에 (그런) 自稱의 이름이 있다. 이는 모두 왜곡된 견해를 근본으로 한 것들이다.인도이나 중국에서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禪宗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함부로 禪宗을 자칭한 이는 佛道를 파하는 魔黨이다.
초종파적 입장은 諸佛을 諸祖와 동격으로 보는데서도 드러난다. 道元은 『正法眼藏』「佛祖」권에서 무려 57人의 佛祖 이름을 나열한다. 그는 단순히 佛祖의 이름만 열거하고 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57人이 모두 ‘大和尙’으로 불리워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道元은 過去佛의 제1 毘婆尸佛로부터 시작하여 7佛의 이름을 열거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호칭은 모두 ‘大和尙’이다. 이와 같이 諸佛도 和尙으로 칭한 것은 佛法을 전수한 모든 이가 ‘坐禪’이라는 正法을 전수했음을 말하고자 한 道元의 意圖가 숨어 있다. 다시 말해 道元은 坐禪을 행한 和尙에서 和尙에로 불법이 정전되었음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보통은 과거7불에서 석가불까지를 佛이라고 하고, 인도에선 마하가섭을 제1祖라고 하며 중국에선 달마를 제1조로 간주하나, 道元은 달마를 28조로 본다. 道元이 달마를 중국선종의 初祖로 보지 않은 것은 그를 석존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불법을 전수받은 조사로 해석하고자 한 그의 의도가 숨어있다.
<정법안장> 「行持」권에서는 과거7불에서 시작하여 석가모니불을 거쳐 불법을 전승한 인도의 諸佛祖가 나오고, 보리달마를 비롯한 中國의 諸祖에 대해 설한 뒤 끝에 如淨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道元이 최후에 如淨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道元은 當代 별로 알려지지 않은 如淨을 끝에 부각시킴으로써, 붓다로부터 56佛에 전해져 온 정법안장이 如淨에게 전해졌고 그의 제자인 자신에게로 전수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즉 道元은 釋尊이 가섭존자에게 전해준 그 正法眼藏이 如淨을 통해 자신에게 전수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坐禪이 正法眼藏’임을 역사적 사실로서 입증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이 道元은 종래의 종파적 개념을 초월하여 坐禪이 모든 佛祖를 통해 正傳되어 왔음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인 本證妙修로서의 只管打坐에 대한 역사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道元이 비록 초종파를 주장할지라도 坐禪을 正傳된 佛法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도그마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道元이 坐禪을 正法眼藏으로 규정하고, 이를 붓다로부터 자신에게까지 하나의 法脈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주장 자체가 正法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이며, 이런 의미에서 道元의 주장 또한 새로운 의미의 종파적 성격을 띠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道元과 如淨의 關係를 통해 道元思想의 獨創性 問題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소결론은 道元이 주장하는 修證觀은 歷史的 如淨에게서 배운 것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如淨은 분명 묵조선을 이으면서도 始覺的 修證觀을 겸비한데 반해, 道元은 “修를 떠나서는 證을 말할 수 없다”는 本證妙修의 修證觀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수증관의 차이는 양자가 자랐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즉 道元은 日本 鎌倉佛敎의 産物인 천태본각사상에 대해 깊은 의문을 지녔을 뿐 아니라 말법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았다. 또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無常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측면이 道元으로 하여금 如淨思想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자신의 수증관으로 심화시킬 수 있도록 만든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道元과 歷史的 如淨 間의 修證觀 차이는 道元이 如淨을 만나기 전에 지녔던 문제의식인 천태본각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道元에 대해 연구해온 학자들 간에도 道元과 本覺思想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통종학의 종단 내에서도 본각사상과 관련하여 道元思想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로 인해 논쟁이 있어왔다. 전통종학은 道元思想의 기본입장을 ‘本證妙修에 대한 信의 佛法’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悟의 問題와 관련하여 논쟁의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本證妙修 자체를 부정하는 批判宗學의 문제까지 나와서 道元 이해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켜 왔다. 그럼 먼저 道元의 修證觀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들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살펴봄으로써 道元의 修證觀을 올바로 이해하는 길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5) (4) 지금까지의 道元 연구에서 드러난 문제들
6)
7) ① 信의 佛法을 주장하는 傳統宗學의 問題
8)
가마꾸라신불교는 信의 內容에 있어 각 종파 간에 차이가 있으나 信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전통종학은 道元思想의 본질을 ‘本證妙修에 대한 信의 佛法’이라 칭한다. 이는 현대종학자인 衛藤卽應과 博林皓堂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信의 意味는 무엇인가? 衛藤卽應은 『宗祖としての道元禪師』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信은 佛道에 들어가는 기본으로서 최초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學道의 究極이다. 「三七品菩提分法』에서 (道元은) ‘佛果位가 아니면 信現成은 드러나지 않는다. 불법의 大海는 믿음으로써 능히 들어갈 수 있다.(佛法大海信爲能入) 믿음이 현성(信現成)하는 곳이 곧 佛祖가 現成하는 곳’이라고 하여 信은 궁극적으로 證에 돌아감임을 밝히고 있다.
衛藤卽應은 “일반적으로 禪은 信보다 그 반대인 의심에서 출발하여 大疑를 大悟하는 것이라고 하나, 이는 待悟禪에서 知見의 開發을 주안으로 하는 것이어서 行을 本位로 하는 한, 疑心은 信에 귀결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심에 기초한 禪은 看話禪을 말한다. 즉 宋朝의 看話禪은 大疑에 大悟가 있다고 보아 古人의 話頭를 크게 의심해서 見性悟道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에 반해, 道元은 信을 學道의 기본으로 하여 禪의 原流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전통종학은 주장한다. 이와 같이 道元에 있어 信이 佛道에 들어가는 처음에 요구되는 信이 아니라 究極의 信이라면 중생에게 있어 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전통종학자들은 자신들이 말한 信의 根底를 『學道用心集』 제9권의 다음 표현에 두고 있다.
佛道를 수행하는 자는 우선 佛道를 믿어라. 佛道를 믿는 자는 자신이 本來의 佛道 중에 있어 迷惑하지도 妄想하지도 顚倒하지도 增減하지도 않고 誤謬도 없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갖고, 道를 밝혀 이에 의거하여 수행하는 것이 곧 佛道를 닦는 기본이다.
즉 道元이 말한 信은 本證의 信으로써 범부인 나도 본래 證上에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과연 미궁에 빠져 살아가는 중생이 本證의 信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전통종학은 佛道 수행자는 ‘자기도 佛道 안에 있는 사람’임을 먼저 믿는 것이 수행의 기본자세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좌선수행을 하여 知解의 마음 즉 心意識의 運轉을 그만두게 되고 그 機緣이 익어 身心脫落의 時節이 오면 迷悟도 없는 佛道 안에 살아가는 자신임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종학은 ‘자기도 佛道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한다.
전통종학은 우리가 미궁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現今의 自身을 믿지 않고 佛이라는 이상을 멀리서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라는 현실의 장을 살아가는 자신이 佛道에 있음을 믿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통종학에서는 信의 佛法을 강조했으나 信現成까지의 구체적인 과정과 지침은 명시하지 않았다. 즉 전통종학은 다만 믿는 것에 의해서 佛의 自覺에 도달한다는 점만을 강조함으로써 미궁으로부터 어떻게 깨침으로 나아가는지의 문제 즉 悟의 問題가 계속 따라올 수 밖에 없다.
전통종학에서는 중생도 자신이 佛임을 확신하고 그 믿음을 지속함으로써 佛의 眞理로 들어선다고 하나, 중생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信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행하는 수행이 本證妙修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종학이 말하는 信의 佛法의 문제점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전통종학이 말한 本證妙修가 진정한 信의 佛法이 되기 위해서는 신심탈락하는 깨침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깨친 자는 本證妙修로서의 삶이 가능하나, 깨치지 못한 중생은 어떻게 본증묘수가 가능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전통종학은 깨달음의 문제를 간과한 채 信의 佛法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道元도 如淨 아래에서 깨달음의 체험을 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도겐사상에 있어 信과 修 그리고 證의 상관관계가 밝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道元은 「普勸坐禪儀」 안에서 “心意識의 運轉을 정지하여……非思量하는 것이 坐禪의 要術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非思量은 道元에 있어서는 坐禪을 의미한다. 道元에 있어 坐禪은 證을 떠나지 않은 修이다. 道元의 표현을 빌리자면 ‘證上의 修’이다. 이와 같이 깨달음 없이 道元이 말한 證上의 修인 좌선을 구현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道元의 佛法은 전통종학자들이 말한 ‘信의 佛法’이기보다 身心脫落을 통한 行(坐禪)의 佛法’이 아닌가 싶다.
전통종학에서는 道元이 깨달음이나 見性을 중시한 看話禪을 비판한 것을 들어 道元의 가르침은 悟와 무관한 것처럼 해석한다. 그러나 道元이 看話見性禪을 비판한 것은 悟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기보다 悟를 목표로 삼고 수행을 그 수단으로 삼는데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道元이 거부한 것은 좌선을 수단으로 삼아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목적론적인 悟이다. 이를 간과하고 道元은 悟를 거부했다는 주장은 자칫 道元의 修證觀의 중요한 일면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전통종학이 주장하는 ‘信의 佛法’이 지닌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조동종 학자인 鏡島元隆가 그의 마지막 강의에서 道元의 基本立場을 ‘本證에 대한 信의 佛法’으로 보는 전통종학의 관점을 거부하고 ‘願의 佛法’이라는 새로운 입장을 내세웠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鏡島는 ‘信의 佛法’을 거부한 것일까?
鏡島는 전통종학에서 道元禪을 本證의 信이라 규정한 것은 ‘현실의 내’가 아니라 ‘본래의 나’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미궁 속에 살아가는 중생의 내가 아니라 본래부처인 자신에 기반을 두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鏡島는 전통종학에서 주장하는 信의 佛法에 의문을 품고 道元禪을 佛法에 대한 ‘信의 佛法’이 아니라 ‘願의 佛法’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鏡島의 解釋은 근본적으로 道元의 基本立場을 本證妙修로 보는 것에 대한 회의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전통종학이 말하는 信의 佛法은 중생의 입장을 무시한 佛의 立場에 서서 말하고 있으므로 범부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鏡島가 信의 佛法을 철회하고 願의 佛法을 주장하게 된 이유이다. 그럼 鏡島가 도겐의 입장을 願의 佛法이라고 주장함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석가모니불께서 말씀하시기를 「法華通出品の文」 ‘내가 몸을 보고 내가 설한 바를 듣고 곧 모두 〔진리라고〕 믿으면 여래의 은혜에 들어간다.’ 이와 같이 佛이 말씀하신 것을 듣는다는 것은 곧 佛의 몸을 보는 것이니 처음으로 佛身을 보는 것이다. 스스로 능히 〔이를〕 믿으면 여래의 은혜에 들어갈 수 있다.......佛의 곳으로 들어가려는 誓願을 발하는 것은 예로부터 발해온 誓願과 같고 다름이 없다.
이와 같이 鏡島는 ‘佛의 말씀을 듣고 믿어 願을 발하면 여래의 은혜에 들어갈 수 있다’는 道元의 말에 근거하여 道元이 願의 佛法을 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願은 『涅槃經』에 나오는 ‘自未得度先度他’(자신은 아직 得道하지 못해도 먼저 남을 구도한다)는 菩薩의 願을 發하는 것을 말한다. 道元은 『正法眼藏』「發菩提心」에서 “보리심을 일으킴은 스스로 지금 일체중생을 위해 발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鏡島는 이러한 願을 발하면 범부인 우리는 깨침을 구하는 佛이 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다.
나는 깨침을 지상으로 삼는 中國禪에 비해, 道元禪의 특징은 願을 지상으로 삼는 데에 있다고 보며, 깨침을 지상으로 삼는 中國禪에서 願의 佛法, 凡夫의 宗敎인 道元禪의 脫却이 있다고 본다.
鏡島가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전통종학이 근본적인 문제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생의 입장에서 볼 때 전통종학이 말한 本證妙修의 世界는 큰 괴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중생의 입장에서 道元의 思想을 願의 佛法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鏡島가 주장하는 願의 佛法은 12권『正法眼藏』을 중심으로 한 해석이지, 75권『正法眼藏』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75권과 12권『正法眼藏』의 관계는 3장에서 상세히 살펴보겠지만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75권『正法眼藏』은 깨친 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으로 내용 자체도 난해한 반면, 12권『正法眼藏』은 佛道에 들어온 초심자를 위한 것으로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다. 이와 같은 차이 때문에 학자들 간에 兩『正法眼藏』의 關係에 대한 異見이 많다. 鏡島는 전통종학에서 말하는 信의 佛法이 75권『正法眼藏』을 중심으로 한 것이라면, 자신이 주장하는 願의 佛法은 12권『正法眼藏』을 중심으로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12권『正法眼藏』을 중심으로 하여 道元思想을 재해석한 鏡島의 主張은 전통종학을 비판하여 나온 비판종학의 문제와도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9) ② 本證妙修에 대한 批判的 視角으로서의 批判宗學
10)
하까마야 노리아끼(袴谷憲昭)는 「사회적 차별을 배출한 사상적 배경에 관한 私見」(1986)이라는 논문을 통해, 불교를 ‘批判佛敎’와 ‘場所佛敎’라는 두 관점으로 나눈다. 그리고 그 자신은 비판불교의 입장에 서서 불교 내에 장소불교라고 칭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다. 비판종학은 바로 이러한 ‘비판불교’라는 용어와 함께 형성된 조동종의 한 종학이다. 袴谷이 비판한 장소불교 중 그 대표적인 것은 바로 本覺思想이다.
그는 “本覺은 현상세계를 넘어선 근원적 깨침이고 그 깨침은 본래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해 있어 상주하고 있다”고 정의를 내린다. 이는 바로 心性常住說을 의미한다. 袴谷은 道元이 비판한 外道思想이 心性常住說이며 道元은 이를 통해 본각사상을 비판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袴谷은 道元의 基本立場을 본각사상에 대한 비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75권『正法眼藏』과 12권『正法眼藏』의 관계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즉 袴谷은 75권『正法眼藏』에는 본각사상적 잔재가 남아 있으므로 道元이 만년에 가서 본각사상을 철저히 배격한 12권『正法眼藏』을 저술하면서 75권『正法眼藏』을 수정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袴谷은 道元의 思想的 變化를 내세우면서, 본각사상의 잔재가 남아있는 75권『正法眼藏』을 중심으로 道元思想을 해석해온 전통종학의 입장을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袴谷와 함께 비판불교학자로 손꼽히는 마쯔모또 시로(松本史朗)도 袴谷의 기본적인 견해를 수용하면서 비판불교 입장에 서서 연구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松本은 本覺을 중심으로 한 袴谷의 주장이 논리적인 불명확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袴谷의 기본적인 입장을 수용하면서도 자기 나름의 새로운 이론적인 틀을 세우고자 했다. 즉 松本은 본각이라는 단어 자체가 많은 오해와 혼란을 야기시킬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도불교와도 거리가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本覺’대신 인도불교에서부터 유래한 ‘如來藏思想’을 그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松本은 여래장사상을 비판하기 위해서 Dhātu-vada(基體說)라는 가설을 세웠다. 基體說은 松本이 여래장사상의 본질적 구조를 보이기 위해서 쓴 “『勝鬘經』의 一乘思想에 대하여”라는 논문 이래 가설적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단일한 실재인 基體(dhātu)에서 다양한 차별상(dhama)이 생긴다”는 설이다. 즉 그것은 존재의 근거인 理를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에서 多가 나온다는 發生的 一元論이다. 松本은 여기서 말하는 理가 바로 如來藏이라는 것이다. 松本은 基體說을 근거로 하여 발생론적 일원론의 근저인 理로서의 如來藏을 인정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松本은 여래장사상을 비불교라고 규정짓는 근거로 12지연기설을 든다. 그는 緣起를 “상호의존적인 동시적 공간적 연기가 아니라, 종교적 시간으로서의 불가역적 방향성을 가진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와 같이 공간(장소)개념이 배제된 순수한 시간개념으로만 緣起를 규정한 松本은 이를 불교진리의 기본입장으로 삼고, 공간개념적 의미를 내포한 모든 것은 불교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즉 松本은 공간개념을 실재개념으로 봄으로써 불교사에서 등장한 실재개념을 비불교적인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松本은 실재개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여래장사상을 들고, 이에 근거한 불교이해는 수정되거나 폐기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여래장사상을 불교의 기본규정인 연기사상에 어긋나는 하나의 界라는 공간개념으로 본 松本은 道元도 같은 시각에서 여래장사상을 비판했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가 1996년 2월 曹洞宗 宗務所에서 ‘傳統宗學의 諸問題’라는 제목으로 한 강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그 논문에서 전통종학은 道元의 中心思想을 佛性思想이라고 보고 그 근거를 「辨道話」, 「現成公案」, 「佛性」에 두고 있지만, 만년의 道元은 이러한 초기작품이 여래장사상의 잔재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수정하고자 했고, 그 출발점으로 연기설에 근거한 12권『正法眼藏』을 쓰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전통종학은 75권 『正法眼藏』을 道元思想의 핵심으로 보지만, 松本은 75권『正法眼藏』은 道元이 후에 다시 수정하고자 했던 저술이라고 보고, 道元이 만년에 남긴 12권『正法眼藏』이야말로 道元思想의 근본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전통종학과 대립되는 해석에 기반하여 비판종학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批判宗學은 전통종학처럼 宗祖나 그의 저술을 절대시하지 않고 道元에게 사상적 변화가 있다고 본다. 또한 비판종학은 연기설을 근거로 하여 이에 반하는 여래장사상을 비판하고 여래장사상이 남아 있는 道元의 初期著述보다 深信因果를 기반으로 한 後期著述을 중시한다.”
이상에서 우리는 조동종 종단 내에서 발생한 비판종학의 주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들의 주장은 道元의 宗敎世界를 자신들이 규정해 놓은 불교―즉 ‘연기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모든 것은 비불교적인 것’이다―라는 잣대도 시비를 가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비판종학은 道元의 종교세계와는 동떨어져 있으나 그들을 통해 전통종학의 문제점이 다시금 부각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종학은 本證 위에서의 妙修를 말하지만, 비판종학자들에게는 전통종학에서 말하는 本證이 그들이 비판한 본각이나 여래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비판종학자들에게 本證이 心性常住論的 意味의 本覺이나 如來藏으로 비추었다면, 이것은 전통종학자들이 道元解釋에서 천태본각사상과 관련하여 道元思想을 心性常住論的으로 해석하는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함께 道元思想에서 悟를 간과하는 측면이 道元의 修證觀에 대한 전통종학의 해석에서 문제점으로 부각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앞으로「佛性」권을 통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